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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임분석
    게임 분석(Diablo, Sudden Attack)Diablo이 름디아블로 I, II (DIABLO)장 르액션 RPG출시년도디아블로I - 1996년디아블로II - 2000년 익스팬션 - 2001년제 작 사Blizzard Entertainment플 랫 폼IBM PC 패키지기 타온라인 지원 (Battle.net)디아블로 1과 2는 이어지는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다. 디아블로1을 만들때 마치 2가 나올껄 미리 예상하고 만든 절묘하게 연결되는 시나리오 구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디아블로 1과 2를 같이 분석해 본다.■ 게임 배경Prolog :태초부터 빛과 어둠의 세력은 영원한 전쟁, 즉 대충돌-The Great Conflict 를 치러왔다. 누가 승자가 되건 잿더미에서 모든 생명을 일으켜 세워야 하는. 이를 끝내기 위해 천상의 천사들이 강력한 군사 규제를 만들었다. 세라핌 전사들은 빛의 적들을 정의를 앞세운 칼로 공격 하였다. 천사들은 단지 강력한 규율만이 이 곳에 질서를 바로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옥의 악마들은 혼란 (Chaos) 이 유일한 진실의 상태라고 여기고 있었다. 거대한 전쟁은 계속 이어져 왔다. 마치 이것이 현실인 것처럼... 천상의 수정 문에서부터 지하의 지옥의 불구덩이까지 전사들은 끝없는 전투를 계속하였으며, 결국 명예와 통찰력을 겸비한 전설적인 영웅을 탄생시키게 된다. 그 영웅의 이름은 이주알 (Izual), 천사장 타이라엘의 부관이자 천사들의 룬블레이드 아주어레스 의 수호자였다. 그는 지옥의 불구덩이 공격을 통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순간까지 만들어 냈다. 그의 모험은 무기와 그마저도 파괴 해버렸다. 그러나 그의 운명은 끝나지 않았다. 이주알은 혼란의 무리들을 넘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결국 그의 운명은 천사와 악마의 시험 앞에 놓이게 되었다. 이 전쟁은 하늘 위에 어떤 별보다도 더 뜨겁고 오랫동안 진행되었다. 아무도 오랫동안 주도권을 잡지 못했다. 양측은 모두 전쟁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내고 있었다. 그러다 악마들은 그들의 부하들에게 승리 후의 영광을 약속했다. 아즈모단과 벨리얼은 전쟁을 끝내고 승리로 이끌 수 있는 계획을 세웠다. 3명의 악마를 향한 지옥의 거대한 반란이 시작되고 있었다.형제들은 처절한 전투를 벌였다. 그로 인해 지옥의 많은 것들이 파괴되었다. 결국에는 반역자 아즈모단과 벨리얼l에게 정복당하고 만다. 3명의 악마들의 힘이 많이 약해졌고 몸도 잃어 버렸다. 그들은 인간 세상으로 사라져 버렸다. 아즈모단과 벨리얼은 그들이 영원히 그곳에 갇혀 있기를 바랬다. 아즈모단은 3명의 악마로 인해 파괴된 인간성을 돌리기 위해서 천사들이 인간 세상에 눈을 돌리는 동안 천국의 문은 아무런 방어도 되어 있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한편 몇몇 괴물들은 아즈모단과 벨리얼을 피해 인간 세상을 탈출하여 그들의 옛 주인을 찾아 나섰다. 전쟁이 끝난 후, 아즈모단과 벨리얼은 서로 누가 더 높은 지위를 가질 것인 가로 다툼을 시작했다. 그들의 약속은 곧 휴지조각 으로 변해 버렸고, 두 악마는 서로를 향해 칼날을 겨누었다. 지옥의 영토는 두 명의 군주아래 나뉘어 피의 전쟁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게임 줄거리앞서 살펴본것은 디아블로 게임의 기본이 되는 세계관이고 다음에 볼 것은 디아블로에 등장하는 NPC중에 가장 비중이 높은 인물인 데커드 케인이 서술한 게임의 전체적인 줄거리 이다. 이 데커드 케인은 디아블로2에도 등장한다.- 디아블로1 게임 줄거리-최후의 호라드림 단원 데카드 케인의 원고에서 발췌-유감스럽게도 나는, 트리스트람에서 고대 수도원 지하에 묻혀있는 소울스톤에 대해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호라드림 최후의 계승자로서, 그 진홍색 돌 안에 봉인되어 있는 것에 대한 진실은 나 혼자만이 알고 있었다. 만일 내가 그 사실을 여러사람에게 말해 주었다면, 아마도 이 조용하고도 조그만 마을은 남아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랬다면 이런 끔찍스런 일단의 사건들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솔직히 말해서 나는, 소울스톤의 불타는 권능에 제일 먼저 먹이가 되어버린 자가 다름다. 그는 가족도 없었고 또한 달리 갈 곳도 없었기에 트리스트람에서 맞아들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들을 성심으로 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의 속내는 드러내지 않았으며 우리가 그에게 마련해준 집밖으로 나오는 일은 거의 드물었다.독한 술과 좋은 이웃들이 어쩌면 그 용사의 얼굴에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를 몰아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여 축제를 벌이는게 어떻겠는가 하고 여관주인어그든(Ogden)이 제의해 왔었다. 그러나,그것은 우리의 오산이었다. 축제가 진행되는 동안 현명하지 못한 우리들을 놔둔채 그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저녁 느즈막히 나는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별 생각없이 그의 집을 방문했다.