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전통극의 이해 - 리포트能『忠度』의 이해와 감상국어교육과 2006190128신성훈노(能)는 대개 잘 알려진 전설이나 고사를 바탕으로 해서 창작된다. 헤이안(平安)시대 말기에 겐지(源氏) 가문과 헤이시(平氏) 가문 사이에 벌어졌던 치열한 싸움을 다룬 산문 작품으로 유명한 「헤이케 모노가타리(平家物語)」나 「겐페이 세이스이키(源平盛衰記)」에는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그 인물들 가운데 비극적인 영웅의 한 사람인 다이라노 다다노리가 있었다. 헤이시 가문의 무장이었던 다다노리는 무술에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와카(和歌) 창작에도 뛰어난 문인이기도 했다. 문무의 재능을 겸비한 다다노리는 당시의 일본 귀족 세계의 이상적인 인간상의 하나였다.귀족들은 자신이 지은 와카가 좋은 평가를 얻은 작품은 칙령에 의해서 편찬되는 와카집에 수록되기를 바랐다. 수없이 창작되는 와카 가운데서 채택을 받아 와카집에 수록되는 일은 매우 큰 영예가 되었다.그러나 좋은 와카임에도 불구하고 편찬자와 친분관계가 없다고 해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거나, 정치적 이유 때문에 와카집에 모처럼의 작가의 이름이 감추어지는 억울한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다다노리의 와카 작품은 가인(歌人) 후지와라 순제(藤原俊成) 가 편찬한 「센자이슈(千載集)」라는 와카집에 수록되기는 했다. 그러나 다다노리 집안이 조정과 적대적인 관계여서 작자의 이름은 미상이라는 형태로 실렸다. 문인으로서의 이름 높여짐을 원했던 다다노리는 아마 죽어서도 한이 맺혀 이승을 방황하였을 것이다. 수많은 원혼들의 진혼에 관심을 가졌던 제아미가 이러한 다다노리의 심정을 놓치지 않고 노(能) 『忠度』를 지었다. 그래서 센자이슈에 작자미상으로 전해지던 다다노리의 와카를 다다노리의 작품으로 인정해주며 다다노리의 한을 풀어줄 수 있는 작품이라고도 하겠다.노(能)가 시작되면 와키(脇)인 소년이 등장한다. 그는 후지와라 순제의 시종이었으나 주인이 죽자 스님이 되어 서울을 떠나 서쪽 지방으로 나그네 길에 올랐다. 스님은 고베(神戶)의 바닷가 경치 좋은 스마(須磨) 이르렀을 때 바닷가에 있는 한 그루의 보기 좋은 벚나무를 발견하고 다가가 보았다.이때 나무 아래 한 노인이 나타났다. 이 노인은 주인공, 즉 시테이며 다다노리의 화신(化身)이다. 노인이 지고 있는 땔나무 다발 위에는 꽃이 실려 있었다. 이를 본 스님은 뭔가 좀 남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노인은 벚나무 아래에 꽃을 바치면서 「이 나무는 이 자리에서 전사한 어떤 분을 기념하기 위해서 심어 놓은 나무입니다. 오늘도 꽃을 바칩니다」하며 합장했다.스님은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노인에게 하룻밤 묵어갈 잠자리를 청했다. 그러자 노인은 「이 꽃 그늘보다 더 좋은 잠자리는 없을 것입니다」고 하며 다다노리가 지었던 와카를 한 수 읊었다.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어 나무 그늘에 머무니 오늘밤의 주인은 꽃 너로구나」스님이 머물게 된 바로 그 자리는 다다노리가 전사한 자리였고, 그 나무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여 어떤 사람이 심어놓은 나무였다. 이런 일을 알게 된 스님은 그 자리에서 하룻밤 자기로 하고, 다다노리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나무를 향해 공양을 올렸다. 공양이 끝나자 노인은 자신이 바로 다다노리의 망령이라고 밝힌 뒤에 사라져 버린다.노의 무대에는 막이 없지만 여기서 제1장이 끝나며, 제2장이 이어진다. 제1장에서 다다노리는 마에시테로서 와라이조(笑尉)라는 이름의 노인 가면을 쓰고 있었다. 제2장에서는 같은 배우가 노치시테로서 젊은 남자 얼굴인 추조(中將) 가면으로 바꾸어 쓰고 다다노리의 망령을 연기한다.나무 아래서 잠들어 있는 꿈속에 다다노리가 나타난다. 다다노리의 망령은 갑옷을 입고 전장에서 죽던 당시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덧없이 죽어간 아쉬움에 안타깝지만, 자신의 와카가 채택되면서도 작자미상으로 되어 있음이 더욱 안타까움을 하소연한다. 회상조로 절절히 생전의 일을 하소연하는 다다노리.다다노리는 출전을 앞두고 그 바쁜 가운데 자신이 지은 와카를 전달하기 위하여 스승인 후지와라 순제의 집을 찾아갔다. 스승은 그때 칙령을 받들어 와카집을 편찬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다노리에게는 때가 좋지 않았다. 스승과의 사이에는 나쁠 것이 없었으나 조정과 사이가 좋지 않던 헤이시 집안이었기 때문에 조정의 일을 맡고 있던 스승은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와카를 적은 종이인 단자쿠(短冊) 만을 전하고 그 길로 출전했고 얼마 되지 않아 전사했다.
「조침문(弔針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목차 *1. 작품 개관2. 작품의 이해와 감상3. 작품의 특징(1) 형식적 측면(2) 내용적 측면(3) 표현적 측면4.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5. 평가 문항6. 참고 문헌1. 작품 개관은 조선 순조 때인 19세기에 양반집 청상과부인 유씨 부인이 한글로 쓴 수필로, 과부가 된 지은이가 슬하에 자녀가 없이 바느질로 생활을 해 오다가 시삼촌에게 얻은 마지막 바늘을 부러뜨리고는 그 섭섭한 심회를 누를 길이 없어 이 글을 지었다고 한다. 이 작품의 문장 실력과 고사에 능통한 점을 살펴볼 때, 비록 지은이가 삯바느질을 하는 처지이기는 하지만 어려서부터 독서와 편지 쓰기로 실력을 닦아 온 양반집 딸임을 알 수 있으며, 이 작품이 구사한 고어의 자취 및 표기법이 조선조 말 내간체 작품들과 비슷하므로 쓰인 연대를 19세기로 추정할 수 있다.부러진 바늘을 마치 사람이 죽은 것처럼 제문 형식으로 지어 이라고도 부르는데, 이 작품이 제문 형식을 띈 것은 아마도 지은이가 사별의 슬픔을 표현하는 데 제문이 효과적이라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이 작품은 일찍 남편을 잃고 바느질로 소일하며 지내던 조선 후기 양반 가문의 부인이 오랫동안 아끼고 애용하던 바늘이 부러지자 이에 대한 애석한 심회를 바늘로 의인화하여 표현했다. 