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와 나2003년 대학교 1학년, 교양수업으로 사회복지학개론을 처음 들었다. 50분 수업을 듣던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맞이한 3시간짜리 수업.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또 교재는 뭐가 그렇게 비싼지 입이 딱 벌어질 지경 이었다. “내가 가고 싶은 과 수업만 받고 나머지는 듣고 싶은 수업 들으면 되는거 아닌가” 라고 푸념하며 그렇게 대학교의 첫 수업을 듣고 시간이 흘러 받아본 성적표는 정말 참담했다. 그 결과 휴학을 하고 군대를 다녀온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 사회복지학개론. 당연히 잊을 수가 없다. 이렇게 재수강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위에 이야기만 들어보면 사회복지학개론이나 사회복지가 나에게 가혹한 추억이 될 수도 있겠다 라고 생각 될 수도 있는데, 비단 그런 것 때문에 사회복지학개론을 아직까지 기억하는 것 만은 아니다. 당시 기숙생활을 했는데 같은 방을 썼던 방장 형이 사회복지학과였는데 사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지금은 졸업했지만 아직까지 연락을 하며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그 형을 생각하거나 반대로 사회복지학을 생각하면 서로 연관되어 떠오르는 신기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사회복지학개론 이나 사회복지학 보다는 좋은 형을 사회복지학개론과 연관 지어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유야 어쨌든 사회복지학개론은 1학년 첫 수업 이였고, 추억속의 사람을 떠오르게 해주는 매개체로서 내 머릿속에 특별하게 자리 잡은 것 같다.1학년때 배운 수업이 거의 4년이나 지난 지금 얼마나 남아 있겠는가? 물론 내 예상은 정확 했다. 개론 수업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이론을 다룬 다른 수업보다야 이론적으로 간달 할 수도 있지만 사회복지의 총체적인 내용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그 범위 면이나 내용면에서 쉽게만 볼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쉽지 만은 않았다. 그래도 한 학기가 시작하고 벌써 3개월이 지났고 이제는 어느덧 학기를 마무리할 시점이 왔다. 그리고 그 마무리 시점에서 “사회복지와 나” 라는 주제를 갖고 글을 쓰는 과제를 부여 받았다. 과연 어떤 화제를 갖고 사회복지와 나를 연관시켜야 할까 많이 고민 해봤다. 먼저 이번 사회복지개론 수업을 듣고 새롭게 알게 된 것이나 느낀점 등을 말해 보겠다. 위에서 말 했듯이 이번 사회복지개론 수업은 재수강 수업이다. 공교롭게도 입학 후 첫 수업이 사회복지개론 이였으며 복학 후 첫 수업역시 사회복지개론 이였다. 재수강 수업이라 당연히 점수 잘 받을 수 있겠지 라고 생각했던 내 짧은 생각은 수업 인원 4분의 3이 재수강이라는 당황스러운 상황에 묻혀 버렸으며, 처음부터 걱정이 앞섰다. 복학하면 무조건 공부만 하겠다던 나의 다짐은 온데간데 없이 시험 기간 때 어떻게 해야 할줄 몰라 답답해 하던 결과 로 간신히 중간 턱걸이 점수를 맞을 수 있었다. 그래도 수업중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이 있다.첫째 사회복지 대상자들은 동정받기 보다는 남들과 똑같이 대해주는 가운데 자신들이 살아가는데 최소한의 복지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동정 이라는 것이 참 난감 할 때가 많다. 아마도 동정 이라는 것은 세상을 살면서 객관적인 입장에서 상황을 파악하며 살아가야 현명하고 올바른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할 터인데 동정을 한다면 혹여 그로 인해 나쁜 사람들에게 사기를 당 할 수도 있고, 동정으로 인해 마음이 흔들려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우리 주위에는 길에서 남의 도움을 받으려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들의 모습을 보자면 허름한 옷에 씻지도 않은 것 같고, 심한 사람은 장애를 갖고 있기 까지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동정이 생기지 않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럼 그 사람들에게 얼마 되지는 않더라도 소정의 돈을 주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인가? 라는 의문이 제기 된다. 예전에는 길에서 채소를 파시는 할머니들이나 뻥튀기를 파시는 할아버지들만 봐도 뭉클하여 필요도 없는 물건들을 사곤 했다. 그런 분들에게 어린 내가 단돈 몇 천원을 드리며 동정의 마음을 전한다는 것이 당시 나로서는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 느끼는 거지만 자신이 노력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열심히 생활 하고 계시는 분들에게 동정을 표시 한다는 것이 어찌 보면 참으로 건방진 모습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과연 그들에게 동정을 보여줄 만큼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크거나 완성된 사람인가? 라고 자문을 하게 되었는데 나 역시 좋은 부모님 만나 24살이 된 지금까지 큰 어려움 없이 부모님이 내주시는 등록금을 받아 학교를 다니는 입장인데 내가 과연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그들과 생활이 얼마나 다를 것이며 또 그들과 같은 처지라 했을때 내 또래의 사람들로부터 동정을 받는 나의 모습에서 당당함을 잃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라는 것이다. 요즘에 와서 정말 많이 느끼는 거지만 나는 아직 고생을 모르는 것 같다. 