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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런던 스모그사건 간단요약
    런던스모그사건(londosmog accident)연극영화과1. 런던 스모그 사건이란?1952년 12월 5일 영국 런던에서 대기오염으로 일어난 환경재난2. 왜? 석탄연소에따른 아황산가스 배출로 스모그 발생->당시 영국은 가정이나 산업체에서 자국에서 많이 생산되는 석탄을 주원료로 사용12월 4일 12:00 기온 3도, 습도 82%, 미풍12월 5일 12:00 기온 1도, 습도 80%, 사실상 무풍에 가까워짐12월 6일 12:00 기온 -2도, 습도 100%, 바람? 그게 뭐야?(...12월 7~8일 온도는 또 떨어지고 바람은 여전히 안 불어옴.12월 9일 12:00 온도 3도, 습도 96%, 바람 드디어 서서히 불어오기 시작함.12월 10일 강풍이 불다.3. 피해는? 만성폐질환과 호흡장애로 총 1만 2000여명 사망아황산가스란?-화학식 SO2-황이 연소할때 발생하는 기체로 황과 산소의 화합물이다.-석탄,석유에 포함되어있다.* 아황산가스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 6~12ppm: 눈,코,목구멍의 따가움을 느낌- 10~ 15ppm: 콧물, 호흡곤란, 기침, 숨막힘- 50~ 100ppm: 30~60분 정도는 견딜수있음- 400ppm : 목구멍, 폐가 부풀며, 호흡정지, 사망식물에 미치는 영향4. 당국의 조치는? 1953년 비버 위원회를 설립하여 대기 오염의 실태와 대책을 조사하고 연구하기 시작했다.5. 제어방안 : 황성분이 많이 들어있는 화석연료를 에너지원으로 이용할때는 아황산가스가 많이 발생한다. 따라서 황성분이 전혀없거나 적게 들어간 연료를 사용해야만 한다. 즐 청정원료 (LNG,LPG등)의 사용을 확대하고 태양에너지등 대체에너지개발에 힘써야 한다.
    자연과학| 2013.07.25| 3페이지| 1,000원| 조회(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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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셰익스피어 햄릿 분석
    희곡 분석법셰익스피어 10008067 최지혜윌리엄 셰익스피어출생 : 1564년 4월 26일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사망 : 1616년 4월 23일 (51세)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직업 : 극작가, 시인, 배우국적 : 영국문학 경향 영국 르네상스 연극배우자 : 앤 해서웨이(1582-1616)영국이 낳은 세계 최고 극작가로 불리고 있는 셰익스피어는 잉글랜드 중부의 영국의 전형적인 소읍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에서 출생하였다. 셰익스피어는 아름다운 숲과 계곡으로 둘러싸인 인구 2000명 정도의 작은 마을이었던 스트랫퍼드에서 존 부부의 첫아들로,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고, 이곳에서 학교를 다녔다.아버지 존 셰익스피어는 비교적 부유한 상인으로 피혁가공업과 중농(中農)을 겸하고 있었으며, 읍장까지 지낸 유지로 당시의 사회적 신분으로서는 중산계급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셰익스피어는 풍족한 소년시절을 보낸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1577년경부터 가운이 기울어져 학업을 중단했고 집안 일을 도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학업을 중단하고 런던으로 나온 시기는 확실치가 않고 다만 1580년대 후반일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셰익스피어는 주로 성서과 고전을 통해 읽기와 쓰기를 배웠고, 라틴어 격언도 암송하곤 했다. 셰익스피어는 11세에 입학한 문법학교에서 문법, 논리학, 수사학, 문학 등을 배웠는데, 특히 성서와 더불어 오비디우스의 《변신》은 셰익스피어에게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 셰익스피어는 그리스어를 배우기도 하였지만 그리 뛰어나지 않는 편이었다. 그리하여 셰익스피어와 동시대 극작가인 벤 존슨은 “라틴어에도 그만이고 그리스어는 더욱 말할 것이 없다."라고 하면서 셰익스피어를 비꼬아내기도 하였다. 