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과의례는 대표적인 기층문화의 하나로 세시의례와 함께 모든 민족이 공유하는 의례이다. 프랑스 민속학자 반 겐넵(Van Gennep)이 명명한 통과의례는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마디가 되는 출생??성년?혼인?회갑?죽음 등에서 거행하는 의례로, 인간의 사회적 지위?역할의 변화 등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통과의례의 범위는 크게 ①기자(祈子)로부터 잉태와 출산을 거쳐 아기가 태어난 후 만 1년이 되는 돌까지의 중요한 계기에 행하는 산육(産育)례, ②성장한 소년소녀에게 가족과 사회의 구성원이자 성인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일깨워주는 성년(成年)례, ③성인이 된 남녀가 부부로 결합하는 혼례(婚禮), ④회갑이나 회혼(回婚) 등 어른의 60주년 생신과 결혼기념일에 상을 차리고 헌수(獻酬)하며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수연례(壽筵禮), ⑤망자의 운명부터 시체 매장과 봉분(封墳) 조성 및 상주를 비롯한 가까운 친척들이 상복을 입는 기간 동안 치르는 상례(喪禮) 등으로 나눌 수 있다.오늘날 양국의 통과의례에 대한 비교 고찰을 해보았다. 이에 대한 상호 비교는 양국의 문화를 이해하는 첩경이 될 수 있다.1. 한국삼칠일아기가 태어난 지 21일째 되는 것을 축하하는 날이 삼칠일이다. 이 때가 되면 그 동안 아기에게 입혔던 쌀깃이나 두렁이를 벗기고, 비로소 옷을 갖춰 입혀 몸을 자유롭게 해 준다. 또한, 대문에 달았던 금줄을 떼어 외부인의 출입을 허용하고 산실의 모든 금기도 철폐한다. 말하자면 이 날은 가족과 친지들로 하여금 찾아와서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고 산모의 노고를 치하하라는 뜻인 셈이다. 축하 음식으로는 흰쌀밥에 고기를 넣고 끓인 미역국이 준비되고, 떡으로는 백설기가 준비된다. 이 날 만드는 백설기에는 신성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 그런데 삼칠일의 백설기는 아기와 산모를 속인의 세계와 섞지 않고 산신(産神)의 보호 아래 둔다는 의미에서, 집안에 모인 가족끼리만 나누어 먹고 대문 밖으로는 내보내지 않는 풍습이 있다.백일아기가 출생하여 백일이 되는 날을 축하하는 잔치이다. '백'이라는 숫안 산신의 보호 아래 두었던 아기를, 이 날을 기점으로 속계(俗界)로 돌아가게 한다는 뜻도 된다. 이 밖에 오색송편은 평상시에 만드는 송편보다 작은 모양으로 예쁘게 5가지 색을 물들여 만드는데, 오색은 오행(五行), 오덕(五德), 오미(五味)와 같은 관념으로 '만물의 조화'라는 뜻을 담고 있다. 한편, 백일떡은 삼칠일의 떡과 달리 되도록 여러 집으로 돌려 나누어 먹는다. 백일떡은 백 집과 나누어 먹어야 아기가 무병장수하고, 또 큰 복도 받게 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때문인지 백일떡을 받은 집에서는 빈 그릇을 그대로 보내지 않고 반드시 흰 무명실이나 흰쌀을 담아 보내는 풍속이 전해진다.돌생후 일 주년이 되는 날을 돌이라 하며 돌상을 차려 축하한다. 돌상에는 아기를 위해 새로 마련한 밥그릇과 국그릇에 흰밥과 미역국을 담아 놓고 푸른 나물과 과일 등도 준비한다. 떡은 백일 때와 마찬가지로 백설기, 붉은 팥고물 찰수수경단, 오색송편을 준비하고, 집안에 따라서는 대추, 밤 등을 섞은 설기떡을 만들기도 한다. 이들 음식들과 함께 돌상에는 쌀, 흰 타래실, 책, 종이, 붓, 활과 화살(돌쟁이가 여자일 경우는 활과 화살 대신 가위, 바늘, 자를 놓음)등을 놓고 돌쟁이로 하여금 마음대로 집도록 하는 의식이 행해진다. 이를 '돌잡힌다'고 하는데, 이것으로 어린이의 장래를 점쳐 보기도 한다. 또, 돌에 수수경단을 꼭 해 먹이는 것이 풍속으로 전해 내려오는데, 그래야 낙상하지 않고 건강하게 자란다고 한다. 요사이까지도 어른이 넘어지면, "돌 때 수수경단을 못 얻어먹었는가."라고 놀리는 풍습이 남아 있다. 돌에는 이와 같이 대대적인 잔치를 베풀지만, 해마다 오는 생일에는 조촐한 생일상을 차려 집안 식구들끼리 그 날을 기념한다. 이때에도 생일떡은 반드시 만들며, 특히 10살 이전까지는 붉은팥고물 찰수수 경단을 빠뜨리지 않는다.책례이 의례는 지금은 사라진 풍속 가운데 하나인데, 아이가 서당에 다니면서 책을 한 권씩 땔 때마다 행하던 의례이다. 책례 의식은 어려운 책을 끝냈다는 찰떡처럼 화목하게 잘 합쳐지라는 뜻이고, 붉은 팥고물은 액을 면하게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한, 7개의 대추는 아들 7형제를 상징하며, 떡을 2켜로 하는 것은 부부 한 쌍을 뜻한다. 함이 들어올 시간이 가까워지면, 신부집에서는 대청에 북향으로 자리를 편 다음 상을 놓고 상 위의 붉은색의 보를 덮은 뒤 그 위에 떡을 시루째 놓고 기다린다. 함이 도착하면 함을 시루 위에 놓고 북쪽을 향해 두 번 절을 한 다음 함을 연다. 혼례식에 반드시 만드는 떡으로는 또 달떡과 색떡이 있다. 이 떡들은 혼례를 행하는 의례상 곧 동뢰상(同牢床)에 올리는 것이다. 동뢰상 맨 앞줄에 대추·밤·조과(造菓)를 각각 두 그릇씩 배설한 다음 그 뒷줄에 황색 대두 두 그릇, 붉은팥 두 그릇, 달떡 21개씩 두 그릇을 놓고, 색편으로 암수 한 쌍의 닭모양을 만들어 수탉은 동쪽에, 암탉은 서쪽에 각각 배설한다. 이 때 만드는 달떡은 둥글게 빚은 흰절편으로, 보름달처럼 밝게 비추이고 둥글게 채우며 잘 살도록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고, 색편은 여러 가지 색물을 들여 만든 절편인데, 이것으로 만든 암수 한 쌍의 닭은 부부를 의미한다. 이 밖에도 혼례 때에는 초례(醮禮)를 행한 신랑에게 신부집에서, 현구고례(見舅姑禮)를 행한 신부에게 시부모가 각각 큰상을 내리게 되는데, 이 때에도 여러 가지 떡을 하게 된다. 