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소개서저는 아직 발굴되지 않은 보석입니다.홍익인간의 길을 따르는 동방의 별 홍길동 입니다.유년시절(無限挑戰)저는 항상 挑戰하는 사람입니다.그로인한 成功과 失敗를 겪으면서도 그것에 만족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27살의 씩씩한 청년입니다.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친구와 낚시를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과거는 미래를 위한 버팀목이지만 미래를 위해 현재를 投資하는 것이賢明한 者 라고 생각합니다.저의 성장과정은 원하시면 면접에서 말씀 드리겠습니다.학창시절(SEIZE THE DAY)대학에서 전공을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러 경험을 통해 많은 지식과 소양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치어 리더, 교내 봉사활동 등각종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여러 교우들과 소중한 경험들을 많이 가졌습니다.흔히 하는 말로 몸치였던 제가 약 한달 간 하루 6시간 이상씩 연습을 해서저희 팀이 수많은 경쟁 팀들을 젖히고 1위에 입상한 걸 보면 저는 이미 그때“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문구를 직접 체험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또한 반대표가 되어 Leadership 보다는 Friendship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으며면학에도 게을리 하지 않아 한번 도 장학금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호주에서 1년간의 어학연수 기간 동안 language school을 다니면서 여러 나라의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으며 제가 유일한 동양인 직원이었던 레스토랑에서의 웨이터, 키친핸드 등의 아르바이트 경험들은 결코 다른 것과는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었다고 생각합니다.단독으로 했던 호주, 뉴질랜드 여행에서 제 자신을 한번 뒤돌아봄으로서 자신을 發展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그러한 경험들은 제가 앞으로 수행할 서비스 업무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성격의 장, 단점(To be a better man)저의 장점은 손해 볼 줄도 안다는 것이며 그것은 제가 서비스를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또 다른 저의 장점은 확실한 決斷力입니다.우유부단한 사고방식은 저를 성장시키는데 방해요소일 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 타인에게까지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조심성 있게 생각한 후 결단력 있게 일을 수행하는 것입니다.단점으로는 完璧主義라는 것으로 어떤 일을 맡아서 할 때 제 맘에 들지 못하면 밤을 세어서라도 끝내고 마는 성격입니다.남들이 봤을 때 좋게 말하면 성실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너무 피곤하게 산다는 느낌을 줄 수가 있고 저 또한 피곤함을 느끼기 때문에 여유를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취미 및 특기("知之者, 不如好之者 ; 好之者, 不如樂之者.")활동적인 성격으로 거의 모든 운동을 좋아하지만 취미생활로 헬스장을 다니던것이 이제는 특기가 되어 집에 운동기구를 사 놓을 정도로 애착을 가지고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매년 여름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지원동기 및 포부(IMPOSSIBLE IS NOTHING)저는 약 1년 4개월간 00항공 지상업무라고 생각하시는 여러 항공사들과 조업하여 국제선 여객운송 업무를 수행했습니다.각 편의 승객 및 승무원의 명단과 같은 서류를 작성하고 항공기 OPEN 에서부터 CLOSE까지 외항사 지상직원을 도와 일을 한 경험이 많이 있으며 이러한 경험이 즉시 업무에 투입되어도 차질 없이 배워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確信합니다.
신입마케터로서 신규시장을 개척하는 마케팅전략서 론신규시장을 개척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이 말을 자세히 다시 한 번 생각 해 보면 쉽지가 않다는 것이지 가망성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상품의 quality를 우선 제외하고 과연 상품을 신규시장에 내 놓았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그것은 바로 상품의 “브랜드화“ 라고 생각한다.이름만 말해도 아~! 하는 상품들이 우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몇 가지는 보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브랜드의 힘이다.TV에서 유명 연예인이 입고나온 옷이나 악세사리가 광고매체를 통해 비추어 졌을 때 그 상품의 매장은 손님들로 들썩거린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굴지의 기업인 삼성은 많은 외국인들이 알고 있지만 그것이 한국의 기업이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많다. 어찌 보면 한국도 세계속에서 하나의 상품으로 인식하여 브랜드화 하지 못한 이유에서 일 것이다.요즘은 TV에서 한국을 브랜드화 하여 광고를 하는 것을 가끔씩 본 적이 있다. 올바른 현상이다.얼마 전 맥도날드의 마케팅 전략에 대한 정보를 접한 적이 있다.