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 1593~1652/3)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아버지는 당시 명망있는 화가였던 오라지오 젠틸레스키로 그는 딸에게 그림을 가르치기 위해 아고스티노 탓시라는 자신의 제자이자 동료였던 화가를 고용한다. 아르테미시아는 탓시의 가르침으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카라바조적 화풍을 습득한다. 그러나 탓시는 스승으로서의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그녀를 강간한다. 이를 알게 된 오라지오는 탓시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하지만 당시 사회에서 이는 매우 드문 일이었고 강간죄는 그리 심각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실제로 아르테미시아는 그녀의 말이 진실임을 입증하기 위해서 고문을 당했고 그녀가 원래 난잡한 성생활을 즐겼다는 탓시의 비난을 견뎌야 했다. 결국 젠틸레스키 부녀는 소송에서 승리했지만 탓시에게는 8개월의 형이 내려졌을 뿐이고 오라지오는 동료 화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죄로 로마의 화가 집단에서 배척되었고 아르테미시아는 판결 직후 피에트로 스티아테시라는 피렌체인과 결혼하여 로마를 떠났다.‘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는 아르테미시아가 일생에 걸쳐 다루었던 주제이다. 이 그림은 그녀가 결혼하여 피렌체에 도착하자마자 완성한 것이다. 아르테미시아는 이 그림을 당시 피렌체의 군주였던 코시모 데 메디치에게 선물하였고 현재에도 피렌체의 메디치 저택을 개조해서 만든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유디트는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여성으로 이스라엘의 베툴리아에 살았던 정숙한 과부였다. 홀로페르네스라는 장수가 이끄는 앗시리아의 군대가 베툴리아로 쳐들어 오자 그녀는 도시를 구하기 위해 아름답게 차려입고 하녀 한 명과 함께 적진으로 들어간다. 그 곳에서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하는데 성공한 그녀는 그가 술에 취해 잠들도록 한 다음 그의 목을 베었고 그 목을 베툴리아의 성벽에 매달아 둔다. 다음 날 아침 성벽에 매달린 지휘관의 머리를 본 앗시리아의 군대는 서둘러 도망쳤고 베툴리아는 앗시리아의 위협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이 그림은 아르테미시아의 스승이라고도 할 수 있는 카라바조의 영향이 크게 나타난다. 사선으로 비추며 장면을 한층 더 극적으로 보이게 하는 빛이나 풍부한 색감등은 그녀가 카라바조의 화풍을 충실히 따르고 있음을 말해준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라는 주제 자체도 카라바조가 10여 년 전에 이미 다루었던 주제이다.그러나 카라바조의 그림과 비교했을 때 두 그림 사이의 차이는 명백하다. 홀로페르네스의 괴로워하는 모습, 피가 사방으로 튀는 잔인함은 유사하나 특히 유디트의 모습은 큰 차이를 보인다. 카라바조가 그린 유디트는 아름답고 갸날픈 여성으로 남성의 목을 벨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녀의 위치 또한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고 있다고 보기에는 너무 멀리있다. 카라바조의 유디트는 조국을 구해낸 ‘아름다운’여성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그러나 아르테미시아가 그린 유디트는 근육질의 강인한 여성으로 홀로페르네스의 머리채를 잡고 있는 그녀가 그의 목을 베고 있음은 분명하다. 카라바조의 그림에서 옆에 조용히 서있었던 유디트의 하녀는 홀로페르네스의 몸을 눌러 주인을 돕고 있으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고 있는 유디트의 얼굴에는 결의가 넘쳐흐른다. 이 그림은 팔이 얼굴에 비해 지나치게 강조되었다거나 필요이상으로 잔인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페미니즘 미술사가들은 아르테미시아의 여성으로서의 개인적인 울분과 분노를 읽어낸다. 유디트의 얼굴이 아르테미시아의 자화상이라는 연구는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해준다.아르테미시아는 이후 제노아, 나폴리, 런던 등을 오가며 작품활동을 하였고 나폴리에서 생을 마쳤다. 그녀는 아카데미에서 그림을 그리도록 허가되었으며 대부분의 여성 화가들이 초상화, 정물화 등의 덜 중요한 주제의 그림을 그리던 시대에 역사화, 종교화 등의 통해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어 서양미술사 최초의 여성화가로 이름을 남겼다.