큰상은 혼례 때 뿐만 아니라 회갑(回甲)이나 희년(稀年) 등 경사스러운 날에 축하의 뜻으로 어른께 올리는 상인데, 이 상에 올리는 떡에 대해서는 다음 항목에서 구체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한편, 신부집에서 사돈집으로 보내는 이바지 음식에도 떡은 빠지지 않았다. 이 때에는 대개 인절미와 절편을 만들어 동구리에 듬뿍 담아 보냈다.회갑혼례를 치루고 자식을 낳아 기르며 살아가다 나이 61세에 이르게 되면 회갑을 맞는다. 회갑은 자기가 태어난 해로 돌아왔다는 뜻으로 '환갑(還甲)'이라고도 하고, '화갑(華甲)'이라고도 한다. 회갑연을 위해 마련되는 상차림은 큰상이라고 하여 여러 가지 음식을 높이 고답게 꾸민다. 이 밖에 예전에는 색떡이라고 하여 절편에 물감을 입혀 빚어 나무에 꽃이 핀 모양으로 만든 모조화(模造花)를 장식하기도 했다. 한편 큰상에 높이 괴었던 푸짐한 떡들은 잔치가 끝난 다음 서로 나누어 먹는다.재례사람이 한세상 살다 운명하게 되면 고인을 추모하는데, 이 때 자손들이 올리는 의식이 제례이다. 이 때에도 조과·포(脯:육포·어포)·면식(麵食:국수나 만두국)·반(飯:흰쌀밥)·저냐·나물 등과 함께 떡을 하게 된다. 제례상에 올리는 떡은 편류(녹두고물편· 꿀편· 거피팥고물편· 흑임자고물편)로 제례 전날 미리 쌀을 담그고, 편에 고물로 얹을 녹두와 팥, 그리고 흑임자를 물에 불려 거피해 둔다. 제사 당일 새벽 일찍 담가 두었던 쌀을 가루로 빻아 둔 고물을 얹어 가며 켜켜로 안쳐 찐다. 정성스럽게 찐 떡은 여러 개 포개어 고이고, 그 위에 웃기로 주악이나 단자를 얹는다.2. 일본출생일본의 대부분 아이들은 병원에서 태어나는데, 예전에는 외가에서 출산을 했다. 첫아이의 경우에는 외가에 가서 낳는 것이 관습 이였다. 예전에 아이의 탯줄을 버리지 않고 보관해 두었던 관습은 호적을 대신하여 아이의 출생을 증명하는데 쓰였지만 지금은 대부분 여성들이 병원에서 출산을 한다.오시치야아이가 태어나면 일본인들은 태어난 7일째에 이름을 지어 축하를 하는 오시치야라는 관습이 있다. 이날에는 태어난 아이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한지에 써서 집안의 가미다나(신을 모시는 선반)라든가 도코노마(일본식 방의 상좌에 바닥을 한층 높게 만든 곳으로 보통 객실에 있다.)의 기둥에 붙여서 축하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알린다. 옛날에는 외조부가 이름을 직접 지어주었지만, 요즘에는 부모들이 직접 아이의 이름을 짓고 부르기 쉬운 이름을 선호한다.아이의 첫 신전 참배일본인들의 신도(神道)는 예전부터 내려오던 토착신앙과 의례 등을 일본인들 고유의 민족 신앙으로 발전시킨 종교이다. 그래서 신사를 모시고 참배하는 일본인들의 수도 상대적으로 많은데 신사를 보통 우지가미사마(聖神樣)라고 부르며 조상신인 우지가미(이가 튼튼하길 바라는 뜻)가 놓이게 된다. 이시기의 아이는 직접 음식을 먹을 수 없기에 입에 먹이는 시늉만 한다. 이 의례에는 아이가 비로소 밥공기와 젓가락을 가지게 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하쓰젯쿠(初節句)고대 중국에서 비롯된 음양사상의 영향으로 1월 1일, 3월 3일, 5월 5일이 양이 겹치는 날인 특별한 날로 간주되어 고대 중국에서는 여러 가지 행사들이 행해졌던 것이 일본인들에게도 전해져 3월 3일과 5월 5일만 축하행사를 하는 오셋쿠가 생겼다. 여자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맞이하는 3월 3일을 하쓰젯쿠라고 하며 매년 3월 3일은 히나마쓰리라 하여 여자 어린이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행사가 치러진다. 이날에는 사람의 몸에 붙어있는 병이나 재난 등을 인형에 옮긴다는 생각을 담고 인형을 물에 떠내려 보내는 행사를 한다. 남자아이의 하쓰젯쿠에는 부모가 모두 축하를 해주며 매년 5월 5일은 예전부터 단코노셋쿠라 하여 남자 어린이의 건강과 입신출세를 기원하는 행사가 각각 열린다.첫돌일본에서는 전통적으로 탄생일을 축하하는 것은 만 일 년째 하는 돌잔치뿐이다. 이날은 우리와 중국처럼, 상위에 물건 등을 놓아두고 그 아이의 장래를 점쳐보는 풍속이 있다.유년시절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한참 응석부리고 개구쟁이 시절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혼낼 필요가 없는 아이로 교육시키는 것을 이상으로 하는 일본의 부모들 밑에서 자라는데,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나 남의 아이들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혼내는 것을 수치로 여길 정도라고 한다. 이는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 일은 일본사회에서 쉽게 배척당하게 되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시치고산(七五三)일본의 연중 11월 15일은 추수 감사제를 행하는 날이기도 하지만, 3살, 5살, 7살이 되는 나이에 맞추어 어린이의 성장을 축하하는 행사라 하여 시치고산이라 불린다. 예전에는 남녀 어린이가 3살이 되면 머리카락을 기르기 시작하는 가미오키를 했고, 5살이 된 남자 어린이에게는 무사들이 의례를 행할 때 입는 바지 하카마를 입히는 하카마기를 했으
