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요청 쿠폰 이벤트
*승*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2
검색어 입력폼
  • 외국인을 위한 쓰기교육에 대하여
    쓰기 교육에 대하여본 레포트를 통해서 외국인을 위한 쓰기 교육을 효과적으로 가르치는 방법에 대해서 논해보도록 하겠다.그동안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에 대해서 많은 연구를 해왔다. 단계별 교육 내용의 선정 및 교육 방법론에 대한 연구등이 많이 이뤄졌다. 하지만 기초 단계에 대한 관심은 저조한 편이었다. 언어 교육에서 기초단계는 언어 교육의 효과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단계이므로, 초기 단계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실시해야 할 것이다. 한국어는 결코 배우기 쉬운 언어가 아니며, 한글 또한 과학적이고 우수한 글자임은 확실하나, 그 원리를 깨우지는 것이 외국인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린이들은 모국어의 글자를 배울 때 이미 모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해진 후에 배우는데다가 자연스럽게 그 언어 환경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외국어의 문자를 배우는 것과는 다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언어인 경우라면 모국어 상황에서도 그 언어에 대한 정보를 많이 접할 수 있어 그 글자가 생소한 글자라는 느낌은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한국어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처음 한국어를 접하는 학습자들은 한글을 글자라기보다는 하나의 기호나 그림으로 인식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기초단계의 교육 내용과 교육 방법은 현재보다 훨씬 자세하게 나와야 할 것이다.모국어 교육에서 문자 교육을 받게 되는 시기는 주로 유아기에서 아동기로 넘어가는 시점이다. 그러나 외국어 교육은 이와는 많이 다를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공식 교육에서 한글 자모 교육을 우선적으로 실시하고 있다고 밝히고 이러한 점에서 모국어 습득과 가장 튼 차이를 가진다고 하였다. 이러한 차이는 외국어로서의 언어 교육환경이라는 것과 대부분의 학습자가 성인이어서 어린이와는 인지방법과 기대학습이 다른 것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현재 대부분의 기관에서는 자모교육 중심으로 교육내용을 설정하고 있지만, 학습자들은 한글 자모를 쓰고 읽는데 많은 오류를 경험하고 있다. 이는 마조교육에 대한 기술방법과 교육방법에 대한 연구가 그동안 미진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글 자모의 생성원리, 모아쓰기, 발음 등은 외국인들에게 낯선 원리일 뿐 아니라 이해하기 힘든 부분일수 있으므로 효과적인 기술 방법과 교수법에 대한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대부분의 학습자가 성인임을 고려하여 자모교육을 중심으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모국인 들은 자연스럽게 음성언어를 접하고 그 후에 자모를 익히는 습득 단계와 달리 제 2언어교육에서는 자모 교육부터 실시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그러면 외국인들을 위해서 어떠한 학습을 선행해야 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다.① 체계적인 내용을 제시하고 쓰기 연습을 시켜야한다.한글의 창제 배경을 설명하고, 한글의 기본 모음은 천(天), 지(地), 인(人)의 모양을 본떠 만든 것이라고 제시하며 기본모음끼리 결합하여 여러 모음들이 탄생하게 되었음을 설명한다. 모음으로만 된 어휘를 연습으로 제시하여 모음만 배운 단계에서도 한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한다는 점이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이때 한글은 자음의 빈자리는 음가가 없는 ‘ㅇ’을 써넣어야 한다는 정보도 제공해야한다.한글의 자음은 사람의 발음기관을 본떠서 만들었다고 설명하며 한글의 기본 자음이 발음기관 어디의 모양을 본떴는지 그림으로도 설명해 줘야한다. 그리고 가획의 원리에 의해 그 외 자음들이 만들어졌음을 표로 설명해주는것도 선행되어야한다. 자모음 발음은 국제음성기호를 이용하여 설명하고 자음의 발음과 함께 제시하여야한다. 한글의 받침은 한글의 자음을 이용한다는 사실도 숙지시켜야하며 소리는 7개음이 대표로 난다는 것도 제시해줘야 할 것이다.쓰기의 특징 중 영구성은 반복적인 쓰기 학습을 통해 학습자가 한글의 특징을 이해시키는 것이며 어느 정도의 효과성을 지녔다라고 볼 수 있다.