마케팅의 천재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던 창업자 레이 A. 크록의 전략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을 한다. “음식을 사고 난 거스름돈을 윤이 나도록 닦아주어 호주머니에서 반짝거리는 동전을 꺼낼 때 마다 우리가게를 생각하도록 하자“ 라는 전략(그 당시)을 생각 해 낸 것도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다. 또한 건축가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맥도날드의 황색아치를 이용함으로써 오늘날까지 상징으로 이끈 점으로 보아 신규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우선 상품에 대한 고객의 인식을 사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상품이나 기업의“브랜드화”와도 같은 이치일 것이다. 이러한 브랜드화를 심어주기 위한 마케팅전략에 대해 알아보았다.본론물론 기업브랜드와 제품브랜드의 탄생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다수의 기업브랜드는 (특히 역사가 오래된 기업일수록) 어떤 상업적인 전략을 배경으로 만들어 졌다기보다는, 창업자의 이름을 따거나, 창업자가 좋아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또는 기업이 제공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간단히 나타낸다. 예를 들어 유한양행은 창업자인 유일한 박사님의 이름에서 '유한'을 따 왔고, symbol로 사용하는 버드나무 또한 유 박사님의 성인 '버들 유(柳)'자에서 만들어졌다. 삼성, 현대 등은 어떤 전략적인 고려를 해서 지어 졌다기보다는 창업자의 이념이나 선호에 따라 지어진 명칭으로 볼 수 있으며, 이러한 기업 명칭은 어떤 서비스나 제품을 설명하지는 않지만, 기업의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positioning을 하게 되며, 삼성, 현대 등의 명칭 뒤에 전자, 건설 등을 붙여 제공하는 서비스나 제품의 속성을 나타낸다. 삼성전자, 현대건설과 같이 표현된다. 이러한 기업의 명칭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초기부터 전략적으로 설계되는 경우는 드물며, launching 이후에 전략이 수립되고, 관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록 전략적으로 설계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기업의 명칭은 positioning을 통해 내부직원에게는 비전을 제시하고, 소비자에게 기업이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한정짓게 되므로 매우 중요하게 관리되어야 한다. 때문에 여기에서는 기업브랜드 보다는 제품브랜드가 어떻게 전략적으로 만들어 지는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제품브랜드는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브랜드 전략 수립 →Naming → Design → Communication 의 과정을 거친다.1. 브랜드 전략수립이 과정은 전략적 마케팅 계획과 유사하다. 시장을 세분화하고, 타겟을 설정하고, 제품을 어떻게 positioning 할 것인가를 계획한다. 또한 제품에 대한 시장의 반응을 예측하기위한 조사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조사는 내부 직원과 외부 고객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이 과정을 통해 브랜드의 핵심가치(에센스)를 발굴해내고, 이러한 가치에 기반 해 Naming,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브랜드 전략에는 STP전략과 브랜드의 핵심가치, Naming,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계획 등이 모두 포함된다.2. 브랜드 네이밍(Naming)Naming은 말 그대로 이름은 짓는 것이다. 발음하기 쉬운지, 읽기는 쉬운지, 뜻은 좋은지, 부정적인 이미지로 연결된 소지는 없는지 등을 고려해, 브랜드의 핵심가치에 부합하는 단어를 선정하거나,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내게 된다. 이때 한개 에서 많게는 수백 가지의 단어들이 후보로 나올 수 있으며, 이러한 후보들이 상표로 등록될 수 있는지 여부를 검토하게 된다. 선정된 브랜드네임은 바로 상표등록에 들어가야 타인의 상표선점을 막을 수 있다.Naming에서 상표등록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한 가지 예로, '후라보노'의 경우 상표 독점을 위해서 롯데와 오리온 등이 1990년 이후 수차례에 걸쳐 상표독점을 위해 상표등록 출원을 했으나, 모두 거절당해 개별 출원을 하지 못하다가 2005년에야 공동상표 출원에 성공한다. 양자 중에 누군가가 상표등록을 선점했다면, 자일리톨 이전까지 껌 시장의 맹주를 차지했을 것임은 의심할 바 없다. 이와 같이 Naming은 단어의 선택도 중요하지만 상표권의 확보 또한 매우 중요한 것임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몇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면, 상표등록 시 이미 등록되어있는 상표와 유사하거나, 보통명사이거나 한 것들은 상표등록이 어려우니 주의하여야 한다. 또한 'Positioning'의 저자 잭 트라우츠와 알리츠에 따르면, 브랜드 네임은 5음절이 넘지 않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이에 따르면 '삼성', '엘지', '렉서스', '벤츠', 'BMW'가 좋은 사례가 되겠고,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는 나쁜 사례가 될 것이다. 