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머리말 ----------------------------------------------- 2제 1 장. Beckett 의 생애와 주요작품 ------------------ 3제 2 장. Beckett 의 문학적 특징 ----------------------- 51. Beckett 와 말2. 철학적 탐구3. 유머와 기술4. 말의 기억과 반복5. Beckett 와 라디오 극6. Beckett 와 포스트모더니티제 3 장. 서구 부조리극과 한국 현대 연극 --------------13참고 및 인용 문헌 ------------------------------------14머리사무엘 베케트, 연극을 사랑하고 희곡에 약간의 사전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무엘 베케트의『고도를 기다리며』를 알고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작품의 제목 정도는 들어보았지만 내용에 대해선 알지 못한 경우였다. 이 후 수업을 통해 작품에 대해 배우게 되었으나 작가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작품의 완전한 이해는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 글은 총3 장으로 나누어 작가의 생애, 문학적 특징, 그리고 서구 부조리극과 베케트의 작품이 한국현대 연극에 수용된 과정을 다루고 있다. 개인적 지식과 연구에 의한 것이기 보다 현재 베케트에 관해 쓰여진 자료와 문헌 등을 바탕으로 글을 꾸몄다.특별히 작년 2006년은 사무엘 베케트 탄생 1백주년으로 국내외 적으로 베케트와 관련된축제 및 작품 공연이 많이 있었다. 늦으나마 올해, 베케트와 그의 작품에 대해 배우게 된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더 나아가, 하루 빨리 그의 연극을 볼 수 있길 기대해 본다.제 1 장. Beckett 의 생애와 주요작품Samuel (Barclay) Beckett1906. 4. 13(?) 아일랜드 더블린 폭스록~1989. 12. 22 프랑스 파리.아일랜드 태생 프랑스의 작가·비평가·극작가.베케트는 더블린 근교에서 태어났다. 아일랜드 출신의 동료 작가인 조지 버나드 쇼나 오스카 와일드,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처럼 그도 영국계 아일랜드 출신의 프로쟁 직후보다는 속도가 느렸다. 주요관심사는 연극과 라디오 극본 및 수많은 산문 작품 작업이었다. 베케트는 파리에서 계속 살았지만 집필은 파리에서 좀 떨어진 마른 계곡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전적으로 예술에 전념하고자 했기 때문에 라디오나 텔레비전 출연, 언론 인터뷰 등 모든 사람의 이목을 차단했다. 1969년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되었을 때도 수상은 받아들였지만 수상식에서 대중연설을 하지 않으려고 스톡홀름에 가지 않았다.제 2 장. Beckett 의 문학적 특징1. Beckett 와 말그는 젊은 시절부터 줄곧 ‘말’의 문제에 집착하여, 표현 매체로서의 말에 대해 회의를 품었던 작가였다. 말의 한계성과 존재의 무의미성(nothingness)은 베케트의 작품을 전반적으로 지배하는 주요소들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그는 예술과 예술가의 상관관계에 있어서 그 출발점을 ‘무의미성’에 두고 있다. 화가 탈 모트(Tal Coat)에 대해 조지 뒤투이트(Georges Duthuit)와 나눈 인터뷰에서, 그는 현대 예술가가 처하는 딜레마를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표현할 대상도, 표현할 수단도 없으며, 표현의 가능성이나 표현할 힘도,표현하고자 하는 욕망도 없습니다.단지 표현해야 할 의무만이 존재합니다.”무언가를 표현해야 하는 예술가의 존재 이유에도 불구하고 그가 직면하는 세계란 당혹하리만큼 불확실하다. 절대적인 대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시대,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예술적 재현의 가능성에 대한 깊은 불신, 실재의 은유 혹은 그 근사치에 불과한 언어에 대한 회의, 이러한 상황 속에서 현대 예술가들은 무엇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가라는 가장 기본적인 명제에서부터 더 이상 한 발자국도 진전하지 못하는 것이다. 베케트에게 있어서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이러한 근본적인 회의와 좌절에서부터 거슬러 올라옴을 의미한다. 예술가는 절대적인 인식과 예술적 재현의 ‘불가능성’에서부터 - 그 불가능성에도 불구하고 - 자신이 ‘선택’한 예술 행위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구해 온 주제를 구체적으로 형상화시킬 수 있는 하나의 계기를 제공하였다. 더욱이 그는 침묵과 휴지, 지문 등과 같은 비언어적인 요소들을 대거 도입함으로써, 언어가 지닌 한계성을 상대적으로 극대화시켰음은 물론 더 나아가 언어의 한계성 그 자체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표현 양식을 창출함으로써 현대극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2. 철학적 탐구베케트의 저술은 그의 방대한 학식을 드러내 보여준다. 이러한 저술에는 많은 철학적 저술가와 신학 저술가뿐만 아니라 수많은 문학자료들에 대한 미묘한 암시들로 가득 차 있다. 그의 사상에 지배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와 프랑스의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 데카르트의 제자로서 인간의 육체적 측면과 정신적 측면이 어떻게 서로 작용하는가를 연구한 17세기 네덜란드의 철학자 아르놀트 횔링크스와, 그가 존경하는 아일랜드인 친구 조이스이다.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베케트의 작품이 쓰레기통을 뒤지며 사는 뜨내기나 절름발이 등 인간 존재의 추한 면을 집중적으로 다룬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근본적인 오해이다. 