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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중한것먼저하기 교재자료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김주섭 목사 -1. 이 책을 아십니까?1) 20세기 가장 유명한 성공학 도서2) 창의적이고 개방적인 사고3)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마인드4) 스티븐 코비5) 자신의 삶을 주도하라“( )의 ( )습관”2. The 7 Habits1) 주도적이 되라.2) 목표를 확립하고 행동하라.3) 소중한 것부터 먼저 하라.4) 상호 이익을 추구하라.5) 경청한 다음에 이해시켜라.6) 시너지를 활용하라.7) 심신을 단련하라.3. 소중한 것 먼저하기1) T: V:2) 2D Drawing2) 직접 설계해 봅시다.4.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1) 우리에게 “급.중” 두 가지만 결정해 봅시다.2) 우리에게 “안급.중”두 가지만 결정해 봅시다.3) 우리에게 “급.안중”두 가지만 결정해 봅시다.5. 나를 찾아서1) 나는 누구인가??어디에서나는역할. 의무No가정에서···교회에서···학교에서···기타..···2) 나의 Dream?? Dog Dream?? Vision?- American Dream : 1931. 제임스 애덤스. 「미국의 서사시」- 참된 비전 : 하나님을 통해서 나에게 주시는 복음적인 나의 모습6.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1) 1순위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복음 안에서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어떻게 나의 미래를 계획할 것인가?- 어떻게 하루 하루를 살아갈 것인가?2) 나의 라이프 스타일을 정의하라!시간대My LifeNo.
    경영/경제| 2014.03.06| 4페이지| 1,000원| 조회(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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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차드멀러의 16세기맥락에서 본 진정한칼뱅신학 요약본
    Unaccommodated Calvin리차드 멀러, 「16세기 맥락에서 본 진정한 칼뱅신학」, 이은선역 (성남: 나눔과 섬김, 2003).I. 리차드 멀러(Richard Muller)듀크대학의 스타인메츠 교수 아래서 ‘그리스도와 작정’(Christ and Decree)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칼빈 신학교 교회사와 조직신학 교수이다. 그는 칼빈과 개혁파 정통주의(개혁파 스콜라주의)를) 대립적으로 보는 해석을 비판하며, 칼빈에서 베자, 잔키우스, 퍼킨스, 폴라누스에 이르는 개혁파 신학의 기독론과 예정론의 연속을 제시하였다. 그의 대표적 저서로는 Post Reformation Reformed Dogmatics I-IV(종교개혁 후 개혁주의 교의학)가 있다.그는 종교개혁 이후의 정통주의에 대한 연구에서 서양의 두 가지 시각을 근본적으로 교정하고자 하였다. 하나는 슐라이어마허 신학의 영향으로 루터파와 개혁파의 교리 체계를 하나의 중심교리(central dogma)로 파악하고자 하는 시도였는데, 곧 루터파는 이신칭의를 개혁파는 예정론을 중심교리로 삼는데 멀러교수는 정통주의자들은 중심교리가 없었다고 말한다.또 하나는 이러한 예정론 중심의 개혁파 정통주의 교리 체계가 기독론과 은혜중심의 칼빈의 교리를 신론 중심의 합리주의 체계로 왜곡하고 변형시켰다는 칼바르트를 비롯한 신정통주의자들의 주장을 극복하고자하였다. 그러한 정통주의자들의 저작들을 분석하여 칼빈신학과 정통주자들의 신학 사이에 연속성(continuity)과 불연속성(discontinuity)가 존재한다는 점을 밝혀냈다.II. 본론A. 조정된 칼빈(Accommodated Calvin)리차드 멀러(Richard A. Muller)는 지금까지의 칼빈과 칼빈의 작품에 대한 해석이, 해석자가 가진 어떤 특정한 사상적 틀 안에서 조정되어 해석되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그가 주장하는 조정된 칼빈(Accommodated Calvin)이다. 이 조정된 해석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조정된 칼빈 자신(Accommo 편향된 해석의 오류를 지적하며, 그 원인으로 해석자가 16세기의 맥락에서 칼빈 자신을 해석한 것이 아닌, 그 칼빈을 해석자의 시대의 맥락으로 끌어들여, 16세기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그 시대의 구분들로 칼빈을 해석했다는 것을 지적한다.2. 조정된 칼빈의 사상(Accommodated Calvin's thought)칼빈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칼빈 자신의 사상(정확하게 말한다면 그의 신학의 중심원리)에 대한 현대의 해석들도 서로 의견의 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어떤 이들(특히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예정론을 칼빈의 핵심 사상이라고 보았고, 또한 어떤 이들(특히 신정통주의자들)은 기독론이 칼빈의 핵심 사상이라고 보았으며, 또한 어떤 이들은 삼위일체가 칼빈의 핵심 사상이라고 보았다.