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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 남자 포
    조선시대 남자의 포조선 시대 남자의 포를 보면 조선시대 사대부를 중심으로 착용되었던 편복 포로 철릭, 답호, 직력, 도포, 두루마기, 창의, 심의를 들 수 있다.대체로 조선전기는 발목까지 오는 유연한 주름에 폭이 좋은 H형 실루엣으로 고려말 복식의 연장으로 보여지며, 조선 중기인 17세기에는 소매와 옆무의 폭이 넓은 풍성한 주름의 H형으로 보여지고, 18세기 초에는 볼륨감있는 A형의 윤곽선에서 조선 후기인 18세기 중, 후기를 거쳐 19세기로 갈수록 풍성한 A형에서 품이 좁아지는 H의 실용화를 추구한 단소화 된 실루엣으로 변화되었다.철릭은 목을 감싸는 깃에서 흐르는 직선적이면서도 곡선적인 선미와 풍성한 주름미가 돋보이는 곡선적인 실루엣의 포 이다. 한자어로는 첩리·천익·철익 등으로 표기한다. 이 옷은 고려가요인 <정석가>에서 ‘텰릭’이라는 표현으로 처음 나타나며, ≪악학궤범≫ <관복도설 >에 비교적 초기의 형태로 보이는 철릭의 형상이 도시되어 있다. 헌상에 처음 표기된 명칭은 ‘첩리’이다. 착용은 대체로 고려 중엽 이후부터로 추측되며, 조선 초에 벌써 여러 계층에서 다양한 용도로 쓰였고 중엽에 들어서서는 널리 보편화되었다. 그 뒤 용도에 변화가 있기도 하였으나, 말엽까지 가장 일반적인 쓰임은 무관의 공복 및 교외 거동 때 시위복으로서 였다. 철릭은 계절에 따라서 홑겹·두겹 또는 솜을 넣어서 만들었는데 단오에는 홑겹, 추석에는 두 겹, 정월초하루·동지·가례의대에는 솜을 넣은 것이 상용되었다. 두 겹 또는 솜을 넣을 경우에 궁중에서는 안은 붉은색, 겉은 초록색을 주로 썼고(대홍·자적·아청색도 있음.), 가례의대에는 반드시 초록색을 썼다. 또 관복의 밑받침 옷으로서의 홑겹 철릭에는 흰색을 썼고, 겉옷으로는 검은색·푸른색·붉은색이 쓰였는데 선조 때를 전후하여 붉은색이 유행하였다. 영조 때에 당상관은 남색, 당하관은 청현색, 교외 거동 때에는 붉은색으로 제도화되고(이때 철릭의 쓰임은 융복이었다.), 순조 말년에는 홍철릭이 다시 푸른색으로 바뀌어 말엽까지 사용되었다.철릭의 기본형태는 상의와 주름잡은 치마를 허리 부근에서 연결시킨 직령교임 (곧은 깃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교차시켜서 여민 형태)의 특수형태이다. 초기의 것은 소매통이 좁고, 상의와 하의의 길이의 비율이 1 : 1이며, 오른쪽 깊숙한 곳에 두쌍의 고름(맺은 단추를 사용한 것도 있다.)으로 여몄다.이 형태는 1620년대를 고비로 하여 크게 변화하였다. 소매의 경우 진동에서 소맷부리를 향하여 좁아진 형태에서 1600년대에는 소맷부리에 가까운 쪽이 먼저 넓어져 현재의 저고리 소매와 비슷해졌다. 1620년대에는 진동과 소매폭의 비율이 1 : 1.6에 이르는 두리소매로 변하였다.조선 말엽에는 소매 끝이 직사각형으로 각이 지고, 비율도 1 : 2로 증가하여 땅에 끌릴 정도의 대단히 넓은 소매가 되었다. 또 그 중에는 융복으로서의 기능을 고려하여 한쪽 소매를 매듭단추로 연결시켜 떼었다 붙였다 하게 만든 것이 있다. 말엽의 무당복 철릭에는 소매 끝에 한삼을 달았다. 깃의 너비는 평균 12㎝ 내외로 큰 변화가 없으나 깃머리가 날카로운 칼깃에서 현재의 두루마기 깃과 같이 완만하여졌다. 겉섶은 초기부터 달려 있으나 점점 좁아졌으며, 안섶은 1620년대 이전에는 간혹 달리다가 그 뒤부터는 항상 달리게 되었으며, 조금씩 넓어졌다. 또 오른쪽에서 점점 중심으로 여미는 위치가 옮겨지고 방법도 상하 두 쌍의 고름으로 바뀌었으며, 그 길이나 너비도 증가하였다.여밈의 위치가 깊었던 초기의 것은 안길(오른쪽 앞길의 겹치는 부분) 치마 부분에 주름을 잡지 않았다. 홑겹 철릭은 대부분 결대나 등바대를 대어 의복으로서의 실용적인 면을 고려하였다. 상의와 하의의 비율은 1 : 1에서 1620년대에는 1 : 2로 변하고, 그뒤 서서히 증가하여 말기에는 1 : 3 정도가 되었다.