베케트는 한계상황에 처한 인간을 다루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삶의 더럽고 병적인 측면에 관심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라 인간 경험의 본질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그는 세계의 문학에서 그토록 많이 다루어지는 주제들, 즉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 그들의 태도와 재산, 신분과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한 투쟁, 성적 대상들을 정복하는 것 등의 존재의 단순한 겉치레를 인간 조건의 기본적인 문제들과 근본적인 고뇌를 가려버리는 우연적이고 피상적인 측면들로 보았다. 그의 관점에서 근본적인 문제들은 스스로 요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내던져진, 즉 존재하게 된 사실을 어떻게 용납할 수 있으며 우리는 누구이고 우리 자신의 참된 본성은 무엇인지, 그리고 한 인간이 '나'라고 말할 때 그것은 무슨 의미인가 하는 것들이다.피상적인 눈으로 볼 때 베케트가 비참한 면에 그냥 집중하는 것으로만 보이지만 이 집중은 사실 인간 조건의로 나는 존재한다"를 모든 것의 출발로 삼았듯이 존재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베케트는 바로 존재 자체인 의식의 흐름의 본질을 잡으려고 노력했다. 따라서 그가 발견한 것은 계속해서 멀어지는 관찰자들 혹은 이야기꾼들이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인데, 이들은 한번 관찰하자마자 즉시로 새로운 관찰자의 관찰대상이 된다.3. 유머와 기술베케트는 궁극적인 신비와 인간 존재의 절망을 과감하게 다루었지만, 1차적으로 희극적인 작가이다. 프랑스어로 씌어진 한 소극(笑劇)에서 등장인물이 하찮은 성적 희열을 미친듯이 추구하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웃음이 날 것이다. 게다가 인간 노력의 대부분이 사소하며 궁극적으로 무의미하다는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견해는, 관객으로 하여금 무의미하며 헛된 대상에 관심을 두지 않게 함으로써 사람을 해방시키는 효과를 가진다. 등장인물들이 헛된 야망과 부질없는 소망들에 마음이 팔려서 거드름 피우고 스스로 잘난 체하는 모양을 보면 웃음이 나게 된다. 연극을 보거나 희곡을 읽으면 우울하고 침울해지기는커녕 오히려 카타르시스적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해방감은 연극 자체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연극의 목적인 것이다. 기교면에서 그는 숙련된 장인이다. 그의 구성 감각은 흠잡을 데가 없다. 예를 들어『몰로이』,『고도를 기다리며』는 서로 '거울 상'(mirror image) 역할을 하는 대칭 구성이다.후기 저작들은 극단적인 농축과 간결로 나아가는 경향을 보여준다. 그가 '소드라마(dramaticule)‘라고 이름붙인 단막극『왕래 (Come and Go)』는 3명의 등장인물이 단지 121마디 말밖에 하지 않는다. 산문 단편『더 적은 것 (Lessness)』은 60문장밖에 없는데, 각 문장이 2번씩 나온다.『무언극 (Acts Without Words)』은 정확히 제목의 의미 그대로 한마디의 대사도 없고, 마지막 작품들 가운데 하나인『자장가 (Rockaby)』는 상연 시간이 15분밖에 되지 않는다. 이러한 간결성은 사소한 일들에 단어를 낭비하지 않고 작극’으로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5. Beckett 와 라디오 극베케트의 라디오 극은 그의 주제를 양상을 달리 해 표현한 또 하나의 돌파구이다. 그의 작품 세계가 ‘표현의 불가능성(nothing to express)'과 '표현의 의무(the obligation to express)'사이의 치열한 갈등, 즉 언어와 예술적 재현에 대한 깊은 회의와 불신을 인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전히 무언가를 표현할 수밖에 없는 강박적인 모순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러한 까닭에 자신이 의도하는 바를 보다 효율적이고 만족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매체’를 찾는 일은 베케트가 일생동안 끊임없이 추구해온 작업이라고 하겠다. 시와 소설이라는 평면적인 글쓰기에서 출발한 그가 공간과 움직임, 이미지와 침묵이 존재하는 연극과 텔레비전 극, 또는 영화 등의 입체적인 매체를 시도한 것이나, 오로지 소리와 침묵만으로 구성된 라디오 극을 시도한 것 등은 이러한 사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베케트가 영국 BBC 방송으로부터 라디오 극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은 1956년 6월 경이었다. 이즈음 그는 소설 쓰기의 한계에 부딪힌 듯 극작품 집필에 보다 열심이었는데, 그가 라디오극 집필을 기꺼이 받아들였음은 아마도 그 때까지 전혀 시도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형태의 표현 방식이라는 데 적지 않은 매력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다양한 장르로의 접근을 통해 베케트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결국 동일한 주제임에 틀림없다. 인간의 삶에 내재된 근원적인 불확실성과 덧없음, 언어의 한계성,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살아가야만 한다는 불합리함 등. 일반적인 작가들에 비해 라디오 극이나 텔레비전 극 등 많은 장르를 시도한 베케트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새로운 ‘매체’내지 작품의 ‘틀’인 표현양식이었다. 그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항상 새로운 틀을 통해 새롭게 형상화하고자 하는 실험정신 속에 살았던 것이다.첫 작품인 『쓰러지는 모든 것』은 다른 초기 극들처럼 여러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