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도 - 인간의 존엄성을 중심으로Ⅰ. 사형제도의 역사적 고찰고대사회를 유지하는 조건은 애니미즘, 정령신앙 그리고 금기 계명이었다. 이것을 위반하면 사형에 처해지는 일이 있었다. 고대사회에서는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인신공양, 범죄자에 대한 보복으로 사형이 행해지기도 하였다.고대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라는 동해보복의 탈리오 법칙이 적용되는 사형제도가 있었다. 탈리오 법칙은 고대 바빌로니아 법률에서 범죄자에게 피해자가 받은 상처와 피해 정도와 똑같게 벌을 주도록 한 원칙이다. 이러한 동해보복의 법 정신이 성문화한 가장 오래된 최고의 성문법이 함무라비 법전이다.함무라비 법전은 기원전 18세기 바빌론의 제 1왕조 6대 왕인 함무라비 왕위 재위 기간에 만들어진 성문법이다. 이 법조문은 바빌로니아 국신인 마르둑 신전에 있는 설록암의 원주에 조각되어 있다. 282개 조항의 조문이 새겨진 함무라비 법전은 함무라비의 절대왕권 사상을 표현한 법전으로 동해보복형의 법조문이다. 196조 ‘자유인의 눈을 상하게 한 자는 그의 눈을 상하게 한다’는 동해보복을 표현하고 있다.로마시대에도 ‘십이동판법’ 등에서 사형이 인정되었다.사형제도는 서양에서 이미 희랍 철학자들의 형법과 관련된 견해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기원전 6세기 피타고라스는 형벌제도를 통한 정당한 보복을 할 수 있다고 하였다. 플라톤은 형벌제도를 신의 명령으로부터 기인한 것으로 보았다. 형벌의 근본 목적은 범죄 때문에 손상된 신적인 조화를 회복하고 보복하는데 있다. 플라톤은 국가의 안전을 위해서 국가 반역죄, 폭력적인 위헌의 시도, 계획된 살인 등에 대하여 사형을 시킬 수 있음을 인정하였다.아리스토텔레스는 형벌은 ‘범죄로 인하여 발생한 불평등을 조정하는 것’ 이고, ‘범죄자로부터 그 부당한 이득을 빼앗아 내는 것’ 이라고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유괴, 강도 등을 계속하는 경우 사형에 처할 수 있음을 인정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벌의 실체에 대하여 명확한 이론을 확립하였다. 형벌은 정의의 기능을 지니고 있고 탈리오의 법칙에 따른 정의를 위해 사형은 실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범죄에 대해 그와 동일한 형벌로 응보 해야 한다고 하면서 형벌은 일종의 정언명령이라고 하였다. 형벌은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자기 목적적이라는 것이다. 형벌은 범죄자가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범죄자에게 가해지는 것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정의가 사라진다면 인간은 더 이상 땅 위에 살 가치가 없어지기 때문이다.헤겔도 사형의 필요성에 대하여 역설한 칸트의 의견에 동의한다. 헤겔의 형벌이론은 응보사상에 근거하여 있다. 헤겔은 범법자가 형벌을 받는 것이 정당하며 이성적 존재자로서 범법자의 권리이며 범죄자가 영예로워지는 길이라고 하였다. 헤겔은 칸트와 같이 응보주의의 입장에 서 있으나 형벌의 본질을 정의의 명령이라 하지 않고, 형벌은 침해된 법을 다시 회복시키는 것이다. 범죄는 법의 침해이고, 형벌은 침해의 침해이며 부정의 부정이다. 범죄는 범죄에 의해 상쇄된다고 하였다. 헤겔은 정당한 형벌은 동해보복의 탈리오의 법칙에 의하지 않아도 되며 등가적 가치에 의하면 된다는 등가치 응보론을 말하였다.Ⅱ. 사형폐지론의 역사사형폐지를 주장한 유럽의 역사에서 유토피아를 쓴 토마스 모어는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1516년에 발간한 에서 사형폐지론을 제기하였다. 그 당시에는 절도죄에 대해서도 사형이 집행되던 시대였다. 모어는 비록 책 속에서 다른 사람의 입을 빌어 말하였지만 사형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엄금하신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기는 것이라고 하였다. 모어가 사형제도의 문제점을 제기한 이후 학문적으로 본격적인 사형폐지를 주장한 것은 그 후로 250년이 지난 후였다.근대에 들어서 사형폐지론을 최초로 주장한 사람은 1764년 이탈리아 밀라노 법률가 체사레 베카리아다. 당시 25세였던 베카리아는 그의 제 16장에서 사형폐지론을 주장하였다. 이것은 단 10페이지 분량의 글이었지만, 사형폐지론의 찬란한 금자탑을 세운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계몽주의 영향을 받은 베카리아가 이 책을 TM게 된 동기는 불필요한 것이라고 하였다. 종신 노역형이나 무기징역이 사형보다 위하의 목적을 잘 수행할 수 있다. 그 뿐 아니라 범죄 억제 효과도 사형보다는 종신형이 더 높다고 하였다.