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사회적 영향력, 아직도 유효한 것인가Ⅰ. 서론한때, 대부분의 문명국가는 이른바 ‘국교’라는 것을 가지고 있었다. 국교라 함은 말 그대로 그 나라의 종교인즉, 해당 국가의 국민은 그 국가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원하든 원치 않든 출생과 동시에 그 종교의 신도가 되어야 했다. 우리 역사에서는 신라나 고려의 불교, 조선의 유교, 유럽권 국가에서는 카톨릭/기독교가 국교로서의 지위를 향유하는 종교였다. 어떤 종교가 국교로서의 지위를 갖게 되었을 때, 그 종교가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은 실로 지대하였다. 국가가 강제에 가깝도록 권장하며 또한 지향하는 국교가 된 이상, 종교는 단순한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모든 분야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로 군림하게 되기 때문이다. 일례로 구교와 신교가 ‘부’에 대해 갖는 시각차에 따라, 구교를 신봉하는 국가와 신교를 신봉하는 국가가 갖는 기본적 경제관념에 차이가 발생한 것을 들 수 있다. 유럽국 가운데서도 프랑스는 ‘카톨릭의 맏딸’이라 불릴 만큼 열렬한 카톨릭 국가였는데, 카톨릭이 신교에 비해 ‘부’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견지하였기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사적인 부의 축적을 고운 시각으로만 바라보지는 않는 태도가 형성되게 되었다. 이에 반해 신교에서는 정직하게 부를 추구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 태도를 갖기 때문에, 그에 토대를 두고 성립한 국가인 미국에서는 ‘돈’에 대해 보다 자유롭게 이야기하며, 사적인 부의 추구를 지당한 것으로 여기게 하였다. 이러한 차이는 나아가 각 국가가 빈부 격차 발생원인을 파악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양상에 있어서도 차이를 드러내었다.전술한 과거의 국가들과 달리 현대의 자유 민주주의 국가들은 더 이상 국교를 인정하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한 나라에서 타 종교보다 신도 수가 많은 종교는 있을지언정, 국가가 앞장서서 권하는 종교는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헌법에서 명시적으로 국교 부인과 정교 분리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종교가 과거 향유하던 사회 전체에 대한 에 종교는 사회적 영향력을 영영 상실해 버린 것일까? 본고는 이러한 의문을 제기하고 그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우선 종교가 가지고 있던 전통적 지위와 역할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그 지위가 도전받는 상황임을 적시하고 그러한 가운데서 현대사회에서 종교가 일임하는 역할들에 대해 언급할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종교가 얼마만큼이나 파급효과를 지닌 역할을 해내고 있는지 검토함으로써, 위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Ⅱ. 종교의 전통적 역할과 지위1. 전통적 역할①세계에 대한 설명틀일반적으로 신화와 유사하게, 종교는 자연 과학적 현상에 대한 설명틀의 역할을 담당해 왔다. 비는 왜 내리는 것인지, 벼락은 왜 치는지 등 지엽적 현상에 관한 궁금증에서부터, 하늘과 땅은 어째서 갈라져 있는 것인지, 인간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또 가장 근본적으로는 이 세상은 누가 만든 것인지에 대해 인류는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자연 현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과거에 그러한 점을 과학적 원리를 빌려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 했을 것이다. 과학적 지식에 의거한 설명이 불가능한 가운데서 나름대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하다보니, 절대적인 질서나 존재를 상정한 후 그 존재 혹은 질서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함으로써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였다 할 수 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지창조’는, 세계에 대한 설명틀로서 종교가 일임하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종교가 설명하는 세계는 비단 가시적인 세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존해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도 본 적도 없고, 겪어본 바 없는 사후세계까지로 그 범위가 확장되어 있다.②이데올로기, 윤리관의 제공인간이 본시 선한 존재이든, 악한 존재이든 사회 속에서의 인간이 선한 성질만을 드러내는 존재가 아닌 점은 분명하다. 인간사회에서 범죄가 발생하기도 하고, 분쟁이 생겨나기도 하는 것은 위와 같은 점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범죄나 분쟁이 발생하는 상황은 결코 유쾌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은 가가의 강제력을 동원함과 동시에 종교에서 규율할 수 있기도 하여서 종교는 이데올로기, 윤리관의 강력한 생산주체로 기능할 수 있었다.③기원의 매개체인간은 그 생애 동안 자신이 원하는 바를 모두 실현시키지는 못한다. 기존의 근심, 걱정이 해결되고 더 나은 상태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 인간의 기본적 속성일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 속성으로부터,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보다 나은 상태로 되게 할 방법이 있다면 기꺼이 그 수단을 취할 것임을 예측할 수 있다. 