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 E P O R T문명이란 무엇인가?과 목 명 :담당교수 :소 속 :학 번 :이 름 :목 차1. 문명의 정의문명이란 무엇인가?4대 문명이집트 문명메소포타미아 문명인더스 문명황하 문명2.「문명의 충돌」과 「문명의 공존」1. 문명의 정의문명이란 무엇인가?지구상의 모든 생명들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진화해 가면서, 수십억 년의 세월을 거쳐, 지금의 문화를 이룩하였다. 그 중에서도 ‘문명’이라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영위하고 있다.아주 오래전, 고대사회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현재까지, 인간은 끝없는 발전을 거듭해 가며 성장해 왔다. 현대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과거의 문명을 배우는 이유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라이프 스타일(life style)의 전반적인 것들이 오랜 시간을 거쳐온 문명을 주축으로 하여 형성되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어진다.그렇다면, 그 문명이라는 개념의 의미는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에 접근했을 때의 문명은, 인류가 이룩한 물질적 ? 사회적 발전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문명이라는 용어는 실제에 있어 매우 다양한 뜻으로 쓰이나 문화와 대치(對置)되는 것으로 파악하는 입장과 문화의 특수한 한 형태로 파악하는 입장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전자는 독일철학이나 사회학에서 전통적으로 볼 수 있으며 인류의 정신적이고 가치적인 소산을 문화라고 하는 데 대하여 물질적 ·기술적 소산을 문명이라고 한다. 이 견해는 통속적인 용법으로 널리 보급되어 사용되고 있다.후자의 견해는 제 2차 대전후 문화인류학의 보급에 따라 일반화되었다. 여기에 따르면 문화 중에서 도시적인 요소, 고도의 기술, 작업의 분화, 사회의 계층분화를 갖는 복합문화(문화의 복합체)를 큰 단위로서 파악한 총체를 문명이라고 한다. 전자의 입장 가운데 A.베버에 의하면 문명은 주체(主體)를 떠나 직선적으로 발전, 누적되어 무한하게 진보하는 기술적 수단의 총계(總計)이지만 문화는 주체와의 관련 하에 일회에 그치는 역사적 개체이며 누적되는 것이 아니므로 진보라는 척도로써는 측정할 수 없다한다.)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문명의 발생지와 발생기에 대해서는, 정설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BC 4000년대 오리엔트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각 문명의 기원을 보면, 이집트 문명은 BC 2800년경, 미노스 문명은 BC 2600년경, 하라파 문명은 BC 3000년기(紀)의 중간, 중국 문명은 BC 2000년 초, 신대륙의 문명은 BC 1000년대 전기(前期)로 보고 있다. 한때 세계의 고대문명이 단일문화로부터 전파되었다고 하는 설(예:이집트기원설)도 있었으나 현재 이를 인정하는 사람은 없다. 문명의 기원을 큰 하천의 유역에 한정시키거나, 관개시설 또는 유목민에 의한 농경민 정복에서 구하는 등의 여러 설이 있으나 모두 부분적으로 해당할 뿐, 모든 고대문명에 해당하는 일반론으로서는 인정되지 않고 있다.큰 강 유역을 중심으로 공동체사회가 형성되고, 그 공동체는 촌락의 개념으로 발전하고, 그 촌락은 다시 도시국가로 성장하였다.그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 바로 ‘문명’이었다. 생산량의 증가와 인구의 증가는 도시국가의 발전으로 이어지고, 사람들은 먹고사는 것만의 문제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측면에 더욱더 다가서게 되었다. 언어가 만들어지고, 사람과 사람사이에 법이 만들어지고 화폐가 등장함으로써 사회규모가 확대 되었다. 농경이 발달하면서 인간에게는 잉여재산이 생겨났다. 이렇게 되자 여분의 생산물은 개인이 소유하게 되었고, 이를 소유할 수 있는 자는 지배 계급으로 등장하였다. 그에 따라 빈부격차와 계급이 생겨났다.또한, 문자가 만들어지고 ‘기록’의 개념이 형성되면서 문명은 비약적으로 발전되었다. 문자를 사용함으로써 인간 생활이 기록으로 보존될 수 있어 '역사 시대'로 접어든다. 그 이전의 시대는 역사로 기록되기 이전의 시대라는 의미로 '선사 시대'라 한다.4대 문명이집트문명, 메소포타미아문명, 황하문명, 인더스 문명을 의미하는 세계 4대 문명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앞으로 수업시간을 통해 배우게 될 4대 문명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았다.이집트 문명나일 강 하류의옥한 토지에서 이집트 문명은 이루졌다. 이집트는 지리적 위치가 폐쇄적이어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비해 정치·문화적 색채가 단조롭다. 이집트는 사막과 바다로 둘러 싸여 있어서 외부의 침입없이 2000년 동안 고유 문화를 간직할 수 있었다.이집트는 '헤로도투스'의 말처럼 '나일 강의 선물'이라 할 만큼 나일강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집트는 나일강과 주변의 기름진 토양을 바탕으로 일찍 농경이 발달하였다.