또한 칼빈의 사상 배경에 대한 각각의 해석들에 따라 그의 주도적인 사상에 대한 견해들이 차이를 보이는데, 어떤 이들은 그의 주도적인 사상을 보편교회(the catholic church)의 사상으로 보았고, 어떤 이들은 인문주의의 사상으로 보았으며, 또 어떤 이들은 칼빈과 그 전후 시대의 불연속성을 강조하여 그만의 독자적인 사상을 가진 것으로 보았다.그러나 이러한 견해들 또한 16세기의 맥락 안에서 정당하게 칼빈의 사상을 해석한 것이 아닌, 해석자의 맥락 안에서 조정된 해석을 시도한 것이다.3. 조정된 칼빈의 저작(Accommodated Calvin's writings, 특별히 기독교 강요)이러한 “조정된 칼빈”을 만들어내는 정당하지 못한 해석은 그의 저작들, 특별히 기독교 강요에 대한 해석에도 영향을 주었다. 어떤 이들은 기독교 강요를 신학 체계, 즉 공통 논제들(loci communes)로 보았고, 어떤 이들은 경건의 신학, 혹은 수사학의 신학, 혹은 경건의 수사학, 혹은 목회 신학으로 보았다.또한 기독교 강요와 기독교 강요 이전과 이후의 신학 저술들의 관계, 그리고 기독교 강요와 칼빈 자신의 주석과의 관계도 16세기의 맥락이 아닌, 해석자의 맥락 안에서 조정된 해석이 시도되스콜라주의와의 올바른 관계 혹은 중세와 칼빈 이후의 개혁파 정통주의와의 올바른 관계 안에서 해석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칼빈과 중세 스콜라주의와의 연속성과 불연속성 문제가 제기된다.1. 칼빈과 중세 스콜라주의와의 불연속성1970년대까지 칼빈과 중세 스콜라주의와의 불연속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가운데 칼빈에 대한 해석이 이루어져 왔었다. 특별히 신학에 있어서 칼빈 이후의 개혁파 정통주의와 대립관계에 있었던 19세기 자유주의자들과 20세기 신정통주의자들은 칼빈과 그를 계승한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자들을 대립시키기 위해 칼빈과 중세 스콜라주의와의 불연속성을 강조하였다. 그래서 칼빈 이후의 개혁파 정통주의자들은 칼빈의 사상을 계승한 자들이기보다는 오히려 칼빈이 철저하게 배격한 스콜라주의를 부활시켜 그의 사상을 왜곡한 자들로 취급받았다. 이 결과 제네바 아카데미를 통해 배출된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자들이 아닌 신정통주의자들이 칼빈의 사상을 온전히 계승했다고 평가받게 되었다.2. 칼빈과 중세 스콜라주의와의 연속성그러나 1970년대부터 하이코 오버만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연구는 칼빈을 포함한 그 당시의 제 2세대 종교개혁자들에게 중세 스콜라주의와의 연속성이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칼빈이 중세 스콜라주의에 대항하여 개혁을 일으킨 것은 사실이지만, 스콜라주의 전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칼빈은 스콜라주의 전체에 대항하여 싸운 것이 아닌, 자연 신학(natural theology), 즉 영광의 신학(theologia gloriae)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후기 스콜라주의의 가정에 대항하여 싸운 것이다. 이는 기독교 강요 라틴어판의 “스콜라 신학자들”이 불어판에서는 “소르본느 박사들”로 표현된 것에서 잘 나타난다.a. 신학 진술에 있어서 스콜라주의의 방법론을 사용함칼빈은 자연신학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했던 스콜라주의의 잘못된 가정은 철저하게 배격했지만, 그 자신의 신학 진술에 있어서는 스콜라주의의 방법론을 사용하였다. 이는 특별히 기독교 강요에 나타나는데, 이 저작은 전체부의 원전으로(ad fontes) 이끄는데 사용되었다면, 그의 스콜라주의 방법론의 채용은 그 원전에서 이끌어온 내용들을 명제화시키고 체계화시키는데 사용되었다. 엄격하게 구별할 수는 없지만, 그의 인문주의적 배경이 주석 작업에 사용되었다면, 그의 스콜라주의 방법론은 기독교 강요의 작업에 사용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3. 중세 스콜라주의와 개혁파 정통주의와의 연속성 가운데 칼빈을 해석해야 함그러므로 19-20세기의 특정한 사상들에 의해 “조정된 칼빈” 해석을 피하기 위해서는 16세기의 맥락, 즉 중세 스콜라주의와의 올바른 연속성 가운데 칼빈을 해석해야 한다. 이 연속성을 주장할 때만이 칼빈은 개혁파 정통주의를 계승한 개혁주의 신학의 교사일 수 있고, 더 나아가 보편교회의 교사일 수 있다.C. 조정된 칼빈주의자(Accoommodated Calvinist) 부스마부스마는 칼빈의 저작들에서 불안과 혼돈을 인용하여 ‘심연과 미로’에 초점을 맞춘다. 심연은 그러나 이는 실존적이고 심리적인 두 명의 칼빈이 있었다고 주장한다.1. 심연과 미로부스마는 “칼뱅의 무한한 것에 대한 두려움을 나타내는 상징”이고, 미로는 “하님으로부터 자기중심적 소외에서 자신을 구해낼 수 없는 인간의 무능력 속에 암시되어 있는 불안을 연상시킨다.” 심연의 두려움의 칼뱅은 철학자, 합리주의자, 토마스 아퀴나스의 스콜라주의 전통에 있는 스콜라주의자, 원칙의 사람, 그리고 보수주의자이고, 미로의 두려움이 지배하는 칼뱅은 수사학자와 인문주의자였고, 오컴의 추종방식에 있는 회의주의적인 신앙주의자이다.2. 문제점멀러는 문헌의 점검과 경건의 차원 그리고 칼뱅의 여러 저작들을 공시적이고 통시적으로 점검하여 반론한다. 예들 들어 ‘심연과 미로’는 칼빈의 불안과 혼돈을 말하지 않으며, 이는 당시 인문주의 수사학에서 영향을 받은 은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부스마는 칼빈의 여러 저작에서 ‘심연과 미로’가 지배적 주제라고 강조하지만, 그러나 도리어 ‘방법,’ ‘질서,’ ‘길’ 등의 단어들이 더 나온다. 