이렇듯 바늘을 의인화함으로써 사실을 과장한 표현이 엿보이기는 하지만, 이 안에 지은이의 심정이 절절이 담겨 있으며 특히 의성어와 의태어로 그 감정 표현이 생생한 느낌을 준다.구성 단계를 보면 서두 부분에는 소재[바늘]제시와 화자의 정서[슬픔]제시로 되어 있고 본문 부분에는 바늘을 얻어 지녀온 내력과 바늘에 의지해 살던 어려운 삶, 바늘의 빼어난 용모와 민첩함, 신기한 행동, 착한 성품과 조화가 무궁한 재주, 그리고 바늘을 부러뜨린 경위를 말하고 있으며 결말 부분에서는 잘못을 뉘우치고 후세에 백년고락과 일시생사를 바람으로써 마무리 짓는다.이처럼 은 부러진 바늘과 함께 했던 기나긴 세월을 회고하면서 바늘의 공로와 재질, 모습, 부러뜨린르는 듯, 땀땀이 떠 갈 적에, 수미(首尾))가 상응하고, 솔솔이 붙여 내매 조화(造化)가 무궁하다. 이생에 백년 동거(百年同居)하렸더니, 오호 애재(哀哉)라, 바늘이여. ▶바늘과의 각별한 인연금년 시월 초십일 술시(戌時))에, 희미한 등잔 아래서 관대 깃을 달다가, 무심중간(無心中間))에 자끈동 부러지니 깜짝 놀라와라. 아야 아야 바늘이여, 두 동강이 났구나. 정신이 아득하고 혼백(魂魄)이 산란하여, 마음을 빻아 내는 듯, 두골(頭骨)을 깨쳐 내는 듯, 이윽토록 기색혼절(氣塞昏絶)) 하였다가 겨우 정신을 차려, 만져 보고 이어 본들 속절없고 하릴없다. 편작)의 신술(神術)로도 장생불사(長生不死) 못 하였네. 동네 장인(匠人)에게 때이련들 어찌 능히 때일손가. 한 팔을 베어 낸 듯, 한 다리를 베어 낸 듯, 아깝다 바늘이여, 옷섶을 만져 보니, 꽂혔던 자리 없네. 오호 통재라, 내 삼가지 못한 탓이로다. ▶바늘이 부러진 경위? 요지: 남편과 사별하고 자식도 없이 곤궁하게 살아가다 신묘한 재주를 지닌 바늘을 얻어 동고동락하였는데 부주의하여 바늘을 부러뜨리니 비통하고 허전하다.? 중심내용: 바늘의 행장과 나의 회포무죄(無罪)한 너를 마치니, 백인이 유아이사(由我而死))라, 뉘를 한(恨)하며 뉘를 원(怨)하리요, 능란(能爛)한 성품(性品)과 공교(工巧)한 재질을 나의 힘으로 어찌 다시 바라리요. 절묘한 의형(儀形))은 눈 속에 삼삼)하고, 특별한 품재(稟才))는 심회(心懷)가 삭막(索寞)하다. 네 비록 물건이나 무심하지 아니하면, 후세에 다시 만나 평생 동거지정(平生同居之情)을 다시 이어, 백년고락(百年苦樂)과 일시생사(一時生死)를 한 가지로 하기를 바라노라. 오호 애재라, 바늘이여.요지: 후세에 다시 만나 생사고락을 같이하기를 바란다.중심내용: 애도의 심정과 후세에의 기약3. 작품의 특징은 내용, 형식, 표현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이 작품만의 독특한 감동과 미적 구조를 이루는 작품이다. 따라서 부러진 바늘에 대한 작가의 안타까운 심정과 추모의 정을 담고 있는 내용 갖추어 전체적으로는 바늘에 대한 추모의 정이 중심 내용을 이룬다는 점에서 조침문이 제문의 틀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2) 내용적 측면① 소재의 독특성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우선 소재의 착상이 기발하다는 데에 있다, 바늘은 규방의 유일한 벗이요, 반려자였다. 외로울 때도 한 많을 때도 여인들은 내방에서 반짇고리를 끌어당겨 바늘에 손을 들고 모든 희로애락을 새김질하게 마련이었다. 이러한 감정이 바늘에 침윤되어 왔던 것으로 바늘은 부녀자들의 의식이 투영되는 대표적인 사물이었다. 의 유씨 부인에게도 이 바늘은 의지할 곳 없는 자신에게 유일한 위안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유씨 부인에게 있어 바늘은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으로서도 매우 중요하며 바늘 한 개를 27년이나 지녀왔던 것을 통해 그것에 특히 애정을 가지고 소중히 대해왔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자신의 생활과 애정이 응축되어 온 바늘의 부러짐이 작자의 슬픔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의 작자는 이 슬픔을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으로 포착하여 표현하고 있다.그렇다면, 인생의 동반자가 될 수 있는 이 바느질 도구에는 여러 가지의 도구들이 있는데 왜 하필이면 골무나 실이 아닌 바늘을 택했을까? 그것은 바늘이 죽음을 나타내는데 가장 효과적인 사물이기 때문이다. 바늘이라는 것은 부러지게 되면 그 바늘로서의 수명을 다하게 되는 것으로 ‘부러진다’는 점에서 다른 바느질 도구보다도 죽음의 이미지와 의미적 유사성이 있다. 이러한 점들에 빗대어 볼 때 작자가 바늘을 그 소재로 선택한 것의 탁월함을 인정할 수 있다.② 작품의 주제일반적으로 이 작품의 주제는 일찍 과부가 된 작자가 슬하에 자녀가 없이 오직 바느질에만 의지하며 살다가 시삼촌께서 주신 바늘 중 마지막 것을 부러뜨린 그 섭섭함이라고 할 수 있다. 바늘은 규방의 가장 친근한 벗이자 반려였다. 수십 년을 지니고 손에 익혀온 물건인 바늘은 곧 작자 자신이 투영된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바늘에는 자신이 지나온 한 서린 생이 응축되어 있고 남몰래 지어내던 눈물과 한숨이 어려 있었성 특유의 섬세함과 ‘땀땀이’, ‘솔솔이’하는 우수한 표현을 보여주고 있다.또한, 외국에서 사온 귀한 바늘에 대한 표현을 통해 당대의 시대상과 지리, 교통수단, 조선의 관직 체계, 대외 관계 등에 대해서도 표현한 바, 여성 작자의 식견을 잘 나타내고 있다.(3) 표현적 측면① 대상의 의인화은 와 더불어 사물을 의인화시킨 한국의 대표적인 수필작품이다. 에 나타난 구체적인 대상의 의인화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의인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의인의 보편적 의미는 인격화이다. 무생물이나 추상적 관념이 마치 인간적인 속성이나 감정 및 생명이 주어져 있는 것처럼 이야기 되는 것이다. 즉, 의인이란 인간 이외의 대상에 인격적 요소를 부여하게 될 때 성립하는 것으로 은 바늘의 부러짐을 애도하며 쓴 글로 애도하는 대상이 바늘이다. 제문은 본래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하는 글로서 인간을 대상으로 하지만 이 경우에는 특별하게도 바늘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바늘의 부러짐을 죽음이라고 생각하며 쓴 이 글은 바늘을 인간과 같은 존재로 여기며 인간과 같이 그 재주나 가치를 높여서 적고 있다.