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빈도분포표①성별②거주지③종교④주간운동량⑤운동하는시간⑥기존질환유무⑦대상자흡연여부⑧대상자음주량⑨대상자식염섭취⑩가족 중 고혈압인 사람유무⑪연령-기술통계⑫비만정도⑬체중3. 이원적분석통계(1)교차표와 상관관계 계수(명목 대 명목 or 순서)*성별과의 관계①성별-주간운동량②성별-운동하는시간③성별-기존질환유무④성별-대상자흡연유무⑤성별-음주량⑥성병-식염섭취⑦성별-가족중고혈압인사람유무⑧성별-비만정도*주간운동량과의 관계①주간운동량고-기존질환유무②주간운동량-대상자비만정도*운동하는 시간과의 상관관계①운동하는시간-기존질환유무②운동하는시간-대상자비만정도*기존질환과의 상관관계①기존질환유무-흡연여부②기존질환유무-음주량③기존질환유뮤-식염섭취④기존질환유무-가족 중 고혈압인 사람유무⑤기존질환유무-대상자비만정도*흡연여부와의 상관관계①흡연여부-비만정도*음주량과의 상관관계①음주량-가족 중 고혈압인 사람유무②음주량-비만정도*식염섭취와의 상관관계①식염섭취-가족 중 고혈압인 사람유무②식염섭취-비만정도*가족 중 고혈압인 사람유무와의 상관관계①가족 중 고혈압인 사람유무-비만정도(2)순서 대 순서의 상관관계①주간운동량-운동하는 시간②운동량-음주량③운동량-비만정도④운동시간-음주량⑤운동하는시간-비만정도⑥음주량-비만정도(3) 척도 대 척도 상관계수①연령-체중(2)카이자승검증: 모집단에 대한 추론①성별대 기존질환 유무: 2X2 교차표이므로, 피셔의 검증값에 따라(0.109) 모집단에서 성별과기존질환 유무의 분포는 의미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②기존질환유무 대 대상자흡연여부: 2X2 교차표이므로, 피셔의 검증값에 따라(0.161) 모집단에서 기존질환유무와대상자흡연여부의 분포는 의미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③기존질환유무대 가족중고혈압인 사람유무: 2X2 교차표이므로, 피셔의 검증값에 따라(0.416) 모집단에서 기존질환유무와가족중고혈압인 사람유무의 분포는 의미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3) T-검증① 성별-연령: 동분산 가정에서 F의 유의확률이 0.034이므로 동분산가정의 t값과 유의도를 보면, 0.203(p.>0.05)이므로 모집단에서의 성별간 평균연령차이는 의미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②성별-체중: 동분산 가정에서 F의 유의확률이 0.080이므로 동분산가정의 t값과 유의도를 보면, 0.064(p.>0.05)이므로 모집단에서의 성별간 평균연령차이는 의미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4)회기분석①연령과 체중관의 상관관계회기방정식 : Y = 0.107X + 26.547상관계수 피어슨 R = 0.114: 둘간의
신종교 - ‘통일교를 중심으로’나는 무교다. 엄마, 아빠 역시 무교다. 그래도 등산가면 절에가서 비빔밥도 얻어먹고 기분내키면 공양비도 조금내고, 스님들이랑 이야기 하면서 차도 마시곤 한다.올해20살인 둘째동생은 성당다니는 이모를 따라서 잘 다니더니 지금은 혼자서 성당엘 다닌다. 누가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4년째 독실한 천주교인이다. 우리가족이나 나 역시 종교에 대해 특별한 감정이 없었기 때문에 과제를 위해 관심을 가지기란 쉽지 않았다 흑흑.가끔 영화속에 등장하는 미사포 쓴 여인이 이뻐 보이긴했지만..그와 반대로 ‘실례합니다만.. 요즘에 기분이 안좋으시죠?’ 하는투의 말을 거는 낯선사람은 경계하게 된다. 처음엔 왠 오지랖은 사람이 세상을 걱정하는구나.. 했는데 알고보니 증산도라는 단체에서 선교랍시고 하는 행동이었다. 말투와 눈빛은 부드럽지만 왠지 모르게 강요하는듯한 대화내용에서 쉽게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 그리고 사이비라는 편견도 작용한 것 같다. 그들은 신종교일까? 종교일까?? 종교를 믿는 사람은 왠지 맹해보인다. 이것도 그냥 내 생각이지만.. 그들은 세상의 중심이 신과 자신이 몸담은 단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별로다! 