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융복으로 정착하여 상하의 구별없이 두루 쓰였고, 특히 난중에는 공복의 구실까지 하였다. 1599년에는 백관의 관대복구가 있었으나 다시 병자호란이 일어난 1637년부터 1662년에는 공복으로 쓰였다. 그 뒤에 밑받침 옷으로는 창의(?衣)가, 표의에는 직령과 도포가 쓰임에 따라서 철릭은 점점 무관의 평상복이나 교외 거동 때의 복장인 융복으로만 쓰이게 되었다.답호란 고려후기부터 조선후기까지 입었던 옆트임이 있는 반소매 포를 뜻한다. 원에서 들어온 것으로, 고려후기부터 조선후기까지 왕과 관리들의 상복 안에 입거나, 사대부의 겉옷 위에 덧입는 옷이었다. 형태는 옷깃은 곧은 깃이고 반소매가 팔꿈치에 이르며, 넓은 섶이 가슴을 덮어 겨드랑이 밑에서 여며지며 옷길이는 발목까지 오는 긴 길이로 옆트임이 있다.≪세종실록≫에 26년 3월 명제가 보내온 왕 상복 가운데 철릭과 함께 답호가 일습으로 들어 있고, ≪역어유해≫에서는 답호 밑에 ‘더그레’라 주하고 있으며, ≪지봉유설≫에 조선시대 세종 때 허조가 회색 답호를 상착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더그레란 덧입는 옷의 총칭이다. 답호의 원류는 징기스칸족의 역사서인 ≪집사≫에서 찾을 수 있는데, 징기스칸과 함께 몽고인들이 가장 많이 착용한 옷으로, 옆트임 사이로 안에 입은 옷과 홑옷·겹옷을 알 수 있다.조선시대 실물에 의하면 초기의 무는 단령, 직령의 무의 제도와 같다가 임진왜란 후에 전복무와 같아졌고, 섶이 좁아지고 소매 없는 답호도 생겼다.순조 재궁의대는 쾌자만 있는 것으로 보아 순조 이후에 답호가 착용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직령이란, 깃이 곧은 데에서 나온 명칭인데, 직령으로 된 포를 그대로 직령이라 하기도 한다. 우리 고유복식의 포는 깃·도련·소맷부리에 가선을 하고 띠를 매었다. 명나라 직령과 융합하면서 자연발전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다.직령이 서인복으로 지정된 것을 비롯하여 하료들의 공복으로 국속 복식의 주류를 이루기도 하였다.이 직령은 1884년의 복제변통시 도포·창의 등 다른 광수의와 함께 착수의·전복·사대로 대체되면서 폐지되었다.도포란 선비들이 평상시에 입던 겉옷이다. 조선 중기 이후 많이 착용하였으며, 관리들도 관청에 나아갈 때를 제외하고 사사로이 외출할 때에는 일반적으로 착용하였다. 도포의 기원에 대하여 도교나 불교에서 나온 것으로, 원래는 승려의 권투로 우리 나라의 승복인 장삼과 동일하고 명칭으로 보아서도 도복이 분명하다고 하였다.도포가 승복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은 이들의 형태가 곧은 깃이기 때문에 생긴 이론인 듯하고, 직령포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타당하다.즉, 고구려의 포가 고려의 백저포가 되었고, 백저포는 명나라 제도의 영향을 받아 조선의 직령포가 되었으며, 직령포는 다시 도포로 변하였다고 할 수 있다.정조 때에 이르러는 관리들과 일반 선비들의 평상시 겉옷이 된 것 외에, 유생들의 공복이나 제복으로 사용되었다.또한, ≪순조실록≫에도 옛날에는 사대부의 편복으로 직령을 많이 사용하였으나 근세에는 도포를 많이 사용한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 순조 이후에는 도포가 직령 대신 일반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도포는 원래 천민은 입지 못하도록 하였으나 조선 말엽에는 그 금제가 잘 지켜지지 않아 하류계급에서도 도포를 착용하는 일이 많았다. 도포의 깃·섶·고름은 요즈음 두루마기와 같은 형태인데, 그 넓이가 매우 넓고 소매는 넓은 두리소매이고 품도 넓으며 길이도 길어서 발목까지 미친다. 또 뒷자락은 두 겹으로 되어 있고 뒷중심이 터져 있으며, 그 위에 전삼이 한 겹 더 붙어 있어 터진 곳을 가려준다. 전삼은 말을 타고 앉았을 때 하의가 보이지 않게 가려주는 구실과, 이를 들고 앉아 뒤가 구겨지는 것을 방지하는 구실을 하였다.
