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rm paper-화학신소재개론 Report-화학신소재에 관련된 4가지의 소재와이에 대한 원리 및 가능성-강 의 명: 화학신소재개론교 수 명: 박 주 현 교수님학 과 명: 화학공학과학 번: 20030626이 름: 이 용 진제 출 일: 2008.12.13목차1. 서론 --------------------------------------------------------p.12. Electron beam lithography----------------------------------------p.12-(1) Electron beam lithography의 정의-------------------------------p.1~22-(2) Electron beam lithography의 원리-------------------------------p.2~32-(3) Electron beam lithography의 소재-------------------------------p.3~43. Transistor----------------------------------------------------p.43-(1) Transistor의 정의--------------------------------------------p.43-(2) Transistor의 원리--------------------------------------------p.4~53-(3) Transistor의 소재--------------------------------------------p.54. PDP(Plasma display panel)---------------------------------------p.54-(1) PDP(Plasma Display Panel)의 정의------------------------------p.5~64-(2) PDP의 구조 및 원리-----------------------------------------p.6~74-(3) PDP(Plasma Display Panel) Patterning을 하는 방식이다. 컴퓨터를 통해서 설계된 디자인을 Electron beam이 기판 위에 직접 옮기는 방식이므로 광파를 제어하는 광자격자 구조를 만드는데 결정적으로 유리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Electron beam을 직접 제어하고 CAD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패턴의 모양을 임의적으로 쓰거나 수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별도의 mask 제작을 위한 추가 비용이 없으며 높은 해상도를 얻을 수 있다. Electron beam의 에너지가 100keV일 경우, 전자의 파장은 3.7pm이므로 보통의 )NA(Numerical Aperture)를 가정할 경우, 해상도는 이론적으로 4㎛까지 높일 수 있다. 현재 Electron beam lithography기술은 기존의 electron beam lithography, scanning probe lithography 등과 같은 직행과정이 아니라, electron beam projection을 이용한 병행과정방식이 개발되고 있으며, 다중광선(multi-beam)을 이용하여 생산성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방법 등이 연구 제시되고 있다. 특히, 병행과정에 의한 electron beam lithography 기술은 소위 projection electron beam lithography기술로 통칭하여 부르는 기술로서, 산업화가 가능한 생산성의 확보를 전제로 하여 Electron beam을 이용하여 프로젝션 형태의 lithography기술의 개발을 말한다. electron beam lithography장치는 lithography방식에 따라 가우스 빔(Gauss beam)방식, 가변광선 정형방식과 투여lithography방식이 있다. 가우스 빔 방식은 주사전자현미경과 같이 전자총의 소스(crossover)를 자계렌즈로 축소하여 시료면상에 미세 spot 빔 을 형성하는 것으로, 높은 밝기로 probe전류를 크게 얻을 수 있는 전자원이 요구된다. 연구개발용 전자빔 리소그래피 장치에서는 서브 0.1 μm 영역의 패턴리고해상도의 패턴을 제작할 수 있는 대체 기술이 개발되었지만, 이러한 기술은 이번에 개발된 기술에 비해 너무 느리다. 헤드에 100,000개의 렌즈를 장착할 수 있기 때문에 생산성은 훨씬 높아질 것이다.2-(3) Electron beam lithography의 소재①플루오르: 원소기호 F, 원자번호 17, 할로겐 원소 중 가장 가볍고 반응성이 가장 큰 원소다. 보통 상태에서 플루오르는 공기보다 약간 무거운 연녹황색 기체로 자극적인 냄새가 나며 아주 낮은 농도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흡입하면 위험하다. 