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문학 서사 분석-「강아지똥」을 중심으로-張順德?차례?1. 시작하며2. 강아지똥의 표층구조3. 강아지똥의 서사담화 분석1) 인물 분석2) 시간 분석4. 끝마치며?참고자료 ?1. 시작하며「강아지똥」은 권정생(1937-2007)의 첫 작품이나 다름없다. 그는 1969년 제 1 회 기독교아동문학상을 수상한 「강아지똥」으로 본격 작가로서 길을 걷게 된다. 「강아지똥」은 작가가 38년 동안 작가로 활동하며 남긴 작품 중 어느 작품보다 내러티브 욕망이 컸을 것으로 짐작되는 작품이다. 왜냐하면 작가가 29세에 온몸으로 퍼진 결핵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바 있고, ‘오물덩이처럼 뒹굴면서’ 살아와도 곳곳에 착한 사람들의 도움으로 죽지 않고 살아낸 후에 쓴 작품이었고, 살아 있는 동안 무언가 가치 있는 일을 남기고 싶던 욕망이 강했던 초기 작품이기 때문이다.「강아지똥」은 단선적 구성의 간결한 문체로, 초등학교 저학년 교과서와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그러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할 뿐 아니라 성인들이 읽어도 손색없는 명작 중의 명작이다. 희망적인 메시지를 비롯해 문학적 수준과 내용적 가치가 높은 작품으로 평가되며 연령층을 초월해 읽히는 까닭이다.작가는 동화 「강아지똥」을 통해 이 세상에 하찮은 인생이 없으며, 누구나 쓸모 있는 존재로 태어나 자신의 할 일을 발견하고 그것을 위해 혼신을 다하면, 별처럼 아름다운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 있다. 이 작품의 메시지와 작품의 의미를 더 깊이 들여다보기 위해 서사와 담화 분석을 통해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강아지똥』의 내용을 인용할 때는 큰따옴표를 사용하고 글자 크기를 상대적으로 작게 줄여 문장을 그대로 옮겨 쓰며, 작품을 ‘텍스트’로, 부드러운 어감을 주기 위해 담론을 ‘담화’라는 용어로 사용하여 「강아지똥」의 서사 담화를 분석하겠다.2. 「강아지똥」의 시퀀스우선 「강아지똥」의 시퀀스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1) 겨울 어느 날, 돌이네 강아지가 골목길 담 밑 구석자리에 똥을 누었느 날, 자기 옆에 피어난 민들레 싹을 보게 되고, 그 새싹은 별같이 아름다운 꽃을 피 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11) 그리고 한 마디 덧붙이기를, 민들레꽃이 피려면 강아지똥이 필요하다고 말해준다.12) 사흘 내린 비에 강아지똥은 잘게 부서져서 민들레의 거름이 된다.13) 민들레의 노란 꽃에 강아지똥의 눈물어린 사랑이 별처럼 빛나고 있다.이상에서 드러난 표층구조를 살펴보면 동화에서 드러나는 특징을 알 수 있다. 강아지똥은 세상에서 버림받은 존재로 푸대접을 받지만, 3)번을 보면 아직 자존감이 살아있다. 화를 낸 다는 행동은 자신에게 가능성이 있다는 희망을 내포한다고 말할 수 있다. 별처럼 높은 존재, 영원한 것을 향한 소망이 거기서 비롯된다. 1)번에서 겨울에 골목길에서 태어나지만 6)번에서 별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는 희망은 봄과 같이 올 것이다.반면 자존감이 낫거나 비관적 캐릭터는 화낼 여력이 없다. 그대로 수용하고 말거나 자조적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2)번에 등장하는 참새와 8)번에서 나타나는 닭과 같이 날개 있는 존재들은 모두 강아지똥을 무시한다. ‘더러운 것’, ‘쓸모없는 찌꺼기’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땅에 뿌리를 둔 존재는 강아지 똥을 인정한다. 4),5)의 흙덩이와 10)의 민들레싹은 강아지똥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는 대상들이다. 결국 강아지똥은 마음 속에 품은 희망의 씨앗을 13)번처럼 꽃피우게 된다. 거기에는 12)번과 같이 몸을 부수는 노력과 자신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타자에게 헌신하는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꿈과 희망은 용기를 수반하며 함께 이루는 것을 강아지똥이 보여주고 있다.시퀀스는 논리적 개념이다. (...) 잠이 든 뒤 깨어남 등이 그것이다. 강아지똥은 잠잘 때와 깨어났을 때 세상을 보는 시각의 변화를 느낀다. 동화는 어린이들에게 시각의 변화를 준다. 더욱이 좋은 동화는 독자가 그것을 읽기 전과 후의 마음을 바꾸어 준다. 그래서 꿈과 희망을 주고 용기를 준다. 동화의 특징 중 하나는 선명한 캐릭터와 단선의 플롯으로 주제를 더럽다며 침을 뱉은 행동을 보고 어리둥절해 하고 속상해 하지만, 그렇다고 주눅 든 것은 아니다. 참새에게 눈을 흘겨주고는, 연이어 흙덩이가 놀릴 때 도리어 대들며 따지듯이 말한다. 똥이면 어떠냐는 거다. 하찮은 존재라는 것에 수긍하지 않고, 비록 눈물 흘리지만 아직은 자존감이 높은 인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인물로 볼 수도 있다.강아지똥을 놀리던 흙덩이에게 강아지똥이 반박을 한다.“너는 뭐냐? 시커멓고, 울퉁불퉁하고, 시커멓고, 마치 도둑놈 같이…”하고 울면서 쫑알거리는 행동과 말에 말문이 막힌 흙덩이는 태도가 변한다. 강아지똥에게 곧 사과하고, 자신의 과거 잘못을 후회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강아지똥에게 착하게 살라고 하자, 강아지똥이 그때야 자신이 더러운 존재라는 시인을 하며 착하게 살 수 있는지 의문을 품게 된다. 