1. 서론구미의 지리학계는 1920-30년대를 거치면서 특화된 연구 주제들과 독자적 방법론을 가진 근대적 학문으로 확립되어 발전해 온 독자적 학문 분야로서 오늘날까지 주요 개념과 방법론이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구상되어왔고 동시대에서도 국가마다, 민족마다 심지어는 학자마다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다.특히 미국의 지리학자인 칼 사우어(Carl Ortwin Sauer, 1889~1975)가 그 중심 인물로, 무엇보다도 산과 들을 누비고 다니며 묻혀 있던 지역의 실상을 파헤친 실천적인 연구태도와 혹독할 정도로 제자를 철저히 훈련시켜 세계 지리학계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교육자로서의 역량을 모두가 기억하고 있다. 학자로서 사우어의 영향력은 인문?자연지리학의 울타리를 넘어 인접한 고고학, 역사학, 식물학, 인류학 등 인문?사회과학 전반에까지 미치고 있다.2. 본론1. 지역조사의 방법과 목적철학적으로 사우어는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계몽사상의 결정론적 자연주의에 기초한 인류지리학을 극구 반대하였던 것은 바로 그와 같은 철학적 신념에서 비롯되었다. 특히 사우어는 괴테의 발생학적 형태학에 깊은 호감을 표시하여 지리학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기본적인 생각과 철학이 그러한 만큼 사우어의 현상과 경관에 기초한 지리학 방법론은 자연히 선험적인 구도를 부정하고 철저한 관찰 본위의 방법론을 수반하게 마련이었다. 현장 중심적이고 귀납적이며 현실적이었던 것이다. 짜집기식 연구는 그의 성향에 맞지 않았고, 통계수치를 맹신하는 지리학을 조롱하였다. 엄밀한 수치데이터는 계량지리학에 절실히 요구되지만 고도의 기법을 이용하여 숫자를 수단보다는 오히려 목적으로 활용하는 데에는 반대하였다. 특히 역사기록과 같이 이미 지나버린 시기의 자료는 불완전하고 사실 확인이 곤란하기 때문에 기법만으로 진실에 접근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라 하였다.문서자료에 의미를 부여하기 전에 반드시 현장을 답사하고 대조하면서 신뢰도를 높여나가는 노동집약적인 지리학을 추구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 모른다. 한 지역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은 친밀감에서 비롯되며, 장소에 대한 친밀감은 일상적인 경험과는 다른 신체적이고 영적인 체험, 즉 답사를 통해서 배양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사우어 자신은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 지역에 관심이 많아 학기가 끝난 뒤에는 항상 제자들을 이끌고 현지를 답사하였으며 인류학과의 크뢰버와 함께 창간한 중남미 지역 전문 학회지에 발표하였다.물론 추론이 필요할 때면 그 자신도 연역적인 방법에 귀를 기울였다. 사우어가 다른 사람과의 차이가 있다면 일차자료에 대한 철저한 분석, 치밀한 현장관찰, 기발한 상상력, 지리적 감성이 종합된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는 가설과 모델을 만들어내는 탁월한 능력이라고 하겠다.2. 경관의 형태학사우어는 경제지리를 연구하다가 독일의 쉴뤼터가 연구하던 경관론을 받아들여, 20대 초반에 경관론을 주창하다가 버클리 대학에 자리 잡고는 쉴뤼터의 견해를 벗어나 완전한 자신만의 견해를 세우고자 하였다.현상은 지식 그 자체로서 추상화보다는 사실적인 접근을 통해 이해될 수 있는 대상이었다. 직관적인 상념을 통해서 현상과 그들 사이에 내재한 힘을 알아낼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현상의 구체적 존재양상인 형태는 변화와 발전을 수반한다. 따라서 관찰의 대상은 정태적인 결과물보다는 계속해서 성장하는 과정이었다. 