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교회사1부 성경과 신조1. 성경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성경은 이 세상에서 출판된 책 가운데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되었고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이다. 그리고 가장 권위 있는 책의 대명사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성격만큼 이해하기도 어려운 책은 없다. 성경은 흔히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살아 계신 하나님과 그의 역사를 체험한 사람들의 고백이자 증인이며 하나님과의 만남에 대한 기록이다. 성경이 처음부터 문자로 기록된 것은 아닙니다. 먼저 역사적 사건들이 있었고 그 다음에 이들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을 체험하고 그 체험한 것을 입으로 전하는 구전의 단계가 있다. 그리고 이 구전을 기록하는 단계가 있다. 이 기록도 처음부터 오늘날의 완성된 성경의 형태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다양한 단편의 형태로 전해 내려오다가 이것들이 수집되고, 저자 내지는 공동체의 신학학적 의도에 따라 편집되어 오늘날의 형태가 된 것이다. 지금 우리 앞에 있는 한 권의 성경 속에는 수천 년의 역사와 함께 다양한 체험과 해석이 녹아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성경이 오늘날 우리에게 의미 있게 하려면 단순한 해석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삶의 치열한 현장에서 실천을 통하여 끊임없이 검증하여야 한다. 성경의 해석이 진정한 자유와 정의와 해방과 평화와 생명의 보전을 가져오지 못하고 오히려 불의를 옹호하고 억압하고 생명을 죽이는 폭력과 지배 이데올로기로 작용한다면 참된 하나님 말씀의 해석이라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을 치유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2. 사도신경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예배 때에 사도신경을 암송하는 것은 개인 각자의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교회 공동체의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다.고대 전승에 따르면 사도신경은 사도들, 즉 예수님의 12제자들의 작품이다. 성령감림 이후 사도들은 선교를 위한 신앙의 규범을 확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가진 모임에서성령의 인도로 사도들은 각자 자신의 신앙을 짤막하게 고백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성령에 의해 잉태되었고,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다.’ 요한이 말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당하시어 십자가에 죽으셨고, 죽어 장사지냈다.’ 도마가 말했다: ‘그는 지옥으로 내려가 삼일 만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 또 다른 야고보가 말했다: ‘하늘에 오르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 빌립이 말했다: ‘그곳에서 그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러 오실 것이다.’ 바돌로매가 말했다: ‘나는 성령을 믿는다.’ 마태가 말했다: ‘거룩한 교회와 성도들의 교제를 믿는다.’ 시몬이 말했다: ‘죄의 용서를 믿는다.’ 다대오가 말했다: ‘몸의 부활을 믿는다.’ 맛디아가 말했다: ‘영원한 삶을 믿는다.’” 물론 이렇게 사도신경의 기원을 사도들에게 두며 각각의 행을 사도들에게 배분한 것은 전승에 속한다.사도신경은 단순히 사변적인 관념의 유희가 아니라 고난과 박해 속에서도 자신의 실재적인 구원의 확신과 감격을 표현하는 고백과 찬양의 한 형식이다. 사도신경은 기독교회가 사도적인 신앙의 연속선상에 존재하는 한 계속적으로 예배에서 사용되어지며 끊임없이 재해석되어 우리 앞에 피와 살을 입히는 신앙고백으로 살아있을 것이다.2부 교회 절기와 예식3. 부활절의 기원과 부활의 의미는 무엇일까?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이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탄생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이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교회력 상의 축일이 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기독교전통이 얕은 우리와는 달리 오랜 기독교 전통을 지닌 유럽에서는 기독교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중요하게 여기는 축제인 부활절을 다채롭게 보내고 있다. 부활절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실제로 2세기경 기독교회는 일요일에 지내는 ‘로마식’ 부활절 축제와 니산월 14일, 즉 유대교 유월절에 지내는 ‘소아시아식’ 부활절 축제로 나뉘어져 있다.예수님의 부활은 단순한 현실로의 복귀가 아니라 시공을 넘어서는 영원한 생명을 말한다는 점에서 근대적인 과학과 실증주의의 세례를 받아 새로운 창조의 능력임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분”(롬4:17)이기 때문이다.4. 성탄절은 어떻게 생겨났을까?성탄절은 예수님의 탄생에서 기원하지만 이것을 기념하는 축제로서의 유래는 명확하지 않다. 불충분하고 불확실한 자료에 근거한 것이기는 하지만 오늘날의 성탄절 유래는 후기 로마 제국의 태양숭배 전통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고 있다. 오늘날 성탄절이 보편적으로 12월15일에 지켜지다 보니 예수님이 정말 이 날짜에 탄생하셨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겠지만 실제로 예수님이 언제 탄생하셨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12월25일 성탄절 날짜 고정에 큰 역할을 했다. 그의 동쪽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에서는 380년이 돼서야 비로소 축제를 시작하였다. 동방교회는 1월6일을 예수님의 출생일과 세례일로 규정하였다. 동방교회는 이 날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이것은 12월25일에 지내는 서방교회의 성탄절이 도입되기 이전에 이미 존재하였고 부활절의 신비의 전체적인 연관 속에서 그리스도의 인간되심을 기념하는 축제가 드려졌다.5. 