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S장 누벨(Jean Nouvel) 소개 아랍문화원 리옹 오페라 하우스 아그바 타워 리움 미술관 장누벨 디자인1. 장누벨(Jean Nouvel) 소개1945년 프랑스 fumel에서 출생. 1966년에 the nationale superieure des beaux arts 입학시험에 합격. 1972 년 the nationale superieure des beaux arts로부터 학위를 취득. 1982년 프랑스 대통령 Francois Mitterrand 가 주최한 대규모 프로젝트 대회에서 우승. 1994년 Ateliers Jean Nouvel 자서전 발간. 1998년 프랑스 건축학회로부터 금메달 수상. 2001~3년 프랑스, 스페인, 일본 등에서 본인의 작품이 실린 책자 발간. - 2006 메종 오브제 디자이너로 선정.2. 아랍문화원▪ 1987년 12월에 개관 ▪ 전통과 현대라는 이중적 의미 → 아랍세계와 유럽제국의 관계를 건축적으로 해석 ▪ 즉 완전한 현대건축의 설계어휘를 사용 → 역사도시 파리와 현대의 오묘한 조화, 아랍의 문화가 유럽의 문명세계에 열려있음 암시 ▪ 시간에 따라 빛의 양을 자동적으로 조절 → 유기적이며 동적인 현대문명과 전통의 관계, 아랍세계와 유럽사회의 문화적 교차 암시▪ 내부 조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태양과 구름의 움직임 등에 자동으로 반응하여 태양광의 변화에 반응하는 피스톤의 움직임으로 조리개가 열리고 닫힘 ▪ 내부 공간의 이미지를 시시각각 다양하게 변화시킴지상 1층 로비부분은 투명한 유리를 통해서 들어오는 빛에 의한 한정성과 낮은 층고의 글래스로 내외부의 확장적 영역성이 지각.열람실 내부 왼쪽 남쪽창의 자동 빛 조절장치가 빛의 양을 적절하게 조절유리로 된 건물로 출입구나 도서관등 건물 대부분에서 빛에 의한 투명성에 의한 공간의 확장적 영역성의 지각외피의 아랍문양의 조리개는 직사광선의 차단 및 내부의 다양한 빛 효과를 나타냄.도서관과 박물관 사이의 좁은 골목은 중정으로 인도하는데 그것은 아랍건축의 내부 중정을 현대화아랍문화권 나라의 지도박물관 내부도서관 전경평면도평면도 및 단면도단면도3. 리옹 오페라 하우스 (Opera National de Lyon/Opera House in Lyon) 1986~1993▪ 19세기에 지어진 신 고전주의 양식의 건물 ▪ 건물의 외관은 그대로 두고 내부만을 현대화하는 방식으로 완벽하게 개조▪ 오직 외벽과 녹색 방만을 그대로 유지 ▪ 새로이 지하층을 파고 무용수들이 이용하는 돔 추가▪ 정교한 조명 시스템 얀 케르살레에 의해 디자인 건축물이 완공되자, 더욱더 의미있는 장치▪ 내부는 모두 검은색으로 빛의 반사를 따라 흘러 다니는 듯한 느낌 검은 색은 장누벨이 선호하는 색이기도 하지만 오페라하우스 앞에서 보면 검은색이야말로 19세기의 문화유적을 가장 도드라지게 보여주는 '겸손한'색임을 깨닫게 된다.▪ 엄청난 규모의 배럴 볼트는 1831년 부터 존재해온 오페라 입면에 덧붙여 디자인하였고, 댄스 학교를 위한 스튜디오 공간도 추가▪ 내부 공간의 구조는 3층으로 계획 ▪ 높이 20m의 세미 실린더 드럼을 꼭대기에 디자인, 이곳은 발레회사의 리허설 장소로 이용▪ 바르셀로나 중세도시 한 가운데 독특한 외관의 타워 ▪ 바르셀로나 근교의 몬테그라스 산에서 본 바위의 모양에 영감을 받아 설계에 임했다고함 ▪ 라틴의 감각을 대변하는 경관으로 건축과 미술의 도시 바르셀로나의 21세기를 상징하는 상징물로 여겨지고 있음4. 아그바 타워'Stadip Glass'라는 안전유리를 벽돌처럼 쌓아 올려, 밖에서 보면 유리들이 블록처럼 보이고, 40,000개의 붉은색과 푸른색, 오렌지색 등 40가지의 다른 색이 사용된 창으로 만들어졌으며, 보는 각도와 거리에 따라 색깔이 달라짐자동온도 탐지기를 통하여 자동으로 유리가 열리고 닫히면서 에어컨을 조절하는 에너지 절약 시스템5. 리움 미술관하나의 오브제 효과를 내는 미술관 건축물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을 추구하는 미술관▪ 부식스테인리스 스틸 ; 저철분유리(extra white glass)와 함께 강렬한 대비효과를 내는 물성▪ 콘크리트벽에 철근을 노출 시킨것과 1m×2m의 유닛으로 된 돌망태 안에 현장에서 나온 돌을 집어 넣어 만든 개비온 월 ▪ 최종적으로 선택된 개비온 월은 시간의 변화와 대지의 원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 주며 전시 박스 사이 사이의 유리를 통해 외부의 자연과 함께 어우려져 암석과 식물이 함께 있는 한국화 같은 연출▪ 검정색 부식 스테인리스 스틸의 전시박스와 그 사이 사이의 유라가 대비되어 전시공간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 ▪ 전시박스는 외부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동시에 내부의 공간을 조직, 새로운 형태의 전시공간을 구현 ▪ 기존의 폐쇄적인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전시품을 전시하는 전통적인 방식이 아니라 개방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전시방식6. 장누벨 디자인▪ 직선 라인만으로 디테일을 준 슬림한 의자▪ Suze glass, 간결한 미닐멀한 디자인에 의외성을 담아낸 디자인으로 빛의 이미지를 독특하게 보여줌▪ 소재의 매끈한 질감이 매력적으로 표현된 디자인으로 장 누벨의 현대적인 스타일을 보여줌▪ Programme Less 장 누벨 디자인은 극도의 모던함에 건축적 요소가 두드러진다. ▪ 슬림하고 정결한 디자인의 수납 시스템.▪ 1990년에 디자인한 암체어, 베이직한 요소에 기능을 중심으로 간결하게 디자인함과 동시에 독특한 이미지를 전달▪ Tea Coffee set 심플한 형태를 도회적으로 풀어낸 찻잔▪ 매스의 덩어리감이 강조된 디자인은 강렬한 이미지로 공간을 지배함▪ Graduate 수평과 수직의 교차 모습을 미니멀하고 개방적으로 표현한 선반 시스템 미니멀한 디자인에 비해 견고한 선반 구조가 특징▪ 듀폰 코리안을 빛, 첨단 기술과 조화시킨 멀티 센서의 살아있는 환경 ▪ 장누벨은 소재의 다양한 두께를 통해 발산되는 흥미로운 빛의 패턴을 이용하여 코리안의 감각적인 표면을 설명하고자 했음▪ Skin sofa▪ 터치 센서 기술과 하이 엔드의 통합 디자인과 픽토그램 사용 ▪ 현대적인 설비 라인을 순수 미학과 기능 우수한 품질{nameOfApplication=Show}