한중일 건국신화의 비교대부분의 국가는 그 탄생을 신화에 의해서 설명하려 한다.국가의 탄생을 설명하는 이 신화를 우리는 ‘건국신화 ’부른다.대부분이 허구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진 건국 신화에서 왕이 하늘의 핏줄임을 강조해 왕의 통치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또한 하늘에 의해 선택받은 민족의 우월성을 나타내려 하는 것은 동서양이 마찬가지이이만 동양의 신화에서는 건국자들이 서양의 경우처럼 천상의 세계에서 추방당한 것이 아니라 지상의 세계를 이상적으로 보고 자발적으로 천상을 떠났다는 차이점이 있다.그러나 동양의 신화들 간에도 여러 차이점이 보이는데 여기에서는 우리나라와 일본, 그리고 중국의 건국 신화의 차이점과 공통점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다.먼저 한국의 건국신화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옥황상제의 서자 환웅이 인간 세상으로 내려오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인간 세상을 다스리고자 천부인 세 개와 풍백,우사,운사 등 신하 3천여 명을 거느리고 신단수 밑으로 내려온 환웅은 인간세상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며 세상을 다스리게 된다. 이때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있어 환웅에게 사람이 되기를 청하자 환웅은 쑥과 마늘을 주며 백일동안 이것을 먹으며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호랑이는 백일을 견디지 못하고 굴에서 뛰쳐나가지만 곰은 백일을 견뎌 인간 여자로 변한다. 그러나 여자로 변한 곰이 혼인할 상대가 없어 매일 기도를 올리자 이를 본 환웅은 잠시 인간의 몸으로 변하여 웅녀와 혼인을 한다. 그리고 이들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한민족의 시조인 단군왕검이다.단군왕검은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고조선을 세워 한민족의 시조가 된다.단군왕검은 약 1500년간 나라를 다스리다가 산 속으로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중국은 신화와 역사시대의 경계가 분명치 않지만 대부분 3황 5제까지를 신화시대, 그리고 하나라의 성립부터를 역사시대로 본다. 3황은 복희,여와, 신농의 세 사람을 지칭하는데 이중 복희는 8괘와 악기,글자,혼인제도를 만들었으며 어업과 목축을 가르쳤다.여와는 복희와 부부신이라고 여겨진다.신농은 쟁기를 만들어 농경을 가르쳤으며 의약을 만드는 법,물물 교환하는 법을 가르쳐 인류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이들 세신이 가르쳤다고 본다.중국민족의 시조는 요슁지방 군주의 아들로 그의 어머니가 들판에서 기도를 올리다가 큰 번개가 북두칠성을 감싸는 것을 보고 잉태했다고 한다.황제는 곰과 호랑이 군대와 힘을 합쳐 판천의 들과 탁록의 들에서 두 번에 걸쳐 큰 싸움을 한 후 승리한 황제는 요슁 지방에 통일 국가를 건설한다.황제는 쿤륜산에 궁궐을 짓고 나라를 다스리다가 300살이 되어서야 하늘로 올라가 옥황상제가 되었다고 전해진다.한국과 중국의 건국신화는 유사한 점이 많이 보인다. 먼저 두 신화 모두 도교적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단군은 2000세까지 살다가 신선이 되었으며 황제는 300세까지 살다가 옥황상제가 되었다. 또한 두 나라는 모두 창건과정에서 곰과 호랑이의 개입이 있다.이는 곰 또는 호랑이를 상징으로 하는 부족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나라가 세워지던 당시의 토템사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일본의 건국신화에는 남매신이 등장한다.이자나기와 이자나미가 그들인데 이들은 먼저 혼돈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물방울로 일본열도를 만든 후 여러 신들을 낳는다.그런데 불의 신을 낳던 중 이자나미가 죽게 된다.이자나미의 죽음을 슬퍼한 이자나기는 이자나미를 찾아 죽음의 땅까지 가서 이자나미를 찾지만 죽음의 땅을 빠져나갈 때까지 이자나미의 얼굴을 보지 않는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이자나미는 이승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죽음의 신이 된다.그리고 슬픔을 견디지 못한 채 바닷가를 거닐던 이자나기의 왼쪽 눈에서 태어나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가 일본민족의 시조가 된다.아마테라스는 손자인 호노니니기를 5부의 신과 함께 지상으로 내려보내 벼를 전해 농경을 가르침과 동시에 지상에서 인간여자를 아내로 맞아 대대로 그 자손으로 일본을 지배하도록 한다. 그 증거로 3종의 신기를 지니고 가도록 해주는데 이는 풍요를 상징하는 옥구슬, 종교의식에 사용되는 거울, 무력을 상징하는 신검이다.이들은 아직도 일본 천황의 상징으로 소중히 보관되어 천황의 즉위식에 사용되고 있다고 하는데 이를 볼 수 있는 이는 하늘의 핏줄을 이어받은 천황 본인 밖에 없다.호노니니기는 지금의 규슈 땅에서 하나(꽃)와 이와(바위)를 만났는데 그는 미인인 하나를 선택한다.일본인들은 호노니니기가 수명이 영원한 바위를 버리고 대신 수명이 짧은 꽃을 선택했기때문에 그 자손인 천황이 신의 자손이면서도 영원히 살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호노니니기와 하나는 세 아들을 낳았는데 그 중 막내아들이 일본의 초대 천황인 진무천황이며 지금의 천황까지 그 핏줄이 끊기지 않고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표준어와 방언◈목차◈머리말방언사회방언2.1.1. 