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ippines필리핀은 어디에 ?필리핀 면적 : 29 만 9404㎢ ( 우리나라의 약 3 배 ) 수도 : 마닐라 (Manila) 기후 : 열대 계절풍기후 종 교 : 가톨릭 83%, 기독교 9%, 회교 5% 정체 : 공화제 언 어 : 타갈로그어 , 영어 인구 : 약 9268 만 명 ( 우리나라의 약 2 배 ) 1 인당 GDP : 1,625 $ ( 우리나라의 약 10 분의 1 수준 )필리핀이 투자에 유리한 점한국 - 필리핀 협력관계필리핀 투자 관련 법제도 종합 투자법 ( Omnibus Investment Code of 1987) ( Foreign Investments Act of 1991) ( IPP : Investment Priorities Plan) 2. 외국인 투자법 3. 투자우선계획투자 유망분야 수출산업 중공업 광물 및 자원개발 관광레저 산업 영어학습 산업 IT 아웃소싱국내 기업의 주요투자 진출 분야 출처 : 필리핀투자진출설명회 . KOTRA국내 기업 진출현황 ▶ 1996 년에 현지법인을 설립 1997 년 블라칸에 공장준공 양돈 · 양계 · 양어사료를 비롯한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여 전국의 영업망을 통해 판매 우수한 품질경쟁력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통해 2008 년 생산규모를 확대하였고 , 필리핀의 500 대 기업의 하나로 성장▶ 2005 년 라구나 (Laguna) 주에 약 1,350 평의 공장설립 약 1400 여명의 현지직원 보유 소형 정밀부품을 제조 2005 년 3 월부터 광학 줌 및 자동초점 엑츄에이터 생산 공장설립 이후 대만에 팬텍큐리텔로 제품 수출 미국에 소닉에릭슨 스마트폰에 부품 적용 현재 LG 이노텍과 삼성 테크원 등 여러 기업과 파트너▶ 2005 년 8 월 옥션 필리핀 법인 창립 2006 년 8 월 필리핀에 Auction.PH 사이트 런칭 전자상거래 시장 (E-Commerce) 정복 사이트 런칭 후 10 개월 만에 35 만 명의 회원 달성투자 절차투자 시 유의사항 출처 : 필리핀투자진출설명회 . KOTRA정보 지원 관련기관 1995 년 필리핀 한국투자기업의 이익을 대변하자는 취지로 출범하였고 , 다양한 협회로 구성되어 있으며 , 상공인들을 위한 정보교류와 자문역할을 담당 해외시장개척 지원과 무역투자정보 및 투자진출을 국내 기업들에게 지원하며 , 필리핀 상공부 , 투자청 , PEZA 등 과 업무 파트너- 감사합니다 -{nameOfApplication=Show}
▶신비평 (The New Criticism)20세기 미국에서 시작된 문예 비평 상의 새로운 운동으로, 이 용어는 스핑건이 1910년 컬럼비아 대학에서의 연설 때 처음 썼으며, 1941년 랜섬(John Crowe Ransom)이 『뉴 크리티시즘(The New Criticism)』이란 저서에서 새로운 비평 방법으로 사용한 후부터 일반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랜섬은「신비평 (New Criticism)」의 발행과 함께 문학을 이해하려는 이 같은 접근을 표현하기 위해 대중적으로 사용하였고, 신비평에서 하나의 구체적인 실재물임을 인식하는 존재론적 비평가 (Ontological critic)를 요구했다. 즉, 하나의 시 작품은 작가의 의도나 감정적인 상태 또는 작가나 독자의 가치나 믿음으로부터 독립된 그 나름의 진실되거나 정확한 의미를 발견하기위해 분석될 수 있다고 하였다.(낭만주의의 반동)모더니즘, 형식론, 심미비평, 텍스트비평, 또는 존재론적 비평이라 불리운 신비평의 궁극적인 동일성은 20세기 초기 학계에 유행하던 문학 분석 방법(역사적, 전기적인 연구)에 대한 반대에서 유래하였다. 