일본은 어떤 나라인가? 본인이 생각하는 것을 자유롭게 작성해 보세요."일본"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낱말은 섬나라, 경제대국, 질서의식 강한나라, 일본제국주의의 만행, 왜구의 나라 등등으로 연상되어 진다. 희한하게도 일본이란 나라는 극과 극 즉 양극 모두를 겸비한 불가사의한 나라로 비쳐진다. 이와 같은 민족성으로 다져진 일본이란 나라가 바로 우리 이웃에 위치해 있음으로 인해 우리 한반도 역시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의해 희비가 엇갈리는 역사를 이어왔음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한 학기동안 배우면서 우리는 좋은 면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 문화를 배웠지, 일본과 우리 나라와의 현실은 배우지 않은 것 같다. 최근 한?일 양국 간에 벌어지고 있는 일본의 역사 교과서 문제나 우리 땅인 독도를 자기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 신사 참배 문제만 하더라도 영원한 숙제로 남을 수밖에 없는 바로 그것이다. 역사 속에서 우리에게 기억되는 일본은 우리 민족을 괴롭히고 고통에 빠뜨리게 하는 민족이고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집어삼켜 우리 백성들의 모든 것을 강탈한 나라로 익히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수백 년간 일본에 의해 피해만 입고 살아왔으면서도 (왜구의 약탈행위, 임진란과 정유재란, 이조말기의 국정간섭과 한일합방 및 식민지 약탈행위 등등) 지금껏 사죄다운 사죄한번 받아본 적이 없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한국정부에서 구걸하다시피 통사정을 해야 겨우 입에 발린 치례의 형식적인 달래기식 사죄로 끝내곤 하지 않던가. 마치 국제신사라 일컫는 영국인이 전 세계에 식민지를 깔아놓고 수탈을 해가는 것이나 자기들의 행위나 모두가 시대적인 산물인 제국주의 시대의 산물이니 웬 앙탈이냐 라는 식이다. 일본은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인 것 같다. 거리적으로는 가까이에 있지만 왠지 모를 적대감에 싸여 양국의 대립이 끊어지지 않는 끈으로 얽혀있는 것 같다.일본과 한국은 서로 대립되는 부분도 있지만 유사한 점도 발견할 수 있다. 전후의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세계가 놀랄 만큼의 경제성장을 이룬 점, 또 미국의 반제국주의로 학생운동. IMF의 경제시련을 겪고 경제회생을 목표로 나아가는 우리와 또 경제대국을 되찾기 위한 일본의 모습이 유사한 모습들일 것이다.
일본 주택구조의 특징을 설명하고 우리나라와 비교해 보세요.집세를 매달 내는 일본의 임대 주택 vs 전세로 계약하는 한국의 임대 주택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이를 무엇보다 실감하게 해주는 것이 매달 내는 집세일 것이다. 임대 생활이 긴 사람이 시험삼아 예전에 낸 집세를 다 계산해 본다면 많이도 냈다는 안타까움을 느낄지도 모른다.지금까지 지불한 집세를 모두 돌려 받는다면 어떨까. 무슨 이상한 소리냐고 하겠지만, 예전에 지불했던 돈을 나갈 때 그대로 돌려받는 임대 시스템이 있다. 바로 한국의 ‘전세’이다.아파트의 경우에는 분양이 주류이지만 임대 주택도 있다. 한국에서 전세는 일반적인 임대 지불 방법이다.형식은 다음과 같다. 입세자는 우선 입주할 때 그 건물 매매가의 절반이나 7할에 상당하는 돈을 주인에게 맡긴다. 그 돈이 전세 보증금이다. 주인은 이를 운용해 이익을 자신의 것으로 한다. 그리고 세입자가 나갈 때 이 보증금을 그대로 돌려준다. 물론 이자는 없다.그렇게 되면 집을 빌리는 측에서는 보증금의 확보가 무엇보다도 큰 문제가 된다. 금액은 집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일본 엔으로 수백 만 또는 수천 만에 해당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이것만 해결되면 결과적으로 돈 한푼 쓰지 않고 집을 빌릴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돈을 빌려 전세를 얻으면 그 이자는 부담이 되지만 그것을 집세로 생각하면 납득이 가기도 할 것이다.그렇다 해도 모든 사람이 그런 큰돈을 준비할 수 있을 리는 없다. 그 경우에는 ‘월세’라는 형태도 있다. 그것은 보증금의 일부를 맡기고 부족한 부분을 다달이 내는 방법이다. 집세는 물론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세입자가 손해를 보는 방법이다. 이는 오히려 일본의 집세 형택에 가까운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보증금과 월세의 금액은 물론 주인과 교섭하여 결정된다.그러나 집주인 측은 이것으로 생활할 수 있는 것일까. 물론 할 수 있다. 한국의 20%가 넘는 고금리로 거래된다. 예를 들어 보증금이 5,000만 원이라면 연간 100만원 이상의의 집주인은 ‘사채’라고 하는 민간 금융업자에게 돈을 빌려주기도 한다. 일본으로 말하자면 소비자 금융에 돈을 맡겨 배당을 받는 것과 비슷하다. 당연히 이자는 시중 은행의 이자보다 높기 때문에 돈을 불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된다.하지만 그런 방법이 통하던 시대는 지났다. 한국의 금리는 2001년 8월 시점에 4%까지 추락했다. 한국인으로서는 최초의 저금리 시대로 돌입했음을 의미한다.이 때문에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전셋값 상승이다. 총액을 올리면 금리가 내려간 만큼 메워줄 거라는 것이 집주인의 당연한 발상이다. 그러나 빌리는 측에서는 그냥 앉아서 감수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전세를 둘러싼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원래 한국에서는 입주자가 바뀔 때 이외에는 전셋값 상승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전세 계약 문제는 통상 1~2년으로 되어 있어 그 기간에는 값을 올릴 수 없다. 그래서 집주인은 계약이 끝나면 갱신에 응하지 않고 세입자를 내보내고 싶어한다. 그러면 올린 값으로 새로운 세입자와 계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한편 IMF 위기 이후의 불황으로 집주인이 자산 운용에 실패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문제도 터져나왔다. 