그 무명의 용사는 집의 입구쪽 통로에 홀로 앉아 지난 몇세기동안 쓰이지도 않았던 다른 언어로 그 자신에게 뭐라뭐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는 어두운 여행용 망토를 차려 입었고 그 옷에 달린 두건은 그의 얼굴위로 드리워져 있었다. 그가 내 쪽으로 돌아서자 불빛이 그의 비틀려진 형상을 비추었으며 더이상 그라고는 볼 수 없는 일그러진 형체가 눈앞에 드러났다. 그의 눈에서는 진홍색 아지랑이 같은 것이 빛났으며 두건속 깊숙한 곳에서는 뭔가 섬뜩한 붉은 빛이 고동치고 있었다. 그의 앞이마에 난 상처가 열린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제대로 본것일까? 아니, 그건 아마도 노인네의 지나친 상상력과 깜박거리는 불빛이 빚어낸 단순한 눈속임이었을거야...나는 그에게 괜찮으냐고 물어보았지만 그는 계속 웅얼거리기만 했다. 이 모든 광경에 내 혼이 다 떠나갈 지경이 되자 나는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여기서 나가려고 했는데 바로 그때 갑자기 그가 정신을 차리는가 싶더니 공포로 인해 마음이 마비되어버릴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로 "이 곳을 떠날 때가 되었다. 내 형제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의 사슬은 더이상 우리를 봉인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가 무슨말을 하는 건지 통 알 수가 없었다. 우린 그에게 가족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걸로쓸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리앗산의 부족, 바바리안은 바알의 공격을 막아보려 하지만, 그들의 수도인 세케른조차 함락되고 만다.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에 인간영웅들이 그 곳에 오게 된다.그리고 월드스톤챔버내로 진입을 성공한다. 그들은 바알을 죽이긴 했지만, 이미 월드스톤은 바알에 의해 오염된 상태. 이 때 티리얼이 등장하고 월드스톤을 파괴함으로서 바알의 목표를 방해하기로 한다.■ 캐릭터디아블로에 나오는 영웅들중 디아블로1의 워리어를 제외한 모든 캐릭터는 스토리에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그냥 악을 물리치기위해 등장하는 이름모를 영웅들이라고만 언급되어있다. 영웅들 캐릭터와 스토리상의 중요한 캐릭터들에 대해서 알아보자.- Hero / Heroine이 미 지이 름설 명디아블로1Warrior전사 클래스. 스토리상에 다크 원더러라고 언급되는 이 인물은 디아블로를처치하지만 보석에 의해 자신이 디아블로가 되어버리는 인물. 이 영웅에 의해디아블로2의 스토리가 전계된다.Rogue궁수 클래스. 활을 주무기로 다루는 여성 종족. 디아블로2의 아마존의 기초가되며 디아블로2의 맨 처음 배경이 되는 마을에 터전을 이루고 있다.Sorcerer마법사 클래스. 원소마법을 주로 다루는 캐릭터이며 디아블로2의 소서리스의기초가 된다.디아블로2Barbarian전사 클래스. 야만인의 피가 흐르고 있으며 육중한 칼이나 도끼, 창등을 무기로삼는 전투에 능한 캐릭터이다.Paladin성기사 클래스. 치유나 회복등의 백마법과 전투에 도움을 주는 오오라를발산하여 전투에 도움을 주는 성기사형 캐릭터.Amazon궁수 클래스. 여무사족이라는 뜻을 가진 이 캐릭터는 활을 능수능란하게다루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활을 이용한 원거리 공격에 능한 캐릭터.Sorceress원소마법사 클래스. 3원소(불, 얼음, 전기)를 다루는 마법을 사용하여 적을물리치는 여성영웅 마법사이다.Necromancer흑마법사 클래스. 소환, 저주, 죽음의 마법을 다루는 어둠의 소환술사.죽은 시체를 살려내거나 적에게 저주를 걸어 전투를 한다.D의 재미를 저해하는 버그나 벨런싱을 잡아나갔다. 이러한노력은 유저들을 더욱 디아블로2에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고 게임이 지겨워질때쯤 익스펜션을선보여 유저들을 디아블로2에 꽁꽁 묶어두는 역할을 하였다.Sudden Attack이 름서든어택장 르온라인 FPS출시년도2005년제 작 사게임하이(Game Hi)플 랫 폼온라인 부분유료화기 타넷마블 퍼블리싱■ 게임 배경2010년 국제정세21세기의 첫 대규모전쟁이었던 중동지역의 오랜전쟁은 종식되었다. 따가운 국제시선이 큰 원인이기도 했으나. 중동지역의 경제적파급력을 파악하기위한 에너지기업들의 석유매장량연구결과는 예상치보다 낮은 수치로 밝혀지게 되었고 이에 따라 강대국들은 중동지역점유로 인한 경제적 문제해결이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로인해 중동전에 파병된 모든 다국적 병력은 철수하게된다.종전후 강대국들은 미개척 환경자원이 많은 아프리카와 남미지역에 대한 관심을 갖게된다.그러나 이러한 지역은 다양한 민족구성과 이념분쟁등으로 언제나 내전, 국가간전면전이 잦아 안심하고 에너지기업들이 들어갈수 없는 상황이었다.이러한 기업들은 이러한 대의명분으로 국가가 직접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소해줄 것을 요청하게된다. 수많은 전쟁비용들이 에너지기업으로부터 대량유입되고, 선진,강대국들은 서로의 이권과 이를 위한 무력행위의 명분, 그리고 여론무마를 위해 강대국들만의 연합체를 구성하게된다.이것이 United Great Forces다.(UGforces는 분쟁이 잦은 개발도상국, 후진국의 내전참여로 참여국의 이권할당을 노리는 새로운 제국주의동맹이다.)■ 게임 줄거리쿠데타 그리고 내전아프리카중부의 “삼바트”지역에 위치한 탄지리로공화국은 과거 18-19세기 독일과 프랑스령의 식민지였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은 아프리카내의 타 국가와 비교하여 매우 낮은 문맹률을 유지할수 있었고, 그들의 천연자원과 환경자원을 최대로 이용한 고도의 성장을 누릴수 있었다.2차대전을 거치며, 그들은 식민지역사를 청산할 수 있게 되었으나, 낮은 문맹률이 이념간의 분쟁을 만.