플루오르는 희유원소가 아니며 지각의 약 0.065%를 차지한다. 천연에서 산출되는 동위원소는 단 하나로 안정한 플루오르-19(19F)이다. 플루오르는 가장 강력한 산화제로, 화합물로부터 분리하기가 어렵다. 이원자 분자인 플루오르(F2)는 헬륨·네온·아르곤을 제외한 모든 원소와 결합해 이온 또는 공유결합 플루오르화물을 만든다. 플루오르의 화학적 활성은 전기음성도(전자를 끌어당기는 성질)가 가장 크고, 원자 크기가 매우 작기 때문이다. 플루오르화물의 산화수는 -1뿐이며, 플루오르 이온(F-)의 크기가 작기 때문에 양이온과 결합해 많은 안정한 착물을 이룬다.②텅스텐: 원소기호 W, 원자번호 74, 백색 또는 회백색의 백금 비슷한 금속으로 금속 중에서 융점이 가장 높고(3500℃), 밀도도 19.3g/㎤로서 가장 높은 금속 중에 속한다. 탄성적으로 등방적인 금속이고, 높은 융점 및 낮은 증기압, 그리고 가는 선으로 신선할 수 있는 능력 등이 텅스텐이 20세기초 전구의 필라멘트로 응용될 수 있었던 이유가 된다. 1950년대의 핵 및 우주시대의 열림과 함께 텅스텐의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특히 우주선의 추진 및 에너지 생산 분야에서 고온응용이 크게 요구되면서 텅스텐과 그 합금에 대한 의존도가 계속 증대되었다. 고온특성 외에도 W의 높은 밀도와 강도, 그리고 탄성률에 의존하는 응용의 폭은 매우 넓다.3. Transistor3-(1) Transistor의 정의transistor는 증1개가 튀어나와 이물질의 전자와 결합하여 빈자리로 이물질을 끌어당겨 다른 전자로 바꾸는 작용을 해준다. 이때 순수한 산소를 생성시켜 분해, 중화, 제거작용을 하는 광물성 원소이다. Ge의 효과로는 산소공급 작용, 반도체작용, 면역력 강화 작용, 인터페론 생성, 엔돌핀 생성촉진작용, 통증제거 작용, 산성체질 알칼리화 등이 있다.② 규소: 원소기호 Si, 원자번호 14, 비금속 원소로써 지각의 27.7%를 차지하며, 산소 다음으로 2번째로 풍부한 원소이다. 천연에서는 유리상태로 산출되지 않고 산소와 결합하여SiO2 또는 산소·알루미늄·마그네슘·칼슘·나트륨·칼륨이나 철과 같은 다른 원소들과 결합하여 규산염 형태로 모든 암석뿐만 아니라 모래·점토·토양에서 산출된다. 또한 모든 천연수와 대기(규소진), 여러 식물들이나 뼈·조직 및 일부 동물의 체액 속에서도 발견된다. 순수한 규소는 단단한 암회색 고체로 금속성 광택을 갖고 있으며, 탄소와 비슷한 다이아몬드형 결정격자구조를 가지므로 다이아몬드와 물리적·화학적 성질이 비슷하다. 규소는 무정형인 갈색 분말형태 외에도 미세결정 구조를 갖기도 한다. 상업적으로 규소는 전기로에서 코크스와 반응하며 산화물들을 환원시켜 만든다. 소량의 규소제조에는 산화물을 Ai으로 환원하여 얻기도 한다.※이 두 가지 원소는 반도체 성질을 띠고 있으며 이 성질을 이용하여 transistor 제조에 사용된다.4. PDP(Plasma display panel)4-(1) PDP(Plasma Display Panel)의 정의PDP(Plasma Display Panel)는 기체 방전 시에 생기는 플라즈마로부터 나오는 빛을 이용하여 문자 또는 그래픽을 표시하는 소자이다. 플라즈마 디스플레이는 플라즈마를 만들기 위해 외부에서 가해주는 전압인가를 위해 사용되는 전극이 플라즈마에 직접 노출이 되어 전도전류가 전극을 통해 직접 흐르는 직류형(DC형)과 전극이 유전체로 덮여 있어 직접 노출이 되지 않아 변위전류(Displacement Current)가 흐르게 되는 교류형전하라고 하며 AC PDP 의 동작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래 그림은 외부에서 인가되는 전압에 따라 벽전하의 분포를 통해 AC PDP 의 동작을 설명한 것이다. 첫 번째 파형도에서 실선은 전극에 인가하는 전압을 나타내고, 점선은 벽전하에 의해서 형성된 벽전압을 나타내고 있다. 실제로 벽전압은 그림에서 보여진 것과는 반대의 극성으로 발생된다. 두 번째 파형도는 외부 인가 전압과 벽전압의 합을 나타낸 것으로 실제 방전공간에 걸리는 유효 전압이다. 이때의 전압이 Vf 이상이 되면 셀에 방전이 일어나게 된다. 세 번째 파형도는 방전 전류를 나타내고 있다. AC구동형 에서는 그림과 같이 방전을 끝내기 위해서 별도의 소거펄스를 인가하여 벽전하를 제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후의 유지펄스에 의해 방전이 잘못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소거 펄스는 짧은 시간동안 방전하여 이전 단계에서 생성되어 있던 벽전하를 중화시킨다. 그리고 소거 펄스에 의해서 방전이 일어난 후 양이온과 전자가 다시 생성되어도 소거 펄스의 폭이 유지 방전 펄스보다 짧기 때문에 벽전하가 유전체에 형성되지 않는다. 또한 펄스 크기를 작게 해서 소거 펄스를 인가하는 방법도 사용된다. 일단 벽전하가 없어지면 셀을 다시 방전시키기 위해서는 방전개시전압 이상의 전압을 외부로부터 인가해야한다. PDP의 전력소모를 대폭 개선할 수 있는 고효율 발광 핵심 원천기술이 국내 연구진(KAIST 전자공학과)에 의해 개발되었고, 4전극 셀 구조같은 경우는 PDP 셀 내의 마이크로 플라즈마 및 벽 전하를 제어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발광 효율을 최대 6배 향상시킨다.※플라즈마: 기체분자나 원자에 에너지가 가해지면 이온과 전자로 분리되어 전기를 띤 입자로 존재한다. 물질의 세 가지 형태인 고체, 액체, 기체와 더불어 '제4의 물질상태'로 불리며 이 상태는 지구상에서는 흔하지 않은 현상이지만 우주에서는 거의 모든 물질의 정상상태가 플라즈마상태이다. 특징으로는 고온, 발광특성, 전기적전도성을 지니고 있다.4-(3) PDP(Plasma
