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세계화의 재정의1) 세계화의 ‘정치경제’와 ‘문화정치’세계화 = 시장의글로벌리즘* 세계화의 두 차원 *세계화를 둘러싼 논의 ⇒ ① 문화⇒ 자본, 정보의 전지구적 흐름을 강조 하는 정치경제학적 시각② 세계화 = 문화 자체의 중층성?다양성?잡종성⇒ 사람, 문화의 전지구적 혼성을 강조BUT! 이 두 가지 세계화의 차원은 불가분의 관계∴ 한쪽을 다른 쪽에서 분리하여 논의하는 일이나 한쪽을 다른 쪽의 단순한 결과로 파악해서는 안 됨.-------------------------------------------------------------------크레올(신대륙발견 후 아메리카 대륙에서 태어난 에스파냐인과 프랑스인의 자손들을 일컫는 말. 원래는 신대륙에서 태어난 순수 에스파냐인으로 한정되었지만 후에는 에스파냐인과 프랑스인, 이들과 신대륙의 흑인사이에서 태어난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의미가 확대됨. 크레올은 이같은 인종 그룹을 지칭하는 동시에 그들의 문화, 음식 등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이나 잡종성, 디아스포라(흩어진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팔레스타인을 떠나 온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 유대교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 인을 이르던 말), 다문화주의 등에 초점을 맞추는 후자의 영역 안에서, 전 지구적인 자본 및 초국가적인 시스템과 문화가 뒤얽힌 관계를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지를 둘러싸고 논쟁과 균열이 생기고 있음.-------------------------------------------------------------------〔 크레올주의 〕1>포스트식민주의적인 상황에서 벌어지는 문화의 크레올화를 지지하는 입장vs 2>정치적인 문제제기와 단절되어 있다고 비판하는 입장--------------------------------------------------------------------1>포스트식민주의적인 상황에서 벌어지는 문화의 크레올화를 지지하는 입장동일한 장소에 서로 중첩되어 있는 여러 문화가 잡종적이고 상호 침투적인 집합을 이루는 것을 크레올성이----------------------------------------------------------2>정치적인 문제제기와 단절되어 있다고 비판하는 입장크레올성만을 강조해서는 “정치적 정체성과 문화적 정체성의 균열을 심화시킨다”라고 비판하는 입장.⇒ 크레올의 정체성을 정치의 울타리 바깥에 두는 것은 구체적인 힘의 관계에 의해 구축된 역사적 맥락, 즉 정치적인 물음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 문화로서의 크레올이나 잡종성만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음.--------------------------------------------------------------------*문화를 재정의하는 정치학** 정치경제학적인 관점에서의 세계화 ⇒ 세계화는 전지구적 시장이나 초국가적인 시스템 문제로 되돌아가기 때문에 이 정치경제적 과정이 문화적인 과정으로서의 세계화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탐구될 수 없음.* 크레올이나 잡종성에 초점을 맞춘 문화론에서의 세계화 ⇒ 포스트식민주의적인 문화상황을 전지구적 자본이나 시장, 초국가적인 시스템의 작용과 어떻게 결부시킬까 하는 문제 미해결--------------------------------------------------------------------세계화는 문화의 개념을 다시 정의하게 하는 중요한 효과가 有 ⇒세계화를 둘러싼 논의 자체가 문화의 재정의 과정, 시장 및 자본의 초국가적 확대과정이 어떻게 분절되고 결합되는가를 분명히 밝히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세계화의 두 가지 변화는 서로 얽히고설켜 있기 때문에 한쪽이 일어나지 않고 있거나 아니면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전제하고 다른 쪽을 이야기 할 수는 없음∴ 문화를 재정의 하는 과정에서 시장이나 자본의 글로벌리즘이 초래하는 효과나 동요 등을 파악하는 것은 필수 과제----------------------------------- 어떻게 자신의 경계를 다시 긋고 있는 것일까?