사우어의 지리학은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개체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정의한 괴테의 형태학을 따르고 있지만 일반적인 의미의 ‘형태’를 ‘경관’이라는 개념으로 대치하여 나름대로의 영역을 구축하였다.앞서 말한 괴테와 사우어의 연결고리는 이분법적 사고의 틀을 넘어선 종합적 일원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유기체와 환경의 관계를 구조화된 전체로 파악하는 점에서 그러하다. 전체를 구성하는 각 부분은 상호의존적적인데, 빛과 어둠, 주체와 객체, 육체와 마음처럼 인간과 자연도 양극에 서 있지만 공존하는 실체였다. 인간과 자연이 이원적으로 존재하는 가운데 일체가 되는 변증법 표현이 바로 ‘경관’이었다.우선 사우어는 지역연구는 결정론적 사고로부터 도피를 위한 포석으로 환경론 논쟁을 새롭게 접근하고자 하였다. 즉 인간이 환경을 바꾸어 나가고,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사우어의 주장이었다. 그가 볼 때에는 환경결정론과 가능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서로 대립되는 것처럼 생각을 해왔지만, 주체는 환경이고 인간은 항상 수동적인 입장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두 입장은 마찬가지로 비판하였다. 그는 더 나아가서 인류가 이 세상에 출현한 이래로 인류는 자연환경을 끊임없이 바꾸어 왔다고 주장했다. 사우어 자신은 공허한 정체성 논의보다는 실질적인 측면서 리히트호펜의 지역지 전통을 수용하여 적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하였다. 지리학을 지역지리의 패턴과 프로세스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재정립하였던 것이다.사우어의 지역지리 관심분야는 1925년에 발표되어 현재 문화지리학의 고전으로 자리잡은 ‘경관의 형태학’이라는 논문으로 집약될 수 있다. 이는 미국지리학계에서 환경 결정론에 대한 장송곡이었을 뿐만 아니라, 떠한 1930년대 미국에서 수많은 지리학적 연구에 하나의 정형적 도식을 제시한 것이었다. 크뢰버 같은 저명한 인류학자와의 교류가 계기가 되었는지, 사우어 지리학의 키워드는 언제나 ‘문화’였다. 그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 수동적이고 나약하게 묘사된 인간을 대신할 개념으로 문화를 선택하였던 것인데, 여기에 다양한 이론을 접목시켜 문화지리학 분야를 개척하였다. 실제 연구에서는 문화집단의 생활양식, 특히 지역문화의 물질적이고 가시적인 표현인 문화경관에 초점을 맞추었다. 사우어의 문화경관은 자연경관을 원료로 문화와 시간이라는 동인이 매개하여 이룩한 결과로 파악할 수 있다. 문화와 경관을 요체로 하는 사우어의 문화지리학은 언뜻 보기에 쉴뤼터의 경관학과 유사한 측면이 있으나, 추가적으로 시간적인 틀이 중시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정적인 문화경관보다는 시간과 공간의 행렬에서 파악한 문화경관의 변천이 중요한 연구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우어 문화지리학은 문화사(cuture history)로 불리기도 한다.‘스페인의 초기 신대륙 식민지’를 비롯해 북미대륙과 관련된 세 편의 저술은 사우어의 또 다른 관심분야인 역사지리적 방법론에 입각해 씌여졌다. 일찍이 칸트는 시간과 공간을 역사학과 지리학의 독립적인 연구 분야로 양분한 일이 있다. 가능하면 다른 학문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양보의 관행이 한동안 계속되었고 결과적으로 양자는 각각 비공간적이고 비역사적인 학문으로 전락하여 침체의 늪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사우어가 1941년 미국 지리학회장 취임 연설문에서 비록 역사지리학을 제안의 성격으로 주창하긴 하였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그것은 문화지리학 혹은 인문지리학의 범주에서 역사지리적 방법론을 주창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문화인류학, 고고학 등 문화 경관 연구를 위한 인접 분야와의 교류를 중시하고 그것의 지리적 기초로서 자연지리학을 강조하는 연장선에서, 문화지리학 연구를 위한 관점이자 방법론으로서 역사지리적 시각을 거론했던 것이다. 