민첩하고 날래기는 백대의 협객이요, 굳세고 곧기는 만고의 충절이라. 추호같은 부리는 말하는 듯하고, 두렷한 귀는 소리를 듣는 듯한지라위와 같은 표현은 바늘의 생김새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바늘을 작가 자신과 의사소통이 가낭한 유정물로 취급하여 감정 이입이 가능함을 나타내었다.그 밖에도 “자식이 귀하나 손에서 놓을 때도 있고 비복이 순하나 명을 거스를 때도 있나니, 너의 미묘한 기질이 나의 전후에 수응함을 생각하면 자식에게 지나고 비복에게 지나는지라”고 하여 자식과 비복보다 낫다고 한 점이라든지, “아야 아야 바늘이여 두 동강이 났구나”에서 바늘이 부러지면서 느꼈을 아픔을 표현한 부분 등은 바늘을 그저 하나의 사물로서 본 것이 아니라 감정이 있는 생명체로 생각하고 독창적으로 의인법을 구사한 표현이며 바늘의 아픔임과 동시에 화자의 아픔으로 감정이입이 된 부분이다.② 운문의 배합운문을 소박하게 로 천 리를 날아 임금 계신 대궐로 들어가서 너희들의 충정을 호소하고 너희들의 그 지극한 슬픔을 펼쳐 보여라. 포악한 행위를 아뢰지 않고는 시비를 가릴 수 없는 것.해와 달이 밝게 비쳐 빛이 찬란할 것이다. 정치를 잘하여 인(仁)을 베풀고 천지신명들께 아룀에 규(圭)를 쓰는 것이다. 천둥같이 울려 임금의 위엄을 떨치게 하면 곡식도 잘 익어 백성들의 굶주림도 없어지리라. 파리야, 그때에 날아서 남쪽으로 돌아오너라.”정약용이 전라도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쓴 글이다. 파리 떼를, 형식적인 구휼 제도와 조세 제도의 폐해, 관리들의 횡포 때문에 굶어 죽은 백성들의 원혼이라 여기고 음식을 베풀어 조의를 표하면서 위로하는 글이다. 그가 살던 1809년에 전라도 일대에 심한 가뭄으로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었다. 이듬해에 장사가 잘되자 파리 떼가 엄청나게 몰려와 일대를 뒤엎자 이를 잡으려는 사람들에게 정약용은 파리들이 작년에 죽어 간 백성들의 혼이라며 제사를 지내줘야 한다고 을 지었다. 과는 다른 성격을 가진 조문이라고 볼 수 있다. 남성 작가가 지었고, 사물에의 조문을 통해 사회비판적 요소를 강하게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비교해볼 수 있다.4. 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은 고등학교 문학(하) 블랙박스, 문학(상) 교학사(구)에 실려 있다.1) 현행 교과서 검토: 블랙박스 출판사의 문학 교과서(하)Ⅵ. 국어 문화와 문학 문화 1. 생활 속의 문학 단원에 작품읽기 자료2로 제시되어 있다.? 문학 활동이 언어적, 문화적 실천 활동임을 이해한다.? 국어 문화의 관점에서 문학을 수용한다.? 문학의 소통 과정에서 작용하는 규칙과 관습을 이해한다.소단원 1단원에서는 생활 문화와 예술 문화의 관점에서 우리 문학을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조침문의 경우 작품 속에 나타난 생활에 유의하며 감상하고, 대상을 바라보는 태도에 관심을 가지고 학습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1? 이 작품의 특징을 표현과 내용 면에서 말해 보자(이끌어주기) 이 작품은 제문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을 가장 먼저 이해.
‘지귀설화(志鬼說話)’목차1. 유래2. 수록문헌3. 내용과 해석4. 현대시에 수용된 예5. 교과서에 수록된 지귀설화와 개선방안6. 문제1. 유래‘지귀설화’는 인도의 용수(龍樹)가 저술한 에 실려 있는 ‘술파가(術波伽)설화’를 원형으로 하는 신라시대의 설화이다. ‘술파가설화’는 인도에서 중국을 통해 신라로 전해졌을 것으로 추정되며, 신라에 전해진 후 토착화 되어 지금의 ‘지귀설화’로 변모되었다. ‘술파가설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술파가’라는 어부가 왕녀를 사랑하게 되어 그 마음이 지극해 식음을 폐하고 병이 나게 된다. 그의 어머니는 신분의 차이를 이유로 들어 그에게 공주에 대한 마음을 단념하라고 설득하나 듣지 않았다. 이에 어머니는 계략을 써서 공주를 만나 아들의 사정을 고하고 천사(天祠)에서 만나기로 밀약을 정한다. 그러나 공주가 천민에 의해 능욕당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천신(天神)이 술파가를 잠들게 한다. 술파가가 깨어나지 않자 공주는 목걸이를 남겨놓고 나오고 잠에서 깨어난 뒤 목걸이를 발견한 술파가는 마음 속에서 음화(?火)가 일어나 불에 타 죽는다.이 이야기의 마지막에 서술자는 다음과 같은 평을 덧붙이고 있다.「이로써 여인의 마음은 귀천을 가리지 아니하고 오직 욕(欲)만을 좇아 행함을 밝히 알 것이다.」‘술파가설화’는 본래 불교서적에 실린 것으로 마지막에 덧붙인 서술자의 평으로 보아 욕구만을 좇는 여인의 마음을 경계할 것을 이르는 교훈적인 주제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지귀설화’는 신라의 현실에 맞게 재편집되어 전혀 다른 주제를 택하고 있다. 사찰이 배경이긴 하나 불교적인 교훈을 담고 있지 않으며, 화재를 예방하는 민속신앙과 결합해 주술적인 성격을 가지기까지 한다. 또한 ‘술파가설화’에서는 신분의 차이를 강조하는 대목이 여러 번 나오는데 술파가의 모친이 술파가를 설득하는 대목, 천신이 술파가를잠들게 하는 대목이 그러하다. 결정적으로 술파가가 왕녀와 사랑을 이룰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천신이 신분의 차이 때문에 둘을 방해했기 때문인 셈이다. 이에 않고 친하지도 않으리.」 그때 풍속에 이 말을 문의 벽에다 붙여 화재를 막았다.)먼저 제목을 살펴보자. 마음에서 일어난 불이 탑을 둘러싸 태웠다는 것으로 보아 탑은 목탑이었을 것이고, 목탑을 태운 후에 지귀는 불귀신이 된다.주인공의 이름인 지귀는 일반적인 사람의 이름이 아니다. 아마도 불귀신을 지귀라고 하는 풍속이 먼저 있고 난 후에 불귀신의 유래, 불의 내력을 설명하느라 이런 이름을 사용한 것이 아닐까 한다. 지귀는 활리역 사람이라고 했는데 활리역은 어디 있는 역인지 알 수 없다. 다른 문헌에 활리산이라는 지명도 나오나 활리산도 어디 있는 산인지 위치가 밝혀지지 않는다. 그가 역졸이라는 것은 알 수 있는데, 신라시대에도 역졸은 천한 신분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선덕왕이 지귀의 이야기를 듣게 된 계기로 ‘幸寺行香’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절에 가서 향을 피우는 예를 행하다, 즉 불공을 드리러 갔다는 설명이다. 