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본 민주당민주당(民主黨, 일본어: 民主?(みんしゅとう) 민슈토[*])은 일본의 정당으로, 약칭은 민주이다. 이념은 중도 우파, 사회자유주의이다.2007년 7월 29일의 선거결과로 참의원에서 제1당을 탈환하였으며, 2009년 8월 30일 중의원 의원 선거에서 308석(정수 480)을 획득해 정권교체를 이루었다.1998년 3월 12일에 구 민주당 계열 인사와 민정당, 신당우애, 민주개혁연합 등이 신당결성에 합의하고, 4월 13일에 원내 단체로 신고하였다. 4월 27일에는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에서 민주당 통일대회를 가지고 민주당을 결성하고, 초대 당대표로 간 나오토를 선출했다. 2003년 7월 23일에는 자유당의 합류에 합의하고, 9월에 자유당이 합류하였으며, 제43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와 제20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는 비례구의 득표에서 자유민주당을 누르고 제1당이 되었다. 특히 제20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와 제21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는 야당으로는 역사상 최고의 의석을 획득했다.전 대표인 오자와 이치로를 중심으로 하는 대립축 노선 (여당과의 명확한 차이를 강조)의 온건보수?자유주의파와, 전 대표인 마에하라 세이지를 중심으로 하는 대안 노선 (여당과의 정책적인 대결을 강조)의 젊은 신보수주의 그룹의 대립이 자주 지적된다.현재의 구호로는 정치는 생활이다 (政治とは生活である。)? 생활 유신 (生活維新。)? 생활이 제일 (生活が、第一。).2.하토야마 유키오일본의 유력 정치 명문가 출신으로 도쿄에서 태어나 증조부 하토야마 가즈오는 중의원 의장을 지냈고, 조부 하토야마 이치로는 1950년대에 총리를 지냈으며, 첫 번째 자유민주당 정권을 담당하였다. 부친 하토야마 이이치로도 참의원으로 재직하며 1970년대에 외무장관을 지냈다. 동생 하토야마 구니오도 유력 정치인으로 여러 부처의 장관을 지냈다.도쿄 대학 공대를 졸업한 후,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공과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졸업했으며, [1] 이후 도쿄 공업대학, 센슈 대학에서 경영학 조교수로 일하다가 1986년에 자유민주당 공천으로 홋카이도를 지역구로 중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1993년 자민당을 탈당하고 신당 사키가케에 참여하였고, 1996년에는 구 민주당에 참여했고, 1998년 개편된 민주당 결성에 참여하여 간사장을 맡았다. 1999년~2002년 당 대표로 재직했다. 한편 중의원 선거에 계속 당선되어 2005년 총선에서 7선을 기록했다.2009년 5월 오자와 이치로 당 대표가 정치 자금 스캔들로 사퇴하자, 그는 다시 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대표 취임 후 여러 보궐 선거에서 승리하며 돌풍을 일으킨 가운데 아소 다로 총리가 중의원을 해산하였다. 이에 따라 2009년 8월 30일에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총 480석 중에서 308석을 얻는 압승을 거뒀고, 1955년 그의 조부가 기틀을 다진 자민당 장기 집권 체제가 54년만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 2009년 9월 16일에 열린 특별 국회에서 총리로 지명되었다.3.하토야마 유키오 내각http://ko.wikipedia.org/wiki/%ED%95%98%ED%86%A0%EC%95%BC%EB%A7%88_%EC%9C%A0%ED%82%A4%EC%98%A4_%EB%82%B4%EA%B0%814.정권교체의 배경일반적으로 국내언론들과 진보개혁진영은 ‘55년체제’의 붕괴라는 표현을 쓰고 있음. 이는 독특하게만 보였던 일본의 자민당 1당 독주체제가 무너져 일본의 정치지형이 변화한 것으로 분석하는 것임그런데 이것을 단순히 일본정치지형의 변화로만 분석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가? 자민당은 과연 2000년대 이후 고이즈미의 신자유주의 정책추진으로 인한 양극화와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해 무너진 것일까?일본의 정치지형은 사실상 90년대 초반 냉전구도가 무너지면서 기존의 가 로 바뀌게 되었다고 분석할 수 있다. 즉 냉전상황에서는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사회당이나 공산당에게 집권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자민당의 1당 독주체제가 가능했다. 그러나 냉전구도가 무너지면서 사회당이 몰락하고 시장경제등 자본주의를 긍정하는 비자민당 그룹이 등장하는 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냉전구도의 해체와 버블붕괴로 인한 경제위기 두가지 요인을 기반으로 93년에 비자민당 연립정권인 호소가와 내각이 출범했던 것을 돌이켜 보자.당시 호소가와 내각은 이후 고이즈미가 85%의 내각지지율을 달성하기 전까지 75%의 내각지지율로 역대 최고의 지지를 받던 내각이었다. 물론 금방 실각하게 되었지만... 즉 냉전구도로 인해 구축된 일본의 55년체제라는 정치지형은 93년에 무너졌고 이후에는 사실상 ‘55년체제(자민당 1당 독주체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체제’였던 것이 아닐까? 냉전구도 해체이후 비자민당 연립정권인 호소가와 내각이 93년에 등장했던 점. 2001년도 자민당이긴 하나 ‘자민당을 부순다’는 슬로건으로 압도적인지지(85%에 이르는 내각지지율)를 받으며 등장한 고이즈미 내각은 모두 사실상 전통적인 의미에서는 비자민당그룹, 즉 55년체제와는 다른 체제였다고 볼 수 있다. 고이즈미 내각에 이르러서는 사실상 일본의 정치지형은 ‘신자유주의 체제’였다고 볼 수는 없을까? 