한국의 거리문화종로의 거리...종로에 가면 이모든 것들을 만날 수있다. 종로의 어느 구석에 기쁘고 슬프고 아쉬웠던 추억의 한부분을 묻어 두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서울시민이라고 할수 없다. 종로는 600년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아 왔다. 육의전에서 모시를 팔던 할아버지는 동대문을 거쳐 들어온 왜장 고니시를 보고 서러운 눈물을 종로에 펑펑 쏟았을 것이다. 종로는 이땅에 살던 부지랭이들의 회로애락을 담아 내던 그릇이었다. 종로는 길이면서 마당이면서 좌판이기도 했다. 종루에 매달린 종을 쳐서 도성의 통행금지를 맺고 풀던 심장부였다. 종로는 예사로운 길이 아니었다. 개국 때 만들어진 계획도로였고, 서대문부터 동대문까지 서울을 가로지르는 혈관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종로로 통했고 종로에서 끝났다. 광화문 앞의 육조거리도 황토 마루에서 종로를 만났다. 남대문 길도 종로에서 끝나는 지점이였다. 지금의 서울 전차하고 지하철도 종로를 지나야 하는 건 당연했다.일제의 새로운 도시계획은 종로를 토막토막 자리기 시작했다. 좁은 잡길들은 넓혀지고 광화문 네거리에서 동대문까지 나뉜 여섯 마디는 일본식 이름으로 종로 1정목 종로 2정목으로 불리기 시작했으며 오늘날 현재에는 종로 1가 종로2가가 되었다. 그리고 마디마다 조금씩 다른모습을 갖기 시작했다. 자동차가 다니기 시작하고 인도가 양분되면서 도로의 남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종로는 열두 개의 막을 지닌 시나리오가 되었다.종로1가는 서울의 한가운데다, 2가와 합쳐서 한국에서 은행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곳이다. 남쪽의 서린동은 재개발이 되어 덩치 큰 건물들이 들어 서면서 피맛골은 사라졌다. 사람사는맛. 거리를 걷는 맛 을빼앗아가는 재개발의 문제를 한눈에 보여주는 거리이다.종로는 아름답다. 온갖 세상사가 이리저리 버무려진 종료에서 무질서를 보는 사람은 종로를 걸으면서도 기쁠 수 없다. 종로는 무질서가 아니고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어둡고 짜증나는 생활이 느껴진다.세종로의 거리.....세종로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600년의 역사를 보의 거부에 힘을 입었던 것이다.그러나 1926년 문루는 철거되었다. 1927년 석축도 헐려 경복궁의 동문 건축문옆으로 옮겨졌다. 한국전쟁의 포화는 유배된 광화문도 비껴가지않았다. 우리에게 현대사는 그리도 거칠게 시작되었다.왜적을 맞아 싸우다 돌아가신 이순신 장군과 광화문의 등뒤에서 조선 총독부청사가 허연 이를 들어 내며 주인처럼 웃고있던 시절도 있었다. 1916년 기공된 이건물은 십년의 공사기간 끝에 완공되었다. 일본에 거주하던 독일인 건축가 라란데의 기본 설계를 바탕으로 총독부의 일본 건축가들이 설계를 완성했다. 건물들은 자신들의 치적이라고 자랑할수있을만큼 화려한 모양으로 자신들의 재정상태에 무리가 없도록 가장 낮은 예산으로 세우고? 했다. 철근콘크리트 구조에 화강석을 붙인 건물은 그렇게 이루어졌다.광복이되고 건물들은 그대로 우람하게 서있었다.시간이 지나국민투표로 들어선 문민 정부는 1993년 철거명령을 내렸다. “역사를 바로 세우기”라고 이야기 했다. 물론 반대의여론도 만만치는 않았다. 그 욕된 역사 역사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보존하여 후손에게 알려야 한다고 했다. 건물이 무슨 죄가 있느냐고도 했다. 그러나 건물이 아닌 자리였다. 치역의 역사를 안방 아랫목에 끌어안고 있을 필요는 분명 없었다. 욕된 35년보다는 가려졌던 600년을 이야기 하는 것이 더급했고, 그래서 건물들이 철거 되고 북악산과 광화문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하였다.햇빛 아래 빛나는 광화문은 라비끄가 어둠너머로 바라보던 음울한 개선문보다 정녕 더 아름다울것이다.서울 남대문시장 거리.....서울남대문시장은 몇마디로 표현할수없는 거리곳이다. 누군가가 도깨비방망이를 휘둘러 만들어 냈다고 해야 될만한곳 바로 남대문시장이다.이대동법은 이 땅의 조세개혁이었다. 모든 세금은 쌀로 통일하여 내게 했다. 전국 각지 에서배로 실어온 쌀은 용산에서 내렸든,마포에서 내렸든 숭례문으로 들어왔다.무거운 쌀가마니를 지고 더 멀리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신혜청은 숭례문의 바로 안쪽에 자리잡았다.쌀을 쌓아두던 창고가 있던 시장경영허가를 받고 영업을 시작했다.남대문시장은 도시의 수수께끼,형태도 경계도 없이 존재 하는 도시의 신비 , 순대족발,곱창이 등장하는 골목을 돌아 서면 안경방, 암달러상, 성인 영화전용관이 두서 없이 등장하는 곳, 당신은 건빵바지나 쫄바지말고 맥반석바지나 냉장고바지는 아시는지? 청바지 하나사면 냉수 한잔 서비스로 드린다는 호의는 받아보 셨는지.