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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의선교적본질5장
    교회의 선교적 본질 5장신약의 보편주의와 구약의 보편주의와의 관계1. 서론1) 예수와 선교, 예수와 이방인 관계2) 연속성- 신약을 구약의 부가물로 보는 경향에 반대, 신약은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말씀옛 것은 더 나은 것으로 대치, 그러나 신약의 ‘새로운 것’은 구약에서 이미 예언된 것, 신약의 ‘새로운 것’을 구약을 통해 재조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신약의 원심적선교는 구약의 구심적 선교와 비교할 때 새로운 것, 그러나 ‘선교’의 공통점 유지3) 신구약의 통일성과 다양성 이라는 양 측면을 함께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다양성은 통일성이라는 기반 위에서만 올바르게 이해되고, 통일성은 다양성에 의해서만 그 의미가 완전해지기 때문이다.2. 예수, 이스라엘, 만민1) 예수와 이방인가) 예수는 이방인에 대한 선교를 좋아하셨지만 그것을 회피한 것도 사실이다.이스라엘 집의 잃은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마15,24).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포도원(막12,1ff), 하나님의 양 무리(마10,6), 하나님의 약속들은 특히 이스라엘에게 유효하며, 하나님의 나라는 이스라엘에게 주어질 것이다(마8,12; 눅12,32).이에 반해 이방인(만국)은 어두운 색조고 그려진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거나 기도할 때 중언부언하고(마6,7), 오직 세상 것만 찾고(마6,32;눅12,30), 하나님과 메시야를거스르는 일만 한다(마10,33;눅21,24).이스라엘 밖에서 병을 고치시며 전도하신 것도 이방인에게로 나아가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이전 유대인 지역 안에서 살고 있는 유대인들을 위한 것이었다(마15,21-28; 8,5-13).2) 신구약 사이의 연속성가) 이 모든 것은 예수께서 자신을 계시의 역사적 맥락 안에 두려는 표시로 인식된다.역사적 맥락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스라엘에 완전히 이뤄지는 끝날에 이방인들도 구원에 참여케 될 것을 암시한다. 예수는 구원의 때가 임박한 것으로 여기고 구원을 자신의 메시야 사명과 관련시켰다. 최후 심판 때에 이스라엘과 세상 만국은 하나님 펴볼 때 명료해진다.① 예수는 자신을 인자로 부름(단7,13). 우주를 통치하는 메시야에 대한 명칭, 그러나이런 칭호는 당시 유대인들의 메시야에 대한 민족주의적 이해와는 양립하기 어렵다. 인자는 예수께서 자신의 메시야 직의 우주적, 종말론적 성격을 드러내기 위하신 것이다. 이것은 가야바 법정에서, 부활 후에야 명백해졌다.② 예수에게서 “야훼의 고난받는 종”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이는 명칭으로서가 아니라 그의 메시야직 사역 속에서 분명히 나타난다(마12,15-21;막10,45). 그의 고난과 죽음은 “많은 사람들”을 위한 고난과 죽으심(막10,45)으로 이는 만국에 대한 말씀이다.③ 예수는 “다윗의 아들”이다(시110편). 예수께서 말을 타지 않고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신 것은 만국에 대한 평화적 통치를 상징한다(막11,1-10).다) 복음서와 구약에 나타난 비유들의 구심적 성격: 만국이 한 자리로 모인다(사2,2-4; 25,6; 49,12; 마8,11). 이 비유는 신약에서 양무리를 모으는 비유(마25,31; 요10,6), 성전에 대한 비유(막11,17; 요12,20), 산 위에 세운 동네(마5,14), 등경 위의 빛(마5,15; 막4,21; 눅8,16), 생명의 강(요7,37), 상속(마25,34), 공중의 새들이 깃들임(마13,32) 등의 비유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비유들 속에서 우주적, 종말론적 구원에 대한 관심이 나타난다. 하나님 나라에는 세상 만국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이 반드시 인정되어야 한다.라) 왜 예수께서는 자신의 만국에 대한 기대와는 달리 자신의 사역을 철저하게 이스라엘에만 국한시키겠는가?① 구원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아들여지기 전에 먼저 이스라엘에게 주어져야 한다. 예수께서 제자들이 이방인에게 가는 것을 금지하신 것은 이런 견지에서 이해되어야 한다.② 참된 유월절 피를 흘린 후에만 하나님의 나라는 점점 밝히 드러나게 된다(사53,11; 막10,45; 14,24).3) 신구약 사이의 차이점가) 복음서의 메시지와메시야로서 예수의 임하심과 예수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임함(막1,14-15)은 구약기간에 이스라엘에게 하신 약속들에 대한 잠정적 성취로 보아야 한다.② 그리스도 안에 이뤄진 메시야 왕국의 잠정적 성격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 사이의 긴장의 의미에 주목해야 한다. 