사회방언의 정의사회방언의 분류 및 그 특징지역방언지역방언의 정의지역방언의 분류 및 특징표준어표준어의 정의표준어의 특징맺음말머리말‘방언(方言;dialect)’은 표준어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일반적으로 말할 때 방언은 ‘사투리’라는 말로도 표현되며 표준어가 아닌, 어떤 지방 특유의 언어를 일컫는다. 이 때의 방언, 또는 사투리는 그 지방의 언어체계 전반이 아니라 국가의 공용어로 제정되어 있는 표준어와는 다른 그 지방에만 존재하는 특유의 언어요소를 가리키며 이는 대부분 말의 억양이나 어휘의 차이 또는 음운의 차이로 나타난다.그러나 이와 달리 언어학 또는 방언학에서 말하는 방언은 한 언어가 어떠한 특정 요인에 의해서 분화된 ‘하위단위’를 말한다.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의 경상도 방언, 전라도 방언, 제주도 방언 등은 모두 한국어라는 하나의 언어를 구성하고 있는 ‘하위단위’인 것이다.이 보고서에서는 방언과 표준어에 대해서 간략히 알아보고자 한다.방언방언은 그 분류 방식에 따라서 크게 사회방언과 지역방언의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지역방언은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사투리’를 말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방언’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방언은 지역방언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매일 접하고 있는 방언의 한 종류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거나 또 언어의 차이를 인식하는 사람들도 이를 ‘방언’이라 생각하는 경우는 드물다.사회방언2.1.1. 사회방언의 정의사회 방언(社會方言; social dialect)은 지리적 거리의 차이가 아닌 사회적 요인,즉 사회 계층의 차이, 성별의 차이 또는 세대 차 등에 의해서 달라진 언어이다. 사회방언은 지역방언만큼 뚜렷하게 나타나거나 인식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최근 사회 언어학의 등장 이후에 비로소 주목을 받고 있다.사회방언의 분류 및 그 특징사회 방언은 때로 계층언어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사회적 언어 차이의 형성에 계층의 차이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 ‘계층’은 소득 수준의 차이로 나뉘어 지는 상류층, 하류층의 구분으로 대표되는데 이 상류층과 하류층의 언어의 차이에는 교육 수준의 차이, 생활 환경의 차이 등 많은 요인이 있다. 상류층의 언어는 대부분 어려운 어휘로 구성되어 있으며 외국어를 섞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한자어나 영어 등을 빈번히 사용하며 외국의 경우에는 라틴어, 프랑스어 등을 사용한다. 이에 비해 하류층의 언어는 비속어, 은어등을 많이 사용하며 비교적 지방언어를 많이 사용한다. 사회 계층에 따른 언어의 차이는 또한 힙합 음악 등에 자주 사용되는 흑인 영어에서도 볼 수 있다. 흑인 영어는 19세기 중반 이전 미국의 흑인 노예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사용하던 언어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것으로 일종의 하류층의 언어라고 볼 수 있다. doin’(doing), ya(you) 등의 축약어를 많이 사용하며 비속어의 사용이 잦고 정확한 문법을 사용하지 않는 특징을 가진다.사회방언은 또 성별에 따라서 분류되기도 한다. 성별에 따른 언어의 차이는 남성어와 여성어의 차이로 나타나는데 이는 남성 또는 여성만이 사용하는 말, 또는 사용하는 경향이 높은 말로 나타난다. 남성어는 상대적으로 강한 표현을 사용하며 여성어는 좀 더 완곡하고 얌전한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이는 그 동안 사회가 강요해 왔던 남녀상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남성어와 여성어는 많이 사라져가고 있는 추세이다.이 외에도 사회방언은 직업적인 차이, 연령의 차이 등에 의해서도 나타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발음, 문법 등에서 매우 큰 차이를 보이는 외국에 비해 사회방언이 비교적 적게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지역방언지역방언의 정의지역방언(地域方言:regional dialect)은 지리적인 요인에 의해서 형성된 방언을 지칭한다. 지역방언은 일반적으로 ‘사투리’라고 불리는, 일반인들이 대부분 ‘방언’이라고 인식하는 언어체계로 발음, 어휘, 어조 등 많은 면에서 나타난다.지역방언의 분류 및 특징지역방언은 어떤 두 지역 사이의 주민들의 왕래가 어려워 오랜 시간 동안 그 언어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발전해나가기 때문에 생겨난다. 물리적인 거리 뿐만 아니라 두 지역 사이의 큰 산맥이나 숲, 사막 등 지리적 장애물이 있을 때에도 생겨난다. 