--------------------------------------------------------------------이중삼중으로 쌓인 모순이나 충돌, 차이를 내포하면서 구부러지거나 뒤틀리거나 뒤집어지기도 하는 공간으로, 이 공간을 비 시간적인 동일성의 장이 아니라 그 자체 속에 여러 시간축을 내포하면서 변화해가는 것으로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2) 세계화의 정치경제학* 세계화에 대한 대항담론 *- 경제학자 칼 폴라니'자기 조정적인 시장'이라는 유토피아적 편견을 깨고 사회를 통해 통제가능한 지역적 민주 경제 시스템 구현을 주장⇒ 세계화가 ‘시장 유토피아’의 황량한 ‘잔해’를 온 세계에 뿌려댐으로써, 세계화에 대한 장밋빛 낙관주의는 빛이 바래고 다양한 ‘반동’이 속속 등장- 미국의 사회과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틴《반동》: *세계시장경제체제에 대한 ‘반체제운동’*자유주의에 대항하거나 압박하는 움직임---------------------------------------------------------------------세계화에 대한 대항담론(반체제운동-기존의 사회적 ·정치적 체제를 부정하고 새로운 변화를 꾀하는 운동)① 사회주의 (여러 번 재생을 위한 다양한 시도가 되풀이 되었지만 이미 역사가 되어버림)② 내셔널리즘 (민족에 기반을 둔 국가의 형성을 지상목표로 하고, 이것을 창건·유지·확대하 려고 하는 민족의 정신 상태나 정책원리 또는 그 활동)③ 근본주의 (이슬람근본주의, 부흥주의- 이슬람 교리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공동체와 국가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며 모든 분야의 이슬람화를 추구. 서구의 세속·물 질주의를 강하게 거부하고 서구의 제도와 사상을 빌려오지 않아도 이슬람 교 리에 따라 이슬람 공동체 건설이 가능하다고 여김)---------------------------------------- 이후 일본이 미국표준이라는 ‘시장해 법’에 모든 것을 위탁한 나머지 자유화=규제완화라는 이름의 ‘개혁’의 미로에 발을 내딛 은 결과∴ 공민적 미덕을 회복하여 국가적 공동사회에 관여된 공적인 사안에 적극 참여,‘정신의 습관’으로서 국가에 대한 귀속의식을 고양할 것--------------------------------------------------------------------『시민국가의 초국가적 연합』(세계화를 지속적으로 비판 & 새로운 내셔널리즘의 대두에 대항ex) 사카모토 요시카즈 (坂本義和)세계화와 더불어 국가로부터 자립 지향 = 시장의 세계화 & 시민사회의 보편화- 시장 :사회관계의 상품화를 특징으로 하는 욕망의 체계- 시민사회 :인간의 존엄과 평등한 권리의 상호 승인에 입각한 사회관계가 만드는 공공공간--------------------------------------------------------------------* 이분법을 넘어서 *ⅰ)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시장과 시민사화, 경제 시스템과 국가, 시스템 통합과 규법적인 통합이라는 이분법적인 경계설정을 공유하고 있음ⅱ) 공공공간을 파괴하는 전자의 맹목적인 폭주에 대하여 후자의 규범적인 공공성을 새롭게 재건하고자 하는 시도- 이분법적 인식⇒ 세계화가 밀어붙이고 있는 탈영역화/재영역화 또는 동일화/차이화라는 중층적인 경합 ⇒ Global vs (로컬하고 특수한 것으로의) National⇒ 경제 vs 문화--------------------------------------------------------------------BUT! 세계화는 이 이분법 자체를 돌파하는 경계영역의 복합적인 융합으로서 눈앞에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제까지 정치경제의 근대화 또는 국제화로서 이야기되던 사태와 다름* 신보수주의적 경제정책 : 각종 국유화와 복지정책 등을 포기하고 민간의 자율적인 경제활동을 중시하는 자유시장경제로의 복귀를 역설한 영국의 대처주의와 미국의 레이거노믹스( 과도기의 모순 체현 ⇒ 여러 정체메커니즘으로, 고대 로마제국과 같은 절대적 중심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님.