구약의 전망과는 대조적으로 신약에서 선포한대로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활동의 진행과 전개를 설명해야 한다.3. 하나님의 나라, 사도들, 교회1) 복음의 주제와 내용은 구약의 약속의 성취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이다.가) 예수의 가르침: 메시야 계시와 하나님의 나라는 상호관계를 갖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자일 뿐 아니라 그의 인격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진다.① 구약의 기대와 신약의 성취간의 일차적 대조: 구약의 기대가 성취되었을 뿐 아니라 구속사의 전개를 통해 구원에 대한 계시가 보다 명료해진다. 예수 자신의 메시야 선언은 하나님의 우주적 통치를 포함한다. 예수는 인자라는 우주적 통치권자로 자신을 표현하기를 더 좋아하셨다. 자신을 메시야로, 우주적 메시야로 이해했다.② 예수는 민족주의적 경향을 띤 이스라엘 사람들의 편협한 기대들에 반하여 보편적인 전망을 열어 보이셨다.③ 예수께서 오신 것은 절대적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세계 역사에서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게 하셨다. 이 점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주신 선교적 사명을 바르게 이해하는 관건이다. 복음은 구원 기대의 성취이지만 그 성취는 아직도 잠정적 성격을 가지며 그 자체는 하나의 새로운 기대의 원천이 된다.나) 신약의 세 가지 종말론(보완적 역할)①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은 구약의 언약과 기대를 성취한 것이고, 그 범위에 있어서 완전하고 명백한 종말론적 사건이다.② 예수의 초림, 그의 고난과 부활은 새로운 시대를 알린다. 여기서 메시야의 오심이 세상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다만 구원의 특정 시기가 마감되는 것을 뜻한다.a) 씨 뿌리는 비유의 중요성: 비유에 사용된 여러 사건들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계시 사시간에 이뤄지는 일은 씨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리러 나가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를 의미한다. 하나님 나라는 씨와 같아서 결실하지 못하는 것도 있고 풍성한 결실을 맺는 것도 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이뤄졌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씨와 같이 임하였다. 이것은 추수하기까지 자라고 익을 시간과 공간을 상정한다.b) 곡식과 가락지 비유(마13,24-30): 시간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한 요소임을 말한다. 하나님 나라가 진행 중에 있으며 세상 끝날이 미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메시야 시대에 주어진 특별한 선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 나라가 이뤄지는 것과 최후의 심판 이전에 시간적 간격이 있다. 이 시간적 간격이 예수의 메시야적 자기계시의 중요한 특징이다. 예수는 심판자 이전에 구세주이다. 잃은 양 비유, 잃어버린 동전 비유, 탕자 비유(눅15장)는 이런 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메시야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시하신 한정된 방법으로만 사용될 수 있다. 이 길은 대리적 고난과 죽음의 길이다. 인자는 또한 야훼의 종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 초점이 한데 어우러져 복음의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c) 야훼의 고난받는 종과 구름타고 오실 인자, 두 사명을 실행함으로써 예수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성취하신다. 고난받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대속을 이루심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 목적을 성취하신 예수께서 인자로 구름타고 오실 인간, 곧 제 2의 아담으로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창조 역사를 완성하실 것이다.③ 그러나 세상 끝날은 남아 있다. 그 날은 미래적 기대로서 하나님 나라의 완전한 건설은 예수의 재림과 연결되어 있다.a) 그리스도의 대리적 고난과 죽음에 세상의 심판이 지연되고 있다. 그의 부활은 종말이 아닌 세계사의 신기원을 뜻한다. 부활을 통해 완성된 용서와 화해가 이제는 심판을 동반하여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심판이 연기되었다기보다는 심판이 그에게 맡겨졌으며 그의 권한 아래 놓이게 되었다. 져 죽어야 할 한 알의 밀(요12)로 나타나셨다. 