해마다 겪게 되는 나일강의 범람은 상류의 비옥한 퇴적물을 운반하는 작용을 하였으므로 나일 강변은 풍요로운 땅이었다. 나일 강의 홍수는 주변의 모든 것들을 진흙 속에 묻어 버렸다. 그러나 이런 홍수는 규칙적으로 일어나서 미리 예측을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집트인들은 농사의 시기를 조절할 수가 있었다. 이런 나일 강의 범람 때문에 태양력·기하학·건축술·천문학이 발달하였다. [이집트의 변천] 함 족(Ham)이 40여 개의 도시 국가(Nomos)를 세웠다가 (B.C 4000년경), B.C 3500 년 경에는 상·하 두 왕국으로 통합되었고, B.C 3000년경에는 통일 왕국이 성립되었다.메소포타미아 문명메소포타미아는 '두 강 사이의 땅'이란 뜻으로 비옥한 반달 모양의 티그리스 강, 유프라테스 강 유역을 중심으로 번영한 고대 문명이다. 바빌로니아·아시리아 문명을 가리키나 넓게는 서남 아시아 전체의 고대 문명을 지칭하는 경우도 있다.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지리적 요건 때문에 외부와의 교섭이 빈번하여 정치·문화적 색채가 복잡하였다. 폐쇄적인 이집트 문명과는 달리 두 강 유역은 항상 이민족의 침입이 잦았고, 국가의 흥망과 민족의 교체가 극심하였기 때문에 이 지역에 전개된 문화는 개방적, 능동적이었다. 메소 포타미아 문명은 주위의 문화적 파급과 후세의 영향을 고려해 볼 때 세계사적 의의가 크다.인더스 문명B.C 3000년기 중엽부터 약 1000년 동안 인더스 강 유역에서 청동기를 바탕으로 번영한 고대 문명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영향을 받은 듯 하다. 우리가 알 수 있는 인도의 역사는 세계대 문명의 발상지 가운데 하나로서의 인더스 문명부터이다. 20세기 초 시작된 모헨조다로와 하라파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알려지게 된 인더스 문명은 대략 기원전 3000년경에 시작된 농격문화였다. 이 시기는 고대 이집트나 앗시리아 그리고 바빌로니아의 문명과 거의 동시대이다. 인더스 문명은 동기 문화를 가지고 나름대로 잘 정비된 도시체계를 갖춘 상당히 발전된 모습을 지니고 있다.하지만 아직까지도 그들의 글자(표음문자 형식)를 정확히 해독할 수 없음으로 인해 그 시대의 완전한 모습을 그려낼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다. 드라비다인에 의해 이루어진 이 문화는 그후 기원전 2000년(혹은 1500년)경부터 이주하기 시작한 아리아인들의 베다문화에 의해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황하 문명중국 황허강 중류, 하류 지역에서 발생한 문명이다. 종래는 문명을 미개의 상대적인 말로 이해하고, 문자의 발명과 도시의 성립 등에 중점을 두어, 황허 문명의 연도도 청동기 시대 이후로 보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문명을 문화의 가치 체계를 떠받치는 물질적·기술적 기초라고 정의할 경우, 황허 문명의 연대 범위는 농경이 시작된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가 나타난 은나라, 철기가 거의 완전히 보급된 전한시대(前漢時代)까지라고 할 수 있다.황하 유역의 황토층에서 발생한 문명으로, B.C 5000년 ∼ 4000년경부터 신석기 문화가 이루어졌으며, 좁쌀·기장 등이 재배되고 개 ·돼지 등도 사육되었다.황허강 유역의 신석기 문화는 양사오 문화와 그로부터 발생한 룽산 문화 두가지로 대별된다.양사오 문화 - 확실치는 않으나 B.C4000 ∼ B.C 2000년 경이며, 칠무늬 토기를 만들어 썼다. 대표적인 곳이 허난성의 양사오이므로 이 문화를 양사오 문화라 한다.(황하 상류)룽산 문화 - B.C 2500 ∼ B.C1500년경이라고 추정된다. 황하 하류와 동아시아 전체에 걸쳐 검은 간 토기가 사용되었다. 그 중심지가 산둥성의 룽산이므로 이를 룽산 문화라 한다. (황하 하류)문명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인간이 만들어물질적이고 정신적인 진보라 할 수 있다.문명발생의 근본적인 요인을 생산력의 일정한 수준에서 구하는 이론은 일반론으로서는 인정할 수 있지만, 개개의 문명 사례(事例)에 대해 개별적 ·구체적 논증은 충분히 얻지 못하고 있다.2.「문명의 충돌」과 「문명의 공존」문명의 충돌 (새뮤얼 헌팅턴)이데올로기의 대립에 억눌려 역사 흐름의 표면에 나타나지 않고 있던 문명간의 갈등이 냉전 이후 세계질서의 기본축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담고 있는 책. 이 책의 지은이 헌팅턴이 바라보는 장래 세계에서 경쟁과 대항의 주체는 바로 '문명'이다. 여기서 말하는 문명은 야만과 대비되는 문명이 아니라, 언어, 종교 등 여러 가지 문화적 특질의 집합체로서 세계 여러 지역에 자리잡아온 문명권을 말한다.문명권을 구분하는 1차 기준은 종교다. 이에 따라 기독교권, 그리스정교권, 이슬람권, 유교권, 불교권, 힌두권 등이다. 여기에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일본권이 추가된다. 헌팅턴 가설의 요점은 인류의 가치 체계가 하나로 통일된다는 일원론, 냉전 시대와는 대립의 형태를 바꿀 것이라는 이원론에 대항해 다양한 가치 체계가 복잡한 상호 관계를 펼쳐 나가리라는 전망이다.세계정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문화와 문명의 괘선을 따라 재편될 것이다. 또 문명 내의 갈등과 분쟁보다 문명간의 단층선을 따라 벌어지는 갈등과 분쟁이 중요하게 될 것이다. 결국, 헌팅턴이 보기에 탈냉전 세계는 일곱 내지 여덟 개의 주요 문명으로 이루어지는 세계다. 문화적 동질성과 이질성은 국가들의 이익, 대결, 협력 양상을 규정한다. 확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국지적 분쟁은 판이한 문명에 속한 집단이나 국가간의 충돌이다. 정치 경제적 발전의 지배적 양상은 문명과 문명마다 다르다. 요점은 국제 문제에서 중요한 사안에는 문명의 차이도 들어간다는 것이다.헌팅턴이 예측하는 앞으로의 세계는 어떤가. 그것은 장기간 주도권을 행사해 온 서구 문명으로부터 비서구 문명으로 힘의 무게 중심이 옮겨 가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정치는 다극화, 다문명화되었