⇒ 가족 시민사회 국가라는 근대적인 삼체로 이루어지는 정치경제의 구도 자체가 해체되고 있음--------------------------------------------------------------------3) 세계화의 문화정치학* ‘문화’의 설명방식 *-문화는 종종 정치경제적인 변화를 ‘기원’의 측면에서 설명하는 것, 또는 그런 정치경제를 통하여 조작되거나 강제되는 것으로 파악되어 왔음.-문화를 시장=국가적인 힘의 장으로부터 따로 떼어낼 수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 세계화 속 문화⇒ 그 자체가 자본이나 시장의 초국가적인 운동이나 시스템으로부터 떼어낼 수 없는 것으로 스스로를 재정의--------------------------------------------------------------------* 새뮤얼 헌팅턴문화적 동질성을 주어진 조건으로 삼아 전지구적인 정치 시스템의 변동을 설명* 테사 모리스 스즈키오늘날 세계화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각 문화의 고유성에 따라 세계가 분열하는 것이 아니라, ‘고유의 문화’라는 개념 자체가 중층적으로 분열하는 것* 허버트 실러 , 문화제국주의론문화는 제국주의적인 정치경제 시스템에 의해 조작되고 강제되는 것- 현대 세계에서 미국은 경제면과 정보면에서의 지배력이라는 상호보완적인 두 힘을 통해 패권을 유지하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음--------------------------------------------------------------------* 문화수용자의 관점 *- 문화 제국주의에 대한 문화 연구론자들로부터의 혹독한 비판⇒ ‘미디어 생산물에 조작적인 효과가 있다는 가정’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문화산업의 전략과 수용자의 해석과정 사이에 작동하는 의미 구성의 복잡한 역학을 간과하고 있음 속에서
논문일본기업 대중투자의 새로운 선택 - 집중인가 분산인가목차1. 머릿말2. 외국직접투자에 대한 PROS&CONS3. 세계경제의 엔진이 되는 중국경제의 내실4. 외국기업의 대중 진출 배경5. 중국에 있어 지적재산권보호의 동향6. 대중 직접투자의 리스크와 투자환경비교7. 외국직접투자의 유치전략 다시보기8. 마치면서요지1. 중국경제의 고성장을 배경으로 외국기업의 대중 직접투자는 급속히 집중되고 있다. 이제껏 매년 300~400억 달러였던 대중투자는 지금 600억 달러로 늘어났다. 그 내용을 고찰해보면, 여태 중국을 수출거점으로 하는 생산공장과 같은 투자에 덧붙여, 중국의 시장개방과 함께 중국 내 시장을 겨냥하는 투자가 증가하고 있다.2. 일본기업은 스스로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중국의 싼 노동력을 이용해 중국에 직접투자를 행해왔다. 2001년12월,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해, 한층 더 시장개방을 약속했다. 그것을 계기로, 일본기업의 대중투자는 더욱 집중하고 있다.3. 그 속에서, 중국경제는 9%이상의 고성장을 이어가고 있으나, 빈부격차의 확대, 에너지의 부족, 환경문제의 심각화 등 중국사업의 위험은 높아져가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 있어 일본기업은 직접투자를 중국에 집중할 것인지, 다른 나라로 분산할 것인지의 선택에 직면하고 있다.4. 일본기업으로서는 그 경영자원을 정리하고, 중국과 그 다른 나라 지역과의 투자환경의 비교에 입각하여, 새로운 투자전략의 구축이 요구되어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투자를 분산하는 것은 자원배분의 효율화의 관점에서 필요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에는 위험이 함께하기 때문에, 중국으로의 투자를 포함하여 해외로의 투자는 지금까지 이상으로 리스크의 관리가 중요하게 된다.1. 머리말중국경제의 시장경제화 개혁과 시장개방의 진전은 외국기업에 의한 대중 직접투자를 가속화시켰다.처음에 중국 정부는 외자유입의 목적으로서 국내의 투자자금 부족을 채우기 위해 여러 가지 외자우선정책을 실시했고, 외자 직접투자기업에 초 내국민대우를국적기업의 대외직접투자를 고찰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로, 노동비에 대한 자본 재고의 투입을 최적화하고, 이익의 최대화를 꾀하는 투자행동이 되고 있다.