그러나 이 열매가 익어 추수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이 추수는 풍성해야 한다. 온 세상의 추수이기 때문이다. 만국에 대한 복음전파의 동기와 임무는 여기서 밝혀진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은 후 많은 열매를 맺음같이 고난과 죽음을 당하고 그 후에 부활하여 만국에 복음을 전하는 메시야의 길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이로 인해 신약의 성취는 구약의 기대를 멀리 뛰어 넘었다. 하나님의 종말론적 활동은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놀라운 전망을 보여준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만국이 온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들이 오게 되는 경로와 그들을 오게 하기 위한 조건이다.c) 신약 안에서 종말론은 퇴위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이뤄졌던 ‘마지막 일들’은 동시에 새로운 세계, 새로운 시대의 ‘처음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종말론을 무시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는 시간선상에서의 종결적 ‘점’ 대신에 앞으로 올 결정적 최종점을 향하는 하나의 ‘선’을 갖게 되었음을 의미한다.d) 결론적으로 ‘만국이 오는 것’은 시간의 어떤 점에 이뤄지는 일이 아니라 전체 역사에 있다. 역사란 추수하기 전의 심고 가꾸는 시간이며, 고기들을 갈라내기 전에 고기를 그물로 몰아 끌어내는 시간이요, 가루 속에서 누룩이 발효하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또한 이것은 인내, 조심, 계속적 노력과 기대의 시간이기도 하다. 종말론 자체가 위험스러운 것이 아니라 종말론을 잘못 이해하는데 위험이 있다.2) 하나님의 나라는 구약의 기대의 종결점이고, 만국에 도래할 새로운 시대의 출발점이다.가) 사도는 선교사가 아니다. 사도는 법률계 용어, 사도직은 다른 사람을 책임지거나 대리하도록 전권이 맡겨진 것. 사도는 예수에 의해 공인된 자로서 부활의 증인이요 예수께서 증인의 권위를 옷 입혀 주신 자들. 사도는 예수에 의해 선택받은 열두 사도에 국한, 열둘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며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대표한다. 열두 사도는6).
    인문/어학| 2013.12.09| 5페이지| 1,000원| 조회(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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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의선교적본질4장
    교회의 선교적 본질 4장 구약과 신약의 중간시기1. 흩어진 유대인들의 개종 권유운동1) 구약 말라기가 완성된 기원전 460년경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까지 5세기 간 간격이 있다. 이 시기는 이스라엘이 세계 모든 민족들 중에서 차지하는 위치나 다른 민족들에 대한 그들의 태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유대인들의 분산은 이스라엘 백성을 크게 변화시켰다. 흩어져간 자들이나 다시 돌아온 자들 모두에게서 그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2) 이 시기에 유대인들이 선교활동을 개시했다. 이 선교활동의 범위와 열성, 처음 수 세기 동안 기독교회의 선교 태도와 활동에 끼친 영향 등이 과소평가되어 왔다. 왜냐하면 이방 종교 안에서 기독교의 급격한 발전은 많은 개종자들이라는 지반 없이는 설명하기 어렵다. 유대인들의 분산 자체를 선교활동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유대인들의 분산이 선교활동에의 최초의 동인이었으며, 유대인의 선교활동은 일종의 분산현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3) 유대 민족의 멸망은 유대인 집단이 하나의 종교적 실재였다는 사상을 더욱 강화시켰다.이스라엘의 유일신 사상은 유대주의를 세계적 종교로 변형시켰다. 분산 범위가 확장됨에 따라 이방인들 가운데서 유대인들이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다른 민족들, 특히 헬라주의와 접촉하면서 유대인들은 우선 변증활동을 시작해야 하고, 후에는 선교활동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마카비 혁명의 성공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팔레스타인 내의 모든 종교에 대해 더욱 자신감을 갖게 했다.4)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공동체에 받아들여진 것을 유대인 선교의 첫 단계로 또는 한 단계로 보는 것이 옳다. 이스라엘에 받아들여진 이방인 게르( )가 70인역에서 개종자(proselutos)로 번역했다.5) 하르낙은 그리스도 탄생시 로마 지중해 연안에 400만내지 450만 유대인이 살았다고 봄. 