세상 가운데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게 된 것이다.흙덩이는 강아지똥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하느님은 이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만들지 않았다며 강아지똥도 어디엔가 귀하게 쓰일 거라는 희망을 주는 조력자가 되어 준다. 흙덩이의 위로를 계기로 강아지똥은 자신도 어디엔가 쓸모 있는 존재가 될 것을 믿는다. 달구지에 다시 실려 간 흙덩이 말에 여운이 남아 갸우뚱 생각하다가, 그 말을 되되어 보고, ‘정말 나도 하느님께서 만드셨다면 무엇에 귀하게 쓰일까?’하고 생각이 발전하고 있는 점에서 ‘쓸모 있는 존재’로의 믿음을 알 수 있다.겨울잠에서 깨어난 강아지똥에게 어미닭이 병아리를 데리고 먹을 것이 있나, 다가온다. 그러나 어미닭도 참새와 같은 말을 한다. 강아지똥을 보고 ‘쓸모없는 찌꺼기’라고 발화한다. 어미닭 때문에 강아지똥은 상처를 받는다. 쓸모 있는 존재로서 점심으로 병아리와 닭의 요기가 된다면 기꺼이 희생하겠다는 마음이 있었으나 ‘쓸모없는 찌꺼기’로 태어난 운명 앞에 좌절하고 만다. 여기서 강아지똥은 풀이 죽고 만다. 그리고 한숨을 쉰다. 다음에는 눈물을 흘린다. 급기야 자신이 태어난 것을 하느님께 원망한다. 참새와 어다. 향긋한 꽃내음은 바람을 타고 퍼져갔고, 민들레꽃송이에는 귀여운 강아지똥의 눈물겨운 사랑이 어리게 된다.가장 더럽고 냄새나는 강아지똥이, 찌꺼기뿐이어서 참새와 어미닭에게 버림받은 존재가 민들레의 거름이 되어 꽃을 피우고 가장 향기로운 향기를 날리게 된 것이다.강아지똥은 바닥 인생에 비유할 수 있다. 별은 지극히 높은 하늘나라의 존재이다. 바닥과 하늘이라는 극과 극의 대비를 통해 등장인물의 존재가 극명하게 설명된다. 하늘의 별을 동경하는 강아지똥의 처지는 오히려 더 비참하게 보인다. 그럼으로써, 강아지똥의 존재는 절망 속에서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 민들레를 통해 별 같은 존재의 꿈을 이룬 희망을 더욱 강하게 보여준다.「강아지똥」의 인물들은 이분법적 이항대립의 행위항 모델은 강아지똥이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존재임을 보여주어 “하느님은 이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만들지 않았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또한 삼각형의 구도가 발견되기도 한다. 강아지똥의 출현은 봄비에 몸이 자디잘게 부서져야 민들레의 거름이 될 수 있다. 이것은 죽음을 의미할 수 있다. 죽어야 살리라, 하는. 다음에 민들레의 거름이 되어 꽃을 피우므로 강아지똥은 재생한다고 말할 수 있다. 마치 예수가 탄생하고 메사아로 인류의 구원을 위해 죽어야만 사흘 만에 다시 살아 부활하는 구조와 같다. 봄비도 사흘 동안 내리듯이. 그리고 강아지똥이 잘게 부서지는 것은 일차 죽음을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한 알에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야 많을 열매를 맺듯, 잘게 부서져 죽어야만 민들레의 거름을 통해 꽃으로 피어나는 것이다.다른 측면에서 강아지똥은 꽃을 매개로 하여 별 같은 존재가 된다. 이 또한 똥 - 꽃 - 별이 되는 구도이다. 강아지똥이 희생을 통해 생명을 얻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쓸모없는 존재가 위로자 혹은 매개자인 흙을 통해 소망을 품고 꽃으로 절정을 이루는 것도 같은 구도로 보여준다. 이분법적 대립항에 주체와 객체가 축이 되면서 삼각구도를 보여주는 것과 같이 텍스트의 요야 하듯 강아지똥의 겨울잠은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기 위한 과정의 역할을 하고 있다.세 번째 봄이 왔다. 봄이 오자 강아지똥에게 모든 게 다르게 보인다. 강아지똥의 시지각의 변화를 보여준다. 예쁜 새가 날아다니고, 꽃고무신 신은 애들이 뛰어 간다. 겨울잠 자기 전보다 예민해진 시각이다.그러나 어미닭이 강아지똥에게 다가와 “ 필요도 없어. 찌꺼기뿐.”이라며 먹을 수 없다고 가버린다. 강아지똥은 한숨을 쉬고, 눈물이 나오고, 하느님이 원망스러워진다는 담화가 길게 이어진다. 봄날의 하루해도 지루해 지고 느리게 시간이 갔다. 그러나 밤하늘의 별을 보고“영원히 꺼지지 않는 아름다운 불빛”을 갖고 있으면 더러운 똥이라도 조금도 슬프지 않을 것 같다는 희망의 단서를 독자에게 제공한다.슬프지 않을 것 같은 희망을 품었는데, 다음 문장에서 강아지똥은 자꾸만 울었다고 서술한다. 울면서 가슴 한 곳에다 그리운 별의 씨앗을 하나 심었다고 하는 부분은 내용상 모순이 되는 위반으로 보인다. 대체로 희망을 갖게 되면 씩씩하게 비극적 상황을 이겨내려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강아지똥은 별의 씨앗을 품고 그것만 있으면 똥이어도 슬프지 않을 것 같다면서 계속 슬픔에 빠져 있어 모순을 보이는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위반은 새로운 의미를 도출시킨다. 가장 밑바닥까지 절망에 떨어져 죽음을 생각하고 있을 때, 찾아온 구원의 손길은 더 극적인 법이다. 이와 같은 경우다. 강아지똥이 가슴 한 곳에 그리운 별의 씨앗을 심고도 자꾸만 울고, 비까지 내리는 처량한 장면 다음 순간, 파란 민들레 싹을 만나게 된다. 민들레싹은 자신은 예쁜 꽃이 피는데, 하느님이 비를 주시고, 따뜻한 햇볕을 비추시는데, 또 한 가지 필요한 게 있다고 설명한다. 강아지똥이 거름이 되어 주면 노랗고 예쁜 꽃을 피울 수 있다며 강아지똥 가슴을 울렁이게 한다. 슬픔과 대비된 극복상황의 반전은 이 모순된 문장을 오히려 의미있게 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사흘 동안 비가 내린 뒤, 잘디잘게 부서진 강아지똥은 거름이 되어 민들레꽃송이의 사랑으로 다.