그리고 이는 경건의 차요를 신학체계로 보며, 다른 이들은 경건의 신학 혹은 목회 신학으로 보기도 한다. 그래서 칼빈의 저작의 평가에도 조정된 칼빈과(Accommodated Calvin) 조정되지 않은 칼빈(Unaccommodated Calvin)이 나타난다.A. 기독교 강요를 연구를 통한 조정된 칼빈(Accommodated Calvin)과 조정되지 않은 칼빈 (Unaccommodated Calvin)1. 목회신학과 경건의 신학으로 보는 기독교 강요칼빈의 기독교 강요는 통일된 신학 방법론을 결여하고 있으며, 많은 방법론들과 체계들의 임시변통의 수집이며, 이는 교의신학이라기보다는 목회신학, 경건의 신학, 수사학의 신학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부스마는 16세기에 중요한 조직적 사상가들이 없었으므로 체계적 신학자로서의 칼뱅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한 마디로 “테 없는 바퀴, 살들로 가득 찬 중심”과 같다는 이야기다.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16세기의 맥락에서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검토해야한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 강요 1539년 판에 대한 연구는 아주 중요하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 1536년 초판은 경건요약이나 체계를 제공하고, 경건과 교리를 심어주는 요리문답식으로 되어있는데, 1539 판에서는 그러한 구조를 떠났다. 1539년의 기독교강요 기록목적은 기독교 교리의 총합을 제공하는 것이며, 칼빈은 여기서 스콜라주의적 방법인 공통 논제들(loci communes)의 방법을 사용했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는 분명하게 가르침의 적절한 순서로 정리된 공통논제들과 논쟁들을 포함하는 기독교 신앙의 공통적인 가르침으로 의도되었다.2. 언약신학20세기에서는 칼빈과 언약신학 사이의 문제를 기독교 강요 본문에 자리하는 신학적 정의로 본다. 맥닐은 기독교 강요 2권 10장을 칼빈이 언약교리를 전개하는 곳이라고 하며, 베이커도 칼빈의 언약신학이 언약과 약속의 명확한 구분이 없는 약속의 신학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언약의 논제를 포함시키지 않았다.3. 예정론 교리의 배치기독교 강요 안에 있
    인문/어학| 2009.11.04| 6페이지| 2,000원| 조회(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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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형룡박사의 교의신학 7권 내세론 요약본입니다. 평가A좋아요
    서 장제 1 절 哲學, 宗敎, 歷史上의 내세 사상1. 哲學과 宗敎의 내세 사상종교 사상 중에 내세 문제만큼 예민하고 보편한 관심을 일으키는 것은 없다. 역사는 사람이 내세에 향하여 본능적 열망을 가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생 역사에 시작이 있으므로 또한 반드시 종말이 있을 것을 확신하여 종말과 내세의 사상을 품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특별히 철학과 종교의 일이다.1) 철학상의 내세 사상.플래토(plato)는 영혼의 영생 즉 사후의 계속적 존재를 가르쳤던 바 그 교설이 오늘날까지 철학에 중요한 사상으로 남아있다. 울프(wolf)와 라이프닛츠는 그 교설의 진실성을 각종 논능으로써 변호하였다. 칸트는 실천이성의 가정으로서 영생의 교설을 강조하였다.철학자들은 개인들의 장래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세계의 앞날에 관해서는 깊이 생각하였는데, 스토이학파는 계기적인 세계순환기들을, 불교도는 세계영겁들을 말하였는데, 그 각 기간에 새 세계들이 나타났다가 소실된다는 것이었다. 칸트도 세계들의 출생과 사망을 사변하였다. 그러나 윤회순환에는 새로운 장래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고대 민족들 중 히브리인들만은 계시종교에 기초한 線的 장래관을 가지어 세계는 타락의 하강선으로부터 구속된 신천신지에 향하는 상승선으로 전진한다고 보았다.2) 종교에서의 내세 사상고대 종교 및 신화들과 현금의 모든 형식의 이방 종교들은 다 인생의 내세에 향한 본능적 열망의 표현들이며 발전들이다. ‘사람의 영혼이 죽은 후에 남아 있다는 신념은 거의 보편적이어서 우리는 이것이 세력을 가지기 않은 종족이나 민족이나 종교의 신뢰할 만한 기록을 가지지 못하였다’라는 이러한 신념은 조상숭배에서, 죽은자와 교통을 추구함에서, 죽은 자들이 거주하는 下界의 개념에서, 혹은 영혼들의 윤회의 관념에서와 같이 죽은 자들이 오히려 가까운 환경에 배회하고 있다고 하는 확신에서 나타난다. 불교는 열반을 말하고, 회교는 육욕적 낙원을 믿으며, 美洲의 紅人(홍인)들은 즐거운 수렵지를 동경한다.그러나 여러 이교에서의 내세관은 막연하고 미확실에서 생명의 영원한 계속을 가리키는 말 “ 아다나시우스”는 영어로 “immortality"이며, ”죽지 아니함“,”불사“로 표현되어 질 수 있다.1) 절대적 영생-가장 절대적인 의미의 영생은 하나님에게만 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6장 16절에서 하나님에 언급하여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다”고 하였다. 