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일반석에서는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도 된다.-일반석과 노약자석의 사용에 대한 규정서울에 올라와서 며칠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지하철을 타고 친구를 만나러 가는 중이었다. 나는 그 전날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전날 늦게 잠을 자서 매우 피곤해 있던 상태여서 자리가 나기만을 기다리던 중 내가 서있던 앞자리의 사람이 일어나서 그 자리에 앉아서 가려고 했다. 그리고 몇 정거장을 가는 도중 앞에 6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할아버지 한분이 내 앞에 서셨다. 그 할아버지는 나에게 일어나라는 듯 눈치를 줬다. 젊은 사람이 앉아있다느니 하면서 말이다. 그 당시 나는 노약자석이 아닌 일반석에서는 나에게도 앉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일어나지 않았는데 그 노인분이 큰 소리로 버릇없는 놈이라고 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는 단지 내가 피곤해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자리에 앉아 있었을 뿐인데 말이다. 나는 할아버지 여기는 일반석입니다. 라고 말했더니 할아버지는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내뱉었다. 황당하지 않았겠는가? 처음 본 사람이 나의 그 행동 하나-단지 자리에 앉아있겠다는 나의 행동-를 가지고 그런 식으로 말을 내뱉는 것이 참으로 우스울 다름이었다. 그리고는 말싸움이 일어났고 나는 내가 내릴 역에 도착해서 화가 난 상태로 내렸다.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을 겪는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나이 드신 분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노인을 공경하는 우리나라의 미덕중 하나이다. 하지만 미덕일 뿐이지 강제적인 것은 아니란 것이다. 그런데 이를 착각하고서는 몇몇 노인들은 자신들이 무조건적으로 대접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물론 젊은이들에게도 노인을 공경하는 마음은 갖춰져 있음이 당연한데 위 사례에서의 노인 분은 단지 자신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처음 보는 사람에게 버릇없는 행동이라 말했다. ‘과연 할아버지의 행동이 정당한 것일까, 정말로 내가 잘못한 것일까‘ 하는설을 둘러보면 노약자들을 위한 배려가 있다. 대중교통에서는 노약자석이 있고 공공시설에는 노약자를 위한 할인 요금이 있다. 지금의 복지는 노인들을 위한 배려는 현재의 우리나라를 있도록 한 장본인들이고 신체적인 능력이 우리들보다 떨어지기 때문에 있는 정당한 대가다. 그러므로 이 점에 대해서는 왈가왈부 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일반석만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노인들 역시 같은 일반인이라는 범주 내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이런 상황을 가정해서 묻기도 한다. 만약에 노약자석에 자리가 차서 일반석에 자리를 앉아야 하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보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말이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자리를 양보해 드린다. 이것은 미덕의 범주가 아닌 인간 본성의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범주이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생각해보자. 약자의 범위에 노인이 포함되어야 하는 것일까? 물론 약자이면서 노인인 경우도 있다. 하지만 두 가지 범주가 같은 것은 아니다. 즉, 나는 노인을 약자의 범위에 모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우선은 노약자석이라는 단어에서부터 알 수 있다. 괜히 노약자석이라고 노인과 약자를 합해 놓았겠는가. 그리고 노인은 분명히 젊은이들보다는 육체적인 능력이 떨어진다. 그렇기에 노인이면서 약자인 경우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젊은이들만큼은 아니지만 육체적인 능력이 있는 노인 분들도 있다. 그렇기에 모든 노인이 약자에 포함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이제 외국의 사례도 알아보도록 하자. 미국이나 유럽 쪽의 서구 사회에서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경우는 젠틀하다고 인식하나 거의 양보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가까운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이유는 물론 복지적인 측면에서 우리 나라보다 더 앞서기 때문에 일반석에서의 양보를 할 기회가 적은 것일 수도 있다. 또한 서구 사회는 개인주의적인 측면이 강해서 노인과 자신을 일대일으로 대등한 관계로 보기 때문에 굳이 자신이 양보를 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해외여행을 가서 자리를 양보하는 한국인들을 외국인들은 익례를 찾던 중 한국 여행자가 일본에서 겪은 일을 소개해야겠다고 생각되었다. 한국인이 나이 드신 분에게 자리를 한 번 양보했더라도, 몇 시간 후에 자리를 양보해준 젊은이에게 젊은이도 힘들 테니 다시 앉으라고 양보했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모든 일본 사람들이 다 이러는 것은 아닐 것이지만 이 이야기에서 충분히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윗사람을 공경하라는 말은 있어도 아랫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배운 적은 있었으며 생각해본 적은 있었는가? 이렇다보니, 위와 같이 약자에 속하지 않는 노인 분들도 의례 지하철에 타면 우리와 같은 젊은 사람 앞에서 대놓고 자리를 비켜달라고 소리 지르시는 분들마저 공공연하게 보이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다. 그릇된 도덕을 강요하는 사회의 한 면인 것이다.또한 노인들은 노약자석에서 자신들이 항상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약자들이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약자에는 노인에 속하는 약자를 설명했다. 