통상 종교는 세계 질서의 지배자를 상정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지배자에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실현시켜 달라고 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종교를 통해 기원할 수 있게 되며, 기원을 함으로써 보다 나은 현실에 대한 희망을 갖는 동시에 심적 위안을 얻는 부수적 결과가 발생한다.)2. 전통적 역할의 위기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더 이상 종교가 취하는 세계에 대한 설명방식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은 없게 되었다. 자연 현상에 대한 매커니즘이 과학적으로 규명됨에 따라, 적어도 비가 내리는 등의 지엽적 현상이 절대자의 의지라고 믿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심지어 리처드 도킨스 같은 과학자는 그의 저서)를 통해 아예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물론, 세계가 어떻게 창조되었는지에 관해서는 창조론과 진화론이 여전히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무신론이 대중의 지지를 받는 사실만 보더라도, 절대자나 질서의 상정을 통한 종교의 세계설명방식이 이미 상당부분 설득력을 잃었음을 알 수 있다.뿐만 아니라, 특정 종교가 이야기하는 윤리나 이데올로기 외에 수많은 이념과 판단척도들이 존재하는 현재 상황에서는 종교가 갖는 윤리관이나 이데올로기의 생산, 강제 주체로서의 영향력은 과거의 그것에 비한다면 매우 축소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개인의 신념과 배치된다면 종교적 윤리나 이념은 임의로 배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또한 인간이 종교를 통해 원하는 바를 기원하는 것은, 기원행위를 통해 실현될기도 한다. 일례로, 카톨릭 성직자였던 지학순 주교는 독재정권에 항거하여 1971년 10월 사회정의구현과 부정부패 규탄대회'를 갖기도 하였고, 1974년 유신체제를 직접적으로 반대하는 양심선언을 하기도 하였다.) 그의 이러한 정치적 행동으로 ‘정의구현사제단’이 설립되기에 이르는데, 정의구현사제단은 최근 김용철 변호사와 삼성의 비리를 폭로하기도 한 바 있다.또한, 위와 같은 종교인으로서의 정치참여 뿐만 아니라 종교단체 자체가 정당을 구성할 수 있기 때문에 종교인이 정치인으로서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가능하다. 실제로 2008년 총선에 기독교 정당인 기독사랑실천당, 통일교 정당인 평화통일가정당이 후보를 내고 선거에 참여하였다.)②경제적 역할종교적인 사상체계가 경제 분야에 투영되면서 때로는 일정한 경제적인 사태를 발생시키기도 한다. 앞서 언급했듯, 프로테스탄티즘이 부의 추구에 대해 가졌던 긍정적인 시각은 자본주의의 성장을 초래하였다. 또한, 1980년대 동아시아의 급속한 경제 성장에 대한 해석론으로 유교윤리와 경제성장 간의 견련관계에 주목하는 견해가 제기되기도 하였다.) 1960년 대 이후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은 국가 주도 하에 이루어 진 것이었는데, 그것은 또한 저변에 상명하복식의 관료제, 높은 교육열, 근검절약정신 등이 맞물려 이룩해낸 것이었다. 이러한 요인들은 모두 유교윤리의 요소들을 함축하고 있는데, 특히 유교윤리의 핵심개념인 충효와 맞닿은 측면이 크다. 이로써, 한국의 경제성장은 종교윤리를 기저에 두고 달성해낸 것이라 할 수 있다.또한 대형교회와 같은 거대한 종교조직은 그 조직이 보유하거나 융통하는 재화의 규모로 볼 때, 법인세를 부담하는 않는다는 점에 특질이 있을 뿐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하나의 사경제 주체로서 의미를 부정하기 어렵다.③사회적 역할ㄱ. 현대사회에서 요구되는 윤리관의 제공윤리관의 생산과 강제 주체는 종교가 과거부터 누려오던 지위이다. 물론 종교적 윤리는 개인적인 신념에 따라 임의배제가 가능하다는 한계점이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널리 외에 자연물에 생명에는 무관심하였다면, 이제는 불교윤리로부터 생명존중윤리를 자각하고 미물의 생명존중에도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이외에도 과학기술의 발달로 발생하는 인간복제문제나 낙태 등에 대해서도 종교의 윤리로부터 맹목적인 과학주의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다.ㄴ. 사회복지사업어떤 종교이든, 종교는 인간존중정신을 바탕에 두고 있으며 타인과 넓은 범위로는 인간사회전체에 대한 애정을 가질 것을 권한다. 한국사회에서 주류로 일컬어지는 종교들의 기본 정신을 상기해보아도 그러한데, 기독교의 사랑, 불교의 자비, 유교의 인(仁)은 모두 타인과 인간사회에 대한 애정으로 연결되는 개념이다. 때문에 종교는 그 본질적인 정신으로부터, 다른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일종의 의무로 삼고 있다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종교단체들이 사회복지사업에 나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한 것이다.사회복지사업은 국가가 나서서 제아무리 철저히 한다한들 현실적인 제약에 부딪쳐, 혜택을 받아야 할 사람이 수혜를 받지 못하는 일이 빈번하다. 이렇게 발생하는 공백을 종교단체가 능동적으로 나서 메우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종교집단은 신도들로부터 수입을 확보할 수 있고 일정한 조직구성체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사회복지사업의 주체로서 적절한 요건을 구비하고 있다.) 이를 십분 활용하여 사회복지사업에 나서는 것은 종교가 할 수 있는 바람직한 사회적 역할로 보인다.ㄷ. 심리적 위안의 제공현대사회의 생활은 그 양상이 복잡한 만큼 엄청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스트레스는 현재 상황에 대한 불만족에서 기인할 것이다. 보다 나은 상태를 희구하는 인간의 본성상 불가피한 것인데, 현실과 욕망의 불일치는 계속될 수밖에 없으므로 스트레스 역시 계속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대개의 종교에서는 자족의 미덕을 강조하기 때문에, 만일 현실상태가 극도로 나쁜 것이 아니라면 종교를 통해 스트레스 발생 가능성을 어느 정도 미연에 막을 수 있다. 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