베카리아는 범죄와 형벌에 대하여 제 16장에서 “사형제도가 국가통치 목적에 합당한 제도로서 유용하고 정당한 것인가”를 설명하고, 국가가 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권리를 전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가를 질문하고 있다. 베카리아는 사회계약설에 따라서 사회구성원 각자는 안정과 평화를 위해서 자기 자유의 한 부분을 제공하지만, 자유의 한 부분을 제공한다는 것이 과연 생명권까지도 포함하는가? 라고 질문을 하고 있다. 사형은 기껏해야 국가가 국민에 대항하여 일으키는 전쟁과 같은 것이므로 “사형제도는 어떠한 권리에도 근거할 수 없으며 또한 여기서 제시하였듯이 그러한 국가의 권리는 존재할 수도 없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베카리아는 이 책에서 사형폐지론과 아울러 고문폐지론을 주장하였다. 베카리아의 이 주장 이후 각국의 형법사 있어서 사형이 보편적 형벌이 아니라 예외적 형벌로서 주변화 되기 시작하였다.) 베카리아의 이 주장이 나온 이후 200년이 지나서 세계 각국은 점차로 사형제도를 폐지하고 있는 추세이다. 베카리아가 사형과 고문 폐지를 통한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을 주장한 것은 오늘도 인간존중과 인도주의적인 법과 고의 등불이 되고 있다. 베카리아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사형은 사회계약과 모순되기 때문에 인정될 수 없고, 무기징역도 위하의 목적을 사형만큼 수행할 수 있으며 사형은 필요 이상으로 잔 베며 야만적이므로 사형은 폐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형형만큼 수행할 빅토르 위고는 1829년 소설 을 발표하였다. 이 소설을 통해 프랑스의 과도한 사형 적용 범위와 가혹한 집행 방법ㄷ을 비판하고 사형폐지론을 전개하였다. 이외에도 문호 가운데 사형에 반대한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가 있다. 톨스토이는 사형은 반문명적이라고 반대하였다.독일의 모리츠 리프만은 형법학상 교육형론의 입장에서 사형의 폐지를 주장한다. 이것은이유에서 사형제도가 폐지되어야 한다고 한다.첫째, 사형제도는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인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존중 및 생명권을 침해하고 박탈하는 제도이다. 사형은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것이다.둘째, 사형은 존치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범죄예방이나 억제효과가 없다. 사형의 위하력이 없음은 사형을 폐지한 국가에서 사형에 해당하는 흉악 범죄가 증가하지 않았다는 사실로 증명된다. 이처럼 사형이 폐지된다고 해서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가 증가하는 것도 아니다.셋째, 사형은 오판의 가능성 때문에 폐지되어야 한다. 사형을 구형하거나 선고하는 것도 인간이 하는 것이므로 인간의 한계에 의해 오판의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사형은 회복될 수 없는 형벌이고, 사형이 집행된 후 오판이 판명된다고 하여도 회복하거나 구제될 수 없다. 실제로 오판은 많은 국가에서 일어나고 있다. 단 한명의 오판의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사형 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넷째, 사형은 인도적인 이유에서도 마땅히 폐지되어야 한다. 사람의 생명은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어느 누구도 사람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가 없고 국가도 인간의 생명에 대한 심판권을 가질 수 없다. 사람의 생명의 주인은 창조주이기 때문이다. 사형이 법의 이름을 빌린 또 하나의 살인행위라는 점은 사형 집행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다섯째, 사형은 형벌의 본질을 교육으로 보는 현대의 형벌관에도 배치된다.여섯째, 사형은 정치적 반대자들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어 왔다. 사형제도는 독재자가 정적을 제거하고 반대자를 침묵시키는 수단으로 악용되었다. 그 예로 1959년 7월 31일 사형이 집행된 조봉암의 경우를 들 수 있다.일곱째, 범죄원인은 범인의 악한 성격에도 있지만, 사회환경의 구조적이고 복합적인 원인에도 있기 때문에 범죄원인을 죄인 개인에게만 돌릴 수 없다. 따라서 사형제도는 불합리한 제도이다.