즉 신비평가들은 원전에 대한 직접적인 분석을 중시하였으며, 아울러 예술 작품을 전기적이거나 문화적인 또는 사회적인 산물이라기보다는 자율적인 총체로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신비평적 방법론은 엘리엇 (T.S.Eliot)의 ‘통어된 감수성’과 ‘객관적 상관물’에 의한 시어론에서 구체화되었으며, 아울러 리처즈의 심리학과 의미론으로 보충된 시 방법론에서 확고한 이론적 바탕을 수립하였다. 이 리처즈의 이론은 포오드, 휴움, 파운드 등의 이미지즘에 연원을 두고 있으며, 특히 그는 콜리지의 상상력 이론과 근대 언어학에서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블랙머, 브룩스 등의 이론가가 있다. 이 신비평 이론은 지나친 언어 조건 분석이라는 한계점을 드러내기도 했으나 철저한 텍스트 분석의 신중성과 내재적인 작품 가치를 고양한 점에서 현대 비평의 큰 흐름이 되었다.▶신비평 (New criticism)의 역사적 발들에 기초해야 함-표현파 Expressive school·작품에 있는 예술가의 감정이나 태도와 연관·예술가 개인의 경험에 가치를 기준⇒이런 시대적 배경의 비평가들의 반동으로 신비평이 나타남※ 시의 객관적인 존재를 선언함에 있어서, 신비평가들은 작가나 독자의 감정, 태도, 가치와신념에서가 아니라 오직 시 자체가 객관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작품 그 자체의 평가에 관계하기 때문에 신비평가들은 넓은 범주에서 형식주의(Formalism)라고 불리는 문학비평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신비평 (New criticism) 에 대한 비판뉴 크리티시즘 운동의 대두가 시인으로서의 T.S 엘리엇(T.S.Eliot)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오늘날에 와서 대체로 일치된 견해이다. 왜냐하면, 엘리엇은 그의 유명한 에세이 「전통과 개인의 재능 (Tradition and individual Talent) 」에서 나중에 객관주의적인 뉴 크리티시즘의 강령이 되다시피 한 비성개론 (impersonal theory)을 개진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에 의하면, 시인은 표현할 만한 ‘개성 (personality)’을 지닌 것이 아니라, 인상들과 체험들이 독특하고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결합되는 특수한 매개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는 정서의 방출이 아니라 정서로부터의 도피이며, 개성의 표현이 아니라 개성으로부터의 도피’라는 유명한 명제가 여기서 도출된다. 그러므로 ‘정직한 비평과 예민한 감상은 시인이 아니라 시 쪽으로 지향 된다’ 는 것이다.이 비개성론은 「형이상학파 시인들 (The Metaphysical Poets)」이라는 에세이에서 다음과 같이 다시 한 번 강조됨으로써 이 에세이에서의 ‘감수성의 분열 (dissociation of sensibility)' 이라는 명제와 더불어 뉴 크리티시즘의 비평적 귀감이 된다. 즉 ’시인의 마음이 작업을 위해서 더할 나위 없이 채비가 되어 있을 때는 다양한 체험을 꾸준히 융화한다. 반면에 평범한 사람의 체험은 혼란스럽고 불규칙하고 단편영향력은 막대해졌는데, 그것은 엘리엇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사실이었다. 엘리엇은 1947년에 밀턴에 대한 강연에서 자신의 초기 비평에서의 명제들이 세상에서 자신의 주화(鑄貨)처럼 통용되고 있는 사실을 놀라워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리하여 ‘형이상학파 시인들’이라는 명칭은 17세기의 던을 비롯한 시인들을 지칭하는 명칭이 되었고, 이 시인들에 대한 엘리엇의 긍정적인 평가는 낭만주의 시인들에 대한 그의 폄하와 더불어 문학 비평에 있어서의 한 세대의 유행이 되다시피 했다.