권정생 문학에서 발현되는 기독교 사상- ‘장?단편동화’에 나타난 민중의식을 중심으로-? 목 차 ?1. 서론2. 권정생의 생애1) 전쟁체험에서 비롯된 가난과 질병2) 죽음에 맞선 글쓰기와 구도자적 삶3. 권정생 문학에 발현되는 기독교 사상1) 기독교 원체험과 민중의식2) 낮은 데로 임하신 예수의 재현3) 아래로부터 주체로 세우는 민중적 세계관의 일관성4. 결론張順德1. 서론권정생(1937-2007) 문학세계의 기저에는 작품 전반에 걸쳐 기독교 사상이 내재 돼 있음을 볼 수 있다. 동화와 소년소설, 에세이 등 그의 작품에서 연구자들은 공통적으로 기독교사상을 어렵지 않게 찾아내고 있는데, 그의 전기적 고찰은 이를 확연히 뒷받침해 주고 있다. 권정생 생애에서 전쟁으로 비롯된 가난과 질병, 죽음에 맞선 글쓰기로 문학적 성과를 낼 수 있던 근원적 힘, 반전?평화 통일의 추구, 물질문명과 기독교의 세속화를 비판한 문명비평가의 면모도 기독교 사상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연구자마다 권정생의 반전, 통일지향의식에 의한 평화 추구 의지가 작품에서 표방하는 경향성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그러나 그의 문학이 배태하고 있는 기독교 사상에 대한 인식은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되고 있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예컨대 이오덕, 이재복은 권정생의 기독교 사상에서 자기 구원, 희생정신, 공존의식 등을 찾아내고, 이와 대동소이한 관점을 보이는 연구들이 초기 연구부터 십여 년 동안 있어 왔다.그런데 2007년 임성규가 권정생 문학에 대해 “호교 문학의 속성을 초기 작품에서 보이나 후기에 와서 기독교를 비판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의 면모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러한 철학 내지 사상의 변화야말로 초기 작품세계와 후기 작품세계를 변별하는 하나의 준거가 될지도 모른다.”라고 언급한 이후, 권정생의 기독교 사상에 대해 다각적 관점에서 깊이 있는 연구가 뒤따르고 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즉, 권정생의 기독교 사상을 민중신학적 관점에서 접근하기도 하고, 기독교 아나키즘의 관점씨 6개월 못살았어요. 아저씨도 6개월 못 사는데 뭐하러 수술했냐”고 그러면서 끼워주더라고. 병원에서 퇴원할 때 의사는 약 잘 먹고 그러면 한 2년까지는 안가겠나, 그러고. 68년도 되니까, 2년 다 돼 가니까 이젠 죽는가보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때만 해도 그러면서 그 「강아지똥」을 썼으니까 감나무 잎사귀가 굉장히 절실했죠.이제 곧 죽는다 하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병자가 아주 가녀리게나마 숨이 이어지기를 기도하면서 쓴 글이다.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고 놓지않으려 안간힘을 쓰면서 쓴 작품이다.원래 「강아지똥」은 응모 당시 원고 매수 때문에 일부 삭제된 부분이 있었다. 감나무 가랑잎이 죽어가면서 강아지똥에게 들려주는 대목이었다.“감나무 잎사귀가 추운 밤중에 나와서 우리가 죽어야만 뒤따라 동생들이 태어나서 자랄 수 있지 않니”하고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강아지똥은 그걸 생각하며 자기가 죽어야 되는 걸 알게 되는 부분이었다.”권정생에게 강아지똥은 자신의 모습이면서 병들어 죽어가도 하느님에게는 쓸모있는 자아실현의 모델이 되기도 하였다. 그의 글쓰기 열망은 죽음과 맞서는 데서도 비롯된다.“항상 머릿속에 죽는다는 생각이 있어 강아지똥 하나라도 써 놓고 죽어야지, 또 무명저고리와 엄마를 쓰면서는 이거 하나 더 써놓고 죽어야지. 그렇기 때문에 정성을 들여야 된다, 그래가지고 하나하나 정성들여 쓰고 초가집이 있던 마을도 내가 겪은 전쟁이니까 이거 하나 더 쓰고 죽어야지. 그걸 써놓고 나니까 거기에 다 못 쓴 게 있잖아요. 그래서 또 몽실언니 쓰고 점득이네 쓰고 짧은 거 긴 거... 그런데 70년대 후반이 되면서 몸이 말을 안 듣는 거예요.”자기가 경험한 것만 쓴다는 그는 질병과 벗하면서도 쉼 없이 문학으로 고통을 승화시켜가고 있었다.“좋은 문학은 삶의 진실에 육박함으로써 사회현실에 눈을 뜨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권정생의 6.25소년 소설 3부작으로 불리워진 『몽실언니』, 『초가집이 있던 마을』, 『점득이네』” 같은 반전 의식과 반제국주의에 대해 고발하며 전쟁체험 소설망적이지 않으며, 뼈아픈 고통과 슬픔 뒤에도 희망을 꿈꾸며 잔잔히 파고드는 감동을 안겨준다. 그의 작품 속 인물은 서민적 아동으로 현실의 고통 속에서 도피하는 존재가 아니라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자신을 희생하면서 거듭나는 기독교적 세계관에 기초하며, 하나님이 민중과 함께하는 삶을 형상화 하고 있다.정결법이나 안식법을 지킬 수 없는 밑바닥 인생들을 민중으로 본다. 이스라엘 사람이면서 이스라엘부터 소외된 암하아레츠였고, 이들이 민중이다. 민중들의 공통점을 지적하면 ‘가난한 자들’이라고 하겠다. 저들은 모두 사회적으로 하류층이었다. 예수는 이들에게 해방을 주고, 병을 치유하며 사탄(로마제국)과 투쟁을 벌이는 사람으로 왔다.이런 견해에 비추어 작품을 볼 때 『밥데기 죽데기』에서 보여주는 장면에서 일면 그런 해석이 설득력을 갖는다고 할 수 있겠다. 산동네 사람들이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 산동네 이웃들은 모두 그렇게 서로 돕고 살아요.”