그래서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는 'PWC'라고 이니셜을 부르게 된다.3. 브랜드 디자인브랜드 네임이 선정되고 나면, 이 이름에 치장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브랜드 디자인이다. 즉, 네임이 단어(Text)로만 이루어진데 반해서, 디자인은 네임에 그래픽적인 요소를 가미해서 , 브랜드 핵심가치를 나타내면서도, 사람들이 좋아할 형태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한 가지 브랜드 네임을 가지고도, 수만 가지 아니 무한한 형태의 디자인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브랜드 디자인은 단순이 브랜드 네임에 폰트를 지정하고, 색상을 지정하거나, 로고 형태로 만들거나, Symbol을 제작해서 붙이는 작업들이 이루어진다. 상업적인 브랜드 디자인에서 중요한 것은 Simple & Easy의 원칙을 지켜서, 보기 쉽고, 이해하기 편하며, 광고를 할 때 보편적인 기술로 용이하게 구현할 수 있도록 디자인 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편적으로 브랜드 디자인은 2~3가지 색상으로 그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핵심가치를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네임을 그래픽적인 형태로 만들어 주는 작업이 기본적인 브랜드 디자인(Basic Design)이 될 것이고, 이렇게 탄생하는 것이 브랜드 마크이다. Basic Design된 브랜드마크를 적용한 여러 가지 형태를 설계하는 것이 응용디자인(Application Design)이다. 응용디자인에서는 브랜드 마크를 적용한 포장이나 광고 등이 설계된다.4.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이 과정은 브랜드를 알리고, 사람들이 좋아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앞선 세 과정을 포함해서 가장 어려운 과정이고, 가장 중요한 과정이기도 하다. 조금 과장하면, Naming이나 디자인이 완벽하지 않더라고,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얼마든지 극복이 가능하다.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함축적으로 설명하자면, 제품에 내재된 가치를 홍보나 광고를 통해 드러내고, 소비자에게 그 가치를 체험해 보도록 권유하는 과정이라고 할 것이다. 대체로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호기심-체험-친밀감-충성고객'을 만드는 것의 50%는 커뮤니케이션에 달려있다. 나머지 50%는 제품의 실제 가치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목차-1. 서론 ---------------------------------- 22. 본론 ---------------------------------- 21) 기업분석 / 22) 경쟁자 분석 / 43) 제품의 변천 / 74) 마케팅 전략 및 시장 점유율 / 73. 4P에 의한 전략 파악 ----------------------- 104. 결 론 ---------------------------------- 121. 서 론누구나 한번은 롯데리아를 이용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무심코 이용하는 패스트푸드점인 롯데리아가 수많은 해외 경쟁사와 나란히 견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롯데리아가 맥도널드보다 정말 강한가! 최근 우리나라 소매업체들이 서서히 경쟁력을 갖추어나가고 있다. 적어도 국내에서는 외국계 소매업체들에 비해 뒤지지 않는 경쟁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국내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업계에서도 롯데리아가 부동의 1위를 유지하면서 맥도널드나 버거킹에 대하여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시장 점유율 1위에 실패한 적 없는 맥도널드가 우리나라에서는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거리에 나가보면 어디서나 쉽게 맥도날드의 M마크를 볼 수 있다. 그만큼 많은 매장을 확보하고 있는 패스트푸드점이 미국의 맥도날드이다. 하지만 패스트푸드의 시장 점유율 1위를 잡고 있는 곳은 바로 롯데리아이다. 마케팅의 천재라고 까지 불리던 맥도널드의 창시자 레이 A. 크록의 마케팅 전략이 우리나라의 롯데리아에 의해 1위를 내어 놓은 이유는 무엇일까?롯데리아가 세계적인 패스트푸드업계의 틈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이번 레포트를 통해 롯데리아가 맥도날드와는 다른 어떠한 차별화된 마케팅 요소를 구사하는지를 검토하였다. 전 세계 적으로 1위를 놓치지 않고 시장 점유율 1위에 실패한 적이 없던 맥도널드가 맥을 못 춘 곳이 바로 우리나라다. 그 이유는 롯데리아에서는 패스트푸드업계 최초진출이라는 프리미엄이다. 그리고 유난히 '우리 것'을 사랑하는 민족성을 감안하여 토03년 10월말 ISO 9001, ) RvA HACCP 인증을 획득함으로써 국내 외식업계에서 최초로 품질 경영, 환경 경영, 식품 안전에 관한 3개 분야의 인증 획득을 완료하였다. ISO 14001은 환경 위해 요소로부터 자연과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기업의 환경관리 능력에 대한 평가 인증으로 이를 통해 일반폐기물 감축, 일회용품 절약 등 환경 보호 시스템을 완비했음을 인정받았다. 또한 ISO 9001과 RvA HACCP 인증으로 품질 경영 시스템과 식품의 위생 관리 체계까지 인정받았다.(2) 롯데리아의 기업사명모든 사람이 서로 사랑하며, 따뜻하게 감싸주는 사회, 모두가 자유롭게 제 할 일을 하는 사회, 다 같이 풍요를 누리며 즐겁게 사는 사회를 지향하는 롯데그룹의 3L 정신과 더불어 롯데리아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업사명으로 고객 지향적인 기업으로 성장해가고 있다.