이 당시에 대학에서 교육받은 학식 있는 작가들을 ‘대학재사’라고 불렀는데, 셰익스피어는 이들과는 달리 대학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타고난 언어 구사 능력과 무대 예술에 대한 천부적인 감각, 다양한 경험, 인간에 대한 심오한 이해력은 그를 위대한 작가로 만드는 데 부족함이 가가 되었다.1599년 궁내부장관 극단은 템스 강 남쪽에 글로브 극장을 신축하고 1603년 엘리자베스 1세가 사망한 후 제임스 1세가 즉위하자 극단은 국왕 극단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셰익스피어는 이 극단에서 조연급 배우로서도 활동했으나 극작에 더 주력하였다. 그리고 이 기간을 전후해서 시인으로서의 재능도 과시하여 《비너스와 아도니스》(1593)와 《루크리스》(1594) 등 두 편의 장시(長詩)를 발표하기도 하였다.극작가로서의 셰익스피어의 활동기는 1590년 ∼ 1613년까지의 대략 24년간으로 볼 수 있는데, 이 기간에 희·비극을 포함한 모두 38편의 작품을 발표하였다.1590년대 초반에 셰익스피어가 집필한 《타이터스 안드로니커스》, 《헨리 6세》, 《리처드 3세》 등이 런던의 무대에서 상연되었는데, 특히 《헨리 6세》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다.셰익스피어에 대한 악의에 찬 비난도 없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대학 교육도 받지 못한 작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의 인기는 더해 갔다.1623년 벤 존슨은 그리스와 로마의 극작가와 견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셰익스피어뿐이라고 호평하며, 그는 “어느 한 시대의 사람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1668년 존 드라이든(John Dryden)은 셰익스피어를 “가장 크고 포괄적인 영혼”이라고 극찬한다. 셰익스피어는 1590년에서 1613년에 이르기까지 10편의 비극(로마극 포함), 17편의 희극, 10편의 역사극, 몇 편의 장시와 시집 《소네트》를 집필하였고, 대부분의 작품이 살아생전 인기를 누렸다.말년과 죽음셰익스피어에 대한 첫 번째 전기를 출간한 작가 로우는 셰익스피어가 죽기 몇 년전에 고향인 스트랫퍼드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러나 당시에 모든 작품 활동을 그만두고 은퇴하는 일은 보기 드문 경우이었고, 말년에도 셰익스피어는 런던을 계속 방문하였다. 1612년 그는 마운트조이의 딸 메리의 혼인 신고와 관련하여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할 것을 요구받았다. 1613년 3월 그는 과거에 런던 블랙프라이어스 년 극단 동료의 손으로 편찬되어 세상에 나왔다. 그에 대한 평가는 생전에 이미 최대의 찬사를 받았고, 죽은 후에도 계속 숭앙의 대상이 되어 거의 신격화되었다. 비평가 칼라일이 "영국 식민지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위대한 인류의 유산이었다. 그는 '온화한 셰익스피어'라고 불리었지만, 인간 심리의 통찰에는 비할 수 없는 넓은 안목을 가졌고, 완성 과정에 있던 근대 영어의 잠재능력을 극도로 발휘하여 시극미의 최고를 창조하였다.희곡셰익스피어는 르네상스 영국 연극의 대표적 극작가로서 사극, 희극, 비극, 희비극 등 연극의 모든 장르를 섭렵하는 창작의 범위와 당대 사회의 각계각층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관객층에의 호소력으로 크리스토퍼 말로, 벤 슨, 존 웹스터 등 동시대의 탁월한 극작가 모두를 뛰어넘는 성취를 이루었다.인물특히 유럽 본토에 비해 다소 늦게 시작된 영국 문예부흥과 종교개혁의 교차적 흐름 속에서 그가 그려낸 비극적 인물들은 인간 해방이라는 르네상스 인문주의 사상의 가장 심오한 극적 구현으로 간주된다. 1580년대 말로의 주인공들이 중세적 가치에 거침없이 도전하는 상승적 에너지의 영웅적 면모를 구현하고 있고, 1610년대 웹스터의 주인공들이 인문주의적 가치의 이면에 놓인 어두운 본능의 세계에 함몰되는 추락의 인간상을 대변한다면, 1590∼1600년대에 등장한 셰익스피어의 주인공들은 중세적 속박과 르네상스적 해방이 가장 치열하게 맞부딪히는 과도기의 산물로서 그러한 상승과 추락의 변증법을 극명하게 체현하고 있다.셰익스피어 극은 인간관계에서 생겨나는 문제를 가장 밑바닥에 깔고 있다. 셰익스피어에게 인간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이 없었다면 그의 극이 이처럼 재미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더욱이 셰익스피어의 인물들은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는 존재들이다. 