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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교 자본주의와 유교 사회주의
    유교 자본주의와 유교 사회주의들어가며....산업 사회도 거의 막 바지에 접어든 20c말 고루하고 비근대적인 요소로 치부되었던 유교가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처음에 유교는 동아시아 여러 국가들의 눈부신 경제 발전의 원동력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이와는 상반되게 동아시아의 경제 위기 이후 경제 발전에 방해요소로 또 한번 이목을 끌었다. 유교와 경제 발전의 관계에 대해 한쪽에서는 정의 관계를 다른편 에서는 부의 관계를 설정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유교와 경제 발전에 대해 긍정적 인과관계를 설정하는 견해가 바로 유교 자본주의이다. 유교자본주의는 최근의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발전을 설명하려는 노력에서 나온 하나의 논의이며 또한 그동안의 정치 경제 발전을 저해하는 해악으로 간주되었던 유교의 가치를 재발견하려는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사실상 유교자본주의가 논의되기 이전에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던 관념은 전통과 근대화를 양립시키는 이분법적 시각으로, 이런 시각은 근대화나 발전을 위해서는 전통적 요소를 버리고 서양의 근대화를 그대로 답습해야한다는 식의 미국식 근대화 논리를 가능하게 했다. 이런 사고 양식은 동양에서 불가능한 자본주의의 태생이 왜 서양에서는 가능했는가를 밝히려고 했던 막스 베버로부터 유래된다. 그는 그의 저서과 동, 서양의 종교를 비교 연구한 그의 여러 문헌에서 서양의 프로테스탄티즘 윤리가 자본주의 태생과 발전을 가능하게 했으며, 유교와 불교 등의 전통적 요소가 동양의 자본주의 태생과 발전을 지체 시켰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와 같은 지적 조류와 이로부터 영향을 받은 근대화 이론을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였던 대한민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은 불행했던 과거의 역사의 책임을 모두 유교의 탓으로 돌려온 경향이 있었다. 중국에서의 공가점 타도(孔家店打倒), 전반서화(全般西化)나 우리나라에서의 유교 망국론 등이 그 예이다. 서양의 발달된 과학 기술과 문명의 힘에 압도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에 대한 책임을 유교로 소급시키는 근날 수 있고 일어나야 되는 수준들(근대화된 서구로부터 저발전국가로의 확산)1) 개인적, 심리적 수준 : 근대적 가치와 기술 - 성취지향, 감정이입, 민주적 가치와 정치참여, 정치적 순종 등2) 제도적, 조직적 수준 : 시장, 분업, 관료제의 합리성, 근대적 국가구조, 정당3) 기술적, 재정적 수준 : know-how, 선진기술, 자본 등근대화 이론에 따르면 동양의 유교적 전통은 발전의 지표에도 포함될 수 없고, 과거 동아시아의 경제적 정치적 침체의 주범이다. 그렇지만 유교적 전통을 동아시아의 경제침체의 원인으로 간주하려는 근대화 이론은 한 가지 방법론적, 논리적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근대화 이론이 유교의 어떤 요소가 직접적으로 동아시아의 발전을 저해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유교적 전통이 어떻게, 왜 발전에 저해가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 없이 둘의 관계를 부의 인과적 관계로 설정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근대화 이론이 유교적 전통과 동아시아의 저발전이 인과적 관계일 것이라는 선험적 가정을 전제로 했고, 따라서 발전에 저해가 된 유교에 대한 어떤 심층적 연구도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인과관계를 잘못 설정하는 오류는 흔히 이미 일어난 현상을 분석하고 원인을 유추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데), 이 경우에는 과거 동아시아의 저 발전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프로테스탄티즘과는 다른 동아시아의 유교적 전통에 주목했고, 유교적 전통을 저 발전의 주된 원인으로 짜 맞추는 방향으로 이론의 틀을 전개해 나갔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근대화 이론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그동안 종속이론)과 전통적 가치를 재발견하려는 시도로 나타나왔다. 그렇지만 그동안의 “전통을 재발견”하고 이를 이론화하는 작업들은 현실적인 증명의 부재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유교자본주의와 이에 대한 비판위의 노력들처럼 유교 자본주의도 전통을 재발견하고 이를 새롭게 해석하기 위한 노력으로 볼 수 있다.) 유교 자본주의는) 말 그대로 유교적 가치와 자본주의를 결합하려는 시도로 동아시아의 유교적을 받고 있다. 첫째 근대화 이론에 대한 비판과 마찬가지로 유교 자본주의가 제시하고 있는 전통적 가치들과 경제발전간의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설정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유교 자본주의도 근대화 이론처럼 현실을 잘 설명해주기는 하지만 근대화 이론의 논리를 거꾸로 뒤집어 놓았을 뿐 근대화 이론처럼 유교적 전통가치가 자본주의 발전에 기여했을 것 이라는 ‘선험적 가정’에 근거하고 있으며 현실에 나타나는 특정요소와 전통적 문화의 특정요소를 연결시키는 ‘요소 주의적’방법을 취하고 있다.) 이점에서 유교 자본주의는 근대화 이론에 대항에 동아시아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하나의 대응적 관점으로써 의미밖에 지니지 못한다. 실제로 동아시아에 경제적 위기가 찾아왔던 90년대 말 유교 자본주의의 비판자들은 유교 자본론에서 강조했던 동아시아 경제발전에 기여했던 유교의 전통적 가치들이 오히려 경제위기의 원인임을 주장했다. 유교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입장의 정실 자본주의, 정경 유착에 의한 부패, 비민주적 정치 행태 등의 주장은 유교 자본주의 긍정적 전통가치인 집단주의, 권위주의적 관료제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유교 자본주의의 논법이 그대로 유교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입장에 의해 사용될 수 있는 것은 유교 자본주의가 동아시아의 전통적 가치들과 자본주의 발전 간에 구체적이고 합당한 인과관계를 설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것은 4세대 신유학자들의 문제점과 관련되어 있다. 4세대 현대 신유학자들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특수하고 우수한 전통을 어떻게 현대에 계승하여 발전 시켜 나갈 것 인가 하는 구체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관심도 갖지 않고 고민도 하지 않는다.) 이처럼 현대에 어떻게 적용시켜 계승해 나갈 것인가의 문제에 대한 무관심은 유교의 전통가치와 자본주의 발전 간의 합당한 인과관계 설정의 문제에도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반대로 전통적 요소들과 자본주의적 발전 간에 합당한 인과관계를 설정하고 설명할 수 있다면 전통적 요소들을 현대에 어떻게 적용시켜 자본주의를 발전 시켜 나갈응하기 위해서는 근대화 이론의 본질인 자본주의 자체를 평가, 부정하고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긍정한 채 자본주의를 발전하는데 기여를 한 수단들을 전통가치에서 찾으려는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유교 자본주의는 이처럼 여러 가지 비판에 직면해 있다.) 무엇보다도 유교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결함인 전통적 가치와 자본주의 발전간의 구체적 인과관계 설정의 부재라는 문제는 유교 자본주의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질문에도 답변하지 못하게 만든다. “즉 유교적 덕목들은 시장하고만 친화성이 있고 계획 및 명령의 원리와는 결합할 수 없는가? 