우리나라는 산악이 많은 국토의 지형적 특징 때문에 제주도 방언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방언이 산맥을 경계로 하여 서로 다른 언어적 특징을 지니며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방언은 먼저 크게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충청도, 제주도, 그리고 경기도 방언으로 나뉘며 각 방언은 또 대구 방언, 부산 방언, 광주 방언 등 하위 방언으로 나뉜다.그러나 지역 방언은 현대에 와서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여기에는 교통과 통신의 발달 외에도 표준어의 제정과 함께 퍼진 사투리는 열등한 말이라는 의식이 팽배한 것도 한 원인으로 들 수 있겠다. 그러나 방언은 보존되어야 한다.방언은 먼저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가진다. 긴 역사를 통해 형성된 언어는 사고를 형성하고 언어 사용사의 사고는 언어를 통해 형성된다. 각각 다른 언어 속에 담긴 지방고유의 사상과 생활 풍습을 표준어 하나만으로 표현하기는 힘들 것이다. 획일화 되어가는 시대에 다양한 사고 방식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방언의 보존이 필수적이다.또한 방언은 국어역사의 연구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경상도 방언에는 성조가 남아있어 우리나라 고대 언어에는 성조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해준다. 고유 문자가 뒤늦게 생긴 탓에 문헌자료의 불충분으로 고대언어의 연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방언의 연구가 필수적이라고 하겠다.표준어표준어의 정의표준어는 여러 방언 가운데 특별히 사회적으로 공용어로 인정받은 방언을 의미한다. 물론 방언은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문화적, 학문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하나의 국가 내에서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할 경우 서로의 의사소통 과정에 문제가 생기며 국민 통합을 기대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중국어의 경우에는 크게는 네 개의 지역방언으로 나뉘어지나 이 네 개의 방언들 간의 의사소통은 거의 불가능하며 그 문장 구조와 사용 문자 등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른 언어나 다름없다고 한다. 언어는 사고의 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 국민이 통합된 의식을 가지기는 힘들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각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의 언어를 표준어로 선택하여 공용어로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서울 방언을 표준어로 채택하고 있으며 북한에서는 평양 방언을 표준어(문화어)로, 영국의 경우에는 런던 방언을 표준어로 채택하고 있다.표준어의 특징표준어는 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한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의 언어를 한 나라의 공식언어로 제정한 것으로 일종의 가상언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나라는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을 표준어로 규정하고 있으며 방송, 공문서 등에서 이를 사용할 것을 권장하며 표준 철자법도 이에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표준어는 어디까지나 가상의 언어로 국가와 사회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사용하도록 권장되는언어이며 결코 방언보다 우월한 언어는 아니다.맺음말방언은 그 분류 방법에 따라서 사회방언과 지역방언으로 나뉜다. 사회방언은 사회적 요인에 따라 나타나는 언어의 차이로 인해 생겨난 방언을 일컫는 말이며 지역방언은 지리적인 요인으로 인해 나타난 방언을 가리키는 말이다. 방언은 문화와 사고의 다양성이라는 측면과 또 학문적인 필요에 의해 그 가치를 가지나 각 방언간 의사소통이 어려운 경우가 있어 국가의 통합이 어렵기 때문에 표준어가 제정이 된다. 표준어는 다시 말해 국민의 통합을 위해 사용되는 가상언어이다.언어는 한 언어집단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고방식을 통해 형성되었고 이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또한 스스로의 사고의 반영인 언어를 통해서만 또 다시 사고하고 역사와 문화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언어는 인간의 사고를 통해 형성되었으며 또한 인간의 사고를 형성하는 것이다.◈참고문헌◈http://chunma.yeungnam.ac.kr/~hangeul/html/study/bang-un.htm곽충구, 『방언연구사』, 2003이정복, 『컴퓨터 통신 속의 지역 방언』, 2000V. Fromkin, R. Rodman, N. Hyams, An introduction to language, Thomson&Heinle, 2003