뉴 크리티시즘은 학생들을 꼼꼼한 독자로 만들기 위해 대두된 운동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학생들이 시의 텍스트 자체에 열중하기보다는 키츠(Keats)가 햄프스테드(Hampstead)의 거주지의 정원에서 나이팅게일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인 경험, 혹은 앤드루 마블(Andrew Marvell)이 영국 성공회의 성직자의 아들로서 박식하긴 했지만 친구보다는 적이 많았다는 사실에만 집착함으로써 텍스트를 무용하게 만드는 폐단을 바로잡자는 교육학적 동기에서 뉴 크리티시즘 운동은 비롯된 것이다. 비평가로서의 이러한 개인적인 회고는 뉴 크리티시즘의 실제 비평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던 클리언스 브룩(Cleanth Brooks)의 「뉴 크리티시즘(The New Criticism)」이라는 에세이에 잘 나타나 있다.그러나 ‘작품을 모든 문학적 전통 혹은 사회적 배경으로부터 완전히 분리시켜 놓고 선입관 없이 접근 한다는 뉴 크리티시즘의 이상이 애초부터 가능한 것일까?’ 라는 의문과 관련해서, 미국 비평의 전개양상을 유럽 대륙의 인식론의 전개와 결부시킨 아트 버만(Art Berman)의 최근 저서 「뉴 크리티시즘부터 해체까지(From the New Criticism to Deconstruction)」의 내용을 이 자리에서 요약해 볼 필요가 있다. 버만에 의하면, 미국 비평의 전통에 있어서 뉴 크리티시즘 운동은 영국의 경험론의 인식론에 바탕을 둔 문학 유파라는 것이다. 17, 18세기의 경험론을 기본적으로 인간의 오성(悟性) 적극적이고 지칠 줄 모르는 영혼에게는 지혜의 빛과 진리의 아름다운 논리로 고양되는 실례는 얼마든지 있다.다시 버만의 견해로 돌아가면, 시를 하나의 자율적인 대상으로서 파악하고 역사, 적기, 사회학 혹은 그 밖의 다른 문화 외적인 분야들을 통해서 시를 이해하기를 거부하는 뉴 크리티시즘의 태도가 곧 경험론의 태도라는 것이다.버만의 진단대로 하자면, 뉴 크리티시즘의 형성에 많은 이론적인 기여를 한 I.A. 리처즈(Richards)야 말로 전형적인 경험론자이다. 리처즈는 시를 읽고 공감하는 심리 상태를, 신경들의 여러 충동들이 조화를 이루고 균형을 이루는 ‘공감각(共感覺,synaesthesia)’이라고 부른다. 그에 따르면 우리의 개성들은 꾸준히 서로 갈등을 일으키는 무수히 많은 충동들의 복합에 의해 결정된다. 리처즈에게 있어서 시란 시인의 심리를 평형상태로 몰고 가는데 성공한 충동들을 언어를 매체로 하여 객관화시킨 것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시가 성공적일 경우에는 독자에게도 그에 상응하는 충동들의 평형상태를 가져다 줄 것이다.경험론에서는 모든 관념들, 즉 정신의 내용이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듯이, 리처즈에게는 훌륭한 비평가의 조건들 세 가지가 모두 경험과 관련을 맺고 있다. 첫째, 자기가 판단하고 있는 예술작품에 관련된 정신 상태를 편벽들 없이 경험하는데 능숙해야 한다. 둘째, 경험들을 서로 구분할 수 있어야한다. 셋째, 가치들의 건전한 심판관이 되어야 한다. 이때 가치라는 것은 윤리적이건 미학적이건 앞서 말한 충동들을 될 수 있는 한 많이 충족시키는, 혹은 좀 더 중요한 다른 충동의 희생 없이 한 충동을 충족시키는 경험들의 속성이다. 