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12856 하영우Ⅰ. 서론 연구의 목적Ⅱ. 본론 1. 곰소만의 항구의 발달2. 곰소항의 발전3. 곰소항의 쇠퇴4. 사회적 환경의 변화와 곰소의 재 발전Ⅲ. 결론Ⅰ. 서 론2005년 9월에 지리 교육 정기 답사 코스로 곰소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길 양 옆으로 늘어선 젓갈 판매장과 관광버스까지 동원해 젓갈을 사러 온 사람들의 풍경이 아직도 내 머릿속에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이 지역은 한 때 대표적인 항구 도시였지만 그 기능이 쇠퇴하면서 그 대안으로 젓갈업이 활발해 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이상에 대해서는 배운 것이 없다. 따라서 이번 리포트를 통해 곰소만의 대표적인 항구 도시였던 줄포와 곰소의 발전과 쇠퇴, 그리고 그에 대한 곰소의 대응 전략을 통해 곰소의 경관 변화를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또한 곰소의 젓갈산업의 발전을 살펴봄으로써 그 이면의 자연 및 인문 ? 사회적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 또한 곰소의 경관독해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Ⅱ. 본 론1. 곰소만의 항구의 발달곰소만에는 사포, 후포, 줄포 등 포구가 많이 발달해 있다. 왜냐하면 이곳의 지형이 깊숙한 내만을 형성하고 있고, 조석간만의 차가 커서 만조 시 갯골을 따라 범선들의 출입이 용이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해일이나 태풍 등 자연재해로부터 피해를 막기 위한 방파제나 선착장 같은 접안시설을 갖추지 못한 과거에는 내만 깊숙이 위치한 포구들이 어선들의 대피항으로 주로 이용되었기 때문에 이 지역에 있어 대부분의 포구들이 곰소만 입구 보다는 내만 깊숙이 발달하였던 것이다.가장먼저 발전한 곳은 사포와 후포이다. 구한말까지만 해도 많은 어선과 미곡 운반선들이 출입하였는데, 간석지의 발달로 인하여 갯골의 폭이 좁아지고 수심도 얕아져 포구의 기능이 급속히 쇠퇴하게 되었다. 더구나 일제의 침략에 격분한 의병들의 봉기로 후포 등지에서 상업에 종사하던 일본인들이 피해를 입게 됨에 따라 다수의 상인들이 인근의 줄포 로 이전하게 되었다. 이후 어선어업이 발달되면서 항만 조건이 유리한 줄포가 곰소만의 중심항으로 발전하게 된다. 특히 이 지역은 일제의 미곡반출이 본격화 되면서 미곡 운반선이 자주 출입하던 항이고,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의 항구들이 개항됨에 따라 주로 일본에서 수입한 각종 생활용품을 판매하여 많은 수익을 올렸던 장소이기도 하다.하지만 줄포도 곰소만의 중심 항구로서 그 기능을 점차 상실하기 시작한다. 선박의 대형화와 동력화로 인하여 기존 갯골을 따라 소형 선박들이 주로 출입하였던 줄포항은 갯벌 퇴적으로 인한 얕은 수심 때문에 더 이상 대형 선박들이 접안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제는 줄포의 대체 항구로 곰소항을 개발하기 시작했다.줄포항은 2002년도에 농경지와 지역개발 용지를 확보하기 위한 방조제가 완공됨으로서 현재는 항구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 하게 되었다. 2. 곰소항의 발전일제는 줄포의 배후지역에서 생산되는 미곡 등을 운반하기 위해 대형선박의 접안이 불리한 줄포항을 대체할 항구로 인근 지역 중 주 수로 가까이에 있고 수심이 깊어 선박 출입이 용이한 웅연도(곰소)에 새로운 항만을 개발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36년부터 줄포항에서 서쪽으로 직선거리 7km 지점에 위치한 웅연도(곰소) 및 호도(범섬)와 육지를 잇는 방조제를 축조하여 곰소항을 개발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웅연도 앞 바다는 주 수로와 인접해 있어 평균수심이 10m 이상이었으므로 100톤 급 이상의 기선을 비롯하여 대형 어선이 밀물과 썰물에 관계없이 출입할 수 있었다. 선박출입이 용이한 이곳에 어항을 건설하기 위해 웅연도와 범섬을 잇는 방조제 공사를 진행시켰다. 1942년경에는 곰소항 1단계 공사가 마무리되어 어선을 비롯한 각종 선박의 접안이 가능하게 되었다. 일제는 이곳을 군항 및 줄포항의 대체항구로 활용하고자 했지만 패전으로 인하여 그들의 원래 목적을 이루지 못하였다.곰소항은 줄포보다 수심이 깊었기 때문에 외지 어선들의 입출항이 점차 증가하게 되어 항구로서 기능을 수행하게 되고, 선박의 입출항 증가로 인해 선착장 부근을 중심으로 음식점, 술집 등 유흥시설과 상인들을 위한 숙박 시설 등 상업 및 서비스 기능이 증가하게 되었다. 