이 말은 결코 그의 피조물 중에는 아무 영생하는 자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만이 영새을 그의 본래적, 영원적, 필연적 속성으로 가지고 계시다 함이다.2) 계속적 영생-계속적, 무궁적 존재를 의미하는 영생은 인생의 영혼을 포함하는 모든 영들에게 돌려진다. 신체가 解消될때에 영혼은 그 해소에 참여하지 않고 개성적 존재로 따로 남아있다는 것은 자연종교 혹은 철학의 교설중에도 자주 언급되는 바이다.3) 타락 이전의 純正상태-신학적 용어에 있어 “영생”이란 명사는 또한 부패와 죽음의 종자를 전연 지니지 않은 인생의 상태를 지시함에 사용된다. 이 의미에서 인생은 타락 이전에 영생자이었다. 이 상태는 인생의 죽음에 굴복할 가능성에 제외하지는 않는 것이었다. 순정 상태의 인생이 죽음에 굴복하지는 않았으나 그리할 가능성은 있었다. 사실상 그는 죽음의 밥으로 되고 말았다.4) 최고 의미의 영생-최종에 “영생”이란 말은 특별히 내세론적 용어에 있어서, 죽음과 관계없고 죽음의 밥으로 될 가능성없는 인생의 지복상태를 말한다. 사람은 비록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을지라도 본래 이같은 최고 의미의 영생을 소유하지 못했던 것이다.“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11: 25.26)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에 약속된 것이야말로 최고 의미의 영생, 죽음의 침해를 받을 가능성이 없이 영속할 지복 상태의 생명이다.3. 인격적 영생의 代用物1) 종속적 영생- 어떤 사람들은 개인은 그의 후손의 무궁한 계승에 의하여 지상에서 생을 계속할 것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스스로 위안한다. 개인은 종족의 생명에 자기의 분을 공헌하이 들어오는 자를 영접하기 때문이다(사14:9)“스올”은 주로 의인들과 악인들의 구별없이 모든 별세자들의 수용소로 지시되었으나, 그들의 사후 신체들의 수용소로서의 무덤을 의미한때도 있다(창37: 35, 욥14:13)2. 근대적 제시근대적 음부관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1)그리스도 강림 전에 죽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소올 혹은 하계(underworld)에 감금되었다.2)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신때에 그는 경건한 죽은 자들을 그들의 감옥으로부터 구출할 목적으로 음부(하데스) 즉 지옥(hell)에 내려가셨다하며 그들은 사도가 에베소서4장 8-10절에서 그리스도에 의해 천당에 인도되었다고 말한 포로들이라 한다.3) 그의 강림 이후에 주 안에서 죽은 성도들은 천당에 허용되는 대신, 그의 강림 전에 족장이 죽어서 간 것과 동일한 처소와 상태로 간다.4) 구약 성도들이 메시야의 초림까지 스올에 남아 있은 것 같이 신약 아래 죽는 자들은 그의 재림까지 하데스에 남아 있는다.이 음부론에 대해 찰스 하지는 비평하기를, “유대인들이 메시야가 지상 나라를 설립하기를 기대한고로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에 의해 선포된 하나님 나라는 금생에 실현될 것이라고 추론된다. 그들이 메시야가 그들의 조상들의 영혼들을 스올로부터 구출할 것을 기대한고로 그것이 그리스도에 의해 현실적으로 성과되었다고 추상된다.그가 옥문을 열고 포로들에게 자유를 선포하러 오신 것은 참이었으나, 그 옥은 스올이 아니었으며 포로들은 별세한 족장들의 영혼들이 아니었다. 그가 그의 백성을 구속하려 오신 것이 참이나 그가 성과하신 구속은 위범된 하나님의 율법의 저주로부터요 음영들의 음울한 영역으로부터의 구출이 아니었다.3. 현대적 제시루이스 벌콥에 의하면 현대의 신학에서 성경의 음부(스올-하데스)관은 여러 가지고 제시된다. 그 중에 현대에 상당히 성해하는 견해는 구약의 스올(음부)은 신약의 하데스(음부)와 개념상 유사한 것으로서 그 개념은 이방인의 하계관에서 빌려온 것이라 함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구약과 신약은 경건자와 1,12)6) 기독교 신앙의 개요의 절정이 재림의 진리는 자주 惡變되며 불신임되며 오해된다. 주의 재림이 사람들의 실수로 스웨덴볼의 환상들과 크리스챤 싸인쓰의 “발견”과 몰몬교의 “망상”들과 여호와의 증인파의 오론과 다양의 근대 “재림론”의 궤변들과 동일한 것으로 보여지는 때가 많다.주의 재림은 교회의 공인된 교리들 중에 하나일 뿐이나 이것은 결코 등한히 볼 진리가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기독교 신앙의 개교에 절정을 걷는 진리이다.제 2 절 재림 전의 대사변들성경에 의하면, 주의 재림 전에 몇가지 중대한 사변들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성경은 성도들에게 경성하여 주의 재림을 대망할 것을 권면하는 동시에 또한 재림전에 반드시 생성할 대사변들을 예언한다.1. 복음의 세계적 전파-이방인의 부름1) 세계적 전파의 한도- 복음이 이미 만민 중에 전파되었다도 말할 수도 없고 세계의 각국에서 선교사들이 노력하여 예수의 대사명의 말씀을 성취하리라고 생각할 수도 없다.복음은 반드시 그들에게 ‘증언’의 의미로 전파되어 그들에게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에 대한 태도를 결정할만한 기회를 주었다고 말할만한 정도는 되어야 그리스도의 대사명대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일이”이 시행되었다 할 것이다.