그래서 더욱 나약해지고 빼앗기고 그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최면을 거는 것 으로 보인다. 영혼을 구원받으러 갔다가 경찰에 의해 구원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사기성 사이비종교의 경우)어차피 세상은 자신의 기준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그들의 생활이 행복하다면 궂이 막을 필요가 없겠지만 사회에 물의를 빛을 경우엔 법을 적용하는 수 밖에 없다. 종교를 믿는 사람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제발 강요하지는 말아줘...하지만 선교는 종교의 큰 목적아닌가. !역시 그들을 이해하기란 쉽지않다.. 딜레마다.통일교라는 신종교는 흥미로웠다. 맥콜, 워싱턴 타임즈 등등 굵직한 회사의 재단이 통일교라는 소릴 들었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는데 꽤나 규모가 컸다. 그냥 큰게 아니고 아주 글로벌했다. 일본과 미국까지. !우선 그들은 성경대신 원리강론이라는 교리서가 있었고 그것은 문선명이라는 사람이 쓴 것이었다. 내용은 전편 7장(창조원리·타락론·종말론·구주론·부활론·예정론·기독론)과 후편 2장(복귀원리·재림론)으로 되어있다.문선명 사상이라는 것도 있어서 철학과 경제, 예술과 요리, 미학까지 넘나드는 정도였다. 그리고 웹상에 통일교에 대한 질문이나 비방을 한 사람에게는 어김없이 통일교인이 답글을 달아놓았다. 실랄한 비판뒤에는 어김없이 ‘존경하는 문선명님의 제자가 어쩌고 저쩌고...’ 라는 문구가 달렸다.과학은 보이는것만 믿는다. 세상에는 사랑,그리움 등등.. 진부하기는 하나 보이지 않아도 통용되는 것이 있다. 그러한 예를 들어서 그들은 문선명이란 자가 인간의 탈을쓴 하느님이라고 믿는다. 뭐.. 그들의 사상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논리적으로 생각해보아도.. 감성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역시 난 어쩔 수 없는 사회학도인가..한 교주를 신성시 하는 것. 아것은 신종교의 가장 큰 특징인 것 같다. 교주라고 하지 않아도 하느님의 메신져를 빌미로 구렁이 담넘어가듯 은근슬쩍 자본을 모은다. 문제는 이것이다. 자본을 모으는 것. 프로테스탄트와 같은 개념과는 사뭇다르다. 우선 규모가 너무 크다.!언론·출판사업으로 국내에서는 《주간종교》, 미국에서는 《뉴욕 트리뷴》 《워싱턴타임스》, 에스파냐어판 《노티시아스 델 문도》, 한국의 《세계일보》, 우루과이의 《울타마테 노티시아스》 등의 일간신문을 발행하고 있다. 예술활동도 활발하여 리틀엔젤스 외에 미국에서는 25개국 청년 남녀로 구성된 ‘새소망합창단’을 비롯하여 ‘선버스트 경음악단’ ‘고 월드 브라스밴드’ 등을 창단하였다. 1975년에는 뉴욕 심포니오케스트라를 인수하고 1976년에는 뉴욕의 맨해튼오페라하우스를 매입하고, 1979년에는 영화사‘원웨이 프로덕션’을 설립하였다.국내에는 (주)통일·한국티타늄(주)·(주)일화·(주)일신석재
국토의 이해!! 나의 유일한 교양 수업인 이 수업에서 첫 번째 답사를 가게 되었다. 이 수업을 들었던 선배에게 들은 바 차를 타고 오래 동안 가기 때문에 전날은 쫌 피곤하게끔 놀아 두는 것이 좋다는 소릴 들었다. 나는 같은 과 선배 친구 후배들과 함께 4월 8일이 아닌 4월 13일에 2차로 출발 하였다. 과 엠티 때문에 늦게 가게 된 것이다. 첫 답사라는 부푼 기대를 안고, 우리는 13일 아침 8시에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 출발장소인 동대구역근처로 출발하였다. 사실 말이 조금이지 전날 좀 심하게 논 터라 매우 피곤함을 느꼈다. 출발장소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학생들이 버스에 탑승해있었고 늦게 도착한 우리는 서서 버스를 타야만 했다. 교수님께서는 화원IC에 가면 차가한대 더 대기하고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고 우리는 힘든 몸을 어렵게 지탱하며 약 30분가량 참으며 화원까지 가야 했다. 