공대생인 나에게 피타고라스의 이름을 거론할 때 생각나는 것은 직각삼각형에 대한 피타고라스의 정리이다. 하지만 내가 처음에 피타고라스에 대해서 알았던 것과 달리 피타고라스는 최초의 철학자로 일컬어지는 탈레스와 철학의 시조라고 불리는 소크라테스와 같은 현자로서 피타고라스학파를 조직하여 수학적인 여러 과학(수학, 천문학, 음악이론)에 업적을 남기고 동시에 종교적 및 정치적 성향을 띠고 있다. 수학적인 우주론을 구상하였으며 ‘만물은 수에서 이뤄진다’라고 주장하였다. 즉, 우주는 유한과 무한의 두 원리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조화가 있는 전체(cosmos)이며 이 조화와 형을 주는 것이 수의 비례()logos)라고 하였다. 이로 인하여 그들은 형상원리의 발견자로 불린다. 그들은 영혼 불멸과 윤회, 사후 응보를 믿으며 영혼 정화를 위하여 금욕과 계율에의 복종을 중히 여기고, 원시적 타부(taboo)에 대한 흔적을 나타내는 계율, 아폴론숭배의 주요 관념인 결신 등을 믿었다. 그들은 이 영혼을 진정시키는 음악과 영원불변의 진리를 가르치는 수학 연구에 정진한 것이다. 우선 피타고라스가 조직되었을 때의 그리스 상황은 좋지 않았다.(이탈리아의 크로톤으로 갔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의 정치, 사회적 상황은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인들이 페르시아 전쟁을 겪으면서 그들의 공통 유대 역할을 하는 언어, 문화, 민족에 대해 보다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으나 중점적 관심은 여전히 도시 국가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스인들은 내부적인 질투와 분열성을 띤 개인주의로 인해 극도로 분열된 나머지 전체적인 안정을 얻을 수 없어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는 공통적인 제도와 이상, 즉 민족적 서사시와 아폴로 신 숭배, 올림픽 경기개최로 하나의 문화적 단일체로서 유지될 수 있었다. 그리스 문명은 조화를 근본 원리로 하고 있으면서도 내적인 투쟁으로 분열되었지만 오히려 이것이 이 문명의 위대성을 높였다. 그들의 문명은 정복자들을 정복해버렸고, 오늘날 서양 문명의 골격을 이루고 있기 주의적인 정신태도를 강하게 띄고 있어 커다란 권위를 누리고 있던 이 단체는 기원전 5세기 후반에 이르러 민주주의 당파에 의해 해체되었으나 그 뒤 얼마 되지 않아 재건되었다. 신피타고라스학파는 타렌트에 본거지를 두고, 기원전 4세기말까지 이어졌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탈리아의 소위 피타고라스학파라고 할 땐 이 신파에 속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또 꼭 이 사람들만을 가리킨다. 그런데 우리는 이 신파를 다시 두 가지 방향으로 나누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첫째가 청종자 또는 피타고리스타이로서, 이 파에 속하는 사람들은 보수적이어서 오직 이어받은 생활규칙만 귀를 기울이고, 그 엄격한 금욕주의를 준수하여 고기, 생선, 술 및 )콩을 먹지 않고, 목욕을 하지 않고 문화와 학문도 돌보지 않고 유랑생활과 거지생활을 했다. 두번째 경향에 속하는 사람들은 수학자라고 불리는 자들로서, 구파의 일방적인 귀족주의를 이어받아 철학과 학문(과학), 특히 음악, 수학, 기하학, 천문학 및 의학을 존중했다. 이들에게 속하는 사람들로는 플라톤과 친했던 타렌트의 아르키타스, 시라쿠스의 히케타스, 구파의 아카데미에 속하는 피타고라스주의자 에크판토스와 )헤라클레이데스 등을 손꼽을 수 있다. 그런데 이 마지막의 두 사람들은 그 때 벌써, 지구가 자체의 축을 중심으로 해서 자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르쳤다. 뒤에 와서 페리파토스학파의 사모스출신의 아리스타르키는 람프사코스의 스트라톤을 통해서 헤라클레이데스의 영향을 받았는데, 이 아리스타르키는 지구가 축을 중심으로 해서 돌고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궤도에 따라 운행하고 있다는 것도 가르쳤다. 