이 숫자는 전지역 인구의 7%로 선교활동의 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 기독교가 확장됨에 따라 많은 난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교는 주후 5세기까지 개종운동을 계속 해왔다.6) 유대인들의 선교적 성과가) 흩어진 유대인들이 수차례 경험한 배척운동과 고난이 유대교를 성장시켰다. 기독교도 이러한 고난(박해와 순교)을 통해 성장했다.나) 유대교의 강한 도덕적 힘은 유대교를 다른 이방종교보다 뛰어나게 했다.다) 국가 의식들이 단지 형식적인 것으로 되어 버렸던 헬라 세계에서 유대교는 강한 유일신적 경향을 지녔다.7) 70인역의 중요성과 영향력: 구약성서의 헬라어 번역본은 주로 바울을 통하여 초대교회에 위대한 선교 안내서가 되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유대인에게 70인역은 최고의 선교 안내서였다. 그런데 70인역은 단순한 번역 이상이다. 그것은 구약성경의 해석이며 변형이다.2. 70인역과 개종 권유운동1) 70인역은 흩어진 유대인들의 우려에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외국에서 살며 히브리어를 잊어버릴 위험에 직면했다. 특히 아람어가 구어로서 위치를 굳히면서 히브리어는 성서 언어로서만 중시되었다.2) 그러나 구약성서가 헬라어로 번역되자마자 그것은 선교활동을 돕게 되었다. 70인역의 중요성은 그 내용 자체 뿐만 아니라 어떻게 성서 본문이 들려졌으며 해석되었는가 하는 해석 방법에도 있었다. 외국인을 개종자로 번역함. 바울이 로마서 10,20에서 이사야 65,1의 말씀을 해석할 때 히브리어 본문에는 이방인에 대한 언급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이방인에 대한 말씀으로 해석했다.3) 사회사적으로 볼 때 70인역이 헬라 문체를 쓰지 않고 통속적 구어체인 코이네(koine)를 사실 또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것은 동방세계를 서방세계에 개방시킨 것이다.4) 유대인들의 흩어짐을 통하여 계시 말씀에 암시되어 있는 선교의식이 발전되었고, 이것이 70인역에 영향을 끼쳤으며, 이 70인역은 다시 선교활동에 박차를 가하게 했다. 유대의 선교적 노력이 강한 것을 시인 호레이스는 다음과 같이 남겼다. ‘당신이 만일 기꺼이 오지 않겠다면 우리는 유대인들처럼 당신을 강제로 오게 할 것이요.’5) 유대인의 선교의식을 유대인의 분산, 헬라문화와 70인역의 영향 등을 통해 설명할 때, 구약 후반부에 세계에 대한 선교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특히 후기 지혜문학은 매우 중요하다.3. 이스라엘의 지혜문학과 개종운동1) 잠언 1-9장은 구약성서 중 가장 오묘하며 매력적인 지혜문학임에 틀림없다. 이스라엘은 야웨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임을 인식해왔다. 그러나 구약성서에서 지혜를 세계 창조의 제일원리기도 한 한 인물로 언급한 곳은 한 군데도 없다.2) 하나님의 지혜는 야웨의 첫 피조물인 이스라엘에 의하여, 오직 이스라엘에게만 올바르게 알려졌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져야 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독특한 지위와 중요성에 대한 언급 없이, 이스라엘의 선택에 관한 언급마저 없이, 만민이 하나님의 지혜를 받게 될 것을 말하고 있음은 주목할만한 현상이다.3) 8,35: 이방인의 신은 우상이고 비실재다. 오직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살아 계시며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본문은 야웨를 얻는 자가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얻는 자가 생명을 얻고 야웨께 은총을 얻는 자라고 말한다.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야웨가 계신다는 뜻이 아닌가?4) 그런데 후에 이 지혜는 하나님의 율법과 동일시된다. 이는 지혜의 보편적 성격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교적 성격을 강조하는 것이다. 생명과 구원을 일깨워주는 말씀이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사용하신 말씀이다.
    인문/어학| 2013.12.09| 3페이지| 1,000원| 조회(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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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의선교적본질3장