도착하니 25인승의 버스가 있었다. 비록 큰 버스 보다는 불편해지만 앉아서 갈 수 있다는데 만족하고 답사를 시작하였다.중간중간 휴게실을 거치면서 오랜 시간에 걸쳐서 도착한 첫 번째 답사지역은 경남 사천시 일대와 고성군 하일면 덕명리 해안 일대였다. 세계 3대 공룡 발자국 화석지의 하나로 학술적 인정을 받은 고성군은 지난해 11월 상족암 군립 공원내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고성공룡박물관을 개관했으며 이어 '공룡과 지구, 그리고 생명의 신비' 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 2006 경남고성 공룡 세계엑스포> 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도착을 하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과연 산뜻한 답사가 될 수 있을까란 의심이 들었지만 굳은 마인드와 함께 교수님의 설명을 들으며 답사지역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남해안 한려수도의 아름다움과 바닷가의 넓은 암반, 그리고 상족암, 촛대바위 등이 어우러져 자연경관도 수려할 뿐만 아니라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수가 있었다.일단 교수님의 약간의 설명을 들은 후 한 시간 정도의 개별적인 점심시간을 갖고 다시모여서 교수님의 유창한 설명을 들으며 상족암이 길게 이어진 길을 따라 많은 것들을 보게 되었다. 숭숭 뚫려 있는 상족암의 해식동굴은 분명 오랜 세월의 흔적이리라.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가 만들어 낸 기기묘묘한 해식동굴에 들어서면 마치 신기한 미로 찾기에 나선 듯하다. 어린이로 돌아가 숨바꼭질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쳐 오르기도 한다. 상족암이란 이름도 해식동굴이 뚫린 바위가 밥상다리 모양을 하고 있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쌍족, 쌍발이라고도 한다.답사 전 오리엔테이션을 할 때 우리가 답사에서 주로 볼 것은 공룡 발자국이라고 들었다. 말로만 듣던 공룡의 발자국화석을 내 눈으로 직접 본다는 것이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로 신기하였다. 공룡 발자국. 그 거대한 공룡발자국이 새겨진 바위. 그 단단한 바위 위에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거인이 이 세상을 다녀간 흔적처럼 새겨져 있는 고성 덕명리 공룡 발자국 화석은 지금으로부터 약 1억1500만 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1억1500만년 전이라. 도대체 그 세월은 인간에게 얼마만큼이나 되는 긴 세월일까. 어찌하여 그런 어마어마한 세월을 인간의 잣대로 계산해 낼 수 있었더란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성 덕명리 공룡 발자국 화석은 덕명리 봉화골 등대에서 딱밭골에 이르기까지 약 10㎞의 해안선에 마치 작은 웅덩이처럼 그렇게 새겨져 있다. 깊이는 대개 3∼5cm. 이런 자국들이 10여 개씩 일정한 간격으로 직선상을 이루고 있기도 하다. 이 발자국의 수는 공룡 125마리의 것으로 보이는 1376개. 너비는 24㎝, 길이는 32㎝ 정도. 발자국 하나가 어른 허벅지만한 크기다. 이 발자국은 바위 위에 70㎝ 내외의 간격으로 선명하게 찍혀 있다. 이곳에 답사를 온 나는 공룡 전문가가 아니다. 또 정확하게 발톱고성룡과 이구아나룡, 중형 및 소형 용각류 공룡이 어떻게 생겼는지, 과연 어느 시대에 존재했는지, 이 발자국의 주인이 그 공룡들의 것인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그렇게 검증을 해냈으니, 나 역시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다. 