언뜻 보면 합리적인 듯한 한국의 임대 시스템도 어느새 흔들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단독주택을 선호하는 일본인 vs 아파트를 선호하는 한국인좁은 국토에 1억 3,000만 가까운 국민이 어깨를 맞대며 살고 있는 일본, 서양인이 “토끼장”이라며 무시하는 일본 땅이지만, 내 집 장만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봉급 생활자의 꿈이다.한편 이웃나라인 한국은 인구밀도가 일본의 약 1.4배이다. 분명 더 심한 주택난에 시달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웬일인지 들리는 것은 부러운 얘기뿐이다. 예를 들면 서울의 분양 맨션, 즉 한국에서 말하는 ‘아파트’는 30평 대가 표준 사이즈다. 70~80평도 적지 않다.이런 주거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 20여층 건물은 별 거 아니라는 듯 솟아 있는 도시와 그 근교의 고층 아파트다. 인천 국제공항에서 시내로 향하택 소유율이 약 90%에 달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방에 가면 빈집이 널려 있을 정도이다.반대로 전국 평균을 끌어내리는 것이 서울이나 부산 등의 대도시다. 특히 전 국민의 22%가 살고 있는 서울은 일본의 도쿄와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다.서울의 인구 증가는 한국전쟁이 끝나고 곧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1960년대 초반 시가지 주변 개발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여기에 앞장선 것이 한강의 남쪽 일대인‘강남’이다. 지금은 로데오 거리, 압구정 등 관광지로도 유명한 지역이다. 그러나 서울은 그 후에도 발전을 계속해 인구는 더욱 늘어만 갔다. 그래서 강남뿐 아니라 주변 여기저기에 고층 아파트가 세워지게 되었다. 서울은 도쿄와 달리 지진이 별로 없어서 아파트를 높이 지을 수 있다.한국의 고층 아파트는 겉에서 보면 멋없는 네모난 상자 모양이다. 하지만 내부는 넓고 각 동 입구마다 경비원이 있는 아파트도 많다. 또 10년쯤 전부터 들어서기 시작한 ‘신흥 주택도시’에는 학교나 쇼핑몰도 함께 세워지고 있다. 그 때문에 서울 시민들 사이에서는 단독주택보다 고층 아파트가 인기가 높다. 이제는 고층 아파트에 사는 것이 하나의 사회적 흐름이 된 것이다.하지만 일본인의 정서로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확실히 넓은 집이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역시 서민들의 꿈은 단독주택으로, 20층짜리 다세대주택은 아늑한 분위기가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그러나 한국인은 한곳에 뿌리를 내리고 산다는 생각이 별로 없다. 대부분의 일본인이 일대 사건으로 여기는 이사도, 한국인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결정해 버린다. 면적이나 교통편, 상황 등이 만족스러운 아파트가 발견되면 자잘한 일들은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이사해 버리는 것이다.한곳의 땅에 연연하는 일본인과 형편에 따라 집을 옮기는 한국인. 이를 농경 민족의 후예와 기마 민족의 후예이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아니다.풀로 엮은 일본의 다다미 vs 판자로 짠 한국의 마루“다다미 위에서 죽고 싶다”는 말이 있을 정도에서 신발은 벗는 일본인에게는 그냥 앉거나 뒹굴 수 있는 바닥이 무엇보다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이다. 다다미의 적당한 탄력과 시원한 감촉은 이런 생활 습관에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다다미는 말할 것도 없이 일본은 독자적인 바닥 재료다. 그 생성 배경은 일본의 기후 풍토와 깊은 관계가 있다. 등심초, 볏짚, 목재 등으로 만드는 다다미는 무엇보다 흡습성이 뛰어나다. 또 내부에 공기를 품고 있어 실내 온도 변화에 영향받지 않는다는 이점이 있다. 여름에는 서늘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공기를 빼앗기지 않기 때문이다.한편 한국인도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실내에서는 신발을 벗는다. 또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이 확실하다. 그러나 계절 변화에 대한 대응 자세는 웬일인지 정반대이다. 일본에서는 한 방에서 모든 계절을 보내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한국의 전통 가옥은 여름용 방과 겨울용 방이 확실히 구분되어 있다.한국의 겨울용 방은 온돌을 갖춘 온돌이다. 장작에 불을 때서 연기가 방바닥 밑을 돌게 만든 시설을 갖추고 있고 벽과 창문도 밀폐성이 높다. 반면 무더운 여름을 나는 여름용 방은 ‘마루’라고 부른다. 이쪽은 온돌방과는 달리 널빤지로 꾸민다. 말하자면 일본의 누레후치(한국의 툇마루처럼 3면이 개방되어 있으며 지붕도 없는 작은 공간)를 확장해서 하나의 방으로 만들어버린 듯한 방이다.마루는 온돌방에서 볼 때에는 실외이지만 정원에서 보면 실내라고 할 수 있다. 어정쩡하기는 하지만 서양식 테라스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마루는 지방과 집 구조에 따라 형태가 다양하다. 툇마루를 연장한 듯한 것도 있고 양쪽을 튼 복도 타입도 있고 삼면을 개방한 테라스 타입도 있다. 또 한쪽만 개방한 방 타입도 있다. 다만 이들의 공통점은 밖을 향해 열린 공간이라는 것이다. 그 때문에 손님이 많이 모이는 제사를 마루에서 모시기도 한다. 결국 밀폐된 온돌방이 가족의 개인적인 공간인 데 반해 마루는 모두에게 열린 공간인 것이다.한 여름의 대낮, 바람이 통하는 마루에 엎드려 눕는 시간은 한국인에게는 더미가 최고다.