여덟째, 사형은 가족, 친지, 이웃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가혹성을 지니고 있고 때때로 정치적, 사회적, 인종적 약자들에게 차별적으로 여러 나라에서 사형폐지 후에 범죄가 더 증가되지 않은 사실도 드러났다.둘째, 사형을 통해 응보적 정의를 이룰 수 있다. 이들은 다른 사람의 생명침해에 대한 정당한 응보를 위해 사형제도가 존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사람을 살해한 자는 가지 스스로도 죽임을 받아 속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셋째, 사형은 피해자의 법 감정에 부합하는 제도이다. 피해자와 그 가족의 감정을 위로하고 그들의 복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도 국가는 피해자를 대신하여 범죄자에게 보복을 가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감정은 범죄 억제나 사회적 안정성보다는 개인의 복수 감정에서 사형을 주장하는 것이다. 인간의 감정이나 복수로 사람을 죽인다고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지도 않는데 얻는 것은 무엇이겠는가?넷째, 공공의 안정유지를 해치는 극악무도한 범죄에 대해서는 사형으로 사회에서 완전히 추방시키지 않으면 공공의 안전을 보존할 수 없다.다섯째, 여론과 국민의 법 감정이 사형을 지지하고 있는 이상 국민의 법 감정에서도 사형이 필요하다.여섯째, 사형폐지의 시기상조론이다. 흉악 범죄가 행해지고 있는 이상 사형폐지는 시기상조라고 주장한다. 이상이 사형제도 존치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견해이다.사형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형대신 종신형 제도를 주장한다. 사형제도 존치를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 절충적 방법으로 사형선고만 하고 사형집행을 하지 말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제도는 불완전하다. 언제든지 사형집행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잔존하기 때문에 사형폐지를 위한 확실한 제도가 아니다.Ⅳ. 사형제도와 형벌 이론형법은 범죄에 의해 어떻게 형벌을 가하는가를 다룬다. 형벌은 법 위반 사건에 대한 국가 작용이다. 형벌의 본질과 목적에 관한 논의가 형벌 이론이다. 사형은 이 형벌이론에 의하여 정당화되고 국가 형벌권으로 시행된다. 현대적 형벌이론에는 절대설과 상대설 그리고 절충설이 있다. 이 형벌이론은 사형을 정당화하거나 사형존치론을 주장하는 논거로 사용된다.형벌론의 절대설은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처벌해야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순신 리더십 열풍이 불었건만 지금은 세종대왕 리더십 열풍이 한창이다. 세종대왕의 리더십을 다룬 책들이 봇물같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TV에서도 ‘대왕세종’ 이라는 프로그램이 인기리에 방영중이다.나는 평소 강철왕 카네기의 리더십을 존경해왔다. 그가 어렸을 적, 친구들에게 토끼 먹이를 주면 새끼를 한 마리 주겠다는 거래의 일화는 유명하다. 또한, 스칸디나비아 항공의 얀 칼슨의 리더십을 존경해왔다. ‘진실된 순간, 15초에 고객을 만족시켜야 한다’ 는 말은, 경영에 무지한 나조차 감동시켰다. 하지만 이들의 리더십은 “모든 의사결정은 내가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라는 칼슨의 말처럼, 대부분 개인의 뛰어난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혼자 이끌어 나가는 리더십이 아닌, 모두와 함께 이룬 리더십의 소유자가 있다. 바로 세종대왕이다. ‘위대한 CEO 세종대왕’ 이라는 책 한권에, 나는 세종대왕에게 푹 빠져버렸다. 아니, 그의 리더십에 푹 빠져버렸다. 그의 리더쉽은 8가지로 세분화 할 수 있다.1. 비전을 개발하라.2. 분명한 조직체계를 만들라.3. 사람을 잘 뽑아 올바른 팀을 구성하라.4. 문화를 바꾸어라.5. 팀을 코치하라.6. 팀원들을 돌보라.7. 문제점들을 치유하라.8. 진행 상황을 점검하라.이것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존경하고, 눈여겨봐야 할 그의 리더십은 ‘사람을 잘 뽑아 올바른 팀을 구성하라.’ 이다. 세종대왕의 리더십은 한마디로, ‘사람경영’ 이었다. 그는 태종의 적장자가 아니었다. 누가 봐도 서열상 CEO가 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지만, 태종은 그를 차기 CEO로 지목했다. 이것은 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세종대왕 역시, 아버지 태종이 그랬던 것처럼 파격적인 인사 발굴 프로젝트를 감행해 나갔다.