대사명의 말씀은 세계 모든 민족이 전제차로 복음을 수납할 것을 기대함이 아니나 모든 민족 중에 다 신중자들을 발견하게 되도록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게 됨을 이름이다.2) 교회의 현재 임무 -복음의 기쁜 소식은 모든 민족들에게 증거하기 위해 전 세계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신적으로 임명된 교회의 임무이다.3) 은혜의 복음의 전파-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은 사람을 구원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 보내는 유일의 복음이다. 재림은 “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는 그 유형한 단번의 일이다.2. 이스라엘 전국의 회심구약이 신약이 다 이스라엘의 장래 회심을 말한다. 그리고 로마서 11장 25-29절은 이 사변을 시간의 종말과 연락시키는 듯 하다. 특히 “성 외에 복음을 전하려고 시도하지 않았으나 오히려 주의 귀환을 대망하고 있었다.우리는 비록 주의 귀한 전에 있을 사변들을 알지라도 반드시 깨어 대망하여야 한다.4. 바울의 실례그는 자기가 주의 귀환까지 살겠노라고 진술한 일이 있었으나 그는 그가 그리할 수 있다는 것을 자주 암시하였다. 그가 “우리 살아 남은 자도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라고 말할때에 그는 단순히 자기를 일반 신자들과 동일시하고 주의 귀환때에 모든 신자들의 경험이 어떠할 것을 진술함이었다. 다른 서신들 속에서도 그는 그리스도 오실 때에 자기가 생존할는지 확실치 않다고 진술하였다(고후5: 6-10, 빌1:21; 3:20) 그는 자기가 죽으리라는 것을 명확히 진술하고 자기의 서신을 받는 디모데는 마땅히 복음을 전하며 그의 생시에 그리스도가 귀환하실 것을 기다릴 것이라고 고지하였다.5, 시대의 현상현 시대 교회의 현상에 배교의 상태들과 유대인 중에 진행되는 신흥운동을 보고 주의 귀한이 급박함을 역설하는 것은 시기 상조인 일이다. 재림에 앞서 배교가 있을 것이 예언된 것은 사실이나 과거에는 보다 더 심한 영적 저하가 교회에 있었으니 제 10세기 혹은 교회의 다른 흑암 시대들은 그 좋은 예들이다. 현재의 배교 상태보다 더 심한 것이 후에 올는지도 모르니 현재의 것을 재림의 징조로 단정함에 신중해야 할 것이다.성경의 심판의 묘사는 대망자들이 곤궁한 사람에 대한 선사와 美行으로 주를 봉사할 것을 명령한다. 이렇게 열렬한 영적 생활, 충실한 봉사, 자선한 행위로 주의 귀환을 대망하는 성도들은 가장 열렬히 또는 성실히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다.제 2 장 천년기요한계시록 20장 1-6절을 기초로 하여 말세 일을 구명할 때에는 그리스도의 재림 전이나 후에 천년의 기간을 가진 그의 지상 통치가 있을 것을 믿게 된다. 각 이론들의 타당성을 살펴본다.제 1 절 무 천년기 재림론1) 무 천년기의 의미함일돈 박사는 무 천년기에 대한 의미를 설명하기를, 이것의 옹호자들은 천년기는 최종 심판 전에 땅
    사회과학| 2009.11.04| 64페이지| 3,500원| 조회(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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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서의 역사적신빙성을 읽고 평가A좋아요
    복음서의 역사적 신빙성을 읽고...서론‘복음서는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인가? 아니면, 여러 사람들에 의해 꾸며진 이야기인가?’ 약 2000년 전에 쓰여진 예수님의 수많은 이적과 행적을 담은 복음서는 현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성도들에게 이러한 의구심을 들게 한다. 또한 많은 학자들이 복음서의 역사적 신빙성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다. 하지만 복음서의 신빙성에 대한 회의는 대부분 잘못된 방식으로 복음서를 분석하는 데서 비롯되었거나 이들 잘못된 방식이 의존하는 잘못된 가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기 ‘복음서의 역사적 신빙성’은 실제로 확실한 자료를 통해서 복음서의 역사성을 밝혀 주고 있다.‘복음서의 역사적 신빙성’은 모두 7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장에서는 교회사 전체에 걸쳐 채택된 주요 접근 방식을 조사한다. 2장에서는 종종 ‘현대 학문’으로 여겨지는 최근 50년 동안의 뚜렷한 발전을 돌아본다. 3장에서는 복음서의 기적 이야기 연구와 관련된 특별한 어려움에 대해 설명한다. 4장과 5장에서는 복음서의 병행 구절들 중 명백하게 모순으로 여겨지는 대표적인 사례들을 다루되 먼저는 공관복음 사이에 불일치로 보이는 부분을 살펴보고 다음으로 요한복음에서 야기되는 의문들을 검토한다. 6장에서는 신약 성경의 나머지 책들, 다른 초기 기독교 문헌들, 당시 유대교와 그레코 로만 자료들 등 복음서 이외의 자료에서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에 대한 증거들을 다룬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제목을 통해 제기된 문제인 ‘복음서는 신뢰할 만한 역사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제기한다. 7장에서는 책의 앞부분에서 발견한 내용들을 종합 정리하고 앞에서 다루지 않았던 복음서 전승의 세부 내역을 다루는 방식의 개요를 설명한다.