무엇보다 셰익스피어가 초시대성을 획득하는 극소수의 작가 반열에 드는 것은 특정한 시대정신의 명징한 관념적 표상이 아니라 무한한 모순의 복합체로서의 인간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조화롭게 통합된 존재가 아니라 분열 페스트의 대유행으로 인한 극장 폐쇄기(1592-94)와 겹쳐 (1593), (1594) 등 일련의 서사시를 발표, 극작가로서 대성하기 전에 시인으로서의 명성을 확립시킨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제1기말에서 제2기에 걸쳐서는 그린, 말로, 키드, 피일 등 선배의 죽음이 계속되고 릴리도 사실상 극작의 붓을 놓기 시작한 시기였으므로 라이벌이 없어진 셰익스피어는 행운의 극작가로서 자기 길을 걷게 된 셈이며, 초기 낭만비극의 걸작 은 바로 이 무렵에 탄생, 서정과 낭만성이 신인만이 갖는 청신함과 함께 곁들여져 있는 작품으로 천재 극작가로서의 편린이 엿보이기 시작했다.제2기 : 성장기2기는 성장기(1595∼1600)로 전기(前期)의 희극세계가 더욱 확대되었다. 1595년 《한여름 밤의 꿈》이라는 낭만 희극을 상연하여 호평을 받으면서 습작기를 벗어나게 된다.[4] 이 기간 동안 《한여름 밤의 꿈》, 《뜻대로 하세요》, 《12야》 등과 《베니스의 상인》 등 로 목가적 분위기나 희비극적 요소가 가민된 낭만희극의 걸작이 속출하는 한편, 《헨리 4세》 1부와 2부 같은 역사극과 《줄리어스 시저》라는 로마극이 상연되었으며, 본격적인 비극으로는 첫 작품인 《로미오와 줄리엣》이 상연되었다. 이를 통해 비극과 희극과 사극이라는 모든 장르에 탁월한 극작가로서 명성을 쌓게 된다. 의 싹이 엿보이는 나 폴스타프의 개성창조, 극작술의 진보와 함께 셰익스피어의 재능이 훌륭하게 개화하여 인기 독점의 시대에 이른다. 인간적 관찰의 눈이 뚜렷해지고 기법이 숙련되어 당시의 극단에서 뛰어난 존재가 되었다. 이 시기의 그의 희극은 낭만적 희극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화려한 낭만이 온화한 해학에 감싸여 아름다운 언어로써 독특한 세계를 형성한다.제3기 : 원숙기제3기는 원숙기(1601∼1607)다. 희극의 계통으로서는 (폴스타프에 마음이 흡족해진 여왕의 요청으로 를 테마로 한 것)을 제외하고는 전기(前期)까지의 발랄한 명랑함이 자취를 감추고 '다크 코미디(어두운 희극)'라고 불리는 문제 희극 3편, 즉 ('비폭풍 뒤의 고요와도 흡사한 안정된 기분으로 통일되고, 인생의 희비·명암의 전부를 보아온 작자의 달관된 심경마저 엿볼 수 있다. 원래 비극이어야 할 이야기가 그의 체념과 화해의 심정으로 말미암아 행복한 결과로 맺어졌으므로, 보통 로맨스라 불린다.이 시기에 상연된 《폭풍우》는 셰익스피어의 달관된 인생관을 잘 보여주는 수작이다.[4] 이 작품에서 주인공 프로스페로는 이제 연희는 끝났고, 지구의 삼라만상은 마침내 용해되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인간은 “꿈과 같은 물건이어서, 이 보잘것없는 인생은 잠으로 끝나는 것”(4막 1장)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무대에 대한 셰익스피어 자신의 고별사로 받아들여진다.셰익스피어의 세계는 엘리자베스 왕조 연극의 다면성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의 위대함은, 고전작가를 비롯하여 선배와 후배들의 여러 가지 요소를 흡수하면서, 뛰어난 재능과 정교한 극작술로써 모든 장르를 완성하고 동시에 자신의 독자적 세계를 창조했다는 점에 있다. 특히 르네상스적 인간상의 한 전형인 폴스타프의 활약으로 성공한 , 에서의 사극과 희극의 융합, 나 에서의 사극과 비극의 융합은 각각 그린과 말로에게서 그 싹을 볼 수 있다고는 하나 다른 누구에게서도 달성될 수 없었던 영역이었다. 엘리자베스 왕조 연극의 위대한 완성자로서 영국 연극 뿐 아니라 세계 연극의 발전에 공헌한 공적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것이라 하겠다.시1593년과 1594년에 페스트의 유행으로 극장들이 문을 닫게 되자[31] 셰익스피어는 사랑을 주제로 삼은 두 권의 서사시를 출간했다. 《비너스와 아도니스》, 《루크레티아의 능욕》이 그것이다. 《비너스와 아도니스》에서 순수한 아도니스는 비너스의 성적인 접근을 거절한다. 반면에 《루크레티아의 능욕》에서는 덕있는 아내인 루크레티아가 호색한인 섹스투스 타르퀴니우스에 의해 강간을 당한다.[32] 이 시들은 통제되지 않는 정욕 때문에 죄와 도덕적 혼란이 발생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두 시 모두 인기를 얻었고 셰익스피어 생전에 재출간되곤 하였다.셰익스피어겠다.