특히 60 ~ 70년대 경제 개발을 통해 어선의 대형화와 동력화가 급속히 진행되어내만 및 연안어업 중심에서 연 근해 및 원양어업 중심으로 어업이 변화하 게 됨으로써 곰소항은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다. 항구기능이 활발해지자 1970년대는 제빙 및 냉동시설을 갖춘 회사 등 다양한 기반기능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어로 활동에 있어서도 어선의 동력화와 대형화로 인해 기존에 내만이라는 지형적인 특수성 때문에 오랫동안 조업해왔던 꽁댕이배의 급감을 가져왔다. 또한 지속적인 갯벌 퇴적으로 곰소만 내의 소규모 어항은 어선출입에 있어 제한을 받게 되어 곰소항은 상대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이다. 80년대 이후에는 어획량의 감소에 따라 연안 어업이 타격을 받게 되고, 관광객의 증가에 따라 상당수 지역에서는 농경지와 도시용지 및 대하 양식장을 조성할 목적으로 대규모의 갯벌을 매립하게 되었다. 방조제 건설을 통한 갯벌 매립은 내만의 어로수역을 크게 감소시킴으로써 내만어업과 연안어업을 더욱 어렵게 하였다. 이에 따라 내만 지역 어항 중 입지 상 상대적 우위에 있던 곰소항은 이 지역의 중심항으로 성장하게 되어 전라북도에서 군산 다음으로 큰 항구로 떠올라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다. 3. 곰소항의 쇠퇴그러나 연근해의 어족이 줄어들고 곰소항의 수심도 점차 낮아지면서 곰소항도 줄포항과 비슷한 쇠퇴과정을 겪게 된다. 더욱이 곰소항에 비해 수심이 깊은 인근의 격포항이 1987년에 1종항으로 승격됨에 따라 주요 시설들이 점차 이전되기 시작하였다. 1989년에는 하루 2회씩 위도를 오가던 정기 여객선마저 격포항으로 옮겨감에 따라 곰소항의 항구기능은 급격한 쇠퇴기를 맞게 되어 곰소도 소규모 어항으로 전락하게 되었다.4. 사회적 환경의 변화와 곰소의 재 발전80년대 이후 어획량이 감소하고 수입소금의 증가에 따른 제염업의 쇠퇴로 어업과 염업에 종사하던 상당수의 주민은 생존을 위해 새로운 직업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전업 과정에서 일부 주민이 어업과 관련된 업종에 종사하면서 얻은 경험 지식을 바탕으로 젓갈업을 시작하게 되어 젓갈업체가 증가하게 되었다. 인근 진서나 석포리에 넓은 농경지가 있어도 이들이 농업으로 전환하지 못했던 이유는 초기의 주민구성과도 직결된다. 곰소가 개발되고 난 후 곰소에 이주한 주민들 중 진동, 진서, 연동, 석포 등 인근 농업지역의 주민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피난민이나 인근 도서나 어항 주민, 타지에서 이주한 주민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이들의 대부분은 어업이나 염업과 관련된 업종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즉, 곰소는 개발 초기부터 서해안 어촌의 일반적인 특성인 반농반어의 어촌이 아니라 순수 어촌의 성격을 지닌 촌락이었던 것이다.하지만 이촌 현상에 의한 인구 감소, 젓갈업의 전국적 확산, 외부 지역과의 좋지 않은 접근성 등의 이유로 곰소에서의 젓갈업은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그런데 1988년을 계기로 곰소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1988년 변산반도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됨에 따라 곰소 지역도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변산반도는 채석강, 내소사, 직소폭포, 변산, 격포, 고사포 해수욕장, 월명암의 낙조 등 많은 비경과 희귀 동식물의 서식지이며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어 생태관광지의 요건과 학술적 가치가 높은 곳으로, 매년 외지 관광객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이런 추세에 발맞추어 1992년에 변산반도 일주 해안관광도로가 개통되면서 관광객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며, 곰소지역에 대한 접근성도 상당히 향상되었다. 또한 곰소 젓갈과 소금이 TV 등 각종 매체를 통해 전국적인 홍보를 하게 됨으로써 이 지역의 젓갈업은 크게 성장하게 된다. 90년대 말부터 증가하고 있는 젓갈업체들은 관광단지와 간선도로망을 따라 입주하고 있는데 이는 관광객의 증가와 관련성이 큰 것이다. 관광객의 급증은 다방면에 걸쳐 지역의 경관변화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데 그 중 젓갈업과 관련된 기능체들이 급성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