여기서 언급된 ‘寺’는 「삼국유사」에서 영묘사라고 하였다.)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지귀는 “홀연히” 잠에 빠지게 되고 이 때문에 여왕과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술파가 설화에서는 술파가가 천신에 의해 잠들었다고 하여 정확한 경위가 나오고 천신이 왜 방해를 하는 지에 대한 이유도 나오는 데 비해 지귀설화에서는 그러한 경위가 밝혀져 있지 않다. 그러나 “홀연히”라고 서술한 것으로 보아 술파가의 천신처럼 인간의 차원 이상의 존재가 개입한 불가항력적인 작용이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어찌 되었든 여왕과의 사랑을 결국 이루지 못한 지귀는 심화, 즉 마음에서 일어난 불에 둘러 싸이고 이 불이 탑으로 번진다. 즉시 지귀는 불귀신이 되었다. ‘불귀신이 되었다’고 덧붙인 이유는 영묘사라는 특정 장소에서 일어난 화재 뿐 아니라 민간에서 일어나는 화재 일반을 모두 귀신의 탓으로 생각하고 이 화귀를 지귀라고 불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선덕여왕은 이에 주술사로 하여금 주문을 짓게 해 화재를 막는다. 주문은 주술사가 지었지만 이를 선덕여왕이 지시했다고 한 점, 지귀와 선 해야지-내가 어느 절간에 가 불공을 하면그대는 그 어디 돌탑에 기대어한 낮잠 잘 주무시고,그대 좋은 낮잠의 상으로나는 내 금팔찌나 한 짝그대 자는 가슴 위에 벗어서 얹어 놓고,그리곤 그대 깨어 나거던시원한 바다나 하나우리 둘 사이에 두어야지.-우리 데이트는 인젠 이렇게 하지.햇볕 아늑하고영원도 잘 보이는날.서정주의 시에서 지귀의 안타까운 사랑은 이루어진다. 또한 화자가 선덕여왕으로 설정되어 선덕여왕이 지귀의 마음을 받아주고 이들의 사랑이 이루어졌음을 더 확실히 보여준다. 특이한 점은 불귀신이 된 지귀를 막고자 주문에 나왔던 ‘바다’가 이 시에서는 차단과 배척의 기능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서정주가 설화 속 주문을 해석한 부분이 흥미롭다. 서정주는 그의 책 에서 주문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잡것아 네마음 속의 불로 / 살을 태워 불도깨비 되었으니 / 시원한 푸른 바다 넘어서 가거라 / 가까이 안보이게 살아 있거라.’즉, 서정주는 선덕여왕이 지귀를 바다 너머로 보내 처벌하고 멀리 하려 한 것이 아니라, 지귀가 가진 마음 속의 불을 다스릴 수 있는 시원한 바다를 선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이처럼 서정주의 시가 지귀설화를 사랑의 완성으로 재해석해 낭만적인 분위기를 이어갔다면 김춘수의 시는 전혀 다르다. 다음은 김춘수의 이다.지귀(志鬼)야,네 살과 피는 삭발(削髮)을 하고가야산(伽倻山) 해인사(海印寺)에 가서독경(讀經)이나 하지.환장한 너는종로(鐘路) 네거리에 가서남녀노소(男女老少)의 구둣발에 차이기나 하지.금팔찌 한 개를 벗어 주고선덕여왕(善德女王)께서 도리천의 여왕(女王)이 되신 뒤에지귀(志鬼)야,네 살과 피는 삭발(削髮)을 하고가야산(伽倻山) 해인사(海印寺)에 가서독경(讀經)이나 하지.환장한 너는종로(鍾路) 네거리에 가서남녀노소(男女老少)의 구둣발에 차이기나 하지.때마침 내리는밤과 비에 젖기나 하지.오한(惡寒)이 들고 신열이 나거들랑네 살과 피는 또 한번 삭발(削髮)을 하고지귀(志鬼)야,김춘수의 시에서 지귀는 여전히 선덕여왕을 향한 사랑을 이루설화와 김현감호가 각각 ‘지귀’, ‘호원’이란 제목으로 실려 있는 것이다.설화나 전기 소설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지귀설화와 김현감호가 실린 것은 첫째, 두 작품이 전기성을 보인다는 점, 둘째, 두 작품에서 ‘사랑’이라는 주제를 공통적으로 끌어낼 수 있다는 점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도서에서는 두 작품을 한 차시에 배분하여 엮어 가르치도록 해 놓았으며, 학습활동에서도 두 작품을 연계한 문항을 제시하여 두 작품의 공통점을 통하여 해당 시기의 문학적 특징을 파악하도록 설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다음은 단원의 학습목표와 학습활동이다.◎ 학습목표3. 통일신라~고려 전기의 문학?이 시기 문학의 흐름을 이해하고, 대표작들을 안다.?이 시기의 문학을 창의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른다.(3) 수이전에서?등장 인물의 성격과 상호 관계를 안다.?작품의 주제와 교훈에 대해 이해한다.◎ 학습활동익히기수용지귀 를 읽고 다음 활동을 해 보자.1. 이야기의 전개에 따라 지귀의 심리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살펴보자.2. 마음의 불[心火]이 몸을 태우는 모습에 나타난 사랑의 속성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자.3. 지귀에 관한 노랫말이 화재를 막는 부적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이유를 말해 보자.호원 을 읽고 다음 활동을 해 보자.1. 범처녀가 스스로 목숨을 버리게 된 이유와 심리를 추측해 보자.2. 이 작품에서 변신 의 모티프가 주는 문학적 효과에 대해 말해 보자.3. 범처녀와 김현의 행동에 대하여 평가해 보자.두 작품과 관련하여, 다음 활동을 해 보자.1. 두 작품에 나타난 신이(神異)하고 환상적인 요소를 찾아보자. 그리고 그것이 작품의 분위기를 어떻게 이끌어 가고 있는지 말해 보자.2. 두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는 신라 시대의 풍속에 대하여 말해 보자.3. 두 작품에 묘사된 사랑의 속성을 비교해 보자. 그리고 진정한 사랑이란 어떠한 것인지에 대하여 토의해 보자.적용두 작품에서 나타나는 환상적인 내용과 유사한 것들을 아래 작품에서 찾아보자.제시 자료 : 홍길동전, 심청전, 흥부전이와 같은 랑이 중요한 모티브가 되는 점 또한 인정할 만하다. 그러나 두 작품에 드러난 사랑이라는 소재가 과연 설화 문학을 대표할 만한 소재인지는 의문이 든다. 