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이순지(李純之)의 경우였다. 이순지는 양반 집안의 준재로서, 친시 문과에 급제한 이른바 앞길이 보장된 톱클래스 인재였다. 그런 그에게 세종은 중인 계급에서나 맡고 있는 학문인 산학을 맡아 연구하라고 특명을 내린 것이다. 그가 보여준 수학적 재능은 천문과 역법을 맡기기에 충분했다. 그리하여 그는 과거에 급제한 지 3년 후부터 세종의 특명으로 천문과 역산에 깊이 관여했다. 이처럼 세종의 인재 육성책은 자기 적성에 맞게 업무 부여를 하는 것이었다. 만일 세종이 이순지를 일반 업무에 종사케 했다면? 그렇다면 그는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도 없었겠지만, 무엇보다도 조선 최고의 수학자로서 역사에 기억되지도 못했을 것이다.또, 그의 천재적인 리더십은 집현전을 통해 잘 드러난다. 그는 집현전 학자들이 지속적으로 자기계발을 할 수 있도록 후원했으며, 성과에 대해 철저하게 보상했다. 집현전에서 밤을 새고 연구를 하다 깜빡 잠이 든 신숙주에게, 용포를 걸쳐준 일화는 유명하다. 집현전 학자들은 세종의 이러한 배려에 깊이 감동하여, 더욱 더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을 것이다.세종은 업무를 지시하고 한 걸음 물러나 뒷짐만을 지고 결과를 기다리는 스타일의 CEO가 아니었다. 그는 일에 대해서도 매우 협력적이었고, 일에 대한 열정의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스스로 일을 하되,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을 늘 견지했다. 더불어 각각의 프로젝트를 맡은 팀원들에 대한 권한 부여에도 결코 인색하지 않았다. 그는 , , , , , , , , 등을 직접 참여하거나 관리하여 출판하였다.박연과의 일화에서도 그의 리더십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박연은 우리 고유의 음악을 만들 때 지나치게 친 중국적 성향을 띠었다. 심지어 우리 음악을 만들어놓고도 아침 조회 시 중국 음악을 연주하길 고집하기도 했다. 세종은 그의 그런 점 때문에 심기가 불편했다. 많은 사람들이 박연을 비난했고 세종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박연과의 음악관에 대한 이견에도 불구하고 그를 계속 후원해주었고 성과를 격려했다. 이는 세종 자신도 음악가이며 작곡가였다는 사실을 상기해볼 때 결코 쉽지 않은 포용의 자세였다. 세종은 국가 CEO 이기 이전에 음악가로서 박연과 음악적 소신과 자존심 대결을 펼칠 수도 있는 입장이었다. 만일 다른 시대에 이처럼 의견 충돌을 일으켜 CEO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신하가 있었더라면 바로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종이 포용력 있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의 능력 때문이었다. 갈등의 여지가 있는 상황이 세종을 오히려 뛰어난 인간으로 칭송받게 만들었고, 많은 신하들이 그를 따르게 했다. 배타와 배척이 아닌, 포용으로 진정한 인간 경영을 이루어낸 일화다.또한 세종의 에피소드에는, 함께 목욕을 했다는 일화도 있다. 세종은 여러 차례 온천에 갔었고, 그때마다 신하들과 시문 짓기를 즐겼다. 또한 함께 간 신하들에게 온천욕을 베풀기도 했다. CEO와 같이 목욕을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서로의 스킨십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이벤트임에는 분명했다. 예나 지금이나 같이 목욕까지 한 사람 치고 친해지지 않을 사이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세종의 원초적 스킨십은 ‘정감 경영’을 가능하게 하는 고단위 팀워크 촉진제로 기능했음에 분명하다.또한 세종의 리더십, 즉 경영 방식은 전문성과 관계성에 근거한다. 전문성이란 지식을 생산하고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며, 관계성이란 상대방을 존중하고 상대방을 통해 일을 진행하기 위한 우호적인 관계를 말한다. 세종의 전문성은 그의 지식의 범주와 깊이에서 드러나며, 그의 관계성은 구체적인 인간관계에서 인덕경영으로 나타난다.세종의 경영은 언제나 구체적인 자료에 근거했다. 그는 사실과 데이터 위에 성공적으로 자신의 상상력과 창조성을 얹었다. 그가 다방면에 걸친 자료를 중국과 이슬람 세계로부터 얻고자 했던 것은 그가 얼마나 정보 수집에 목말라했으며, 정보 관리의 일인자였는지를 뚜렷이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그는 또한 사람 평가도 구체적인 자료에 의거하여 했다. 그의 능력을 객관화 시켰으며, 그러한 결과를 항상 크게 칭찬했다. 이렇게 정확한 능력평가는 세종을 향한 인재들의 충성심을 강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