시장는 언니로 통하는 여기서 우리는 모두 단군의 자손, 남대문시장은 외국 관광객이 들러야 할 코스로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그들의 사진기에 남대문 시장이 모두 담기지는 않는다. 남대문시장은 형태가 원만 내고 고르고 고르라는 그 시끌벅적함이 어찌 사진 한 장에 담길수 있으F까. 그침묵 너머가 상상이나 될법한가. 한국전쟁 직후 콘크리트건물이 들어선 것 외에는 큰 변화도 없었다.새로운 세상은 당연히 새로운 환경을 요구 한다. 동네의 구멍가게도 환하게 불으 밝힌 편의점에 자리를 내주는 세상이다. 주인 아주머니 의 기억력에 의존해서 물품값이 매겨지는 상업행위에는 경쟁력이 있을수 없다.냉면집 하나를 해도 주차장이 있어야 장사가 되는 세상이 왔다. 기차와 고속버스가 주된 교통수단이던 시절, 남대문 시장은 지리적으로 유리 했다. 그러나 자가용과 대절한 버스가 지방상인을 싣고 시장에 몰려 오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남대문 새벽시장에온 자동차는 퇴계로 남대문로를 가득 매우고 심지어는 한국은행 앞 분수대까지 주차장으로 바꿔놓았다. 그러나 동대문 시장은 제대로 된 주차장으로 바꿔놓았다. 구매집단으로서 미시족이 몰락 하고 무서운 십대가 시장 광고에 등장했다. 머리와 스케이트보드의이미지 칼라 티비에 등장으로 기대수준은 높을 대로 높아졌지만 주머니는 가벼운 십대들에게 유명한 상표보다 저렴한 가격과 경쟁력 있는 디자인이 통하기 시작했다.십대후반부터 이십대 초반의 여자들이 동대문에 무리지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의 집합적 구매력이 시장을 흔들었다. 동대문시장은 의류패션의 순밸력으로 남대문시장뿐 아니고 백화점까지 모두 휘저어 놓기 시작했다.남물을 만들고 아랫부분에 시장을 채워넣었다. 시장이 들어서고 남은 상부에는 아파트가 들어 가기도하고, 사무소가 들어가기도 했다.동대문에 가장 먼저 등장한 프레야타운은 여러층의 바닥을 그냥 쌓아놓은 수준이다. 최근 완공도니 두산타워는 한발 더 나아갔다. 밤이돼야 활기를 띠는 건물다운 과감한 야간 조명으로 독보적인 밤의 모습을 드러났다. 주말이 면 화려한 율동을 동반한 쇼로 젋은이들을 광장으로 불러모았다. 그냥 모여만 있어도 웃음보가 터지고 신나는 젋은이들에게 광장과 눈부시게 현란한 공연은 그렇게 어슬렁거리던 인파가 고스란히 건물 내부로 흘러 들어가게 만들었다. 옥상에는 스카이 가든도 있다건축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더 있다. 시장의 박력을 건축설계를 통해 확산시키는 것이다. 시장은 흐름이다. 더많은 물건이 흐르고 더 많은 사람이 모일수록 그시장은 가치있고 건강하다. 시장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가 걸어 다니는 마네킹.서로가 서로를 보며 유행을 곁눈질한다. 분양된 상점 사이는 그냥 통로가 아니고 거리가 되어야 한다. 골목 골목의 곳곳에서 는 잠시 앉아 지나가는 마네킹을 즐겁게 구경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여야 한다.청계천 거리....일제시대부터 시작된 복개공사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광교 사이의 일부 구간 복개로 그쳤다.1978년에 복개는 마장동까지 완성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도시의 하천은 모두 같은 운명의 길을 걸었다.더러운 하수구를 감출 수 있으니 꿩을 잡은 셈이고 그 위로 자동차가 다닐 수도 있으니 알도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덮인 청계천 위로는 고가도로까지 마련되었다.그 위로는 두 발로는 올라갈 수 없고 네 바퀴로만 올라갈 수 있다.청계고가도로는 야심이었다. 아현고가도로에 이은 두번째 고가도로였다. 첫번째 도시고속도로이기도 했다. 우리도 미국처럼 자동차를 타고 바람처럼 도시를 질주한다는 도시고속도로는 가슴 벅찬 계획이었다. 허공을 질주하는 도시의 초현실이었다. 그러나 도심으로 자동차를 불러들이는 일이 마약임은 미처 깨닫지 못했다. 도시의 주위를 순환하는 고침부터 저녘까지 자동차의 통행이 금지되면서 이 거리가 달라졌다. 철문이 닫혀지던 시간대에도 사람들이 북적거렸다.거리가 담는 내용도 달라지기 시작했다.싸구려 목걸이와 호박엿도 거리를 기웃 거렸다.인사동과 하룻밤 풋사랑을 나누려는 사람들이 만리장성을 쌓으려는 사람들보다 많아졌다.파란 눈의 아저씨와 아주머니들도 모여들었다.일요일의 인사동길은 신나는 장터지만 주중에는 노상주차를 한 자동차들 때문에 걷기도 힘들다.학고재 아래부터는 보도도 한쪽에만 있다.일제시대에 형성된 거리에 아스팔트 포장만 했다고 우리 시대가 할 일을 다 했다고 할 수는 없다.전통문화에 불법주정차라는 항목도 있던가.이 길도 보행자 전용도로가 되어야 한다.상점에 물품 실어나를 자동차 진입이 굳이 필요하다면 평일에도 낮 시간에는 차 없는 거리가 되어야 한다.서비스 차량은 늦은 저녘에만 슬그머니 들어왔다 나가야 한다.그것이 제대로 된 세계의 도시가 택하는 방법이다.훨씬 더 상업적인 거리,명동이 어떻게 자동차 없이 유지되는지를 보고 나서 자동차가 필요하다는 불평을 해야 한다.자동차가 사람과 섞여 있는 한 문화의 거리는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가로수도 심고 벤치도 놓아,쉬어도 돈 내고 쉬라는 식의 상업주의를 잠재워야 한다.지구 저쪽 편에서 온 나그네들에게 쉼터 하나 내주지 않는 야박함이 우리의 전통이던가.주머니는 비었어도 가득한 마음을 나눠 주던 것이 우리의 전통 아니던가.전통은 보여주는 객체가 아니고 우리가 살아오고 우리가 사는 방법이다.그러기에 살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덕수궁이 길은 사람과 자동차가 어깨동무할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차로는 뱀의 등처럼 구불구불하다.자동차는 속도를 줄여 지나가라고 이야기한다.시청 별관의 벽도 없앴다.차도와 보도의 재료구분은 있지만 바닥의 높이 차이가 없으니 거리는 시원스럽고 널찍해 보인다.그러나 자동차가 보도로 넘어 갈 수는 없다.가로수와 돌말뚝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가로수들은 철따라 다른 색으로 거리를 칠한다.이 길은 낮과 밤의 모습이 다르다.낮에는 서울....