반대로 한국인 중에는 일본의 다다미는 눅눅해서 싫다는 사람이 많다. 또 겨울철 일본의 차갑고 눅눅한 공기는 불쾌한 느낌마저 준다는 사람도 있다. 두 나라 모두 실내에서 신발을 벗는다는 습관을 가진 국민들이지만 바닥에 대한 피부 감각에서는 정반대라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가족이 화목한 일본 가옥 vs 남녀 별채인 한국 가옥“남겨가 7세가 되면 자리를 같이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아이들이라도 7세가 되면 남녀의 구별을 가르쳐 조심성 없이 친하게 지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중국의 고서 『찰기』에 있는 유교의 가르침이다. 일본에서도 오래전부터 실천되어 왔다. 이제 그런 옛 가치관은 과거의 유물이 된 듯하지만 아직도 나이 든 사람이라면 생생하게 기억할 것이다.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한국도 유교 나라다. 그리고 생활을 유교로 규제하는 점에서는 한국이 일본보다 훨씬 엄격했다. 물론 “남녀 7세 부동석”의 가르침도 마찬가지다. 그런 전통은 가옥의 구조에도 나타나고 있다.상류 계층이 생활했던 한국식 가옥은 사랑채와 안채로 나뉜다. 예를 들어 ㄱ자형으로 구부러진 두 채의 건물을 ㅁ자형으로 짜맞춰서 한 가운데 정원을 만든 구조도 일반적이다. 이 사랑채에는 한 집안의 주인어른이 살고 안채에는 나머지 가족이 산다. 즉 사는 건물부터 남성과 여성, 아이를 구분해 놓은 것이다.사랑채에 마련된 주인어른의 방은 사랑방이라 하며 손님을 대접했다. 또 장남을 위해 작은 사랑방을 만들기도 했다. 장남은 일정한 나이에 이르면 안채에서 사랑채로 옮겼다.이외에 여러 세대가 사는 대가족 집안에서는 세대의 서열에 따른 사랑방이 준비되어 있었다. 즉 가족의 남성들은 세대가 바뀔 때마다 차례대로 방을 옮겼다.한편 안채에 마련된 공간에는 우선 부엌이 있다. 이 부엌에 접해 있는 공간이 안주인이 기거하는 안방이고 건너편에 있는 방이 아이를 위한 건넛방이다.구분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사랑채와 안채는 하나의 건물이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이 서로의 공간에 들어가는 것은 좋게 여기지 않았다. 그 때문에 았다.
일본의 식생활 문화의 특징을 살펴보고 우리나라의 식생활과 비교해 보세요.일본의 식생활 문화1. 일본 요리의 사전적 설명일본은 사면이 바다이며, 남북으로 뻗어있다. 기후 풍토적으로는 확실한 한란의 지역이 있고, 산, 강이 있으며 사계절마다 생산되는 요리의 재료도 상당이 풍부하다.따라서 신선한 재료만 있으면 다른 나라에서는 흉내 낼 수 없는 요리가 만들어진다.일본의 요리의 역사는 오래되었으며, 헤이안 시대가 되자 귀족 계급에 있어서 조리 의 기술이 진보, 요리법을 정하게 되고 이것이 사조류 요리법의 시초가 되어 오늘까지 생간류와 함께 계속되고 있다. 불교와 관계를 가진 정진요리(죠우신 요리), 차의 회석, 행사식의 본선요리(혼선요리 : 정식 일본요리) 등이 생긴 것도 이 시대부터다. 모모야마 시대에 들어서면 남만 요리가 도래하고, 서양풍의 요리법도 전해져 일본요리의 전환기가 되었다. 에도시대 에는 중국으로부터 보차요리(중국식의 소찬요리) 도 들어오고, 그것을 변화 시킨 탁자요리(일본화 된 중국식요리)나 일반적인 주석음식 인 회석요리 등도 완성시켰다.2. 시대별로 본 일본 요리의 역사1)죠몬 토기시대(B.C 700-B.C 3세기경)조개무지 속에 유물을 통하여 오늘날에 가까운 짐승, 새, 물고기들을 식용하였을 것이다. 조리에 토기와 불을 쓸 줄 알았지만 주로 생식이 많았고, 먹이감을 햇빛에 말리는 것이 많았을 것이다.2)야요이시대(B.C 3-6세기경)벼농사가 시작되었던 시대였다. 벼는 대개 현미의 형태로 먹었는데 야요이 시대에는 이것을 죽으로 먹었다. 생식보다 국이 많아졌고 술이나 엿도 만들어 먹었다.3)나라시대(710-794)술이 발달하여 용도에 따라 제법이 달랐고 보존식의 대부분은 건조품 또는 소금절이한 것이며 우유제품도 나타났다. 중국과 과자는 일본에 유입되어 당과자가 되었고 콩떡, 팥떡도 있었다.4)헤이안 시대(794-1185)신라 당나라와의 교류가 왕성하게 되어 여러 가지 조리법이 발달하여 일본 식생활의 형성기라고 할 수 있다. 단백질 원으로는 물고기가 상용지 요리를 흡수, 소화하고 이를 발전시킨 일본 요리의 대성의 시기이다.9)메이지 이후(1868-현대)우육식이 유행하고 우유, 유제품과 더불어 빵, 커피가 널리 식용되고, 서양 요리도 점차 증가한 시기이다.3. 일본요리의 제반 특징또한 ‘일본요리는 눈으로 먹는 요리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일본 요리가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중요시 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일본 요리는 보기에는 좋아도 맛은 없다는 뜻인가? 아니다 절대로. 오히려 자연으로부터 얻은 식품 고요의 맛과 멋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조리방법을 택하고 있기 때문에 보기와 맛을 동시에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1) 주식과 부식의 개념이 뚜렷하다.일본요리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쌀이 주식이고, 생선과 채소, 콩 등을 부식으로 하는 기본 유형을 유지해왔다. 쌀로 지은 밥은 부드럽고 기름기가 자르르 돌 듯이 광택이 있고 찰기가 있어 젓가락만을 사용하여 먹을 수 있다. 또한, 매끼의 식사에 거의 미소(miso)라는 왜된장을 넣은 국과 일본식 김치에 해당하는 여러 가지 채소를 절여서 발효시킨 쯔께모노가 포함된다.2) 계절감, 색채감을 중요시한다.일본은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므로 모든 음식에 있어서 계절감을 상당히 중요시한다. 