    인문/어학| 2013.07.25| 9페이지| 1,000원| 조회(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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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비 내리는 영동교를 홀로걷는 이마음 작품분석
    작품분석연기는 사실적으로 무대나 음악은 비사실적으로 아이러니하게 표현연극 는 등장인물의 관계부터 모든 공간에 이르기까지 억압(질문)하는 자와 억압(질문)받는 자의 구도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들의 얽히고 섞인 관계는 전화라는 매개를 이용하여 설명한다.모든 인물의 구조는 ‘형사-연두식/ 질문남, 필연남-주현미/ 고참-졸병/ 사무원-소외남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지금 처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전화라는 매개를 이용하게 된다. 전화는 아예 잘못 걸린 경우와 의도적으로 잘못 건 경우, 마지막으로 맞게 걸고 맞게 받았으나 서로의 상황 때문에 전혀 존재를 증명해 줄 수 없는 경우 세 가지에서 사용된다. 결국 전화는 모든 경우에 있어서 본인이 거짓을 이야기하면 오히려 존재를 확인 받게 되고, 본인이 진실을 이야기하면 존재를 의심받는 등 현대 사회에 만연한 의사소통 능력 상실을 보여주는 기제로 활용된다.1.작가분석최지언희곡 작가이면서 시와 소설로도 등단한 경험이 있는 어느 장르나 소화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가. 에 이어 이번 작품에도 ‘연두식’이 등장하는 재치 가득한 작가이다.수상경력-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2001년 세계일보 ‘소설’ 당선- 2003년 우진문화재단 장막희곡 창작상 수상 2004년 공연2005년 극단 작은 신화 우리연극 만들기 공연, 시집 출간2006년 공연, 신작희곡 페스티발 , 극단 작은 신화 공연 최치언그가 미용실에서 나왔을 때 그가 미용사인지 머리 깎은 손님인지나는 아직 모른다. 그가 건너편 슈퍼마켓으로 걸어 들어갔을 때미용사가 물건을 사기 위해 슈퍼에 들어간 것인지머리 깎은 손님이 담배를 사기 위해 슈퍼에 들어간 것인지아님, 슈퍼주인이 머리를 깎고 자기 가게로 들어간 것인지나는 이 복잡해지는 그를 아직 모른다.그가 슈퍼에서 빈손으로 나와횡단보도를 황급히 건너 내가 바라보는 옥상 아래 건물을 지나식당으로 들어갔을 때그가 처음 슈퍼를 식당으로 착각한 머리 깎은 손님이었는지미용사가 슈퍼주인에게 빈 미건너 슈퍼로 갈 것인지 그렇다면그는 슈퍼주인이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온 것인지미용사가 식당주인을 찾아간 것인지식당주인인 그가 머리를 깎은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미용실에 갈 것을 생각하는지나는 이젠 생각하기에도 지쳤는데그가 내가 있는 안경원으로 올라오고 있다.이내 문이 열리고 그가 내 앞에 섰다.나는 그가 나인 것처럼 그를 외면하는데창문에 비친 거리의 방식으로 그가 말했다. "한 권씩 사면 전집의 두 배 가격으로 사야합니다."거리가 모두 외판원으로 보이기 시작했다.작가의변밤비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건 소통의 문제였습니다.현 정부 들어와서도 소통의 문제가 큰 이슈로 떠올랐고, 최고 권력자가 겸허한 자세로 국민과 소통하겠다고 사죄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은 말에 그쳤고 또 다시 권력과 국민은 소통부재로 인한 심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예나 지금이나 소통의 권력을 쥔 권력자들은 민중들에게 일방적인 소통만을 강요합니다. (여기서 소통의 권력을 쥔 권력자란 언론매체나 조직을 장악한 권력자를 말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뜻대로 밀어붙이고 그에 반하거나, 다른 목소리가 터져 나오면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그 목소리를 짓밟고 막아 버립니다. 이번 쇠고기 촛불집회가 그러했습니다. 현 정부는 경찰의 폭력성을 최대한 동원해서 민중들의 여러 목소리들을 짓밟아 버렸습니다.