장식 미술의 기원에 대해서 가장 근원적인 것을 생각한다면, 그림 문자(圖書文字)의 발생은 매우 원초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원시시대(原始時代)에 언어(言語)가 미처 발달하지 못한 상태에서 서로 의사 전달의 수단으로 쓰였던 신성(神聖)한 표시나 기호(記號)가 그림의 시원이 되었고, 더 나아가 문자의 시원이 되었으며, 또한 공예, 조각 등 모든 조형 미술의 시원 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가령 인류가 어떤 신앙적 목적으로서, 혹은 의사 전달 수단의 일종으로 큰 나무와 암벽(巖壁)에, 또는 바위, 자갈, 동물의 골각(骨角) 등에 어떠한 형상을 선각(線刻)하거나 채색(彩色)으로 표현하였을 때, 그것이 자연 그 대로의 상태이거나 인간이 공리적(功利的) 혹은 유희적인 목적으로 변형시킨 상태이든 자연 현상은 예술의 근본이 되었다.
와 당 Report(瓦當)【목 차】와당이란 무엇인가?와당의 목적과 기원기와란 무엇인가?시대별 와당의 변천사처마 끝의 신비로움, 와당와당이란 무엇인가?수막새를 줄여서 막새라고도 하며, 와당이라고도 하기도 한다.재래식 골기와 지붕의 처마 끝을 꾸미는 수키와, 또는 그 수키와 끝에 달린 무늬가 새겨진 부분을 말하며, 드림새. 막새기와. 묘두와. 수막새 등으로 불리운다.또한 보통 기와로 처마를 이었을 때, 수키와의 아가리를 회로 막은 부분(아귀토)을 말하기도 한다.삼국의 와당(수막새)은 삼국 문화의 성격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백제의 와당은 우아하고 섬세한 선으로 표현되었으며, 고구려의 와당은 힘차고 굳센 느낌을 준다. 반면에 신라의 와당은 소박하고 고졸한 양식이다.조각의 측면에서 비교하면, 백제 와당의 연꽃무늬 조각은 고구려 와당의 연꽃무늬나 신라 와당의 연꽃무늬 조각과 형태미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고구려 와당의 연꽃무늬는 고부조로 높게 조각되어 마치 복숭아 씨앗과 같은 모양을 보이고, 신라는 투박하고 넓적한 저부조의 형태였다가 통일직후부터 섬세하고 화련한 연꽃무늬가 기와에 등장하게 되었는데, 백제 와당의 연꽃무늬는 넓게 조각된 꽃잎에 전체 형태가 우아하고 부드러운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막새라고도 한다. 수막새·암막새 등이 있다. 기와 한쪽 끝에 둥글게 모양을 낸 부분으로, 처마 끝에 놓이는 수키와나 암키와에 달리는데, 원형(圓形) ·반월형(半月形) ·삼각형(三角形) 등이 있으며, 여러 가지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중국의 경우 진(秦)나라가 전면적으로 원형 와당을 채택한 이후로는 한(漢)나라 초의 약간의 반월형을 제외하고 모두 원형이 되었다. 가장 오래된 것은 진나라 아방궁(阿房宮)의 것이며, 한국에서는 황해도 봉산군토성(土城)과 대동강남쪽의 토성 등에서 발견된 것이다.그 영향을 받은 한국도 삼국시대이전까지는 그 모방에 그쳤으나 그후 독자적으로 발전하여 신라시대에는 뛰어난 와당이 만들어졌고 기술은 일본으로 전해졌다. 고려시대에 이르러 질이 점점 저하되었고 말를 비롯한 풀무늬 ·인동(忍冬)무늬·도깨비무늬 ·사자(獅子)무늬 ·보상화(寶相花)무늬·사람얼굴무늬 등이 있다.고려시대에는 질이 점차 낮아졌으나 뱀눈(蛇目)무늬의 와당 등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조선시대에도 파와에 도깨비무늬 ·봉황무늬 ·연꽃무늬 ·범자(梵字)무늬 등이 있으며, 당초와(唐草瓦)에는 화초(花草)무늬 ·번룡(蟠龍)무늬 등이 있으나 그 질은 신라와당에 비하여 현저하게 떨어진다.수막새 기와암막새 기와와당의 목적과 기원인류가 지붕을 잇는 건축 재료로 점토를 빚어 구워 만든 도제품(陶製品)의 개와(蓋瓦)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인데 동양에서는 중국 하(夏)나라때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여 전국(戰國)시대, 진(秦)나라를 거쳐 한대(漢代)에 크게 성행되어 많은 발달을 보게 되었다. 이에 영향을 입은 우리 나라는 낙랑(樂浪)시대부터 일부 건물에 기와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거의 대다수가 중국의 기와를 모방한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목조건물을 건립하고 지붕에 기와를 덮는 건축양식이 유행하기 시작한 삼국시대부터는 창의적이고 특색있는 양질의 기와가 다량으로 생산되고 개발, 보급되어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기와로 발전되었다.