또한 연중 대체로 온난다습한 기후로 인하여 담백한 맛을 선호하므로 재료 자체의 풍미를 살리기 위하여 향신료를 진하게 쓰지 않는다.일본인은 음식을 입으로 먹기 이전에 눈과 코로 먼저 먹는다고 한다. 따라서 그들은 음식은 물론이고 그릇에 기울이는 정성 또한 대단하여 사용하는 식기의 재질도 도자기이외에 목기, 칠기, 죽제품, 유리제품 등 다양하다. 음식의 종류에 따라 식기의 재질뿐만 아니라 모양도 달라지며, 음식 담는 법, 음식과 그릇의 색채와 조화, 함께 차려내는 다른 그릇, 기구와의 조화까지도 고려하여 요리를 종합 예술의 경지까지 끌고 가려는 노력을 기울인다.3) 날것으로 먹고, 구워서 먹고, 끓여서 먹고, 버리지 않는다.이 말은 일본인들의 기본적인 식철학(食哲學)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 교토는 오랜 동안 역사의 중심지였고, 귀족문화가 발달한 곳으로 바다와 멀리 떨어져 있어서 담백한 야채요리와 건어물을 주로 사용한 반면, 바다가 가까워서 어패류를 많이 접할 수 있는 오사카에서는 생선요리가 많이 발달하였다. 한편, 관동풍 요리는 도쿄의 옛 이름인 에도(江戶)를 중심으로 발달한 요리이다. 도쿄만(東京灣)과 스미다강(隅田川)에서 잡은 어패류를 사용한 초밥, 덴뿌라, 민물장어와 모밀국수(소바;そば) 등이 대표적인 관동풍의 요리이다. 교통의 발달과 교류로 인하여 지역적 특성이 거의 없어졌다고 하는 지금도 소바와 우동을 모두 취급하는 국수가게 간판의 경우 도쿄에서는 주로 소바가게(소바야;そばや), 오사카에서는 우동가게(우동야;うどんや)라고 써 놓은 것만 보아도 두 지방의 지역적 차이를 알 수 있다. 국물 또한 관서풍의 경우는 소재의 맛과 색을 최대한 살리기 위하여 연하게 간을 하며, 국물 양이 많은 것에 비하여 관동풍은 주로 진간장을 사용하여 맛이 농후하며 따라서 국물의 양이 적다.4. 일본요리의 세부적 구분1)지역적 분류:-관동요리 : 무가 및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에게 제공하기 위한 의례요리가 발달. 맛이 진하고 달고 짠 것이 특징-관서요리 : 관동요리에 비해 맛이 엷고 부드러우며, 설탕을 비교적 쓰지 않고 재료 자체의 맛을 살려 조리, 가이세끼 요리가 중심2)형식적 분류:-본선요리 : 혼센요리, 관손상제의 경우에 정식으로 차리는 의식요리. 식잔의 기본은 일즙삼체, 이즙오채, 삽즐칠채 등-회석요리 : 가이세끼 요리. 연회석에서 차리는 요리-다회석 요리 : 검소하고 비리지 않는 식물성요리, 양보다 질을 중요시 하며 재료 자체의 자연으로 모습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 특징-정진요리 : 불교승의 독특한 요리. 동물성을 피하고 식물성 곡류, 두류, 해초류 만으로 조리한 것, 식단은 요리의 형식5. 일본의 식사예법1) 일본요리는 1인분씩 젠(膳)이라고 하는 굽이 낮은 상에 차려서 낸다.2) 밥은 왼쪽, 국은 오른쪽에 놓으며, 숟가락은 사용하지 않고 젓가락(대표적인 일본 요리1) 생선회(사시미)생선회는 예전에는 생선살을 식초에 담갔다가 먹었다고 한다. 관서 지방에서 사시미를 오쯔쿠리 라고 하는 것은 쯔쿠리미 로부터 온 것이고, 그 이후 간장에 찍어먹는 것을 사시미 라고 불렀다고 한다. 회에 쓰이는 재료는 무수히 많으나 재료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썰어 사시미 문화라는 말이 생길 정도 이다. 비스듬히 포를 뜨는 히기쓰쿠리, 다랑어등과 같이 살이 두꺼운 생선을 써는 가도쓰쿠리, 흰 살 생선에 소금을 뿌리고 다시마에 싸서 써는 곤부시메쓰쿠리, 살짝 데쳐 써는 유비키쓰쿠리, 생선을 썰어 얼음물에 씻어 지방을 뺀 아리이 등이 있다. 생선회는 한쪽이 3cm크기가 기본이다. 이것보다 크게 자르면 한입에 먹을 수 없고 반대로 작게 자르면 생선회 맛을 알 수 없다고 한다. 생선회를 할 때 사람의 손과 손끝이 닿지 않고 젓가락을 사용해서 접시에 담아내는 것이 요리사의 기술이라 하겠다. 사람의 손에는 따뜻함이 있어서 생선살에 손의 따뜻함이 전해지면 신선도가 급속히 떨어진다. 그러므로 한번 자른 생선살은 반드시 사시미용 칼과 사시미용 젓가락을 사용해야 한다.2) 김초밥초밥의 원조가 관서 지방이라면 김초밥은 관동지방이 원조이다.똑같은 김인데도 관서와 관동지방의 사용법이 다르다. 관동 지방에서는 김을 구워서 사용하고 관서 지방에서는 생김을 사용한다. 또 관동 지방에서는 향기와 바삭바삭한 느낌을 중요시 하는 반면 관서 지방에서는 자연 그대로의 색과 맛을 중요시한다.3) 쓰키다시(곁들인 안주)쓰키다시는 식욕을 촉진하도록 간단히 입가심을 하는 요리로 죽순, 두부 등을 차게 해서 먹거나 겨울철에는 생선, 해삼 등이 쓰인다. 반주에 곁들이는 가벼운 술안주로 적당하다.4) 젠사이(전채)정식요리의 첫 코스로 나오는 요리로서 서양 요리의 오르 되브르나 중국 요리의 냉채와 같다. 재료는 다음에 나오는 요리의 내용과 중복되지 않는 것을 고르는데 주로 한 접시에 해산물과 들이나 산에서 나는 세가지 재료를 써서 다양한 형태로 조리하여 아름답게 꾸민 가벼운은 양으로 계절 감각 을 나타낼 수 있어 일본 요리에서는 빠져서는 안될 요리이며 더욱이 주 요리 사이에 영향의 균형을 맞추기도 한다.9) 스시(초밥)생선과 야채를 넣은 초밥은 식초, 소금, 그리고 미린(조미료로 쓰는 달콤한 쌀술) 으로 맛있게 조미한 매우 대중적인 일본 음식이다. 초밥은 원형, 또는 여러 가지 다른 모양의 형태로 생선이나 조개류와 계란 등의 날것이나 조리한 것을 섞어서 밥속에 넣거나 얹어서 만 것이다. 초밥은 보통 손으로 간장에 찍어 먹는다.10) 소바(메밀국수)계란과 고구마 전분을 첨가한 메밀가루로 만든 가늘고 긴 갈색을 띤 국수로 국물을 뜨겁게 해서 먹거나 긴 갈색을 띤 국수로 국물을 뜨겁게 해서 먹거나 차갑고 순한 간장 국물에 조금씩 찍어서 찬 음식으로 먹는다. 잘게 썬 파와 다른 양념을 조미료로 사용한다.11) 우동(가락국수)메밀국수보다 좀 더 굵은 가락국수는 밀가루로 만든 흰색의 일본 국수로 소바와 같이 차고 연한 간장 국물에 담갔다 먹거나 잘게 썬 파와 고춧가루를 넣은 뜨거운 국물에 말아먹는다.12) 덴동(튀김덮밥)새우 덴푸라 한두개를 얹은 밥에 소스와 달콤한 쌀술로 맛을 낸 독특한 양념 간장에 찍어 먹는다. 약간의 소스를 밥 위에 쳐서 먹기도 한다.13) 덴푸라(튀김)해산물과 야채튀김 등의 재료를 계란을 섞은 밀가루 반죽에 무쳐 식용유에 튀겨낸 것이다. 먹을 때는 달콤한 쌀술로 맛을 낸 간장에 찍어 먹는다. 이 소스에는 채친 무와 생강을 넣어서 먹는다.14) 라멘(라면)주로 일본인 미각에 맞게 양념한 중국식 밀가루 국수로 간장 소스나 된장으로 양념한 맑은 국물에 말아서 먹으며, 얇게 저며 구운 돼지고기와 콩나물, 중국 죽순 등을 곁들여 먹기도 한다.15) 가쓰돈(커틀릿 덮밥)계란과 양파를 빵가루를 입혀 튀긴 얇은 돼지고기 커틀릿을 덮은 밥을 말한다.16) 스키야키(전골)철판 위에서 끓인 고기 야채 요리로 얇게 저민 연한 고기 조각과 두부. 곤약. 버섯. 파 등을 간장과 청주. 설탕으로 양념해서 끓인다. 그리고 식혀 먹기 위해 먹기