* 고객과 환경을 먼저 생각하고 미래를 지향하는 기업* 식생활 개선으로 풍요롭고 편안한 삶의 공간을 가꾸는 기업* 서로 돕고 더불어 커 가는 조직문화를 구현하는 기업(3) 롯데리아의 기업정신 (QCST)국내 패스트푸드의 선도 기업으로 국민의 새로운 식생활 문화를 창조하며 최고 품질의 상품 (Quality), 미려하고 청결한 점포 환경(Cleanliness), 밝은 미소와 아낌없는 친절, 잠깐의 만남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Service), 고객을 기다리시지 않게 하는 빠른 서비스의 실현 (Time)을 통한 고객만족을 추구하는 기업정신을 모토로 한다.(4) 롯데리아의 목표국내 1위 기업으로 만족하지 않고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하기 위해 과거의 훌륭한 업적과긍지, 자부심을 토대로 시대에 부응한 식생활문화를 창조, 개선하는데 모든 힘을 쏟는다.(5) 네이밍롯데리아(Lotteria)의 뜻은 롯데(Lotte)와 카페테리아(Cafeteria)의 합성어이다. 원래 Lotte 는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지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샤롯데`에서 유래된 것이며, Cafeteria 는 자기가 원하는 음식제공하고 있다. 해외외식브랜드는 많은 외화를 로얄티로 지출하는 것에 비해 롯데리아는 국내외식산업의 발전의 대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리들 인식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2. 약점고객 서비스 만족도 조사에서 햄버거/치킨부문 전체만족도 1위는 맥도널드로 밝혀졌으며, 맥도날드는 친절성과 가격만족도에서도 1위를 기록하였다.버거킹은 매장분위기와 시설 청결성 등에서 1위로 평가되었으며 파파이스는 맛과 메뉴다양성에서 1위를 그리고 롯데리아는 신속성에서 1위로 밝혀졌다. 요즘의 고객들은 패스트푸드점의 서비스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맛’ 과 ‘메뉴의 다양성’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롯데리아는 ‘맛’과 ‘메뉴의 다양성’에서 다른 경쟁업체보다 조금 낮은 점수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유통 상권이 빠른 변화를 보이고 있다.-임대료 상승 문제가 심각하다.-인력난, 인건비 상승3. 기회1978년 처음 개점된 패스트푸드업체로서 높은 인지도를 얻고 있다.1994년에는 업계 최초로 중국에 진출하였으며 계속해서 러시아 및 동남아 진출을 추진하여 21세기에는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할 것이다. 국제화 전략의 첫 단계로 1994년 중국과 합자 투자로 北京樂天 利 有限公司를 설립하여 중국 북경 및 하얼빈에 2001년 3월 8개의 점포를 개설하였다.다음 단계로 천진, 심양, 상해, 심천 등에 진출하고자 합작선을 물색 하여 롯데리아의 중국 진출은 국내 패스트푸드 업계로는 최초의 해외 진출로, 현지에 대한 과감한 기술지원과 충실한 교육을 통해 국내의 제품과 다름없는 고품질의 맛과 서비스를 중국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롯데리아의 세계화를 꿈꾸며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롯데리아는 계속해서 구소련, 동구권 진출 및 동남아시아 시장의 선점을 위해 방콕, 마닐라, 자카르타 등지의 진출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외식수요 타겟층인 20~30대가 컴퓨터 통신의 주 사용자인 점에 착안, 대형외식업체들이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브랜드 게는 성실했으나 그렇지 못한 업자에게는 냉정한 태도를 취했다. 납품업자를 신용함으로써 맥도날드는 도약의 시기에 귀중한 시간을 절약했다.다른 많은 업체들이 시간의 90%를 구매를 위해 소비한 데 비해 맥도날드는 경영에 전념할 수가 있었다. 맥도날드는 비교적 숫자가 적은 충실한 납품업자들에게 의존했기 때문에 상품개발에 전력을 기울일 수가 있었다. 어디서, 누가 만들어도 똑같은 햄버거 맛을 낸다.맥도날드의 신화는 메뉴를 단순화하고 모든 공정을 표준화하고, 화장실 운영 규칙까지 만든 매뉴얼을 배포함으로써, 어느 곳에서 누가 만들어도 똑같은 햄버거 맛을 낼 수 있게 한 데 있다. 햄버거 대학 운영: 햄버거 대학의 교육은 스토아 매니저가 되기 위한 과정을 비롯하여 각 직급별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그 중 가장 핵심적인 교과 과정은 RCP로서 매장 매니저와 예비 점주들을 대상으로 한다.2. 약점빠르고 값싸게 공급하기 위해서는 햄버거를 만드는 재료가 빵, 야채, 소스 종류가 많지 않고 표준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표준화에서 제외된 예를 들면 참깨가 많이 박힌 밀 빵, 표준화에 없는 야채나 소스를 넣은 햄버거를 먹으려면 한쪽 구석에서 표준화된 것이 맥도날드의 강점이었으나 그것이 곧 아킬레스건이었다. 다른 업체에서 맥도날드에서 제고하지 않는 특별한 빵, 야채, 소스도 준비함으로써 맥도날드의 부족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차별화된 메뉴를 내놓는 기회를 주게 된 것이다.3. 기회맥도날드가 월드컵 공식 후원사인 점을 활용, 스포츠 마케팅을 적극 펼쳐 업계 선두인 롯데리아를 추격할 계획이다. 어린이들에게 일생의 단 한번뿐인 특별한 기회를 제공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인다는 전략으로 다양한 월드컵 프로모션과 함께 어린이들이 월드컵에 직접 참여, 세계 축구선수들과 자리를 함께 할 수 있도록 이벤트를 개최하였다.4. 위협광우병과 동물성 식용유 파동으로 기업 이미지가 더욱 나빠졌다. 