하며 이웃사랑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민중의 삶에서 예수사랑의 본질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높은 자리에서 있으면 그리스도는 인간의 사랑이 불필요하다. 그러나 피묻은 손으로 모든 영광을 버리고 홀연히 갈릴리 바닷가에 나타나신 예수는 인간의 사랑이 필요했던 것이다. 비록 비천한 고기잡이 베드로 같은 인간에게도 한 사람으로서의 깨끗한 사랑의 피를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을 깨닫지 못할 때 우리는 예수의 참뜻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리스도는 한 인간으로서 우리 곁에 와 사랑을 구하고 있을 것이다. 나의 신앙은 이렇게 사람을 찾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것이 곧 그리스도를 만나는 일이다.서민지향의 작가적 태도 곧 민중성을 읽어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이상과 같이 기독교의 원체험과 민중의식이 중요하게 조망이 되는 이유는 권정생 삶의 체험에서 문학적 성과를 이루었고, 그의 문학이 소외되고 버림받은 것들까지 따뜻하게 감싸주며 구원을 주는 문학으로 자리매김한데 있다.그렇삼팔선 같은 것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게다. 이놈들, 똥도둑놈들아!” 할머니는 휴전선을 아직도 삼팔선이라 불렀습니다.(...)“아이구, 내 팔자야. 40년을 고향 잃고 영감 잃고 자식잃고, 그래도 다시 만날 날이 있겠지 고생고생 살았는데, 이젠 말짱 끝장났지 뭐냐. 일흔 나이에 앞으로 언제 죽을지 누가 안다냐? 오늘밤이라도 염라대왕이 부르면 당장 가야 할 게 아닌가...”하느님과 예수님과 공주님은 넋두리하면서 울고 있는 할머니를 어떻게 달래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그래, 이 영감아, 예배당 하느님은 이 세상 불쌍한 백성 구하려고 외동아들까지 버렸다는데, 겨우 세상이 이 모양이란 말이오?”하느님은 전쟁이 할머니에게서 사랑하는 가족을 뺏고,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빚어내는 것을 목격하고 어쩔 줄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은, 지하실 방 안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는 하느님네 식구들이 텔레비전 뉴스를 보다가 깜짝 놀란다. 셋방살이하는 가난한 쌍둥이 삼형제가 방 안에서 불장난을 하다가 질식해서 죽은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는데, 하느님은 그 아이들을 살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예수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반대를 한다.“사람들은 아직도 이웃 사랑보다 기적만 바라고 기도하고 있어요. 제가 옛날에 기적을 보여 준 것이 잘못이었어요.(...) 저의 십자가 고통보다 사람들은 자기 행복만을 위해 십자가를 이용하고 있어요.”“나는 분명히 자비를 원했지 제사를 받으려고 하진 않았는데, 불쌍한 아이들이 마음 놓고 살아갈 집도 없으니...”서글퍼진 하느님은 세상에서 보내는 세 번째 크리스마스를 맞고 있던 저녁, 마을 뒤편 언덕 꼭대기로 올라가 답답한 마음을 달랬다.“예수는 통일될 때까지만 참고 여기 있자고 했지. 대체 통일이 언제 되려는지, 나도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모르겠구나.” 빨간 십자가 불빛이 반짝이는 저 많은 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를 맞은 사람들이 들뜬 기분으로,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부르고 있을 것입니다.세상에 살러 오신 하느님은 할머니가 가엾고, 부모를 잃은죽음으로써 ‘반쪽나라’의 군대를 거부한 것이다. 권정생은 그의 시 ‘애국자가 없는 세상’에서 이렇게 말한다. “애국애족가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 동족을 위해 /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 테고/(...) 국방의 의무란 것도 / 군대 훈련소 같은 데도 없을 테고/ 그래서/ 어머니들은 자식을 전쟁으로 / 잃지 않아도 될 테고” 위와 같이 전쟁은 기독교 정신에도 어긋난다고 보는 권정생의 주장이라고 할 수 있고, 그것은 그의 전쟁체험에서 형성된 반전의식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다.권정생은 그의 장편 판타지 동화 『밥데기와 죽데기』 서문에서 6.25전쟁을 빗대어 이렇게 말한다. “힘센 아이가 약한 아이들을 꼬드겨서 싸움을 붙인 꼴로 우리나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다.” 그 소용돌이 속에 어린 점득이네 가족이 있었고, 그들은 나라에게 버림받은 백성이 된 것이다. 힘없는 나라는 주권을 잃은 듯 북쪽을 소련이, 남쪽을 미국이 와서 주인행세 하였다.『점득이네』서는 장 목사와 인민군의 대화를 통해 이런 무기력한 나라의 사정을 폭로하며 무능한 국가를 정면에서 비판하고 있다.“집안에 강도가 와서 물건을 훔치고 사람을 죽이는데 어떻게 맞서 싸우지 않겠습니까.”“우리 조선에 이젠 강도는 없소. 강도가 있다면 이렇게 무례한 짓을 하는 당신네들이 바로 강도인 거요.”“강도가 없다니요! 조선에서는 수천 년 동안 강도가 설치며 인민을 괴롭혔습니다. 외국의 침략이 끊이지 않았고 나라에서는 탐관오리들이 가난한 인민들의 피를 짜서 저들의 배를 살찌우는, 그야말로 이름 그대로 강도의 나라였습니다. 일제 36년 동안 나라를 잃은 인민들은 왜놈들에게 빼앗기고, 왜놈의 앞잡이에게 빼앗기고, 고향을 떠나 타국으로 흩어져 살지 않았습니까. 배가 고파 굶주리다 못해 어린 자식을 노비로 팔고 기생으로 팔고, 그렇게 죄없는 어린것들이 부모 형제와 헤어져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일본이 쫒겨나자 미국이 삼팔선을 긋고 남쪽 땅을 강제로 손아귀에 잡고 물러나지.”