사우어의 회장연설은 각 지역이 가진 개성과 지역 간의 차이를 연구하는 것이 ‘지리학의 본질’이라고 주장한 핫숀을 비판하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였다. 미국 중서부 대학과 버클리학파의 감정싸움으로까지 비화된 이 논쟁에서 사우어는 분분한 개념논의로 지리학의 혼란을 가중시키거나 칸트가 강조한 비역사적이고 무미건조한 지역연구를 지향해서는 안된다는 논지를 폈다. 사우어의 원고는 다음해 ‘역사지리학 서설’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출간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과거의 지리를 복원하는 역사지리학이 제자릴 찾게 되었다.3. 농업의 기원과 전파야생식물의 작물화와 야생동물의 가축화를 일컬어 도메스티케이션이라고 부른다. 농업문화의 기원 및 전파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문화지리학의 주요 연구과제 가운데 하나이다. 사우어는 시카고 대학 시절 콜스교수에게 수강했던 생태학 강의를 통해 이 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앤더슨같은 저명한 식물학자와 친분을 나누면서 전문적인 식견을 쌓을 수 있었다. 중남미 여러 지역을 돌아보면서 목격한 다양한 작물과 가축에 대한 호기심은 사우어를 더욱 자극하였다. 그가 평소에 품고 있던 생각은 1952년 컬럼비아대학에서 미국지리학괴의 데일리상 수상자 자격으로 갖게 된 특별강연을 통해 구체화되었다.구체적으로 도메스티케이션은 식량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상태에서 여가활동으로 진행되었으며, 지형과 기후가 다양하여 유전자 풀이 풍부한 지역에서 발생하였고, 방수와 수리관개를 위한 설비를 축조하는 데 많은 에너지가 투여되는 범람원보다는 구릉지 혹은 산지에서 시작되었다고 사우어는 주장했다. 또한 기경이 어려운 초지보다는 삼림지대가 유리하며 식물의 순화에 대한 개념이 서 있지 않은 이주민이 주도한 것은 아니고, 대신 작물재배에 관심을 쏟을 수 있는 정착민에 의해 출발했을 것이라는 여섯 가지 가정을 토대로 동남아시아와 남미 북서부의 내수면 어업 사회를 각각 구대륙과 신대륙의 농경기원지로 지목하였다.
Ⅰ. 서론청계천은 하나의 하천이지만 서울 속에서 청계천은 단순한 하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청계천은 ‘자연경관’이 아니라 서울의 사회적 관계가 물질화된 서울 ‘도시경관’의 역사가 응축되어 있는 또 하나의 작은 ‘도시경관’이기 때문이다. 도시가 공간을 물리적 대상으로 파악하려는 개념이라면 그와 구분되는 ‘도시적인 것’의 탐색은 공간과 일상생활, 그리고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의 재생산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지금부터 청계천의 경관변화를 인공 대 생태의 관계가 아닌 도시적인 것이 유발한 경관변화로 파악하며 청계천 경관변화와 계보학적 분석을 통해 그 변화를 살펴보도록 하고 더불어 도시 경관은 사회적 관계의 갈등과 긴장을 반영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 청계천 복원으로 인한 경관의 변화 속에서 발생한 서울시와 주변 상가(혹은 노점상)와의 갈등 사례를 연구해본다.Ⅱ. 본론(1). 청계천 복원의 배경과 의의1. 개요: 청계천 복원사업은 청계천 복개구조물을 철거하고 태평로 시점-평화시장-마장동 신답철교 구간의 5.8km의 복개하천을 복원하는 동시에 주변 18만평을 재개발해 도심의 모습을 바꾸어낸다는 것으로 요약해 볼 수 있다.-청계천 복원사업은 이전까지는 몇몇 지식인들 사이에서 낭만적으로 제시되어 오다가 2002년 6월 서울시장 선거 과정에서 이명박 서울시장 후보의 1순위 공약으로 등장하였다. 이후 이명박 후보의 당선으로 청계천 복원사업은 공약에 따라 추진해야만 할 정책으로 등장하게 된다.?사업개요??사업기간 : 2003년 7월 ~ 2005년 9월?