조지 리처 교수의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라는 책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맥도날드의 계산 가능성은 무인 기술기술을 축적함으로써 패스트푸드의 토착화라는 명제 아래 우리 입맛에 맞는 한국적 제품을 개발하려는 노력을 기울인 시기이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제품이 팥빙수이다.팥빙수 도입에는 패스트푸드 업체라는 기업이미지가 손상될 위험성과 위생의 문제가 제기되는 등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았으나 롯데리아는 한국적 패스트푸드의 개발이라는 명제 아래 위생적인 팥빙수 개발에 성공하였다. 팥빙수는 첫 선을 보이자마자 고객들로부터 대호평을 받았다. 1986년에는 12만2천6백 여 개가 팔렸으나 다음 해 1987년에는 판매량 115 만4천 2백개를 돌파하였다.세 번째 단계는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국민소득이 향상되고 청소년 및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패스트푸드가 일상화되어 서서히 식사대용으로 자리 잡은 시기이다. 이 시기에 이르러 롯데리아는 축적된 기술을 토대로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불고기버거를 업계 최초로 선보여 패스트푸드의 토착화에 한 획을 그었다. 앞 시기의 팥빙수가 우리 고유의 제품을 패스트푸드로 융합시킨 제품이었다면, 불고기버거는 서구식 햄버거를 완전히 우리 고유의 입맛에 맞는 제품으로 재탄생시켰다는 의미를 갖는다. 불고기버거의 누적 판매량은 2억개를 돌파했는데 이는 하루 24시간 내내 잠시도 쉬지 않고 초당 2개씩 3년간 판매된 것과 같다. 네 번째 단계는 우리 입맛에 맞는 한국적인 제품 기술력을 확보한 뒤 이전 품질보다 고품질이면서 건강을 고려한 제품을 개발한 1990년대 중반 이후이다.이 시기에는 소비자들이 건강식을 추구하는 욕구를 반영해 업계 최초로 햄버거에 우엉을 첨가한 제품인 우엉버거를 출시하였다. 불고기버거의 인기를 토대로 새롭게 개발된 불갈비버거도 출시 직후부터 소비자들로부터 큰 인기를 모은 제품이다. 불갈비버거는 기존 햄버거 형태와는 달리 쇠갈비처럼 길쭉한 모양으로 갈비부위를 좋아하는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추어 한 끼 식사대용으로 할 수 있는 제품으로 손색이 없었다. 1999년에는 라이스버거를 탄생시켰다. 라이스버거는 출시한지 한 달 만에 약 80만개가 판매되어 23서트,
음료의 특징과 분류1. 음료의 정의: 음료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 마실 수 있도록 만든 액체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알코올성 음료는 hard drink 또는 strong drink라고 하며 비 알코올성 드링크는 soft drink라고 한다. 우리나라 주세법에서의 술의 정의는 곡류의 전분과 당분 등을 발효시켜 만든 1%이상의 알코올 성분이 함유된 음료를 총칭한다.2. 음료의 역사음료가 언제부터 만들어 졌는지에 대한 물음에 대하여 딱 잘라 정확히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아주 오래 전에 과일, 곡식이 땅에 떨어져 낙엽이 쌓이고 공기가 차단되어 자연적으로 발효가 된 액체를 우연히 맛보면서부터 이를 애용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또는 인류가 음식을 저장해 놓는 과정에서 당분이 많이 함유된 과실류가 용기 속에서 발효되었고, 이 신비한 액체에 매료되었을 것이라는 짐작도 가능하다. 여하튼, 영특한 인류는 술의 발생 비밀을 인간의 것으로 소화하여 신비의 음료를 제조하게 되었고, 이 쓴 맛을 지닌 액체 - 에틸 알코올은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의 행동에 놀라운 영향을 끼쳐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무수한 세월이 흘렀으나 기본적인 양조기술과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까닭은 조금도 바뀌지 않고 있다. 동인도제도에서는 야자즙으로 아라카(araka)를 뽑아냈고, 고대 잉카제국에서는 옥수수를 삶아 이를 잘 씹어 침으로 전분을 당화시켜서 옥수수술을 빚었습니다. 멕시코의 아즈텍 족은 용설란의 수액을 발효시켜 데킬라를 뽑아냈고, 이집트인들은 대추야자 열매에서 야자술을 만들어내었다. 인류 생활문화 형성에 기저(基底)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식생활이다. 이 식생활의 한?부분인 음료를 시대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알콜음료인 술에 대해서부터 언급된다. 고대의 술은?제천행사 때 주로 귀족 중에서 쓰여 졌는데 자세한 제조방법 기록은 전하는 바가 없으나 고대벽화 등으로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삼국시대에 와서는 중국에서의 불교 전래와 함께 차(茶)가 도입 술의 종류와 성격은 알 길이 없다. '위지동이전' 기록에 있듯이 농경의 시작과 함께 원초형이지만 술 빚기, 장 담그기가 실시되었다. 술은 곡물로 빚은 탁주류이고 원료로는 기장이나 쌀 등이 쓰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술 빚기에서 익힌 가공기술에 의해 절임도 가능하였을 것으로 추측 된다.2) 삼국시대'위지동이전'에서는 "고구려 사람은 발효식품을 잘 만든다"고 하였으며 중국의 유명한 곡아주의 전설에도 고구려 여인의 사연이 얽혀 있어 구체적인 것은 알 수 없으나 중국과 비슷한 수준의 술 빚기가 발달되어 있었던 것만은 쉽게 짐작 할 수 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의하면 신라의 가제(家祭) 제물은 술, 감주가 쓰였고 연회를 할 때에는 술이?세 번 돌고 난 다음 주악과 가무를 시작하면서 연회를 열었다고 전한다. 고구려는 일찍부터 술빚기 솜씨가 발달하였다. 이러한 양조기술은 이웃 일본으로까지 전수되어 그곳 양주법 개발의 발단을 이루게 하였다. 이때 일본왕은 "수수보리가 빚어준 술에 내가 취했네! 마음을 달래주는 술 운음을 주는 술에 내가 취했네!"라고 노래하였다. ?