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재판소 꼭 필요한가 ? Made in KoreaI NDEX Ⅰ. 헌법 재판소 고거 대체 뭡니까 ? Ⅱ. 헌법재판소가 뭐가 문제 라는 거죠 ? Ⅲ. 헌법재판소 이런 장점들도 있어요 Ⅳ. 헌법재판소 앞으로 이렇게 변화하는 것은 어떨까요 ?Ⅰ . 헌법 재판소 고거 대체 뭡니까 ?헌법 재판소 고거 대체 뭡니까 ? 헌법 재판소란 ? 한 국가 내에서 최고의 실정법 규범인 헌법에 관한 분쟁이나 의의 ( 疑義 ) 를 사법적 절차에 따라 해결하는 특별재판소 우리 나라의 헌법 재판소 헌재의 시작 1987 년 개정된 현행 헌법에서 헌법재판소제도가 도입되고 1988 년 헌법재판소가 최초로 구성 삼권분립에 의한 재판관 선임 점점 많아지는 사건 접수 1988 년 39 건의 사건 접수를 시작으로 2012 년에는 1205 건의 사건이 접수 ( 현재 ) 대통령 , 국회 , 대법관이 각각 3 명씩 재판관 선임 어때요 ? 참 쉽죠 ?헌법 재판소 고거 대체 뭡니까 ? 헌법 재판소의 역할 1 2 3 4 5 법원의 제청에 의한 법률의 위헌법률 심판 탄핵의 심판 정당의 해산 심판 국가기관 상호간 ,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간 및 지방자치단체 상호간의 권한쟁의에 관한 심판 법률이 정하는 헌법소원에 관한 심판을 담당헌법 재판소 고거 대체 뭡니까 ? 지금까지 헌법 재판소에 회부된 주요 사건들 대통령 탄핵 - 위헌 행정 수도 이전 - 위헌 호주제 폐지 - 합헌 간통죄 폐지 - 위헌 낙태 시술자 처벌 - 합헌 인터넷 실명제 - 위헌 현재 곽노현 교육감의 사후매수죄에 대한 소원이 헌법 재판소 에 제기Ⅱ. 헌법재판소 뭐가 문제라는거죠 ?헌법재판소 뭐가 문제라는거죠 ? 첫째 . 정치의 사법화 국가의 중요한 정책 결정이 정치과정이 아닌 사법 과정으로 해소되는 현상 정치의 사법화의 악영향 입법 활동을 제약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약화 시킬 수 있다 . 사법부가 입법권에 실질적인 제한을 가함으로써 의회의 권위 행사를 제한하거나 규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일상화는 정치란 무능하고 비생산적이며 , 온갖 범죄의 온상이라는 그릇된 인식을 대중들에게 심어줄 수 있다 사법부에 의한 판결과 정치적 결정은 민주주의에서 강조되고 있는 충분한 대화와 토론 및 공론장의 여과 없이 독자적인 집단인 사법부에 의해 승자와 패자를 결정한다 정치현상이 재판관에게 판단됨에 따라 재판관의 정치성향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헌법재판소 뭐가 문제라는거죠 ? 둘째 . 민주적 정당성의 문제 국 민 대통령 ( 행정 ), 국회의원 ( 입법 ) 헌법 재판소의 재판관 민주적 정당성 민주적 정당성헌법재판소 뭐가 문제라는거죠 ? 셋째 . 소극적 입법 헌법재판소는 위헌 법률 폐기에서 입법자의 권한에 개입할 수 있다 그와 동시의 초월적 입법권을 가질 수도 있다 헌법 재판소 법률 폐기 새로운 법 입법 ( 헌재가 의도한 대로 ) 기존 법 더욱 헌재 입맛에 맞는 법 헌법 소원 위헌 법률 판결 또 다른 헌법 소원Ⅲ.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필요 해요하지만 헌법재판소는 필요 해요 첫째 . 정치의 사법화 우려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를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하는 정당 때문 재판관은 심판을 거부할 수 없다 삼권분립이 보장된 사회에서만 가능한 현상이다 정치의 헌법화를 이룩하는 것이다하지만 헌법재판소는 필요 해요 둘째 . 민주적 정당성 대한 우려에 대하여 첫째 둘째 셋째 국민에게 권력을 위임 받은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간접적 정당성 부여를 무시하는 처사 헌법 재판소는 헌법 기관이다 헌법재판소의 특성상 전문성이 극도로 요구된다하지만 헌법재판소는 필요 해요 셋째 . 소극적 입법 대한 우려에 대하여 헌법 법률 명령 조례 규칙 상위법 우선의 원칙 에 따라 헌법은 모든 법의 상위에 위치한다 . 헌법 재판소는 소극적 입법을 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적인 입장 에서 법을 판단할 뿐이다산업 연수생에 관한 노동부의 부당한 예규 ( 위헌 ) 흑백 분리 정책 (Brown 사건 ) ( 위헌 )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필요 해요 넷째 . 