조명기법‘여러 종류의 광원을 인간 생활에 유용하도록 만드는 기술, 사물과 그 주변을 비추어 보이도록 하는 것’. 조명이 지닌 사전적 의미다. 여러 종류의 광원을 인간 생활에 유용하도록 하는것! 이것이 조명의 역할이다. 실내건축에서 조명은 조명이 닿는 데에 따라 원근감, 공간, 구체성, 구조적인 모양을 강조하고, 입체적인 유영을 만들어 낼 수가 있다. 특정한 정서적 효과, 분위기, 양식 등을 만드는 것이다.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에 실내건축에 있어서 조명은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1) 하이라이트 기법 / High lighting이 방식은 어떤 물체의 밝기를 그 배경보다 5배 이상으로 하여 밝기대비를 구성함으로써 시선을 집중시키고 행동을 유도하여 제 1 초점을 구성하는 방법이다. 즉, 강조를 하고 싶은 대상 물체나 부분에 집중적인 조명을 주어 눈에 띄게 하거나 시야를 집중을 시키는 방법이다. 이때 흔히 쓰이는 조명 기구는 ‘스포트라이트’이다. 이런 조명 연출을 할 때 주의를 할 점은 눈부심 현상이나 빛에 의한 노출로 변색하기 쉬운 그림이나 옷 같은 곳에 직접적으로 비춰서도 안된다.가장 흔한 예를 들면 쇼윈도에 쓰이는 강조 기법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것인데 쇼윈도에 강조기법을 사용함으로써, 시선을 매장 안으로 끌어들이게 하고, 사람들에게 강한 인식을 심어 주도록 한다.2) 월 워싱 기법 / Wall washing수직면을 시각적으로 균일하게 조명하는 방법으로 다음과 같은 효과를 부여한다.■ 공간 내에서 방향성을 유도한다.■ 벽체에 부착 전시된 여러 가지 개별 대상물 모두에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다.■ 많은 양의 부드러운 반사광이 공간 내부로 투사되어 전반 조명을 보충한다.■ 벽체의 재질감이 평탄하게 보이게 한다.형광램프를 사용하여 월 워싱 할 때에는 어두운 줄무늬를 없애기 위해 비임을 8-9[cm] 정도 겹쳐야 한다.사진에 사용된 월 워싱 기법은 많은 양의 부드러운 조명이 전반 조명을 보충하면서 시선을 벽면으로 끌어들인다. 자칫 밋밋해 보일 수 있는 벽면에 월 워싱 기법을 사용함으로써 재료가 가진 색의 거부감도 없앴을 뿐만 아니라, 월 워싱을 하기 위한 조명을 재질안쪽으로 숨김으로써 벽체의 재질감이 평탄하게 보이는 효과 까지 얻었다.재료가 가진 딱딱함과 삭막함을 월 워싱 기법을 사용함으로써 완화시켰으며, 그 회사의 분위기에 엄숙함까지 느낄 수 있게 한 효과를 주었다..3) 광선연출 기법 / Beam play강조하고자 하는 물체나 공간에 광선을 쏨으로써 광선 자체를 하나의 시각적 요소로 쓰는 방법이다. 이 방식은 광선 그 자체를 이용하여 시각적 형태를 연출하는 것으로 공간에 생동감을 부여한다. 사용되는 조명기구는 빛을 분산시키지 않는 것으로, 가능한 소켓 위치를 조절할 수 있도록 하여 광선의 빔각도와 빛의 형태를 조절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예는 흔히 락카페나 나이트 같은 곳에 많이 쓰인다. 어두운 공간에서 빛을 쏨으로써 빛 자체가 하나의 시각적 자극이 될 수 있도록 활용한 예가 되는 것이다.일직선으로 한 광선 기법으로 지루 할 것만 같은 복도에 신비로움, 젊음 같은 느낌을 주었다. 단순한 조명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 일직선으로 난 파란색 광선 조명으로 인해 시각적인 효과를 만들었다. 마치 누군가가 광선총으로 쏜 듯한. 보도의 깊이에 따라 호기심을 자극하는 효과를 광선기법을 사용함으로써 생기도록 한 것이다.4) 음영연출 기법 / Shadow play이 방식은 광선연출 기법의 역개념으로 광선이 배경이 되고 음영의 형태가 시각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예를 들면 실내 천장에 식물의 그림자를 투영하여 천장에 드리워지는 음영효과를 연출하는 것이다. 여기에 사용되는 조명기구는 넓고 부드러운 확산광을 투사시키는 것이 정밀하고 선명한 광선보다 효과적이다.5) 실루엣 기법 / Silhouetting이 방식은 거주자와 광원사이에 피조물을 두어 빛의 강한 대비로 물체의 윤곽만을 강조한다. 이 방식의 효과는 시각적으로 눈부심을 없애고 물체의 전면은 디테일이 소멸되는 것이다. 물체의 전부를 보여주거나 강조하는 방법이 아니기 때문에, 세밀한 요소는 볼 수 없지만, 눈부심이 없으며 정적인 공간을 만들어 준다.실루엣기법을 사용하는 의도는 일반적인 조명 효과나 시각적인 효과를 주기 위함이 아니라 디테일이 소멸됨으로써 전체적인 느낌을 살리는데 있다. 눈부심이 없기 때문에 거부감이 사라지고 편안한 느낌을 주게 된다.6) 후광 기법 / Back-lighting이 방식은 아크릴 패널, 실크 스크린, 스테인드글라스, 대리석 박판이나 그 밖의 투과성 재료를 통하여 빛을 확산 투과시키는 방법으로, 피조물의 3차원적 특성을 부드럽게 연출, 부각시킨다. 때로 빛을 고르게 확산시키기 위해 간접조명기구를 사용하기도 한다.투과성재료를 사용해 뒤쪽에서 조명 연출을 하는 방법으로 빛이 한곳에 집중 되는 게 아니라 고르게 퍼져 보는 사람이 시각적으로 부담이 없도록 한다.