법의 기초로서의 자연법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국가의 형성과 운영에 있어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게 된다. 법은 올바른, 해야 할 행위를 명하고 올바르지 못한, 해서는 안 될 행위를 금지하여 정의를 실현한다. 키케로는 이 정의의 근원이 자연 그 자체라고 보았다. 정의가 법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존재하기 이전부터, 자연 상태에서도 존재하고 있는 움직일 수 없는 본질적인 정의에 의해서 법이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정의가 자연 상태로부터 존재하는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에 의해 만들어진 법도 모든 이들로부터 존중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 상태에서부터 존재해온 이 정의가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확립되고 완성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법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확립되고 완성된다는 것은 곧 이성에 의해 그 옳고 그름이 판단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이성은 지구상의 동물 중 유일하게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성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것으로서 자연을 모방할 수 있는 기술을 주어 자연이 마련해준 기초에서 실제적인 지식을 쌓게 해 준다. 그럼으로써 인간은 만물의 영장의 지위를 획득하게 된 것이다. 이성은 동물과 인간을 구별하게 해주는 인간의 특징일 뿐만 아니라 인간이 신과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서 인간에게서 찾아 볼 수 있는, 지구상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가장 신적인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이성은 옳고 그름, 즉 정의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이 정의에 의해서 법이 형성된다. 모든 인류가 공통적으로 가지게 되는 이성 중에서도 올바른 이성만을 법이라고 부르게 된다.키케로는 자연이 인간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많은 필수품을 제공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인간은 이들을 이용해 풍족한, 인간다운 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대지의 생산물인 농산물, 과실과 짐승과 가축 모두 자연에서 생산되어 인간에게 이용되고 있으며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여러 기술 또한 자연에게 배운 것으로 인간의 이성은 자연을 모방하여 인간을 지금의 인간으로 만들어 준 것이다. 또한 인간의 신체적인 특징, 즉 두발로 걷거나, 표정이 있다거나, 말을 할 수 있다거나 하는 것도 모두 자연이 인간에게 준 것으로 보았다. 이처럼 자연은, 즉 신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의 지위에 걸맞도록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의 이성을 신뢰하고 이성을 이용해 정의를 판단하고, 법을 만들어 신뢰하고 따를 수 있는 것이다.키케로가 말하고 있는 법의 기초는 이처럼 국가가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자연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며 인간은 정의를 지키기 위해 태어난 존재로서 법이란 선한 것을 즐기고, 악한 것을 금하는 올바른 이성이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는 것이다. 선한 것을 좋아하고 악한 것을 싫어하는 것은 세상 어디에서나 똑같이 일어나는 현상으로 지구 어디에서나 인간은 같은 정의에 의해 만들어진 같은 자연의 법을 지키고 살고 있는 것이다. 곧 법은 전우주적인 이성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합당한 권위를 가지고 있으며 그 자체는 선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그 주위에 존재하고 있는 악습의 폐해 때문에 인간의 이성으로 만들어진 법까지도 덕을 잃기도 하는 것이다.이처럼 법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인간만이 신과 공유하고 있는 이성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이지만 법이라고 해서 언제나 옳고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절대적으로 옳다고 여겨질 수 있는 법은 오로지 인간의 이성에 의해서 올바르게 판단된 경우인데 이 판단이 문제가 될 경우가 있다. 