유교자본주의만 가능하고 유교사회주의는 과연 불가능한가?” 이와 같은 상황에서 유교가 자본주의적 가치와 잘 결합될 수 있고 자본주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유교 자본주의 보다는 오히려 사회주의의 제반 요소들과 잘 결합되며 사회주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유교 사회주의 논의가 있다.유교 사회주의우리 사회는 현재 많은 사회적 갈등과 불평등 이라는 문제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개인의 자유로운 이익추구를 권장하며 그런 이익추구가 형식적인 법치의 범위에 벗어나지 않는다면 정당화 하는 신자유주의를 일찍이 국가 운영 원리와 사회질서로 받아들인 우리 사회에서 오히려 개인의 이익추구로 인한 갈등 현상이 심하지 않다면 이상한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자원은 희소하고 자원을 차지하려는 개인은 그에 비하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적 논리는 개인의 합리성을 전제로 개인의 자유로운 이익추구 활동이 사회 전체의 부를 향상시킨다는 아담 스미스식의 논리를 따르고 있다. 경제영역에 한정지어 생각해보면 개인의 자유로운 이익추구 활동은 개인의 생산동기를 향상시키므로 최대의 효율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경제의 효율성에 국한된 설명이지, 이들은 이익추구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과 불평등과 같은 제반문제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이것을 당연한 현상동일하다는 의문을 품게 될 것이다. 물론 사회적 갈등과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유교 사회주의가 인정하는 이익추구의 부문을 사회주의는 사유재산 폐지라는 이름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르다. 또 다른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과연 개인의 이익추구가 의와 공존 하는게 가능한가, 즉 개인의 이익추구를 허용하게 된다면 그 자체는 이미 의를 부정하는 것이고, 반대로 사회적 규범에 의한 통제 하에 이익의 추구는 이미 이익의 의미를 상실 한 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실제로 개인의 이익추구가 ‘의’에 의해 통제되려면 각 개인은 의로움, 이치를 내재화 하고 있어야 한다. 유교 사회주의는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 수단을 제시하고 있다. 해결 수단의 측면에서 또 한번 유교 사회주의와 사회주의의 차이는 드러난다. 둘째, 유교 사회주의는 이익추구의 ‘의’에 의한 통제에서 발생하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개인의 도덕성 함양을 수단으로 제시한다.) 즉 자신의 도덕적 수양을 가정을 가지런히 하고 나라를 다스리며 세계를 평화롭게 하는 근거로 설정한다.) 도덕적 완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나의 노력과 이것의 확장을 통해 나와 타인 및 타인과 타인 사이에 나타날 수 있는 갈등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개인의 도덕적 완결이 성취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익추구의 의에 의한 통제는 불가능할 것이며, 이것은 각자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상대방을 적대시하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의미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유교 사회주의는 개인의 이익추구를 의에 의한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개인의 도덕적 완결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투쟁을 통해 사회의 모순을 개선하려고 했던 마르크스주의와는 다르다. 유교 사회주의는 오히려 이익의 긍정 및 사회적 함의를 통한 이익의 고른 분배라는 점에서 생산수단의 사유화를 인정함과 더불어 능력 있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 더 많은 결실의 사회에로의 환원을 주장하는 사회 민주주의자들과 유사한 면이 있다. 그렇지만 또한 사민주의나 마르크스
    사회과학| 2007.03.12| 8페이지| 1,500원| 조회(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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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교내(內)에서의 집단따돌림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과 해결방안 평가A+최고예요
    학교내(內)에서의 집단따돌림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과 해결방안Ⅰ. 집단따돌림의 정의1. 집단 따돌림은 정의 부분이 가장 힘들고, 중요하다.집단따돌림이라는 말 자체도 우리의 발표 대상을 포괄적으로 내포하는 개념이 아니다. 국내에서 일반적으로 연구되고 알려진 바로는 ‘이지메’라는 일본어가 소개되면서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이 용어를 이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지메 또한 1970년대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처음 시작된 괴롭힘에 대한 연구가 그 후 유럽, 미국, 캐나다, 호주 등지로 연구가 확장되면서 이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집단따돌림은 집단 괴롭힘 현상에 대한 개념임을 유추할 수 있다.그럼 이와 관련해서 어릴 때 흔히 했던 아이스케키, 또는 장난으로 친구의 물건을 몇 몇이서 던져서 주고받는 것 등도 문제시되는 따돌림의 하나로 포함시킬 수 있는지, 그리고 직장 내 등 학교 외에서 일어나는 따돌림은 어떻게 취급해야 할지가 우선 문제된다.참고1.★ 국무총리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집단따돌림을 포함한 학교폭력에 대한 법제정안을 내놓은 것의 한 내용입니다.(청소년 폭력예방 법?제도연구,2001. 12)4.집단따돌림? 왕따“집단따돌림” 혹은 속칭 “왕따”도 학교폭력의 한 형태로 포함시키는 것이 공통된 인식이다. 무시하고 대응하지 않거나, 놀이나 동아리활동의 멤버로 넣어주지 않고, 옆에 오면 피하며 사용한 물건을 경원시하는 등의 행위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행동임에 분명하다. 따라서 집단따돌림이나 왕따행위를 학교폭력에 포함시키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다만, 많은 선행연구가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① 따돌림에는 “폭력으로서의 따돌림”과 “장난기로서의 따돌림”이 있어서 이를 구분하기란 쉽지 않으며, ② 설사 학교폭력의 범주에 포함시킨다 해도 이를 입증하거나 조문화가 곤란하고, 나아가 ③ 가해학생을 특정하기가 어렵고 가해학생의 범위가 너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문제점도 있음을 주의하여야 할 것이다.참고2.★ 한 학생의 질문에 대한 검찰관련기관의 대답입니다한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특수학교 및 각종학교와 동법 제61조의 규정에 따라 운영하는 학교를 말한다.3. "가해학생"이라 함은 학교폭력을 행사하거나 그 행위에 가담한 학생을 말한다.4. "피해학생"이라 함은 학교폭력으로 인하여 피해를 입은 학생을 말한다.제5조 (다른 법률과의 관계) 학교폭력의 규제, 피해학생의 보호 및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에 있어서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법을 적용한다.제13조 (학교폭력예방교육) ①학교의 장은 학생의 육체적·정신적 보호와 학교폭력의 예방을 위한 교육을 정기적으로 실시하여야 한다.②학교의 장은 제1항의 규정에 의한 학교폭력예방교육 프로그램의 구성 및 그 운용 등을 전문단체 또는 전문가에 위탁할 수 있다.