경제의 글로벌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현대에 있어, 경영자원을 한 나라에 집중하는 것으로 치열한 시장경쟁에서 살아남을 수는 없다. 다국적 기업에 있어서 기숙개발을 강화하기 위해 국내외의 기술력을 총동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경제발전과 동반되는 노동비용의 상승을 회피하기 위해, 경영자원을 해외로 이동하는 것에 의해 상품의 가격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또, 해외소비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소비자의 기호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고, 소비시장에 더욱 가까운 입지에 투자하며 판매를 촉진하는 것이 유리한 방법이다.뒤돌아보면, 일본기업의 대중투자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중국을 재생산의 수출거점으로 하는 투자(1990년대)부터, 중국시장을 겨눈 현지화투자(2001년 이후)로 발전해 왔다. 수출거점을 확보하기 위한 대중투자는, 엔고진행과 일본에 있어 실질이자율의 상승을 배경으로서 중국의 싼 노동력을 이용하기 위해 진행시켜왔으나, 현지화투자는 중국의 경제발전과 함께 시장의 발전과 대외개방이 주된 배경이다.「개혁?개방」정책의 25년이 지나고, 중국 노동자의 실질임금수준은 상승하고 있다. 투자하는 기업으로부터 보면, 중국과 그 주변국가의 투자환경을 비교해 새로운 투자전략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중국시장의 발전과 낙관적인 거대한 경제전망으로부터, 일본기업의 대중 직접 투자가 여기서 감속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지만, 그 경영자원의 재 배분 즉, 경영전략의 최적화를 예측하는 것이 필요하다.3. 세계경제의 엔진이 되는 중국경제의 내실국제무역과 대외직접투자를 통해 세계 각국의 경제의 상호의존관계가 더욱더 의존되고 있다. 이렇게 경제의 글로벌화를 추진하고, 국제무역의 장벽을 철폐하고, 자유무역협정(FTA)을 맺는 경제의 글로벌화가 추진되고 있다. 예를 들어, 세계최대의 지역통합인 EU역내의 무역의존도는 60.3%에 달한다(200발, 원재료의 조달, 부품의 제조, 제품의 조립과 제품의 판매 등, 일련의 경영활동의 입지를 최적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서, 이것들의 모든 점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찰하기로 한다.우선, 연구?개발에 있어서 인재자원의 확보는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일반적으로 오리지널의 기술개발은 선진국의 우수한 인재를 이용하기 위해, 투자할 도상국에 본격적인 연구?개발센터를 설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종래, 제품의 응용기술이나 재정리기술의 개량에 대해서는 투자에 있어서 소규모의 기술센터를 마련해서 제품개량을 행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투자할 도상의 산업구조의 고도화와 기술의 레벨업과 함께, 다국적기업은 투자시장에 적용할 제품의 개발을 행해야 하고, 본격적인 연구?개발센터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중국을 한정하여 말하자면, 90년대까지는 외국기업의 대중투자는 선진국에서 성공한 기술을 그대로 중국에 가지고 들어가는 케이스가 많았다. 2001년 이후, 중국시장을 노린 투자가 증가하고 이미 존재하는 기술을 개량할 필요성이 나왔기 때문에, 다국적기업의 안에서 소규모의 기술개발센터를 설치하는 케이스가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본격적인 국제 수준의 연구?개발센터는 전무에 가깝다.