정치권에서 관심을 갖지 않는 소수에 대한 권익 보호 기능 한국의 사례 외국의 사례 호주제 폐지 동성동본 금혼 문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정부의 침묵 ( 위헌 ) 시각장애인 안마사 사건 고엽제 환자 사건 사회적 약자의 헌법적이고 정당한 권리 를 실현해줄 수 있는 방안 정치권에 입법적으로 그들의 권익을 보호 하도록 촉구할 수 있다 정치에 대한 헌법적이고 기본적인 보완적 역할 을 할 수 있다Ⅳ. 헌법재판소 앞으로 이렇게 변화하는 것은 어떨까요 ?헌법 재판소 앞으로 이렇게 변화하는 것은 어떨까요 ? 1 2 3 4 정당기능의 정상화를 통해 의회의 입법권 강화 헌재의 역할을 입법자의 지위를 대체하는 초월적 입법자의 지위가 아니라 민주헌정질서의 규범 유지 에 한정하는 법 개정 후보의 자격을 강화하여 직선제로의 재판관 선출이나 재판관 전원을 국회의 가중다수결로 선출을 통해 헌재의 민주적 정당성 을 강화 입법과 행정의 영역에서의 정기적인 감사 헌법재판소가 부족한 민주적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심판 절차를 엄격히 준수 하고 , 자기결정이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범위와 한계 안에서 머물고 있음을 철저히 논증하여야 한다 .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정치권에서 관심을 갖지 않는 소수에 대한 권익 보호 와 기본적인 국가의 틀인 헌법 을 보장해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므로 꼭 필요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헌법 재판소를 바라보는 학자들의 여러 가지 대안Q AThank you for your attention 참고자료 문헌 ‘ 정치의 사법화 ’, 민주주의의 위기 인가 ? – 이영재 정치의 사법화 현상의 이론적 쟁점 – 채진원 헌법 재판과 민주법학 – 김종서 헌법재판소의 지위와 민주적 정당성 – 허완중 정치적 대표체계의 민주적 재구성 방안 모색 – 오현철 한국 민주주의 위기와 법의 지배 – 오승용 헌법재판소 홈페이지 두산 백과사전{nameOfApplication=Show}
1 폭 력 은 정당화 될 수 있는가 ?2 목차 Ⅰ . 서론 - 폭 력 에 대하여 Ⅱ. 본론 1 – 형법적 관점 Ⅲ. 본론 2 – 교내 체벌 찬반논쟁 Ⅳ. 결론3 폭 력 에 대하여4 들어가기 폭 력 이란 ? 신체적 공격행위 등 불법한 방법으로 행사되는 물리적 강제력 형법상 폭행이란 ? 사람에 대한 직접 간접적인 일체의 유형력의 행사5 정당한 폭력 ? 국가의 토지매입 경찰의 강제진압 교내체벌 화학적 거세6 폭력은 정당화 될 수 있는가 - 형법적 관점7 원칙 폭행죄 ( 형법 제 260 조 제 1 항 ) 사람의 신체에 대하여 폭행을 가한 자는 2 년 이하의 징역 , 500 만원이하의 벌금 ,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 . 상해죄 ( 형법 제 257 조 제 1 항 ) 사람의 신체를 상해한 자는 7 년 이하의 징역 ,10 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 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8 예외 -1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하는 것 ( 형법 제 21 조 제 1 항 ) 정당방위9 예외 -2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하는 것 ( 형법 제 22 조 제 1 항 ) 긴급피난10 예외 -3 법정절차에 의하여 청구권을 보전하기 불능한 경우에 그 청구권의 실행불능 또는 현저한 실행곤란을 피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하는 것 ( 형법 제 23 조 제 1 항 ) 자구행위11 예외 -4 처분할 수 있는 자의 승낙에 의하여 그 법익을 훼손한 행위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벌하지 아니하는 것 ( 형법 제 24 조 ) 피해자의 승낙12 예외 -5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는 벌하지 아니하는 것 ( 형법 제 20 조 ) ① 법령에 의한 행위 ② 업무로 인한 행위 ③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 정당행위13 교내 체벌에 대하여14 교내 체벌 체벌이란 ? 