사업의 공간적 범위 : 청계천로(태평로 시점 ~ 동대문 ~ 신답철교) 및 삼일로와 그 주변 5.84km?사업의 시간적 범위 : 기준년 2003년, 중기 목표 2008년, 장기 목표 2013년?사업비 : 착공 전 청계천복원사업에 소요되는 공사비를 산정한 결과 349,423백만원이었으나 실제 공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설계변경, 물가변동, 추가과업의 실시 등으로 인해 2005년 현재 386,739백만원이 소요되었다.-자연환경복원과 삶의 질 향삼일 아파트. 최초의 서민 아파트였지만 현재는 롯대 캐슬이 지어지고 있다.(2004년)?지저분한 상가의 모습. 낙후된 청계천 일대의 상가건물의 모습을 보여준다.(2004년)(2). 청계천과 도시경관청계천은 서울 속의 자연환경의 일부이지만, 그 자연환경은 도시(한양-경성-서울)라는 인공 환경 속에서 ‘도시적인 것’의 성격을 포함하고 있다. 청계천의 원래 명칭인 개천(開川)은 바로 자연경관이 아닌, 변형된 자연경관으로서의 청계천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도심 하천인 청계천은 인공적으로 구축된 물리적 환경인 도시 내에서 인공적 환경과 대립하는 자연적 ? 생태적 환경이기도 하지만 도심 하천인 청계천의 경관 변화는 자연적 ? 생태적 환경 변화의 표현이라기보다 사회적 관계의 변화에 의한 경관의 변화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참조]▶모나드(monad)로서의 청계천◀ⅰ청계천은 *모나드(monad)이며 서울이라는 모나드에 포함되어 있고 서울과 *자기 유사성을 지닌다. ⅲ서울과 청계천의 시간 차이ⅱ서울의 위치변동ⅰ 서울이라는 모나드속의청계천이라는 모나드ⅱ청계천과 서울의 역사는 위치변동으로 나타나지만 동시적이지 않다. ⅲ청계천과 서울의 타구는 상이한 역사적 시간의 교점을 유발하고, 상이한 역사적 시간의 교접에 의해 형성된 이자관계가 공간계층화 패턴을 만들어낸다.*모나드(monad): 그리스어로 원으로 표현되는 원리를 뜻하는 것으로 라이프니츠에 의하면 모나드는 표상(表象) 작용을 한다. 표상이란 외부가 내부에서 표현된다는 의미로, 모나드의 표상 작용 때문에 소우주로 파악되는 모나드 속에서 우주의 질서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자기 유사성: 하나의 입자가 그 속에 다른 또 하나의 완전한 우주를 담고 있다면 그 우주는 더욱 더 작은 무수한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고 또 그 하나 하나의 입자 속에는 또 다른 더 작은 우주가 재현된다. 이러한 과정은 끝없이 반복된다. (프랙탈)*************9901. 도시경관의 4가지 유형① 조망경관 중심형 : 문화환경 중심형②경관보전?복들어서면서 모나드가 탄생했다. 한양은 유교적 이념을 공간적으로 표현한 계획 도시였고, 한성의 도시경관을 결정하는 요소는 유교적 이념이었다. 한양의 전체적인 모습은 ?주례?(周禮) 고공기(考工記) 중 장인영국(匠人營國)을 참고했던 것으로 추정된다.② 개천과 문화경관개천은 유교적 이념에 의한 계획도시 한양 내부의 경계선이었다. 청계천(淸溪川)이라는 이름은 일제 초에 서울의 지명을 개정할 때 붙여진 이름이며 조선시대에는 말기까지 청계천은 개천으로 불렸다. 여기서 개천은 배수가 잘 되도록 어느 정도의 인공이 가해진 하천을 가리킬 뿐 지금의 청계천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고려시대까지 청계천은 여름 한철, 장마철이나 홍수 때가 아니면 얕고 좁다란 이름만의 하천에 불과했다. 한양지역은 고려 말기까지 인가가 드문 인구 희박지여이었기 때문에 청계천은 자연 하천의 성격을 유지했지만, 한양이 조선왕조의 도읍지가 되고 인구가 증가하자, 청계천은 한성부의 큰문제로 부각되었다. 장마철이 되면 청계천의 범람이 바로 그것이었다. ?조선왕조실록 ?에 그것에 대한 다양한 기록이 있다.자연경관 청계천을 문화 경관 청계천으로 바꾸어 놓는 청계천 준설사업은 태종 11년 (기록에 따른 최초의 청계천 준설 사업)의 한양의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시행되었고 1908년 실시된 준천사업은 한성부의 주관 하에 실시된 마지막 사업이었다.