또, 원재료와 부품의 조달에 대해서는, 후원 산업이 발달하지 않았던 80년대부터 90년대 전반에 있어서 많은 원재료나 부품은 해외에서 수입하고 중국에서 완성품을 조립해 해외에 재수출하는 것이 기본적인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그러므로 당시 광동성을 중심으로 하는 화남경제권에 있어서는 「내류가공」이라고 불리는 가공무역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90년대 중반 경부터 후원 산업은 조금씩 육성되어, 지금이야말로 다국적기업의 자재조달에 있어서 꽤 많은 부품을 중국에서 조달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중국 국내시장을 공략하기위해, 다국적기업은 부품의 현지조달을 더욱 강하게 하고, 그것에 따라 그 지방의 부품산업도 한층 정비되어갈 것이라고 예상되고 있다. 그러한 중에 외국부품의 메이커도 중국으로 진출하고, 그것에 따라 지역활판인쇄술, 제지와 화약의 4대 발명이 이루어 졌지만 구미제국은 그것을 이용하는데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근대적 시장경제의 기초적인 룰을 따른 대답은 아니지만, 도상국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되어진다.첫 번째로, 저작권 등의 지적재산권의 보호는 일정한 룰의 보호를 기초로 이루어진다. 많은 도상국에 있어서 이러한 규칙조차 없는 상태이다. 두 번째로, 지적재산권을 보호하는 것은 부기한적인 것이 아니라, 일정기간이 지나면 인류 공통의 재산이 된다. 세 번째로, 저작권 등의 지적재산권의 소유권은 명확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귀속성이 애매한 경우, 보호되지 않는다. 네 번째, 지적재산권의 기치판단은 국가에 따라 다르고, 일률적으로 정하는 것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경제발전단계나 국가에 따라, 지적재산권의 보호에 관계된 관심도 다르다. 지적재산을 많이 소유한 선진국을 보자면, 반드시 보호되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에 반해 도상국은 경제상장을 촉진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 지적재산권의 침해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 경우가 많다.처음, 개발도상국에 있어서 경제의 캣치업을 꾀하기 위해서는, 외국직접투자를 받아들여, 기술이나 노하우를 습득하는 것이 손쉬운 길이다. 일반적으로 지적재산권이 보호되지 않는 나라에 대해, 외국 기업이 직접투자를 행하면, 제품이 카피당하는 등 지적재산권이 피해 입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외국기업은 직접투자(F)를 억제시키고, 제품을 수출(E)하는 것이 선호된다(도표 2 참조). 그 후,지적재산권의 보호가 개선됨에 따라, 외국기업은 수출 대신에 직접투자를 증가시키고 있다. 게다가, 글로벌 스탠다드로 볼 때, 지적재산권의 보호가 잘 지켜지면, 외국기업은 자신의 직접투자를 행하려고 하기보다도, 지역기업으로의 라이센스 생산(P)을 진행시키게 된다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도상국의 입장에 서서 보면, 경제의 캣치업에 있어, 외자부족과 저축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방대한 제품 수입과 라이센스의 생산보다도,은 기술이전에 적극적이었다고 비판받았지만, 이러한 사실로부터 보면 반드시 올바른 관점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이전에, 많은 일본 기업의 대중투자는 제품을 재수출하기 위한 생산 거점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고, 연구?개발의 현지화를 실시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제품을 중국시장에 팔기 위해서는 연구?개발의 현지화가 보다 중요해졌다. 도표4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러한 움직임은 이미 본격화 되고 있다.여기서 특히 주목하고 싶은 것은, 외자계 기업이 현지에서 R&D센터를 세우고, 그 연구 성과를 유지하기 위해, 특허등록을 신청했다는 점에 있다. 