왜 세례를 받아야 하는 걸까?한 사람의 신앙을 측정하는 객관적 기준이 있는지는 자신 있게 말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세례는 온전한 교인, 즉 단순한 출석 교인이 아니라 신앙을 고백하는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외적인 표지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오늘날 세례에 대한 중요성과 그 참된 의미가 퇴색 되어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세례를 베푸는 자나 세례를 받는 자 모두 세례의 기원과 의미를 알게 될 때, 형식적으로 흐르거나 어떤 방편으로 이용되기도 하는 세례에 보다 엄숙한 태도를 지니게 될 것이다. 세례는 하나의 ‘행사’가 아니다. 세례는 기독교 신앙에 있어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성례전이다. 세례는 단순히 ‘입교’의 관점을 넘어 죄의 용서와 구원, 근본적인 기독교적 실존으로의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6. 성만찬의 의미는 무엇일까?개신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제정하신 성례전으로 인정하는 윤리적 함의(含意) 때문이다.성만찬은 죽음을 앞둔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나눈 만찬에서 유래한다. 이 만찬은 당시에 버림받은 자, 죄인과 세리와 창기들과 함께 나누었던 예수님의 ‘공동식사’의 연장이며, ‘하나님 나라’ 의 표징이었다. 예수님은 자신이 모든 사람을 위한 ‘빵과 포도주’가 되신 분입니다. 따라서 성만찬에 참여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삶과 고난과 부활과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며,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살아가겠다는 결단을 의미한다. 또한 성만찬은 개신교회에 있어서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찬미에 자연(빵과 포도주)이 중요한 요소로 참여하는 성례이다. 성례적인 삶, 성만찬적인 삶이란 이렇듯이 모든 자연과 피조물속에서 하나님 임재를 경험하는 삶이다.7. 주일인가 안식일인가?주님이 부활하신 ‘안식 후 첫날’(오늘날의 주일)은 유대교의 시간계산법으로는 안식일인 토요일과 불과 몇 시간밖에 차이가 나지 않다. 그래서 유대교 방식을 따르던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안식일 후 첫 날의 예배를 오늘날의 토요일 밤이나 새벽에 드렸다. 그러나 점점 예배시간은 일요일 오전으로 옮겨졌다. 이러한 변화는 주로 서방지역에서 먼저 이루어졌다. 이는 이 지역에서 다수를 형성하고 있던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의 영향으로 보인다. 이들은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보다 유대교의 인식일 법으로부터 훨씬 자유롭고 독립적이었기 때문이다.주일은 무엇보다 ‘안식 후 첫 날’ 부활하신 주님을 기념하는 기독교인들의 축일이다. 오늘날 주일에 율법주의적 안식일 계명들을 시대착오적으로 그대로 반복할 수는 없겠지만 안식일의 근본정신을 지키는 일은 중요하다. 노동의 능력과 효율성만으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오늘날의 경제 제일주의적 세계에 저항하여 안식은 노동의 대가로 주어지는 인간의 성취물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임을 인식해야 한다. 주일은 부활하신 주님의 날이며, 신앙공동체의 주간 부활 축제이다. 주의 날에 확증되는 새로운 계약이 그리스도인들을 모든 억압은 일이다. 숨을 쉬지 않고 생명체가 살 수 없듯이 기도하지 않고 올바른 신앙을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앙인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관계를 유지하며 하나님의뜻을 묻고 지혜와 능력을 간구한다.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가 바로 우리가 ‘주기도문’이라고 부르는 기도이다. 주기도문에는 단순한 기도의 의미를 넘어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 내용이 담겨져 있다. 주기도문은 예수님 자신에게서 유래하기 때문에 의미는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주기도문은 공중예배나 소모임에서 지나치게 습관적으로 암송되는 경향이 있지만 교리적으로 채색되지 않은 예수님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깊이 되새길 필요가 있다.주기도문에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그대로 담겨 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열망을 갖지 않고는 드릴 수 없는 기도입니다. ‘일용할 양식’ 또는 ‘내일의 양식’ 조차도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하여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가난한 사람의 마음이 아니고는 드릴 수 없는 기도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일용할 양식’ 이상을 가지고 있다면 무엇을 요구하기 이전에 이미 우리가 가진 것이 충분하다는 감사의 마음이 아니고는 드릴 수 없는 기도이다. 이 기도는 남이 나에게 행한 잘못을 용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사람이 드리는 기도이다. 이 기도는 이 땅에서 우리가 얼마나 자주 악의 유혹에 흔들리는 연약한 존재인가를 아는 사람이 드리는 기도이다.9. 구약의 십계명을 어떻게 이해할까?십계명이 비록 복잡하다기한 우리의 삶에 구체적인 실천방법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우리의 신앙과 삶의 방향과 원칙을 제시하는 중요한 기준임에는 분명하다. 십계명은 단순한 인간적 윤리나 도덕규범으로 축소될 수 없는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고백되는 신앙과 그에 따른 실천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십계명은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관계 속에서 각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