    공학/기술| 2008.03.10| 14페이지| 2,500원| 조회(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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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방진 UML 소스
    Game Programming마방진 UMLActivity Diagram시 작[3X3 마방진]srand((unsigned)time(NULL))data[1][1]=5;data[0][0]=2 or 4 or 6 or 8data[2][0]=10-data[0][2]data[0][1]=15-(data[0][0]+data[0][2])data[1][0]=15-(data[0][0]+data[2][0])data[1][2]=15-(data[0][2]+data[2][2])data[2][1]=15-(data[2][0]+data[2][2])data[i][j]끝Class DiagramRANDOMvoid set_random()TITLEvoid prt_title()MABANGint data[3][3]int nvoid check()void print()참고Source#include#includeusing namespace std;class TITLE{public:void prt_title();//타이틀 출력 함수};void TITLE::prt_title(){cout
    프로그램소스| 2008.03.09| 5페이지| 1,500원| 조회(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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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경 친화적 건축
    1. 환경 친화적 건축 개요‘환경 친화적’이란 용어는 ‘생태적’이란 말과 별로 구별되지 않으며 유사한 의미이다. 자연 친화를 위해서는 본질적으로 ‘자연이 살아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충실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곧 ‘생태적’이란 말로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건축이 생태적이기 위해서는 자연의 법칙은 물론이거니와 인간의 법칙을 함께 고려해야한다. 건축은 인간의 생활을 담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건축에서의 ‘생태적’이란 말은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룬 건축’정도로 풀이 할 수 있겠다.이러한 생태적 건축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사회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고 인간이 생태 지향적 대안에 대해 수용할 수 있어야한다. 또, 생태계의 법칙에 피해가 가지 않고 온전히 적용될 수 있는 기술력도 확보되어야한다. 더불어 이러한 대안이 기존 사회의 경제 시스템에 의해 수용 가능해야 한다. 즉, 도시의 환경디자인과 건축 분야에서 생태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생태적 문제 인식을 토대로 환경 친화적 현실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이다. 여기서 환경친화적은 기존과 비교해서 보다 생태적이란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며, 이러한 생태적 인식을 토대로 한 건축을 통틀어 ‘환경 친화적 건축’이라 한다.이제 우리의 삶의 공간인 건축의 생태적 접근을 위한 환경 친화적 건축의 구체적인 개념과 목표를 알아보고 생태학에서 환경 디자인과 건축에 적용할 수 있는 생태적 디자인에 대해 생각해 보고 적용 방안을 알아보자.2. 환경 친화적 건축의 역사적 의미- 환경과 환경 친화적 건축환경이란 그 원어 milieu, environment 등이 상징하는 것과 같이 생물을 폐쇄적인 것으로 보고 생물을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생물의 생활을 영위하는 공간으로 모든 생물이 사는 서식처, 또한 영향을 주는 생활권을 의미한다. 즉, 생명체 주위에서 생명활동에 영향을 주거나 생명활동에 따라 영향을 받는 주변의 자연환경, 대기, 물, 땅, 자연자원, 에너지, 기타 유무생물 등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를 총칭한다. 넓은 의미로 어우러진 주택으로 수평과 수직이 풍부하게 결합된 구조의 조형성을 추구한 유기적과 구조의 조형성을 추구한 유기적 건축의 원숙한 경지를 느낄 수 있다.나무의 구조를 한 기둥으로 천장을 받치고 있는 독일 함부르크 공항 내부.프랑크 게리의 장미꽃잎의 유기적인 동심원을 나타낸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박물관3. 환경 친화적 건축의 개념 및 목표- 환경 친화적 건축의 전반적 개념원시 시대부터 산업혁명 이전의 건축은 대부분 자연친화적 건축으로 환경 친화적 건축에 포함되며 그 개념이 수동적이고 의도적이지 않은 반면에, 근대 이후 환경친화적 건축의 개념은 과학 기술의 발달과 생태적 패러다임의 영향으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면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환경 친화적 건축의 개념을 산업혁명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환경 친화적 건축의 특성은 전반적으로 환경 조절적인 측면, 형태적 측면, 재료적 측면, 공간적 측면에서 나타나므로 이를 중심으로 산업혁명 이전과 이후의 개념을 살펴 볼 수 있다.우선 산업혁명 이전 환경 친화적 건축은 자연 경관과의 조화는 형태나 재료로 나타나고, 자연의 물리적인 면의 조화는 공간구조와 재료, 환경 조절적인 측면에서 나타난다. 환경 조절적 측면으로 본다면 지열의 이용과 온도에 따른 자연환기 이용을 들 수 있다. 대지에 조화를 이루는 동굴 주거나 각 지역의 기후환경에 맞는 건축물로 기후에 조화를 이루는 건축물이 대부분이었다. 또 다르게 형태적으로 본다면 주변 자연의 지형에 순응하여 건물을 배치하였고 기존 지형을 최대한 이용하여 지형과 일체가 되게 하는 건축물의 형태도 나왔다. 