    예체능| 2013.05.05| 5페이지| 2,500원| 조회(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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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의 전통의상
    일본의 전통의상일본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기모노 인데, 기모노는 ‘입다’를 의미하는 ‘키루’와 ‘모노’가 합쳐져 생겨난 말이다. 후리소데, 도메소데, 호몬기, 이로무지, 쯔케사게, 고몬 등으로 나눠지는 기모노는 화려한 색상과 부풀어진 머리장식, 높은 조리가 특징이다. 기모노의 기본형은 발목까지 내려오는 길이에 소매는 길고 넓으며, 목부분이 v자로 패여 있다. 단추나 끈 없이 왼쪽 옷자락으로 오른쪽 옷자락을 덮어 허리에 오비를 둘러 묶는 기모노의 그 뛰어난 아름다움은 17~18세기 일본의 의상 디자이너들이 이루어 냈다고 한다. 그들이 만들어낸 장식적인 스타일 덕분에 기모노는 세계에서 가장 우아한 옷으로 꼽히고 있다.우선 기모노는 일본의 민족의상으로 단순히 크게 나누면 여름용, 겨울용과 tpo에 맞게 입어야 하는 제한된 경우에 입는 것을 적절히 섞어서입니다. 그 종류로는 후리소데, 도메소데, 혼몬기, 츠께사게, 에도 코몬 등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후리소데는 미성년자가 입는 전통의상으로 소배가 길어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현재는 미혼여성이 격식이 있는 예복으로서 입는 경우가 대부분 이다. 후리소데를 입은 모습을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곳은 성년식 때 이며 그다음으로는 결혼식 피로연 순이다.왼쪽부터 소매 길이가 제일 짧은 고후리소데(85cm전후), 츄후리소데(100cm)전후, 길이가 가장긴 오오후리소데(114cm전후) 가 있다. 요즘은 길이가 짧은 고후리소데는 거의 입지 않지만, 격식이 있는 자리라면 츄후리소데를 입어도 오오후리소데보다 격이 떨어져 보이거나 하지는 않다고 한다.도메소데는 일본 전통의상의 한 종류로 평민 기혼여성이 착용하는 가장 격이 높은 예복이다. 기모노의 격에 있어서는 제일의 예복으로 서양의 이브닝 드레스에 상당하는 복장이다. 도메소데는 에도시대에 게이샤에서 유행이 번진 에도즈마라 불리는 치마 하단에만 무늬가 들어간 기모도를 칭한다. 보통 일본 결혼식 등에서 많이 볼수 있는 구로도메소데는 결혼한 친족 여성분들이 많이 입는 것을 볼 수 있는 데, 검정색 바탕에 옷자락에 무늬가 들어가 있으며 등, 양 소매의 뒤쪽, 앞 가슴 쪽에 총 5개의 가문을 넣는다고 한다. 검정 바탕의 것 이외에는 이로도메소데라 부르며 착용목적등에 따라 가문을 5개로 제한하지 않고 3개나 1개를 넣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도메소데는 본래 기혼 여성이 입는 옷이였지만, 최근에는 미혼여성이 예복으로 입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한 궁내에서 검정색은 상을 뜻하는 색으로 인식되어 있어 구로도메소데는 입지 않고 이로도메소데를 입는다고 한다.호몬기는 미혼, 기혼에 상관없이 입을 수 있는 옷으로 문양이 들어가면 이로도메소데와 동격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문양이 들어가면 너무 격식을 차리는 옷차림이 돼서 입을 수 있는 장소가 한정되어 버리기 때문에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에 입고 갈 것이 아니라면 문양을 넣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기모노 중에서는 화려한 옷차림인 호몬기는 결혼식 피로연, 맞선, 다도회, 누군가의 집에 방문할 때 등 사교적인 장소에 갈 때 좋은 옷 이다. 얼핏 봤을 때는 츠께사게와 비슷하지만 호몬기가 더 격이 높은 옷차림이다. 모든 문양이 이어져 있는 듯한 것이 호몬기이다. 위에서 아래까지 문양이 이어져 있고, 심지어 재단된 부분에도 문양이 이어지도록 예쁘게 되어 있다. 호몬기는 젊은 사람은 색상, 문양이 화려하게 전체적으로 들어간 것을 , 연배가 있으신 분들은 문양이 들어간 것 보다는 심플하게 소매 부분에 조금 들어간 것이나 차분하나 색을 입는다.