사랑은 시대 보편적으로 문학의 중요한 소재가 되어 왔고, 조선후기 소설사의 애정소설처럼 사랑이 설화 문학의 중요한 특성이라거나 설화 문학에서 부각되는 소재라고 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사랑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작품의 내용이나 주제를 살펴보는 자세하게 읽기에서 다루도록 한다. 이를 학습목표로까지 끌어올리거나 두 작품의 공통점으로 도출해 학습활동을 전개하는 것은 학생들이 설화문학에서 사랑이 중요한 소재 혹은 특질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학습목표는 다음의 세 가지로 간추리고 학습활동 수용의 -3.은 삭제한다.?작품의 주제와 교훈에 대해 이해한다.?설화 문학의 특징인 환상성을 이해한다.?설화 문학을 창의적으로 수용하는 안목을 기른다.학습목표를 이와 같이 설정한 후 학습활동을 다시 한 번 살펴보면 학습활동에서 설화문학의 창의적 수용을 다룰 만한 활동이 부족함을 알 수 있다. 오늘날의 판타지문학이나 게임에서 설화문학의 환상성을 찾아보는 활동이 있고, 고전소설에 드러난 환상성과 설화문학의 환상성을 연계하여 살펴보는 활동이 있을 뿐이다. 전자가 비교적 창의적 수용과 연관성이 있다고 할 수 있겠으나 부족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창의적 수용이라고 해서 무작정 학생들에게 창작활동을 시키는 것은 다소 무리한 요구이다. 또한 해당 단원이 창작활동을 위한 단원이 아니며, 학습목표가 창의적으로 수용하는 ‘안목을 기르’는 것이므로 설화 문학을 재해석한 창작물을 감상하는 활동으로도 충분히 해당 학습목표를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학습활동 적용의 번 항목으로 ‘현대문학이나 다른 예술 분야에서 설화 문학을 재해석한 창작물을 찾아 감상해 보도록 한다.’를 설정하고, 이를 교사의 재량에 따라 현대시에 수용된 예 혹은 뮤지컬이나 연극으로 창작된 예를 찾아 학생들에게 소개하도록 한다.6. 문제대상 : 고등학교 2학년 학생1)나거던
花王戒 - 薛聰- 목 차 -1. 화왕계 분석1.1 화왕계와 저자 설총1.2 화왕계의 내용1.3 화왕계의 작중인물1.4 시대적 배경에 따른 인물 분석2. 우언의 성격2.1 우언의 정의2.2 우언에 관한 논의2.3 우리나라 최초의 우언3. 교육적 측면에서 바라본 화왕계3.1 현행 교육에서 바라보는 화왕계3.2 화왕계의 교육방안1 (새로운 관점)3.3 화왕계의 교육방안2 (새로운 방법)4. 화왕계 문제 만들기1. 화왕계 분석1.1. 화왕계와 저자 설총- 화왕계는 「三國史記」 卷46 列傳 第 6薛聰條와 「東文選」 卷52에 라는 제목으로 전한다. 「동문선」의 경우는 「삼국사기」의 것과 내용과 배경담의 차이는 없으면서도 풍간한 글이란 점이 강조되어 라고 명기되어 있으나 「삼국사기」에는 작품에 대한 주어진 이름은 따로 없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이작품의 표제를 '화왕계'라고 일컫기 시작하였다. 이는 화왕을 풍간하는 글이라는 것보다는 작품자체가 화왕을 警戒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인 명칭으로 볼 수 있다.의 창작 과정은 작자 설총이 항간에서 들은 이야기를 신문왕의 요청에 대답한 형식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그러나 사실은 설총이 신문왕에게 충간하고자 즉석에서 지어 기록한 것으로, 말하자면 작자도 없이 막연하게 전해오던 이야기 내용을 단순히 그대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작자 나름의 창작 의식과 문장력을 동원하여 형상화한 것이다. 남에게서 들은 것을 말하는 것처럼 고도의 변명으로 작품 제작 동기를 밝히는 사실 자체가 시작부터 이 작품은 교묘한 문학 장치를 내포하고 있다. 예를 들면 미인과 장부의 원관념인 장미와 할미꽃의 생태에 기초하여 간신과 충신의 형상을 창조하며, 장미와 백두옹을 대조적으로 묘사함에 있어서도 그 상응하는 대척적인 언어들을 적절하게 선택하는 면에서도 문학 장치의 다양한 활용을 엿볼 수 있다.의 저자 설총은 국문학사상 중요한 인물로 거론되는데 그 이유는 그가 창작한 와 더불어 일찍부터 우리말과 글에 능통해 향찰식 표기법을 정리하여 우리글을 잇게 한 공적이 있기 때문이다.曰雖有絲麻 無棄管?. 凡百君子 無不代? 不識 王亦有意乎或曰 二者之來 何取何捨花王曰 丈夫之言 亦有道理 而佳人難得 將如之何 丈夫進而言曰 吾謂王聰明識理義 故來焉耳 今則非也. 凡爲君者 鮮不親近邪? 疎遠正直. 是以孟軻不遇以終身 馮唐郞潛而皓首 自古如此 吾其奈何 花王曰 吾過矣. 吾過矣於是 王愁然作色曰 子之寓言 誠有深志, 請書之 以爲王者之戒 遂擢聰以高秩신문대왕이 한 여름에 높고 밝은 방에 거처하면서 설총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오늘은 오랫동안 내리던 비가 처음으로 그치고 향기로운 바람이 살랑살랑 부니 비록 좋은 반찬과 애처로운 음악이 있더라도 고상한 말과 좋은 웃음거리로써 울적한 회포를 푸는 것만 같지 못하다. 그대는 틀림없이 기이한 이야기를 들은 것이 있을 것이니 나를 위해서 이야기 해주지 않겠는가?”설총이 말하기를 “예, 신이 들으니 ……- 우언 본문-- (이에 대한 해석본은 교재에 실려 있으므로 별도로 기재하지 않았습니다.)…… 하였답니다.”이에 왕이 슬픈 얼굴빛을 지으며 말하기를 “그대의 우화의 말 속에는 실로 깊은 뜻이 있으니, 청컨대 이를 글로 써서 임금된 자의 교훈으로 삼도록 하라.” 하고 드디어 설총을 발탁하여 높은 벼슬을 주었다.1.3 화왕계의 작중 인물- 花王(牧丹) : 화왕인 모란꽃은 봉건국가의 최고 통치자인 왕의 의인화된 형상이다. 작품에 형상화된 모란꽃은 겉보기에는 위엄이 있고 덕망이 있어 수많은 꽃들이 찾아오는 것처럼 그려져 있으나 실상은 부화방탕한 사생활에 빠져 사리를 분간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화왕은 장미꽃의 아름다움에 이끌리지만 백두옹의 충언에 결국 스스로의 과오를 깨닫는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佳人(薔薇) : 가인으로 나오는 장미꽃은 미인으로 형상화 되며 붉은 입술에 백옥 같은 흰 이를 드러내고 하늘거리는 화려한 비단옷으로 치장한 아첨의 화신으로 그려진다. 흰 눈같은 모래밭을 밟고 거울같은 맑은 바다를 대하며 봄비에 목욕하여 때를 씻고 상쾌한 맑은 바람을 맞고 사는데, 지금 왕의 높으신 덕이 있음을 듣고 찾아온 것이니 베개를 받들고자 한다고 천천히 걸어나와 허리를 구부림1.4 시대적 배경에 따른 인물 분석- 佳人 : 가인인 장미는 세상의 그 무엇에도 구애됨이 없이 마음대로 즐기며 살아온 존재로 보이며 그러한 모습은 유유자적하는 가운데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현실적 삶의 가치만을 추구하는 眞骨貴族을 상징하는 것이다. 