그리고 구두 언어에 비하여 처리속도의 제한을 받지 않음으로 인하여 외국인 학습자들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또 공간적인 차이를 상쇄시킬 수 있다. 말은 시간의 단편적인 특성으로 인하여 영속성을 지닐 수 없지만 글은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이러한 글쓰기는 철자법을 통해서 읽는 이로 하여금 뜻의 전달이 비교적 쉽다. 하지만 이러한 것을 이해 할 때는 그 글의 숨은 뜻을 이해하여야 한다. 복잡성이란 문자와 언어의 상관관계를 나타낼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학습자에게 제대로 인식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또 글은 말에 비하여 형식적인 특징이 강하다. 논리적 순서를 바탕으로 글을 작성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이러한 쓰기의 특징들을 통해 외국어 학습자의 능력을 크게 향상 시킬 수 있을 것이다.② 단계적으로 발음 교육을 시켜야한다.쉬운 발음부터 외국인 학습자를 위해 인지시키고 그에 알맞게 발음 교육을 병행해야한다.그렇게 인지시킨 후 어려운 발음도 체계적으로 익히게 하는 것이 옿ㄹ은 방법이다.③ 어휘 중심으로 교육을 시켜야 한다.한국어를 연구하기 위해서 온 학습자들이 대부분 아니기 때문에 이들이 배우고자하는 한국어 어휘를 바탕으로 깔면서 문법 교육을 병행해야한다. 그리고 비교적 학습자들이 쉽게 접할수 있는 어휘들로 구성된 문장으로 교육 시켜야할 것이다.위와 같은 방법들을 통해서 외국인 학습자들을 보다 쉽게 가르치면 좋겠지만 현실은 이와 같지 않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생소한 한국어를 쉽게 이해시키기란 힘들 것이다.그래서 쓰기 교육에 있어 모양의 유사성을 고려해서 학습해야한다.한글은 가획의 원리로 만들어진 글자이기 때문에 한 획의 차이로 다른 글자가 된다. 처음 한글을 접하는 학습자인 경우 한글의 모양이 유사해서 구별하기 힘들다고 호소할것이 분명하다. 이렇듯 제자원리를 통해서 글을 이해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그리고 다른 형태의 같은 글자도 교육해야할 것이다.한글에는 같은 글자인데 다른 모양을 가지고 있는 글자가 몇 개 있다. ‘ㅈ’, ‘ㅊ’, ‘ㅌ’, ‘ㅅ’, ‘ㅎ’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모습도 같이 알려주어야 할 것이다.그리고 획순을 제시하고 쓰기 연습을 시켜야 할 것이다. 획순이 반드시 정확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획순이 달라질 때 글자모양이 이상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획순 교육은 빠져서는 안 되는 내용이다.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써야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획순에 대해서는 반드시 언급해야한다.1.)통제 자유 작문 접근법과 2.)자유 작문 접근법이나 3.)단락 문형 접근법 그리고 4.)문법 구문 구성 접근법, 5.)의사소통 접근법, 6.)과정 중심 접근법이 있는데 각각의 하나의 접근법중에 어느 것이 이렇다 할 무게중심은 없다.그렇다면 이러한 접근법과 같이 쓰기교육을 할 때 활동유형은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면 개인적 쓰기, 공적인 쓰기, 창조적 쓰기, 사회적 쓰기, 학문적 쓰기, 제도적 쓰기등이있다. 각각의 특징들은 글의 포인트와 같이 개인적으로 일기나 일지 메모등을 쓰는 것이며 공적인 쓰기는 요청서나 문의서등 각종 공무에 해당하는 쓰기를 나타낸다. 창조적 쓰기란 시, 수필, 소설등과 같은 창조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작성하는 것이며 사회적 쓰기란 편지나 초대장등의 공적인 쓰기와 맥락을 같이한다. 학문적 쓰기는 강의 노트나 줄거리, 요약하기, 보고서등의 쓰기를 말하며, 제도적 쓰기는 회의록 검토서, 신청서등의 공적인 쓰기와 맥락을 같이한다.brown(1994)은 교실에서 요구되는 쓰기의 유형을 다섯 가지로 분류하였다.모방쓰기, 집중유도쓰기, 자율적 쓰기, 전시용 쓰기, 실제쓰기 등이 있다. 모방쓰기는 학습초기에 서져 있는 문장을 그대로 베껴쓰는 형식이며 집중유도 쓰기란 문법학습이나 평가를 위한 통제형 연습 문제 답 작성이나 주어진 지시에 따라 글을 변화시키는 통제나 유도쓰기에 해당되는 것이다. 자율적 쓰기란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글이 아닌 순수하게 자기 자신만을 위한 글이다. 전시용 쓰기란 기본적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쓰기이다. 실제쓰기란 주위 사람들과 소통하기위한 글을 쓰는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쓰기방법의 활동에는 베껴쓰기와 받아쓰기 통제된 쓰기등이 있다.