공룡이란 중생대의 쥐라기로부터 백악기에 걸쳐 번성했던 길이 5∼25m의 거대한 파충류를 통틀어 부르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지금으로부터 1억1500만 년 전에 지구를 지배했다는 공룡. 하지만 공룡이 지금의 사람처럼 지구촌을 완전하게 지배하지는 못한 것 같다. 그저 아주 원시적인 방법인 힘으로 지배했었던 것 같다. 만약 공룡이 인간처럼 그렇게 두뇌가 뛰어나서 그 당시 과학기술문명까지 일으켰다면 이 지구촌은 과연 어찌 되었을까. 어쨌든 그것은 생각을 안 해봐서 잘 모르겠다...공룡 발자국화석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해안지형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해안동굴과 굴안에 있는, 아름다운 선녀들이 목욕을 했다는 전설 속의 웅덩이가 있어 선녀탕이라 불리는 것도 보았다. 솔직히 선녀가 목욕하긴에... 매우 비좁아 보였다.^^ 그리고 고등학교 수업시간 때 말로만 듣던 해식애, 연흔, 건열 등도 볼 수가 있었다. 해식애(海蝕崖)는 해안가에 나타난 급경사의 절벽이다. 우선 해식애가 파도에 의해 계속 침식당하게 되면 밑 부분이 깎이게 된다. 그게 오랜 세월 계속되다보면 해식애가 육지 쪽으로 후퇴하게 되고, 원래 해식애가 있던 부분이 파식대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연흔은 지층의 퇴적 당시에 형성된 것이지만, 현재의 사질해안이나 하천 바닥의 모래땅 표면에서도 볼 수 있다. 유속(流速) ·수심 등의 조건이 알맞은 경우에 바람 ·유수(流水) ·파랑(波浪)의 작용으로 형성된다. 유수의 작용으로 하천바닥의 모래 위에 만들어지는 것과, 바람의 작용으로 사구의 표면에 만들어지는 것은 비대칭적(非對稱的)인 물결 모양을 나타내며, 파장(波長)은 수 cm 또는 10여 cm이다. 파랑의 작용으로 하천 바닥의 모래 위에 만들어지는 것은 대칭적인 물결 모양을 나타내며, 파장은 수십 cm에서 수 m에 달한다. 솔직히 대충은 알겠지만 정확한 형성원리는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말 자체가 너무 어려워서 그런가??... 그리고 건열은 굳지 않은 이질퇴적물(泥質堆積物)이 건조하여 수축할 때 그 표면에 생기는 다각형의 균열이라고 한다. 이것도 어렵지만 대충은 이해가 되었다. 이런 해안형태 뿐 아니라 다른 것도 봤지만 쫌 많아서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약 한 시간 반 정도 답사를 한 후 우리는 버스에 올라 다음 답사 장소로 이동하였다. 다음 답사 장소는 죽방렴이었다. 이동하는 동안 피곤해서 차에서 자고 있는데 교수님의 모두 내리라는 소리, 살짝 짜증이 났지만 또 뭔가라는 생각에 차에서 내렸다. 내려서 본 것은 바다위에 설치된 구조물인 바로 죽방렴!! 현존하는 아주 원시적인 고기잡이 방법으로, 대나무와 같은 재료로 발을 엮어 울타리를 만들어 고기가 들어올 때는 자유롭게 들어오지만 나갈 때에는 퇴로를 차단하여 도피하기 어렵도록 하여 어획하는 것으로 이곳 지족해협은 물살의 흐름이 빠르고 수심도 깊어 천혜의 죽방렴 여건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고기가 모이는 부분을 대나무를 쓰기 때문에 죽방렴 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남해에만 20여 곳이 넘는 죽방렴이 설치되어 있고 주종은 멸치이지만 여러 잡어들도 걸려든다고 한다. 죽방에 걸려든 멸치는 손상도 되지 않고 맛도 좋아 `죽방멸치`라고 불릴 정도로 인기를 끈다고 한다. 배가 고파서 그런지는 몰라도 나도 먹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작을 다리 위에서의 죽방렴 답사를 뒤로 한 채 도 다시 버스를 타고 다음 답사장소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동안 빗줄기가 굵어져 날씨가 슬슬 짜증나기 시작했다. ‘이제 마지막인데..’ 라는 생각으로 마지막 답사장소에 도착했다. 1차답사 대망의 마지막 답사장소는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가 얽힌 그 곳-대방진 굴항 이었다. 