    예체능| 2013.05.05| 3페이지| 2,500원| 조회(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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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도의 전통의상
    인도의 전통의상인도 전통 의상은 각 지역의 문화, 종교 그리고 기후에 따라 가지각색으로 존재한다. 대도시에서 점점 멀어져 갈 수록 전통의상을 평상복처럼 입고 생활하는 사람의 빈도수 또한 높아지는데, 예를 들자면 남쪽 인도로 갈수록 단색의 넓직한 천으로 돌돌 말아 하의로 입는 영어로 도티(Dhoti) 타멜어로는 베스티(Veshti)라 불리우는 전통 의상을 입은 남자들을 많이 볼 수 있고, 알록달록한 패턴으로 디자인 된 대표적인 인도 전통 의상 사리(Saree)를 입은 여자들을 많이 볼 수 있다.여성 전통의상의 경우 지역별로 스타일이 약간씩 다르기는 하지만 사춘기 이전의 여자아이는 란가(Langa)라 불리우는 긴 치마에 초리(Choli)라 불리우는 짧은 팔 블라우스를 같이 입는다.그리고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들은 하프사리(Half-sarees)를 입게 되는데요, 란가(Langa)와 초리(Choli)와 넓직한 숄, 이렇게 세개의 셋트로 구성되어 있다. 하프사리(Half-sarees)라 불리우는 이유는 넓직한 숄을 몸에 거의 감싸다시피 하여 얼핏 보기에는 사리와 비슷해 보이기 때문에 하프사리(Half-sarees)라 부른다. 그리고 사춘기가 지난 성숙한 여성의 경우엔 사리(Saree)를 입게된다.사리(Saree)는 산스크리트어로 긴 천이란 뜻으로 4~9미터의 길이로 되어있는 하나의 넓찍한 천으로 온 몸을 돌돌 감싸 끝을 떨어트려 입는 독특한 스타일의 옷이다. 사리는 쉬폰, 실크, 합성실크, 순면 등 다양한 소재로 만들어 지며 원색부터 알록달록한 색깔에 다양한 패턴들까지 디자인이 천차 만별이다. 게다가 반짝거리는 걸 좋아하는 인도인들의 특성상 고급 사리일 수록 사리 천에 보석을 박아 더더욱 화려하고 빛나게 만들기도 한다. 사리 블라우스 또한 사리 천 만큼이나 전체적인 스타일을 좌우하는데요, 민소매부터 긴팔까지, 꽁꽁 싸멘 차이나 카라부터 어깨를 다 드러낸 탑 스타일까지 디자인이 무궁무진하여 평상복으로 입을 때엔 편안한 디자인의 블라우스를, 어른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선 노출이 없고 단정한 블라우스를, 화려한 파티용으로 입을 때엔 노출이 많은 과감한 블라우스를, 이렇게 블라우스에 따라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일단 사리블라우스를 입고, 속치마를 입은 뒤 넓직한 사리 천을 허리에 돌돌 감아 앞 배쪽에 주름을 잡아주고 등 뒤 쪽으로 넘긴 뒤 다시 가슴 앞쪽을 타고 어깨 쪽으로 천을 몰아 깔끔하게 주름을 잡은 뒤 남은 천을 뒤로 떨어트리는 스타일이 기본적이며 요즘엔 입는 과정이 불편한 점을 고려하여 한 번에 드레스처럼 입을 수 있는 계량 사리도 널리 퍼져있는 편이다.살와르 카미즈(salwar kameez= 편자비)는 인도 여성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또 다른 형태의 전통 의상으로서, 흔히들 쿠르타(kurta)로 알려진 이것은 느슨한 바지(Salwar)에 펑퍼짐한 상의(Kameez)와 두파타(Dupatta)로 구성되어 있다. 살와르 카미즈는 터키와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의 이슬람 침략에서 비롯된 것으로 같은 침입을 당한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이 의상을 이슬람 복장이라 부르는데, 이슬람 문화권의 의상이므로 파키스탄에 가시면 흔히 볼 수 있다. 두파따(Dupatta)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스카프라고 쉽게 설명 할 수 있다. 하지만 살와르 카미즈의 두파따는 머리를 가리거나 가슴을 가리는 데에 사용되어 조신함을 표현하기도 한다. 인도여행 중에 두파타를 착용하지 않으면 옆 오토바이의 손이 가슴으로 수욱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고 하고, 대도시에서 멀어질 수록 두파따를 하지 않을 경우 몸 파는 여성으로 오인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알아두면 좋을 듯 싶다.렝가(Lehenga)는 라자스탄(Rajasthan)과 구자랏트(Gujarat)에 있는 여성들에세 폭팔적으로 인기있는 전통의상이다. 