③그 밖에 학교폭력예방교육의 실시와 관련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제14조 (피해학생의 보호) ①자치위원회는 피해학생의 보호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피해학생에 대하여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조치(수 개의 조치를 병과하는 경우를 포함한다)를 취할 것을 학교의 장에게 요청할 수 있다.1. 심리상담 및 조언2. 일시보호3. 치료를 위한 요양4. 학급교체5. 전학권고6. 그 밖에 피해학생의 보호를 위하여 필요한 조치②제1항의 규정에 의한 요청이 있는 때에는 학교의 장은 피해학생의 보호자의 동의를 얻어 당해 조치를 취할 수 있다.③제1항제2호 및 제3호의 규정에 의한 결석은 학교의 장이 인정하는 경우 이를 출석일수에 산입할 수 있다.④학교의 장은 성적 등을 평가함에 있어서 제2항의 규정에 따른 조치로 인하여 학생에게 불이익을 주지 아니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제15조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 ①자치위원회는 피해학생의 보호와 가해학생의 선도·교육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가해학생에 대하여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조치(수 개의 조치를 병과하는 경우를 포함한다)를 취할 것을 학교의 장에게 요청할 수 있다. 다만, 퇴학처분은 의무교육과정에 있는 가해학생에 대하여는 적용하지 아니한68.2고등학교264923.016.531.572.652.618.155.541.06.24.1출처: 학생의 왕따 현상에 관한 연구 ‘따’혹은 ‘왕따’가 된 아이는 왜 따돌림을 받는다고 생각합니까?1= 지능이 낮다, 2=신체적으로 허약하거나 왜소하다, 3=말이 없고 소극적이며 남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4=척 한다.(잘난 척, 예쁜 척, 돈 많은 척, 공부 잘 하는 척, 짱인 척, 알랑거림) 5=믿을 수 없다.(거짓말, 이간질, 고자질) 6=남을 못 살게 굴고 때린다. 7=이기적이고 남을 무시한다. 8=말과 행동이 이상하고 눈치가 없다. 9=왕따의 편을 들어준다. 10=전학 왔다.위의 통계조사는 집단 따돌림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집단에서 각기 다른 다양한 이유로 발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주목할 점은 1, 2, 3, 6, 9,10번 항목이 왕따의 이유가 되는 비율이 초등학교에서 가장 높고 상급 학교로 올라갈수록 낮아지며, 반대로 4, 5, 7, 8번 항목의 비율은 점점 높아진다는 것이다. 1, 2, 3, 6, 9, 10번 항목은 주로 학교의 규칙과 자신에게 주어진 공식 역할에 개인이 얼마나 적응하는가를 나타내는 지표이며, 반대로 4, 5, 7, 8번 항목은 공식규칙이 아닌 청소년 집단내의 비공식적인 규칙과 규범에 대한 적응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상급학교로 갈수록 공식 규칙보다는 또래 집단내의 비공식 규칙과 기대역할들에 적응하지 못할 때 따돌림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초등학생들은 공부를 못하거나,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공식적, 도덕적 규칙을 어기거나 하는 등 학교의 공식 생활영역(전체문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따돌림을 당하는 반면 학교 공식생활에 영역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4번 항목) 또래집단내의 생활영역, 비공식적 규범들에 대한 인지력, 판단력이 부족한 고등학생들이 따돌림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Ⅲ. 범죄학이론에 따른 집단따돌림의 원인분석 및 현실에 적용1.구조화된 집단 따에게 전달하는 text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온 것이다.이와 같이 왕따 라는 객관적 ‘의미’가 청소년으로 하여금 가해 행위를 저지르도록 일정정도 기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가해 행위를 설명해 줄 수는 없을 것이다. 즉 매스컴이 전달하는 객관적‘의미’에 의해 가해행위를 저지르는 청소년도 있겠지만 가해행위가 청소년 자신의 주관적 의미 부여의 결과물인 경우가 더 많을 것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따돌림 현상이 단지 객관적 의미의 결과물이라고 주장하는 이런 구조주의적 입장은 ‘애초에 왜 왕따 행위가 발생했는지’를, 더 근본적으로 ‘행위자가 왜 따돌림이라는 가해 행위를 저질렀는가.’하는 일탈 원인에 대한 설명을 제공해 줄 수 없다. 또한 따돌림이라는 행위가 인간의 통제력을 벗어난 구조의 결과물이라고 주장하는 이 입장에 따르면 ‘왕따’ 현상은 극복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왕따 행위의 원인에 대한 보다 균형적인 관점이 제기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다음 장에서는 왕따 행위를 애초에 발생시키고 유지시키는데 기여하는 주관적 의미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한다.또한 위에서 제시한 왕따 행위가 구조화와 주관적 의미의 균형적인 결과물이며 이들 세 요소들(왕따 행위, 구조화, 주관적 의미)은 순환적인 인과관계로 맺어져 이들 사이에는 환류 효과가 작용할 수 있음을 우리는 도출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정리하여 도식화함으로써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1)‘주관적 의미’부여 2)행위가 반복, 구조화행위자 따돌림 행위 ‘따돌림’이라는의미의 객관화‘객관적인 의미’에 의한 행위3)‘객관화된 의미(구조)’ 의 내면화, 사회화(by mass com .etc)에 의한 환류효과(feed back)2. 억제이론 및 합리적 선택이론 (이득, 손실)(1) 의의베까리아, 벤담의 공리주의이론에서부터 출발하는 억제이론, 합리적 선택이론은 일탈, 범죄행위에 대한 전제로 인간은 어떤 행위를 함에 있어 손해보다 이득이 커야 행한다고 한다. 따라서 애초에 따돌림을 가하는 학생들은 합리422.615.818.610.28.620.2출처: 학생의 왕따 현상에 관한 연구 하고 싶은 일을 못한 경우에 그 내용은 무엇입니까?(해당사항에 모두 표시 하시오)1=수업중이나 수업 후에 선생님께 질문하기 2=따돌림 당한 친구 도와주기 3=튀는 행동하기 4=자기주장 고집하기 5=이성친구와 허물없이 지내기 6=취미활동 서클에 들어가기 7=힘 있는 애 앞에서 바른말하기구 분사례수1234567전 체(%)689313.37.515.012.917.732.219.7출처: 학생의 왕따 현상에 관한 연구 하기 싫은 일을 한 경우에 그 내용은 무엇 이었습니까?(해당사항에 모두 표시 하시오)1=반찬 나눠 주기 2=튀는 옷 안 입기 3=숙제나 심부름을 대신해 주기 4=시험 중 답안지 보여주기 5=따돌리고 싶지 않은 친구를 따돌리는데 동참하기 6=빌려주기 싫은 것을 빌려주기 7=잘못된 것 인줄 알면서 따라하기 8 = 기타(자세히 쓰시오.)표 5, 6, 7은 집단 따돌림이라는 내적 갈등이 청소년 집단의 통합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바 를 보여준다. 먼저 표 5에서 1, 2, 4, 6번 유형의 학생이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학교 내 또래집단 문화에서 비공식적 리더인 경우가 많다. 또한 표 6, 7을 통해 내적갈등에 의한 또래문화 일탈자의 선정이 ‘집단 구성원에게 또래 집단 문화의 가치와 역할기대를 수행하도록’ 하는 강한 구속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방관자나 소극적 참여자들이 따돌림을 당하지 않기 위해 강제로 왕따 행위에 관여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왕따’친구로 인해 또래 친구들의 감시와 관심권 밖으로 벗어나 안정감을 누리거나 왕따가 아닌 자신의 ‘정상성’과 ‘정상적인’ 또래 친구들과의 ‘동질감’을 확인하게 된다. 이처럼 내적갈등은 행위자들에게 따돌림 행위를 동기화 시키는 충분한 심리적, 물질적 이득을 제공한다.2) 손실(공식적 제재)그렇다면 따돌림 행위로 발생하는 손실비용은 없는 것인가? 물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손실 비용이 있다하 있다.