당시 일본 문헌인 '연희식'에는 "술 여덟말을 빚는데 쌀 한섬, 누룩 너말, 물 아홉말을 쓴다"고 한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수수보리가 전한 술도 누룩을 이용한 술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 일본의 소소원문서에 청주, 탁주, 술지게미, 예주(禮酒)등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삼국시대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종류의 술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시기의 술은 대부분 탁주류였고 술의 종류는 재료의 배합 숙성기일 등으로 나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3) 고려시대불교 전래와 함께 이 땅에 들어온 차는 불교를 국교로 하는 고려에서 크게 발달하였고 불교의식인 팔관제, 공덕제에 차는 필수적인 것이었다. 차의 유행은 궁중, 귀족가문, 사찰을 중심으로 성행하였으며 왕가의례에서 잔치상에 앞서 진다례가 반드시 행하여졌는데 이 의식은 임금이 신하에게 차를 내리는 사다식과 신하가 임금에게 올 리는 현다식이 있었다. 왕의 행차에는 도으며 별로 취하지 않는다."라고 고려의 술을 평하고 있다. 이 내용으로 미루어 보면 고려에는 청주, 탁주, 예주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궁에서 연회나 연등행사에서는 화주(花酒)를 사용했고 왕이 하사하는 술도 화주였다. 또한 부두연에서는 부두주를 사용했는데 이 술은 취하기 쉬운 것이 그 특징이었다. 궁중에서는 '양온서'라는 부서를 두고 왕이 마시는 청주와 법주를 빚어 질항아리에 넣어 명주(비단)로 봉해서 저장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원나라에서 소주가 들어오게 되었다. 제를 올릴 때는 검은 기장으로 빚은 거서주를 사용하였고 군사들에게는 양주를 먹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특수주로는 포도주가 있었는데 고려시대 시(詩)속에 자주 등장했고 당시의 포도주는 누룩, 밥, 포도즙으로 빚었다고 추측할 뿐 이땅의 전통주로 뿌리 내리지는 못하였다. 이처럼 고려의 술은 기호식품일 뿐 아니라 제사, 향연, 손님접대 등에도 필수 식품이었다. 고려말 한림학자들의 공동작품인 한림별곡에는 황금술, 잣술, 솔술, 예주, 댓잎술, 배술, 오가피술 등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상류층 학자들의 번화했던 생활 일면을 엿볼 수 있다. 고려시대의 문헌에 이러한 술 제조법을 설명한 것이 없으나 그 이름만은 우리 고유의 것이 대부분이며 멋이 있어서 이름만으로도 구미를 당긴다. 고려시대 특이한 음식중 하나가 상화떡인데 이 상화는 밀가루에 술을 넣어 반죽해서 부풀린 다음 속을 넣어 찐 것으로 오늘날 찐빵으로 발전된 것으로 추측된다.4) 조선시대조선시대에는 술의 제조법을 기록한 문헌이 많이 남아 있어서 술빚기에 관해 문허상르로 체제를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술을 분류하면 발효주, 증류주, 혼합주(발효주+증류주), 제재주(약재나 꽃향기, 색소 감미료 등을 첨가)로 나눌 수 있다. 발효주의 대표적인 술로는 막걸리가 있으며 빚는 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지에밥에다 누룩을 섞어 빚은 술이 다 익었을 때 오지그릇 위에 쳇다리를 걸고 체로 대충 걸러 만들었다. 빛이 탁하고 텁텁한 맛이 나는 것이 그 특징류하여 20∼25도의 알콜성분을 갖도록 만든 것이다. 소주는 어떤 곡물로 만들었느냐에 따라 찹쌀소주, 쌀소주라 하고 찹쌀과 멥쌀을 섞어 만든?것을?노주라 불렀다. 제재주의 종류로는 소주에 홍국과 약재를 넣어 우린 감홍주, 구기자나무의 열매를 넣어 만든?구기주, 매실을 넣어 만든 매실주, 기나수(畿那樹)의 껍질을 넣어 우린 기나피주, 배즙과?생강즙을 넣어 만든이강주 등이 있었다. 조선시대 가정에는 반주, 빈객, 제례에 대비하여 항상 가양주를 상비하였다. 하지만 가양주의 풍속은 양조의 전매제로 20세기에 와서 금지되었지만 그 이전에는 봄, 가을, 겨울에는 약주를 여름철에는 약소주를 상비하였는데 이때 거정에서 빚은 술의 종류는 40여종이 훨씬 넘었다고 한다. 춘분과 곡우 사이의 청명절에는 청명주(淸明酒)를 여름에는 소주에다 여러 가지 꽃을 넣어 숙성시킨 과하주를 만들었고 복중에는 소주에 용안육, 대추, 인삼 등을 넣어 삭혀 약소주를?만들었다.?환절기에는 입맛을 돋우기 위한 사마주를 만들어 마셨고 추석에는 신도주(新稻酒)를 빚었으며??가을철 별미로 가양주의 하나가 국화주이며 국화주는 중구일에 마실 수 있도록 때를 맞추어 빚었는데 사시찬요 기록에 의하면 청주1말에 국화2냥의 비율로하여 명주주머니에 국화를 넣고 ?청주가 들어 있는 병에다 술의 표면에서 숟가락 높이 만큼의 위치에 매달아 하룻밤을 재운 뒤 건져낸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감국화를 고아낸 즙액에 누룩과 솔방울을 섞어서 빚기도 하였다.?정월 초하룻날에는 도소주를 만들어 마셨는데 이 술은 산초, 방풍, 백출, 육계피 등을 섞어 빚는데 이 술을 마심으로써 일년의 사기를 없앤다고 믿었다. 고려시대 번성했던 차문화는 조선시대에 이르러 점차 쇠퇴되었지만 그래도 차는 계속 애용되어 궁중의 제례에서 민가의 제사와 혼사에 까지 끊이지 않고 사용되었다. 이 시대에는 특히 작설차(雀舌茶)가 유행되었는데 이 차를 산채라고도 하였으며 찻잎이 완전히 피지 않은 새순을 사용하였다.5) 근대시대주류의 품질은 누룩 제조방법에 달려 있으므로 - 복숭아화채, 배화채, 앵두화채, 수단, 보리수단, 원소병, 콩국, 미수, 송화, 밀수, 배숙, 수정과, 식혜, 향설고, 책면 등차 ?류 - 오미자차, 국화차, 매화차, 포도차, 인삼차, 커피차, 코코아차 등즙 ????- 양즙, 천연즙, 육즙 등?7) 현대시대1960년대 만성적인 식량부족 상태에서 해마다 외국의 약곡을 도입해야 하였던 실정이여서 쌀을?원료로 하던 막걸리와 약주 사용이 금지됨으로써 밀가루, 옥수수 등 외국도입 양곡을 섞어 빚게?되었다. 1970년대 들어와서는 정부의 중소기업 진흥책 및 농어민 소득증대 정책과 함께 식품업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유제품 등이 호황을 누리기 시작하였고 청량음료 등 다양한 기호식의 상품화가 활발해졌다. 