재료로는 천연 자연재료, 주변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 그 지역의 기후 환경에 적합한 재료를 사용하였다. 얼음으로 만든 이글루나 우리나라의 황토집 등이 있다. 공간적으론 주변의 자연 조건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건축 구조를 취하였고 각 지역의 문화와 종교를 반영한 공간 배치가 나타나기도 하였다. 자연을 도입하고 자연과의 연속성을 고려한 건축이 나타났다.산업혁한 이름으로 환경 친화적 건축의 개념이 소개되고 있다. 이 중 몇 가지를 소개하려한다.- 생태건축(독일, Okologisches Bauen, 1979)환경 친화적 건축 가운데 세계적으로 가장 먼저 구체화된 개념이 독일의 생태건축이다. 이 명칭은 1979년 P.&M. Krusche 등이 연방환경부에 제출한 연구보고서의 제목을 결정하는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명명되었다.독일에서는 1960년대 이래로 획일화되고 비인간화되어 가는 근대건축을 지양하려는 대안으로 주택 및 주거단지, 도시를 하나의 인위적인 생태계로 구성하여 자연생태계에 유기적으로 통합하려는 시도로, 자연과 인간의 상호관계 및 생태계를 고려한 다양한 건축적인 시도와 개념들을 종합하여 자연 자원과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연계된 건축으로서 ‘생태건축’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정립하였다.생태건축의 에너지 흐름 개념도. 생태건축은 건축이 자연생태계의 일부가 되는 순환 시스템으로 자연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환경부하가 거의 없다.생태건축은 자연환경과 에너지를 생태학적 관점에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용하여 건강한 주생활 또는 업무가 가능한 건축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건축이 자연생태계의 일부가 되는 시스템을 지니고 있어 환경에 대한 부하가 거의 없이 자연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건축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생태건축은 종합 과학 기술로서 기존 건축 기술에서 진일보된 최첨단 기술이며, 자원의 순환체계와 통합되는 순환적인 건축 계획으로, 환경문제와 결부하여 인간과 환경이 공존하는 유기체로서의 건축 개념이다.생태건축의 개념은 한정된 범위의 단독 건축물만을 취급하는 개념이 아니라 주변 환경과의 연계라는 보다 광범위한 개념으로 건축물의 시공단계와 사용기간과 더불어 건축의 재료나 부품의 생사에서부터 시공, 사용, 파괴하여 폐기될 때까지 전체 기간을 순환적인 관계로서 환경에 대한 영향을 고려하는 개념을 가진다.3R의 개념이러한 주요 개념을 Recycle(재활용), Reuse(재사용), Renewable(재생가능성)이라는 3R의 개념으로 요약 수명이 끝난 후의 처리방법과 기술적인 시스템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므로 생태건축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건축에 사용되는 에너지와 재료가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에 관한 많은 연구가 사회전반 분야에서 필요하다.네덜란드의 Ecolonia의 주택 : 태양열 집열판을 설치하여 주택에서 사용되는 전기나 온수를 만들고 있다.독일의 Fraenkelufer Housing : 이 단지는 힌리히와 인켈발러에 의해 유기적이고 구조주의적으로 설계된 재건축 집합주택 단지이다. 전체 세대수는 87세대이며, 철근큰크리트로 시공된 5층의 집합주택이다. 건물의 전체 형태의 구성과 실내외 조경을 할 때, 자연적 요소를 많이 사용하여 아름다운 외부경관을 창조하였다. 특히 자연적인 수공간과 함께 계획된 외부공간은 매우 쾌적하고 자연스러우며, 곡선형의 발코니가 적용된 주거동과 함께 조화로운 내·외부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환경공생주택(일본, Symbiotic Housing, 1991)환경공생주택은 일본에서 지구환경문제와 도시의 거주 환경문제, 에너지와 자원의 급속한 소비의 증대에 따른 문제, 경제수준에 비해 떨어지는 주택의 질적 문제로 인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립된 개념으로 1991년 환경공생주택 위원회가 발족되면서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되었다.환경공생주택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생태계 내에서 서로 다른 두 종의 생물이 서로 이익을 주고받으며 함께 생활하는 ‘공생’의 개념이 강조되는 주택으로 지구 지역환경을 보전한다는 관점에서 지역의 특성이나 거주형태에 대응하여 자원과 에너지의 이용이나 폐기물 처리의 측면에서 적절한 배려가 이루어지고, 주변 자연환경과 친화되고 나아가 거주자가 주체적으로 참여하여 건강하고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환경과 사람에 적합한 거주 환경을 조성하도록 연구된 주택 및 그 지역 환경으로 정의하고 있다.환경공생주택의 가장 중요한 개념은 지구환경의 보전(Low impact), 주변 환경과의 친화성(High contact), 거주환경의 건강과 쾌적성(Health&Amenity)으로 다. 이러한 기준들을 모두 부응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점은 계획한 프로젝트가 인근 생태계 및 자연환경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기후에 대해 풍속이나 풍향, 태양광이나 강우량 등에 대해 조사하여야 하고, 지역의 경사나 토양방해물의 위치,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가 일어날 수 있는 낮은 지대인가 등의 지형도 살펴야 한다. 그리고 그 근처의 식생을 파악하기 위해 수목에 대한 조사도 해야 하며 야생동물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도 조사하여야한다.셋째로 에너지보존과 효율성을 생각하여 계획을 짜야한다. 건물의 에너지가 빠져나가지 않게 단열을 잘 해야 한다. 단열재를 충분히 사용한 건물은 냉난방부하를 감소시켜줌으로써 건물유지비를 경감시켜주기 때문이다. 