    사회과학| 2007.03.12| 18페이지| 1,500원| 조회(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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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소의 일반의지론과 프랑스 혁명: 칸트, 헤겔, 맑스의 견해를 중심으로
    들어가며루소가 생존했던 시기는 소크라테스의 이성(이데아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강조하는 자연 질서에 순응하는 이성적 인간이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시대였다.) 인간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였던 루소에게 이런 사회 질서는 부당한 것)으로 보였음에 틀림없다. 한편, 그 당시 프랑스에서는 부를 축적한 자영농과 중소 상인들이 도시민(burger)으로 도시에 거주하던 시기였기도 했다. 이들도 역시 봉건질서의 속박을 받고 있던 계층이었지만 루소에게는 이들도 위협적인 존재이었을 것이다. 이들 부르주아들만의 사회계약에 의해 결합된 사회 상태는 군주제 못지않게 입법권(주권자로써의 권리)은 없고 국가의 구성원으로써 법률에 따르는 의무만 부과함으로써 인간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회적 결합 형식이기 때문이다. 루소는 이와 같은 사회 상황에서 개인의 자유를 보다 확고하게 보장해 줄 수 있는 사회 구성원리로써 사회 계약론을 제시 하였다. 그렇지만 헤겔에 의하면 루소의 일반의지론은 본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고 이것은 프랑스 혁명을 통해 드러난다. 이 보고서는 루소의 일반의지론과 이것의 연장선으로써 칸트의 실천이성의 개념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이 사상들이 헤겔에 의해 어떻게 비판 수용 되었는지, 마지막으로 맑스는 이들을 어떻게 비판했는지 등을 고찰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려고 한다.루소의 일반의지론과 칸트의 실천이성루소의 일반의지론은 개인을 사회로부터 독립된 원자화된 존재로 상정한다. 원자화된 개인은 자연 상태에서 자연적 자유를 누리고 살아가지만 자유를 완벽하게 보장 받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자연 상태에서는 자연적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개인적 힘을 초과하는 저항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개인의 자유 그 자체이다. 즉, 자연 상태에서 개인의 규제받지 않은 자연적 자유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고 어떤 개인도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로써 개인들은 자신의 자유를 보다 확고히 해줄 어떤 행위를 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이때 인간은 이성능력사이에 질서와 조화를 마련해줄 사회 결합상태를 구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이 사회 계약을 통해 잃게 되는 것은 그의 타고난 자유와, 그를 유혹하고 그가 얻을 수 있는 것 모두에 대한 권리이며, 그가 얻게 되는 것은 시민의 자유와 그가 지닌 모두에 대한 소유권이다.’) 그러나 루소의 일반의지는 합리적 결정에 의해 추구되는 정태적인 공동선의 상태에 만족하지 않는다. 즉, 합리적 계산에 의해 태생해 인간 외부에서 인간을 규제하는 제도화된 일반의지는 인간에 내면화, 본성화 된 보편의지에 의해 초월되어야 한다.) 전자가 사회적 규제에 의해 자연적 자유를 억압받는 상태에서의 사회적 자유를 의미 한다면, 후자는 자신의 본성 자체가 보편 의지 이며 사회적 규제로부터 해방된 자신의 의지에 따를 의무 밖에는 없는 도덕적 자유라고 할 수 있다. 루소의 도덕적 자유는 칸트의 실천이성에서도 나타난다. 칸트에게 있어서 이성적 사유란 ‘보편적 입장에서 사유하는 것과 논리적으로 연관되게 사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에게서 이성이란 개인의 본성에 내재해 있는 도덕 규칙, 혹은 직관적인 의지로써 이성적 존재인 개인은 루소의 도덕적 자유인과 마찬가지로 ‘자율’에 따르는 자유인이다. 이와 같은 사회적 자유에서 도덕적 자유로의 이행에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대목은 자연과 이성에 대한 의미 변화이다.) 일반의지론은 사회적 결합 상태에서 자연은 인간 욕망의 조화된 질서, 이성은 합리적 계산, 사회는 인간의 합리적 욕망 성취 수단, 개인의 원자화 등 전형적인 공리주의적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지만 도덕적 자유 단계나 칸트의 이성에서는 이런 공리주의적 사고관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보인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합리적 계산으로써 이성이 공동선을 초월한 내재화된 보편의지로, 인간의 욕망이나 인위적으로 재편된 욕망의 조화, 질서로서의 자연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써의 본성으로서 자연으로 전화(轉化)이다. 그러나 ‘도덕적 자유가 공리주의를 완벽하게 극복했는가?’ 하는 의문은 남는다. 다음 장에서 이에 대한 헤겔의비판헤겔은 루소로부터 시작된 ‘자유의 철학’의 후계자로 평가 받는다.) 또한 헤겔 자신도 루소의 철학이 프랑스 혁명을 준비한 사상이며, 중세 초기와 르네상스기에 나타나는 유의미한 자연 질서 사상에 대한 근대적 부정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헤겔은 도덕적 자율이 근본적 문제점을 가지고 있고 이것이 프랑스 혁명을 통해 나타났다고 지적한다. 헤겔이 지적하는 칸트의 실천 이성의 문제점은 바로 근본적 자율의 공허함이다.) 고대의 이성과 공리주의적 합리성은 사물이나 행위의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을 제시해 주었다. ‘하지만 칸트는 이런 이데아 질서와 사회 결합 상태의 욕망들의 질서와 같은 사물들의 존재 방식에 호소하는 것을 피하고’ 개인의 도덕적 자율을 강조한다.) 