우리나라의 기와는 일반적으로 그 형태와 용도에 따라 암키와, 수키와, 내림새, 막새, 와당(瓦當), 망와(望瓦) 등으로 분류되며 이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기와는 평기와(암키와)와 둥근기와(수키와)라고 할 수 있는데 와당(瓦當)은 이들 기와의 처마끝 막새기와의 마구리기와를 말하는 것이고 갖가지 문양(文樣)을 조각하여 장식을 하고 멋을 낸 장식용재(裝飾用材)이다.와당은 암키와와 수키와가 형성한 기왓골과 기왓등의 가장자리로 빗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막음하는 막새기와이다. 암키와는 큰 원통을 세로로 4등분한 형태, 즉 호형(弧形)이므로 평와당(平瓦當)이라고 하며, 수키와는 원통을 2등분한 형태이므로 원와당(圓瓦當)이라고 한다.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와당에는 그 시대의 특성을 반영하는 개성있는 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통일신라 말기의 연판무늬를 계승했으며 평면적이다. 조선시대에는 형태와 문양이 더욱 장식화되고 퇴보하지만 제작시기·관계자의 이름 등을 양각하는 것이 유행하여 전시대와 구별된다.기와란 무엇인가?지붕을 덮는 데 쓰는 건축 부재. 점토를 재료로 하여 모양을 만든 뒤 800~1,000℃의 가마에서 구워낸 것이다. 목조건물의 지붕을 덮어 눈과 빗물의 침수와 이로 인한 목재의 부패를 방지하고, 건물의 외관을 장식하는 기능을 갖는다. 점토제 기와의 기원은 바빌론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목조건물에 기와를 덮는 풍습은 고대 동양건축의 특색 중의 하나로 중국 주대(周代)부터 시작되었다. 실제로 서주 초기(BC 11세기말) 섬서성 궁전터에서 마루용기와[棟瓦]가 출토되었고 단편적이나마 문헌기록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춘추시대말에는 수키와[圓瓦]와 암키와[平瓦]가 형성되었고, 전국시대에는 타원형의 막새기와[瓦當]를 붙이기 시작하였으며, 진(秦)·한대(漢代)에는 원형 와당이 널리 사용되었다.우리나라에 기와 전래의 시기는 한사군설치 이후인 BC 2~1세기로 보이며 한 계통의 문자와당과 고사리무늬 와당이 실제로 낙랑군지에서 발견되었다. 이것이 4세기초까지 사용되다가 삼국시대에 불교전래와 함께 연꽃무늬가 새겨진 숫막새가 제작되는 등 우리나라 고유의 와당이 성립되었다. 백제는 고구려 영향 아래 있다가 공주천도 이후에는 유연한 단잎의 원형 연꽃무늬가 특색인 중국 남조 기와의 영향을 받아 우아한 백제 특유의 양식이 성립되었고, 이것이 와박사(瓦博士)라는 전문 기와기술자를 통해 고신라와 일본 아스카 시대[飛鳥時代]까지 파급되었다. 신라는 가장 늦게 받아들이기는 했으나 6세기 중반부터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가 통일신라시대에는 완성기에 이른다. 삼국시대까지는 수키와·암키와·막새기와·치미 등에 국한되었던 것이 통일신라시대에는 여러 종류의 장식기와와 특수기와가 활발히 제작되고 문양도 화려해져 건축의장으로서 최고의 수준에 이르렀다. 귀면와(鬼面瓦)도 성행했고, 유약을 입힌 녹유기와[綠釉瓦]도 출현했다.고려·조선 건물에 처음으로 사용되었는데, 이때에는 평기와[平瓦] 처마에 아직 와당(瓦當)이 발달되지 못하였으나, 중국 육조시대(六朝時代)에는 연화(蓮華)무늬의 원와당이 발달하였다. 삼국시대인 고구려·백제·고신라의 기와는 주로 육조시대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고구려는 전통성을 살려 소용돌이꼴 무늬에 특색이 있는 다양성을 보였으나 백제에서는 간소한 연화무늬로 남조(南朝)의 강한 영향을 보이고 있다. 특히 고구려·백제의 유적에서 평기와의 처마끝에 지압(指壓)무늬(손 끝으로 누른 무늬)가 발견된 것은 처마평기와[軒平瓦]가 와당으로서의 원초적 형태를 반영한 것이다.기와의 형태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은 암키와(평기와)와 수키와(둥근기와)인데, 이 기와를 합쳐서 하나로 만든 것도 있다. 일반적으로 지붕은 산자 위에 진흙을 이겨 얇게 편 다음, 위·아래로 암키와를 걸치고 좌우의 이음매에 수키와를 덮는다. 그리고 처마 위에 비아무림으로 막새를 붙이는데 암키와 끝의 것을 암막새, 수키와 끝의 것을 수막새라고 한다.시대별 와당의 변천사고구려 와당고구려시대의 기와와 마구리를 말한다. 고구려 기와는 중국 퉁거우[通溝]지방과 평양 부근 대성산(大聖山) 밑의 안학궁(安鶴宮) 터와 정릉사(定陵寺) 터 및 금강사(金剛寺) 터 등에서 많이 발견되었다. 수막새무늬를 보면 귀면(鬼面)무늬·연화무늬·인동무늬·와(渦)무늬 등이 있다. 형태는 반달형과 원형이 있으며, 반달형 수막새는 중국 주(周)나라 때부터 볼 수 있는 오랜 것이다. 기와의 빛깔은 검붉은 것이 많고, 흑색·회흑색도 있다.고구려와당 가운데 주류를 이루는 것은 연화무늬 와당이다. 초기의 것은 막새기와의 갓테가 높고 넓으며 갓테가 없는 것도 있으나, 말기의 것은 갓테가 있다.고구려기와의 특징은 선이 날카롭고 억센 감을 주며, 연화무늬 중앙에 청동거울의 유(쐤)처럼 되어 그 주위에 방사선(放射線) 같은 선구(線區)가 만들어진 것이 많다. 그리고 연꽃잎 끝이 뾰족하며 씨방같은 유(쐤)에서 떨어져 있다. 말기에는 씨방이 있는 것도 있으며, 추녀마루 끝에 히 호자(虎子)로 불리는 부여 군수리 출토도기인 소변기 로부터 뼈항아리골호(骨壺)에 이르기까지, 또 일상용기와 종교적 성물(聖物)인 불상(佛像) 등 다양한 형태로나타났다. 그리고 궁궐과 사찰 건축에 따른 거대한 망새( 尾)나 기와류, 산경산수문전(山景山水紋塼)처럼 아름다운 벽돌이 있다. 때로는 도기와 도 제품은 껴묻거리(副葬品)로 수요되기도 했다.