본론1장 복음서의 신빙성에 대한 전통적인 접근법들초대 교회 시절부터 18세기 말까지 복음서의 역사적 신빙성에 대한 믿음은 성경의 영감성과 무오성에 대한 믿음의 당연한 귀결이었다. 이러한 믿음과 상관없이 복음서를 어느 정도까지 신뢰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복음서의 병행구절이 서로 차이가 남으로 신뢰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공관복음의 어떤 부분은 단어 하나하나까지 일치하는 반면 어떤 부분은 크게 차이가 나는 이유가 무엇인가?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많은 학자들이 네 복음서를 연속된 한 이야기로 묶어 보려고 시도해 보기도 하였고, 어떤 때에는 네 복음서의 저자들이 종종 신뢰할 수 없는 역사를 기록했다는 가정이 지배하기도 하였다. 복음서를 자료비평을 통해 예수의 생애를 기술한 많은 초기 자료들이 전적으로 믿을 만한 것이라고 밝힐 수는 없지만, 복음서 저자들이 복음서 내용의 대부분을 기록할 때 초기 자료에서 정보를 얻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는 있다. 이러한 자료들이 예수를 개인적으로 알았던 사람들이 아직 살아 있던 시기에 그 장소에서 기록되었다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2장 복음서 연구의 새로운 방법성경신학은 복음서 구성과 해석에 관한 새로운 이론을 상당히 많이 쏟아냈다. 대표적인 이론으로 양식 비평, 편집 비평, 미드라쉬 비평 등 세 가지는 복음서가 사실과 허구, 신뢰할 만한 역사와 상상력을 동원한 윤색 등이 혼합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복음서 연구의 각 방법은 때때로 복음서의 병행 구절들이 왜 서로 다른지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복음서 연구에 새로운 방법을 적용한 것에 대한 핵심은 새로운 방법들이 복음서의 역사적 신빙성에 대한 전통적인 확신을 뒤집는 데 실패하였고, 이 모든 방법들이 어느 정도 수정된 형태로 그 확신을 더욱 강화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는데 있다.3장 기적복음서의 기적은 모두 일관되게 예수를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알리고 하나님의 뜻과 길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아버지께서 보낸 자로 드러내는 역할을 하며 이러한 계시가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사역의 나머지 부분과 잘 맞물리고 있다.예수께서 누구이신지 스스로 결정하려면 예수께서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한 복음서의 증언을 모두 조사해 보아야만 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기적의 중요성이 경감되는 것이 아니다. 기적이 기독교의 주장을 모두 증명해 주지는 않지만 복음서가 진술하는 대로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기독교의 주장 중 많은 부분이 증명될 수 없을 것이다. 이 부분을 C. S. 루이스가 훌륭하게 표현하였다. ‘1세기 팔레스타인 지방의 기적 이야기들은 거짓이거나, 전설이거나, 역사이다. 만약 이들 모두 또는 중요한 것들이 거짓이거나 전설이라면 기독교가 지난 2천 년 동안 주장해온 것들이 모두 거짓이 된다.’ 최근의 학자들은 기적이 역사적인 것이며 기독교의 주장이 사실이라는 견해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가고 있다.4장 공관복음 사이의 모순점들공관복음이 형성된 환경은 예수에 관한 신뢰할 만한 정보를 매우 잘 보존할 수 있는 여건이었다. 그렇지만 최상의 여건 아래서도 역사가들은 실수를 할 수 있다. 여러 학자들이 중요시하는 것은 복음서 전승이 유포된 일반적인 환경이나 기적의 가능성에 대한 이론적인 논쟁이 아니라 복음서의 실제 자료 그 자체이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이 제시하는 예수의 생애가 서로 조화할 수 없는 만큼 차이가 있다면 편집 환경과는 상관없이 적어도 하나는 정확한 이야기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많은 학자들이 이러한 모순점들을 발견하고 복음서의 신빙성을 공격하지만, 복음서 저자들이 자신에게 전해진 전승을 자유롭게 바꾸어 쓰거나 재배치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이러한 모순들이 복음서의 역사적 신빙성을 잃게 할 수준까지는 아니라고 여긴다. 오히려 이러한 일들이 공관복음의 역사적 정황성을 견고하게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5장 요한복음의 문제요한은 예수의 수난과 처형을 제시하면서 자신의 신학적 중심 사상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즉 예수께서는 성육신한 말씀이며 하나님의 영광이 예수 안에서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한이 이런 방식으로 제시하는 사건들, 무엇보다도 수난 사건은 실제로 역사적인 사건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기 때문에, 계시가 역사가 되었기 때문에 절대 다른 것일 수가 없다.