그렇다면 노인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약자의 경우는 어떨까? 즉 보기에는 젊은 사람이지만 약자인 경우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노인들은 노약자석에 젊은 사람이 앉아 있으면 혀를 차면서 예의가 없다느니 버릇이 없다느니 하는 말부터 나오기 시작한다. 과연 그들에게는 그들이 약자라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인지 되물어 보고 싶다. 실제로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노인에게 젊은 것이 어디서 건방지게 이곳에 앉아 있느냐는 말을 들었다는 사례가 있다. 그래서 그 장애인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의족을 보여줬다고 한다. 과연 이렇게 인격적으로 모욕을 받은 이 장애인은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피눈물이 났을 것이다. 장애가 있는 것도 서러운데, 일반사람들처럼 다니기도 힘든데 그런 식으로 욕을 먹는 다면 얼마나 치욕적이었을지 본인이 아니고는 모를 치욕이었을 것이다.임산부들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이다. 임산부들역시 약자의 범위에 들어가기 때문에 노약자석에 앉을 권리가 있으며 이 권리는 노약자석을 앉을 때 위의 상황과 같이 오해를 받기도 한다. 허나 이 경우는 매우 바람직하게 해결되었다. 작년 10월경 임산부들을 위한 배지를 만들어 임산부임을 표시하는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다. 모두들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처음 시행하는 제도라 사람들의 반응은 다소 부자연스러워 했다. 하지만 포스터를 통한 홍보를 통해서 입산부들을 배려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정도면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이렇듯 알게 모르게 노인들은 노약자석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내면적으로 생각해서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동방예의지국이지 않느냐. 그러니까 노인들을 공경해서 자신이 아무리 힘들어도 노인에게 양보하자 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과연 이런 식으로 모욕을 당하면서 까지 지키는 강요된 노인공경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노인을 공경한다는 것은 마음에서 진실 되게 우러나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노인 공경의 바탕에는 나이가 들면서 지혜와 인격도 늘어 내면의 인격수양이 되어있는 그런 조상님들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하지만 요즘에는 세월만 흘러가면 단지 나이를 먹었다고 아무에게나 반말하고 훈계하며 자리양보를 강요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과연 공경을 해야 하는지 의심된다. 분명 나이를 먹은 만큼 젊은 사람들보다 경험이 풍부하고 삶의 지혜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위와 같은 행동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꼭 그렇지 만은 않을 것 같다는 의심이 들 정도이다.그리고 지하철 역시 지하철 도로 공사 이다. 즉 공공의 이익과 사적인 이익이 함께 발생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돈을 낸 만큼 자신도 지하철을 이용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이런 권리를 약자가 아닌 노인들이 빼앗아 간다는 것은 올바르지 못하다. 현대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사실이다. 이런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자신의 몫을 지불하면 몇몇 예외적인 부분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같은 권리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같은 권리를 가진 사람 강요하는 태도는 타인을 생각하지 못하는 편협한 생각이다.양보는 미덕이다. 하지만 미덕은 개인적 양심에 바탕을 둔 행동일 뿐이다. 즉 강제적이지는 않다는 말이다. 이런 강제적이지 않은 행동을 타인의 강제에 의해서 행하는 일은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양보란 마음에서 진심으로 우러나와서 할 때에 그 가치가 있는 법인데 강제적으로 행해지는 것은 하나마나한 양보이다.이번에는 노약자석이 비어 있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보통 노약자석은 일반석이 다 차있는 경우라고 할지라도 비워둔다. 나는 이 점에 대해서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효율성이 떨어지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의자란 앉으라고 존재하는데 의자에 대한 모욕도 아니고 왜 서있는 것인가. 게다가 일반인이 노약자석에 앉아 있으면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는 한다. 물론 노약자석은 노약자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만든 자리임은 틀림없고 좋은 정책이다. 그러나 노약자들이 이용하지 않는 때를 잠시 일반인이 쓴다는 것일 뿐인데 왜 그런 시선을 보내는가? 효율이라는 측면에서 위 행동은 참으로 좋지 않다. 싱가포르와 같은 경우에는 노약자가 아닌 경우에 노약자석을 이용하는 경우에 벌금을 부과하기도 한다. 물론 노약자들이 앉을 자리가 없어서 서있는 경우에는 당연히 일어나야 한다. 위에서 말한바와 같이 노약자석에서 우선순위는 일반인보다 노인이 더 앞서기 때문이다. 즉, 노약자석에서는 노인이 일반인에게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노약자석이 비어있는 그런 때에 벌금을 부과 받으면 기분이 어떨지 참으로 궁금하다. 이 싱가포르의 정책은 참으로 비효율적이라고 본다.물론 너무 효율만 따지는 것이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예의를 따지라는 말일까? 그건 아니다. 노약자분들이 오면 자리를 자연스럽게 비켜주는 행동을 전제로 하고 행하는 일이기 때문에 예의는 지키는 행동이다. 그러므로 도덕적으로 어긋난다고 보지도 않는다. 그러니 오히려 내가 되묻고 싶다. 왜 자리를 비워 두는 것이냐고 말이다. 단지 노약자석이므로 노약자만 이용해야 한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