컬러풀하고 허리에서 끝 쪽으로 내려갈수록 점점 퍼져가는 마치 소용돌이 치는 듯 해 보이는 치마와 짧고 몸에 딱 맞는 초리로, 얇은 면사포로 되어있는 스카프 오다니(Odhani)로 구성되어 있으며, 결혼 전의 여성들에게는 그 어떤 전통의상보다 가장 인기 있으며 더 화려한 것은 신부드레스로 많이 입는다.남성 전통의상 셜와니(Sherwani)는 특별한 행사나 파티가 있을 경우에 주로 입는 남성전통의상이다. 파키스탄 사람들이 자주 입는 단색의 살와르 카미즈(salwar kameez)에 어두운 색상의 조끼나 자켓을 걸쳐 입는 것이 기본이지만 특별한 행사나 파티가 있을 때 입는 남자 전통의상이니 만큼 단색부터 화려한 문양의 셜와니까지 다양하다고 한다.
    예체능| 2013.05.05| 3페이지| 2,500원| 조회(2,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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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온난화 반대 의견
    지구온난화의 반대 의견지구온난화(Global Warming)는 21세기 인류의 관심사이다. 20세기 에이즈, 기아, 질병과 같은 국제적인 문제가 이제는 지구온난화라는 화두에 가려버린 듯하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문제인식과 해결책 강구를 위한 국제적인 관심은 유엔 산하 기후변화 정부간위원회(IPCC)의 노력을 거쳐 교토의정서로 구체화되었다. 선진국 중심의 지구 살리기처럼 되어 버린 지구온난화 방지협정은 이제 거역하기 어려운 흐름이 되었다. 하지만 과연 지구는 뜨거워지는 것일까? 가령 그러하다 한들 과연 그 모든 게 인간의 탓일까? 이 같은 논쟁은 몇 년 전 출간된 라는 책을 뜨겁게 달구어 놓았다. 기후학자 프레드 싱거와 환경 칼럼리스트 데니스 에이버리는 현재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고 있는 데에는 동의하나 지구의 온도는 인간과 상관없이 1500년 주기로 오르내렸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지구가 더워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게 인간이 배출한 이산화탄소 탓은 아니라는 것이다. 일단 그에 앞서 지구온난화란 정확하게 무엇일까.* 지구 온난화온난화 현상 자체는 과거에도 있었으나, 여기서는 주로 19세기 후반부터 관측되고 있는 온난화를 가리킨다. 이러한 현대 온난화의 원인은 온실가스의 증가에 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산업 발달에 따라 석유와 석탄 같은 화석연료를 사용하고 농업 발전을 통해 숲이 파괴되면서 온실효과의 영향이 커졌다고 본다. 현재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패널(IPCC)에서 인정한 견해는 19세기 후반 이후 지구의 연평균기온이 0.6℃ 정도 상승했다는 것이며, 20세기 전반까지는 자연 활동이 온난화를 유발했지만 20세기 후반부터는 인류의 활동이 온난화를 유발했다는 것이다.온난화는 1972년 로마클럽 보고서에서 처음 공식적으로 지적되었다. 이후 1985년 세계기상기구와 국제연합환경계획이 이산화탄소가 온난화의 주범임을 공식으로 선언하였다. 1988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미국 의회에 지구온난화에 대한 발언을 한 것을 계기로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지구의 연평균기온은 원래 400년에서 500년 정도를 주기로 약1.5℃의 범위에서 계속 변화한다. 15세기에서 19세기까지는 비교적 기온이 낮은 시기였으며 20세기에 들어와서는 기온이 오르고 있어서, 어떤 면에서는 기온 상승이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양은 1800년대에는 280ppm이었으나 1958년에는 315ppm, 2000년에는 367ppm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다른 온실기체도 증가하고 있다.온난화의 원인은 아직까지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으나,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온실기체가 유력한 원인으로 꼽힌다. 