스테인드글라스 자체의 색은 무척이나 화려하지만, 반면 그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투과되는 빛은 효과가 낮아져 부드럽게 연출된다.주로 성당이나 교회에 많이 사용되는 이 기법은 빛이 아주 부드럽고 고르게 확산되기 때문에 성스럽고 엄숙한 느낌이 든다.7) 그레이징 조명 기법 / Grazing lighting빛을 쏘는 각도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수직면으로부터 15-30[cm] 거리 이내에 광원을 설치해야 한다. 백열전구를 사용할 때에는 스켈럽(scallop)이 발생되며 장식물 설치가 적절하지 않은 벽면에서 벽면 자체의 재질이 강조되어 마치 조각 패널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이 때는 벽면 가까이의 천장에 각도가 조절이 되는 다운라이트나 스포트라이트 등관 같은 조명을 설치한다. 이러한 조명을 설치 후, 각도조절을 하여 윗부분에는 빛을 주지 말고, 하단부분에만 빛을 준다. 이렇게 된다면, 윗부분은 어두운 공간이 되며, 벽면 마감재의 질감이 죽지만, 그렇지만, 하단부분은 조명의 빛으로 인해 벽면 마감재의 질감이 살아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위와 아래의 질감이 다른 벽면을 표현해낼 수 있다. 이러한 효과를 살려 줄 수 있는 벽면 마감재로는 거친 나무나 벽돌, 콘크리트, 회벽 등이 있다.
전원도시도시설계론전원도시도시 조직은 동적이며, 도시 공간 구조의 형성이 역사적인 변천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즉 도시는 한정된 지리적 공간과 이 공간을 구성하는 활동 그리고 그 활동을 수용하는 시설 및 이들 활동에 관련된 의사 결정 과정 등으로 이루어지며, 조직체를 구성하고 있는 활동과 활동 간의 상호 작용은 계속 변화되고 있다. 도시는 하나의 조직체이다. 조직체는 원래 한정된 범위와 그 조직체를 구성하는 요소 그리고 이들 요소들 간에 이루어지는 상호 작용 등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도시 공간 구조의 연구는 도시가 역사적, 시대적, 공간적으로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즉 도시 공간 구조의 연구가 단기보다는 장기에 거쳐 일어나는 활동의 결과로서 검토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시 공간 구조에 대한 이론은 도시 실태 즉 빈곤, 주택, 교통 문제를 분석하고 도시 정책을 수립하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이해를 제공하며, 도시 공간 구조를 형성하는 요인은 인구 규모, 인구 이동, 교통 통신의 발달 등 매우 다양하며 복잡하게 작용하고 있다.전원도시 이론은 1898년 영국의 도시계획가인 하워드에 의해서 제창되었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인한 급속한 도시화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대도시로 몰려들었고 따라서 그들의 주거환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였다. 공장에서 내뿜는 연기에 뒤덮인 노동자주택의 뒤뜰에서는 스모그에 찌든 빨래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하워드는 도시생활의 편리함과 전원생활의 이로움을 함께 지닌 전원도시를 구상하게 되고, 『미래: 진정한 개혁에 이르는 평화의 길(Tomorrow: A Peaceful Path to Real Reform)』라는 다소 긴 제목의 책을 출간함으로써 전원도시의 개념을 정립하였다. 이 제안은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도록 의도되어 있지만 그 주요한 목적은 런던의 거대하고 계속 증가하고 있는 인구를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데 있다. 또한 다른 도시 계획가의 협력을 받은 흔적은 보이지 않으나 불로 소득 방지를 위한 일련의 운동 및 버킹검의 1849년 공업도시 모델, 토지 국유화를 위한 제제안, 해외에서의 조직적인 식민지 건설을 위한 제계획, 한 단위로 통합된 근린사회의 몇 가지를 그대로 농촌지역으로 이주시켜 런던의 인구를 감소시키자는 경제학자 Alfred Marshall에 대한 시사 등이 엿보인다. 하워드의 전원도시는 대도시 중심부의 혼잡을 없애고 건강한 환경을 만들려는 목적으로 한 운동에 대해 지지를 얻기 위하여 구성되었다.전원도시의 내용하워드는 도시와 전원을 일체로 하여 전원도시의 방법을 제시하고 이로 인하여 도시를 광역적으로 전개하여 처리하였다. 그는 도시, 농촌, 도시-농촌을 3개의 자석으로 비유하였다.< 하워드의 중심도시와 전원도시>그의 전원도시 조건은 다음과 같다.1) 도시의 계획인구를 제한할 것.2) 도시 주위에 넓은 농업지대를 영구히 보유하며, 이 공지를 도시의 물리적 확장을 제한 하기 위하여 사용하며 시중에도 충분한 공지를 보유할 것.3) 시민경제 유지에 만족할 만한 산업을 확보할 것.4) 상ㆍ하수도, 가스, 전기, 철도는 그 도시 전속의 것을 사용하며 도시의 성장과 번영에 의하여 생기는 개발이익의 일부를 지역사회를 위해 보유할 것.5) 토지는 경영주체 자신에 의한 공유로 하여 사유를 인정하지 않으며 차지(借地)의 이용 에 관해서는 규제를 가할 것.6) 주민의 자유결합의 권리를 최대한으로 향유할 수 있을 것.