이런 이론은 마침내 고대의 코페르니쿠스라고 불린 셀레우케이아의 셀레우코스에 의해 과학적으로 확고하게 되었다.피타고라스학자들의 내적, 정신적 태도는 독자적인 형식을 갖춘 생활양식을 만들어냈다. 이런 생활양식의 배경은 )오르페우스교로부터 전해진 영혼의 윤회설이다. 즉 영혼은 하나의 다른 세계에서 온 것이며, 죄를 짓게 되어, 지금은 육체에 사로잡혀 있는데, 마침내 이 육서 이들 학파의 첫째 원리는 자연의 동족 관계설이었다. 즉, 이것은 인간의 혼의 불멸성과 인간의 혼이 다른 동물의 육신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고 보는 윤회설에 입각해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육식을 철저하게 금하였다. 왜냐하면, 자신이 먹는 새나 짐승에 자신의 아버지나 어머니의 혼이 깃들어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전체로서의 우주가 하나의 생명체라고 믿었다. 사람의 생명은 무한하고, 이것은 신의 영원이나 무한과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의 목표는 육신의 더러움을 털어 버리고, 순수하고 깨끗한 정신이 되어 다시 신으로 돌아가는 것에 있었다. 종교적 측면에서의 두 번째 원리는 인간이 신에게로 회귀하는 방법에 있었다. 즉, 우주의 방식을 연구하고, 우주가 어떤 것인지 알아내어 신적인 우주와 결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피타고라스학파는 도덕적으로 ‘모호하고 일정한 형태가 없는 것-나쁜 것(어둠, 다수성, 한정되지 않은 것)’과 ‘확실하고 측정할 수 있는 것-좋은 것(빛, 단일성, 한정되는 것)’으로 이원화했다. 그러므로 만일에 세계가 선하고 살아 있으며 하나의 전체라면, 세계는 ‘한정되어’ 있고 파악이 가능한 ‘전체(cosmos)"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피타고라스에 의하면, 결국 우주는 )cosmos이고, 인간도 작은 우주 즉, cosmos이며, cosmos를 연구하는 사람은 그 혼도 cosmios(질서있게)하게 된다. 인간이 )우주와 동일하게 되기 위해서는 우주의 구조적 원리를 이해하여야 하고, 그러한 구조적 원리는 수학적 철학에 기본적 원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음악 분야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피타고라스는 협화음이라고 불리는 음계의 음정이 수 사이의 비율로서 표현될 수 있음을 알아냈다. 그러한 협화음은 우연히 얻어낸 것이 아니다. 협화음의 발견은 소리 자체의 본성 안에 이미 하나의 수적인 질서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것은 우주의 본성에 대한 일종의 계시로서 나타났다. 즉, 우주는 한정되어 있으며,, 사물의 구조법칙(가장 본질적인 것)을 발견해야 하고, 이러한 사물의 구조법칙은 수적 표현(각각의 비율로 표현)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피타고라스학파는 ‘만물은 수이다’라고 결론지을 수 있었다. 이러한 피타고라스학파의 철학은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원질은 무엇인가?’라는 질료에 대한 탐구에서 ‘우주의 구조는 무엇인가?’라는 형상에 대한 탐구로 당시의 희랍철학의 주류를 바꾸어 놓는 )큰 공헌을 하였다. 피타고라스학파는 수가 만물의 원리라고 가르침으로써 )형이상학에다 이름을 남겼다. 이렇게 됨으로써, 존재자의 원리는 종천처럼 질료에서 찾아지지 않고 형상 속에서 찾아졌다. 수는 형상을 부여하는 자요, 이 형상을 통해서 규정되지 않았던 것이 규정된 것으로 된다. 이런 것은 적어도 피타고라스학파에 관한 그다지 분명하지 않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기록을 보아 확실하게 결론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수라고 하는 궁극적인 원소, 규정을 내리는자 및 규정되지 않은 자 등에 관한 그의 기록은 이런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페라스와 아페이론이라는 두 가지의 원리가 있게 된다. 그런데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페라스다. 이 페라스가 수로 하여금 수이게 해주며, 이 수는 피타고라스학파가 그들의 형이상학을 도맡게 하는 원리로 된다. 위대하고 완숙하고, 모든 작용을 다하며, 하늘과 인간의 삶의 근원이고 지도자이며, 모든 것에 참여하는 것은, 수의 힘이다. 이 수의 힘이 없으면 모든 것이 한계적이지 않고, 불명확하며 볼 수가 없다. 