하나의 정신 상태로써 일관성과 조직화는 만족스러운 상태이며 따라서 가치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의 정신들’에 의해 이렇게 조직화된 상태를 지향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즉, 문학과 예술은 이러한 영향들을 전파하는 수단들이다. 예술가의 재능은 경험에 의해 야기된 충동들의 다양함을 취해서 그것들을 일관되게를 배제하려는 태도 자체가 또 하나의 이데올로기라는 최근의 비판은 이제 영미 비평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그랜트 웹스터(Grant Webster)의 「문인 공화국(The Republic of Letters)」은 뉴 크리티시즘이 어떤 이데올로기적인 배경에서 성립해서 그 번성을 누리게 되었는가를 자세히 살핀, 뉴 크리티시즘에 대한 또 하나의 본격적인 비판서이다.웹스터는 우선, 작품을 모든 문학적 전통 혹은 사회적 배경으로부터 완전히 분리시켜 놓고 선입관 없이 접근한다는 뉴 크리티시즘의 이상이 애초부터 가능할 것인가의 의문을 제기한다. 하나의 작품을 문학으로서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불가피하게 과거와 현재의 그 밖의 텍스트들과의 관계에서 읽는 것이기 때문이다.작품을 모든 문학적 전통 혹은 사회적 배경으로부터 완전히 분리시켜 놓고 선입관 없이 접근한다는 뉴 크리티시즘의 이상이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회의는 이제 정밀한 이론화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사실상 하나의 작품을 문학으로서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불가피하게 과거와 현재, 그 밖의 텍스트들과의 관계에서 읽는 것이라는 근본적인 반성은 구조주의의 대두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구조주의에서는 하나의 작품을 그 민족의 문학 전통에 있어서의 기호로 파악하고 그 기호 이면에 깔려 있는 의미의 망을 파헤치기 위해 필연적으로 그 기호가 속해 있는 의미의 관계를 설정하는 유파이기 때문이다.그러나 관객의 배제라는 항목을 놓고 뉴 크리티시즘에 대한 비판이 출발했다고 해도 그 비판이 나아가는 방향은 각각 상이하다고 할 수 있다. 즉, 위에서 살펴본 웹스터의 비판은 문학을 통한 사회 개조의 이상에 대한 이데올로기적인 기대를 여전히 지니고 있기 때문에 뉴 크리티시즘을 ‘보수적 형식주의’로 깎아내린 반면에, 마르크시즘에 심취했던 에드먼드 윌슨(Edmund Wilson)을 새롭게 긍정적으로 조명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한편, 동일한 문학작품이라도 읽는 사람에 따라 그 의미가 상이해질 수도 있다는 입장에서 뉴 크리티시즘에 비.
Report【대금결제 관련 국제무역분쟁 사례 분석】강의명 :교수님 :학 부 :학 번 :이 름 :제출일 :Ⅰ. 사례분석1. 사건의 경과사 건 번 호2005나 16775 신용대금등원 고0000000 유한공사피 고00은행소 제기일2005. 4. 9.판결 선고일2006. 9. 13쟁 점무역결제론신용장에서 정하고 있는 조건을 완전히 충족하지 못한 경우, 신 용대금 지급의무자의 신용대금지급 거절이 정당한지 여부결과 (주문)□ 원고 승소■ 원고 패소참 고 조 문신용장통일규칙 제 20조 b항2. 