전원도시가 다른 도시들처럼 주위의 농업지대를 잠식하여 확장을 하게 되면 전원 도시 본래의 의미를 잃게 되므로 그는 전원도시 성장 모델을 제안하였다.1) 전원도시는 인구 33,000명의 소도시이지만, 이것이 계획인구에 도달할 때까지 성장했 을 때는 별도의 전원도시를 차례로 만든다.2) 이들을 행정구역상 각각의 도시이지만, 신속한 철도와 도로로 연결하여 실제로는 한 개의 도시와 같은 기능을 부여한다.3) 계속되는 성장에 따라서 하나의 중심 모도시를 둘러싸고 도시군을 형성한다.그는 모든 도시문제의 근원은 급속한 인구팽창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도시의 물리적인 확장을 제한하기 위하여 전원도시 외곽에 농업용 토지를 배치하였고, 모든 토지의 사유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도시개발의 이익은 지역사회에 환원한다는 기본 원칙이 세워졌다. 인구 5만 8천명의 중심도시를 인구 3만2천명의 작은 전원도시 6개를 원형으로 둘러싸는 형태로 배치하고 중심도시와 전원도시는 철도와 도로로 연결하여 총 인구가 25만 명이 거주할 수 있는 이론적인 전원도시의 모형이 제안되었다. 전원도시의 중심부에는 중앙공원을 배치하고 이 공원에서 방사선으로 뻗은 도로와 도우넛 형태의 가로수 길을 따라서 주택과 정원이 들어서고 외곽지역은 경작지와 농장을 배치하였다.전원도시의 시대적 배경18세기 말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19세기를 통하여 계속되었고, 네덜란드, 프랑스, 그리고 독일을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이루어졌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공업화 사회의 도래는 사회구조의 엄청난 변화를 주었으며, 전통적인 농업과 공업의 불균형을 가져와 도시와 농촌의 조화가 붕괴되었다. 농촌의 인구가 대규모로 유입되면서 도시의 규모가 팽창되었으나, 인구의 성장에 비례하는 적절한 시설 및 주택의 공급이 불가능 하였다. 이로 인한 주택의 부족은 과밀화 현상과 함께 슬럼화 현상을 동반하게 되는데 서민들의 주거 상태는 지하주거나 여러명이 남녀의 구분 없이 사용하는 간이숙소 등의 최악의 열악한 주거 상태를 보이고 있다. 지하주거는 어둡고, 습기가 차며, 환기도 되지 않는 노동자 주택이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back-to-back 주택단지이다. 또한 이러한 상태의 연속은 급격한 사망률로 이어졌는데, 1840년경에는 영국의 평균 수명이 29세였으며, 1832년에는 콜레라가 유럽의 전역을 돌아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내었다. 이러한 도시의 문제를 피해 당시의 중산계층은 과밀화된 도심에서 벗어나 교외로 이사하였고, 그들이 도심지에 소유한 주택은 새로운 입주자들에게 임대하였으나, 임대지역 또한 얼마가지 않아 과밀화되면서 슬럼화 되었다.이러한 교외로의 이주는 더러운 도시를 떠나 전원적 분위기에서 쾌적한 생활을 추구하기 위한 방안으로 영국과 미국에서 많이 유행되었다. 전원생활의 추구는 도시의 확산으로써 도시민들의 생활양식도 변화시켰다. 그 변화의 두 가지는 첫째 가정과 일터가 지리적으로 확연히 분리 되었으며, 둘째는 가정과 일터 사이를 오고가는 통근행위가 일상화되었고 이로 인해 교외로의 철도망이 확산되었다. 교외로 이주한 중산계층은 넓은 정원을 가지는 주택으로의 이주를 원하였다. 이처럼 도시로부터 교외지역으로의 인구 이동은 하워드의 전원도시운동을 태동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하워드의 전원도시의 태동에는 그 당시의 사회문제들을 다양한 시각에서 보아왔던 많은 사상가들의 영향이 컸다고 볼 수 있다.전원도시의 사상적 배경하워드의 모든 아이디어는 이전의 관련 사례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볼 수 있었던 것으로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즉 르두, 오웬, 웹버튼, 버킹험, 크로포트킨이 모두 농업용 그린벨트에 의해 둘러싸인 제한된 인구를 수용하는 도시를 제안하였으며, 모어, 생시몽, 푸리에 등이 지역복합체내 한 구성요소로서의 도시를 제안했었던 것 들이다. 이러한 제안들이 또한 하워드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19세기 이전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웬은 뉴라나크와 의 뉴하모니에서 푸리에는 의 팔랑스테르라는 이상공동체 제안을 통해 산업혁명이후의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하워드와 같은 이상가들에게 모범적인 사례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푸리에의 영향을 받은 고뎅은 과 같은 ‘패밀리스테르(Famillistere)'를 제안함으로써 가르니에의 에 영향을 주고 있다.그리고 하워드가 직접적으로 전원 도시론을 완성하는데 있어 영향을 준 사상가들로써 웨이크필드는 빈곤층을 위한 계획된 이주지론과 오스트레일리아 남부에 있는 애들레이드 시에 대한 라이트 대령의 유명한 게획안을 발전시켜 하나의 도시가 일정 규모로 성장하면, 이 도시와 그린벨트로 분리된 근접한 곳에 두 번째 도시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제공하였다. 이것이 하워드가 인정하는 사회도시 개념의 기원이다.- 영국 레치워스(Letchworth)1903년 하워드의 계획으로 런던 북쪽 56km 지점에 최초의 전원도시 레치워스(Letchworth)가 건설되었는데 레이몬드 언윈(R.Unwin)과 배리파커(B.Parker)에 의해 계획되었다. 레치워스 계획안은 조경과 지형에 적합한 불규칙적인 도로설계, 도심에 초점을 둔 주축 등의 조합으로 1905년 하워드가 현지로 이사하여 직접 계획과 경영에 참여하였다. 또한 하워드가 주장한 대로 도시는 농업지대로 둘러싸여 있으며 토지의 공유와 회사 이익의 제한 및 잉여의 세입을 도시의 편익을 위하여 사용한다는 원칙이 완전히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첫 번째 전원도시화는 시작부터 투자가 별로 신통치 않았고 하워드가 생각했던 것과는 더디게 성장해 나갔다. 그의 생각을 증명은 했지만 그의 희망대로 되지는 않았다. 공장들은 초기에 실현을 보지 못하고 레치워스는 런던의 위성도시가 되어 버렸다. 이것은 하워드의 아이디어의 한계로서 주택건설업자와 공장사이의 조정이 어려웠음을 보여 준다.