    교회의 선교적 본질3장 메시야에 대한 메시지로서의 보편주의에 관한 구약성경의 메시지1. 구원의 기대와 메시야 기대구약성서의 기대 가운데에는 구원에 대한 기대가 있지만 항상 기대의 성격을 띠고 있지는 않는다. 구약성서의 메시야 기대에 주의를 기울여할 이유는 선교신학의 성서적 기초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메시야에 대한 기대가 특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기대와 메시야에 대한 기대가 동일한 것은 아니어도 메시야는 특수한 의미에서 구약성서에 나타난 미래에 대한 기대와 구원에 대한 기대의 상징이며 그 정점이다. 이스라엘의 메시야에 대한 기대와 관련하여 구약성서의 보편적, 선교적 성격이 갖는 의미와 범위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한다.2. 메시야적 형상들A. 메시야적 형상들: 미래의 기대와 메시야 기대1) 메시야적 형상을 하나님의 뜻을 집행하는 왕의 형상으로 생각하면 그 기원은 다윗 시대에 찾을 수 있다. 메시야 형상을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예언자들까지 본다면 그 형상은 보다 다양해진다.2) 메시야에 대한 기대를 연구함에 있어서 구약성서와 성경 전체의 동적 통일성을 더욱 염두에 두어야 한다.3) ‘메시야적’이라는 용어는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뜻과 특수한 방법으로 나타낸 사람들의 개별적 형상들에 국한하여 사용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4) 메시야에 대한 기대를 통한 미래에 대한 이스라엘의 기대는 독특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 기원은 창49,8-10에서 볼 수 있다. 여기에는 낙원의 주제가 반향되며 창세기 3,15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5) 메시야에 대한 기대가 계속적으로 보편주의적 성격을 나타내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히브리서에 의해 해석된 멜기세덱(창14)의 모습은 보편적 형상으로 이 보편적 제사장직이 아론의 제사장직보다 더 우월하다. 이 사상은 시편 110편에 강조되어 있다. 이것이 왜 이스라엘에서 제사장직이 메시야적으로 언급된 적이 없는지에 대해 설명할 단초를 제공한다. 창49,10은 메시야에 대한 최초의 예언으로 받아들여졌다. 이것은 실로의 통치자가 오시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메시야에 대한 기대와 보편적 구원에 대한 기대가 초기에는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 다윗의 유언에는 ‘이스라엘을 다스릴 의로운 통치자’라는 표현이 없다. “모든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왕”(삼하23,3)이 나올 뿐이다. 여기에도 보편주의적 경향이 나타났다.6) 메시야는 장차 하나님의 주재되심을 나타내실 신적 형상을 갖는다. 그러므로 메시야는 구원을 가져오고 이루는 분이시라기 보다는 그가 바로 구원의 대표자하고 보는 것이 옳다. 메시야는 하나님 자신의 가견적인 현현이다. 장차 하나님의 주재되심을 찬양하고 있는 모든 시편들은 메시야에 대한 시이다. 반면에 이스라엘 왕들은 종종 메시야적 형상을 갖고 있다(시72편). 하나님의 우주적 통치권과 메시야적 통치권은 상호관련이 있다. 후자는 전자의 표현이다.7) 결론: 하나님의 주재되심과 구원에의 종말론적 기대, 메시야에 대한 기대는 결국 하나다. 이 세 가지는 사실상 동심원이라고 할 것이다. 또 메시야는 이스라엘의 중심인 동시에 구원에 대한 보편주의적 기대의 중심이다.B. 야웨의 종의 노래1) 야웨의 종의 노래는 메시야적 형상으로 방향지워졌다. 야웨의 종은 메시야 개념을 전에 없던 방법으로 보충, 심화시킨다.2) 종의 칭호에서 야웨를 섬기는 일에 자기를 전적으로 헌신하는 충성의 표시를 봄. 전체적인 강조점은 종의 인간적 성격, 이것은 그가 당하는 고난과 죽음에 의해 가장 분명하게 강조된다(사50,53). 야웨와 그의 연관이 인간 이상의 영광과 권세를 시사하는 것을 통해 표현된다(사42,1; 49,1). 하나님의 통치권을 입증하는데 가장 중점을 두고 있다. 그는 유일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온 세상을 위한 구원과 빛이 되신다. 이스라엘 전체의 사명(예레미야와 에스겔)으로 규정한 것, 즉 야웨만이 하나님이심을 드러내는 사명을 야웨의 종의 사명으로 그린다.3) ‘발전적 감소’: 많은 사람으로부터 적은 수의 사람으로, 민족으로부터 소수의 남은 자로, 남은 자로부터 다시 한 종으로 축소되었다.4) 야웨의 종의 노래 요약가) 첫째 노래(42,1-7): 야웨의 종이 이방의 빛과 백성의 언약으로 선택되고 소명받은데 대한 찬양이다. 공의의 실현, 평화적 통치, 인간의 완전한 행복은 온 세상이 함께 누릴 것.나) 둘째 노래(49,1-7): 이 소명의 성취가 이스라엘에게 달려 있으나 그것이 이스라엘에게서 완전히 실패하는 것처럼 보임을 명백히 말한다. 이 잘못은 하나님 편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만민을 위한 복의 기관과 빛이 될 것이라는 약속에 의해서 그는 힘을 얻고 위로를 받는다.다) 셋째 노래(50,4-9): 야웨께 대한 종의 헌신과 그가 당할 모욕을 역설하고 있다. 그의 메시지는 필연적으로 순결한 고난을 수반한다. 하나님의 의를 전달하는 자는 죄인처럼 고난을 당해야만 한다.라) 넷째 노래(53,1-12): 당하신 고난의 깊은 의미를 밝혀준다. 이 죄없는 고난은 대리적 고난이다. 고난은 영광에 이르는 길이며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기 위한 섬김의 길이다.5) 세상 만민을 야웨의 종이 보상으로 받게 된다. 