훈육 방법 중 특정 행동 중단을 위해 신체적 고통을 가하는 것 체벌금지의 근거 초중등교육법 제 18 조 ① 학교의 장은 교육상 필요한 경우에는 법령과 학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징계하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지도할 수 있다 . 다만 , 의무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은 퇴학시킬 수 없다 .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 31 조 ⑧ 학교의 장은 법 제 18 조제 1 항 본문에 따라 지도를 할 때에는 학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훈육 · 훈계 등의 방법으로 하되 , 도구 , 신체 등을 이용하여 학생의 신체에 고통을 가하는 방법을 사용해서는 아니 된다 .15 교내 체벌 체벌금지법의 시행배 경 일명 ' 오장풍 교사 사건 ' 이 인터넷을 통해 급속도로 퍼지면서 체벌금지법의 직접적인 시행배경이 되었다 . 오장풍 교사 사건이란 ? 교사가 초등학생에 무차별적인 폭력을 행사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건 . 교사가 손바닥으로 학생들을 때렸을 때 학생들이 날라가 쓰러진다는 의미 .16 교내 체벌 찬성 폭력과 체벌은 다르다 . 교권이 추락한다 . 체벌의 대체수단인 벌점이나 정학 , 퇴학은 체벌보다 더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준다 . - 소수의 인권보다 다수의 교육권이 우선이다 .17 교내 체벌 반대 논거와 반박 체벌에 익숙해진 학생들에게는 더 높은 체벌이 요구되고 결국에는 교육목적과 수단이 전도된다 . 간접적인 훈계만으로도 개선될 수 있는 상황에서 체벌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 . 수치심과 인격모독을 경험할 수 있다 . 체벌규정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다 . 체벌을 한다고 해서 학생이 잘못을 깨우치기는 커녕 오히려 반항심만 불러일으키게 된다 . - 학생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 .18 마무리하기 권리는 누구에게나 무제한으로 주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nameOfApplication=Show}
? 서 론“전쟁은 일상의 여유를 빼앗고 폭력을 가르치며, 현실에 대처하는 데에 거의 모든 사람이 똑같이 이성을 잃어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이 말은 1차·2차 세계대전의 저명한 역사가로 이름을 떨치는 존 키건의 말이 아니다. 그렇다고 2차세계대전사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윈스턴 처칠이 남긴 말도 아니다. 바로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고대 유럽을 뒤흔들었던 세계대전이라 할 수 있는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기록한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사에 쓰여진 문장이다.고대 그리스는 서양문화·철학·예술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이성적인 사고가 시작된 아테네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으로 죽거나 노예화 시키는 전쟁 범죄를 저질렀고, 아테네 또한 시칠리아 전투에서 패배 이후 7,000명의 포로가 비인간적으로 채석장에서 죽음을 맞는 비극을 당했다.무엇 때문에 그들은 그렇게 싸워야 했으며, 어떻게 해서 오늘 날까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일까? 단순히 투키디데스라는 역사가의 저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인류 최초로 민주주의를 일궈낸 아테네와 강력한 왕권을 기반으로 한 스파르타의 충돌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그 결과가 가져다주는 교훈은 2,0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본 론? 