고딕(1150~1500)12~16세기초까지에 걸친 고딕(Gothic) 건축은 로마네스크 건축양식에서 발전하여 독자적인 완성의 단계에 이르렀다. 이 양식의 특징은 첨두 아치와 플라잉버트레스(flying buttress)의 창안에 있다. 구조적으로는 피어·버팀기둥·아치·리브·볼트 등이 서로 얽혀 수직력과 수평력을 받아 균형과 안정을 이루는 데 있으며, 볼트의 합리적인 구축법이 고도로 발달하였다. 고딕양식의 특징은 포인티드 아치, 플라잉 버트레스, 리브 볼트로 압축될 수 있는데, 이들은 구조적, 기능적, 형태적으로 사용되었다. 개별적으로 볼 때 이들은 고딕건축가들이 발명해낸 것은 아니지만 고딕시대에 와서야 하나로 결합되어 전혀 새롭고 신선한 건축적 실체를 창조해 내었다.고딕문화의 초월적인 특징을 나타내는 높이에 있어서의 증가는 주로 횡추력이 감소된 포인티드 아치, 보다 경량화된 리브 볼트, 그리고 구조체 외부의 플라잉 버트레스 등에 의해 이룩되었다. 여기에서 최초로 성당의 외부와 내부공간이 완전히 통합되고 관계를 갖게 되었다. 탑과 첨탑 역시 초월적 특징을 나타낸다.초기 고딕시대의 성당의 내부는 수직적으로 볼 때 네 부분, 즉 아케이드, 갤러리, 트리포리움 그리고 클리어스토리로 나뉘어진다. 중기고딕의 내부는 갤러리가 생략되어서 세 부분만 갖게 된다. 고딕은 조각적인, 즉 빚어서 만든 듯한 건축이다.여러 개의 조각품들이 건축과 일체를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피어, 입구 양측의 기둥, 창문틀 같은 모든 건축적 요소들까지도 새겨졌거나 빚어서 만들어졌다.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에 그려져 있는 그림까지 고려한다면 고딕의 성당은 명실공히 '종합예술작품'으로 불릴 만하며 이것은 예술사상 탁월한 업적중의 하나로 남아 있다.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영국의 캔터베리 대성당·솔즈베리성당·웨스트민스터사원과, 프랑스의 파리 노트르담성당(1163~1235)·샤르트르대성당(1194~1260), 림즈대성당(1212~1300) 등이 유명하다.르네상스중세시대의 많은 문화적 특성이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고교도 세계의 여러 지적인 입장들도 공유하고 있었다. 인본주의자들은 사후세계의 천국을 준비하기보다는 이 세상에서 그것을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본주의는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며, 결과론적 논리에 따라 살아가려는 노력이다. 고대 로마의 특질 중 특히 강조되었던 것은, 모든 방면에 걸쳐 능력을 갖추는 것이었다.중세인들이 자기들의 영혼을 탐구하는데 늘 얽매어 있었던 데 반해 르네상스인들은 각자의 개성을 발휘해 냈다. 르네상스의 이상은 인간이 지닌 힘에 대한 인식을 한층 고양하고 그 힘의 영역을 넓히는 것이었다. 르네상스 학자들이 진리를 추구하고, 오랫동안 가져온 믿음도 잘못되었다고 생각될 때는 언제라도 비판을 하게 됨에 따라 결국 그리스도교의 몇몇 교리는 의혹의 대상이 되었으며, 그 결과 하나로 통일되어 있었던 그리스도교 세계는 분열되기 시작한다. 이런 경향은 또한 근대 과학과 기술의 기초를 성립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니 갈릴레오와 코페르니쿠스가 그 선구자였다.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그 건축양식은 중세의 천편일률적인 표현과 비현실적인 수법을 거부하며, 고전의 형식미를 다시 회고·부활하는 방향으로 건축이 발전되었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 운동은 전유럽 건축의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고전건축에 대한 복귀로 지향하는 징조가 보였다. 로마 건축의 5개의 규범(orders)은 르네상스 시기의 건축가인 A.팔라디오, G.B.비뇰라, V.스카모치, E.체임버스 등이 정형화시켜, 구조적으로 또한 장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기둥이나 엔타블레이튜어 사용은 그 시대의 요구에 적합하도록 새로운 고안을 하게 되었다. 이탈리아는 B.셀리니, L.기베르티, 도나텔로, F.브루넬레스키 같은 장인(匠人)과 예술가들이 건축을 완성하는 데 협력하여 최고의 예술품으로 만들었다. 대표적인 건축물은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한 플로렌스의 성로렌초성당(1425), L.B.알베르티가 설계한 플로렌스의 성마리아노벨라(St. Maria Novella), D.브라만테가 전성기 바로크는 프랑스의 루이 11세 집정기간이며, 프랑스 바로크 최후의 단계는 로코코 양식이 되었다.로코코(18C~19C)로코코는 바로크가 매우 둔중한 인상을 주는 데 비해서 세련된 아름다운 곡선으로 표현되었고, 여성적인 인상을 주었으며, 화려한 것이 특징이었기 때문에, 프랑스 궁전의 싸롱에서 애용되었는데, 귀족계급 부인들의 장식품 등 기호·취미에 영합되어 성행하였다. 