온실기체로는 이산화탄소가 가장 대표적이며 인류의 산업화와 함께 그 양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외에도 메탄, 수증기가 대표적인 온실기체다. 특히 현대에 사용하기 시작한 프레온가스는 한 분자 당 온실효과를 가장 크게 일으킨다. 또한 인류가 숲을 파괴하거나 환경오염 때문에 산호초가 줄어드는 것에 의해서 온난화 현상이 심해진다는 가설도 있다. 나무나 산호가 줄어듦으로써 공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를 자연계가 흡수하지 못해서 이산화탄소의 양이 계속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설 이외에도 태양 방사선이 온도 상승에 영향을 준다거나, 오존층이 감소하는 것이 영향을 준다거나 하는 가설이 있지만 온실효과 이외에는 뚜렷한 과학적 합의점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이다.지구의 연평균기온이 계속 올라감으로써 땅이나 바다에 들어 있는 각종 기체가 대기 중에 더욱 많이 흘러나올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피드백 효과는 온난화를 더욱 빠르게 진행시킬 것이다. 온난화에 의해 대기 중의 수증기량이 증가하면서 평균 강수량이 증가할 것이고 이는 홍수나 가뭄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해수면이 상승하는 것으로, 기온 상승에 따라 빙하가 녹으면서 이 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2000년 7월 NASA는 지구온난화로 그린란드의 빙하가 녹아내려 지난 100년 동안 해수면이 약 23cm 상승하였다고 발표하였다. 그린란드의 빙하 두께는 매년 2m씩 얇아지고 있으며 이 때문에 1년에 500억 톤 이상의 물이 바다로 흘러 해수면이 0.13mm씩 상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수면 상승은 섬이나 해안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에 영향을 미칠 것이며 특히 해안에 가까운 도시에는 대단히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또한 북극곰이나 펭귄을 비롯한 여러 동물이나 식물들이 멸종위기에 처해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겨울이 사라지고 사막이 생길 수 있으며 태풍과 가뭄 등 자연재해의 강도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구온난화에 속지마라?앞서 말했듯이 자주 접하는 위와 같은 지구온난화에 대한 원인과 대응책에 대한 반대편의 이야기도 있다. 과거에 비해 지구온난화가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나아가 인류의 지구온난화 완화 노력을 폄하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공포와 절망의 대상처럼 설파되는 지구온난화는 사실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빙하가 빠르게 녹고 북극곰이 사라지며, 지구의 사막화로 식량문제와 물문제가 심각해져서 결국 인류가 어찌될 것처럼 말하는 극단적인 자세는 옳지 않다는 것이다. 남극 빙하 코어 분석 등 그들이 제시하는 증거에 따르면, 지구 온난화와 이산화탄소의 관계는 선후가 뒤바뀌었다고 한다. 즉 이산화탄소 때문에 지구가 더워진 것이 아니라, 지구가 더워지고 나면 이산화탄소가 늘어났다는 것이다.지난 2000년 역사를 되돌아 볼 때 흔히 중세라 부르는 10~14세기가 가장 따뜻했지만, 그 때는 이산화탄소도 높지 않았을 것이 당연하다. 1850년대에는 소빙하기가 있었고, 이런 사이클은 기원전에도 나타나고 있으니 산업화로 인한 변화는 아니라는 것이다.등 다른 과학자들이 쓴 책에서도 이산화탄소의 영향력에 대한 의문의 제시되어 왔다. 이산화탄소가 온실가스이긴 하나 이미 포화상태다, 더 이상 열을 흡수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태양 흑점이 지구의 온도와 연관되어 있다는 주장도 있는데, 태양의 활동과 어긋난 데이터들 탓인지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하는 것 같다.다시 지구온난화의 반대 의견으로 돌아와 그 맥을 짚어 보면 다음과 같다.그림 1 공장의 매연 1. 이산화탄소와 지구 기온 사이의 관계 : 최근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지구 표면의 온도가 모두 높아졌다. 