단열재도 기포성단열재나 유리섬유 단열재는 온실가스를 유발하거나 호흡계 염증을 유발시키는 가스를 방출할 수도 있으므로 요즘은 해수에서 추출된 백운석과 기타 광물들과 혼합한 마그네슘복합물로 이루어진 에어크리트(air krete)를 선호한다. 조명과 환기, 개구부, 천장들도 건물에 있어서 열효율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창문틀이나 문등에서 에너지가 빠져나가지 않게 고단열 제품을 사용한다.그리고 냉난방 시스템이나 환기시스템에 대해서도 최적의 시스템을 고안해야하고 가장 경제적으로 거주자에게 쾌적한 실내공간을 제공할 수 있는 설비시스템을 찾아내야한다. 또, 조명은 전기에너지소비의 20%정도를 차지하므로 고효율 조명기기로 대체하여 절약하여야한다. 내부 마감재 및 색상도 큰 영향을 미치는데, 하얀색 마감재는 빛을 최대한 반사시키며, 부드러운 색의 표면은 빛이 반사되는 것을 막으니 유의하여 선택하여야한다.또한 소음공해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공기조화장치나 차음재, 고단열유리를 사용하여 소음을 줄여야한다. 절수설비(로우플러쉬방식의 화장실, 절수형 샤워꼭지) 등을 이용한 물사용량 감소도 고려해 줘야한다.로우플러쉬방식의 화장실자원의 보존이나 폐기물발생도 억제되어야한다. 자원보존을 위해 기존의 건물을 폐기하지 않고 리노
    공학/기술| 2008.01.19| 18페이지| 2,000원| 조회(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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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성리학 평가A좋아요
    한국의 성리학목차1. 성리학의 정의2. 성리학의 수용3. 최초의 주자학자와 한국의 성리학4. 양반사회의 통치이념화5. 한국도학(韓國道學)의 본질(本質)6. 이기론의 성립7. 심성설 위주의 이론탐구8. 성리학의 특성- 정주학의 특징. 주지주의의 특징. 예 숭상의 풍토. 명분론적 사고의 팽배.주지론의 보수성. 인존정신의 지향1. 성리학의 정의성리학은 그 발흥 시기와 대표적인 학자 및 그 경향에 따라 명칭이 다양하다. 송학(宋學) 명학(明學) 정주학(程朱學) 육왕학(陸王學) 성리학(性理學) 이학(理學) 도학(道學) 심학(心學) 등이 그것이다. 다만 세분될 경우 이 중의 송학 정주학 성리학 이학 도학이 한 계통의 경향으로 간주되고, 명학 육왕학 심학이 다른 한 계통으로 간주 분별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성리학이란 용어가 예로부터 즐겨 사용돼 왔듯이 정주계의 이학이 크게 발달하였다.성리학이라는 용어는 ‘생명의리지학(性命義理之學)’의 준말이다. 이 용어의 의미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성리학은 심성의 수양을 과거 어느 유학보다도 철저히 하면서, 동시에 규범 법칙 및 자연법칙으로서의 이(理)(또는 性, 이른바 의리)를 깊이 연구하여 그 의리의 의미를 완전하게 실현하려는 유학 중의 하나이다. 한 마디로 하여 존심양성(存心養性)를 지극히 중요시함으로써 종래의 유학을 형이상학적으로 재구성, 발전시킨 것이다. 사상적으로는 도와 불, 특히 불교의 영향을 받고 그 불교를 극복 하려는 의도에서 발흥하였기 때문에 불교적인 사상 경향과 체계를 닮은 유학이라 하여 지나친 말이 아니다.2. 성리학의 수용성리학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를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대체로 이것이 중국 송에서 발흥할 무렵, 즉 고려 인종대를 전후한 시기(11~12세기)부터 알려지지 않았나 생각 된다. 당시 고려에서는 송의 서적을 빈번하게 수집해 들었고, 외교 경로를 통해 대학자가 송에 가는 한편 중국 사신들이 고려에 빈번히 들어왔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여러 성리학자들이 심성의 수양을 위해 지극히 중요시 하는 중용의 용하는 가운데 그가 주자학에 밝은 것을 안 그곳의 학관들이 ‘동방의 주자’라는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고 전하여진다. 안향의 사후 1643년(인조 21) 장단의 유생들이 봉잠산(鳳岑山) 아래에 서원을 세웠는데, 이것이 임강서원(臨江書院)이다. 이 두 서원과 곡성의 회헌영당(晦軒影堂)에 제향되었다.조선조의 주세붕은〈죽계지서 竹溪志序〉에서 “고려의 사신(史臣)은 주자학에서 말하는 도(道) 라든가 이(理) 따위의 말을 몰랐기 때문에 그의 공적은 말할 수 있어도 그의 학문을 밝혀낼 줄은 몰랐다. 그리하여 나는 《고려사》를 읽을 때마다 안문성공전(安文成公傳)에 이르면 탄식을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중략)…… 역사는 그가 섬학전을 설치하고, 사후 문묘에 배향된 사실만을 들먹이는데, 식견의 비루함이 이와 같다.”라고 말했다.1542년(중종 37) 풍기군수였던 주세붕(周世鵬)은 영주군 순흥면 내죽리(內竹里)에 사우(祠宇)를 세우고, 이듬해 8월에는 송나라 주자의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을 모방하여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그곳에 세웠는데, 1549년(명종 4) 풍기군수 이황(李滉)의 요청에 따라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명종 친필의 사액(賜額)이 내려졌다. 한국의 성리학과 그 토대가 되었던 서원은 그들로부터 비롯된 것이다.고려말과 조선 초의 성리학자들- 백이정, 이제현, 이색, 권근, 변계량, 정도전, 정몽주,안향(安珦)의 문인백이정(1247(고종 34)∼1323(충숙왕 10)은 1298년 원(元)이 사신을 보내어 세자를 왕으로 삼고, 8월에 왕을 불러가자 충선왕을 따라 원의 연경(燕京)에서 10년간 머물러 있었는데, 그동안 주로 성리학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 연구하였고, 귀국할 때 정주(程朱)의 성리서적과 주자의 《가례 家禮》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 뒤 후진양성에 힘써서, 이제현(李齊賢)·박충좌(朴忠佐)·이곡(李穀)·이인복(李仁復)·백문보(白文寶) 등 많은 문인을 배출하였으며, 도학과 예학을 발전시키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성리학을 들여온 사람은 안향이색(李穡)을 스승으로 모시고, 그 문하에서 정몽주·김구용(金九容)·박상충(朴尙衷)·이숭인(李崇仁)·정도전 등 당대 석학들과 교유하면서 성리학연구에 정진하여 고려말의 학풍을 일신하고, 이를 새 왕조의 유학계에 계승시키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그는 뒷날 이황(李滉) 등 여러 학자에게 크게 영향을 미쳤다.