만민들은 메시야적 종이 받을 보상이다. 세상 만민은 메시야적 종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라는 점이 강조된다. 세상 만국을 종의 ‘선교지역’으로 말한 곳은 없다. 그러나 메시야를 선교사로서 이해할 수 있는 근거가 이 노래들 속에 있다. 여기서 선교사상은 모든 민족들의 구심적 활동이라는 의미로서만 ‘선교적’임을 이해해야 한다. 모든 이방인들이 야웨의 통치를 받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향해 오게 될 것이다.C. 인자와 메시야 (단7,1-14)1) 인자를 메시야에 대한 묵시적 암시로 볼 수 있다. 네 짐승이 권세를 빼앗긴 후에 그에게 권세가 주어진다. 네 짐승은 세상 모든 민족들, 바다(깊은 죄악)에서 일어날 왕국들을 가리킨다. 이 야수적인, 하나님을 무시하는 모든 악한 권세들의 맞은 편에 인자의 권세를 두신다.2) 만민에 대한 메시야의 통치는 메시야나 만민들이 요청함으로써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 환상에 나타난 메시야적 통치에 대한 묘사는 인자 이전에 나타난 짐승 같은 통치와는 다른 인간적 통치이다. 메시야를 만민이 바라는 분으로, 만민의 빛이 될 분으로 말하면서도 이 빛이 퍼져 나가 구원이 성취되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인문/어학| 2013.12.09| 3페이지| 1,000원| 조회(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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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의 선교적 본질 2장 세계 선교에 관한 구역성경의 메시지1. 보편주의와 선교구약성경에 보편주의가 나타남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하지만, 구역의 선교적 의도와 임무에 대해서는 상당한 견해차가 보인다. 얼마 전까지는 구약에 나타난 선교 사상을 발전적 확대과정의 결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 경향이었다.이런 경향이 최근 도전을 받게 되었다. 유일신론과 선교 사상의 싹이 모세에게서 보인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래서 유일신론에서 보편주의로, 보편주의에서 선교사상으로 나아갔다고 했다. 선교가 하나의 사상으로 체계화된 것은 점진적 과정으로 이루어졌다고 했다. 그러나 선택받은 사실 자체가 선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면 앞선 주장은 구약성경으로부터 무리하게 추구되었다.그러면 보편주의와 선교의 관계는 무엇일까? 구약의 출발점은 보편적인데 반해, 선교 사상이 나타나는 곳은 아주 드물거나 거의 없다는 점이다. 구약을 선교적이라고 하려면 보편주의와 선교의 구별을 포기해야 하는가? 이런 방식으로 구약을 이해하는 것이 바른 것일까? 구약에 나타난 모든 보편주의적 선언을 선교적이라 한다면 이사야 40-55장과 요나서가 선교 사상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선교적이라는 말이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모든 민족에게로 보냄을 받은 것이라는 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면 이 두 구절은 구약의 선교적 사상을 뒷받침해주는 유일한 구절이 된다.2. 구약성경 ‘선교사상의 극치’1) 이사야40-55장이 안에 선교적 예언이라고 할 수 있는 대목은 42,1-7절과 49,1-7절에 나오는 야훼의 종의 노래 두 편에 불과하다. 이방에서 공의를 나타내고(42,1) 하나님의 구원이 땅 끝까지 미치도록 하는(사49,6) 이방에 대한 빛의 역할을 위해(사42,6; 49,6) 야훼의 종이 부름 받았다. 여기에 나타난 종의 형상은 한 개인 또는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공동 인격(corporate personality)이라는데 의견이 일치한다. 이스라엘이 이방의 빛이 되어 그들에게 공의를 나타내는 야훼의 종으로 부름 받았다. 이에 대한 반론은 오직 야훼의 종을 개인으로 해석할 때만 가능하다. 그렇지만 야훼의 종에 관한 이런 구절도 세계적 선교 사상으로까지 나아가지는 않는다. 이사야서에 나타난 선교적 전망- 세계의 운명은 열방 중에 있는 이스라엘의 존재에 달려 있다. 선민은 하나님 중심의 생활을 통해서만 인류를 위해 살 수 있다(Martin Achard).2) 요나서한 편에서는 요나서를 유대인들의 종교적, 민족적 배타주의에 대한 비난이며 이방선교를 위한 항변이라고 본다. 다른 쪽에서는 요나서를 야훼 하나님의 무한하고 광대한 긍휼을 강조할 뿐이라고 본다. 즉 이방 선교를 위한 항변이 부족하다고 주장한다.3) 문제의 난점구약에는 계획적인 선교활동이 없었고, 오직 미래에 이뤄질 것을 기대했다. 보편주의와 선교는 대조적 의미를 갖는다. 보편주의를 구심적(centripetal) 선교의식으로, 선교를 원심적(centrifigual) 선교의식으로 볼 수 있다. 이사야 40-55장과 요나서는 보편주의와 관련성이 많다. 반면에 원심적 의미로서의 선교사상은 구약성경에서 찾기 어렵다.3. 구약성경의 미래적 기대성1) 구약성경은 이스라엘 민족의 기대를 기록한 책이다. 