소년 주인공의 전쟁 체험과 반성장의 선언- 『점득이네』를 중심으로 -張順德- 목 차 -1. 서론2. 전쟁체험과 성장소설적 특징3. 반성장의 선언과 망향의 노래1) 돌아온 고국, 아버지 부재와 아버지 찾기2) 제국주의 폭력의 목격, 저항적 정체성 확립3) 失鄕과 望鄕사이, 분단극복과 통일지향4. 결론1. 서론『점득이네』의 작가 권정생은 1937년 일본 동경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은 가난과 전쟁의 소용돌이로 고통에 휘말린 회색빛 시공소였다.해방을 맞이해서 고국으로 돌아온 권정생과 가족은 생활터전을 마련하지 못해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된다. 두 형은 일본에 남고, 형수는 친정으로 가고, 아버지와 작은 누나는 안동에서 살고, 권정생과 어머니, 큰 누나와 동생은 외가댁이 있는 청송에서 살게 된다. 고국에 돌아온 지 1년이 지난 1947년에야 온 가족이 겨우 함께 모여 살게 되었다. 부모님은 소작농을 하며 소 세 마리 값을 어렵사리 모았지만, 한국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화폐 가치의 폭락으로 허사가 된 경험도 있었다. 게다가 6.25전쟁으로 권정생의 가족은 또 한 번 헤어져 살아야 하는 고통을 겪게 된다. 원종찬,「권정생 연보」,『권정생의 삶과 문학』, 창비, 2008, pp.374-378 참조.그는 전쟁을 겪음으로 어린 시절 온통 회색빛깔로 색칠되어 버리고 두 번씩이나 겪은 전쟁의 상처는 평생을 두고 아물지 않았다고 말한 바 있다. 권정생,「영원히 부끄러울 전쟁」,『우리들의 하느님』녹색평론사, 2008, p.155.전쟁 체험과 가난한 민중의 삶을 대표하는 그의 생애는 작품에 반영 돼 비극적으로 그려지는 소년 소설 소년소설의 용어는 기존 연구들에서 분류한데 따라 언급한다. 권정생 문학작품 중, 리얼리즘을 획득한 작품으로『몽실언니』,『초가집이있던마을』,『점득이네』은 소년소설로,『한티재하늘』은 소설로 분류하고 있다.을 낳게 된다.권정생의 전쟁 체험은 문학적 수용과정으로 작품에 투영되어 전쟁의 잔인한 폭력성을 드러내고 있다.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 중 대동아 전쟁을437.전쟁(6.25)은 성장소설의 모험적인 청년 주인공을 사라지게 했으며, 1960년대에는 전쟁체험과 연관된 모더니즘(이제하, 김승옥)을 출현시켰다. 전쟁의 현실은 그 폭력성으로 인해 1950년대에는 마주 대응하는 것조차 어려웠으며, 이 시기를 성장소설의 청년 형식이 부재한 시대로 만들었다. 1960, 70년대에는 모더니즘과 소년 주인공을 통해 간신히 전쟁체험을 기억해 낼 수 있을 정도였다. 그것을 넘어서 전쟁의 현실을 정면으로 다룰 수 있었던 것은 변혁운동이 고조된 1980년대에 이르러서일 것이다. 전쟁체험을 담은 성장소설에서 청년 대신 소년이 등장하며 아버지에 대한 반항이 약화된 사실은, 분명히 그런 퇴행적인 역사적 과정과 관련되어 있다. (중략) 이 시기에 교양소설의 청년 주인공은 청소년, 어린이 등으로 퇴화되어 갔으며, 성장에 저항하는 반성장 소설의 전통이 나타나기도 했다. ----, 앞의 책, p.438.『점득이네』는 전쟁체험을 담은 성장소설로 청년 대신 소년 점득이가 등장하고, 성장에 저항하는 반성장 소설의 전거를 따르게 된다.성장소설은 젊은이의 내면적 성장과정을 다룬 소설이다. 성장소설적 요소의 근거로 『점득이네』는 통과의례를 바탕으로 한 입사담의 특징이 있다. 주인공은 통과의례 과정에서 분리(separation)-전이(transition)-통합(incoporation))의 단계를 거친다. 또한 결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소설 유형을 보여 이보영 외, 『성장소설이란 무엇인가』,1999,p.13.주고 있다.『점득이네』에서 입사담의 요소를 찾아 볼 수 있는데, 서사구조를 살펴보면 그 특징이 발견된다.1) 점득이네는 만주에서 조국의 해방을 맞아 귀향하게 된다. 그러나 압록강을 건너던 도중 아버지가 소련군의 총탄에 맞아 운명한다. 엄마와 점례 누나, 점득이만이 간신히 외가댁이 있는 모과나무골에 도착한다.2)외사촌 승호형은 점득이에게 아버지의 자상하고 다정한 면모를 들려주기도 한다. 그러던 승호는 사회주의 운동을 위해 마을 아이들 일곱 명과 동네를 되지만 열심히 살며 아들을 키웠다.15) 어느 날 시장에 다녀오던 판순이는 길에서 노래하며 동냥하고 있는 맹인 부부를 지나쳤다. 나중에 점득이 남매라고 알아채지만, 시위대 때문에 헤어지고 만다.이상의 서사구조에 드러난 바와 같이, 해방을 맞아 점득이네 가족은 만주에서 고국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1)과8)번에서 부모님을 잃게 된다. 아버지가 소련군에게 총격 당하고, 어머니는 미군 폭격기에 돌아가셨다. 점득이는 눈을 잃게 되어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입는다. 주인공은 제국주의의 실체에 눈을 뜨게 되고, 제국주의에 의해 어머니가 희생된 것을 목격하게 된다. 10)에서는 고향 마을에서 피란을 떠나는 분리 단계에서 장 목사는 부모 잃은 아이들과 함께 부산의 바닷가 마을로 공간적 이동을 한다. 그 곳에서 고아원 생활을 하게 되는데, 통과의례의 장으로 이접되는 의미를 지니는 격리된 공간으로 시련과 좌절을 겪는 전이 단계에 들어선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동안 아이들이 점득이에게 장님이라고 놀리고, 장난도 치며 골탕도 먹인다. 