변계량(卞季良:1369 공민왕 18∼1430 세종 12)은 1420년(세종 2) 집현전이 설치된 뒤 거의 20년간 대제학을 맡아 외교문서를 작성하였으며, 과거의 시관으로 선비를 뽑는 일에 지극히 공정을 기하여 고려말의 폐단을 개혁하였다. 그는 정도전(鄭道傳)·권근으로 이어지는 관인문학가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거창의 병암서원(屛巖書院)에 제향되었다.4. 양반사회의 통치이념화주선조의 개창과 더불어, 정도전과 권근의 성리학적 업적은 시선을 모을만하다.정도전은 설이학에 입각하여 불교를 철저히 배척하였다. 여말의 이제현이나 이색도 불교의 폐단을 들어 배불의 태도를 보였지만, 정도전은 불교사상 자체의 폐해를 들어 이론적인 차원에서 배척하는 적극적 태도를 보였다. 반면 사회윤리를 강화하고, 그리하여 국가에 이롭게 할 것은 불교 아닌 성리학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한편 권근은 불교와 같은 사상과의 대결의식은 갖지 않은 채 비교적 순수한 성리학의 연구업적을 쌓았다. 관점을 천인합일로 두고 인간심성에 대한 설명에 치중하연다, 즉 사단칠정과같은 심성에 역점을 두었다.5. 한국도학(韓國道學)의 본질(本質)도학(道學)이라는 말이 어떤 특정한 의미를 지니고 나오게 된 시기는 중국의 한대(漢代) 이후다. 송대(宋代)에 와서 도학의 의미는 더욱 구체화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도학이 송학(宋學), 이학(理學), 주자학(朱子學), 성리학(性理學) 등의 의미와 혼용하여 동양의 많은 문집이나 사서에서 사용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이들 명칭이 각각 다른 것처럼 그 의미도 상이할 것으로 볼 수 있겠지만, 중국의 한당대(漢唐代)를 거치면서 원시유학에 보다 설득력을 제고시켜 실천에 옮기도록 도움을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라고 말한다. 율곡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정암 선생은 참된 자아를 찾기 위하여 학문을 열심히 한 최초의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독실한 생활을 하는데 진력하였고 자득이 매우 깊었으며, 그의 몸가짐은 반드시 성인이 되려고 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정치의 현실에 참여하여 도학이 실현되도록 최선을 다하였고, 당시 군화의 마음을 바로 잡게 하여 왕도정치가 이루어지는데 전력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정의로운 길을 열어 놓았으며,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려는 마음이 자라나지 않도록 하는데 어느 일보다 우선으로 하였다는 것이 율곡의 지적이다. 이러한 정암의 도학실천에 영향을 받아 당시 선비들의 부(富)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이익에 매달려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실천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고 하여, 정암의 도학사상의 영향이 매우 컸다는 평가를 율곡은 이렇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율곡의 지적과 평가에서 몇 가지 정리도어야 할 내용들이 있다. 그것은 먼저 사사로운 이익의 추구를 마음속에서 억제하여야 한다는 내용이고, 다음은 그러한 마음의 억제가 가져오는 결과다. 전자는 마음에 뜻을 두고, 그 뜻이 잠시도 자신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하기위한 일련의 내용으로 입지(立志)와 명지(明知)가 지적된다. 입지는 뜻을 세우는 일이고, 명지는 그 뜻을 지속적으로 지니기 위한 인식의 확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지 않고는 외부의 유혹에 의하여 사욕에 빠지기가 쉽고, 따라서 세운 그러한 뜻은 단절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리고 후자, 즉 마음의 억제가 가져오는 결과는 입지와 명지가 독행(篤行)으로 이어지는 내용이다. 입지가 명지된 것을 착실하게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독행이다.이러한 독행을 통해서 만이 이익(利益)은 타익(他益)으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타익의 확대가 가능해지고, 이렇게 됨으로써 사회의 공익과 안정이 효과적으로 증진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일련의 내용을 율곡은 도학으로 정의하고 있다.지금까지 살펴본 도학에기로 해석, 이를 위주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일뿐 기를 위주로 말함이 아니니 사단이 이것이고 기를 위주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이지 리 밖의 기를 말함이 아니니 칠정이 이것이라고 하였다.고봉의 의문점은 다음으로 사단이란 칠정에 포함되는 정인만큼 사칠을 서로 대비함이 불가하며 다음으로 이기가 정과 같은 실제적인 경우에 떨어지지 못하는 관계에 있는만큼 이기를 따로 떼어 사칠에 분속시켜 이해하는 것이 무리라는 것이다. 또한 호발을 근거로 이기의 독자적 발생을 논한 퇴계에 대해 실제로 발생되는 것은 유작위한 기의 경우에만 가능할 뿐 무작위한 이의 경우에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율곡도 퇴계의 호발을 반대한다. 왜냐하면 어리애가 우물에 빠짐을 본 뒤에야 측은한 마음이 발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을 보고 측은히 여기는 것은 기이므로 기발이라는 것이고 측은한 마음의 근본은 인이므로 이것을 리승이라 한 것이다.