키케로가 비판하고 있는 법이 그런 경우인데 이 경우 역시 사람들이 이성에 의해서 법을 판단하고 있지만 그 이성이 올바르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법을 만들기 위해서는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하는데 이 경우에는 그 올바르다의 기준이 자연에 의해 정해져 있는 선과 악이 아닌 판단자 자신의 유용성의 여부인 것이다. 자연에 비추어 볼 때의 좋고 나쁨을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유리한가의 여부를 판단해서 그것으로 법을 삼는 경우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법의 경우 그 기초도 성문법이 아니라 국민 다수의 결의, 또는 재판관이나 독재관의 판단에 의해 즉흥적으로 결정될 수도 있다. 이러한 법은 그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변할 수 있으며 그 판단의 기준 또한 ‘유용성’외에는 달리 명확하지 않다.키케로는 ‘실정법주의’를 무엇보다도 그 유동성에서 비판하고 있다. 어리석다고도 말할 수 있는 다수 민중에 의해서, 또는 재판관의 판결에 의해서 절대적이고 오직 하나여야 할 법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어리석은,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는 자들에 의하여 선이 악으로, 악이 선으로 바뀌어 취급되어버릴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정의라는 것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유용성을 기초로 하여 움직일 수 있는 정의는 불변하며 영원히 존재하는 자연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면 인간의 올바른 이성에 근거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키케로의 사상에서 볼 때 진정한 법은 오로지 하나, ‘자연’, 현대의 용어로는 ‘자연법’ 밖에 없는 것이다. 그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영구불변하고 절대적이지 않으면 올바른 의미에서의 법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법은 오로지 자연이라는 기준에 의해 만들어 질 수 있으며 그 법률에 대한 판단 또한 인류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신적인 이성, 즉 자연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키케로의 말처럼 법이 오로지 어리석다고도 할 수 있는 국민들이나 독재자일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통치자의 판단에 맡겨진다면 이는 곧 그의 말처럼 개개인이나 집단의 유용성의 판단에 의해서 선과 악의 구분이 흔들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선과 악이 명확하지 않고 올바른 일과 올바르지 못한 일의 경계가 없어진다면 이는 곧 법 자체의 존재 이유인 정의의 상실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자연의 산물이며 법이 존재하게 하는 정의는 자연과 마찬가지로 본성적이고 절대적인 것으로 쉽게 변할 수 없는 영구불변의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은 정의의 실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자연상태에서 볼 때 올바른, 즉 어떤 상황에서 보더라도 선하다고 볼 수 있는 것들과 악하다고 볼 수 있는 것들을 구분하고 악한 것들을 벌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의의 명확한 구분이 없어진다면 그 실현 수단이었던 법도 그 존재의 필요성이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목적이 없는 수단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1. 과연 로크를 ‘성선설’의 주창자로 볼 수 있는가? 즉 그의 인간관은 홉스의 그것과 비교하여 얼마나 다른가?로크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자연의 동일한 혜택을 받고 태어나 동일한 재능을 사용’하는 신의 피조물로 보았다. 자연상태에서의 인간은 모두 평등하게 태어나며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권리나 권한을 가지지 못한다. 로크가 인용하고 있는 후커의 말에 따르면 인간은 모두 비슷한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동일한 욕망을 지니고 있는 다른 이들에게도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로크는 후커의 말에 동의하고 있으며 또한 ‘자신의 보존이 위태롭지 않을 때 인간은 가능한 최대한 다른 사람을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인간 역시 자연적으로는 평등하나 홉스는 로크와 달리 그 인간의 평등성으로 인해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다른 이들을 공격한다고 보았다. 로크는 또한 로크는 범죄를 ‘인간 본성의 원칙을 포기하고 해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을 선언하는 셈’이라고 정의하여 인간의 본성이 기본적으로 유해하지 않은 것임을 밝히고 있다. 