바로 이런 도덕적 자율의 강조 때문에 문제가 생겨난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 보편의지, 즉 행위의 기준이라면 이 기준은 이미 옳고 그름을 구별해 주는 객관성을 상실한 것이다. 실제로 한 개인의 자율적 보편의지의 기준에서 옳은 행위는 타인의 보편의지에서는 옳지 못한 것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객관적인 행위 기준은 이미 존재 하지 않고 개인의 주관적인 도덕적 판단만이 행위 기준이 되는 것이다. 즉 칸트의 도덕적 자율은 객관적 의무의 구체적 내용의 공허성을 대가로 확보되었으며 행위의 기준은 단지 ‘형식적’일 뿐이다. 따라서 칸트의 도덕적 자율로부터 유래하는 형식적 행위의 기준으로는 어떤 구체적인 ‘정치 형태’에 대한 관념은 만들어 낼 수가 없다. 이것은 도덕적 자율로 하여금 스스로 배제하려고 했던 공리주의로부터 행위의 기준을 빌려오게끔 했다.) 헤겔은 구체성의 결여의 문제점이 프랑스 혁명 과정에서 나타났다고 보았다. 도덕적 자율이라는 관념에 의해 구제도(Ancient resime)는 깨어졌지만 도덕적 자율로부터 구체적 질서, 정치 형태는 끌어낼 수가 없었다. 철저한 루소주의자였던 로베스피에르를 비롯한 급진 자코뱅당은 이런 결함을 깨달았고 새로운 사회 질서를 거부하며 힘을 통해 ‘절대적 자유’를 지켜나가려는율과 인간을 규제하는 행위 기준으로서 질서라는 모순 관계는 왜 생기는 것인가? 헤겔에 의하면 도덕적 자율이 그 의무의 내용에 있어서 구체성이 없었기 때문이고, 보다 근본적인 면에서 이런 행위 기준의 형식성은 도덕적 자율이 공리주의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도덕적 자율은 공리주의의 제도적 질서를 넘어서려 했지만 공리주의가 전제로 하고 있는 개인과 사회의 분리는 그대로 유지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즉 공리주의의 원자화된 개인(Atomism), 개인의 욕망의 성취 수단일 뿐인 도구로써의 사회가 그대로 전제 되어있고 이것이 의무의 내용적 구체성 결여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헤겔은 원자화된 개인이라는 개념에 반대한다. ‘그는 의지의 실체가 사유 혹은 이성이라면 또한 만약 의지는 자기 자신이외의 어떤 것에도 따르지 않을 경우에만 자유라면 그 자유는 우주를 정립하는 우주적 정신’)이라고 말함으로써 개인은 결코 사회로부터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국가라는 커다란 생명체내에 존재하는 개인임을 강조한다. 국가라는 생명체내에서 개인은 인륜성을 의미하는 을 내면화함으로써 인륜성의 발현을 통해 국가라는 을 실현하는 존재이다. 즉 의지는 인간의 의지가 아닌 의 의지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 의지로 전환은 도덕적 자율성이 내포하고 있는 구체적 의무의 공허감을 채워주며 행위를 규정하는 근거를 제공한다. ‘개인들은 국가에 의해서 이익을 수호 받는 개인으로써가 아니라 국가라는 커다란 생명체의 참여자이자 설립자로서 타인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자유에 구체적 근거가 제공되는 것이다. 헤겔은 국가와 개인의 결합이라는 특수한 내용을 통해 ‘자율’이 갖고 있는 행위 근거성의 결여를 해결하고자 했던 것이다. ‘칸트의 도덕적 자율은 목표가 설정되어 있지 않고 단순하게 흘러가지 않는’) 반면 헤겔의 정신은 일정한 방향으로 어떤 궁극을 향해 간다. 국가를 구성하는 인간개인은 이런 정신과 가치에 영향을 받고 행위하며 따라서 절대정신은 역사를 발전시키는 추동력이다. 여기서 헤겔의 관념론적 특징이 여신의지 개념에 의하면, 프랑스 혁명 과정에서 각 개인들은 국가를 자신의 이익 추구 수단으로 파악하기 보다는 정신을 내면화 하여 국가라는 절대정신을 온전히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프랑스 혁명의 참담한 결과는 헤겔에게 상당한 아쉬움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봄으로써 그것이 헤겔의 아쉬움이 아닌 그의 고집이 아니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질문은 다음과 같다. ‘인간이 과연 절대정신이라는 가치에 종속되어 행위 하는 관념론적 존재인가?’ 이런 질문은 보편의지, 자율적 도덕을 주장했던 루소와 칸트에게도 던져 봄직한 물음이다. 실제로 맑스(k.Marx)는 헤겔이 인간 존재에 대해 오해하고 있음을 프랑스 혁명 과정과 결과를 통해 비판한다. 헤겔이 칸트와 루소를 극복하기 위해 사용했던 프랑스 혁명이 오히려 자신을 극복하려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맑스에 의하면 프랑스 혁명은 결코 가치와 가치의 충돌이 아닌 물질과 물질의 , 즉 하부구조간의 모순에 의한 것이다. 프랑스 혁명은 경제적으로 상충되는 이해관계를 지닌 지주 계급과 피 지배계급(농노, 소작농 부르주아등)간의 계급투쟁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의 이와 같은 시각은 그가 프랑스 혁명의 결과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했는지 에서도 명백히 드러난다. 그는 공산당 선언에서 ‘프랑스 혁명의 승자는 결국 부르주아 계급이고, 이들이 자신의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에 프롤레타리아를 이용’)했다고 적고 있으며, 프랑스 혁명후의 상황을 자본가 대 프롤레타리아의 새로운 계급관계로 규정하고 있다. 루소, 칸트, 헤겔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인간이 보편의지와 국가라는 절대정신이라는 가치에 종속되어 있는 존재라면 이와 같은 결과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솔직히 헤겔까지의 인식론은 인간의 감정과 신체, 자연적 욕구가 인간의 이성과 보편의지에 의해 억제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 측면이 있다. 반면에 맑스는 인간의 감정, 신체, 자연적 욕구를 인정하고 헤겔의 이성을 인간으로 대체.