이러한 사상에 이르게 해준 관찰은 매우 소박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피타고라스학파는 사물이 오직 수뿐이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피타고라스학파가 사물들을 수라고 보았다고 말하고 있는 기록은 간단하게 줄여서 그렇게 표현했을 뿐이고, 그 글자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피타고라스학파는 분명하게, 한정을 하는 것과 나란히 한정되는 것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수와 형상이 있는 곳에는 항상 세어지는 것과 질료가 있게 마련이중시하였는데, 음악에서는 일현금에 의하여 음정이 수비례를 이루는 현상을 발견하고 음악을 수학의 한 분과로 보았다. 저서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업적이 그 자신의 것인지 또는 초기 제자들의 것인지의 구별은 이미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 확인할 수 없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제자인 필로라오스와 기타 학자들의 저술의 단편에 의하여 당시 피타고라스와 그 일파의 업적이 알려져 있다. 피타고라스는 만물의 근원을 수 로 보았다. 그 수는 자연수를 말하는 것으로 이들 수와 기하학에서의 점과를 대응시켰다. 예컨대 자연수 계열의 연속항의 임의의 항까지의 합은 삼각형수이고, 마찬가지로 기수계열의 합은 정사각형수, 우수계열의 합은 직사각형수라는 방법으로 정의하였다. 또 완전수, 인수의 합, 비례와 평균의 연구, 상가평균, 조화평균 등도 분류하였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도 그 자신의 업적인지 제자들의 업적인지는 불분명하며 그의 증명법도 오늘날에는 알려져 있지 않다(오늘날의 그 정리의 증명법은 유클리드에 유래한다). 그런데 이의 정리에서 의외로 곤란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즉, 정사각형의 한 변과 그의 대각선과의 관계에 대한 문제이다. 이 경우 대각선의 길이는, 한 변을 1이라 할 때가 되어 약분이 불가능한 무리수가 된다. 이것은 자연수만을 수로 생각한 피타고라스와 그의 제자들에 있어서는 극히 난문제였기 때문에 수로부터 제외시켰던 것이다. 또 피타고라스와 그의 제자들은 임의의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2직각(180°)과 같음을 발견하고 이를 증명하였다. 플라톤의 다면체 로 불리는 정사면체?정육면체?정팔면체?정십이면체?정이십면체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정십이면체는 정오각형의 작도를 필요로 하지만 한 선분을 황금비로 끊는 문제로 환원시켜 이 작도에 성공하였다. 그리하여 피타고라스는 이 정오각형에서 생기는 성형오각형을 그의 교단의 휘장으로 채택하였다고 한다. 피타고라스가 수학에 기여한 공적은 매우 크며, 그의 영향은 플라톤, 유클리드를 거쳐 근대에까지 미치고 있다. 천문학에서는 지구가 구형임을 확신
1. 일본의 전국시대란?일반적으로 오닌의 난이 시작된 1467년부터 오다 노부나가가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쇼군으로 옹립하고 교토로 진군한 1568년까지를 가리키며, 무로마치시대 후기에 해당한다. 이 시대는 주로 슈고의 대리인인 슈고다이, 재지 영주인 고쿠진 계층에서 다이묘로 신분 상승한 전국 다이묘들이 주도했다. 정치적으로 전국 다이묘들은 서로 항쟁하거나 동맹을 맺으면서 각지에 할거했으며, 고쿠진과 토착 호족에 토지를 주어 가신단을 조직하고 영지에 대한 지배를 강화해 왕처럼 군림했다. 그리고 영지를 다스리는 데 많은 힘을 기울여, 독자적인 법을 제정하고 성곽을 중심으로 도시를 건설했으며, 토지와 호구를 조사하고 상공업을 통제했다. 또 땅을 개간해 농토를 넓히고 관개와 교통로를 정비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경제적으로 이 시대에는 산업과 화폐경제가 발달해 사회 분업이 추진되었으며, 새로운 도시가 생겨나고 번성했다. 도시에 사는 상공업자 가운데에는 경제력을 배경으로 도시를 자치적으로 운영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16세기 초에 영지를 완전히 장악한 전국 다이묘들은 더욱 많은 영지를 차지하려고 서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서 16세기 중엽에 군사 지도자인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나타났다. 노부나가와 히데요시는 전국 다이묘들을 격파해 거의 모든 국토를 통일했다. 