기대의 내용은 야훼 자신이다(렘14,817,13;50,7; 시71,5). 야훼는 역사를 지배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이방 신들은 자연의 능력과 관련이 있다. 역사는 야훼의 활동들의 역사이기 때문이다(시78편). 과거에 이스라엘을 선택하셨고, 아브라함으로 더불어 계약을 맺으셨고, 하나님께 미래에 대한 모든 것을 기대한다. 구약성경 전체가 기대인 것은 야훼가 역사를 주장하시면서 그 백성을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는 결코 과거만이 아니고 또한 오늘날의 야훼의 적극적인 임재와 능력에 대한 강력한 증거가 되고 나아가 야훼의 미래의 활동에 대한 약속의 보증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과거에도 만민의 하나님이셨고 현재도 마찬가지이며 미래에도 역시 그러하다.2) 종말론은 보통 미래에 대한 기대로 이해된다. 종말론은 이스라엘의 기대가 지리적, 역사적, 질적으로 가장 멀리까지, ‘끝’까지 뻗어 있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스라엘 미래에 대한 기대와 이방 민족들에 대한 종말론적 기대는 이스라엘 백성의 미래의 활동이 아니라 야훼의 미래 활동에 근거한다. 구약에 나타난 종말론은 복음을 만방에 전하러 간다는 의미의 선교적 사명과 관련되지 않는다. 야훼가 성취하실 바에 대한 기대로서의 종말론은 협의의 선교 관념(이스라엘이 모든 민족을 향해 나아감)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다. 종말론의 전면에 나타나는 것은 이스라엘이나 이방 민족들의 활동이 아닌 전적으로 야훼 활동들이다. 이방 민족들을 위한 어떤 구원이 있을 것인가의 여부는 이스라엘에 대한 이방의 관계, 이스라엘을 통해 나타나는 야훼의 활동에 달려 있다. 모든 민족은 교만으로 인해(창10장)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야훼께서는 세계 만민에게 자신과 구원을 알리기 위해 야훼의 특별한 소유인 이스라엘을 세우시고(창12장) 이 나라를 통해 모든 민족들로 하여금 진실을 알게 하신다. 이것이 구속사의 주제이며, 종말론의 전망이기도 하다. 바르트는 이방 민족들에 대한 잠정적이며 부차적인 개념(이스라엘에 위협적 존재)과 그 이면에 모든 민족들을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하나님의 나라로 보는 상위적, 최종적 개념을 구분했다.
    인문/어학| 2013.12.09| 3페이지| 1,000원| 조회(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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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의선교적본질1장
    교회의 선교적 본질(요하네스 블라우)1. 구약성서에 나타난 보편주의의 출발점과 일반적 전망1) 서론가) 선교신학을 선교에 관련된 몇몇 성서 귀절들에 근거할 뿐 아니라 신구약 성서의 전체적인 가르침을 기초로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구약성서의 보편주의와의 관련성은 요나서와 이사야 후반을 통해 인용되었다.나) 선교와 관련하여 구약성서는 거의 기여하는 바가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아이히로트(W. Eichrodt)의 『구약신학』과 폰 라트(von Rad)의 『구약신학』을 통해 구속사가 선교의 의미와 기초와 연결되기 시작했다. 선교의 구속사적 기초가 확립되어 갔다.다) 구약성서의 메시지가 보편주의(복음이 세계 만민에게 전파되어야 한다): 이 보편주의가 선교의 구약성서적 기초가 된다. 선교란 세계에 복음을 증거하도록 위임받은 임무이다.2) 출발점가) 1936년 K. Hartenstein은 창세기 첫 몇 장들이 선교신학에서 중요하다.나) 창세기 첫 부분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의 역사가 시작되기 이전의 역사, 이스라엘 역사 자체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전사(pre-history)로서 선사(先史)에 대한 증언이요 고백이다.다) 창11장- 교만해진 인간에 대한 심판, 인간 상호간의 소외의 결과로서 인류를 전 세계에 분산시킨 것라) 아브라함의 소명-이로써 시작된 이스라엘의 역사-는 상실된 인류의 통일성과 파손된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려는 역사의 시작이다. 이스라엘 역사 전체는 하나님이 세계 만민을 다스리시는 일 속에 존속하게 되며, 이스라엘 역사는 하나님과 세계 만민과의 관계라는 미해결의 문제로부터 이해되어야만 한다.마) 세계 만국백성들(창10장, 노아 자손의 명단)은 홍수 심판(창7장) 후에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더불어 언약(창9장)을 맺어 이룬 평화의 결과다. 만국 백성들은 평화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한다. 구약성경은 세계 만민을 이러한 이중적 관점에서 본다. 이런 이중적 관점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는 창10-11장에 있다.