버스에서 내렸을 때는 그냥 마을 이었다. 마을 안으로 살짝 들어가는 순간 ‘이야~~’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신기한 곳이 있었다. 대방진 굴항! 이곳은 시내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있는 선구동(仙龜洞)과 동서동을 지나 대방동에 위치한 2,000㎡의 작은 인조항구이다. 조선시대 해안경비를 위해 순조 때 진주병사의 직권으로 진주목 관하의 창선도(昌善島)와 적량첨사(赤梁僉使)와의 군사 연락을 위해 둑을 쌓아 굴항을 축조하였는데, 당시에 300명의 상비군과 전함 2척을 상주시켜 병선(兵船)의 정박지로 삼고 왜구를 방비했다. 아울러 이 역사를 위하여 진주목 관하 73개 면에서 수천 명이 동원되어 1820년경에 완공하였다고 전한다.
국토의 이해라는 수업을 처음 들으면서 답사라는 처음 하는 경험에 부푼 기대를 안고 출발하기로 한 1시가 되기 30분전에 기숙사에서 나왔는데 날씨가 썩 좋지는 않았다. 이런 날씨에 답사가 순조롭게 될까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러나 다행이도 잠깐오던 비는 그쳐서 한결 맘이 가벼워 졌다.출발 장소에는 벌써 버스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도 여러 있었다. 우리는 보이는 버스로 올라가 약간 젖은 옷과 머리를 털고 출발을 기다렸다. 우리 뿐 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답사가 가능 할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느라 버스 안은 소근대는 소리로 가득했다.1시가 조금 지나 버스는 출발을 울리며 움직였다. 장장 4시간정도를 가야하는 대 장정이기에 버스 안에서의 지루함을 어떻게 이길지 고민하던 중 버스 기사아저씨의 배려(?)로 영화를 관람하였다. 예전에 봤던 영화였으나 그런 장소에서 보니 색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영화를 보다 잠도 잤다가 휴게실에서 먹을 것도 사먹고 하다보니 우리는 경상도의 경계를 벗어나 어느새 전라도 땅을 달리고 있었다.우리가 맨 처음으로 둘러볼 곳은 담양에 위치하고 있는 “죽녹원”이었다. 죽녹원은 15만평 규모의 대나무 바이오 숲으로 조성되어 있다. 그 곳에는 담양군에서 보유하고 있는 60 여 종의 대나무와 중국과 일 본 등에서 자생하고 있는 300 여 종류의 대나무 전시포를 조성, 세계에서 가장 많은 주종을 확보해 각국의 대나무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되어있다. 숲은 이 지역 대표 죽종인 왕대와 분죽, 맹종죽이 들어서며, 진입로에는 산뜻한 대나무 가로수 길도 마련되어 있다. 그런데 날씨가 날씨인지라 사람들도 드물었고, 시간적 여유도 부족하여 안쪽까지는 자세하게 살펴보지 못했다. 또 약간 아쉬운 부분이 아직 미완성 된 듯한 부분들도 많아 손님 맞을 준비가 덜 된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런 아쉬운 점도 뒤로하고 대나무 통에 동전을 집어넣으면 운수대통이라는 곳에서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지체하며 즐기고 있었다. 그러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자는 소리가 들려 잽싸게 내려와 탔던 버스로 돌아들 갔다.그러나 탄지 얼마 가지도 않아 우리는 한 박물관 앞에서 다시 내렸다. 그곳은 수많은 죽세공품들이 전시되어있었으며 그 만드는 과정들도 자세히 나와있는 “죽물박물관”이었다. 그곳의 죽세공품들은 대회에서 입상한 작품들과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던 것들로 우리의 눈길을 사로 잡았다. 대나무로 예쁜 악세사리로 만들고 가구까지 만들 수 있다니. 역시 우리 나라 사람들의 손재주는 세계적이다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그런 곳이었다. 