그 뒤를 이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에도 바쿠후를 세우고, 다이묘를 강력하게 통제하는 바쿠한 체제를 완성했다.2. 전국시대(戰國時代),그 배경은?무로마치 막부 아래에서의 쇼군은 정치적으로는 전제적 권력을 확립한 요시미쓰 이후 4대 쇼군 요시모치의 치세에 어느 정도 안정을 보이기도 했지만 막부가 군사적 재정적 기반에서 슈고를 압도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슈고들의 반란은 종식되지 않았다. 무려 60년에 걸친 남북 양조의 분쟁으로 인한 막부의 불안정을 극복하고자 추첨으로 뽑힌 6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노리가 권력강화를 시도했으나 이 때문에 오히려 1441년 암살당하고 막부는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슈본 두 번째 막부인 아시카가家의 무로마치 막부는 말기적 증상으로 이미 쇼군의 힘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는 국고를 축내었고, 여러차례 덕정령(德政令)을 발표했으나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다. 이런 차에 먼저 막부의 수상이라고 할 수 있는 관령가 3가문(하타케야마, 시바, 호소가와) 중, 하타케야마, 시바 양가문이 집안상속으로 내분이 일어나 세력이 약화되었다. 오직 3가문 중 호소가와가만이 멀쩡하게 되었다. 그런가 하면 쿄토 내외의 형사임무와 경비를 돌아가며 맏던 4직- 아카마쓰, 잇시키, 야마나, 쿄코쿠 4가문중 야마나씨가 두들어 지게 강성하게 되어 호소가와와 알력이 생기게 되었다. (아카마쓰家가 쇼군을 암살하는 바람에 토벌당하게 되었고, 그 토벌을 야마나家가 맡아서 아카마쓰家의 영지를 차지했기 때문.)이런 상황에서 관령가 중의 하나인 하타케야마家에서 상속싸움이 벌어지고, 호소카와와 야마나는 각각 다른 사람을 지원함으로써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게 되었다.그리고 이번엔 쇼군가의 상속싸움이 벌어졌다. 8대쇼군 요시마사의 동생 요시미와 쇼군의 처 히노 도미코의 늦둥이 아들 요시히사가 충돌했는데 요시히사측에서 요시미 암살을 시도했다. 이에 유력 수호(지방 태수)들이 이에 반대, 군대를 상경시켜 대항했다. 결국 암살은 실패했으나 쿄토에는 군대가 남아있었다. 1467년 정월, 하타케야마의 상속다툼이 교토에서 전면전으로 발발. 이로써 응인(應仁)의 난이 시작되었다. 이것이 5월에는 호소카와편(동군)과 야마나편(서군)의 편싸움으로 확대되었다. 동군 24개국 16만명과 서군 20개국 11만명이쿄토에서 시가전을 벌려 쿄토는 잿더미로 변했고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동안 지방으로까지 싸움이 번졌다. 1473년 양군의 리더 호소카와 모치토요와 야마나 가쓰모토가 병사하자 전쟁은 지루해졌다. 서군에 있던 요시히사 모자가 동군에 붙자 동군에 있던 요시미가 불편해서 서군으로 옮기는 등 전쟁의 목적부터가 애매하게 되어 버렸다. 다음해 호소카와와 야마나 씨가 화해하고 1477년 에 반발하여 쇼군인 요시아키가 거병하지만 노부나가는 이를 간단히 제압하고 그를 폐위해버림. 즉 무로마치막부가 멸망1575 : 오다 노부나가가 강호 다케다(武田) 세력을 나가시노 전투에서 궤멸시켜 세력 일인자로 떠오름1582 : 혼노사(本能寺)의 변. 다케다 씨를 멸망시킴으로써 천하를 손에 얻을 찰나 혼노사에서 가신인 아케치 미츠히데의 배신으로 자결1584 : 이에야스가 히데요시와 벌인 전투에서 형세를 유리하게 이끌고서도 강화를 맺음 자신은 천하를 겨냥할 힘이 없다고 자인하면서 때를 기다림1590 :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함1592 : 히데요시가 임진왜란 일으킴1598 : 히데요시 사망1600 : 세키가하라(오사카vs에도) 전투에서 이에야스가 미쓰나리)를 누르고 일인자로 부상1603 : 에도막부 성립5. 전국시대를 이끈 영웅들과 주요 사건들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예야스. 이 세인물이 중심. 전국시대 초기 에는 사이토 도산, 호죠 쇼운, 마츠나가 히사히데 이 세인물이 중심.오다 노부나가 (織田信長, 1534~1582)1. 전국시대의 진압응인의 난을 도화선으로 약 100년간 지속된 전국시대는 백성들을 도탄에 빠트렸다.비옥한 평야를 배경으로 세력을 확장시키면서 교토로 올라가 천하통일 사업에 착수했다.(1) 지형을 이용해 대승을 거둔 오케하자마 전투(오케하자마의 회전)-세력강화의 발판(2) 교토입성(3) 여러 세력들과의 싸움 - 아사이?아사쿠라, 다케다 신겐, 우에스기 겐신, 모리(4) 혼노사의 변노부나가는 히데요시에게 모리씨를 공격하게 한다. 히데요시가 노부나가에게 원군을 요청하자 직접 다카마쓰로 달려간다. 혼노사(本能寺)에서 야전 지휘소를 설치하고 잠을 자던 중 아케치 미츠히데)가 반란을 일으켜 노부나가는 일생을 마친다.2. 