③ 주거공간의 계층화청계천은 한양의 원형을 횡으로 가로지르며 원을 양분하는 자연경계였다. 모나드인 한양을 가로지르는 청계천은 한양의 설계에 기본적인 제약 요인으로 작용했다. 한양이라는 원은 청계천을 기준으로 청계천 이북의 궁궐, 관아, 상가, 상층 민가 지대와 청계천 이남의 중하층 민가지대로 크게 구분되는 이원적인 공간적 위계가 정해졌다.한양의 이런 신분에 따른 주거 계층화 현상 때문에 청계천은 넘어서는 안 되는 일종의 상징적 계선이었다. 따라서 청계천 주변은 조선 중기까지 잡인들의 소굴이자, 하위 거주지였다. 새로 한양에 유입되는 하층 인구는 성내에 거주지를 마련할 때 청계천변에천리로 진행되었다.이와 더불어 청계천 주변의 불량 주택 거주자에 대한 분산 정책도 동시 수행되었고, 청계천의 도시 풍경은 광교 부근의 조국 근대화와 서울의 현대적 변모를 나타내는 상징물인 삼일빌딩이 있는 광교 주변의 청계천과 평화시장 주변의 청계천으로 양분되었다.◇삼일빌딩과 작업장- 청계천의 이중화광교주변의 복개 청계천 주변은 삼일빌딩과 삼일고가도로가 만들어내는 풍경에 의해 근대화가 완수된 미래의 청사진이 공간화되어 펼쳐지는 쇼윈도인 동시에,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 매진하는 작업장의 공간이 병존했다. 1960년대 이래 급속도로 증가한 산업 노동자들의 일터는 청계천 주변과 구로공단이었다. 청계천 복개 공사가 완공되면서 청계천 주변의 판자촌이 철거된 자리에 1961년 평화시장이 들어섰다. 이후 통일상가와 동화시장이 들어섰는데 1970년 당시 이들 세 개 시장 및 인접 지역의 작업장 숫자는 800개였고, 2만명의 노동자들이 이 곳에서 일했다.청계천 주변은 유형적 테일러주의적 축적양식에 기반에 근대화를 추구했던 서울적 상황의 축소판이었다. 당시 청계천의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장시간의 노동을 착취당했고 이런 부당함에 맞서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는 노동운동가 전태일이 등장하게 된다.(3). 청계천 복원에 따른 서울시와 상인들과의 갈등? 청계천 복원과 더불어 다시 한번 발전 하려는 상가의 노력이 보인다.(2005년)구분계청계3가청계4가청계5가청계6가청계7가청계8가청계9가계62,7322,37412,90720,43614,7542,1243454종로동대문28,5708,72510,2506,4402,6074349024중구성동34,2133,6492,65713,99612,1471,6904430자료: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청계천복원 지원연구단: 2003. 10.참조: 상인수: 213,462명. 임차상인: 약 19만명. 점포당 고용인원: 3.4명.제조업체: 약 2000개소(등록공장-246개소, 무등록공장-17,54개소).도시 공간은 사회적 관계와 문화적 담론의 재생산 공간이며, 또한 이러한한다.- 대기업에서 신제품 개발시, 청계천에서 부품 얻음.-교수님들도 자문얻는 장소.④ 청계천만의 문화- 이조 역사만 역사이냐. 청계천의 50년사도 생생한 역사이다.- 청계천의 특이한 풍경 : 장소마케팅 및 관광명소가 될 수 있다,아크릴, 조명, 소방기계. 공구, 자동차용구, 안경, 시계, 비닐, 안전용구, 경찰안전띠, 자일만 파는 곳, 볼트가게 등 신기한 물건들 많이 판다 ==> 다른 곳으로 이주하거나, 걷어내면 보존될 것이냐. 이것 자체가 상품이다.- 생명력있는 장소, “호흡하고 살아있는 기계들” : (하버드 학생들 방문) 비록 먼지쌓인 기계들이지만, 소비자가 직접 만져보고, 혹시 안 맞으면 즉석에서 고치거나 맞춤제작. 소비자가 직접 만져보고 살 수 있는 곳.- 깨끗하고 현대화된 시설만 문화이냐. 청계천 노변풍경도 문화이다.⑤ 청계천 상가가 우리나라 경제에 담당하는 역할 생각보다 매우 크다.- 가게 하나에 중소공장들이 100개는 매달려 있다(전선, 램프, 스위치, 마그네슘 등등), 중소기업 1개당 직원 20명이라면 20000명의 고용인. 이들의 월급 담당.- 현재 우리 내수경제가 잘 안돌아가는 이유 중 하나는, 비록 가게는 작지만 청계천의 영향이 매우 크다고 본다.⑥청계천 상인으로서의 자부심.2. 상인 문제에 대한 이해당사자별 의견① 서울시-청계천주변상인 : 복원공사구간이 현재의 도로 폭 이내로 한정되어 주변건물의 철거가 없다는 것이 복원공사의 기본전제여서 현행 법률상 보상이 불가능-노점상 :불법이기 때문이 보상이 불가능② 청계천상권수호 대책위원회 & 의류상가 대책위원회: 청계천 복원에 따른 분제 인식(청계고가 도로와 청계로 철거에 교통 혼잡 가중, 공사로 인한 먼지와 소음으로 부정적 영향)과 IMF때보다 더 심각한 장기 경기 침체에 따른 청계천 상권 전체의 영업 부진⇒복원사업 반대③ 전국 노점상 연합회: 청계천 복원에 따른 분제 인식(청계고가 도로와 청계로 철거에 교통 혼잡 가중, 공사로 인한 먼지와 소음으로 부정적 영향)과 IMF때보다 더 심각한 장기 보