우리의 전통 한복과 일본의 기모노가 가진 각각의 장단점을 비교해 보세요.美 여성잡지 한복 `코리안 기모노' 소개했다 정정[연합뉴스 2006-01-20 09:35:49](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미국의 유명한 여성잡지인 `엘르(elle)'가 한복을 `코리안 기모노'로 소개했다가 재미동포의 지적에 따라 시정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뉴욕에 거주하는 자넷 김(여)씨는 엘르 11월호가 `LA스토리'에서 한복을 `코리안 기모노'로 표기한 내용을 발견하고 이 잡지사에 `한복(hanbok)'으로 정정해 줄 것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김 씨는 서한에서 "한국인들은 전통 의복에 `한복'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일본인이 아니기에 의례적으로 기모노를 입지 않는다."며 "한국은 다른 아시아의 문화와 섞이지 않는 고유한 언어, 의복, 관습 그리고 다른 훌륭한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정정을 요구했다.엘르는 김 씨의 지적을 수용해 12월호에 김 씨가 보낸 한복에 대한 설명과 함께 정정을 요구한 서한 내용을 게재했다.20일 이 같은 내용을 e-메일로 제보한 동포 이해령씨는 "김 씨의 지적은 짧고 간결했으나 한국인으로서 당당함이 배어 있다"며 "잘못 소개된 한국문화에 대해 비난하거나 혹은 창피해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잡을 수 있는 그의 용기는 동포사회에 좋은 귀감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ghwang@yna.co.kr기모노(着物)옷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신체보호의 역할을 넘어서 표현과 상징의 수단이 될 수 있다. 더욱이 전통의상이라고 하는 것은 한 나라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입었던 것이기에 그 나라의 자연환경, 민족적 특성 등 많은 것을 추리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전통의상은 역사와 문화의 반영이 되기도 한다. 즉, 전통의상을 통해 그 나라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 한복이 있듯이 일본에는 기모노가 있다. 일본의 기모노에 대해 알아봄으로써 일본문화에 접근해 보고자 한다.일본이라고 하면 '기모노'라고 하는 이미지가 지금도 외국인 가운데 많이 알려져 있는 것 같다 추구되었다. 에도 시대가 끝나면서 외국의 문화 유입으로 기모노도 개량되게 되었다. 요즘은 평상시에는 잘 입지 않고 결혼식이나 성인식, 기타 예의를 갖추어야 할 모임에 나갈 때나 명절에 주로 입는다.2. 기모노(着物)의 종류후리소데(振袖)미혼여성이 입는 예복으로 소매길이에 따라 大振袖(오오후리소데 ),中振袖(나카후리소데), 그리고 小振袖(고후리소데)로 나뉜다. 소매가 복사뼈까지 내려오는 大振袖는 결혼식이나 피로연에서 신부예복으로, 무릎과 복사뼈 중간 정도까지 내려오는中振袖는 성인식이나 졸업식, 파티 등에서 주로 입는다. 그러나 여성들의 체격이 점점 커지고, 신부가 예복으로 振袖를 준비해 가는 관습이 없어지면서 시판되고 있는振袖는 대부분 大振袖의 길이이며, 겉옷과 같은 감으로 안단을 대어 예복용으로 입는 경우가 많다.토메소데(留袖)기혼여성이 입는 예복으로 천의 색에 따라 검은 바탕에 좌우의 옷자락 무늬에만 무늬가 들어간 黑留袖(쿠로토메소대)와 분홍, 파랑 등 갖가지 색에다 무늬를 넣은 色留袖(이로토메소데)가 있다. 黑留袖는 결혼식 때 양가 부모나 중매인 부부가 입는 아주 격의 있는 옷으로, 흰색 천을 빨강, 곤색 순으로 몇 번이고 물들여 깊이 있는 검은색을 띄는 감에, 무늬는 주로 사군자나 길조를 나타내는 문양을 사용한다. 그리고 家紋을 등, 양소매 바깥쪽, 그리고 양가슴에 각각 하나씩 넣음으로써 (이를 「五つ紋」이라 하는데) 최고 격식을 갖춘 토메소데로 꼽힌다. 기모노는 원래 몇 겹을 겹쳐 입는 것이 정식으로 여겨졌으나 시대가 변함에 따라 간소화되어 옷깃, 소매 끝, 옷자락 등에 흰색 천을 덧댐으로써 겹쳐 입은 것 같은 효과를 내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色留袖는 친족 이외의 결혼식이나 축하 행사 때 입는 예복으로, 색이 곱고 화려해 많이 애용되고 있다. 무늬도 黑留袖보다는 자유롭게, 꽃이나 풍경, 각종 기하학적인 무늬가 다양하게 응용되고 있다.호우몬키(訪問着)가장 일반적으로 많이 입는 외출용 기모노로, 연령이나 미, 기혼에 관계없이 입학식이나 피로연, 파티,과 큰 무늬로 짠 긴 옷에 여러 종류의 띠, 특유의 지갑, 부채, 게다를 갖춘다.성인식에 입는 기모노성인식이란 20살이 된 사람을 축하하는 행사로서, 매년 1월 15일에 행해진다. 이 날은 여성은 기모노를, 남성은 양복 정장을 주로 차려 입는다. 여성은 '후리소데' 라고 하는 소매가 긴 기모노를 입는데, 후리소데의 색은 상당히 산뜻한 것에서 차분한 색에 이르기까지 종류와 디자인도 여러 가지이다.결혼식에 입는 기모노나라(奈良)시대 (710년 - 794년)에의 결혼식 기모노는 상의와 치마에 꽃을 장식한 주로 흰색을 사용한 복장이었다고 한다.