판결 요지▶ 사안의 개요1) 원고는 중국에서 설립된 활어 등 수산물 수출회사이고, 피고는 제 1심 공동 피고 여국성의 요청에 따라 신용장을 개설한 은행이다.2) 피고는 여국성의 의뢰에 따라 수익자를 원고, 신용장 금액을 미화 102,500 달러로 정한 자유매입방식의 취소불능신용장을 개설하고, 중국의 통지은행인 OO산업은행 북경지점을 통하여 원고에게 그 개설사실을 통지하였으며, 위 신용장에는 1993년 제 5차 개정통일신용장규칙이 적용된다고 명시하였다.3) 원고는 활 우럭을 중국 국적 활어 운반선에 선적하여 OOO에게 보낸 다음 위 통지은행을 통하여 피고에게 신용장 대금의 지급을 구하였으나, 피고는 위 통지은행에 위 신용장에서 정하고 있는 OOOO사의 특사배달수취증 원본 미 제시, 특사배달수취증상에 DHL社 의 서명이나 고무인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는 이유로 대금의 지급을 거절하였다.3. 쟁점 및 판단① 특사배달수취증이 원본인지 여부신용장거래에서 신용장통일규칙의 해석상 서류의 원본성을 판단할 때에는 ‘과 연 서류의 작성자가 이 서류를 원본으로 작성하려는 의도에서 작성하였는가?’ 에 의하여 판단되어야 할 것이므로, 서류 작성자의 그와 같은 의도, 즉 서류를 원본으로서 작성하려는 취지가 서류의 문면 상 표시된 경우에는 신용장통일규 칙 제 20조 b항의 규정과 관계없이 원본이라는 표시가 필요하지 않다고 봄이 타당하다 할 것인바(대법원 2002. 6. 28. 선고 2000다 63691 판결참조), 이 사건 OOOO특사배달수취증에 관하여 보건대, OOOO사가 발행하는 운송장 중 SHIPPER'S COPY 만 발송인에게 교부되고, ORIGIN COPY는 위 회사에서 보 관하며, 여기서 ‘COPY’라는 것은 장수 개념일 뿐 ‘사본’이라는 뜻으로 사용된 것은 아니라는 점, 이 사건 특사배달수취증은 OOOO사의 고유 양식용지에 작 성되었고, 상단에는 ‘OOO’이라는 레터헤드(letterhead, 회사명ㆍ주소 등 서유 용지 윗부분의 인쇄문구)를 포함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원고가 제시한 특사배달수취증은 서류의 작성자인 OOOO사가 이를 ‘원본’으로 작성하려는 의 도에서 작성한 것으로서 서류상 ‘원본’의 표시가 없더라도 신용장통일규칙에서 정하는 서류의 ‘원본’에 해당한다.② 특사배달수취증 작성자의 서명 누락배달 기관인 OOOO사 수거직원의 수기 서명이 되어 있지 않은 이 사건 특사배 달수취증은 이 사건 신용장의 요구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서류이므로, 피고가 ‘특사배달수취증 상에 배달기관의 서명이 표시되어 있지 않음’을 이유로 그 대 금의 지급을 거절한 것은 정당하다.4. 판결의 의미이 판결은, 신용장 거래의 기본 원칙 중의 하나인 엄밀일치의 원칙과 관련하여 서류의 원본성 여부 판단기준 및 신용장상 요구되는 서류적 조건의 구비 여부에 대한 판단 기준을 제시한 사례이다.Ⅱ. 사례분석에 대한 나의 견해이 사례는 신용장 거래의 기본 원칙 중의 하나인 “엄밀 일치의 원칙”과 관련하여 무역을 행하는 과정에 있어서 신중한 서류 작성이 얼마나 중요한 것임을 잘 보여준 사건이다. 사례에서의 쟁점은 신용장에서 정하고 있는 조건을 완전히 충족하지 못한 경우 신용장 대금지급 의무자의 대금 지급 거절이 정당한지 여부였고, 그 결과는 정당한 것으로 판결이 남에 따라 1심에 이은 항소역시 원고의 패소로 끝났다. 과거에는 이러한 엄밀 일치의 원칙에 의거하여 서류를 심사하였지만 최근에는 사소한 불일치는 허용해 주어야 한다는 상당 일치의 원칙을 따르는 추세이다. 하지만 신용장 조건과 서류의 일치성에 대한 논쟁은 지속되고 있으며 서류수리와 관련된 신용장 거래분쟁에서 많은 판례들은 신용장조건과 엄밀 일치의 원칙적용 또는 상당일치의 원칙적용에 있어서 대립되고 있는 실정이다. 수출업자가 신용장의 조건대로 이행하기 위해 노력하였는데 작은 실수 하나로 대급 지급이 거절되는 경우 정말 억울할 것 같다. 