이런 사실을 놓고 높아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지구온난화를 초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에 대한 반박이다.그림 2 세계의 온도 변화 1)이산화탄소 배출이 온난화에 매우 미미하게 기여 : 온실효과 이론에 따르면, 지구 대기 중에 늘어난 이산화탄소가 지구상의 열을 가둬서 대기 하층부분을 데우고, 결국 지표면의 온도를 상승시킨다. 그러나 사실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가스들이 인간들의 산업 활동에 의해 대량으로 배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940년 이후 지구의 온도는 아주 미미하게 상승했음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온실기체 들의 영향은 지구와 거기에 사는 사람들에게 거의 해를 미치지 않을 만큼 작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말한다.2)인공위성의 자료 : 인공위성과 고위도 상층 기상 자료들을 보면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했기 때문에 대기 하층에 더 많은 열들이 가둬지지 않았다. 변화폭이 큰 지표면의 온도가 얼마나 빨리 데워지는지 알기는 어렵지만, 이들 자료는 지상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포함하고 있는 대기 하층권보다 지표면이 더 빨리 데워진다는 사실을 나타내었다고 말하였다.3)빙하 코어 자료 : 남극에서 나온 빙하 코어 자료들은 지구의 온도와 이산화탄소 배출 정도가 지난 세 번의 빙하기와 온난기를 거치면서 비슷한 양상으로 변화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확히 말하면 이산화탄소 농도 변화가 지구 온도 변화보다 약 800년 뒤처져서 사이클이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즉, 온도가 상승하고 800년이 지난 다음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했다는 말이다. 이것 역시 “이산화탄소가 지구의 기후 변동을 야기하는 원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라고 말하였다.4)기온변화에 의해 변하는 CO2의 가능성 : 기온과 이산화탄소 농도 사이에 아주 강한 상관성이 있다는 이론이 있었고 그것은 명백해 보였다. 그렇지만, 온도변화와 비교 해볼 때 이산화탄소 농도가 뒤처져서 상승하는데 그 뒤처지는 정도가 약 400년에서 1000년 정도 된다. 즉, 이산화탄소 농도의 변화가 기온 변화에 의해 야기될 수 있다 는 말이다.
    생활/환경| 2013.05.05| 6페이지| 2,000원| 조회(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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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영화(드라마)의특징과가능성(한류와문화콘텐츠)
    한국 영화(드라마)의 특징과 가능성외국 영화(드라마)와 비교할 때 한국 영화만의 고유한 성격이 있는지, 만약 있다면 무엇인지 사례를 중심으로 보고서를 작성한다.최근 몇 년 전 부터 대표적으로 ‘프리즌 브레이크’라는 미국 드라마를 시작으로 엄청난 미국 드라마 열풍이 몰려왔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한국도 최근 탄탄한 스토리구성과 다양한 드라마 스토리 소재를 바탕으로 날이 더 해갈수록 어마어마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외국 유명 드라마들과 못지않게 한국의 드라마는 아시아전역에서 또한 사랑을 받고 있다. 어떻게 보면 문화 강국이라고 할 수 있는 여타 선진국들에 견주어 결코 뒤지지 않는 인기를 가지고 있는 한국 드라마의 고유한 매력이 있을까? 혹은 그와 반대로 뻔한 스토리에 식상하다고 생각하며 눈살을 찌뿌리게 하는 단점도 있을까?대표적인 프리즌 브레이크는 2005년 8월부터 2009년 5월까지 총 4개의 시즌으로 구성되어 있어 억울한 누명을 쓴 형을 구하기 위한 동생(주인공) 마이클 스코필드의 구출 구출과정을 그린 드라마로서 ‘석호필’ 신드롬까지 생겨나며 최고의 인기를 보여주었던 대표적인 미국드라마이다. 