    인문/어학| 2009.04.07| 5페이지| 1,000원| 조회(564)
    미리보기
  • 홍명희의 문학관과 임꺽정의 창작의도
    1. 머리말벽초 홍명희는 1888년 충북 괴산에서 풍산 홍씨 홍범식(1871~1910)과 은진 송씨의 장남으로 출생했다.필명 가인(假人·可人)·백옥석(白玉石)·벽초(碧初). 일본의 다이세이[大成]중학에서 수학했으며, 귀국 후 휘문고보 교사, 오산고보 교장, 연희전문 교수를 역임했다. 《시대일보(時代日報)》 사장으로 있다가 1927년 신간회가 결성되면서 부회장으로 참여했으며, 1930년 신간회 주최 제1차 민중대회사건으로 일본경찰에 피검되기도 했다. 일제하 민족운동의 지도자적 인물이던 그는 단 1편의 소설 《임꺽정(林巨正)》(1928∼1939)으로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보했는데, 이 작품은 《조선일보》에 10여 년에 걸쳐 연재된 당대 최대의 장편 역사소설이었다. 조선 명종(明宗) 때의 도적 임꺽정의 이야기를 허구화한 이 소설은, 천민계층의 반봉건적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의 생활양식을 다룬 데 그 특징이 있다.또한 봉건 귀족을 우월성의 존재로 파악하지 않고 오히려 천민계층을 이상화함으로써 계급의식과 집단의식을 현저하게 드러냈다. 그는 역사소설을 통해 계급의 관점에서 식민지적 모순보다는 자본주의적 모순을 겨냥하는 특수한 역사의식의 시야를 노출시켰다. 8.15광복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장을 역임하다 월북했다.이렇듯 홍명희가 살아간 세상은 조선왕조의 마지막 시대, 일본의 식민지 통치시대, 해방 후 남과 북의 이념적 대립속에서 살았다. 이렇듯 복잡한 시대적 상황에서의 문학관과《임꺽정(林巨正)》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2. 홍명희의 문학관과 임꺽정의 창작의도홍명희는 부유한 양반집에서 귀하게 자랐으며 장남으로써 온 집안의 귀여움을 받으며 자랐다. 하지만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자라면서 차차 깨닫게 되었지만 일본유학시절 즉, 23세가 되던해 일본에 위해 치욕적인 경술국치를 당하게된다. 금산군수로 있던 부친이 이에 분개하여 자결을 하게된다. 그때부터 벽초의 ‘세상을 보는 눈’은 개인 차원이 아닌 민족의 현실문제공식 모임에서 문학에 대한 자신의 생각들을 말했던 일도 그러한 면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로 생각된다.벽초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 평등사상을 드러내려 하였다.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나누는 신분제도는 잘못이며 인간의 능력은 제도로 규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작품에 나타난 이러한 의식은 그의 활동은 통해서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소설 임꺽정 안에서의 주제의식은 이 작품에 나타나는 모든 사건이나 문제의 출발점이 잘못된 신분제도의 모순이라고 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이제까지의 왕조사 중심의 역사소설이나 궁중 암투를 그린 흥미위주의 소설이 아님은 여러차례 증명되어 왔다.벽초의 진보적 세계관은 그가 스스로 밝힌 임꺽정의 창작의도에서 잘 드러난다.“임꺽정이란 옛날 봉건사회에서가장 학대받던 백정계급의 한 인물이 아니었습니까? 그가 가슴에 차넘치는 계급적 해방의 불길을 품고 그때 사회에 대하여 반기를 든 것만 하여도 얼마나 장한 쾌거였습니까? 더구나 그는 (…) 백정의 단합을 먼저 꾀하였던 것입니다. (…) 백정의 단합을 꾀한 뒤 자기가 앞장서서 통쾌하게 의적 모양으로 활약한 것이 임꺽정이었습니다. 그러이러한 인물은 현대에 재현시켜도 능히 용납할 사람이 아니었습니까.”