기만이가 땅바닥을 더듬어 못을 줍고 있는 점득이에게 석탄가루를 뿌려놓아 검정이 묻게 하고 웃음거리로 만들자, 점득이는 날카로운 돌멩이를 소리 나는 쪽에 던져 기만이에게 상처를 주는 사고를 친다. 그 일로 밥을 굶는 벌을 받는다. 점득이는 밤새 돌아가신 부모님 그리움에 섧게 운다.11)에서처럼 미군 장교의 제안으로 미국 유학길에 오를 수 있는 기회도 생긴다. 미국에 가면 편안하게 공부하고 잘 살게 된다며 음악을 가르치는 강 선생이 설득을 했지만, 소용없었다. 점득이는 엄마를 죽인 미국이 싫어서 유학을 포기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미움의 감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남에게 의존하여 출세하게 될 운명도 포기하며, 곧 주체로서 스스로 서겠다는 주인공의 자립 의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13)15)에서 점득이는 점례누나와 판순이 기만이와 연대하여 고아원을 나오게 된다. 아이들은 피란민들 거주지에서 석탄을 팔고, 담배도 팔며 생계를 이어간다. 여기에서 점득이는 노래부리다가는 아버지를 못 쫓아가고 만다. 점득이는 종다래끼를 짊어지고 헐떡거리며 달렸다. 가까스로 숨차게 아버지 옆에까지 쫓아갔을 때 아버지는 걷던 걸음을 멈추었다. 아버지는 점득이 이마에 촉촉이 밴 땀을 닦아주고는 빙그레 웃었다. 그러고는 등에 지워진 다래끼를 내리려했다. 점득이는 어쩐지 아버지한테 꿋꿋하게 자랑하고 싶었다.“싫어 나 그냥지고 갈 거야.”점득이는 그렇게 다래끼를 진 채 아버지보다 앞장서서 걸었다. 아버지보다 더 힘차게 걷고 싶었다. 권정생,『점득이네』,창비, 1990, pp.27-29.소년에게 좋은 아버지의 부재는 또 다른 아버지를 찾게 한다. 아버지의 자리에 사촌 형 승호가 존재하는 것이다. 승호로부터 아버지가 자상하고 어지신 분이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점득이는 어깨가 으쓱 올라가면서 그런 훌륭한 아버지처럼 되고 싶어졌다. 그러나 승호마저 더 나은 사회와 나라를 위한다는 뜻을 품고 가출하고 만다.부권부재의 상황은 갑작스런 근대화와 서구화의 물결, 일제의 강점과 수탈, 독재권력의 등장 등으로 아버지가 아버지로서 제대로 역할을 해낼 수 없는 우리만의 특수한 상황을 바탕으로 한다. 이로부터 우리 소설의 한 특징적내적형식인 ‘아버지의 부재’라는 형식이 파생되었으며, 역사의 폭력성 전통부재, 이념부재 등의 의미로 성장소설 속에 나타난다.최현주, p.71.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점득이 남매는 고향에 돌아가기 전까지는 어린아이 상태로 머물겠다고 말한다. 통일이 되고 나라가 제 모습을 찾을 때까지, 좋은 아버지를 찾을 때까지, 성장은 멈추고 말 것이다. 이 역설적 대목은 나병철이, 기억하기 싫은 식민지와 전쟁의 고통스러운 경험은 근대적 자아의 진정한 성숙을 묻는 성장소설을 통해 분열의 대상이 극복돼야 할 대상으로 상기된다.나병철, 앞의 책, p.436.고 언표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2) 제국주의 폭력의 목격, 저항적 정체성 확립권정생은 그의 장편 판타지 동화 『밥데기와 죽데기』 서문에서 6.25전쟁을 빗대어 이렇게 말한다. “힘센 아이가 약한 아이들을 꼬르내리는 소리가 신기하도록 아름다운 것이다.점득이는 찬송가를 깨끗하고 맑은 목소리로 곱게 불렀다. -----, 앞의 책, p.112.점득이와 창덕이 노래에 반한 미군 장교가 미국에 가서 성악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미국이 엄마를 죽였다고 인식하던 점득이는 싫다고 거절한다. 이는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의식의 표출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유학을 가지 않겠다는 점득이에게 창덕이가 물었다.“점득아, 왜 미국에 가기 싫으니?”“그냥 가기가 싫어.”“창덕아, 너는 미국 가서 공부하고 와.”창덕이는 점득이 손을 마주 꼭 쥐었다.“너는 왜 가기 싫으니?”“난 전쟁이 끝나면 외갓집에 가서 승기랑 승숙이 누나 기다려야 해.”‘창덕아, 나도 너하고 같이 미국 갔으면 좋겠지만 그건 안 돼. 난 미국이 싫단다.’점득이 마음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점득이는 모과나무골의 폭격을 절대 잊어버리지 않고 있었다. -----, 앞의 책, pp.189-191.점득이가 출세하고 호강하며 살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한 표면적 이유는, 어머니를 죽인 미국이 미워서이다. 하지만 진정한 이유는 외세인 소련이나 미국에 대한 의존적 태도를 거부하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더군다나 점득이는 봉사이다. 의존적이 아닌 스스로 자기주도적인 삶을 사는 것은 일반인에 비해서 더욱 힘든 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작가는 『점득이네』의 이러한 모습의 형상화를 통해서 우리 스스로를 반성하고 주체적 삶을 촉구하는 데까지 작가의식이 발전한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식의 발전은 전쟁의 참상을 동시대 어느 문학작품보다 냉정하게 표현하게 만들었다. 좌익이데올로기와 인민군에 의한 참상뿐만 아니라, 그동안 비밀시 되어왔던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까지 적나라하게 형상화함으로써 이데올로기 전체의 폭력성을 조명하였다. 최하영, 앞의 논문, p.64.제국주의의 폭력성을 목격한 점득이에게 점례는 어른들에게 들은 말로 위로하지만 믿지 않는다.미국의 실체를 직관으로 파악한 점득이는 미국이 제공하는 기회를 거부할 수 있었고이다.