    사회과학| 2007.03.12| 5페이지| 1,500원| 조회(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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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맑스 주요 개념 정리
    맑스 주요 개념 정리1)노동과 소외(疎外)맑스에게 있어서 인류역사(人類歷史)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支配)를 증대시켜온 동시에 그 자신에 대한 구속이 강화된 역사이다. 즉 자연에 대한 지배를 강화시키면 시킬수록 인간의 소외는 증대된다. 인간의 역사는 자연으로부터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해 합리적인 수단과 도구들을 만든 역사인 동시에 발달된 제도와 수단에 대한 자신의 구속을 강화시킨 역사이다. 인간의 소외는 인간들 자신에게 발현된 것이 오히려 인간 외부에 객관적인 존재로써 인간을 구속하는 현상을 말한다. 따라서 소외는 공시적으로 사회제도를 가진 모든 국가에게 또한 통시적으로 원시 공산 사회를 벗어난 이래 인류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형태의 단계들에 있어서 공통된 현상이다. 맑스는 어떠한 상황에서 인간이 자신의 힘과 가치를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대상에 투사(投射)하는가? 하는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예를 들어 그는 종교를 대중의 아편(opium of mass)이라고 비난했는데, 그가 종교라는 현상을 하나의 소외현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종교와 신은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 졌음에도 불구하고 인간 외부에 객관적 존재로써 인간이 종교에 자신의 힘과 가치를 투사하도록 인간을 구속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종교에 몰두하는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종교가 규정지어준 지위와 역할 내에서 생각한다. 세계는 자신의 힘으로 변혁시키거나 만들어갈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단지 세계는 신의 의지의 결과물이다. 이런 종교는 피 지배 계급의 계급의식(階級意識)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피 지배계급은 불평등한 현실을 신의 의지의 결과물로써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현실을 혁명하기 위한 어떤 의식도 갖지 못한다. 소외는 단지 종교영역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공리주의자들이 주창했던 현실의 모든 합리적인 제도들 즉 국가, 정치, 경제영역에서 공통된 현상이다. 공리주의자의 설명대로 합리적인 인간은 자신의 합리적 계산의 결과물인 사회제도의 지배를 받는다. 소외된 인간은 베버가 말하는 주관적에도 불구하고 자신으로부터 객관화되고, 노동자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그런 상품을 얻기 위해 자신의 힘을 투사한다. 2)두 번째 측면인 노동과정으로부터의 소외는 이런 노동 결과물로부터의 소외에 의해 발생한다. 노동의 결과물이 자기 것이 아닌 한, 즉 자신의 존재 실현물이 아니고 따라서 그로부터 어떠한 만족도 얻을 수 없는 한 인간은 노동과정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생산행위가 자신으로부터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그런 생산과정 자체는 인간의 외부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실체로써 노동자의 행위자체를 구속한다. 노동자는 이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망각하게 되고 단지 자신의 노동을 기계의 속도에 구속시킨다. 이처럼 노동의 결과물과 과정으로부터 소외를 경험한 3)인간은 자신으로부터도 소외된다. 앞서도 말했듯이 노동은 인간이 자신을 실현해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노동의 결과물이 자신의 실현물이 아닌 이상 따라서 노동과정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이 아닌 이상, 노동과정은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와 존재를 부정하는 작업이다. 노동 과정을 통해 확인되고 만들어지는 것은 참된 자신이 아닌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자’라는 객관적 실체이다. 인간은 이제 노동자라는 객관적 실체로써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 분명 객관적 실체는 자신이 만들어 낸 것이지만 인간은 그 자신을 그것에 구속시킨다. 따라서 인간의 참된 존재와 가치는 부정되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노동하는 동안 항상 불안감을 느끼고 노동하지 않는 동안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자신으로부터 소외된 인간은 인류 공동체로부터 즉 그의 종(species)류(類)부터의 소외도 경험하게 된다. 인간이 그 자신과 노동과정과 노동 결과물과 맺고 있는 관계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도 꼭 같이 적용된다. 개인은 다른 사람과 참된 존재 대 참된 존재로써 관계를 맺을 수 없다. 다만 결과물을 생산해 내기위해 협력하는 동료 노동자라는 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그가 말한 노동 영역에서의 4번째 소외인 유적(類的)존재로써의 소외이에서 기존의 철학 이론들 특히 독일의 철학 이론인 헤겔 철학과 단절을 꾀한다. 그는 지금까지 존재 했던 모든 철학 이론은 단진 이데올로기였다고 비판한다. 즉, 자신의 물적 토대로부터 발생하는 가치관이 사회를 해석하는데 있어 개입했다는 것이다. 이런 가치가 함양된 이데올로기들은 사회를 변혁시키려는 혁명적 실천을 발생시키지 않고 오히려 현실에 적응하도록 하는 허위의식으로 기능한다. 이데올로기라는 말 자체에서 드러나듯이 인간의 사회적 의식은 그가 딛고 서있는 물적 조건과 그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존재로써의 계급구조에서 발생한다. 물적 조건은 구체적으로 생산력과 생산관계인데, 생산력의 상이한 수준에 따라 다양한 생산관계가 발생한다. 즉 인간이 자연을 이용함에 있어서 어떤 생산수단을 사용하는가에 따라 노동 분업의 형태가 달라 진다. 노동 분업은 구체적으로 생산과정에 있어서의 관계를 의미하는 생산관계이므로 노동 분업의 형태가 변화하게 되면 생산관계도 변화를 겪는다. 생산관계의 변화는 생산과정에 있어서의 지위와 특권에 의해 발생한, 사회적 지위에 의해 나눠진 상이한 계급집단을 만들어 냈다. 맑스는 생산과정에 참여하는 순간 인간은 필연적으로 타인과의 사회적 관계를 맺게 된다고 보았다. 생산관계는 다시 말하면 사회적 관계이고 계급 관계이며, 생산하는 존재는 사회적 존재이다. 인간의 사회적 의식은 자신의 사회적 존재, 즉 그의 실제 물질적 생활에 의해 결정된다. ‘의식이 생활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이 의식을 규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르주아 작가의 사상은 부르주아의 것이다.’라고 규정하는 것은 일면 타당하지만 충분치는 않다. 부르주아 시대 초기에 나타난 사상과 그 시대의 최고 정점에 나타난 사상 간의 구분이 이루어져야 한다. 헬베시우스(Helvetius)나 홀바하(D. Holbach)의 공리주의 개념은 제임스 밀과 벤담의 그것과 구분되어야 한다. 전자는 투쟁중인 그리고 아직도 미성숙한 사회적 존재로써 부르주아와 대응하며 후자는 지배적인 성숙한 사회적 존재로써 부르주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은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다.5)토대, 상부구조앞서 사회적 의식은 사회적 존재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정치 영역, 이데올로기, 국가 등의 상부구조도 물적 토대에 의해 결정된다. 