백제의 기와 무늬는 숫막새의 공간 속에 가득찬 만발한 꽃송이로 알맞게 살이 쪄서 꽃잎 끝이 버선코처럼 살짝 들고 있어 입체감과 아울러 온화하고 조화적인 조형미를 주었다. 모두 굴곡의 곡선미를 최고로 발휘하여 색깔도 회백색의 부드럽고 우아한 질감이다. 이러한 백제 연꽃의 아름다움은 미륵사지 석등의 대석이나 여러 불상의 연화좌(蓮花座) 및 광배(光背) 등에서도 같은 감각으로 조형되었다. 신라는 형편에 따라 때로는 고구려식 와당(瓦當)을 제작하고 때로는 백제식 와당을 제작하여 썼던 것이니 신라적 개성이란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대체로 백제와당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신라는 느긋한 생각으로 고구려와 백제의 개성을 융합시킨 와당 을 삼국말기에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백제 영향이 우세한 것이었다.신라의 황용사지 출토전을 보면 통일신라 이전 것은 무문전(無紋塼)이다. 백제는 부여 규암에서 출토된 산경문(山景紋), 봉황문(鳳凰紋), 연화문(蓮花紋), 귀면문(鬼面紋), 반용문(蟠龍紋), 와운문( 渦雲紋) 등의 문양전이 있는데 당대 최고의 조형예술을 대표하는 것이다.생동하는 힘과 온화하면서 부드러운 곡선이 서로 어울려 과히 신공(神工)의 재주를 다하였다. 우리는 백제 산수화의 높은 경지를 이 산경문전에서 볼 수 있으며 백제인의 해학적 여유를 귀면문에서 볼 수 있다. 비운문( 飛雲紋)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구름의 요동이며 그 한정된 원의 공간 속에서 무한히 창공을 나르는 것 같은 생동하는 봉황문의 구도는 백제인의 높은 회화적 구상을 엿보게 한다. 신라는 통일신라 이후에 문양전을 만들었는데 이는 보상화문이 기본형이며 기하학적이고 도식적이다.
디자인 사-배색배 색[목차]배색과 조화1. 배색의 기초2. 배색의 방법과 효과3. 배색에 의한 이미지언어 이미지 스케일4. 언어 이미지 감성 배색?참고 문헌배색과 조화조형의 아름다움은 형태와 색채 그리고 재료가 결합하여 이루어지지만, 그 중에서도 보는 즉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색채의 효과이다. 똑같은 재료를 사용하여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어진 물건이라도 색채가 다르면 느끼는 감정도 달라진다. 실제로 아름다운 색이나 추한 색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두 가지 이상의 색이 주위 환경과 어우러져 좋은 느낌을 주든가 나쁜 느낌을 주게 된다. 좋은 느낌을 주기 위해서 어떤 배색이 좋은가에 대한 문제는 예로부터 많은 이들의 관심사였다. 배색에 의한 색채효과에 대해서는 오늘날까지 많은 이론과 실제 연구결과가 나와 있으며 이러한 연구들은 대부분 배색에 의한 색채의 조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조화는 음악이나 조형에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원리로서 각기 성격이 다르거나 유사한 요소들이 대립하면서도 전체가 통일된 느낌을 주는 원리다. 즉 조화의 원리는 다양성의 통일과 완전한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것이며 배색에 있어서는 색의 체계적인 조직과 결합 방법을 말한다.1. 배색의 기초배색이란 어떤 특별한 목적과 기능에 합치된 미적 효과를 얻기 위하여 두 가지 이상의 색이 조화를 이루도록 만드는 것을 말한다. 질서 있게 배색된 색들은 심리적 쾌감을 주지만 질서가 없으면 불쾌감을 주거나 감흥을 주지 못한다. 이와 같이 쾌감을 일으키는 색의 배색을 조화색이라고 하며, 배색을 통하여 균형있는 통일과 변화를 갖출 때 색채가 조화를 이룬다고 한다.일상생활에서 색채는 독자적으로 지각되기 보다는 그 색과 인접한 색과의 관계에 의하여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색채의 효과는 배색에 의하여 결정되며, 배색은 일반적으로 개인 또는 집단의 기호도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배색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기호도나 감각에 의존하기 보다는 색채심리를 분석하여 배색의 목적에 따라서 색채이론과 기능성을 적용시키는 도의 3속성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보통 색상은 빨강, 노랑, 녹색, 파랑 등의 적절한 혼합으로 이루어지지만 무채색과의 혼색이나 배색도 고려되어야 한다. 그리고 색의 특성에 따라 순색의 밝기가 다른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채도가 높은 순색이라도 어두운 색은 그 자체만으로도 불쾌한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채도를 낮추거나 높여서 다른 색과의 어울림도 고려해야 한다.) 배색은 이와 같이 색상, 명도, 채도라는 3속성의 변화로 이루어지지만, 일반적으로 색상의 조화에 중점을 두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 경우에는 색상 차이를 작게 하거나 색상차이를 크게 하든가 하는 두 가지 특성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색채조화에서 대비와 유사의 기본적인 원리가 작용하게 된다.합리적인 배색을 위해서는 각각의 목적이나 기능에 맞도록 색의 수를 제한해야한다. 위험을 방지하는 경고물이나 돌출물의 표시와 같이 사물의 기능이나 용도를 부각시키고자 할 경우에는 배색의 기능을 잘 살릴 수 있도록 사용되는 색의 수를 최대한 적게 하는 것이 좋다.