“조선문학이라 하면 예전 것은 거지반 지나(支那)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사건이나 담겨진 정조들이 우리와 유리된 점이 많았고, 최근의 문학은 또 구미문학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양취(洋臭)가 있는 터인데 임꺽정만은 사건이나 인물이나 묘사로나 정조로나 모두 남에게서는 옷 한벌 빌어 입지 않고 순조선 것으로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조선정조(朝鮮情調)에 일관된 작품' 이것이 나의 목표였습니다.” {삼천리} 9호 1933년 9월)위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앞의 것은 작가의 의식과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다시말해 작가는 봉건시대의 하층인물인 임꺽정을 통하여 "계급들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을 보여주고 "작가가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당대와의 유사성을 암시"하려고 했던것이 분명하다. 이 한마디면 모든 것이 그들을 설명해줄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이러하지 않아 친일을 한 작가도 수없이 많다. 이러한 격변의 시대와 한탄의 시대속에서 홍명희는 언제나 정도를 지키며 앞으로 나아간 인물이다. 양반가문의 귀한 자제로 태어난 그가 일제 식민지 때문에 봉건적인 사고방식을 반봉건적으로 개혁하며 민중들에게 그들의 목소리를 내게한 깨어있는 사회운동가이자 작가였다. 우리가 식민지에 대항할 힘을 그의 소설 임꺽정을 통해서 민중들을 선도하려한 것이다. 신문상에 많은 논단과 사설을 집필한 그였지만 생애에 남긴 소설은 단 한편, 임꺽정뿐이었다. 이는 그가 월북하여 북한에 살아가면서도 집필을 하지 않은 의도는 아마 중도적 성향 때문이었으리 라고 본다.))임꺽정을 통해 현대 북한, 한국사회가 다시한번 뒤를 돌아봐 분단의 현실을 되새겨보았으면 한다.4. 임꺽정의 줄거리{임꺽정}은 {林巨正傳}으로 1928년 11월 21일부터 {조선일보}에 연재되기 시작해서 1929년 12월 26일까지 302회분이 [봉단편](鳳丹篇), [피장편](皮匠篇), [양반편](兩班篇)으로 연재되었고, 수감생활로 3년간 중단되었다가 2차로 1932 12월 1일부터 1934년 9월 4일, 그가 건강상의 이유로 연재를 중단하기까지 541회 연재되어 [의형제편](義兄弟篇)과 [화적편](火賊篇)의 초두가 쓰여졌다. 3차 연재는 1937년 12월 12일 {林巨正傳}을 {林巨正}으로 고쳐서 재개되었다가 {조선일보}의 폐간으로 1939년 3월 11일 까지 228회분에서 중단되었다. 단행본으로는 그해 조선일보사에서 전 8권으로 계획하고 {林巨正} 제1, 2, 3권(의형제편 상,하, 화적편 상)이 출간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제4권(화적편 중)이 출간되고 10월 잡지 {조광}에 단 일회분이 연재되고 다시 중단된다. 해방후 을유문화사에서 [의형제편] 1, 2, 3권과 [화적편] 1, 2, 3권을 간행하였으나 조선일보사와 마찬가지로 전반부([봉단편] [피장편] [양반편])는 출간하지 않았다. 이는 홍명희 자신이 전반부를를 혼내주기 위해 병해대사는 예년보다 더 큰 불사를 하는 양주 회암사로 찾아가 대중 앞에서 그의 위신을 실추시킨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나라 재물을 먹으며 교활한 행동을 계속한다. 이런 가운데 왜변이 일어났다. 이봉학으로부터 이 소식을 들은 꺽정은 그와 함께 출전하려 하지만 백정 신분 때문에 군에 뽑히지 못하고 혼자 전장에 갔다가 위기에 처한 이봉학을 구출해준다.(양반편)농민의 유복자로 태어나, 행랑어멈이 된 편모 밑에서 자란 박유복이는 도인을 만나 병을 고치고 표창 던지는 재주를 익혀 친을 죽게 한 노첨지를 죽여 원수를 갚는다. 