더 무서운 일은 그 짓밟힌 목소리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끝내 권력자들이 조작한 불온한 정체성으로 신문이나 티브이 매체 속을 떠돈다는 겁니다.다시 말하면 소통의 문제는 정체성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습니다.이 극 속에서 시인 연두식은 동명의 반정부운동단체의 얼굴 없는 연두식 때문에 정보기관에 끌려가 취조를 받습니다.시인 연두식이 아무리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려고 해도 자신들만의 목적을 위해 진실 된 소통을 거부한 정보기관은 끝내 연두식을, 그들이 원하는 반정부운동단체의 얼굴 없는 연두식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렇다고 해서 연두식이 정보기관이 원하는 연두식이 되는 건 아닐 겁니다. 그러나 세상은 연두식을 정보기관이 발인 극입니다.2.시대분석1987년 6월 30일 이후 (전두환 독재정권)*사건*박종철 고문 치사사건1987년 1월 14일 서울대생 박종철(朴鍾哲)이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중 고문·폭행으로 사망한 사건. 언제 1987년어디서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누가: 박종철어떻게: 조사중 사망왜: 고문, 폭행경찰은 처음에는 단순 쇼크사로 발표하였으나, 물고문과 전기고문의 심증을 굳히게 하는 부검의(剖檢醫)의 증언으로 사건발생 5일 만인 19일 물고문 사실을 공식 시인하고, 수사경관 조한경과 강진규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였다. 사건진상의 일부가 공개되자 신민당은 정부여당에 대하여 대대적인 공세를 개시하였으며, 재야단체들은 규탄성명을 발표하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가는 한편, 각계인사 9천 명으로 구성된 ‘박종철군 국민추도회’ 등을 주도하였다.이로 인하여 정국은 고문정권규탄 및 민주화투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들었다. 이에 정부는 내무부장관 김종호와 치안본부장 강민창의 전격 해임과 고문근절대책 수립 등으로 사태를 수습하려 하였다.그러나 5월 18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성명을 통하여 치안감 박처원과 경정 유정방·박원택 등 대공간부 3명이 이 사건을 축소조작하였고, 고문가담 경관이 5명이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이 폭로로 서울지검은 6명을 추가 구속하였고, 정부는 주요 인사에 대한 문책인사를 단행하여 사태를 수습하려 하였으나 경찰과 검찰의 사건은폐조작 시도는 정부의 도덕성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었다.그리고 이 사건과 관련된 일련의 추모집회와 규탄대회는 개헌논의와 연결되면서 6월항쟁으로 이어져 87년 민주화운동의 촉발제가 되었다.-경찰이 "탁!" 하고 치니까 "억!" 하고 죽었다고 조작했던 그 유명한 사건.서울대 재학 중에 데모를 하다가 붙잡힌 박종철 군은 물고문으로 죽었습니다.다음은 박종철 군 고문 치사사건에 대한 신문 기사들을 발췌한 것입니다.1987년 경찰에 의해 불법 연행된 박종철이 수사과정에서 고문으로 죽은 사건.4·19혁명러나기까지의 1단계와 재차 행해진 축소·조작의 전모와 그 관련자들이 밝혀지기까지의 2단계로 나눌 수 있다.1987년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3학년에 다니던 박종철은 서울대학교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 관련 주요수배자인 박종운의 소재를 알기 위한 참고인이라는 이유로 1987년 1월 14일 하숙집에서 치안본부 대공수사관들에 의해 영장 없이 불법으로 강제 연행되었다. 1월 15일 경찰은 조사받던 박종철이 자기압박에 의해 충격사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박종철의 부검의였던 중앙대학교부속 용산병원 내과전문의 오연상의 '고문치사일 가능성이 높다'는 증언이 알려지자, 1월 19일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박종철의 사망원인이 '물고문'에 의한 질식사이며 고문에 가담한 사람은 조한경 경위와 강진규 경사 2명이라고 다시 발표했다. 그러나 경찰의 정정발표에도 불구하고 고문 가담자인 두 수사관을 참여시키지 않은 채 사건현장이 치안본부 대공분실이라는 이유로 비공개 현장검증을 실시함으로써 연행시간과 결정적인 사망 경위, 고문 가담자의 수 등에 대한 의혹들이 그대로 남겨진 채 이 사건의 1단계가 마무리되었다. 