배색은 가치관과 시대감각에 대하여도 민감하게 반응하므로 항상 신선한 이미지가 느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제유행색협회에서는 매년 다음 해의 유행색을 미리 예측하여 발표한다. 유행색은 나름대로의 근거를 갖고 산출되며, 이러한 자료를 잘 활용하면 대중의 유행을 창조하고 이끌어 나갈 수 있다.)) 이와 같이 배색의 심리적인 효과에 중점을 둔 색채조절이나 색채관리로 쾌적하고 능률적인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또 기능적인 색채계획을 위하여 배색의 목적이나 필요성, 용도와 방법, 연상과 미적 요인등을 잘 고려하여야 성공적인 배색이 이루어 질 것이다.2. 배색의 방법과 효과배색은 크게 배색효과와 배색방법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미지에 따라 여러 가지 미묘한 차이가 있겠지만)) 배색효과는 크게 유사조화와 대비조화로 나뉘어진다. 배색의 기본은 우선 어떤 효과를 기대하느냐에 따라서 적절한 배색방법을 고르는배색: 색상을 묶어 명도나 채도 차이로 변화를 줌색상배색: 색상이 다른 색을 많이 사용한다.색의 배열순차배색: 색을 규칙적이며 점진적으로 변화시킨다. 색상의 순차배색과 톤의 순차배색이 있다.분리배색: 색과 색 사이를다른 색으로 구분짓는다. 대조가 심한 경우와 약한 경우가 있다.1) 유사색 배색색상환에서 연속되는 세가지 색상이나 그 색상들의 색조와 명암을 사용한 배색으로 같은느낌의 색상을 주조색으로 하여 배색한다. 색상환에서 30°사이의 인접 색상은 색의 차이가 크지 않아 정적이면서도 무난한 배색이다.2) 동일색 배색같은 색상의 색조로 명도, 채도를 달리한 톤의 일부나 전부로 배색한다. 동일색상 배색은 무난하면서 세련된 느낌을 주며 주조색 효과를 지녀 색이나 형태 등 전체적으로 통일감 있는 배색이다. 명도와 채도가 높아도 비교적 안정적이고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3) 보색 배색색상환에서 서로 대각선을 이루는 색상으로 보색대비를 통해 서로의 색이 대조를 이루어 강하고 생동감을 느끼는 배색이다. 강한 대비를 통해 명도와 채도의 차이가 크다.4) 그라데이션 배색그라데이션이란 서서히 변화하는 것으로 단계적인 명도, 채도, 색상, 톤의 배열에 따라서 시각적인 유목감을 주는 것을 그라데이션 효과라 하며 3색 이상의 다색 배색에서 이와 같은 효과가 나타난 배색을 그라데이션 배색이라 한다.5) 액센트 배색액센트 배색은 단조로운 배색에 대조색을 배색하여 강조하는 배색 기법으로, 액센트 컬러로 주조색과 대조적인 색상 또는 톤(명도, 채도)을 사용함으로써 강조점을 부여한다. 액센트 컬러는 배색 전체의 효과를 짜임새있게 하여 색상, 명도, 채도, 톤의 각각을 대조적으로 조화를 이루게 한다.6) 톤 온 톤 배색톤 온 톤이란 ‘톤을 겹친다’라는 의미로 동일색상에서 두 가지 색상의 톤의 명도 차를 비교적 크게 둔 배색이다. 3색 이상의 다색을 사용하는 같은 계열의 색상의 농담 배색도 톤 온 톤 배색이라 한다. 색상은 동일 색상이나 유사색상의 범위에서 선택 할 수 있다.7) 톤 인 톤 배색톤법으로, 톤과 명도의 느낌은 거의 일정하게 하면서 색상을 다르게 하는 배색을 말한다. 부드럽고 온화한 효과를 낼 수 있으며 톤과 색상차가 거의 없도록 하는 배색을 ‘까마이외 배색’이라 한다.8) 레피티션 배색레피티션은 반복 효과의 의미로 두 색 이상을 사용하여 일정한 질서를 기초로 한 조화를 부여함으로써 통일감이나 융화감을 끌어내는 배색 방법이다.3. 배색에 의한 이미지단색이 다색으로 배치될 때 색의 이미지군이 나타나는 데 따뜻한 느낌의 색으로는 적, 황등의 난색계 색이고, 차가운 느낌의 색으로는 청록, 청, 청자 등 한색계의 색이다. 고명도 그룹의 배색과 파스텔 톤은 가벼운 느낌과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저명도 그룹의 배색과 다크한 느낌의 톤은 무거운 느낌을 준다.고채도는 화려한 느낌을 준다. 저채도는 수수한 느낌을 준다. (흥분, 진정, 맑고 탁함, 고전적, 근대적, 이국풍, 순수함, 자연적, 활동적, 환각적, 민족적 등의 감정적인 용어는 전하는 방법상 개인적인 차이는 있지만 색에 따라서 공통된 이미지를 같는 근거는 색의 배색 이미지에서도 엿볼 수 있다.)언어이미지 스케일언어이미지 스케일 :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들은 여러 가지 형용사를 사용하여 사물의 이미지를 표현한다. 사람들이 사물에 대해 갖는 실제 느낌을 정확히 전달하기 위하여 형용사에는 많은 종류의 어휘가 사용된다. 색채 이미지 스케일과 언어 이미지스케일을 하나의 스케일로 포개놓으면 같은 위치에 오는 색과 언어는 거의 이미지가 일치한다.주위의 환경은 한 가지 색으로만 이루어 진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의 색들이 모여 꾸며진다. 그러므로 독립된 색이 갖는 의미나 이미지를 별개의 것으로 연구하는 것보다는 각각의 색을 서로 연관지어 비교 ? 판단하면 훨씬 쉽게 색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도에서 색채 전문가들은 여러 가지 목적과 기능적인 배색을 위하여 색채 이미지 스케일들을 개발하고 있다.4. 언어 이미지 감성 배색언어 이미지 감성 배색은 색상과 톤의 배색에 따라서 이미지를 표현한다.배색할 때에 톤며 색상을 명시하지 않아도 색채 이미지 하나로 감성어가 전달된다. 색채는 서로 다르게 배색되어 보이는 효과에 따라서 끝없는 변화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색채이미지는 언어로 표현가능하며 반대로 감성을 표현한 언어는 다시 색채 이미지로 연출할 수 있다.