관가에 쫓기자 도주하다가 도둑 오가의 수양딸을 얻어 청석골에 살게 다. 인근에 사는 머슴 곽오주는 장꾼들을 털던 오가를 때려 눕혀, 보복을 하러 온 유복이와 의형제가 된다. 젊은 과부를 엎어와 부부의 의를 맺고 살다가 그의 아내가 주인집 아들에게 겁탈당할 뻔하였고, 그러다가 해산 후유증으로 죽자 젖동냥으로 아이를 키운다. 밤새 배고파 보채는 아이를 태질해 죽이고 아이 울음 소리만 들으면 미쳐서 아이를 죽이려한다. 그러면서 그는 청석골로 들어가 우는 아이는 무조건 죽이는 화적이 된다. 소금장수 길막봉이는 힘이 장사로 자형을 불구로 만든 곽우주를 잡아 관가에 넘기려 하나, 꺽정이가 화해 시킨다. 소금장사 길에 그는 데릴사위가 된다. 그 후 신분 탓에 멸시하는 처삼촌 박선달을 혼내주고, 장모의 구박 탓에 데릴사위 노릇을 그만두고 청석골로 들어가 화적이 된다. 황천왕동이는 백두산에서 자라서 걸음이 남들보다 훨씬 빨랐다. 그는 매부 꺽정의 집에서 지내다가 장기의 명수 백이방을 찾아 나선다, 천하일색의 딸을 둔 이방의 사위취재에 그가 통과해 장가를 들고 봉산의 장교가 된다. 배돌석은 역졸의 아들로 돌팔매질을 잘 하여 호랑이를 잡고 역졸이 되고 또 호환으로 과부가 된 여자를 재취로 맞는다. 그는 왜변 때 전쟁에 나가 이봉학과 교우를 맺었던 사람으로 유복과 천왕동이와 친하게 지낸다. 그런데 아내가 부정하여 살해하고 도망치다 체포된다. 그러자 유복이 습격 소식을 듣고 동요하여 하나 둘 청석골을 버리고 떠나고 만다. - 이하 미완(화적편)5. 벽초 홍명희 연혁1888년.1세 7월 3일(음력 5월 23일) 충북 괴산군 괴산면 인산리(人山里)에서 홍범식(洪範植)과 은진(恩津) 송씨(宋 氏)간의 장남으로 태어남.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순유(舜兪), 호는 가인(假人)·가인(可人)·벽초(碧初)1888년, 1세 모친 은진 송씨 별세하다. 이조판서를 지낸 증조부 효문공(孝文公) 홍우길(洪祐吉) 별세.1891년, 4세 한양(漢陽) 조씨(趙氏)가 계모가 되다.1892년, 5세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1985년, 8세 『소학(小學)』을 배우고 한시를 짓기 시작.1898년, 11세 『삼국지』를 비롯하여 중국소설들을 탐독하기 시작.1900년, 13세 참판 민영만(閔泳晩)의 딸인 여홍(驪與) 민씨(閔氏)와 혼인.1901년, 14세 상경1902년, 15세 서울의 중교의숙(中橋義塾)에 입학.1903년, 16세 장남 기문(起文) 출생.1905년, 18세 중교외숙을 졸업하고 귀향하여 『춘추(春秋)』 4전(四傳)을 공부하고 일본인 부부에게 일어 회화를 배움. 동경유학을 떠나다. 동경에서 문일평(文一平), 이광수(李光洙) 등과 교우.1906년, 19세 동경상업학교(東京商業學校) 예과(豫科) 2학년에 편입하다. 최남선(崔南善)과 교우.1907년, 20세 동경 대성중학교(大成中學校) 3학년에 편입.서양과 일본의 근대 문학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독서에 탐닉.1909년, 22세 『대한홍학보』에 논설문 『일괴열혈(一塊熱血)』(창간호:3월호) 등을 발표.1910년, 23세 2월, 졸업시험을 앞두고 학업을 포기한 채 귀국.그러나 평소 성적이 좋았으므로 대성중학교에서 졸업장 수여.『소년』지에 『쿠루이로프(끄릴로프) 비유담』(2월호),안드레이 니에모예프스키의 시를 번역 한 『사랑』(8월호) 등을 발표.8월 29일, 금산군수로 재직중이던 부친 홍범식이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당하여 순국(殉國).차남 기무(起武) 태어나다. 호적상 이름은 기은(起殷)19연재.
    인문/어학| 2009.04.07| 9페이지| 1,500원| 조회(269)
    미리보기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4월 18일 토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7:32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