그레마스의 의미구조 모델을 적용한‘홍길동전’ 분석그레마스는 기호학의 의미구조를 만들어 의미생성의 과정을 밝혔다. 그레마스의 의미구조 모델에 작품을 적용, 분석하여 의미생성을 찾아내는 데 을 텍스트로 삼고자 한다. 우선 텍스트를 시퀀스로 나누고, 서술 수준의 구조를 추출하여 기호4각형에 대입하여 역할소와 행위자 수순으로 주제적 내용을 분절시키는 순서로 진행한다.1. 의 시퀀스 (‘중학생이 보는 홍길동전’, 신원문화사, 인용 및 참고)① 길동이 신분에 관한 묘사(조선 세종 때, 한양 사는 홍 판서는 용꿈을 꾸고 그의 첩 춘 섬에게서 아들을 보게 된다.)② 길동은 어려서부터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아는 총명함과 뛰어난 도술을 터득했다.( 장차 영웅이 될 기상이 나타남)③ 첩의 소생인 탓으로 호부호형하지 못한 한을 품고 살아간다.④ 홍 판서의 애첩 초란은 길동의 비상한 재주가 장차 화근이 될까봐 길동을 없애려고 자객을 보낸다.⑤길동이 도술로 자객을 물리치고 집을 나와 방랑의 길을 떠난다.⑥도적 소굴에 들어가 천근무게의 돌을 들어 올리는 힘겨루기에서 두목으로 받아들여진다.⑦ 기발한 전략으로 해인사 창고를 턴 후, 자칭 활빈당이란 호를 쓰며 기개와 도술로 조선 팔도 지방 탐관오리들 재물을 탈취하여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누어 준다.⑧ 함경 감사가 백성에게 착취한 재물을 감영 창고에서 털고 북문에 ‘아무 날, 돈과 곡식을 도적한 자는 활빈당 당수 홍길동’이라는 방을 써 붙인다.⑨ 감사가 조정에 장계를 올리자 임금이 좌우 포도청으로 하여금 길동을 잡으라는 체포 명 령을 전국에 내렸으나, 도술을 부려 빠져나가는 길동을 잡을 도리가 없었다.⑩ 벼슬아치들 길동의 아버지 홍 판서와 길동 형 인형에게 압력을 가하여 길동을 잡으려 하지만, 길동은 병조판서 직책을 요구한다.⑪ 결국 길동은 제 발로 임금 앞에 찾아가서 병조판서 직위를 얻고 조선을 떠난다.⑫ 그 뒤 길동은 남경으로 가다가 산수풍경이 깨끗하고 편안히 살만한 율도국을 발견한다.⑬ 남경 땅 제도에서 낙천 땅에 갔다가 요괴를 퇴치하고 볼있다. 서사물에는 근본적으로 발신자와 수신자, 주체와 대상, 조력자와 절대자라는 3쌍의 행위소가 있다. 의 주제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모델 적용이 가능하다. 의 주제를 ‘적서차별 철폐’로 보거나, 부정부패한 탐관오리의 처벌‘이나 ’이상적인 국가 건설‘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와 같은 주제는 ’가정 - 조선사회 - 율도국‘ 순서로 장소 이동에 따라 부합되고 있다.첫 번째 이야기에서 주체와 대상은 이야기의 구성에서 직접적인 관계가 설정된다. 발신자, 수신자, 대립자, 조력자 등은 간접적으로 관계를 맺는다. 이 관계의 대상은 아들이 된다.2. 행동자 모델 1발신자 --------------- 대상 ----------------- 수신자용꿈 아들 홍판서조선사회 호부호형, 가출 서자의 한조력자 ---------------- 주체 ----------------- 대립자춘섬 길동 정부인적서차별, 초란 길동의 재능 판서의 아들서사 문법에서 상황과 사건에 따라 또 행동자 모델의 구성요소에서 구상적, 추상적인 상대와 가치도 주체와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면, 길동은 용꿈을 꾸고 얻은 아들로서 주체가 될 수 있다. 이때 홍판서는 발신 된 용꿈의 수신자라고 할 수 있다.마찬가지로 길동의 재능을 주체로 위치시키면 조선사회는 발신자가 되고 서자의 한을 발생시키는 수신자가 된다. 그런 상황에서 주체인 길동의 재능 때문에 홍판서의 사랑을 빼앗길 것 같다고 생각하는 초란은 길동을 없애려는 조력자의 행위를 하고 있다.결국 호부호형을 간절히 바라지만 판서의 아들이란 실속 없는 신분은 적서차별에서 받는 좌절감을 심화시켜 길동은 가출을 대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다. 길동은 가정이란 울타리에서 나와서 도적떼 소굴로 장소 이동하게 된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객체를 추적한다.? 모델2발신자 --------------- 대상 ------------------- 수신도적떼 두목 길동조력자 --------------- 주체 ---------------------- 대립자탐관오리 재물 의협심(의적슬아치들홍길동전 시대 배경은 조선 세종 때이다. 왜 하필 세종 때일까, 는 구조상에 드러나지 않는다. 인물의 성격이나 개성보다 모델로 홍길동전을 분석할 때, 공간이동에 의한 상황이나 사건을 통해 작품 전반의 서술적 주제의 인식을 할 수 있다. 즉 주체가 갖지 못한 것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획득하고 다시 잃어버리는 과정 (SUO)-> (S∩O)->(SUO) 가 발화체를 통해 나타나게 된다.길동이 호부호형할 수 없고, 서자의 한이 깊어 집을 나왔다. 그리고 우연히 도적떼 소굴을 찾아들게 된다. 거기에서 힘겨루기를 통해 두목이 되고, 스스로 활빈당이라 자처한다. 길동은 도적들을 데리고 전국 8도에서 백성에게 불의하게 탈취한 탐관오리들의 재물을 한 날 한 시에 약탈하며 한바탕 난리를 치다 지명수배자가 된다.EN1(E):(SUO)->EN2(F)=[(SUO)->(S∩O)]->EN3(E):(S∩O)->EN4(F)=[(S∩O)->(SUO)]->EN5(E):(SUO)이라는 서술 통사론의 모델을 얻을 수 있다.상태들 사이의 변형을 이행하는 행위의 함수는 바로 의적노릇의 의협심이다. 이접의 상태에서 연접의 상태로 이행될 때 길동은 백성에게 탈취한 탐관오리들의 재물을 빼앗음으로 상태를 변형시킨다. 