귀족들은 본인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물질적 풍요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향기로운 침소에서 임금을 모시고자 할 정도로 왕권과 가까이 하고자 하는 것이다.- 丈夫 : 장부인 백두옹은 서울 밖 큰길가에 사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는 곧 진골들이 고위 관직에 오를 수 있는 반면 육두품은 제 6관직인 阿?(아찬)에 까지 밖에 오를 수 없으므로 진정한 안의 사람이 아니지만, 오두품 이하와는 다르게 아찬까지는 오를 수 있다는 점에서 안과 완전히 차단된 밖의 사람도 아님을 상징한다. 이러한 점에서 백두옹은 육두품을 대변하는 인물로서 사마(명주와 삼베)로 상징되는 성골·진골의 귀족계급만이 우대되고, 관괴(왕골이나 띠풀)로 상징되는 육두품의 인재는 무시되고 있는 현실을 신문왕에게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설총의 대변자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2. 우언의 성격2.1. 우언의 정의- 우언이란 다른 사물에 비겨 의견이나 교훈을 은연중에 나타내는 말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갖는다. 우언이란 용어는 「壯者」에서 처음 등장한다. 장자는 우언이란 화자의 직접적인 이야기보다 다른 사람 또는 사물의 일을 끌어들여 이야기해야 잘 믿는 청자의 심리를 이용하여 자신의 회포와 이상을 설득시키는 효과적 수단으로 사용하는 수사방식이라고 밝혔다. 이는 곧 우언이란 우의의 전달을 전제로 한 이야기 방식이며, 화자와 청자간의 소통적 장애를 극복해 보려는 의지의 소산이라고도 할 수 있다. 즉 우언이란 것은 화자가 청자에게 더 믿음을 주면서 청자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자기 객관화를 하게 된다. 그럼으로 인해 우언에는 작자가 아닌 제3의 인물이 필요하게 되고 따라서 우언에는 신화적 인물이나 동식물이 등장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문학작품전), 소설에 수용되어 문학적 수단으로 발전에 기여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한 윤해옥은 우언의 우회적인 설득효과가 가전과 몽유록 등 여러 문학 장르로 수용됨에 주목하였다. 이는 곧 우언을 독자적인 양식으로 바라본 것이 아니라 우언을 일종의 수사방식의 하나로 보고 연구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반면에 우언을 수사적 차원이 아닌 하나의 양식으로 보고 연구한 사람들로는 유종국, 이종묵, 윤주필 등이 있다. 이들은 주로 1980년대 중반부터 이러한 입장을 가지고 연구를 했던 사람들이다. 유종국은 우언을 우의적 표현의 한 서사문학 양식이라고 규정하고 그 이야기 방식을 세 가지(사례인용식, 단형고사식, 문답식)로 분류하고, 그 주제(경계, 암시, 훈계), 기능(계시적, 풍자적, 설리적), 유형(우화, 유화, 훈기)에 따라 우언 들을 일정한 분류 및 쳬계화 하려고 시도하였다. 또한 윤주필은 우언을 별도의 의미를 전면적으로 기탁한 단형의 이야기라고 정의하며 우언을 독자적인 양식으로 규정하였다. 이와 같이 우언을 두고 서로 다른 견해가 대립되어 있는 상황에서 어떤 쪽의 의견이 타당하다고 규정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첫째 우언의 정의가 불명확하다는 점, 둘째 우언의 범위 설정이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는 점, 셋째 아직까지의 연구가 우언의 양식적 특성을 제대로 드러내는 성과에 이르지 못했다는 점들 때문이다.2.3. 우리나라 최초의 우언- 는 한국 문학사상 우언이라 지칭된 최초의 작품으로서 문학사적 가치를 지닌다. 는 다음과 같은 전개방식을 통해 효과적 설득을 위한 우언의 유기체적 형태로서의 전형적 구성방식을 갖추고 있다.㉠ 한여름 高明之室에 비도 개고 바람 서늘하다. → 대화의 장 마련㉡ 신문왕이 설총에게 高談善謔을 청한다. → 진술의 동기 부여㉢ 설총이 이에 응한다. → 화자의 이야기 開陣㉣ 이야기 내용이 있다. → 우언 본문㉤ 신문왕이 경계로 삼겠다 한다. → 청자의 긍정적 반응이러한 형태는 우언의 정형격이라 할 수 있는 우언의 문답체 구술형식에 해당하며, 화자 설총이 청자 유는 우언이라는 장르의 확립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언이라는 개념 자체가 확립이 제대로 이루어진 상태가 아니고 아직도 연구 중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힘들고 그에 따라 이러한 결과가 벌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분명 아직 우언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 정립이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화왕계가 갖는 문학사적 가치와 화왕계가 갖는 뛰어난 풍자성 등을 고려할 때 적어도 가전체를 배우기 전에 이러한 형태의 우언 작품이 먼저 신라시대에 나왔다는 것을 배워야 할 필요성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3.2. 화왕계의 교육방안1 (새로운 관점)- 우선 화왕계를 가지고 화왕계에 나타난 다양한 수사방법들(의인법, 은유법 등)에 대해서 배울 수 있을 것이고 화왕계가 문학사에서 갖는 가치(가전체 작품들이 등장하게 되는 배경이 되는 작품) 등에 대해서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 외에 다른 방법으로 화왕계에 접근해 보는 것은 분명 화왕계를 더 폭넓고 깊게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먼저 생각해 본 것이 일반적으로 화왕계를 이해하는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 보는 것이다.(여기서 배우게 될 학생은 문학교과서를 배우는 고등학생이라고 가정한다.) 일반적으로 화왕계를 접근하는 방식(대부분의 논문에서 그러하듯이)은 장부인 백두옹과 가인인 장미의 대조를 중요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아첨하는 장미와 충언을 하는 백두옹 사이에서 화왕이 스스로의 과오를 깨닫게 되는 장면을 중심적으로 바라보고 그러한 충언을 한 백두옹을 올바른 인물상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백두옹도 장미도 아닌 화왕의 입장을 중심으로 작품을 바라보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우선 우언이란 위에서도 설명했듯이 화자가 자기객관화를 통해서 객관적 대상을 주인공으로 삼는 것이므로 작품을 읽을 때도 작중 인물에 몰입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그 상황만을 바라보게 된다. 이러한 점을 학생들에게 설명해주고 그렇다면 객관적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어떤 심리 다.