박물관 밖에 마련해 놓은 링 던지기와 항아리에 대나무 화살을 집어넣는 투호 놀이에 정신이 팔려 다른 학생들은 다 돌아간 줄도 모르고 있었다. 달려가 버스에 오른 후 오늘의 마지막 여행지로 떠났다.그 곳은 고창군에 위치한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 고인돌이 널리 분포하고 있는 매산 마을이다. 고인돌은 매산 마을을 중심으로 약 1.8 킬로미터 범위 내에 분포되어 있다. 해발 150미터 야산 남쪽 기슭의 밭뙈기나 숲 속에 수 십 기의 크고 작은 고인돌들이옹기종기 모여 있어, 그야말로 이 마을의 바윗덩이 거의 모두가 고인돌이라고 보면 된다.굄돌 없이 땅 위에 덩그마니 앉혀 놓은 것 같은 남방식 고인돌이 대부분인데, 그중 다른 것들의 서너 배는 됨직한 고인돌이 매산 마을 밭 가장자리에서 눈에 띈다. 가로 6.5미터, 세로 5.3미터, 높이 약 2미터인 한반도 최대의 남방식 고인돌이다.이 곳에서는 수 차례의 발굴 결과 447기의 고인돌을 확인했으며, 매몰된 108기를 합하면 555여 기가 확인되었다. 그러나 그 동안 분실되거나 파괴된 고인돌을 합하면 대략 천 기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15개 지점에서 23개 소의 고인돌 상석 채굴지가 발견되었다.한 마디로 이 일대는 선사시대인의 대규모 공동 묘지인 셈이다. 방사성탄소연대 조사 결과에 의하면 이 지역 고인돌은 지금부터 2,500여년 전인 청동기시대로, 기원전 7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 사이 약 500년 동안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된다.이러한 사실들은 이 지역이 일찍부터 인류가 생활하기에 적당한 기후 조건과 기름진 토양을 갖추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고인돌만 찾아다녀도 하루해가 짧을 만큼 고창 지역 고인돌의 규모는 넓다.현재 이 곳에는 선사시대에 대한 관심을 반영이라도 하듯 하루 평균 3백여 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으며, 이중 외국인들도 상당수 있어 죽림리 고인돌군은 국제적인 새로운 관광 명소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야산이나 들판을 지나가다 보면 왠지 시선을 끄는 커다란 바위를 발견할 수 있다. 그냥 떡하니 버티고 서있는 돌인 것 같은데 왠지 누군가 일부러 갖다놓았을 법한 그런 돌…. 그게 뭘까. 고민할 필요는 없다. 우리네 조상들이 지금으로부터 3,000 년 전쯤 피땀 흘려 옮겨놓은 고인돌이지. 뭐 그렇게 보면 십중팔구 맞으니까….오늘의 일정은 여기서 끝이었다. 약간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숙소로 행했다. 숙소는 선운산에 위치하고 있는 어느 호텔, 호텔이라 하기엔 뭔가 부족한 듯 했지만 그래도 우리처럼 대 인원이 들어가서 쉬기엔 적당했다. 몇 명씩 방으로 조를 이루어 들어가 잠시 휴식을 취하다 저녁을 먹으러 내려갔다. 식사는 정말 생각했던 것 보다 좋았다. 원래 나가서 먹는 음식이 다 그저 그런 법인데 우리가 너무 허기가 져 있었던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두 세 공기씩을 먹고서 올라왔다.저녁 시간에는 이렇게 먼 곳까지 왔는데 그냥 자기도 모하고 해서 약간의 음주와 가무를 즐기고 숙소 앞에 있는 넓은 주차장에서 오랜만에 어릴적 하던 놀이 들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늦은 시간에서야 잠을 청하였다.전날 너무 늦게 잠을 잔터라 이른 아침에 기상해야 하는 우리는 비몽사몽 한 상태로 아침 식사를 한 후 부랴부랴 오늘의 여행에 시작을 준비했다. 피곤함이 가시지 않은 상태라 다들 버스 안에선 자는 풍경들이었고 도착지에 와 내리라는 기사아저씨의 말에도 아랑곳 않고 부비적 거리고만 싶었다.그러나 그럴 수는 없는 법. 내려서 보니 인적 없는 염전에 와 있었다. 이곳을 곰소염전이라 불리운다고 한다. 굉장히 넓은 대지에 곳곳에 지붕들이 들어서 있었고, 바닥엔 항아리를 깨어놓은 조각들이 즐비했다. 