물적 토대는 물질적 조건 즉 생산력과 생산관계 형태 및 그로부터 발생하는, 상이한 사회적 지위의 차이인 계급구조를 포함한다. 물적 토대에서의 지배 계급은 자신의 임의대로 상부구조를 결정한다. 맑스는 정치적 상부구조에 대해 특히 국가와 법적 소유와의 관련성에 대해 에서 논의 한 바 있다. 그는 생산관계가 국가에 의해 ‘법적 소유 형태’로 전환되어 정당화 된다고 말함으로써 국가의 계급적 성질을 비판한다. 즉 사회적 계급구조에 지배계급의 이익은 국가를 통해 보장된다는 점에서 국가는 지배계급의 공동이익을 구현하는 사회 형태이다. 특히 부르주아 국가는 부르주아 계급의 이익을 보전하기 위한 것이며 계급 없는 공산주의 사회의 도래로 영원히 소멸될 존재이다.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도 계급구조에 의해 결정된다. 이것은 사회적 의식이 사회적 존재에 의해 규정된다는 마르크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지배계급은 그 나름대로의 사회적 의식이 반영된 지배 계급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내고 이것은 그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된다. ‘지배적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이다.’지배 이데올로기는 노동자의 ·계급의식을 방해하고, 현실에 만족하도록 권유하는 허위의식으로 작용하므로 마르크스 자신의 가치중립적이고 과학적인 역사적 유물론에 의해 극복되어야 할 존재이다. 마르크스는 일단 인간 행위가 이데올로기의 지배를 받을 수도 있음을 인정한다. 그는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의식과 행동을 방해하는 요소로써 지배 이데올로기와 허위의식을 강조한다. 다만 그는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의 내적 자율성, 즉 내적 생산 논리를 부정한다. 이데올로기는 물적 토대 없이 스스로 만들어 질 수 없다. 베버는 나중에 이런 맑스의 상부구조의 구속성 개념을 그의 저서 에서 비판 한다. 베버에 따르면 인간은 물질계가 생산력에 조응하도록 보조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물질적 변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이데올로기적 변혁은 일어나지 않는다. 반면에 물질적 변혁은 이데올로기적 변혁을 초래한다.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발생하는 순간, 즉 새로운 생산관계가 기존 질서를 위협할 때 즉 새로운 생산관계가 기존 질서를 위협할 때 새로운 지배계급들은 대항 이데올로기를 형성하여 지배 이데올로기의 지배에 맞서게 된다. 예를 들어 봉건 시대 말기에 종교 이데올로기에 맞선 것은 곧 도래할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계급이며 그 당시 새로운 생산수단을 소유했던 부르주아 계급의 ‘자유주의 이데올로기’ 였다. 역사상 존재 했던 대항 이데올로기들(antithese)은 곧 그 계급의 승리와 함께 지배 이데올로기(synthese)가 된다. 그렇지만 대항 이데올로기의 도움으로 도래한 역사상의 모든 새로운 사회는 결코 계급 없는 평등한 사회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대항 이데올로기에는 그 계급의 물질적 이해에 대한 가치가 반영되어 있기 마련이고 이것이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었을 때는 자신에 의해 극복되었던 전(前) 지배 이데올로기가 그랬던 것처럼 해당 계급의 이익을 정당화 해주는 구실을 한다. 반면에 마르크스는 에서 자신의 역사적 유물론은 역사 발전 법칙을 규명한 과학적, 가치중립적 이론 이라고 규정한다. 그의 이론은 이데올로기가 아니기 때문에, 노동자 계급에게 객관적 세계관을 제공하여 불평등한 사회 현실을 분명하고 또렷하게 인식토록 하는 기능을 수행하며 자신의 이론으로 도래하는 사회는 무계급의 공산주의 사회라고 말한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비판이 있을 수 있다. 마르크스 자신도 특정 물적 토대 위에 존재하는 인간이라면 그 자신의 주장대로 그의 사회적 존재에서 비롯된 가치가 그의 ‘이론체계’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결정한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의 이론은 의식(가치) 로부터 자유롭다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며, 그는 인간이 아니라는 주장과 같다. 또한 이와 관련하여 그의 이론은 그렇다면.
    사회과학| 2007.03.12| 8페이지| 1,500원| 조회(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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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기 자본주의 자본의 축적은 어떻게 이루어 졌는가
    초기 자본주의 자본의 축적은 어떻게 이루어 졌는가서론우리는 지금 자본의 시대에 살고 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인류의 역사는 생산양식의 변화에 따른 각기 다른 사회의 발전 단계를 거쳤다. 각 단계에서 사회 변화를 추동하는 힘은 생산수단과 생산관계를 의미하는 생산양식의 변화였다. 즉 생산수단의 변화와 생산수단을 누가 소유 하였는가를 의미하는 생산관계의 변화에 따라 상부구조가 결정되고 그 사회의 구조와 형태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과 자본재를 생산수단으로 하고 이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생산관계를 특징으로 하는 사회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전단계인 봉건사회의 붕괴로 촉발되었다. 즉 봉건사회 내에서의 생산양식의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양식으로의 변화는 봉건사회를 붕괴 시켰고 이로써 자본주의 사회가 형성되었다. 그렇지만 자본주의 사회를 봉건사회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대단절로 설정하는 것은 오산이다. 왜냐하면 봉건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하는 그 과정은 한순간에 이루어 진 것이 아니라 점진적인 생산양식과 사회구조의 변화에 의한 것이며, 따라서 초기 자본주의 사회에는 아직 봉건적 생산양식과 공장제 수공업이라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혼재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 변화과정은 오늘날 까지 이어지고 있다. 마르크스가 예언하지 못한 한 가지는 자본주의 사회가 자생력(self-curable)이 있다는 것이다. 그가 예언 한대로라면 자본주의 사회는 독점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종말을 고해야 했다. 그동안 자본주의 사회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또한 나름대로 이것을 능동적으로 수정해 나가는 방향으로 유지해 왔다. 그렇지만 이토록 많은 치유과정을 거쳐 신자유주의라는 사회질서를 특징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로 도달한 현 단계의 사회구조도 여전히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파악하고 고쳐나가야 하는 것이 우리세대의 임무라고 할 때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과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일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자본주의 사회를 만들어 내었던 초기 자본주의의 자본의 시초 축적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 졌는가를 파악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본의 축적에 대한 견해는 상당히 다양하다. 역사적 관점은 자본의 축적을 역사의 진행과정 맥락에서 구체적인 사건의 발생으로 파악하려는 한편 막스 베버는 자본축적의 원인으로써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의 변화, 즉 이데올로기의 변화를 그 원인으로 파악한다. 