박종철고문치사사건의 2단계 은폐·조작 경위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끈질긴 추적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 8과장 황적준의 일기 증언에 의해 드러났다.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일 가능성이 높다'는 자신의 부검소견서가 당시 강민창 치안본부장의 요청으로 '외상 없음'으로 조작되었다는 황적준의 증언은 온 국민의 충격을 자아냈으며, 언론은 최초의 고문 가담자 2명에 대한 경찰간부들의 회유과정을 끈질기게 추적했다. 결국 여론의 압력에 밀려 고문치사의 은폐·조작에 관련했던 강민창 치안본부장이 사임하고, 강민창 치안본부장을 비롯한 박처원 치안감, 유정방 경정 등 다수의 경찰간부가 구속됨으로써 이 사건은 마무리되었다."아부지예...그동안 저 재수하는 동안 뒷바라지 하시느라 수고하셨슴니더..지 서울대 가서 정말 열심히 한 번 해볼랍니더...."빛나리 아저씨의 장기집권에 반발하여 도처에서 일어난 민중의 그간의반발심을 못내 속으로만 간직해오던 민중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고, 결국6.29라는 선언 나름대로의 가시적 성과를 이끌어 냈다.가시적이라는 말, .... 생각나는대로 그리고 손가락이 가는대로 우선자판 을 눌러 보기는 했지만 과연 무엇이 가시적인가에 대해.... 다시말해 무엇 이 6월 항쟁이 가져온 눈에 보이는 성과였는지는 지금도 잘모르겠다. 성과라 함은 민주주의를 피워 볼 수 있는 기회의제공이었지만...그리고 그것은 박종철.. 이한열 열사들을 비롯한 수많은고귀한 영혼들과 바꾼 것이었지만 우매한 당시 우리네 민중은금권타락과 지역주의로 얼룩진 직선제 앞에서 그리고 이에 못지 않게우매하면서도 탐옥스럼움까지 갖춘 쓰리김이으로 대표되던 당시지도자들은 그들의 알량한 욕심을 위해 "분열"을 택했다. 결과적으로남은 것은 6월을 "민주주의의 도화선!, "우리 역사를 바꾸어 나갈 수 있는강력한 엔진의 시동"이라는 짜증을 불러일으키 기 충분한, 레토릭들을부여한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그리 고 하나 더유신본당과 신군부의 변태에 불과한 민주주의 군사정권의 연장과함께..말이다.지난 주인가 tv예고편만을 보고, 봐야지 봐야지만 생각하다가 그만 놓쳐버린 mbc에서 만든 특집물 "순수청년 박종철"을 이제서야 주말을 이용해vod로 보게 됐다. 박종철을 고문한 5명은 각각중형을 선고 받았고약 오년 전 후로 해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그사람들이 지금 어느 곳에서 뭘해먹고 살든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의피해자는 박종철을 위시한 몇몇 운동학생만이 아니라는 것과 덧붙여 이사건의 가해자도 당시 소속경찰 몇명 그리고 책임을 지고 물러난 경찰대가리 몇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시 시대를 살아가야만 했던 민중과열사들 그리고 어쩌면 악랄한 고문을 가한 그 새끼들조차도 모두피해자일지 모른다. 피해자만 남고 가해자는 사라진 상황이라고 나할까..그리고서는 발견한 재밌는 기사 하나! 87년 당시 `서울대생박종철(朴鍾哲)군 고문치사사건' 당시 수배학생이었던 서울대생박종운(朴鍾雲)씨를 비롯해 정태근(鄭泰根
    인문/어학| 2013.07.25| 7페이지| 1,000원| 조회(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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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이기동 체육관을 보고