정책① 아즈치성을 신축② 상업거래에 어떠한 명목의 세금도 면제③ 토지에 대해 완전 면세④ 교토를 왕래하는 여행자들은 반드시 아즈치를 경유⑤ 1574년 도로봉행을 설치하여 도로정비를 했다.⑥ 서양식 전술 도입과 철포 도입도갖고 히데요시를 이용해 해외에 진출하려는 욕망을 갖게 된다. 결국 전국시대의 전란이 수습된 후 몰락한 호족이나 일반무사 등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해외에서 영토를 획득하여 그들에게 나누어 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도쿠가와 이에야스 (德川家康, 1542~1616)에도막부 시대히데요시가 죽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키가하라 전투 끝에 권력을 잡는다.○ 세키가하라 전투)도쿄의 동북부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이에야스는 오사카성을 비우고 반란 진압에 떠난다. 그러자 이에야스의 적수였던 미쓰나리가 오사카 성을 점령한다. 그는 즉각 원정을 취소하고 에도 성으로 들어간다. 이로 인해 동군의 이에야스와 서군의 미쓰나리로 나뉘게 된다. 양측은 지금의 나고야 북쪽에서 결전을 벌이는데 이것이 1600년의 세키가하라 전투이다. 이로 인해 그는 정이 대장군에 임명되고 에도막부 시대를 열게 된다.○ 에도막부의 특징통치 방식이 이전까지의 막부와 다른데 에도시대에 막부정치를 정확히 말하자면 막번정치라고 할 수 있다. 에도시대에는 만석이상의 영지를 소유하고 직접 장군을 섬기는 신분을 대명이라고 불렀다. 대명은 그가 수여받은 영지에 부임하여 그 토지와 영민을 지배하고 정치적 책임을 지게 되는데 이 같은 지배 조직을 번이라고 불렀다. 번의 정치는 대체적으로 막부의 법률에 따르는 것으로 되어 있었으나 세부적인 사항은 각 번이 각각 독자적인 법률을 제정하여 저리하고 막부에 대하여는 반 독립적인 형태를 취하였다.오다 노부나가사 건도요토미 히데요시사 건도쿠가와 이에야스시대아즈치 모모야마시대(安土挑山)○혼노사(本能寺)의 변아즈치 모모야마시대(安土挑山)○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과 세키가하라(關が原) 전투에도 시대(江戶)정책○리쿠이치(樂市)?라쿠자(樂座)1567년에 히데요시와 함께 실시한 정책으로 각 다이묘는 영국의 경제를 발달시키고 성시를 건설하기 위해 상인들을 불러모아 누구든지 자유롭게 영업할 수 있도록 했으며 세금을 면제 했다. 상공업자를 사원?신사나 장원 영주의 예속하에서 해방하고 다이묘에 의해 재수중에 넣어 통일 정권 위세를 확대 하려 했으므로 적극적 이었다. 1588년 해적 정지령을 공포하기도 했다.○주인선(朱印船) 무역의 전개해외 왕래 허가하는 주인장을 받고 남방 각지를 항해하여 남만 무역에 종사하는 무역선을 주인선이라고 하는데 필리핀 베트남 타이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일대로 확장하기도 했다. 주인장을 소지하지 않는 배는 단속 대상이 되었다.※전국시대 3인방의 비교※3인방을 비교하는 예문: 노부나가와 히데요시, 이에야스 세 사람은 다 같이 전국시대를 누볐으면서도 성격들은 천양지차여서 후일 많은 비교의 대상이 되었다. 그 중의 하나로 손안에 있는 새가 울지 않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 가를 묘사한 이야기가 있다. 소개하면 “노부나가는 다혈질에 성미가 급한 반면 냉정하고 과감하게 결단력을 발휘하여 울지 않으면 새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여겨 즉시 죽여 버린다. 히데요시는 지혜가 뛰어나고 적극적이며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으며 자존심 또한 강한 성격으로, 새에게 자극을 주던가 놀라게 하는 등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어이 새를 울게 한다. 이에야스는 야망을 갈무리할 줄 아는 자기통제에 능한 성격으로, 자신의 손안에 새가 있는 이상 도망은 못 가니까 죽지 않도록 새를 보호하면서 언젠가 울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린다.6. 현대에 다시 유행하는 전국시대천지인(天地人)천지인은 2009년NHK의 대하사극으로 천지인이라는 동명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이 작품의 주인공은 나오에 가네쓰구(츠마부키 사토시)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센고쿠 시대에 우에스기 가문을 받들었던 무장의 일생의 다루었다. 평균시청률 20%이르러 일본인이 전국시대에 아직까지도 열광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카케무샤다케다 신겐의 예기치 못한 급사로 인해 그의 죽음을 숨길 수 밖에 없었던 다케다 측이 '카게무샤(무영자)'를 이용해 3년간이나 안팎을 기만했던 역사적 에피소드를 소재로 하고 있다. 명장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힘은 둘째로 치더라도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다케다 신겐 등 전국시대를 풍미한 .