펠로폰네소스 전쟁 배경과 전쟁의 서막당시 시대적 상황으로는 아테네는 델로스 동맹을 중심으로 막대한 해상세력을 구축하고 있었고 스파르타는 비옥한 평야를 바탕으로 한 자급자족적인 농업 중심 폴리스로서 그리스 세력을 양분하고 있었기에 충돌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아테네는 페르시아를 패퇴시키고서, 델로스 동맹을 통해 벌어들인 해상무역이익을 홀로 독점하고 있었다. 얻은 이익으로 아테네를 위한 해군 유지비에 쓰거나, 델로스 동맹 전체 시의 복지가 아닌 아테네 시만을 위한 복지 정책을 실시하는데 이익을 투자를 지속하다보니 동맹국 내부에서도 불만이 쌓여갔다. 결정적으로 스파르타가 자극적으로 반응하게 된 계기는 페르시아가 그리스로부터 철수하자 스파르타는 아테네의 성벽재건 공사을 막으려다가 거절당했는데, 페리클레스는 스파르타의 위협을 막기 위해 페이라이에우스 항구와 아테네를 잇는 성벽을 쌓게 하였다. 페리클레스는 강력한 스파르타의 육군을 막을 성이 없으면 아테네는 육로를 통한 공격에 방어수단이 없게 되므로 스파르타에 굴복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에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따르면 당시에는 스파르타가 별도의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불만을 품었다고 한다.BC. 465년에 스파르타에서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두 나라간의 갈등이 재연되었다. 스파르타는 반란을 진압하기 위하여 아테네를 포함하여 모든 동맹국들에게 병력을 요청했다. 아테네는 장갑보병 4,000명을 보냈는데, 스파르타는 아테네의 병력을 제외한 다른 국가에서 온 군대는 주둔을 허용했다. 그 이유를 투키디데스는 스파르타는 아테네가 노예들을 이용해 자신들을 공격할 것이라고 추측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를 어처구니 없게 생각한 아테네는 스파르타와의 동맹을 파기해버렸다. 또한 반란을 일으킨 노예들이 마침내 항복하고 고향을 떠나도록 허락받았을 때 아테네는 그들이 코린트만에 한 도시에 정착하도록 해주었다. 반란을 일으킨 노예들을 처벌하지 않고 보호해준 아테네를 스파르타에서 좋아할 리가 없었다. 스파르타는 강력한 신분제를 유지하는 사회였기 때문에 이와 같은 행위는 자신들의 기반을 흔들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BC. 459년에 스파르타의 두 동맹국인 메가라와 코린트 간에 전쟁이 일어나자 아테네는 이를 이용하여 메가라를 자신의 동맹국으로 만들었고 이로 인하여 아테네는 코린트지협에 중요한 거점을 마련하게 되었다. 통상 제1차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라고 불리는 15년간의 전쟁이 시작되었고 아테네는 스파르타, 코린트, 아이기나 및 다수의 다른 국가들과 간헐적으로 전투를 벌였다. 전쟁 중 한때는 아테네가 보이오티아를 침공하자 스파르타의 도움으로 코로니아 전투에서 아테네에 승리한다. 전쟁은 BC. 445년에 체결된 30년의 평화유지를 선언하면서 종결되었는데 이 평화조약에서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서로의 동맹에 대해서 간섭하지 않기로 하였고 육상에서는 스파르타 그리고 해상에서는 아테네의 영역을 인정하기로 했다.? 2차 펠로폰네소스 전쟁 원인직접적인 도화선은 코린토스와 메가라 문제였다. 먼저, BC 436년 코르키라와 코린토스의 분쟁에서 아테네의 페리클레스는 코르키라의 손을 들었고, 이에 스파르타는 코린토스가 펠로폰네소스 동맹 구성원임을 들어서 코린토스의 편에 섰다.게다가 아테네는 아테네에 조공을 바치던 동맹국이면서도 코린토스의 식민지였던 포티다이아에게 성벽을 허물고 아테네에 인질들을 보내고 코린토스에서 파견된 총독을 해임하고 앞으로 코린트가 보내는 관리를 받아들이지 말 것을 지시했다. 코린토스는 이에 반발해서 포티다이아에게 반란을 일으키라고 부추겼으며 그렇게 한다면 코린토스가 포티다이아의 동맹이 되어 줄 것이라고 설득했다. 한편 코린토스는 비공식적으로 병력을 파견하여 포위당한 포티다이아의 방어를 도왔다. 이 일은 델로스 동맹과 펠로폰네소스 동맹이 서로의 자치권과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규정한 30년의 평화조약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었다.다른 하나의 문제는 메가라 조례였다. 