보한집 학습지도안Ⅰ. 고려후기 시화서(詩話書)류의 창작문학이 성장하면서 문학을 하는 자세와 방법에 대한 검토를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추세이다.) 본격적인 비평은 고려 후기에 이르러 나타나기 시작하였는데 이인로의 , 이규보의 , 최자의 , 이제현의 등은 우리나라 시화비평의 장을 연 비평사(批評史)상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책들이다. 그러나 이들 시화서(詩話書)들은 깊은 학리(學理)에 바탕을 두고, 독자의 동의를 구하고, 이를 강하게 설득하고자 전개한 논리 일변도의 비평이 아니요, 시평(詩評)이라는 부담감에서 벗어나 일정한 체계나 순서에 의하지 않고 붓 가는 대로 서술되어 가벼운 기분으로 시를 말하는 가운데서 진정한 시도(詩道)를 찾게 한다.)12세기에 이르러 송시(宋詩)의 풍격을 따르는 시작성향(詩作性向)이 유행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주로 소동파와 황산곡의 시를 숭상하여 대부분 이들의 작품을 모방하였다. 다같이 소동파의 시를 배우면서도 한 편은 그 호기(豪氣)와 신의(新意)를 본받고, 한 편은 그 용사(用事)를 배웠는데, 이는 용사론과 신의론이 나눠지는 분기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당송대에 구양수의 , 사마광의 를 시작으로 , 등 각종 시화서가 크게 유행하였는데, 송시(宋詩)가 유입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시화(詩話)도 유입되었을 것이다.고려시대의 문학은 역대 제왕의 문치와 과거제도에 힙입어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관학과 사학도 비록 과거를 위한 교육에 치중하였지만 고려의 문운(文運)을 크게 진작시켰다. 그러나 사장(詞章)과 경학(經學)가운데 경학(經學)이 크게 우세하여 사장(詞章)이 경학(經學)의 영향아래에 있었다. 곧, 시인은 유인(儒人)이어야 하며 시는 정치적 목적을 띤 주제나 유교적 주제를 담고 있어야 했다. 시화(詩話)는 입신을 위한 시학습에는 거의 필요가 없었으므로, 자신이나 유한계층의 담소 내지 파적(破寂)을 위해 그 존재가치를 부여 받았으며 시화비평(詩話批評)의 대상이 될 만한 작품들도 많지 않았다.과거제 실시와 사학, 관학의 육성은 문풍 진작·언어 등의 원용을 뜻한다. 반면 용사를 수사법(修辭法)에 한정시켜, 표현 기교의 일종으로 보는 경우 이를 단순히 형식론(形式論)으로 이해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에 따를 경우 어(語)만의 용사(用事)가 아닌 의(意)까지를 용사(用事)한 경우 표절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용사(用事)는 전고(典故)에서 용어원용(用語援用)과 용의원용(用意援用)의 두 가지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의(意)를 차용해도 자신의 독특한 시의 세계를 창조했다면 표절이 아닌 것이다. 결국 용사(用事)는 형식과 내용에 모두 관계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특히 한시(漢詩)에서 시의(詩意)의 압축된 표현과 강조, 시적 재능의 한계성 극복 등을 이유로 용사(用事)의 필요성이 주장되었다. 다시 말해 용사(用事)를 통해 시인은 자신의 시적 재능을 보여주며, 자신의 시의를 선명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며, 또 많은 감명을 줄 수 있다. 용사는 시인의 독창적인 의를 더욱 선명하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최자에 따르면 이인로는 “황정견과 소식의 문집을 읽은 연후에 말이 굳세고 운이 맑은 소리를 내게 되어 시 짓는 지혜를 얻었다”고 했다. 이인로는 고인의 작품을 읽어 지혜를 얻었다고 한 셈인데 이 말에는 그의 시론(詩論)이 잘 담겨있다. 한편으로는 황정견의 환골탈태론)보다 신의의 창출을 높이 평가하기도 하였으나, 실제적으로는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므로 묘미 있는 용사(用事)에 힘쓴 소식과 황정견의 작품을 용사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지나치거나 괴이한 용사(用事)를 낮게 평가하였다. 그는 용사의 전통을 쇄신하고, 언어 구사를 절묘하게 하며, 작품을 작위적으로 다듬은 흔적을 없애는 것이 시 창작에서 실제로 이를 수 있는 최선의 경지라고 생각한 것이다.)이인로는 정절(精切)한 용사(用事)의 방법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었고, 용사(用事)에 있어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또한 격조높은 시를 지어야 한다고 한 점에서 시격(詩格)을 중요시 한 것으로 볼 수 있다.)2. 신의론(新意論)신라시대 이후 한쓰는데, 백장을 쓰더라도 모두 옛 사람의 것을 蹈襲하지 않고 탁연히 저절로 이루었기 때문이다.라고 하는 점에서 시인의 개성이나 기질에서 유발된 문학적 상상력과 자유로운 창조 정신을 중시 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는 의 서문에서 문인의 바르지 못한 인식과 태도에 대해서 적극적인 공세를 펴고 있다.)만일 남의 것을 흉내내어 지나치게 꾸미려고 하는 것은 유자(儒者)의 하는 일이 아니다. 비록 시인에게는 탁련사경의 격식이 있으나, 그 중에서 취할 것은 다만 구절을 다듬고 뜻을 수련시키는 것 뿐이다.