2005년부터 시작되어 2009년에 종영 완료된 드라마지만 3년이 지난 지금 현재까지도 프리즌 브레이크를 서치해 보면 아직까지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는 걸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건축가인 마이클 스코필드는 부통령의 동생 살인 누명을 쓰고 사형을 언도 받은 형을 탈옥시키기 위해 일부러 죄를 짓고 “폭스 리버”교도소로 자진해서 가게 된다. 자신이 일하고 있던 건축회사가 그 교도소의 보수를 했었고 그 때문에 마이클은 그 교도소의 청사진은 입수하지만 사람의 기억력으로 그 복잡한 설계도를 기억하수는 없어 몸에 암호로 된 문신을 새기게 된다. 그렇게 폭스 리버에 수감된 마이클은 형과 함께 탈출하기위해 작전을 펼치게 된다.프리즌 브레이크에서 엿 볼 수 있듯이 대다수의 미국 드라마는 높은 제작비로 인한 웅장한 스케일과 다양한 장르와 소재로, 식상하지 않고 다양한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하지만 이런 비현실적인 내용에 큰 공감을 할 수 없다는 점이 단점이 될 수 있다. 끊임없이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그렇게 인기가 많았던 프리즌 브레이크 조차 시즌을 거듭할수록 막장드라마, 막장 시나리오, 억지 스토리라는 평을 피할 수는 없었다.하지만 이에 반해 한국 드라마는 권선징악, 입신양명 등의 스토리를 토대로, 남녀 간의 사랑 등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의 다소 가볍지만 탄탄한 스토리 전개로 시청자등의 공감을 자아내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또한 미국 드라마의 경우는 시즌제를 사용하여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는데 다소 지나치는 경우에는, 이야기가 자칫 질질 끌려서 시청자의 흥미를 떨어뜨리는 경우가 많이 있다. 하지만 한국 드라마가 다른 곳에서도 크게 흥행한 이유 중 하나가 16부작, 20부작, 등으로 정형화 있다는 데 그 큰 특징이 있다. 흥미진진하고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 전개에 자기도 모르게 빠져드는 것이다.얼마 전 한 미국의 오락 프로그램에서 한국 드라마를 패러디한 내용이 방영이 되어 네티즌들의 눈길을 끈 바 있다. 4각 관계, 불치병, 재벌 2세와의 만남 등 한국 드라마에 단골로 나오는 소재와 배경들을 재미있게 꾸민 이 패러디 꽁트는 단편적으로 생각하면 우리에 대한 비하같아보일수도 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시사하는 바가 있다.상식적으로 웃음이란 게 보는 이의 공감과 이해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걸 생각해본다면 그런내용의 패러디를 미국의 오락프로에서 다루었다는 것은 그만큼 미국에 한국 드라마 팬이 많다는 것을 반증한다. 동아시아권에서의 한류야 이제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는 것 이고, 미국에도 한국 드라마 팬이 있다는 이야기는 간간이 보도가 된 바는 있지만 그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기 힘들어 다들 긴가민가했다. 대개는 언론보도나 전달과정을 통해 과장된 이야기려니 생각했겠지만 미국의 오락프로에서 한국 드라마의 전형을 희화화한 패러디 물을 만들 정도가 되었다면 그것은 그만큼 미국에도 한국 드라마를 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사건이 된다. 허나 단순히 흐뭇하게 여길 수 있는 일도 아니다. 4각 관계나 불치병, 재벌2세와 가난한 집 여자의 만남 등 한국드라마의 천편일률적인 특징들을 이제 웬만한 외국인들은 다 파악하고 있을 정도라면 이제 한국드라마는 새로운 변화를 추구해야만 하는 시기가 왔다.한류가 동아시아권뿐만 아니라 다른 세계권에서도 통할 수 있음은 이 정도면 어느 정도 증명이 된 셈이다. 한국드라마가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명품이라는 자부심도 가질만하다. 그러나 이젠 달라져야한다. 재벌2세와의 사랑, 4각 관계, 불치병, 교통사고 등 지금까지 한국드라마의 4대 단골요소였던 이야기에서 이젠 벗어나야한다.
    인문/어학| 2012.12.03| 4페이지| 2,000원| 조회(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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