헤이안(平安)시대(794년-1192년)에는 어두운 곳에서 식을 올렸기 때문에 결혼 복장을 흰색으로 입을 필요가 있었는데, 흰색은 여러 가지로 물들여지기 때문에 그 집의 가풍을 물들이겠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결국, 흰색이라는 색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하는 순결을 나타냈던 의미가 있기에 결혼생활의 시작에 걸 맞는 색으로 많은 사람에게 인상을 주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결혼식 때 웨딩드레스가 흰색인 의미와 거의 비슷한 것 같다. 신랑의 복장은 에도(江戶)시대까지는 흰색이었으나 메이지(明治)시대이후 그 사람의 직업과 관련된 정장을 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5. 기모노와 오비고고학과 풍속학의 대가인 히구치 기요유키는 '오비는 모든 외래 문화를 종합하여 일본인의 체형과 풍토, 습속에 맞게 환골탈태, 확대 재생산한 지혜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그는 허리띠를 몇 겹씩 감아 뒤쪽으로 매듭을 지은 복식은 일본이 유일하다고 주장한다. 오비를 뒤쪽에 감아 배면미를 연출한 것은 인간이 인간을 감상할 때 앞 쪽 보다는 옆이나 뒤를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는 깊은 계산에서 나온 아이디어라는 것이다. 오비의 위치를 허리위로 올림으로써 상반신에 비해 아랫도리가 길게 보여 더욱 아름답게 보이며, 오비의 넓은 띠로 몸을 감싸니까 위하수가 줄고, 혈압사승을 막아 안산장명의 효과를 준다고도 말한다.이처럼 오비는 기모노의 특징을 잡아주는 중요한 기능을 하고 그 종류도세분화했다고 볼 수 있겠고 의상을 통해 가지고 있는 세력이나 권위를 유지하고자했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기모노를 착용하는 방법을 보아도 그러한데, 절차가 매우 까다롭고 엄격한 것으로 보아 위엄을 고수하려는 방법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대부분의 전통의상이 대부분 보수적 성격의 시대에 나타났다는 사실에서 확인 된다. 일생 중 기념할만한 날에 화려하고 아름다운 기모노를 입는 것도 권위나 재력을 얻고자 하는 대리만족과 같은 심리에서 나타난 것 일 수 있다.평등과 자유의 시대지만 천황이 현재까지 존재하는 폐쇄적인 일본사회에서 기모노는 위와 같은 의미가 강하게 남아있는지도 모르겠다.일본인들은 기모노를 통해 사회에서 얻고자 하는 욕망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한복1. 부분적인 장점1) 저고리① 동정 : 흰색. 단정하고 말쑥한 아름다움. 유일한 직선의 사선② 배래선 : 우아한 아름다움의 곡선 또는 직선③ 고름 : 저고리와 다른색 사용. 비대칭(긴고름, 짧은 고름)의 아름다움.상체의 움직임에 따라 표현되는 다양한 곡선의 변화④ 섶 : 여유롭게 달아냄으로 허리선의 아름다움을 드러냄.위에서 아래로 폭이 넓어짐으로 저고리가 전체적으로 아래쪽이 커져서편안하고 안정감을 줌.더구나 옷이 줄어들어 들었을 때도 섶이 속이 들여다보이지 않도록하는 역할을 한다. 섶코의 앙증스러움⑤ 도련 : 한복의 가장 애로틱한 표현. 보일 듯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신비의 미학.⑥ 소매끝동 : 다른 색을 사용하여 다양한 아름다움 구사2) 바지① 어떠한 체형도 풍성하게 잘 맞고, 융통성을 가지고 있음.따라서 운동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② 한옥의 좌식생활에 잘 맞는 편안함.운전할 때도 하체를 조이지 않아서 무척 편하다.③ 입는 사람의 입음새에 따라 맵시가 드러남④ 대님 : 대님으로 묶는 것이 훨씬 바지의 맵시가 잘 난다.겨울엔 바람을 막아준다.삼음교(三陰交)란 경혈자리를 자극하여 건강에 좋다.대님을 묶고 푸는 동안 생각하는 여유를 갖는다.⑤ 허리 : 허리를 끈으로 묶을 수 있게조끼 ·마고자를 입고, 여름에는 적삼에 홑조끼를 입었다. 두루마기에 갓이나 관을 쓰기도 하였다. 특히 두루마기는 외출할 때에는 계절에 관계없이 입었으며, 남의 집을 방문할 경우에도 벗지 않았다. 이 때의 속옷은 속고의 ·적삼 등이었다.② 성인용 여자 옷:예복으로 소례복(小禮服) ·대례복(大禮服)이 있고, 상례에는 이에 따른 상복이 있었다. 소례복은 초록색 당의에 화관이나 족두리를 썼으며, 대례복은 다홍색 활옷에 화관을 쓰거나 초록색 원삼에 족두리를 썼다. 저고리는 삼회장저고리이며, 치마는 스란치마 또는 대란치마를 입었는데, 소례복에서는 스란치마를 입었다. 이 때 저고리는 속적삼 ·속저고리 ·겉저고리 등 삼작이며, 치마는 겉치마에 볼륨을 넣으려고 안에 무지기를 입었고, 때에 따라서는 대슘치마까지 받쳐 입었다. 무지기는 허리 부분을, 대슘치마는 아랫도리를 버티어 주었다. 평상복은 저고리 ·치마이며, 마고자 ·두루마기를 들 수 있다. 여자 두루마기는 방한용이어서, 남자의 경우와 같이 남의 집에 가서도 꼭 입고 있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여자 옷의 특징은 속옷의 가짓수에 있다. 하의로는 단속곳 ·바지 또는 고쟁이 ·속속곳 ·다리속곳 ·너른바지와 어깨허리의 속치마이며, 상의로는 속적삼과 겨드랑이 및 가슴 가리개용 허리띠가 있다.③ 남아용 옷:명절 때나 돌 또는 기타 행사 때에는 두루마기에 전복을 입히고 복건 또는 호건(虎巾)을 씌운다. 특히 두루마기는 오방장이라 하여 5가지 색을 사용하였는데, 대개 연두 길에 색동 ·노랑 섶 ·자주 무 ·분홍 안섶 ·남색 깃 ·남색 고름으로 되어 있고, 꽃분홍 안을 받쳤다. 평상복은 어른과 같이 저고리 ·바지 ·조끼 ·마고자이며, 방한을 위해서는 두루마기도 입혔다.④ 여아용 옷:명절 때나 돌 또는 기타 행사 때에는 남아와 마찬가지로 오방장이를 입히는데, 그것은 연두 길에 색동 ·노랑 섶 ·남색 무 ·분홍 안섶 ·자주 깃 ·자주 고름으로 하였다. 평상복으로는 저고리 ·치마에 방한을 위해서 배자 ·두루마기 등을 입혔다. 이러한 가운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