원본성 판단에 있어서는 원본에 대한 판단기준의 상당한 유연성으로 지급거절이 부당하다는 수익자 입장에서는 엄밀 일치에 준해서 서류를 작성하고, 심사하는 은행은 상당일치를 적용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심사하는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위 사건 판결의 쟁점중 하나로 특사배달수취증 작성자의 서명누락으로 원고는 서류가 원본임을 밝히고도 패소하였는데, 이 부분에서 신용장의 기본원칙인 “엄밀 일치의 원칙”을 잘 알 수가 있었다. 비록 원고가 특사배달수취증이 운송서류가 아니라고 주장하였지만, 신용장 조건에서 그 수취증을 필요서류로 요구함과 동시에 운송서류만이 아닌 모든 서류에 작성자의 수기 서명을 요구하였으므로 “엄밀 일치의 원칙에 따라 피고 은행은 대금지급을 거절하였고, 이는 정당한 행위가 된 것이었다.
E.A Poe 와 단편 소설 의 등장Edgar Allan Poe 19 세기 최대의 독창가로 꼽히는 미국의 시인 · 소설가 · 비평가 . 1809 년 1 월 19 일 미국 보스턴에서 출생 . 3 살이 되기 전에 배우였던 어머니가 사망 . 부유한 상인 존 앨런의 양자로 키워짐 . 어머니를 잃고 이상적인 여성상을 추구하던 중 , 14 살 때 급우의 어머니인 제인으로부터 그것을 발견하고 나중에 유명해진 「 헬렌에게 」 (1831) 라는 추억의 시를 쓰게 됨 . 17 세에 버지니아 대학에 입학하였으나 , 학비조달의 어려움 등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으로 무절제한 생활을 시작하여 퇴학당함 . 그 이후로 양부와의 불화 등 비참한 생활이 시작됨 . 18 살 때 「 티무르 」 (1827) 를 보스턴에서 익명으로 출판 . 아무 비평도 받지 못하고 , 생활이 궁핍해 군대에 들어감 .그 동안에도 제 2 시집 「알 아라프 , 티무르 」 를 볼티모어에서 출판하였으나 묵살당하였고 , 제 3 시집 「포 시집」을 출판하기에 이르렀으나 , 시작 ( 時作 ) 을 단념하고 소설을 쓰기로 결심함 . 1831 년부터 숙모와 함께 볼티모어에서 살면서 각 종 잡지와 신문의 현상 소설에 응모함 . 1832 년에는 「병 속의 수기」 가 , 1843 년에는 「황금 풍뎅이」 가 당선됨 . 이로부터 그의 단편 소설의 전성시기가 찾아옴 . 사촌 동생인 버지니아와 결혼하고 , 각 종 잡지의 편집자로 있으면서 단편을 계속 발표 . 1840 년 「 리지아 」 , 「 어셔가의 몰락」을 포함한 「괴기 단편집」 2 권을 간행함 . 그 후 「 모르그가의 살인사건」 , 「큰 소용돌이에 빨려들어서 」 , 「붉은 죽음의 가면」 , 「검은 고양이」 , 「 도난당한 편지」등을 썼으며 , 1845 년에는 「황금 풍뎅이」 를 포함해서 「단편집」을 출판함 .포는 「 어셔가의 몰락」에서의 주인공처럼 현실에 등을 돌리고 내면의 심연에 끌리면서도 , 한편으로 추리와 분석 능력을 활용하여 「 모르그가의 살인사건」 에서의 탐정 뒤팽과 같은 인물을 창조수 없으며 , 이 작품은 한 걸음 한 걸음 진행되어 , 마치 수학의 문제처럼 정확함과 엄밀한 결과를 가지고 완성되었다 .'이와 같은 시작의 태도는 프랑스 상징파 시인들로부터 깊은 존경을 받았으나 , 영국과 미국에서는 포의 작품에는 어딘가 내용과 방법이 물과 기름처럼 서로 섞일 수 없다는 등 비속하다는 지적도 받아옴 . 또한 , 시를 교훈이나 실용적인 도덕의 대용으로 하는 것을 거부하였으며 , 그 때문에 실용주의를 신봉하는 미국에서는 이단자로 취급 당함 . 1847 년 가난 속에서 아내와 사별하고 , 스스로도 건강을 돌보지 않아 2 년 후 10 월 , 볼티모어의 노상에 쓰러져 의식 불명인 채 40 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남 . 사후에도 오래도록 무시당하였으나 , 1875 년에서야 겨우 그의 기념비가 세워지며 점차 포의 명예가 회복되어 , 19 세기 최대의 독창가의 한 사람으로 꼽힘 . 