제 1 장. 서론제 1 절. 연구목적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는 국제 경제 환경 속에서 우리나라의 경제는 점차 많은 부분이 개방화되고 있다. 특히 유통 부문의 개방화 추세는 다른 경제 분야보다도 더욱 급속한 개방의 물결을 맞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더구나 국내에서 유통 부문의 경쟁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더욱 치열해 지고 있는 실정으로서 그 결과 서민과 애환을 함께 해온 전통 재래시장은 급격한 유통환경변화로 점차 그 영역이 좁아지면서 낙후되어 가고 존망의 기로에 서있는 현실에 처해 있으며 현재의 상태로는 더 이상 존립할 수 없게 되었다.현재 국내의 유통 업체들이나 이국에서 진출하는 유통 업체들은 막대한 자본으로서 시설물의 현대화와 질 높은 서비스 정책, 다양한 상품 구색과 편리성을 추구하며 소비자들에게 접근하고 있다.반면 우리나라 재래 유통시장의 대부분은 위치적으로 국민 생활에 밀접한 관계에 있으면서도 노후한 건축물로 도시 미관을 저해하고 있으며, 그 시장은 영세 상인들에 의하여 운영되고 상권이 정상적으로 형성되지 않고 있다. 물론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국고보조 및 지자체 보조로 환경을 개선하고 활성화를 위한 지원 사업과 자체 시장을 발전을 위한 노력이 경주되고 있으나 전통 재래시장 발전 모델의 표준화 등이 정립되지 못하고 주먹구구식으로 시행되다 보니 비경제적이고 비효율적인 부분이 상당수 노출되고 있다. 100만명의 상인과 가족 포함 400만명이 종사하는 유통산업의 비중은 상당히 지대하며, 국민 경제적 효과도 매우 크다.이와 같은 국내 유통 부문의 현실에 부응하여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전통재래시장의 실태를 분석하고 시장 기능의 활성화정책과 그 문제점을 통해서 전통재래시장의 활성화 방안을 강구해 보고자 한다.제 2 절. 연구방법지금까지 재래시장에 관한 연구는 ① 사회적 통합기능과 경제적 교환관계에 관심을 두고 있는 인류학 분야 ② 전통사회 또는 개발도상국에서의 사회변동의 한 현상으로 재래시장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사회학 분야 ③낙후된 농촌지역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한국재래시장의 변천과 유통근대화에 관한 연구”, 1994, p59.제 3 절. 재래시장의 기능과 역할시장이란 최종소비자에게 상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하고 공간적 개념과 관련된 제반활동으로서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즉, 소비자들의 욕구충족에서 나타나는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극복해주고 적합한 상품을 적시에 적절한 장소에서 구입할 수 있도록 해주며, 따라서 유통산업의 사회?경제적 기여에 대한 적극적이며 광범위한 효과를 부여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소비자 정보의 제공과 상품화 계획의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상품판매에 따르는 제반 서비스의 제공과 생활의 안정에 기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재래시장은 전통적으로 소비자들의 구매관습, 생활관습상 농축산물의 집산지로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여 왔으며 이러한 역할은 재래시장의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타 유통기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컸음을 나타내고 있다.