생각해보면 2005년 우정민영화 총선의 경우 같은 자민당내의 구세력마저 민영화앞에 내쳐버리지 않았던가?즉 이번 8.30 총선의 결과는 55년체제의 종말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체제의 균열 또는 붕괴가 아닐까?상상력을 더 발휘해본다면 냉전이후 구축되었던 미국의 일극질서하에서 일본의 55년체제는 신자유주의 체제로 전환되어갔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97년 일본의 미야자와플랜, 동아시아공동체 비젼들의 좌절과 이후 전개된 고이즈미 정권의 신자유주의 개혁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따라서 민주당의 각종 양극화 해소정책, 민생정책이 신자유주의 체제 붕괴의 틈을 파고들어 대승을 거둘 수 있게 된 것은 아닌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물론 일본 민주당이 반신자유주의 정권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비신자유주의 또는 기존 신자유주의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왜냐면 93년 55년체제 붕괴이후 일본 정치지형을 유지시켰던 미국의 일극질서와 신자유주의 질서가 모두 무너지는 과정에서 탄생한 정권이기 때문이다.정리하자면 ‘55년체제’가 일본의 고도성장이라는 경제적 조건과 냉전이라는 국제정세하에서 유지된 것이라면 91년 버블붕괴와 냉전해체이후 일본의 정치체제는 ‘55년체제’가 아닌 ‘신자유주의 체제’였으며 2009년 미국의 일극질서 붕괴와 신자유주의 퇴조기에 등장한 민주당 정권은 또 다른 무엇이 아닐까하는 하는 것이다.5.민주당 정권의 국정 방향과 예상되는 변화신자유주의 정책 ⇒ 복지정책관료주의 및 파벌주의 ⇒탈 관료 국민 정치미국 중심의 외교 노선⇒ 아시아 중심의 외교 노선◇ 자녀수당 등 복지정책 우선하토야마 총리는 정책의 우선 순위와 관련 정권공약으로 제시한 내용을 확실히 추진해 나가되 국민 가계에 도움이 되는 시책부터 펴나가겠다고 말해 내수 진작을 위한 복지 공약에 초점을 두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자녀 수당은 물론 가솔린의 잠정 세율 철폐 등을 맨 먼저 시행해 국민이 정권 교체를 피부로 느끼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자녀 수당 등을 시행하기 위해 당장 내년 7조1천억엔 정도가 필요하지만 관련 예산은 충분히 확보가 가능하다고 재원 논란을 일축했다. 각종 복지 공약 실현을 위해 자민당 정권이 짠 올해 추가경정예산과 내년 예산은 제로 베이스에서 재검토하겠다는 점도 명백히 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현찰을 풀어 가계를 지원해 내수를 살림으로써 생산과 투자, 고용의 선순환을 유도하는 경기부양책을 쓰겠다는 방침이다. 일본 경제는 올해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고 고용은 사상 최악이며 물가는 계속 하락해 디플레이션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자민당 정권식의 성장과 수출 위주 경제정책으로는 안된다는 것이 하토야마 총리의 확고한 경제 인식이다.
오이디푸스 왕 그리고 성정체성1.오이디푸스 왕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고전적 의미의 남성성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고 테베의 새 왕이 되는 과정 그리고 백성들을 걱정하고 나라를 위해 뭐든지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는 오이디푸스 왕이 보여주는 모습은 적극성과 강한 의지로 대변되는 고전적인 남성성을 의미한다. 또한 오이디푸스가 이오카스테에게 보여준 강한 집착은 고전적인 남성성으로 대변되는 소유욕에 해당한다.2.오이디푸스 왕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고전적 의미의 여성성이 작품에서 고전적 의미의 여성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은 이오카스테 이다. 크레온과 오이디푸스의 갈등을 침착하고 공정하게 판단하여 중재하는 모습이나 전형적인 모성애 등은 그녀가 고전적인 여성성의 상징을 가진 인물임을 말해주며 비극적 운명이 모두 밝혀질것 을 예상하고도 오이디푸스를 말리지 못하는 소극적인 태도에서도 그녀의 여성성을 찾을 수 있다.3.고전적 의미의 성 정체성오이디푸스 왕 이나 다른 고전 문학 작품은 대부분 남성 중심의 성정체성을 그려나가고 있다. 남성은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며 활동적인 모습으로 묘사되지만 여성은 피동적이고 소극적인 모습 그리고 항상 남성에 종속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문학은 시대를 반영한다. 고전작품에서 남성 중심의 성정체성을 묘사함은 이전 시대가 남성이 주도하는 사회 즉 “마초이즘” 이 지배하는 사회이었음을 알 수 있다.4.현대인의 성정체성에 대한 재해석현대에 이르러 여성의 권리는 상당히 신장됐으며 여성의 역할도 남성의 그것과 대등 병렬한 위치까지 올라왔다. 더 이상 여성은 남성에 종속되는 종속변수에 속하지 않으며 주체적인 성 역할을 행할 수 있게 되었다. 원래 성 정체성이란 관습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 이었다. 부모는 자식의 성 정체성 구성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예를 들어 여자 아이는 치마를 입고 소꿉놀이를 해야 하며 남자아이는 태권도나 축구를 해야 한다고 가르치며 아이들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관습적 성정체성을 물려주려 한다. 하지만 남성과 여성이 대등한 위치에서 유기적인 성 역할을 행하려면 이런 관습적 성 정체성의 되물림은 지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