언어이미지 감성 배색은 두개 이상의 색을 배색하여 만드는 것으로 주조색, 보조색, 강조색을 기본으로 이미지가 형성 된다. 기본 이미지 배색은 성격과 성질을 고려하여 배색하는 형식을 벗어나서 자유롭고 다양하게 배색하는 방법으로 색상, 명도, 채도의 변화도를 측정하여 조화가 되도록 한다.①ACTIVE 활동적인강렬하고 대담함이 느껴지는 배색으로 열정적이고 액티브한 메시지를 갖는다. 화려하면서 동적인 색이 주류를 이루는 강렬한 배색이다. 액티브한 이미지 배색은 고명도, 고채도의 봄의 색상이 주를 이루며 레드, 옐로우, 퍼플, 그린 컬러등 대비가 강한 색상으로 배색하며 톤의 차이가 크고 동적인 느낌이 강하다.②CASUAL 캐주얼젊고 경쾌한 느낌의 자유로운 이미지 표현으로 원색을 주조색으로 사용하며 밝고 화사한 라이트, 비비드, 페일 톤을 사용하여 감성적으로 편안해 보인다. 옐로우, 오렌지, 그린, 핑크컬러 등 유사색상의 배색으로 부드러운 느낌을 부각시킬 수 있으며 반대색상 배색은 보다 캐주얼한 느낌을 준다.③PRETTY 귀여움귀엽고 소녀적이며 화사하고 부드러운 이미지 배색으로 옐로우, 오렌지, 옐로우 그린, 핑크컬러등과 같은 따뜻한 계열의 밝고 부드러운 색상을 사용한다. 소프트, 라이트, 브라이트 톤의 기본 색상의 반대색상인 차가운 계열의 블루, 퍼플과 같은 색상을 함께 배색하면 사랑스럽고 달콤한 이미지가 표현된다. 프리티한 배색은 로맨틱한 이미지보다는 좀 더 화려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④ROMANTIC 로맨틱로맨틱한 컬러는 여름색과 가을색을 기본 색상으로 배색이 이루어 진다. 사계절 색상의 소프트, 라이트 톤은 낭만적이고 감미로운 느낌을 주며 유사색 배색은 로맨틱의 상징적 배색방법이다. 여성스러움을 강조하려면 핑크, 베이지,.
문명의 충돌 (새뮤얼 헌팅턴)이데올로기의 대립에 억눌려 역사 흐름의 표면에 나타나지 않고 있던 문명간의 갈등이 냉전 이후 세계질서의 기본축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담고 있는 책. 이 책의 지은이 헌팅턴이 바라보는 장래 세계에서 경쟁과 대항의 주체는 바로 '문명'이다. 여기서 말하는 문명은 야만과 대비되는 문명이 아니라, 언어, 종교 등 여러 가지 문화적 특질의 집합체로서 세계 여러 지역에 자리잡아온 문명권을 말한다.문명권을 구분하는 1차 기준은 종교다. 이에 따라 기독교권, 그리스정교권, 이슬람권, 유교권, 불교권, 힌두권 등이다. 여기에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일본권이 추가된다. 헌팅턴 가설의 요점은 인류의 가치 체계가 하나로 통일된다는 일원론, 냉전 시대와는 대립의 형태를 바꿀 것이라는 이원론에 대항해 다양한 가치 체계가 복잡한 상호 관계를 펼쳐 나가리라는 전망이다.세계정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문화와 문명의 괘선을 따라 재편될 것이다. 또 문명 내의 갈등과 분쟁보다 문명간의 단층선을 따라 벌어지는 갈등과 분쟁이 중요하게 될 것이다. 결국, 헌팅턴이 보기에 탈냉전 세계는 일곱 내지 여덟 개의 주요 문명으로 이루어지는 세계다. 문화적 동질성과 이질성은 국가들의 이익, 대결, 협력 양상을 규정한다. 확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국지적 분쟁은 판이한 문명에 속한 집단이나 국가간의 충돌이다. 정치 경제적 발전의 지배적 양상은 문명과 문명마다 다르다. 요점은 국제 문제에서 중요한 사안에는 문명의 차이도 들어간다는 것이다.헌팅턴이 예측하는 앞으로의 세계는 어떤가. 그것은 장기간 주도권을 행사해 온 서구 문명으로부터 비서구 문명으로 힘의 무게 중심이 옮겨 가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정치는 다극화, 다문명화되었다.새뮤얼 헌팅턴세계적인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현재 미국 하버드대 알버트 웨더헤드 석좌 교수이자, 존 올린 전략문제연구소의 소장이다.동서 냉전 종식 이후 달라진 세계 정치의 성격을 규명하려는 시도로 '문명충돌론'을 제기하여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군사정치학, 비교정치학 분야에서 왕성한 학문적 활동을 벌인 그는 「제3의 물결-20세기 후반의 민주화」「불협화음의 미국 정치」「쉽지 않은 선택-개발도상국에서 정치 참여」등의 저서를 집필하였다.그의 활동은 현실 정치 참여로 이어져, 월남전에서 '전략촌' 정책을 수립하고, 카터 행정부에서 외교안보 보좌관으로 일하기도 했다.그리고 시사 전문지 를 창립하여 공동 편집인으로 활약하였으며, 미국 정치학회의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마호메트 풍자 만화 문명의 충돌서방 언론의 마호메트 만평 파문이 번지며 문명 충돌 양상을 보였다. 지난달 파키스탄에서 항의 시위대의 방화로 한국업체가 운영하는 버스터미널이 피해를 입었다. [중앙포토]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마호메트(570?~632) 풍자 만화 사건이 일파만파로 번지며 이슬람과 서유럽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항의 시위가 유럽은 물론 중동과 아프리카로까지 확산돼 지금까지 수백 명이 숨지거나 다쳤다. 서구에선 이번 사태를 유럽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충돌로 보고 있다. 이를 계기로'문명 충돌'에 대해 알아본다.