    인문/어학| 2009.10.15| 3페이지| 1,000원| 조회(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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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스토L곤잘레스의 중세교회사 내용요약 평가A+최고예요
    유스토 L. 곤잘레스 『중세교회사』제 1부 중세 기독교제 1장 새로운 질서중세교회사에 있어 야만족의 침입은 교회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아리우스주의자였던 반달족은 439년 카르타고를 함락시키고 북아프리카와 로마를 약탈하였고 또 다른 야만 집단인 서고트족은 발칸반도 일대와 410년 로마를 정복하였다. 서고트 왕 리카드(586-601)는 A.D 589년 니케아 정통 신앙을 받아들인다.5세기 동안 고올지방은 부르군디족과 프랑크족에 의해 분리되었다. 프랑크족은 원래 독립된 부족들의 동맹형태였으나 메르베우스에 의해 국가가 통일되고 그의 손자인 클로비스는 기독교인 아내를 맞이하고 귀족들과 집단개종을 하였다. 그 후 궁재들 중 찰스 마르텔의 아들인 페핀은 교황의 지시에 따라 국왕에 임명되었다. 페핀의 아들 샤를마뉴는 중세 초기의 가장 뛰어난 통치자로 등장하여 교회의 개혁을 시도했고 교황에 의해 황제 임명된 인물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면서 교회의 지도자들은 왕들 아래 놓이게 되었다.대영제국(Great Britian)은 로마 제국의 통치에 완전히 복속된 적이 없었으나 이교도들의 침입이 있었고 아일랜드 또한 로마 제국에 예속된 적이 없었으나 기독교는 제국의 멸망 이전에 이미 그곳까지 전파되었다. 아일랜드 선교는 주로 성 패트릭의 공로라고 평가된다. 그가 세운 수도원을 중심으로 고대의 학문이 전수되었고 고대 로마 제국의 문명과 문화를 보전하여 후대에 전수하는 소중한 역할을 담당했다.야만인들의 침입은 이탈리아의 무정부 상태를 초래했다. 비록 명목상으로는 476년까지 로마에 황제들이 존재했으나, 실상 이들은 여러 게르만족 무장들의 꼭두가시에 지나지 않았다. 통고트족은 아리우스파였으므로 나케아 혹은 정통 신앙을 좇았던 이탈리아 주민들은 콘스탄티노플에 원조를 청했다. 이 때문에 통치자들은 이들 주님들이 반역을 꾀한다고 의심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정통주의 신앙을 유지하고자 했던 주민들은 주로 종교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반역 혐의로 박해를 받았다.이처럼 유럽은 이교와 아리우스주의lga) 여왕이 개종하여 게르만족 출신 선교자들에 의해 세례를 받았고 그녀의 손자 블라디미르에 의해 본격적으로 기독교가 발전된다. 기독교는 러시아를 통일하교 유지시켜 주었다.아랍 정복 후 “포티우스의 분열” 사건으로 인해 로마와 콘스탄티노플 사이는 더욱 악화되었다. 여기에 전통을 내세우는 비잔친 제국과 신흥 프랑크족 사이의 정치적 경쟁과 아울러 동방과 서방 사이의 뿌리 깊은 불신이 분쟁을 더욱 부채질하는 요소로 등장하였다. 교황들은 화해를 위해 현재의 사도신경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분열은 11세기 최종적 분열 결과를 낳는다.제 3장 제국의 복고와 계속되는 쇠퇴샤를마뉴가 레오에 이어 왕의 자리에 올랐을때 서방 기독교는 대부분이 황제의 손아래 있었다. 서방 비기독교 족들에게 기독교를 강요하여 프리지안이들과 색슨족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기도 했다. 당시 수도원은 초기의 경건과 열정을 상실한 상태였고 샤를마뉴는 이를 호복시키기 위해서 베네딕트를 통해 수도원 개혁을 시도한다. 더불어 비록 그가 배우지느 못했지만 학교와 교육 개혁을 통해 학문을 장려하였다. 그는 학교를 융성화 하였고 사본들을 복사하여 연구하였으며 상당한 신학적 활동을 펼쳐 나갔다. 이 때 활동한 위대한 학자는 존 스코투스 에리게나였다. 에리게나의 글들은 거의 사도들의 권위에 필적할 만한 무게를 지녔고 사람들에게 읽혀졌다. 그러나 그는 매우 신플라톤적이여서 바울을 신플라톤주의자로 오해하게 하였다.샤를마뉴가 세운 카롤링 왕조 시대에 주요한 신학 논쟁들은 스페인의 감독이었던 톨레도의 엘리판두스와 우르겔의 펠릭스의 사상을 중심으로 하였다. 본격적인 논쟁은 엘리판두스의 기독론이었으며 더불어 신학 논쟁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예정론과 성찬 속에 임재하는 그리스도의 문제였다. 이 신학적 논쟁에 대해 당시 신학자들이 나름대로 신학의 틀을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당시 국왕들과 영주들에게는 토지가 주어졌다. 이로 인해 봉건제도가 생겨났다. 이 토지는 유산 상속화되면서 점점 서부 유럽은 정치적, 경제쳐나갔다. 그러나 모슬렘들의 재도전으로 1187년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말았다. 무려 8차에 이르는 십자군 원정에서 단 2차례만 성공을 거두고 나머지는 처참한 패배를 맛보아야 했다. 이렇게 1270년 십자군 원정은 끝을 맺고 만다. 그후 잔존해 있던 서고트 왕국과 프랑족을 중심으로 해서 “레콩키스타”라고 불리우는 재정복 사업을 이슬람에 대항하여 펼쳐나간다. 성 야고보의 무덤 “발견”은 기독교적 에스파냐의 통일에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9세기에 들어와 이곳은 서부 유럽 전역으로부터 기독교 신자들이 들어왔고 비슷한 시기에 1002년 모슬렘들의 영역은 소왕국들로 분열되게 되었다. 이 틈을 타서 스페인의 왕국 중 하나였던 톨레도를 수복할수 있었다. 11세기 경 노르만인들고 스페인에 의해 정복당한 시실리야는 이슬람인들에 대항한 무력 전쟁이 영속적 성공을 거두었던 유일한 지역이었다.여러차례의 전쟁으로 기독교인들과 모슬렘들, 비잔틴 신자들과 라틴 신자들 사이에는 더 깊은 골이 자리잡게 되었다. 또한 십자군 원정과 스페인의 재정복은 교황의 세력을 강화시켰다. 십자군 원정을 주도하고 그 지도자들을 임명한 것은 교황들이었으며 이들은 또한 스페인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으므로 교황청은 보다 막강한 국제적 영향력을 획득하게 되었다. 또한 십자군 원정은 기독교의 경건 생활에 큰 영향을 주었다. 성경에 나타난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이게 만들었고 수도원들은 전투를 준비하는 투사들의 장소가 되어 버렸다. 