사망 원인은 그의 최후의 미스터리며 , 정확한 묘지 위치조차도 논쟁거리로 남아있음 .The Fall Of The House Of Usher(1840) 1928 년 프랑스 장 엡스탱 감독 1988 년 미국 알란 버킨쇼 감독 참고 동영상모르그가의 살인 사건 (The Murders in the Rue Morgue , 1841 년 ) 모르그가의 4 층 집에서 남들과 단절된 삶을 사는 두 모녀 ! 어느 날 , 비명 소리와 함께 딸은 굴뚝 속에 쳐박혀 있고 , 집 뒤쪽에서는 목이 달아난 부인의 시체가 발견된다 . 그러나 두 여인이 살해당한 당시 묶었던 방은 잠겨 있었고 살인범이 들어온 흔적은 없었다 . 경찰들은 범인의 살인동기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수사를 미적미적 끝내려고 한다 . 사람들의 증언은 제각각이다 .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 뒤팽이라는 탐정 캐릭터를 탄생시킨 첫 추리소설 ! - 인간은 정신적 활동을 통해 대상을 분석한다 . 그러나 정신 그 자체는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없다 . 사람들은 단지 정신적 활동을 통해서만 인간 정신의 특성을 감지할 수 있을 뿐이다 .검은 고양이 (The니아 와 결혼했고 , 둘의 애정은 깊었는데 그 시기에 포는 어셔가의 몰락 이나 모르그가의 살인 사건 같은 작품을 쓰면서 언젠가는 자신만의 잡지를 내는 꿈을 꾸었다 . 하지만 그가 신혼이었던 1836 년이 바로 미국의 공황시기여서 그와 아내 , 장모이자 숙모는 극도로 궁핍한 결혼 생활을 견뎌내야 했다 . 1842 년경부터 버지니아는 병을 앓기 시작했는데 5 년 뒤 죽을 때까지 가난과 결핵으로 큰 고통을 겪었다 .Annabel lee It was many and many a year ago, In a kingdom by the sea, That a maiden there lived whom you may know By the name of Annabel Lee; -- And this maiden she lived with no other thought Than to love and be loved by me. I was a child and she was a child, In this kingdom by the sea, But we loved with a love that was more than love -- I and my Annabel Lee -- With a love that the winged seraphs in Heaven Coveted her and me. And this was the reason that, long ago, In this kingdom by the sea, A wind blew out of a cloud, chilling My beautiful Annabel Lee; So that her high-born kinsmen came And bore her away from me, To shut her up in a sepulcher In this kingdom by the sea. 아주 아주 오래 전 바닷가 한 왕국에 한 소녀가 살았어요 . 애너벨 리라면 , 당신도 알지 몰라요 . 이 소녀는 날 사랑하고 내 사랑을 받는 것밖엔 딴 생각g my Annabel Lee. But our love it was stronger by far than the love Of those who were older than we -- Of many far wiser than we -- And neither the angels in Heaven above, Nor the demons down under the sea, Can ever dissever my soul from the soul Of the beautiful Annabel Lee: -- For the moon never beams without bringing