◆ 왜 갈등이 일어났나=지난해 9월 덴마크의 한 일간지가 마호메트 풍자 만평 12컷을 실은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만평 가운데는 마호메트가 심지에 불이 붙은 폭탄 모양의 터번(남자 이슬람교도가 머리에 둘러 감는 천)을 두른 모습도 있었다. 마호메트가 테러리스트로 비칠 수 있는 그림이었다. 심지어 죽어 천당에 온 이슬람 자폭 테러범(이슬람 입장에선 순교자)들에게 "너희에게 나눠줄 처녀가 다 떨어졌다"고 말하는 내용도 담겼다.이슬람 국가들은 분노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잠잠해지는 듯했다. 그런데 올해 1월 10일 노르웨이의 한 잡지가 이 만평을 옮겨 실으며 불씨가 되살아났다. 이슬람권의 항의와 위협이 빗발치자 덴마크 신문은 결국 1월 31일 사과 성명을 냈다. 하지만 이튿날 프랑스.독일.이탈리아.스페인.네덜란드 등 유럽의 10여 개 언론이 "표현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며 일제히 문제의 만평을 게재했다. 그러자 다시 이슬람권이 반발하며 나이지리아에선 종교 분쟁으로 비화됐다.◆ 표현의 자유냐, 신성 모독이냐=이슬람교도(무슬림)는 유일신인 알라를 믿는다. 마호메트는 알라의 계시를 받아 이슬람교를 창시했다. 알라와 더불어 신성을 더럽혀선 안 되는 대상이다. 그래서 이슬람은 마호메트를 형상화한 어떤 그림이나 조각도 허용하지 않는다. 마호메트를 형상으로 나타내는 것은 우상 숭배며, 이는 마호메트의 신성을 모독하는 행위로 간주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기독교도 우상 숭배를 배격한다. 문제는 이슬람의 경우 무슬림이 아닌 사람(단체)에게도 교리를 지키도록 하는 데에 있다.이에 대해 서구 언론은 이슬람 교리를 모든 사람이 지킬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예수를 풍자할 수 있듯 마호메트도 풍자의 대상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마호메트 풍자 만화가 무슬림의 비위를 건드리더라도 표현의 자유를 포기할 수 없으며, 오히려 무슬림의 항의 시위를 언론 자유에 대한 위협으로 판단한다.◆ 문명 충돌이란=서구에서는 이번 사태를 문명 충돌의 시각에서 해석한다. 이슬람권, 특히 중동의 대규모 격렬 시위는 유럽의 무슬림 이주자들에 대한 차별에서 오는 불만이 분출된 것으로 본다. 따라서 그 밑바탕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배나 9.11테러 사건과 테러와의 전쟁, 미국의 이라크 공격 등에 대한 불만도 작용했다고 분석한다.'문명 충돌'은 냉전 이후 21세기 국제 분쟁의 원인이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문명의 대립에서 비롯한다는 이론이다. 과거에는 대규모 폭력을 수반한 갈등이 같은 문명 안에서 발생했지만, 이젠 다른 문명을 배경으로 한 사람들끼리 접촉이 많아져 문명 간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미국의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1927~)이 93년 한 잡지에 기고한 논문('문명의 충돌')에서 주장했다. 헌팅턴은 세계를 9개의 문명권으로 나누고, 문명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종교를 들었다. 기독교.정교(正敎).이슬람.유교.불교.힌두.라틴아메리카.아프리카(비이슬람).일본권 등이 이에 속한다.그는 특히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의 충돌이 미국과 소련의 냉전 역할을 대신해 세계 평화를 가로막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나아가 중국 등 유교 문명은 이슬람을, 일본은 서구를 도울 것으로 예견했다. 대표적 문명 충돌 사례로 보스니아 내전(1992~95)을 들었다. 서구 국가들이 가톨릭 국가인 크로아티아와 동맹을 맺었으며, 정교 국가인 그리스는 세르비아를 도왔고, 이슬람 국가들은 보스니아의 무슬림을 지지했다는 것이다.헌팅턴은 또 비슷한 문화를 가진 나라들은 서로 뭉치려는 경향이 있으며, 그 안에서 질서 부여 기능을 할 수 있는 핵심 국가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헌팅턴의 주장은 이슬람과 서구가 대립하고, 중국이 세계 무대의 전면으로 떠오르는 현실을 통찰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문명 충돌론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크다. 이는 이슬람과 중국 등 비기독교 문명권을 '위협 세력'으로 보는 기독교 문명권 중심의 시각이며, 9대 문명권에 속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민족(또는 종족)이나 다른 갈등 요인들을 무시했다라는 것이다.이태종 NIE 전문기자, 조종도 기자문명의 공존(하랄트 뮐러)21세기는 “문명의 충돌”일 것인가 “문명의 공존”일 것인가...*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 이란..*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저서 ‘역사의 종말’(1992년)에서 냉전의 종식이 자유 민주주의의 확고한 승리를 가져왔다는 낙관적 믿음을 편 이듬해 미국 하버드대 새뮤얼 헌팅턴 교수는 새로운 대립적 갈등구조가 형성됐다며 문명충돌론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