특히 신학에 있어서 모슬렘과의 접촉은 중대한 결과를 가져왔다. 고대의 철학을 부활시켜 신학과 접목을 시키기도 했다. 십자군 원정시대에 도시와 상업이 발달하여 새로운 부의 축적현상이 일어나게 되었고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십자군 원정의 중요성에 대한 논란이 많이 제기되고 있다.제 6장 중세 기독교의 황금시대십자군 원정이후 기독교는 황금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이는 수도원 운동과 교황제를 통해 볼수 있다. 수도원 운동은 십자군 원정 이후 화폐 경있다. 초대교회는 로마식 건축형식을 선호했으나 12세기 중반부터는 로마건축 양식보다 고딕 양식을 선호하게 되었다. 이 고딕식 건축은 오늘날까지 남아있다.제 7장 몰락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인노센트 3세 때에 교황이 최고의 권력을 누렸으며 또한 탁발 수도회들은 폭넓은 선교활동을 하였다. 대학을 통해 신학의 체계가 발전하였고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였으므로 13세기는 중세 문명의 최고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반면에는 중세 기독교의 몰락을 가져오는 약점들도 존재하고 있었다.12-3세기의 화폐발전은 부르주아 계급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소유하게 했다. 새로운 계급인 부르주아 계급의 등장으로 봉건 영주들고 정면으로 대치되는 결과를 낳았다. 부르주아들은 왕들을 지원했고 국왕들 역시 부르주아 계급에게 많은 이익을 얻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근대 국가들이 발전하게 되었다. 근대 국가가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스스로를 한 국가의 국민으로 생각했다. 국가주의 현상으로 인해 교황의 권위를 차츰 약화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14-15세기 당시 교황의 권위를 약화시켰던 가장 중요한 사건은 프랑스와 영국의 백년전쟁과 대역병(흑사병) 사건 이었다. 이 대역병은 3년만에 대륙 전체를 휩쓸었고 인구1/3 이 감소시켰다. 흑사병은 이처럼 역사에 큰 영향을 주었고 시장활동이 줄고 실업율이 증가하여 경제적으로 유럽 전체가 영향을 주었으며 종교적으로 중요한 결과를 불러왔다. 이성의 한계를 느끼고 미신이 등장하게 되었다. 결국 비잔틴 황제들은 서방에 구원을 요청하였으나 실질적 도움을 받지는 못했다. 콘스탄티노플의 최후는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투르쿠군에게 침입을 당하고 모하메드 2세가 이를 점령하였다.13세기 말 베네데토 가에타니는 보니페이스 8세로 교황 자리에 즉위한다. 그는 권력욕이 불타는 오만한 인물이었다. 주위의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집권초기 이탈리에아 평화를 가져다 주었고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백년 전쟁을 종식시키는데 큰 공헌을 하기도 했다. 1300년은 보니페이스의 교화재위 중 가장 절교황보다 막강한 존재가 더 높은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콘스탄티노플을 투르크군이 위협이 있을 당시 공의회는 펠라라고 옮겨졌고 이로 인해 분열과 교황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세력으로서 발생하였던 종교회의 운동은 자체가 분열되기 시작했고 두 개의 공의회와 하나의 교황이 공존하게 된 것이다.당시 개혁은 교회 생활뿐 아니라 근본적 교리의 개혁을 추구하기 위한 움직임들이 있었다. 이러한 성격을 지닌 개혁 운동에 있어서 가장 뛰어난 인물은 존 위클리프와 존 후스이다.존 위클리프는 합법적 통치권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고 아무리 합버적이라고 하더라도 그 권위의 한계를 벗어나 영역을 확장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반역이라고 주장하며 당시의 지배권을 비판하였다. 그는 세속의 권력 또한 교회의 권력과 같은 성질의 권력으로 주장했다. 세속 권력 역시도 시민들에 대한 봉사, 혹은 섬김의 관점에서 측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더 극적인 형태를 띠게 되면서 그리스도의 교회는 교황과 같은 유형적 계급 제도가 아니라 미리 구원받도록 택정을 입은 잘들로 이루어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몸이라고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그는 성경에 있었도 성경은 오직 교회만이 성경을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고 이 성경은 교회의 택정함을 받은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가 죽은 뒤 그의 추종자들은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제 4차 라테란 공의히는 1215년에 화체설의 교리를 선언했지만 위클리프는 이 교리가 성육신 고리에 위배된다고 생각하여 그리스도의 임재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의 주장들은 당시 교회의 공식적 교의에 어긋나는 것이었으므로 그는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그의 추종자들은 그의 사상을 따르면서 후에 영국의 프로테스탄트 운동의 영향을 주었고 보헤미아 지방의 존 후스에게 까지 영향을 주었다.존 후스는 유명한 설교가요 학자였고 대학교의 총장의 자리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그는 존 위클리프의 영향을 받아 그의 많은 사상들을 지지했다. 그러나 그가 속한 교회는 서방 했다.
    사회과학| 2009.10.07| 14페이지| 2,500원| 조회(2,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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