그의 인간관은 홉스와 비교할 때는 성선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로크가 상정하는 인간 역시 홉스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보존은 등한시하지 않고 있어 폭력과 기만의 전쟁상태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2. 로크는 소유권을 어떻게 정당화시키고 있는가?로크는 소유권, 즉 재산권을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연권 중 가장 중요한 권리로 인식하였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보존을 위한 권리, 즉 자연이 인간의 생존을 위해 제공하는 것들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그런데 ‘자연이 제공하는 것들’은 처음에는 인류 모두의 공유물로 주어진 것으로 인간이 처음부터 온전히 소유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인신person 뿐이다. 한 개인의 신체에 대해서는 본인을 제외한 그 누구도 권리를 가질 수 없으므로 그의 노동 역시 당연히 그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자연이 제공한 것에 자신의노동력을 더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인류의 공유물이 아닌 그의 소유가 되는 것이다. 어느 누가 보아도 자신이 소유물이 분명한 ‘노동을 첨가하여 공유상태에서 제거’함으로써 인간은 공유물에 대한 다른 이들의 권리를 배제시키고 자신의 소유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노동에 의한 공유물과 소유물의 구별은 과실, 짐승, 생물 등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대지 또한 누군가가 울타리를 치고 토지를 개량하여 작물을 재배한다면 그의 노동이 첨가되었으므로 그의 소유물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로크가 보는 소유권이란 모든 것에 우선하는 인간의 자연권이면서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인 것이다. 다른 사람의 정당한 소유권에 대해 불평을 하는 것은 타인의 노동의 대가를 원하는 것이다.반론누구든지 그가 원하는 만큼 많은 양을 독점하게 될 것이라는 반론 제기 가능.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충분할 만큼의 공유물을 내려주셨기 때문에 어느 한 사람의 노동으로 모든 것을 독점하는 것은 불가능. 다른 사람의 양이 남아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임.상하기 전에 사용하지 않으면 자신의 몫 이상을 취한 것. 다른 사람에게서 빼앗은 셈. 화폐발생.3. 로크가 말하는 ‘자연상태’, ‘자연권’, ‘자연법’을 설명하라.로크가 상정하는 자연상태는 인간이 타인의 의지에 구애 받지 않는 상태로 ‘평화, 선의, 상호 부조 및 보존의’ 상태로 홉스가 말하는 전쟁상태와는 현저히 다른 상태이다. 자연 상태의 인간은 자연법의 테두리 안에서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규율하고 자신의 소유물과 인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자연 상태의 인간은 모두 평등하여 그 누구도 권력, 권한을 다른 이보다 많이 소유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연 상태는 자유의 상태state of liberty로 스스로와 소유권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는 있으나 스스로를 파괴하거나 소유하고 있는 피조물을 살해할 권리, 또는 그렇게 할 자유는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았다.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해악을 가하는 것을 억제하고 모든 인류의 평화와 보존을 지향한다. 자연법을 위반함으로써 이성과 공통된 형평의 규칙을 어기는 것이며 인류에게 위험한 존재가 된다. 인류의 보존을 위해 해로운 자이므로 파괴시키는 것이 마땅하다. 위반자를 처벌할 수 있는 권리는 모든 사람에게 있다. 모든 사람이 자연법의 집행자. 침해에 비례하는 보복.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생명, 건강, 자유 또는 소유물에 위해를 가해서는 안 된다. 즉, 다른 이들의 자연권을 침해할 수 없다. 자연상태에서 자연법의 집행은 모든 사람의 수중에 맡겨져 있다.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연법에 대하여 무지하고 자연법을 제대로 실행할 수 없다. (스스로에 대한 일에서 정의롭고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연상태는 열악한 상황이 됨. ‘재산을 평온하고 안전하게 향유’하기 위하여 자신의 처벌권을 포기. 시민정부가 자연상태가 지닌 폐단에 대한 가장 적절한 치료책. 절대군주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자연상태가 차라리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