메가라는 아티카와 펠로폰네소스 사이에 있는 교통 요충지 도시였다. BC 432년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동맹 소속이었던 메가라의 상품을 델로스 동맹 국가 내에서 매매를 금지시키는 조치를 단행하였다. 코린토스 문제까지는 소극적이었던 스파르타는 메가라 상품매매 문제까지 터지자 적극적으로 아테네에 항의했고, 결국 스파르타의 선제 공격으로 기나긴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포문이 열리게 되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과정펠로폰네소스 전쟁은 크게 3차례로 분류되는데, 2차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아르키다모스 전쟁'으로 BC 431년 스파르타는 아테네의 아티카를 침공하면서 시작되었고, 3차 펠로로폰네소스 전쟁은 아테네의 시칠리아 원정 그리고 아이고스포타모이 전투를 마지막으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스파르타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1차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의 페리클레스는 강력한 스파르타의 육군을 피해 농성작전을 개시하면서 장점이었던 해군을 이용 펠로폰네소스 항구를 공격했다. 이에 스파르타는 해안까지 이어진 장성을 피해 아티카의 농지들을 파괴했다. 페리클레스는 자신만만했지만, 생활수단이던 농지의 파괴를 성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농민들과 일반 시만들은 반발했다. 3년 뒤 흑사병이 불어닥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처참하게 죽어가고, 지도자였던 페리클레스도 사망한다.뒤이어 등장한 클레온은 상공업 출신의 정치인으로 수성파였던 페리클레스와는 달리 적극적인 주전론을 주장하였다. BC 422년 스파르타는 아테네의 요충지였던 암피폴리스를 함락했고 이는 델로스 동맹 국가들의 분열을 불러일으켰다. 아테네와 자신의 정치적인 생명이 흔들리자 클레온은 재탈환을 시도하였고, 이 결과로 클레온과 스파르타 장수였던 브라시다스가 전사했다. 그로부터 1년 뒤 주전론자의 전사로 화평파였던 니키아스가 집권하고 스파르타와의 화평이 이루어졌다.화평기간 동안 시칠리아의 시라쿠스가 스파르타와 동맹을 맺고, 아테네와 동맹관계였던 시칠리아의 시게스타를 공격했다. 시게스타가 아테네에 도움을 요청하자 아테네에서는 화평을 성공시킨 화평동안 등장한 알키비아데스를 공동 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출정 전날 밤 헤르메스 상 훼손 사건으로 원정을 떠난 알키비아데스가 소환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알키비아데스는 소환에 반발하고 스파르타로 망명하고, 시라쿠스의 원군요청을 주저하던 스파르타를 부추겨서 아테네 공격에 나서게 된다. 당시 시칠리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아테네는 원정군의 철수를 결정했다. 하지만 철수 전날 밤 생긴 월식으로 인한 병사들의 혼란이 발생했고 이를 기회로 스파르타-시라쿠스 동맹군이 아테네 진영에 들이닥쳐서 아테네의 니키아스는 대패하고 만다. 이 결과 아테네의 대장이었던 니키아스는 아테네로 돌아와 처형을 당하고데켈리아 광산지역은 스파르타에게 빼앗김에 따라 아테네는 경제적 군사적으로 혼란에 빠졌다.위기에 빠진 아테네를 구한 건 역설적으로 아테네를 위기에 빠뜨렸던 알키비아데스였다. 시칠리아 전쟁 승리 후 정치적 생명이 위협받던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에서 일어난 과두제 혁명을 기회로 아테네로 복귀하고 기지코스 해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시칠리아 전쟁의 대패로 잃었던 아테네의 영토를 다수 회복하였다.기지코스 해전 후 스파르타는 해군 통솔에 뛰어난 리산드로스를 중심으로 페르시아 지원에 힘입어 해군양성에 힘을 쏟았다. 아테네 역시 위협을 느끼고, 150척의 함대를 재건시켰고 이 노력으로 스파르타를 아르기누사이 군도에서 패퇴시켰다. 하지만 복귀하는 과정에서 폭풍우를 만나 많은 병사들이 익사하고 시신을 거두지 않는 문제로 지휘관들이 처형되거나 망명을 떠났다. 이 사건이 아테네에게는 결정적으로 자신의 목을 스스로 조여버린 결과가 되었다. 아테네의 어느 누구도 장군이 되기를 꺼려했기 때문이다. 펠로폰네소스 최후의 전투인 아르기누사이 전투에서 패한 카논은 처벌을 두려워하여 아테네로 복귀하지 않고 키프로스로 도망갔다.