그리고 다시 연접의 상태가 이접의 상태로 변형되는 것은 길동이 스스로 감영의 돈과 곡식을 탈취한 도적임을 당당히 알리고 잠적하여 탐관오리들을 골탕 먹임으로 상태를 변형시킨다. 그리고 다시 현상수배범이 되어 연접의 상태가 이접의 상태로 변형되고 8도에서 한 날 한 시에 관가를 털어 잡혀갔는데, 전국 8도에서 잡혀간 8명의 길동은 속임수를 쓴 지푸라기에 불과했다. 다시 이접의 상태로 되돌아가게 되는 것이다.홍길동을 상태, 행동의 주체인 S로, 불만대상을 O로 볼 때, 전체적인 시퀀스의 공간적 분할과 일치한다. ⑤~⑫까지의 시퀀스는 가정 -> 조선사회 -> 율도국의 순서대로 공간변화가 일어나고 재능과 도술로 상태변형을 일으키며 이접과 연접이 교차하게 된 것이다.출중한 재능은 있고, 조선사 질서를 어지럽히는 도적으로 몰렸다. 그러나 아무도 길동의 능력을 당해낼 수 없었고, 오히려 임금으로부터 병조판서 직위를 얻어낸다. 길동은 자신의 목적들인 대상을 획득한 셈이다. 결국 이상국가를 건설할 새 땅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왕까지 되었으니 더 말할 게 없다.의 심층 수준을 이루고 있는 서술적 수준의 주제를 의미작용의 기본 구조 차원에서 추출할 수 있다. 홍길동전의 서사문법이 갖고 있는 영웅으로서의 활약, 이상사회의 건국자인가 하는 문제를 기호학적 4각형의 모델에서 나타낼 수 있다.3. 기호학적 4각형의 모델 - 영웅 활약영웅 도적비도적 비영웅기호4각형의 첫 번째 항인 ‘영웅’길동이다. 길동에게 영웅적인 요소를 몇 가지 보면 다음과 같다. 천첩의 소생으로 서자라는 사회적 ? 신분적 약점을 제외하면 神人같은 인물이다. 우선 평범한 사람이 가질 수 없는 비범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도술을 부리고 축지법을 쓰며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고,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아는 총명함과 동서고금을 꿰뚫는 지식까지 있다. 게다가 의협심이 강해서 불의를 보면 그냥 넘기지 못하는 인물이다. 도적질을 해도 당당하게 자신이 한 일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배짱도 일등급이다. 이와 같은 길동은 탐관오리를 척결하고자 했던 의지적 행동자이고, 불쌍한 백성을 대신하여 뺏긴 물건을 돌려주는 인물이므로 영웅으로 평가할 수 있는 항이다.그것의 모순항인 ‘비영웅’은 백성의 재물과 나라의 돈은 건드리지 않았다 해도, 남의 재물을 탈취하여 가난한 백성에게 나누어 준 행동에 있다. 탐관오리들이 백성들에게 과중한 세금으로 수탈한 재물이라 해도 이미 남의 주머니에 든 돈과 재물이다. 탐관오리들의 비겁한 수탈방법과 별다름 없이 도적떼를 끌고 가서 불 지르고 창고를 터는 행동은 이중 삼중 범죄행위에 저촉된다. 현상수배범이 된 것도, 남의 주머니에서 돈을 훔쳐 자선사업에 쓰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행동이어서 영웅적일 수가 없는 것이다.‘도적’에 해당하는 항은 길동이도 세금수탈 관리들 못지않게 관가와 해인사 절의 창고를 약로 벼슬길에 나아가 바람직한 정치와 제도를 개선하여 사회구조를 변화시킬 방법도 없고, 자신의 재물이 많아서 가난한 백성을 도울 수도 없으며, 임금에게 상소한다고 들어 먹힐 사회구조가 못 되므로, 마지막 방법인 약탈을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묵인 받는 도둑 관리들을 같은 방식으로 골탕먹이는 한 방법이므로 비도적이 되며, 가난한 백성들에게 통쾌함을 주어 상처를 치유해 주는 셈이었으니 비도둑인 것이다.또한 길동은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고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당시의 사회상에 대한 반골적 사고인데, 이러한 점이 사회적 신분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점을 다시 기호학적 4각형의 모델에 적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기호학적 4각형 모델 - 길동이 진정한 이상사회의 건국자인가건국자 침략자비침략자 비건국자연구자들 논문에서 이견이 나타나는 부분이 있다. 에서 율도국 이야기는 加筆된 것이라는 설이다. 그 때문에 홍길동전 전체구조와 동떨어졌다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그러할지라도 홍길동전에서 율도국 건설은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내용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기존 질서 속에 이상사회를 건설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혁명이나 전쟁, 천지개벽한 일이 없이는 현실에서나 이야기에서나 가치관을 전복시키기 불가능한 것은 마찬가지라 보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기존 질서를 떠나서 새로운 질서를 정립해 가는 게 옳은 판단이다.그러나 길동이 율도국을 차지하는 방법은 정당하지 않았다. 그는 ‘침략자’였다. 길동이 조선에 돌아가 아버지 삼년상을 마치고 다시 자신의 나라에 돌아간다. 그 나라 남쪽에 율도국이 있는데, “기름진 평야가 수천 리나 되어 살기 좋아 늘 길동 마음속에 생각해 왔다.” 드디어 율도국을 치려고 훈련 잘 된 병사 오만을 거느리고 가서 싸움을 걸었다. 결국 율도국 왕의 항복을 받아내고 그 나라의 왕이 되었다. 前 율도 왕은 의봉군에 봉하고 백성들을 달래 안심시키고 자신이 율도국의 왕이 된다. 이 장면은 길동이 명백한 침략자라고 할 수 있다. ‘비침략자’ 항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