이탈리아의 G.베르니니, G.포르타, D.조바니, C.마데르나가 초기의 건축가였으며, F.보로미니, A.포조 등의 다재다능한 건축가들에 의해서 발전되었다. 프랑스에서는 F.블론델, J.H.망사르가 대표 건축가이며, 이 시기의 건축물로는 베르사유궁전과 앵발리드사원 등이 있다. 로코코의 건축가로는 A.메소니에와 G.보프랑이 있다. 18세기말에서 19세기말에 이르는 근대 과도기의 건축의 시기는 바로크 건축에서 근대 건축에 이르는 과도기적 건축양식인 신고전주의·낭만주의·절충주의의 진통기를 겪고 나서 근대 건축에 이르게 되는 시기였다. 신고전주의란 바로크에 반발하여 그리스 고전양식을 모방하여 고전성에 복귀하고자 하는 양상을 말하는데, 프랑스에 있어서는 루이 15세의 최후 20년간과, 루이 16세 및 나폴레옹 통치기간에 행하여졌다. 영국은 18세기 후반 유럽 최강국이 되어 강대한 자본국가로 번영하였다. 이러한 사회정세 아래서 존스, C.렌에 의하여 신고전주의는 발전하게 되었다. 낭만주의는 자유주의 사상에 의한 사회변혁 때문에 생긴 건축적 표현으로서, 고딕과 같은 중세로의 복귀적인 양상이었다. A.퓨긴과 W.퓨긴은 신고전주의를 개척하여 노팅엄성당(1842~44), 성어거스틴성당(1846~51)의 작품을 남겼다. 바리경의 영국 국회의사당과 K.F.슁켈의 베를린 위병본부(1816), J.나시의 버킹검 궁전 등이 그 시대의 양식을 대표하는 건축이다.근대 건축유럽의 건축은 19세기 후기까지는 세계 대부분의 문명지역에 보급되었으나 그 양식의 기본적인 성격은 르네상스 이후 과거의 건축양식에 의존하는 바가 컸다. 그렇술적인 발전방향과 밀접하게 합치되지 못하여 뿌리 없는 표면상의 예술운동에 지나지 않은 감이 있다. 또한 아르누보는 피상적이며, 예술지상주의자들의 직접적인 표상의 한 발전일 뿐 그 이상의 더 큰 운동으로서의 중요성이나 사회성은 찾을 수 없다. 회화에 있어서는 1890년대부터 세잔과 고갱에 의하여 새로운 발전을 볼 수 있는데, 면(面)·형태(形態)·색채(色彩)의 균형 등에서 추상적(抽象的) 회화의 미학이 점점 확립되었다.P.베렌스가 설계하여, 1907년 독일의 베를린에 건립한 A.E.G 터빈 공장은 근대건축의 새로운 철의 시기를 기념하는 기념비적 존재인데, 베렌스의 작품에 따라다니는 고전주의적 형태가 이 건물의 기념비적 의미를 한층 강조하고 있다. 철골은 명료하게 노출되고, 측면을 벽으로 막는 대신에 교묘하게 구획한 큰 유리면을 쓰고 있으며, 거대한 건물의 중량과 강도를 강조하기 위하여, 모서리에 돌을 사용하는 등, 기하학적 구성에 이르는 건축 디자인을 제시하였다. 프랑스에서는 A.페레가 철근콘크리트의 특성을 살리는 골조구조의 건축양식을 창조하고, 시카고에서는 L.설리반이 고층 빌딩 건축에 대하여, F.L.라이트(1869∼1959), 로마 주택건축에 대해서 나름대로 새로운 건축적 표현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업적을 계승하고 종합하여 건축에 있어서의 근대 디자인의 방법과 방향을 확립한 사람은 베렌스의 주임조수였던 W.그로피우스이다.그는 파구스 제화공장(Fagus Fabrik, 1911)과 쾰른 독일공작연맹 전람회의 모델공장(1914)에서 철과 콘크리트와 유리에 의한 자유로운 기하학적 구성과, 이것을 이룩하기 위한 기본적 건축기법을 명시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후 1920년대의 독일에서 일어난 보다 자유로운 개성적 표현을 추구하는 표현주의 건축운동은 그 이론적 뒷받침의 미비함으로 인하여 단기간에 종식되었으나, 같은 20년대에 그로피우스는 자기의 수법을 발전시켜 데사우(Dessau)의 바우하우스 교사(Bauhaus 校舍, 1926)를 완성하고, 르코르뷔지에는 주택)를 교회건축물로 전용 [성 사비나 성당]☞ 집회공간, 제단, 사제석 → 로마네스크 양식을 거쳐 고딕양식 완성⑵ 비잔틴 건축 : 로마의 기독교 공인후, 동로마제국을 건국한 330년에 발생한 양식☞ 로마건축에 동양적인 요소가 혼합된 건축양식 ←오토만 터크족 침입(동서교류 활발)① 건축특징 : 비잔틴 문화 + 동양의 사라센 건축 도입 (동양의 돔 구조)② 건축재료 : 주재료 (벽, 아치, 볼트, 돔 → 벽돌과 콘크리트(모르타르))부재료 (기둥 → 석재)③ 건축구조 : 서양의 열주식 구조(로마)+동양의 돔 구조(사라센) → 혼용한 양식④ 모자이크 : 실내장식 (얇은 대리석판, 색유리 이용)⑤ 건축양식 : 펜던티브 돔 (사각형 평면 위에 원형 평면의 돔을 가설)⑶ 사라센 건축 : 아라비아 유목민(사라센족)에 의한 회교사원 중심의 건축양식☞ 사라센 정복국(서아시아, 북아프리카, 스페인)→이슬람 건축·모스크 건축① 건축특징 : 회교건축 (회교사원인 모스크)② 건축재료 : 구조재료 (소성벽돌, 석재, 콘크리트)마감재료 (유약 타일, 석재패널,금속패널, 테라코타)☞ 모자이크 기법 사용③ 건축양식 : 모스크 건축→대형 홀, 중정, 분수 설치 [아스파한의 대모스크]☞ 대형홀 : 연속적인 아케이드에 의한 다주실 형식 (주공간 - 예배공간)☞ 중 정 : 대형홀 전면에 열주랑으로 둘러싸여 구성☞ 분 수 : 중정의 중앙에 위치 (예배전 몸을 청결케 하는 공간)④ 모스크의 3대 요소 : 키브라, 미하랍, 미나렛☞ 키브라 : 모스크의 주축을 기도방향인 메카로 향하도록 하는 방향축☞ 미하랍 : 교회건축의 반원형방(Apse)에 해당, 기도하는 방(메카로 향함)☞ 미나렛 : 교회의 종탑(광탑)에 해당, 모스크의 상징탑 (첨탑)⑷ 로마네스크 건축 : 게르만 민족이 로마양식과 결합, 중세문화로 발전시킨 건축양식☞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영국 (유럽) → 교회건축 중심 (8C말∼13C초)① 건축특징 : 초기 기독교 양식에서 고딕양식에 이르는 과도기적 양식② 건축양식 : 장축형 평면의 기본형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