율곡에 의하면 사단칠정은 부분적인 정과 전체적인 정의의 차이에 있을 뿐, 부분과 전체를 서로 대비하는 것이 우선 부당하다고 하였다. 우리가 지켜야 할 사단이 어떤 절대적이고 초월적안 원리가 아니라 현상적이며 가변적일 수 있는 윤리성으로 보려고 한다.퇴계의 그것이 절대적이고 초월적이라면 율곡의 그것은 상대적이고 현상적이다. 여기서 율곡의 이기론은 퇴계의 특성에 비하여 주기적인 성격을 지니게 되고 철학계의 양반 논전투쟁을 전개하게 된다.8. 성리학의 특성정주학의 특징우선 지적할 수 있는 특징은 정주계 성리학의 풍토가 지배적이라??? 점이다. 육왕계의 심학은 일찍이 15세기 말부터 전하여져 학자들 사이에서 상당히 연구되었던 듯하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그것은 유입초기부터 퇴계 등 정주 계통의 학자들로부터 이단시 되어 심한 배척을 받았다. 특히 17세기 경부터 정주계의 학자들은 주희의 이론과 조금만 달라도 ‘사문난적’이라 탄압하였다. 그런 까닭에 육왕계의 성리학에 호감을 가진 학자들이 간혹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체계있게 연구하지 못했다. 그나마 그 연구를 시상에 드러내지 못하였다
    인문/어학| 2007.12.08| 13페이지| 2,000원| 조회(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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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우하우스에 대하여
    바우하우스에 대하여1910년 전후의 유럽에서의 움직임은 이상과 같이 모든 19세기적인 것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메카니즘에 돌입하기 시작한 것을 알 수가 있다. 19세기에는 과거의 양식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부단히 20세기의 새로운 양식을 준비해 왔다. 그리고 그 20세기 양식이란 이제 바야흐로 과거와는 전혀 차원을 달리하는 메카니즘을 주체로 한 무기적(無機的) 시대를 특징짓는 양식임을 명시하였으며, 거기에서는 어떠한 전통도 시각적 대상도 일소됨으로써 두뇌에 의한 추상 창조와 기능과 형체의 문제가 핵심이 되고 있었다. 이러한 20세기의 시대적 조형의 방법론을 기초로 하여 현대의 디자인 이념을 확립하는 것이 다름 아닌 ‘바우하우스’였다. 이 새로운 학교는 그때까지의 작센 바이마르 대공립 미술학교와 공예학교를 병합, 발터 그로피우스를 교장으로 하여 1919년에 개교했다. 그 이름은 ‘국립 바이마르 바우하우스 (Staatliches Bauhaus in Weimar)’로서, 향후 십여년에 걸쳐 유럽의 창조적 노력의 최고 중심이 되었다. 1918년에 그로피우스는 츄링겐정부로부터 당시 바이마르에 있던 두개의 학교, 작센대공립 미술학교와 공예학교를 하나로 통합하도록 의뢰받았다. 그로피우스는 건축가로서의 그 능력이 이미 알려져있었는데 대전을 계기로 건축관이 넓어져있었다. 그는 아카데믹한 미술학교와 실제적인 공예학교를 통합하고자 하였고 당시 그로피우스와 같은 생각을 가진 벨데가 공예학교의 교장이 되어있어서 그 일은 더욱 쉬웠고 그로부터 ‘국립 바이마르 바우하우스 (Staatliches Bauhaus in Weimar)’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처음 바우하우스는 나중에 높이 평가된 것과 같은 근대적 이념을 지니고 있진 않았다. 최초의 교사진이 베를린의 ‘슈트럼화랑’의 멤버로 구성된 것으로 알 수 있듯이, 현저하게 표현주의적이었으며 문학적이었고 또한 수공예적이었다. 교사로는 요하네스 이텐(Johannes Itten), 라이오넬 파이닝거(Lyonel Fe 목적은 ‘모든 예술적 창조성을 모아 하나로 통합시키고 모든 예술 훈련을 재결합시켜서 새로운 건축을 만들어낸다.’는 데 있었다.”라 하고 있다.이 시기의 주요 인물들 중엔 맥스웰 프라이가 있었는데 그는 그로피우스가 영국에 머무는 동안 그와 함께 일했다. 프라이는 런던 햄스테드의 선 하우스로 유명한데 1933년 베르톨트 루베트킨, 웰스 코츠, 오브 아럽 등 모더니스트들과 같이 현대건축연구모임(MARS)을 발족했다. 이들은 유럽의 합리주의 이론을 영국에 도입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 한편 런던을 합리주의적 선형평면으로 재건축한다는 계획안은 큰 논쟁거리 였다고 한다.바우하우스의 교사를 설명하자면, 큐비스트이자 음악가이기도 한 라이오넬 파이닝거, 조각가 게르하르트 마르크스, 스위스의 화가이자 미술교육가인 요한네스 이텐이 있었고, 1920년에 게오르그 무페, 폴 클레, 무대예술의 오스카 슐렘머가 참가하였고, 1921년에는 로터 슈라이어가, 1922년엔 칸딘스크, 1923년엔 헝가리 태생의 모홀리 나기가 가담함으로써 가까스로 전후 교사 부족에 시달리던 바우하우스의 체제가 정비되었다. 특히 이텐은 커리큘럼의 기초과정을 담당, 당시의 학생들에 대한 그의 영향력은 대단하였다고 한다. 이와같이 저명한 예술가들의 참여로 운행된 바우하우스는 얼마나 대단하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하지만 1923년 그로피우스와의 의견 대립으로 이텐이 학교를 떠나고 기초과정을 요제프 알버스와 모홀리나기가 담당하면서 표현주의적이라 불리던 시대가 막을 내렸다. 바우하우스의 역사에 있어서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다. 1923년에 외부로부터 ‘데 스틸’의 대변자 되스브르크에 의해 영향이 가해졌다.여기서 ‘데 스틸’은 입체파에서부터 비롯된 추상미술을 조형예술 전 분야에 걸쳐 본격적으로 전개시킨 최초의 운동으로 네덜란드의 라이덴에서 결성한 조형예술운동 그룹이다. 그들은 회화, 건축, 산업 디자인을 막론하고 모든 공간을 동일한 평면으로 간주하여 기하학적 형태와 삼원색을 기본적인 조형 요소로 적용하였다. ‘데 스틸’은스로 하여금 초기의 표현주의적 사고를 버리고 합리주의적인 디자인 사고를 취하게 했다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어쨌든 바우하우스가 근대 디자인 운동의 정점으로 될 수 있는 기초를 확립한 것은 1923년경이었다.1924년 말 우경화된 정부의 탄압으로 바우하우스는 폐쇄위기에 처해졌지만 데사우 시장 프리츠 헤세의 노력으로 25년에 ‘데사우시립 바우하우스’로서 재흥되고 거의 모든 교사와 학생은 데사우로 옮겨왔다. 