최자는 당시에 횡행하던 소식과 황정견을 지나치게 숭상하여 그들의 시풍을 단순히 모방하는 풍조를 비판하고 있다. 최자는 자신의 문집의 서문에서 표절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은 그릇된 문학 풍토를 시정하기 위한 위기의식과 창조의식에서 대두된 것이다.한편 이규보나 최자는 모두 신의(新意)의 어려움을 역설한다. 이규보의 시세계가 곡진하고 정밀한 것은 그가 경사백가서(經史百家書)를 두루 섭렵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로 인해 그의 언어가 풍부해지고 사상이 확장되었으며 신의(新意)가 비로소 그 존재 가치를 유감없이 드러내었다고 할 수 있다.) 즉 문장에 대한 학습없이 신의(新意)가 창조 될 수 없고, 학습의 영향을 포함하는 용사(用事)의 과정을 거친 연후에 비로소 확실한 신의(新意)에 다다를 수 가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문인들의 부단한 창작의 수련과정에서 고인의 글이 창작의 지표가 될 수 있다.최자는 피상적으로 용사(用事)와 신의(新意)를 대조하면서, 우열을 가리던 현실을 비판하면서 옹졸하고 난삽한 시문이 되지 않도록 정교한 말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용사(用事)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문제는 함부로 한 용사(用事)가 도습이나 표절로 타락하게 되는 것이지, 용사 자체가 아니다. 이에 대하여 최자는 에서 “시인들은 차용을 귀히 여긴다. 그러나 그 용사(用事)가 공교롭지 못하면 뜻이 반대되고 말이 생경해진다”라고 하여. 함부로 하는 용사(用事)를 경계하였다.요컨대, 최자는 문래하니 우리 문학이 우수하다고 하여, 고려문학의 우수성을 도가적 자주의식에서 찾았다. 뿐만 아니라 이인로는 유사(儒士), 승려(僧侶) 등 사상적 성향에 구애 받지 않고 중국에까지 문명을 떨친 직품들을 에 우열의 구분 없이 실었다.3.보한집 서문해설글(文)이란 도(道)를 밟는 문(門)이므로 도리에 맞지 않는 말은 쓰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기운을 돋우어 말을 활발히 하여 사람들을 감동시키려면 때로는 험괴(險怪)한 말도 하게 된다. 하물며 시를 지음에는 비흥(比興)과 풍유(諷諭)를 근본으로 하는 것이니, 따라서 문체가 반드시 기궤(奇詭)함을 따른 후에야 그 기운이 장대하고 그 뜻이 오묘하며 그 말이 분명하게 되어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켜 깨닫게 하고, 깊고 오묘한 뜻을 나타내어 결국은 올바른 길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만일 남의 것을 흉해내어 지나치게 꾸미려고 하는 것은 유자(儒者)의 하는 일이 아니다. 비록 시인에게는 갈고 다듬는 네가지 격식(琢鍊四格))이 있으나, 그 중에서 취할 것은 다만 구절을 다듬고 뜻을 수련시키는 것 뿐이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성률(聲律)과 장구(章句)를 숭상하여 글귀를 다듬는 데는 반스시 새롭게만 하려고 하여 그 말이 생소해지고 대구(對句)를 연마시키는 데는 반드시 비슷한 것을 가지고 만들기 때문에 그 뜻이 옹졸해져서 웅걸(雄傑)하고 노숙한 풍취가 이로 인하여 상실된다.……서문에는 저자의 문학관이 여실히 드러난다. 최자는 시의 정확한 정의는 보여주지 않지만 시 또는 시작(詩作)이 어떠해야 하는 가는 분명히 표명하고 있다.) 우선 글은 도를 밟는 문이기에, 글은 함부로 써서는 안되는 것이며, 글 속에는 도(道)가 담겨 있어야 한다. 즉 문은 유학의 도리를 담고 있어야 한다. 시를 짓는 행위는 올바로 도를 수행하는 일이지 문식(文飾)만을 위하여 표절하고 지나치게 꾸미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최자는 의 서문에서 당시 후진작가(後進作家)들의 시작성향(詩作性向)을 준엄하게 질타하고 있다.원칙적으로 그는 시경의 정아한 교훈성과 시작을 연결지어 서에서 2.고려시대의 문학 단원에 이인로의 에 수록된 ‘정지상의 고민’이 텍스트로 제시되어 있다. 이 텍스트에는 글쓰기의 어려움에 대한 정시상의 일화와 강일용선생의 시를 자신이 보충했던 일화가 담겨 있다. 학습목표는 1.고려 시대의 수필 문학에 대하여 이해한다. 2.생활 속에서 글쓰기의 어려움에 대하여 이해한다. 로 설정되어 있는데 이것을 최자의 에 받아들여도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다만 의 내용에 좀 더 적절하게 의 학습목표를 가공하여 1. 고려시대의 수필문학을 감상하고 작품에 드러난 수필의 특성을 이해한다. 2.올바른 글쓰기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본다. 로 학습목표를 설정한다.또 의 학습활동은 크게 확인하기와 적용하기로 나뉘어 있다.확인하기1. 정지상이 고민하고 있는 것은 무엇에 얽힌 문제인가?2. (조사?발표) 이와 같은 이야기를 시화(詩話)라고 한다. 유명 문인들과 관련된 시화를 한 편 찾아서 발표해 보자.3. 본문의 한시 작품을 시화(詩畵)로 만들고자 한다. 어떤 배경그림이 어울릴지 구상해 보자.적용학습1. 이 글에서 시 창작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을 말해 보자.2. 이 글을 읽고 고치기 전과 고친 후의 차이는 무엇인지 말해 보자.3. 우리 전통 문학에서는 신의(新意), 용사(用事)가 잘 나타난 작품을 훌륭한 작품이라고 하 는데, 이같은 표현법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이것은 형설출판사의 에 대한 학습 활동이다. 이를 가공하여 에 적합한 학습 활동을 구상해 보았다.☆내용학습&목표학습1. 보한집 서문에서 최자가 비판하는 당시 후배 작가들의 시작성향(詩作性向)은 어떠했는 가? 또 저자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시 작품은 무엇일까?(내용학습)♣ 당시 작가들은 기존에 있던 표현들을 표절하고 답습하여 지나친 수사나, 형식에만 얽매 이는 폐단이 있었다. 이에 대하여 최자는 시가 수사나 형식이 검소하더라도, 달의(達意) 를 통해 신의(新意)에 도달하여 이를 통해 도리를 구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2.(조사?발표) 이와 같은 이야기를 시화(詩話)라고 한다. 유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