me dreams Of the beautiful Annabel Lee; And the stars never rise but I feel the bright eyes Of the beautiful Annabel Lee; And so, all the night-tide, I lie down by the side Of my darling, -- my darling --, my life and my bride, In her sepulchre there by the sea -- In her tomb by the sounding sea. 천국에서 우리 반만큼도 행복하지 못한 천사들이 그녀와 나를 시기한 것이었어요 . 그래요 ! -- 그 때문이었죠 ( 바닷가 이 왕국 사람들은 다 알고 있어요 ) 밤에 구름 속에서 한 차례 바람이 일어 나의 애너벨 리를 싸늘하게 죽여 버린 건 . 하지만 우리의 사랑은 더 강했답니다 . 우리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보다 우리보다 현명한 많은 사람들의 사랑보다요 . 그래서 하늘의 천사들도 바다 밑의 악마들도 내 영혼과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영혼을 떼어놓지 못해요 . 달빛이 빛날 때마다 난 언제나 꿈을 꾸거든요 ,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꿈을 . 별들이 뜰 때마다 나는 느껴요 , 애너벨 리의 빛나는 눈동자를 . 그래서 나는 밤새도록 내 사랑 , 내 사랑 , 내 생명 , 내 신부의를 껴안을는지 . 세상에 둘도 없이 빛나는 소녀를 Nevermore 슬프고 괴롭지만 , 뭐라고 묻든 같은 대답을 들을 걸 뻔히 알지만 계속 물을 수 밖에 없는 절망적인 매달림 이 갈가마귀 란 시 전체적인 정서이다 . 결코 잊을 수 없는 불행과 사라진 희망에 대한 추억 , 그것이 갈가마귀의 대답 “ nevermore” 와 함께 울려 퍼지는 동안 우리도 함께 아득한 슬픔을 느낀다 . 필라델피아에 있는 포의 기념박물관 문 앞에서 방문자를 환영하는 것이 바로 이 갈가마귀다 .사람들은 나를 미쳤다고 했다 . 그러나 광기가 숭고한 능력에 속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 모든 광기가 심오한 것인지 아닌지 , 이것이 사고의 질병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아닌지 , 혹은 일반적인 지적 능력이 사라지면서 고양된 정신상태에서 생기는 것인지 아닌지 , 광기에 대한 이런 문제들에 대해 나는 아직 결론을 얻지 못했다 .“ - 에드가 앨런 포샤를 보들레르 (Charles Baudelaire) 에드가 앨런 포의 단편을 읽고 보들레르는 내가 쓰고 싶었던 것들이 모두 포의 글 속에 있었다 . 라고 말하면서 , 평생을 포의 작품 번역에 바침 . 발레리 ( Ambroise -Paul-Toussaint-Jules Valery) 스테판 말라르메 ( Stephane Mallarme) 발레리 , 말라르메 등 상징주의 시인들은 포를 자신들의 문학적 출발점으로 삼으며 , 포에 대한 깊은 존경을 바침 . 포에 의해 영향을 받은 사람들단편 소설의 등장 단편소설이라는 말을 최초로 쓴 사람은 미국의 J.B. 매슈스이다 . 단편소설의 근대적인 형식은 미국의 에드가 앨런 포우 에 의해 결정되었으나 , 그 발달은 유럽 G. 보카치오의 《 데카메론 》 이후 정립되었다 . 이 것을 시초로 , 잡지 저널리즘의 발생과 동시에 미국의 E.A. 포 , 프랑스의 P. 메리메 , 독일의 호프만 등 뛰어난 단편작가를 배출하였다 . 또 , 19 세기 후반의 신문 저널리즘의 발전에 따라 형식상으로 한층 응축된 단편의 황금기를 맞았는데 , 프랑스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