1980년대 이후에는 국민경제가 점차 고도 산업사회 구조형으로 이행됨에 따라 식생활개선 품질의 고급화 및 다양한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욕구가 증대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양한?외국 상품과 선진기술이 쏟아져 들어옴에 따라 인스턴트식품 및 편이식품의 공급이 늘게 되었다. 1990년대 건강에 대한 관심 증가로 청량음료 소비는 점차 줄고 영양가를 함유한 우유, 쥬스류 소비가 증가했고 또한 식품가공기술의 발달로 전통음료인 식혜, 수정과가 상품화되어 시중에 유통되면서 소비가 점차 늘고 있는 추세이다. 앞으로도 계속 전통음료 및 전통민속주 개발과 함께 우리 것을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2. 음료의 분류 (서술, 도표,detail한 설명순): 음료의 분류는 크게 비알콜과 알콜로 구분되는데 비알콜 음료는 청량음료, 영양음료, 기호음료로 분류되고 알콜음료는 일반적인 술로 양조주, 증류주, 혼성주로 나누어진다. 첫째, 비알콜성 음료에는 청량음료, 영양음료, 기호음료, 전통음료, 기능성음료로 나뉜다. 청량음료에는 탄산음료, 무탄산음료로 나뉘며 그리고 영양음료에는 쥬스, 우유 등으로 나뉜다.기호음료에는 커피, 홍차 등이 있으며, 전통음료는 수정과, 식혜 등이 있고, 기능성음료는 포카리스웨트, 게토레이 등이 있다. 둘째, 알콜성)
기장을 최고의 휴양지로....1. 선정배경현재 해운대와 광안리의 관광발전으로 인해 주변의 발전 가능성이 있는 attraction은다양한 행사와 매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광객의 발길을 끌지 못하고 있다.장안사 대웅전, 기장향교, 용궁사, 안적사, 수산과학관, 고리원전 전시관, 기장 멸치축제, 갯마을 마당극, 기장붕장어 축제, 철마 한우불고기 축제 등 다양한 볼거리들이 준비되어져 있다.나는 잠재력을 가진 기장을 해운대보다 더 즐길거리가 많은 관광도시로 만들어보고 싶고한철에만 찾는 곳이 아닌 사계절 즐길 수 있는 관광지였으면 한다.그래서 많은 관광객이 이곳에서 멋진 추억과 낭만을 만들고 특히 외국인에게는 한국의 다양한 축제를 통해 한국의 문화에 한발짝 더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하지만 많은 매력에도 불구하고 관광객은 그러한 요소들을 체험하기 위한 정보나 위치파악 그리고 관광객을 위한 좀 더 편리한 인프라 시설이 요구되어 진다.여기서 기장이 관광지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개선방안을 마련해 보고자 한다.2. 여건분석▶기회인자♠ 장안사 대웅전위치 :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장안리 598번지찾아가는 길: 기장시장에서 9번 마을버스 이용 장안사하차(20분소요).불광산의 울창한 활엽수림과 계곡의 맑은 물이 감싸는 장안읍 598번지에 장안사가 자리하고 있다. 장안사는 신라 문무왕 13년(서기 673년)에 원효대사가 척판암과 함께 창건하여 쌍계사라 하였다가 신라 애장왕(서기 809년)때 장안사라 고쳤다 한다.임진왜란 때(서기 1592년) 병화로 모두 소실되었다가 서기 1631년 인조8년에 월조대사가 다시 중창하였고 서기 1941년 각현스님이 중수하였고 1987년 종각을 새로이 세우고 요사를 중창하고 단장하였다.사신상이 버티고 서 있는 대문을 지나면 정면에 석가여래 삼존불과 후불탱화, 신중탱화 등이 봉안돼 있는 대웅전이 있고 왼쪽에 충진전, 오른쪽에 명부전이 자리잡고 있다.본존불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은 팔각지붕 정면 3간, 측면 2간의 다포집으로 19생에게 소학, 사서오경을 교육하였으며 성균관과 마찬가지로 문묘를 모셨던 곳이다.또 향교는 당시 국고에서 지급하는 학전이라는 재원으로 운영되었는데 학전을 관리하던 사람을 전교로 하여 따로 두었으며, 교관으로 교수와 종9품에 해당하는 훈도와 학장이 있었다.대성전을 비롯해서 신삼문, 명륜당, 동재, 서재, 풍화루, 세심문 등 7동의 건물이 있다. 외삼문은 솟을 3문으로 세심문이란 편액이 있고, 세심문 안에는 중층 팔작 지붕의 풍화루가 있으며, 명륜당 좌우에는 동·서재가 있다. 건물을 경사지에 배치하고 외삼문 안에는 명륜당을 두고 내삼문 안에는 대성전을 배치하여 전학후묘의 배치 형식을 따르고 있는데 경내 건물들은 조선후기 이후에 중건한 것으로 추정된다.대성전에는 공자를 중심으로 하여 4성을 배향하고 있고 동무와 서무는 중국의 저명한 유현 4분과 우리 나라의 유현 18분 등 27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매년 음력 2월과 8월 초정일(初丁日)에 유림들에 의해 석전대제가 봉행되고 있다.건물 구조는 입구인 세심문은 맛배지붕에 3간이고 풍화루는 주심포계의 팔작지붕에 정면 3간, 측면 2간의 2층 건물이다. 명륜당은 정면 3간, 측면 2간의 주심포계 맛배지붕에 목조와가이고 대성전은 주심포계 맛배지붕에 정면 3간, 측면 2간이다.향교는 애당초 유림들의 국립 중등교육기관으로 출발하였으나 조선후기로 들어서면서 유생을 교육하는 기능보다 민간에 도덕적, 예양적 향풍을 수립하는 일에 힘썼다고 전하고 있다.기장향교에서는 우리의 전통윤리와 미풍양속을 어린 세대에 교육하여 건전한 가치관과 예의범절을 함양시키기 위하여 매년 여름방학을 이용해 청소년 대상으로 "향교충효교실"을 운영해 오고 있다.1983년 7월 20일 경상남도 지정 유형문화재 제 215호로 지정되어 있다가 1995년 3월 1일 부산광역시로 편입되면서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 39호로 재지정 되었다.♠ 용궁사위치 : 기장읍 시랑리 416-3 번지찾아가는 길 : 181번 버스를 타고 용궁사(수산진흥원)입구에서 하차 250m 지점2- 해동여객( 바라다 보이는 동해바다의 아름다움에 감탄사를 연발한다고 한다.요즘에는 부산시의 상해거리 조성 등 중국인 관광객 유치 정책에 힘입어 중국인 관광객도 많이 늘고 있다.황홀경에 빠질 만큼 아름답다는 아침 해돋이 광경을 보기 위해 새해가 되면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용궁사. 