바이마르 때완 형식상 차이가 거의 없었으나 알버스의 물질적 형태교육이나 모홀리나기의 추상적 형태교육은 이텐이 있을 때와는 많이 달랐다. 데사우 시대의 디자인의 경향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것은 바우하우스 새 캠퍼스의 건축이었다. 바이마르에서 데사우로 이전할 때 그로피우스는 새 학교 건물을 설계하는 임무를 맡았다. 바우하우스 모더니즘의 모델이 된 이 건물에서 버섯 모양 기둥들은 캔틸레버 처리된 콘크리트 바닥 슬라브를 지탱하고 3층 높이의 유리벽이 전체 공간을 감싸고 있다. 이처럼 그로피우스는 유리나 콘크리트 등과 같은 새로운 재료를 사용했을 뿐 아니라, 당시 발전 중이던 모더니즘의 공간 및 사회학적 측면에도 관심을 가졌다.또 바우하우스의 디자인 가운데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것으로 브로이어의 의자가 있는데 이 의자는 바실리 의자라고도 불린다. 바실리 의자인 이유는 브로이어가 바실리 칸딘스키의 이름을 따서 강철 파이프와 가죽으로 만들었다고 해서이다. 최초의 튜뷸러 스틸 의자(Tubular Steel Chair)이다. 가구의 재료로 천 또는 가죽이 사용되었고, 밴딩된 스틸 튜브 프레임을 볼트 체결방식으로 조립하였다. 재료에 대한 정확한 해석과 뛰어난 조형성, 완벽한 비례감각, 절대적인 품질을 유지하는 이 의자는 오늘날까지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20세기를 대표하는 의자 디자인이 되었다.또 현저하게 수공예에 기울어 있던 금속공방은 1923년 모홀리나기가 담당하면서 급속히 공업화에의 경향을 보이게 되어, 예컨대 명쾌하고 단순한 형태의 조명기구가 고안되었다. 그리고 타이포어는 바우하우스 내부에 공산당 세포조직이 결성되어 바우하우스의 생산적 활동을 불가능하게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장이 이를 저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퇴직명령을 받았고 마이어의 뒤를 이어 미스 반 데 로우에가 학장이 되었다. 하지만 미스가 학장이 된 후 나치스의 압박은 점차 강화되어, 드디어 1932년 데사우시 참 의회는 10월 1일 부로 바우하우스를 폐쇄할 것을 결정하였고, 미스등 교수와 많은 학생들은 베를린에서 다시 바우하우스를 시작하였으나 1933년 나치스에 의해서 완전히 폐교되고 만다. 하지만 이로부터 바우하우스가 끝이라고 볼 수 없었다.모홀리나기는 미국에 망명하였고 당시 이미 독일로부터 나와 하버드대학의 건축과 교수가 된 그로피우스를 고문으로 1937년에 ‘뉴 바우하우스 아메리칸 스쿨 오브 디자인(New Bauhaus American School of Design)’을 발족하였다. 이것은 한때 ‘인스티튜드 오브 디자인(Institude of Design)’으로 이름을 바꿨다가 일리노이공과대학에 합병되어 오늘에 이르고 만다. 또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51년 울름에서 데사우 바우하우스 출신인 맥스 빌에 의해 ‘뉴 저먼 바우하우스(Hochschule fur Gestaltung)'이 설립되었으나 1968년에 정치적 이유로 폐교를 당했다.만약 바우하우스가 없었다면 제대로 된 현대적 타이포그래피는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허버트 바이어가 1924년 산세리프체인 유니버설 체를 개발하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또 요세프 알버스와 요하네스 이튼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예술가들과 디자이너들에게 적절한 과학적 색채 이론을 제공해 줄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마르셀 브로이어가 디자인한 강철 프레임 의자, 또는 남성 위주의 세계에 충격타를 날린 마리안느 브란트의 재떨이와 테이블 램프에서부터 커피포트에 이르는 온갖 금속 소품처럼 바우하우스 디자인은 하나하나가 그들의 추종자들에게는 일종의 희망이니 말이다.예술이나 디자인의 교육은 오늘날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기술의 레벨, 산업의 The color star, Johannes Itten, 1997Stydy to Erwachende, Gerhard Marcks, 1927게오르그 무페Still Life With Fruit, Georg Muche, 1925폴 클레Segelschiffe, Paul Klee, 1927모홀리나기Two nudes, Moholy Nagy, 1925The dolls, Moholy Nagy, 1926바우하우스의 목적바우하우스는 모든 창조적 노력을 하나의 전체로 통합하고 조각?회화?수공예?공예 등 모든 실용미술의 교육을 새 건축에 꼭 필요한 요소로서 다시 결합하고자 힘쓴다. 바우하우스의 궁극적인 목적은 비록 요원하긴 하지만 기념적인 미술과 장식적인 미술의 구별이 없는 통일된 미술작업, 즉 대건축에 있다.바우하우스는 모든 수준의 건축가?화가?조각가들을 그들의 능력에 따라 교육시켜 유능한 공예가와 독립적인 창조적 미술가가 되게 하여 미래의 지도적 미술가와 공예가를 위한 작업 공동체를 형성하고자 한다. 서로 연계되어 있는 이들은 건축물을 전체적으로, 즉 구조?끝손질?장식?가구 등에 있어서 조화 있게 디자인하는 방법을 구축하게 될 것이다.바우하우스의 영향바우하우스에서 물러난 그로피우스는 퇴임 2년 후인 1930년에 독일공작연맹의 의뢰를 받아 파리의 장식미술가 협회에서 주최한 의 독일 부문을 기획했다. 독일관에는 근대 가구, 일용품, 공예 디자인의 발전에 미친 독일의 공헌도가 집약되었지만 그 전시품은 모두 바우하우스의 제품만은 아니었다. 그리고 독일관은 5개의 전시실이 할당되었는데 라운지는 그로피우스가, 모홀리 나기와 마르셀 부로이어는 각기 전시실 하노씩을, 그리고 헬베르트 바이어는 2개의 전시실을 디자인했다. 2개월 동안 열린 이 전시회는 오랜 기간에 걸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다.한편 미국에서는 근대미술관 주최로 그로피우스의 지도 아래 전개되었던 바우하우스 시절의 회고전이 열렸다. 이 전시회에 출품되었던 작품들은 그로피우스와 바이어에 의해 같은 제목의 책으로 편집, 발행되었는데,되었다.
    예체능| 2007.10.16| 9페이지| 1,500원| 조회(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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