책에서나 보던 염전을 와보니 굉장히 흥분되었던 상태였으나 소금이 하얗게 펼쳐져 있을 거라는 기대는 깨어져 그 흥분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조심조심 좁은 통로들로 걸어다니며 여기저기를 살펴보다 차에 몸을 실으며 소금이 쫙 깔려 반짝거리는 그런 풍경은 다음 번을 기약하였다.예정에는 없던 드라마 “이순신”의 세트장이 있는 부안으로 우리는 향했다.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내려간 끝에 보이는 조선시대 세트장이 바다와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다른 도시를 제치고 부안이 세트장으로 선정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한다. 다른 해안을 낀 도시들에 비해 발달이 덜 된 천혜의 자연경관이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둔 작품의 역사와 문화를 재현 할 수 있었던 점이 가장 크며 또한 서해안 고속도로 개통으로 서울에서 2시간 반이면 올 수 있어 시간과 비용의 절감 효과를 줄 수 있다고 한다. 이에 부안 영상 테마파크의 큰 영향으로 선정되었으며 드라마 상영 이후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고 있다고 한다.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로 세트장은 그때를 재현하여 초가집과 기와집으로 지어져 있으며 임시로 만드는 건물들이므로 벽돌담을 두드려보니 퉁퉁 소리가 나 재미를 주었다. 세트장을 내려와 보니 정말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바다와 절벽 위의 세트장이 어우러져 이순신 장군의 그 기상마저 느껴질 정도였다.예정에 없던 계획으로 인해 빠듯해진 일정으로 급하게 출발을 서둘렀다. 그렇게 차로 얼마를 가 도착한 곳은 “채석강”이 있는 변산반도였다. 채석강은 전라북도 기념물 제 28호로 지정되어 있다.격포항 오른쪽 닭이봉 밑에 위치한 채석강은 선캄브리아대의 화강암, 편마암을 기저층으로 하고 중생대의 백악기(약7천만년전)에 퇴적한 해식단애가 마치 수 만 권의 책을 쌓은 듯한 와층을 이루고 있어 자연의 신비를 만끽할 수 있다.채석강의 명칭은 중국의 시성 이태백이 뱃놀이를 하며 강물에 비친 달 그림자를 잡으려다 물에 빠져 숨졌다는 중국의 채석강과 흡사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전해진다. 약 1㎞에 걸친 채석강의 장관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펼쳐지는 흰 모래사장이 격포 해수욕장이며, 이어 북쪽 용두산을 돌아 펼쳐지는 약 2㎞의 해안절벽이 적벽강이다.채석강은 하루 두차례 물이 빠지면 들어갈 수 있는데, 간조 때는 물 빠진 퇴적암 층에 붙어있는 바다생물과 해식 동굴의 신비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간조 때 해식 동굴에서 바라보는 낙조와 노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고 한다.이 곳을 보니 우리가 예전에 갔던 공룡발자국의 고장인 고성과 비슷한 낯설지 않은 풍경들이펼쳐져 있었다. 겹겹이 쌓인 바위들이나 그 곁의 해수욕장이나 가까이 위치한 이웃마을 같았다. 갓 잡아온 해산물들을 널직한 바위 위에서 팔고있는 상인 아주머니들이 눈에 띄었다. 학생인 우리들에게 먹어보고 가라고 붙잡는데 유혹에 침이 넘어갔다. 그러나 지나쳐 갈 수 밖에 없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교수님이 부르는 곳으로 가 채석상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파도가 높게 쳐 사진을 찍다 바닷물 세례를 받는 친구들도 보이고 회를 먹는 친구들도 보이고, 해수욕장에서 공놀이를 하는 친구들도 보였다. 우리는 모래사장에서 불가사리를 괴롭히다 버스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