    이기동 체육관을 보고나는 내가 원하는 것(추후엔 일)을 하며 살고 있나? 만약 그렇다고 하면. 나는 과연 열정적으로 그 일을 하고 있나? 이기동 체육관을 보고 처음 나에게 던진 질문이였다. 사람이 살면서 자신이 원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열정으로 꽉 찬 젊은날의 나를 잊고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연극 이기동 체육관은 그 옛날 누군가 한번쯤 경험했던 내가 정말 미치도록 무엇인가 하고 싶어, 되고 싶어, 이루고 싶어 열정적이던 그때를 상기시켜주며 지금 현재의 늘어져있고 잠들어있던 나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하고 일깨워주는 공연이였다.지금 나의 위치는 연극영화학부 연기전공 10학번이다. 대부분의 예체능계열의 학생들이 그러하듯 원하는 전공이 아닌 성적에 따라 대학가기 급급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자신이 청소년기 하고 싶다는 의지가 있어 오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나조차도 그랬다. 부모님께서 수학학원가라고 준 학원비를 몰래가져다가 연기학원을 등록해버렸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입시전쟁! 그리고 연극영화과 입학! 그리고 3년이 흐른 지금. 나에게서 사라져 버린 건 그때 그 순수했던 열정이다. 극중 관장 이기동은 18승 1무 1패의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전직 복서이다. 마지막 경기에서 한방을 날리지 못해 결국 챔피언 타이틀을 얻지 못해 사람들에게 기억되지 못하는 비운의 복서이기도 하다. 관장 이기동은 삶에 무기력하고 활력이 없어 보인다 신경 쓰지 않은 후줄근한 츄리닝에 머리는 부스스하고 평소 웃지도 않고 말수도 적고 체육관 쇼파에 누워서 잠을 잔다. 관장 이기동에겐 아들하나와 딸 하나가 있다. 아들이 좋아 했던 건 피아노 치는 일이다. 그러나 관장 이기동은 아들에게 억지로 복싱을 하게 한다 그러다 아들은 결국 링 위에서 시합 중 사망하게 된다. 복싱은 그에겐 삶이자 아들을 잃게 한 것이다. 딸은 복서가 되고 싶어 하지만 아들을 잃은 충격으로 관장 이기동은 딸 연희에게 복싱을 하지 못하게 한다. 관장 이기동은 과연 행복할까? 자신이 좋아하던 복싱을 하며 살아왔는데 왜 행복하지 않을까? 그건 자신이 좋아하는 복싱을 억지로 밀어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딸 연희에게 못하게 복싱을 하지 못 하게 하는 것도 결국은 자신의 꿈을 밀어내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아들을 잃은 일로인해 자신의 꿈을 외면해서가 아닐까. 꿈과 열정이 사라져 버려서이다. 복합적인 이유로 말이다. 그렇게 관장 이기동은 아들에게 했던 것처럼 딸 연희에게 하고 싶은 일을 방해하는 방해자가 되어버렸다. 같은 일이 계속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이기동관장의 열혈 팬. 이기동관장과 동명이인인 만년 시간강사 이기동이 체육관을 찾아오게 된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이기동관장을 복싱을 배우고 싶다고 말이다. 그리고 아무도 꺼내지 않는 그 옛날 이기동 관장의 옛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 극의 마지막쯤 이기동관장의 마음을 돌리게 된다. 여기서 찾아온 이기동이 관장 이기동에게 했던건 많은 것이 아니 다. 그저 예전에 그 이기동을 기억해줬던 것 그뿐이다. 살면서 제일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건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그 사람들 에게 잊혀져 간다는 것이다. 관장 이기동이 그토록 무력했던 이유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관정 이기동에게 자신을 기억해주고 인정해주는 이기동이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다시 그때의 그 열정을 되찾게 된 것이다. 그렇게 딸 연희의 꿈인 복서도 인정을 해주기 시작하고 엉켜있던 실타래가 풀리듯 관장 이기동이, 이기동의 딸 연희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며 행복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예체능| 2013.07.25| 3페이지| 1,000원| 조회(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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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23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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