여기서는 이 두 관점이 자본의 축적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살펴보도록 하겠다.역사적 관점역사적 관점은 자본축적이 어떤 하나의 원인으로 이루어졌다고 파악하기 보다는 다양한 역사적 사건의 진행과정의 일부로 간주한다. 역사적 관점에서는 봉건사회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었는지에 주목한다. 고대 제국을 중심으로 한 노예제 사회가 폐지된 이후, 5세기를 전후하여 서구에서는 농노를 노동의 기본 요소로 하는 봉건제 사회가 등장한다. 농노는 영주에 귀속되는 일정한 토지에 얽매여 자기의 전 생애를 보내야 하는 노동의 단위였다. 이들 농노는 소나 말과도 다를 바 없었던 노예와는 달리, 자신에게 배당된 경작지에서 자립적인 생산 활동에 종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분상으로는 여전히 영주에 예속되어 있었고, 일정한 토지에서의 경작활동을 보장받는 대가로 영주에게 지대를 지불 하였다. 이 같은 봉건제 생산 하에서의 생산은 주로 자급자족과 지대를 목적으로 이루어졌으며 교환은 예외적이고 부차적이었다. 봉건사회의 토지 이용 방법의 변화(삼포식 농업, 토지의 집약적 이용)는 농업생산을 증대 시켰다. 이는 영주의 토지를 경작하던 소작농들에게 잉여 생산물의 획득을 의미했다. 이들은 잉여 생산물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이것을 타인의 노동의 가치와 교환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는데, 이로써 이런 교환의 중심지인 중세도시가 성장 발전하였다. 또한 당시 귀족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줄 사치품의 수입은 원격지 무역을 더욱 촉진 하였고 이는 중세 도시의 성장을 더욱 가속화 시켰다. 이러한 중세도시의 성장과 함께 교환이 목적인 생산, 즉 상품생산이 증대하였고, 교환을 용이하게 해주는 화폐가 유통되기 시작하였다. 12c이후 화폐가 농촌에 까지 파급되면서 지대도 현물대신 화폐로 납부하는 형태로 바뀌어 나갔다. 이런 지대의 금납화는 지대를 받는 영주에게나 지대를 납부해야 하는 농노 양자에게 모두 이익이었다. 왜냐하면 예전에는 지대를 현물로 받기위해 영주는 농업생산 증대에 관심을 기울이고 농노의 생산 활동을 지시 감독해야 했지만 지대를 화폐로 받게 되면서 이와 같은 번거로움이 사라지게 된 것 이었다. 또한 농노는 자신의 잉여생산물을 다른 현물로 바꾸는 버거로움을 피할 수 있었고, 현물은 저장과 보관이 불편하고 쉽지 않은 반면 화폐의 보관의 용이성은 자본의 축적을 가능하게 했으며, 예전에는 영주의 감시하에 전적으로 농업에만 종사해야 했던 반면 지대의 금납화는 잉여 노동력을 다른 수입원에 투입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로써 영주의 농노에 대한 예속은 점점 느슨해지기 시작하였으며, 또한 농노의 자본축적은 자영농의 증가를 초래하였고 이는 봉건사회의 예속질서를 더욱더 무너뜨리는데 기능하였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금납화가 미약하나마 농민이 부를 축적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였고, 이를 통해 장원의 직영지가 탁영지로, 다시 자유 소작지로 바뀌면서 결국 장원제가 해체 되어 나갔으며 14c후반 경에 영국에선 농노제가 사실상 소멸하게 된다. 이런 지대의 금납화로 인한 자영농의 성장과 농민의 부의 축적과 도시 무역의 발달로 인한 상인 자본가의 성장은 자본의 축적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축적된 자본을 더욱 많은 자본을 축적하기 위해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도를 찾게 되었다. 마침 그 당시 생산품 생산을 독점하였던 길드(가내 수공업)가 해체되기 시작하였고 이는 상인 자본가와 부농에게 이윤의 축적을 위한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길드가 독점하던 상품시장을 차지 할 수 있었고, 해체된 길드의 장인을 비롯한 숙련 기술자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상품시장을 점유하고 장인과 숙련 기술자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고안한 생산방식이 이른바 선대제(putting-out-system) 라는 것이다. 선대제는 가내 수공업 조직에 원료와 노임를 제공하고 생산하게 하여 생산된 제품을 무역을 통해 팔아 이윤을 남기는 제도이다. 선대제로 이윤을 추구하던 자본가들은 선대제의 시스템이 그들에게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선대제에서 자본가는 단지 원료와 노임 만을 제공하지 장인의 작업과정을 감시 감독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생산되는 산출품의 질이 현저하게 떨어지거나 또는 장인들이 투입된 원료만큼 생산하기 보다는 부정적 방법으로 원료의 일부분을 자신의 이윤추구로 축적하는 일이 비일비재 하게 일어나면서 자본가들은 더욱 효율적인 다른 생산방식을 탐색하게 된다. 이들이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발견한 방식이 바로 공장제 수공업(manufacture)방식이다. 공장제 수공업 방식은 원료와 노임만을 제공하던 선대제와는 달리 숙련 기술자들을 한 장소로 끌어 모아 원료와 작업도구를 제공하여 생산품을 만들어 내도록 하는 생산방식이었다. 이것은 자본가로 하여금 노동자들의 작업과정을 감시하게 하도록 함으로써 기존의 문제점을 해결하게 하고, 또한 더욱 많은 자본의 축적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런 매뉴팩쳐 방식의 생산방식은 과학 기술의 발달로 기계가 도입되면서 공장제 기계공업 방식으로 대체 되게 된다. 공장제 기계공업 방식은 기존의 소규모 단위 생산방식에 비해 더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급증하는 노동력의 수요는 어디서 충족될 수 있었는가가 하나의 다른 과제로 등장하게 된다. 즉 지금까지는 자본주의 사회의 필수요소인 자본의 축적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또 하나의 필수 요소인 노동자의 대량 양산에 대해 살펴보겠다. 자영농의 일부가 초기 자본가로 성장한것과는 달리 대부분의 자영농들과 농노들은 노동자로 전락하게 된다. 즉 봉건제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이들은 자신의 재산과 자신의 육체를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자유인이 된 것 이었다. 다시 말해서 자영농의 일부가 돈을 모아 매뉴팩쳐를 소유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듯이 대부분의 자영농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팔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이처럼 자유로워진 자영농들은 자유경쟁을 통해서 부를 모으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몰락하여 재산을 잃게 되는 양극분해가 진행 되었다. 그런데 누구든지 무언가를 팔지 않고서는 살(買)수없고 사지 않으면 살(生)수도 없는 상품사회에서 생산수단이 없는 몰락 자영농은 이제 마지막으로 자신의 몸, 즉 노동력을 판매 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들이 곧 최초의 노동자인 것이다. 구체적 상황에서 이를 살펴보면 영국에서 1,2차 인클로저 운동(enclosure movements)은 이른바 토지로부터 유리된 이른바 방랑자(vegabonds)를 형성하였고 이렇게 대량으로 형성된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모여 들게 되었던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 본 것처럼 노동력을 판매할 수 있고 판매하지 않으면 안되는 노동자가 등장하여 자본과 노동자의 관계가 최초로 성립하게 된 것을 ‘자본의 본원적 축적’이라고 한다. 이 본원적 축적과 함께 자본주의 사회 출발의 싹이 트게 되는 것이다.
    사회과학| 2007.03.12| 6페이지| 1,500원| 조회(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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