그 중에서 하나의 경향으로서, 전기기계 생산의 특허신청이 압도적으로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 배경에는 지역의 전기계 기업의 캐치업이 예상보다 빨랐고, 외국기업에 있어서 위협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은 개발 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지만, 모방하는 것은 비교적 간단하다라는 데에 있다.일본기업은 지금까지의 기술 독창성과 함께 생산체제의 합리화와 소비 감소의 철저에 있어 비교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MADE IN JAPAN 브랜드의 힘은 예상 이상으로 강하고, 일본에 관광으로 오는 여행자는 1인당 평균 5대의 디지털 카메라를 사서 돌아간다고 한다. 같은 것은 중국에서도 팔고 있지만, 일부러 일본에 와서 사는 이유는 중국에서 팔고 있는 MADE IN JAPAN의 제품은 중국에서 조립되는 것이기 때문에, 신뢰받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제품에 대한 수배는 여기까지 높아지고 있다.따라서, 일본기업에 있어서 일본의 지적재산권을 지키는 것은 중요한 것이지만, 동시에, 일본브랜드의 힘을 지켜가는 것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의 제품의 강한 맛은 그 제품의 고품질에 있고, 중국에서는 이미 사람들에게 침투되고 있다. 다른 기업으로서는 구미기업에 비해 일본기업은 그 정도로 인기가 없다. 구미기업의 인사평가 시스템은 성과주의를 철저히 하는 엘리베이터와 같은 것에 비해, 「가늘고?길게」가 상징이 되하다.
1.について중고문학이란 헤이안 문학이라고도 하며, 연력 13년의 헤이안 쿄 천도로부터 미나모토요리토모가 가마쿠라막부를 연 1192년까지의 약 400년간의 문학을 말한다. 이 시대는 율령제 사회로부터 후지와라氏를 중심으로 하는 귀족사회로 옮겨가고, 섭관정치는 후지와라노미치나가의 시대에 정점을 이루게 된다. 11세기 후반부터는 섭관정치가 급속히 무너지고 인세이의 시작과 무사계급의 진출, 겐지氏와 헤이氏의 세력 다툼의 시대를 겪는다.헤이안 문학은 아름다운 헤이안 쿄와 불교를 옹호하는 환경 속에서 형성되었다. 헤이안 초기에는 한시문이 유행하여 천황의 칙명에 의한 칙찬한시문이 편찬되기도 하였으나 9세기 말부터 당풍문화에서 벗어나 국풍(일본문화)존중으로 바뀌어 10세기 초에는 칙찬와카집인 코킨슈와카집이 편찬되기에 이르렀다. 와카 부흥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와카는 우타아와세 등의 발달로 궁중에서도 읊게 되어 한시문에 비견하는 공적인 문학이 되었다. 그 결과 코킨슈 이외에도 계속하여 칙찬 와카집이 편찬되게 되었다.또한 히라가나의 발달로, 일본어에 의한 산문이 급속히 발달, 타케토리 모노가타리, 이세모노가타리가 성립하고 일기문학인 토사닛키가 태어난다. 그리고 이윽고 여성에 의한 뛰어난 문학 작품들이 등장하게 된다.섭관정치는 천황 모계의 조부 또는 숙부가 섭정 ? 관백으로 임명되어 정무를 장악하는 것으로 그 기반은 전적으로 사적인 인간관계였기 때문에 유력한 귀족은 앞다투어 딸들을 천황의 후궁에 들여, 그 후궁으로서 총애를 얻어 빛나는 존재로 만들기 위하여 물심양면으로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왕비들의 교양을 높이기 위해 재능 있는 중류 귀족의 시녀가 요구되었으며 이러한 후지와라氏의 후궁정책은 후궁의 예술문화를 키우는 사롱적인 세계를 만들어 헤이안시대의 여류문학을 꽃피우는 계기를 만들게 되었다. 이리하여 시녀(뇨보)들을 중심으로 하는 여류 문학의 개화가 촉진되었다.이러한 섭관정치를 배경으로 천황의 후궁을 중심으로 많은 재원들이 나타나 여류문학의 융성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견당사의 폐지와 가나문자의 보급에 의해 소위 국풍화가 이루어지고, 후궁에서는 많은 여류 가인들이 배출되게 된다. 남성지식인이 여성독자를 위해서 쓴 것으로는 모노가타리가 있는데, 이것은 후궁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모노가타리가 여성을 위한 것이라면 그 내용이 여성독자들의 흥미를 충족시키는 것임에 틀림이 없었겠지만 마침내 후지와라노 미치츠나(藤原道綱)의 모친은「세상에 많은 옛 이야기의 내용」이 말하는 거짓이야기에 속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가게로 일기(??日記)』를 썼으며, 이후에도 많은 여류일기가 나타나게 되고 이는 헤이안 여류 문학의 꽃을 피우는데 일조했다.이 외의 일기문학으로서는 、、 등이 있으며 수필에는의 、 모노가타리에는 등이 있다.2.