경제적으로 볼 때 정기시장은 농산물의 판매, 공산품의 구입, 서비스의 공급 등 경제적 거래기능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농촌 정기시장에서는 지역 내의 생필품이나 특산지로부터 유입되는 상품거래, 또는 도시 공산품이 거래되는 등 지역주민이나 상인들에게 종합 교환거래 공간을 제공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또 사회적으로 시장은 물건의 매매에만 국한되지 않고 농촌 및 도시의 교류, 정보제공, 사교, 오락 등 사회기능의 중요한 결합 장소로서 전통적인 지역사회에서는 문화공간을 활용되어 왔다.구분19961997199819992000년 말대규모 점포시장(상설재래시장)1,438(636)1,475(641)1,4751,502(631)1,524(636)대형점34557097130백화점9*************쇼핑센터3428313648도매센터45555기타 대규모 점포1013171719계1,6141,6821,7091,7671,834상점가(대전지구)5(5)7(5)8(6)10(7)9(7)전문가상가단지34558지정체인사업자1*************1정기시장541표 5. 1990년대 전국의 유통업체 추이출처업으로 사회문제화4. 재개발로 인한 도시의 과밀화재래시장의 환경 변화1. 시장개방에 따른 세계화2. 인터넷의 정보화3. 매장의 대형화4. 소비자욕구 변화그림 2. 환경 변화에 따른 재래시장 현황이처럼 환경 변화에 대하여 영세한 자본과 다수의 이해관계인으로 구성된 재래시장은 신속히 대처하기가 불가능 하였으며, 이 결과 매출의 감소를 초래하였다.이는 영세한 상인들로 구성된 시장조합이 소비자들의 기호변화에 즉시 대처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점과 정확한 상권분석에 의한 업태규모 과소문제 미해결, 핵심점포의 부재, 시장상인들의 경영마인드 부족 및 매장 배치의 분산으로 인한 직접화 미비 등의 원인으로 분석된다.표 7. 주요 업태별 생산성 비교구분개소점포당매출액매장면적당매출액종업원당매출액점포당종업원 수사업체당매출액재래시장51838.71.623.71.65,946.6시장1,55343.71.531.01.46,464.4대형점631,781.310.0381.64.749.735.7백화점113448.38.6237.91.9126.469.0쇼핑센타31.229.84.3172.41.331,370.6(단위 : 백만원. 백만원/m2, 명)출처 : 대한상공회의소, “전국 도?소매업 총람”, 1998.제 2 절. 국내 재래시장의 현황중소기업청 자료에 의하면 현재 재래시장은 전국적으로 1,695개로 점포 23만개, 상인 30만명으로 2005년 집산한 바 있고, 2004년 35.4조원의 매출액에서 2005년 32.7조로 경쟁력의 약화와 상권이 위축되는 것을 분석한 결과 유통구조의 변화, 이용불편, 소비자 구매행태 변화, 경영혁신 마케팅 능력 부족 등으로 자체분석하고 있다. 또한 등록시장은 1,237개(상설시장 : 781개, 정기시장 : 456개)이고, 무등록시장은 458개로 기타의 소매점보다 무등록 비율이 높다.재래시장은 토지?점포소유자, 입점상인 및 노점삼등 다수의 이해관계자로 구성되어있으며, 재래시장은 개발이나 경영기법에 함께 동참하려는 적극성이 부족함으로 통일된 의사결정이 어려움이 많다는 점이 침체의 2003년 11월 30일부터 시행된 주택법, 건축법,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 등 관련 법규를 필요한 때 발췌하여 준용하게 되어 있다.