기장군으로 들어서는 첫 관문에 위치해 빼어난 자연경관으로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용궁사는 관광기장의 미래를 예견해 준다.♠ 안적사위치 :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내리692번지찾아가는 길 : 기장읍 내리유구한 역사를 가진 본 안적사는 신라 30대 문무왕 원년 불기1205년 (서기 661년) 에 원효조사와 의상조사께서 수도의 길을 찾아 명산을 순방하여 정진에 전념하던 시절, 이곳 동해가 훤히 바라보이는 장산기슭을 지나갈 때 숲속에서 난데없는 꾀꼬리 떼들이 모여 날아와 두 스님의 앞을 가로 막으며 어깨와 팔에 안겨 평화롭게 보이는 것을 보고 이곳이 보통 상시로운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원효조사께서는 지금의 안적사터에 가람을 세웠으니 이것이 처음 안적사가 창건된 것으로 개산조(開山租)가 원효조사(元曉租師)이시다.어느날 두 스님을 똑같은 시각에 공부를 시작하여 누구든지 먼저 오도(悟道)를 하게 되면 만나자고 맹세하고 조금 떨어진 곳에 토굴을 지어 피나는 정진의 세월을 보낸 두 스님은 성불에 입문하신 어느 날 의상조사께 천녀(天女)가 나타나 천공을 매일 올리게 되었다.자랑하고 싶은 마음으로 원효조사를 청하여 천공(天供)을 같이 하려는데 천녀가 나타나질 않아 원효조사께서는 기다리다 그냥 처소로 돌아가신 뒤에 천녀가 천공을 가지고 나타났다.의상조사는 심히 천녀를 나무라니 천녀가 하는 말인즉, 이곳 가람주위에 화광(火光)이 가득차 들어 올수가 없었다고 했다.3그때 의상조사는 원효조사의 신통으로 의상조사의 교만한 마음을 알고 금강삼매화(金剛三昧火)를 놓으신 것이다.의상조사는 원효조사의 도력이 자기보다 훤씬 높다는 것을 알고 교만하지 않고 원효조사를 사형(師兄)으로 정중히 모시었으며 이곳에 수선실(修禪室)을 넓 영상, 음향, 비디오 시설 등으로 설비되어 있으며 첨단 전자기법을 도입, 안내없이 관람자가 직접 작동하거나 화면의 동영상으로 설명을 들을 수 있으며 각종 수산자료들을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또 노약자, 지체부자유인 등의 편의를 위해 2층에 걸친 관람코스를 휠체어 등이 오를 수 있도록 계단이 아닌 램프방식으로 시공했다.전시관을 들어서면 목조의 커다란 배 모형과 바다 속을 연상시키듯 천장에는 물고기들이 갈 방향을 안내한다.그것을 따라 도입부에 도착하면 국립수산진흥원의 상징인 해마 한 쌍을 만나게 되는데 청정 해역에서만 서식하는 그들의 존재가 사라지면 수산진흥원의 존재이유도 없어진다는, 바꾸어 말하면 어느 곳에서든 해마를 만날 수 있도록 바다의 파수꾼으로서 존재한다는 상징적 의미는 수산과학관 관람이 단순한 구경거리에 그치지 말 것을 말해주고 있다.매직비젼을 이용해 지구의 탄생과 바다의 생성, 생물의 진화과정을 해저터널로 영상을 연출한 도입부를 시작으로 수산업의 대상공간인 바다의 생물자원 및 생태계소개, 각종 어구·어법 소개와 어업기술의 발전과정 모형전시, 잡는 어업에서 기르는 어업으로 전환과정과 양식기술의 발달과정이 입체모형으로 전시되어 있다.또 바다환경 보전과 이용, 수산자원을 식생활에 이용할 수 있는 가공기술 소개, 해양수산업과 관련된 해양·해저탐사 및 미래의 해양 도시를 꾸며놓기도 했다. 여기에 실제 우리 나라에 서식하는 수산동물과 민물어류를 해역별, 수심별로 실물박제, 표본 등으로 전시하는 것과 함께 각 해역별 주요 물고기는 수족관에 전시해 두기도 했다.수족관 중앙에는 터치풀(touch pool)을 만들어 살아있는 해양생물을 직접 만져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무엇보다 수산과학관의 가장 큰 볼거리인 바다목장은 최신 과학기술을 이용한 여러 양식방법, 어법 등을 모델화하여 디오라마로 연출했는데 사람이 들어서면4바다목장이 작동하기 시작, 걸음을 옮기는 것과 함께 곳곳에서 미래의 양식방법에 대한 모형들이 움직이며 설명된다.그밖에도 2개의 영상실을 갖추어 이 바다인 우리 나라의 자연환경에도 불구하고 해양에 대한 관심이나 수산의 발전을 가져올 연구 등이 활발하지 못했다. 일반인들의 경우 수산과 해양에 대한 이해나 교육의 기회는 물론 국가차원의 수산업에 대한 투자나 개발 역시 미약했던 것이 사실이다.이러한 현실에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정보가 망라된 수산과학관의 개관은 특히 수산업 종사인구가 절반을 넘는 우리군의 경우 상호 협조아래 실질적인 수산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고리원전 전시관위치 :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고리고리원자력 발전소는 우리나라 전력산업의 생산기지로서 원자력을 통한 자연과 인간의 이익을 도모 할 수 있는 환경과, 우리나라 전력 생산의 구조와 과정을 보다 이해하기 쉽도록 전시 및 교육시설을 설치해 두고 일반인들에게 항상 개방되어 있다.♠ 기장 멸치축제멸치는 몸통이 크고 단백질과 칼슘이 풍부한 기장 멸치는 조선시대에 임금에게 바치는 진상품이었다.예로부터 어민들은 그물에 걸린 멸치들을 털어내면서 다음번 조업에서 그물 가득히 멸치를 채우는 만선의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기원했다.그로인해 발전하게 된 멸치축제는 어선 해상퍼레이드, 소방선 분수 쇼, 대변항 맛 자랑 대회, 대변항 가요제, 싱싱 활어잡기, 멸치 아지매 힘자랑 대회, 깜짝 경매, 불꽃 축제 등이 펼쳐진다.멸치 회 무료시식회가 열리며 대변항주변 횟집 주방장들이 참가하는 멸치요리 경연대회가 펼쳐진다.5활어잡기, 멸치털이 등 다양한 체험행사가 열린다. 또 축제기간에 생멸치 깜짝 경매행사가 벌어져 싼 가격으로 생멸치를 살 수 있다. 이밖에 멸치요리 대중화를 위해 대변항 어민과 상인들이 내놓은 멸치 회와 멸치찌개, 멸치햄버거, 멸치초밥, 멸치튀김 등 이 축제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특한 멸치음식들이 선보인다.올해는 4월20부터 23까지 3일간 축제가 열릴 예정이다.♠ 갯마을 마당극부산바다축제 일환으로 추진하는 갯마을 마당극축제는 1995년 해변축제로 시작하여 매년 8월초에 4일간 일광해수욕장에서 개최되며, 오영수의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