20030926 이용진20090030 이상준목차일본의 전국시대란?전국시대, 그 배경은?전국시대의 전개전국시대의 주요 영웅들현대에 유행하는 전국시대이야기일본의 전국시대란?'戰(싸울 전)+國(나라 국)'시대 - 다이묘들 간의 전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던 시기 1467~1568년까지를 가리킴. 정치적- 전국 다이묘들은 서로 항쟁하거나 동맹을 맺으면서 각지에 할거. 독자적인 법을 제정. 성곽을 중심으로 도시를 건설. 경제적- 산업과 화폐경제가 발달. 사회 분업 추진. 16세기 전국 다이묘- 영토확장 16세기 중엽-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장. .전국시대, 그 배경은?- 유력 다이묘 집안들이 후계문제로 분열. (하타케야마와 시바) 덕정령의 실패 동군 24개국 16만명과 서군 20개국 11만명이 쿄토에서 시가전 응인의 난으로 쿄토에서 전국으로 전쟁 확대 호소카와와 야마나 씨가 화해. 1477년 남은 다이묘들도 화의전국시대의 전개전국시대의 전개1467-1477 : 응인의 난. 이로 인해 전국시대 개막 1560 : 오다 노부나가가 도카이(東海) 제일의 다이묘인 이마카와 요시모토를 물리치면서(오케하자마 전투)실력자로 떠오름 1568 : 오다 노부나가 교토 입성- 이 무렵까지를 전국시대라고 함. 1571 : 오다 노부나가 사원 세력의 거점인 연력사(延曆寺) 불태움 1573 : 노부나가가 연력사를 태운 것에 반발하여 쇼군인 요시아키가 거병하지만 노부나가는 이를 간단히 제압하고 그를 폐위해버림. 즉 무로마치막부가 멸망 1575 : 오다 노부나가가 강호 다케다(武田) 세력을 나가시노 전투에서 궤멸시켜 세력 일인자로 떠오름전국시대의 전개1582 : 혼노사(本能寺)의 변. 다케다 씨를 멸망시킴으로써 천하를 손에 얻을 찰나 혼노사에서 가신인 아케치 미츠히데의 배신으로 자결 1590 :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함 1592 : 히데요시가 임진왜란 일으킴 1598 : 히데요시 사망 1600 : 세키가하라(오사카vs에도)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동군)가 이시다 미츠나리(서군)를 누르고 일인자로 부상 1603 : 에도막부 성립전국시대의 주요 영웅들오다 노부나가 (織田信長, 1534~1582) 천하포무(天下布武)-하늘아래 무를 펼친다(天の下、武を布く) 천하를 무력으로 사로잡겠다, 무가정권으로 천하를 다스리겠다. 군 체제 확립-직업군인제를 적극 활용(병농분리) , 정보의 중요성 상업과 천주교의 권장 기존 불교도에 대한 억제, 세금 환수 가능, 유럽인들의 투자 확대(오사카) 상업에 대한 면세특권에 이은 상업권장으로 인한 세금 확충으로 전쟁비용 충당 및 모병제 유지 가능, 억불정책으로 인한 민생 안정(혼간지) #주요 사건 오케하자마 전투, 나가시노 전투, 혼간지 격파, 혼노사의 변전국시대의 주요 영웅들도요토미 히데요시 (豊臣秀吉, 1536~1598) 전국시대 종결 ! 검지와 무기의 몰수- 오다 노부나가와는 다른 검지 소농민의 자립정책-토지조사 및 토목공사 기독교의 금지령, 화폐의 통일, 광산 직영 #주요 사건 조선 침략, 전국통일, 5봉행 신설-중앙집권적 정권의 틀 마련전국시대의 주요 영웅들도쿠가와 이에야스 (德川家康, 1542~1616) 에도막부시대를 연 장본인 세키가하라 전투의 승리로 인한 정권 계승 주인선무역의 전개, 화폐의 통용 #주요 사건 세키가하라 전투, 오다와라 전투 현대에까지 이르러 돋보이는 이에야스의 인간경영!현대에 유행하는 전국시대 이야기현대에 유행하는 전국시대 이야기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contents1. 영화 카케무샤, 올빼미의 성, 폭렬닌자 고에몬, 숨은 요새의 세 악인 등현대에 유행하는 전국시대 이야기2. 서적 대망, 베가본드, 무사, 나라훔친 이야기, 사무라이디퍼 쿄우, 센코쿠 등현대에 유행하는 전국시대 이야기3. 드라마 및 애니메이션 천지인, 풍림화산, 대망, 전국바사라, 천하인, 스트레인져 무황인답 등현대에 유행하는 전국시대 이야기참고문헌황인영 저,『일본사 여행』, 일본문화연구센터, 1997 www.google.co.kr 위키디피아 백과사전 http://www.hiten.net/tenkafubu/index.php 정형 저, ,『사진과 함께 읽는 일본, 일본인, 일본문화』, 다락원, 2004{nameOfApplication=Sh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