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도시의 성립과 경제정책1.중세 도시의 성립과정초기 중세도시의 건설은 상업의 부활을 계기로 대체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중세 초기에 상업이 발달하기 위해서는 전쟁, 약탈과 같은 사회적, 정치적 불안정으로부터 해방될 필요가 있었다. 즉 교환거래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거래안전의 보증과 같은 평화유지가 필수적이었다. 상인들은 이러한 조건을 갖춘 지역인 수도원 및 성시의 외곽에 집중하여 거주지를 형성하였다. 이것이 외곽도시이다. 이곳에서는 상품생산 및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졌으므로 점차 상업거래의 중심으로서 도시가 변모되어 갔다.11세기이후 봉건사회의 경제적 기반이 확립되고 인구가 증가하고 생산력이 증대함에 따라서 잉여생산물의 교환이 나타나게 되었다. 특히 13세기에 이르기까지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개간, 간척사업이 진전되어 새로운 촌락이 여기저기에서 형성되고 식민사업이 진전되었다. 그 과정에서 생산이 증가하고 생산물이 교환하게 됨으로써 국지적 상업이 성장하게 되고 전문적인 상인도 나타나 성장하게 되었다. 특히 ‘상업의 부활’ 은 10세기 중엽 이후 새로이 전개된 지중해 상업을 비롯하여 원격지상업에서 두드러지게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12세기에는 지중해상업→서유럽상업→북해 및 발트해 상업을 연결하는 원격지 상업관계가 형성되었다. 초기의 상인들은 상품을 휴대하고 각 지를 이동하면서 상업활동을 하는 여상이었다. 교통이 불편하고 또한 위험이 수반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단체(길드)를 만들어 이동하면서 상업활동을 하였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교통이 편리하고 안전하며 또 고객이 모이게 되고 기기에서 유숙하게 되었다. 이러한 조건을 갖춘 곳에서는 고대 로마도시라던가 영주의 거상 그리고 수도원 등이 있었으며 라인강과 세느강의 중간지역에 특히 많았다.9세기의 노르만인의 침공에 대비해서 각지에서는 새로운 요새 또는 성곽이 구축되었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부르구스’라고 불리게 되고 이러한 용어는 현재의 유럽 도시의 명칭에도 잔존하고 있다. 부르구스는 그 지방 귀족의 거성, 수도원 및 사교의 주재지이기도 하였다. 그 경우 성곽 내에는 저택, 창고, 교회, 재판소 등 귀족의 관리시설과 광장 또는 시장이 있었다. 그 곳에서는 소비인구가 있었으며 그들은 상업을 필요로 하였다. 이러한 곳이 상업의 부활과 함께 상인과 상품의 통과지가 되고 또한 상인의 유숙지가 되었으며 그 곳에서 귀족과 기사 또는 수도원을 상대로 한 상업이 영위되었다. 상업의 필요와 방위의 필요가 많은 곳이 도시의 이중의 기원이었다. 도시의 주민에 대해서 영주는 영주권을 행사하였다. 상인들은 일찍부터 자유민이었으며 비록 농노출신이라 할지라도 그를 되돌아오게 하는 영주권이 미치지 못할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을 경우에는 실질적으로 자유로웠다. 그러나 농촌에서 온 수공업자라든가 노동자는 아직도 농노신분을 가지고 있었다. 영주는 이들 도시민에게 과세권, 재판권, 영주시설사용강제권 들을 행사하면서 수익을 올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도시가 성장하고 상인이 유력해져서 스스로 도시를 방위할 수 있게 되고 또한 상관습 또는 상법이 확립되어 상인 스스로가 상거래를 규제할 수 있게 되자 영주적 지배는 상업활동에 대한 방해요인이 되었다.상인으로서는 영주의 통제가 없는 ‘영업의 자유’가 필요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도시의 주민들은 신분적 자유, 사법권, 봉건적 제 부담으로부터의 독립, 즉 시민의 자치권의 요구였다. 도시는 비록 국왕 또는 귀족에게 세슴과 충절의 의무를 진다하더라도 자치기구를 가진 시민의 공동체였으며 시민은 무엇보다고 먼저 도시에 그의 충성심과 애국심을 바칠 의무가 있었다. 도시는 시민의 고향이었으며 나라였다. 즉 중세도시는 도시국가 형태를 취했던 것이다. 그리고 서로 다른 도시의 주민들은 상호 ‘이방인’ 이었다. 따라서 도시당국은 대외적으로 당해 도시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추구하고 대내적으로 시민을 보호하였다. 성장하는 상공업자를 시민으로 하는 중세도시는 따라서 대외적으로는 주변농촌을 경제적으로 종속시키고, 도시를 통과하거나 그 곳에서 교역을 하는 이방인을 통제하고 자기도시 상인이 외지에서 특권적 지위를 획득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으며 대내적으로 소비자로서 그리고 생산자로서의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서 상공업 활동을 통제하였다. 이와 같이 대체로 도시의 자치권은 투쟁에 의하여 쟁취되었으며, 도시자치제의 승리는 이러한 상인을 중심으로 한 시민단체의 새로운 힘의 증거였다.자치권을 획득한 도시는 봉건제의 일반적인 특징과 현저하게 다른 점을 가지고있었다.?가장두드러진 것으로는 도시의 시민은 모두 자유신분을 갖는 것이 허용된 것과 외래자를 받아들일 수 있는 허용권을 갖게 되었다는 점.?자치도시는 도시공동체의 이해관계와 명백히 상반되거나 융합될 수 없는 봉건귀족·성직자 등에 대해서는 시민적 권리를 엄격히 거부하였다.반면, 토지에 긴박된 농노라도 장원을 벗어나 도시 내에서 1년이상 체제하면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