とについて1192년 가마쿠라막부가 시작되고 나서부터 1603년 에도막부의 성립까지의 약 400년간을 중세라고 한다. 정권의 명칭으로 말하면 가마쿠라 시대부터 남북조시대, 무로마치 시대를 거쳐 아즈치 ? 모모야마시대라고도 한다. 중세는 동란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호우겐의 난, 헤이지의 난으로 정권을 놓게 된 헤이氏도 곧 겐지氏에게 멸망당했고, 가마쿠라 막부가 열리고 정권은 귀족으로부터 무사에게로 이동하였다. 그러나 귀족은 미약하게나마 교토에서 궁정정치를 행하고, 정치적, 문화적 영향력을 보유했으며 죠큐의 난 이후에 쇠퇴하였다. 따라서 가마쿠라 시대 전기에 이르러서는 문화적으로는 귀족들에 위한 왕조문화를 지키고자 하는 복고적인 경향이 주류를 이루고 무사가 새로운 문화의 담당자가 되는 것은 후기에 이르러서였다. 다만 이 시대에는 신불교의 각종 파가 연달아 성립해 이들이 불교 사상의 영향을 받았던 사람들 가운데서 많은 뛰어난 문학을 만들었다.중고 말부터 중세 초기에 걸쳐 일어난 환난과 천재는 사람들에게 많은 불안을 주고, 그 불안으로부터 피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종교에서 도움을 구했다. 그때 갑자기 세력이 강해진 호우넨, 신란, 니치렌 도우겐의 신불교는 사람들 사이에서 무상관의 사상을 널리 알려 무상관의 문학을 탄생시킨 원동력이 되었다.앞에서 말했듯이 중세는 궁정 귀족계급 대신 새롭게 성장한 무사들이 정권을 잡고 막부정치를 실시하던 시대로, 계속되는 전쟁과 천재지변으로 나날이 불안한 시기였다. 그 속에서 불교에 귀의해 종교적 안정을 구하고, 현실로부터 도피하여 산촌에 숨어사는 지식인과 은둔자(?遁者)들이 등장하였다. 은자문학(?者文?)이란 이처럼 속세를 벗어남으로써 세상을 보다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었던 이들이 이루어낸 것으로, 내용은 주로 불교적인 무상관(無常?)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활과 인생, 자연, 신앙, 사회에 대한 생각을 뛰어나게 표현한 것인데, 그 중 대표적인 장르로 수필을 들 수 있다.히노산에 살았던 카모노쵸우메이는 호우죠우키에서 도회생활을 허무를 피해 한가로이 지내는 생활을 즐기는 경지를 말하고 있고, 나라비가오카에 살았던 켄코법사는 츠레즈레구사에서 자연과 생활에 관한 깊은 통찰을, 풍부한 학식과 함께 얽매이지 않은 자유인의 눈으로 그리고 있다. 이것들은 모두 불교적인 무상관에 의해 인생을 바라보는, 중세를 대표하는 무상관의 수필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같은 무상관은 문학으로서 대표적인 것으로는 군키모노가타리가 있다. 헤이케 모노가타리는 신흥 세력으로서 무사의, 놀랄만한 행동을 생생하게 그리는 것과 함께, 한편에는 멸망 중에 있는 헤이케의 무장, 귀공자, 여성들의 모습을 애절하게 그리고 있다. 그 밑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것은 제행무상의 무상관이다.또한 불교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서 승려에 의해 쓰여진 설화집이 있다. 중세는 설화의 보고라고 불려질 정도로 뛰어난 설화문학을 배출했다. 카모노쵸우메이의 발심집, 무쥬우의 사석집과 같은 불교설화를 중심으로 한 것뿐만 아니라 십훈초, 우치습유이야기 등 세속설화를 중심으로 했던 것에 관해서도 불교사상의 영향은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3.について1603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에 막부를 열고나서부터 15대 장군인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대정을 조정에 반환했던 1867년까지의 약 260여 년간을 근세(에도시대)라고 한다.막부의 문치정책에 의해, 무사계급은 물론, 경제력을 갖춘 쵸닌 사이에서도 문학, 예능이 보급되어갔다. 근세 전반에, 오사카나 교토 등 카미가타에서 번성한 문학, 예능은 이윽고 에도에서도 번성하여 전국적으로 퍼져갔다. 이러한 문학, 예능의 발전, 대중화의 원인으로서는, 교육의 보급에 의한 독자층의 증대와 이제까지의 사본과는 달리 대량출판이 가능한 판목인쇄가 출현한 것도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