이는 시장 재개발 사업 추진 절차 간소화로 신속한 사업진행 지원과 무허가 재래시장에 대해서도 특별조치법에 의한 지원을 가능하도록 하였으나 시장의 부동산 소유주들은 손쉬운 자산가치 증대방안으로 주상복합재건축을 선호하여 서민경제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재래시장 활성화에는 미비함이 있어 2004년 6월 1일 정부에서 제출한 「중소기업의 구조개선과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한 특별조치법 중 개정법률안」, 2004년 6월 28일 「중소기업의 구조개선과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한 특별조치법 중 개정법률안」, 2004년 7월14일 「재래시장과 육성을 위한 특별법안」, 2004년 9월 2일 「중소기업의 구조개선과 재래시장 활서화를 위한 특별조치법 개정법률안」이 회부되었다.이들 4개 법률안에 대해서는 국회에서 통합 법률안으로 의결함으로서 원활한 시장정비사업을 통해 영세 상인을 보호하고 소비자의 편익을 높임으로써 유통산업 간 균형있는 성장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하여 재래시장 육성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법률 제7235호, 2004.1.22 공포, 2005.3.1 시행)2. 재래시장 재개발?재건축 사업중소기업의 구조개선과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한 특별조치법과 시장 재개발 ?재건축사업 세부업무지침으로 중소기업청장이 시장의 유통현대화를 촉진하고 시장기능의 회복을 위하여 선정한 시장재개발 사업시행구역 또는 시장 구역 안의 토지나 건축물의 소유자 또는 시장 재개발 조합이 시행하는 재개발 사업에 관한 행위와 토지 등의 소유자 또는 시장 재건축조합이 시행하는 재건축 사업에 관환 행위에 대하여 행정적?재정적 지원하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지난 1996년부터 2005년까지 107개 시장의 재개발?재건축을 추진하였고, 그 중 47개 시장에 737억원을 융자하였다.3. 재래시장 시설현대화(리모델링 및 환경개선사업)건물의 노후화 및 편의시설 부족가 기관에 용적율 규제완화를 요청하는 집단 민원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는 용적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도시계획상 용도지역으로 준주거 지역이나 상업지역에 위치한 시장은 주상복합재건축시 상당한 사업성이 있으나 일반 주거지역 내 시장은 낮은 용적률과 기존 시장 연면적의 4배 이하로 재건축 규모로 건축할 수밖에 없어 시공 회사의 수익성을 보장하기 어려운 실정이다.(5) 사업비 지원시장 재개발 ?재건축 사업에 대해 현행 지원되는 자금은 지방 중소기업 육성 자금으로 지원되고 있다. 이 자금은 중앙정부와 광역정부가 일정한 비율로 부담하는 형태의 매칭펀드로 집행되고 있는데 매칭펀드)의 비율은 지역마다 달리 설정되어 있는 현실이다. 구체적으로 중앙과 광역정부간의 분담률을 보면 서울, 인천, 경기의 수도권 50% 대 50%, 기타 광역시는 60% 대 40%, 기타 도는 70% 대 30% 등으로 지역발전의 수준에 따라 차등화되어 있는 실정이다.또한 지원금액의 결정 기준에 있어서 주상복합으로 재건축 중인 시장의 경우 주거용 시설의 건축에 소요되는 비용이 사업비에 포함되는지의 여부가 논란이 되자 중소기업청에서는 상가용 부분만큼의 건축 및 기반 공사비를 기준으로 지원금이 결정된다는 지침을 추가하였으나 시장 재개발 사업 주체들에게는 왜곡되어 수용될 가능성이 있다.)제 4 장. 재래시장의 활성화 사업의 사례분석중소기업의 구조개선과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한 특별조치법이 1995년부터 시행된 이후 재래시장 활성화 사업의 열기가 무르익어 감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재래시장은 획일적인 활성화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복잡한 이해권리관계, 부동산 소유주 중심의 사업주체 구성, 외국성공사례 벤치마켓의 부재, 천편일률적인 행정기관의 역할, 주상복합재건축 위주의 개발 방식 등 서민 생활과 밀착된 중소유통업의 핵심축으로 육성하지 못하고 사업추지의 부진을 겪고 있다. 이러한 과거에 시행되었던 재래시장 활성화 사업은 사업추진 초기단계에서 발생되는 문제점으로 사업진행 일정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