정말 힘들었던 사람만이 힘든 사람들의 심정을 알 수 있고 그들을 도울 방법이나 진심으로 도울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갖추고 작은 정성을 보여 주어 서로 간에 교감을 통해, 주는 자나 받는자 모두 마음 따듯해질 수 있는 모습이 진정 아름다운 모습일 텐데 그러기엔 나는 아직 힘든 사람들의 어디가 힘들며 어떻게 힘든지를 모르며 그저 동정의 마음으로만 대했던 것 같다.굳이 나 자신을 비하 하면서까지 사회복지와 관련하여 그동안의 나의 모습을 말하려고 했던건 아니였지만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어쩔 수 없이 현실의 나의 모습이 이렇게 그려진 것 같다. 난 정말 착한 사람도 아니고 나쁜 사람도 아닌 평범한 학생이며, 단지 이제는 깊이 생각하며 인생을 살아가야 할 나이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시점에 있는데 내가 이렇게 내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때 나와 같은 또래의 힘든 친구들은 얼마나 힘들까? 그나마 몸이라도 멀쩡한 사람들은 이런 고민이라도 할 수 있을 텐데 몸까지 불편한 사람들은 그저 시간 가는 것만 멍하니 바라볼 것 같다. 이들의 삶의 낙은 과연 무엇인지 나의 짧은 지식으로 유추하기는 힘들지만 아마도 내가 살면서 느끼지 못하는 사소한 것들 조차 그들에겐 큰 기쁨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나는 그냥 되는대로 살고 있으며 주어진 삶에 감사 할 줄 몰랐으니 얼마나 한심한가?두 번째로 얼마전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속에는 몸이 불편한 손녀를 키우며 사는 할머니를 등장 시켰다. 그리고 우연치 않게 그들의 생활을 알게된 남자 대학생이 나오며 그동안의 사회복지와는 전혀 상관없던 남자는 그들을 도우면서 조금씩 남을 돕는 법이나 그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즐거움 등을 알아 가면서 몸이 불편한 소녀와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서로 사랑도 하게 되지만 나중에는 헤어진다는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다리를 쓸 수 없는 여자는 할머니의 힘에 의지해 살지만 할머니나 여자 역시 처음에는 남자의 동정이나 도움을 삐딱한 시선으로 봤다.세상에 공짜로 남을 도와주는 사람이 어디 있냐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자신들의 냉정어린 시선에도 굴하지 않으며 진심을 보여준 남자를 받아들이며 갇혀만 있던 삶에서 세상으로 한 발자국 내딛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또 이 영화에서는 몸이 불편한 여자와 그녀를 동정으로 바라보던 한 남자가 사랑까지 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여자로서 남자에게 사랑받고 싶고, 자기가 직접 만든 요리도 대접하고 싶은 여느 여자들과 다를 것 없는 행복을 느끼고자 했던 여자는 결국 남자와 같이 살면서 서로 잠자리까지 같이 하게 되는데, 당시에는 뭐 저런 것까지 표현 했을까? 했지만 좀 더 생각해 보니 장애인도 사람이고 그들도 성적욕망이라는 것이 있고 사랑의 완성을 느끼고 싶어 하는 것은 똑 같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우리들의 입장에서만 판단하지 말고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는 노력이 필요 할 것 같다. 위에서 말 했듯이 구빈자들이 정말 원하는 건 자신들도 일반인들과 똑같이 살고 싶고 또,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세 번째로 군대 가기 전 나는 과제의 일환으로 신문기사를 작성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때 주제로 삼은 것이 “충주시 복지의 현주소” 였다. 기사 작성을 위해 충주 시내 복지원 여러 곳을 조원들과 함께 취재하게 되었다. 나는 조원 1명과 함께 대략 3곳 정도를 다녀왔었는데 아무생각 없이 취재만을 위해 출발했던 처음과 달리 돌아 올때는 나나 조원 둘다 뭔가를 느꼈는지 아무말 없이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국가에서 지원을 받는 복지원이나 민간 차원에서 운영을 하고 있는 복지원 둘 다 참 힘들어 보였었다. 물론 국가에서 지원을 받던 복지원은 그나마 잘 알려져 있던 탓인지 후원 및 자원봉사자 들로 인해 그럭저럭 운영할 만은 했지만 다른 민간 복지원은 시설이나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 대한 복지적인 측면들이 너무나도 낙후되 있었다. 60~70년대 에서나 봤을법한 가옥 몇채를 모아 힘들게 생활하고 있는 곳과 뜨거운 여름날 이동식 컨테이너를 구해 생활하던 복지원들은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모습들 이었다. 복지원을 운영하고 계시는 분들과 인터뷰도 했는데 예상대로 힘든 생활들을 말해 주셨다. 인터뷰를 하면서 느꼈던 또 한가지는 그들은 과연 그 힘든 일들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왜 하는 것일까? 였다. 내가 다녀온 민간 복지원 모두는 신앙적인 힘으로 힘든 삶을 지탱해주며 서로 믿음으로서 힘든 삶이라도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위에서 말 했듯이 진정한 복지는 동정만으로 될 수는 없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정이나 힘든 삶을 함께 이겨내고자 하는 마음만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자신의 삶마저 포기해야 되지만 그런 모든 것 까지 뛰어 넘을 수 있는 강한 힘을 주는 것 같다. 다시 한번 느낀 거지만 비단 그 분들뿐이 아니라 남을 진심으로 돕는 이땅의 모든 분들은 정말 대단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