인민주권은 어디에 ?Index 서론 : 실종된 우리의 주권 - 인민주권의 정의와 루소 - 인민주권 침식 사례 본론 : 주권의 침식과정 -1. 대의민주주의 -2. 자본주의와 세계화 결론 : 인민주권 재건축 퀴즈 질의응답인민 ( 국민 ) 주권이란 ? Popular sovereignty 국가의 정치 형태와 구조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력이 국민에게 있다는 원리 넓은 의미 : 군주주권에 대응하여 프랑스 혁명 이후 형성된 민주주의 일반 좁은 의미 : 개별적 국민이 아닌 추상적 국민에게 주권이 있다는 원리 사회 계약론과 밀접한 관련 자유 정부에서 집권자는 종이며 인민이 집권자의 주가 되고 권력을 가진다“ - 벤저민 프랭클린 대한민국 헌법은 1 장 1 조 2 절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루소의 사회계약론과 인민주권 국민 - 대표자는 계약을 통해 살아감 ,but 지배자의 절대 권력 인정 X 대표자 , 통치자의 권력에는 항상 한계 존재 사회계약론을 통한 일반의지 강조 - 선거 , 투표 , 다수결의 원칙 공무원 ( 대표자 ) 는 국민의 이익을 위한 의사를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 현대 사회 - 공익보다는 대표자 개인의 사익을 위한 정치가 팽배 ( 일반의지 무시 )사라진 인민주권 국가 성립과 동시에 군주의 통치에 대한 논의가 이어짐 - 민주주의 탄생 민주주의 (democracy) : 인민 (demos) 에 의한 자기 지배 ( kratia ) 인민에 의한 지배의 관철 현대 민주 사회에서 우리의 주권은 어디에 ?주권 침식 사례 1. 삼당 합당 2. 삼성 반도체 직원들의 백혈병으로 인한 사망 - 산재 처리 문제 3. 쌍용 자동차 파업 4. 투표 시간 연장 논란본론 1: 대의 민주주의의 특징 현대 민주정치에서 필수 불가결 고대 시민은 노예 계급을 거느리기 때문에 직접 민주주의가 가능 현대 시민은 생계문제 + 복잡 다양한 공적이슈 때문에 직접 민주주의가 불가능 국민의 권리 위임 - 효율적인 정부 민주성 , 대표성 , 책임성 결여 - 참여가 강조됨 결과적으로는 시민 - 정치 사이 거리가 생겨남소수집단에 의한 지배 대의 민주주의 - 엘리트 민주주의 소수에 의한 과두 지배 대표자의 의견 = 국민 모두의 의견 ? 결국 대표자들의 정권 획득을 위한 국가 운영 진정한 민주주의의 의미 퇴색정당성이 결여된 대표 투표에 대한 국민의 관심 부족 민주화 시작 87’ 대선 투표율 90% 육박 - 07’ 대선 투표율 63%- 총 유권자 대비 득표율 30.5%본론 2: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세계화에 따른 시장경제의 확산 - 민주주의의 확대 국가 권력에 대항할 만한 시민사회 형성 But, 신자유주의적 접근 - 무한경쟁 유도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의 이익 보다는 개인의 이익 추구에 급급 - 민주적 합의 경시기업 - 정부 경제적 권력 vs. 정치적 권력 민주주의의 기능 : 대중이 경제 권력에 대항할 수 있는 대안적 권력 체계 제공 초국가적 기업의 등장 - 정부가 기업에 굴복 Ex) 삼성 - 대한민국본론 3: 인민주권 재건축 정치적 갈등에 참여 vs. 실제 통치 고전적 민주주의 - 현대적 민주주의 이행 필요 현대 민주정치 핵심 - 갈등 , 경쟁 , 리더십 , 조직 유권자들이 만들어내는 결정의 중요성주권 되찾을 방안 1. 국민적 정치참여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지속적 관심 정치의 생활화를 위한 국민 교육 국민 소환제 등 선거 이외의 국민적 심판 방법 고안 Ex) 스위스 - 지자체 중심의 직접 민주주의 모델주권 되찾을 방안 2. 복지국가로의 회기 신자유주의의 실패 확인 - 1% 에 대한 99% 로의 외침 경제 민주화를 통해 경제에 대한 국가의 개입 모델 - 북유럽 복지 국가결론 루소의 사회계약론 - 인민주권의 발생 BUT 현대 민주정치사회에서 인민주권의 침식 1. 대의민주주의 2. 자본주의 우리의 주권에 대한 인식이 필요 . 주권을 되찾을 방안 1. 국민의 정치적 관심 2. 복지국가지루하시죠 ?^_^ 여러분을 위한 퀴이이이즈으으 다음 중 인민주권에 대한 개념을 창출한 사람은 ??? 1. 안철수 2. 오바마 3. 루소 4. 이영재 교수님 답 맞추는 분께는 음료수 한 캔 드려요 ! ^.^Q A{nameOfApplication=Sh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