바) 바벨탑에 관한 이야기는 만국의 명단보다 비중을 덜 차지한다. 그것은 언어의 혼돈과 분산의 문제가 아브라함의 부름받음과 이스라엘의 선택에 의해 상쇄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12,1-3)은 하나님의 구원(창10장)과 하나님의 심판(창11장)을 모두 나타내지만 구원이 더 앞선다(저주하는 자는 단수, 축복하는 자들은 복수).사) 창12,3과 창2,16-17 사이에 유사성 있다. 선악과를 두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 그의 생명과 미래를 결정지은 것처럼, 아브라함에 대한 사람의 태도가 그의 생명과 미래를 결정하게 된다.아) 이스라엘 역사는 창1-11장 말씀을 완성한 것이다. 창1-11장은 이스라엘 역사의 그림자다. 하나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은 만민의 고향이다(시87편 1-4). 시편87편은 이방인으로서 이스라엘에 가담하였던 자들에게 큰 의미를 부여함.3) 선택가) 창1-11장이 족장 역사의 배경을 이루는 것처럼, 족장 역사는 출애굽으로 시작되는 이스라엘 역사의 배경이 된다.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심(이스라엘 선택 내포)은 세계 만민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라는 사실이 창12,3에 잘 나타나 있다. 아브라함(이스라엘)의 선택은 모든 민족에 대한 축복의 전망 혹은 약속과 합치된다. H. H. Rowley는 아브라함(이스라엘)의 선택은 “봉사를 위한 선택”임을 강조한다. “선택의 목적은 봉사다. 그러므로 봉사가 중지될 때 선택은 그 의미를 상실하며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만다.” Vriezen은 “선택의 목적은 선택 그 자체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에 있다.”다) 선택은 수동태로 쓰이지 않고 능동태로 사용된다. 이스라엘이 선택된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다고 성경은 말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의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 목적을 위한 봉사의 주체다. 선택을 통한 봉사가 아니라 봉사를 위한 선택이다. 따라서 선택이란 근본적으로 특권이 아니라 책임이다. 그러므로 선택으로부터 민족주의, 우월한 민족이라는 잘못된 개념을 이끌어 내는 것은 구약성경을 잘 못 이해하는 것이다. 구약이 강조하는 것은 하나의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이다.라)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세계 만민에게 하나님을 알리기 위해 하나님이 하신 첫 역사이다. 이 목적을 위해 이스라엘을 다른 민족과 분리시켰으며 이스라엘에게 신정제도가 주어졌다. 이스라엘의 구별은 편애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되심을 온 세상에 알리는 선구자로서 하나님께만 속하고 다스림을 받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로 이해되어야 한다.마) 출19,5-6: 이스라엘이 제사장들로만 구성된 나라라는 말씀이 아니다. 제사장이 한 민족을 위하여 있는 것처럼 하나의 민족으로서 이스라엘은 세상을 위해 존재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은 선택하신 특수 은총은 세상 모든 민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려는 그의 목적을 위해 베푸시는 도구이다. 그런데 ‘특수 은총’이라는 말은 이스라엘의 위치와 사명을 나타내는데 적합하지 못하다. 이 용어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며 고립주의, 분리주의, 개인주의를 연상시킨다.바) ‘거룩’이라는 용어도 윤리적 자격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특수한 봉사를 위해 바쳐진(구별된) 존재임을 의미한다.4) 만민(이방 민족들)가) 이스라엘의 선택이 보편적 목적을 가진 것이라면 세계 만민은 이방인으로 정치적, 민족적 의미가 아니라 종교적 의미를 갖는다(여호와가 알지 못하는 백성).나) 구약성경은 이스라엘의 선택이 다른 민족들에 대한 거부를 의미하는 것이라 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지만, 이방인은 하나님께서 버리신 ‘버림받은 민족’은 아니다.다) 이방인들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구약에 나타나지만 언제나 이스라엘과의 관계 속에서 다뤄진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그들의 구체적인 관계다. 원칙적으로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에 연합하여 이스라엘의 구원과 축복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 그들에게 항상 열려 있다.라) 구약, 역사서에서 이방인들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정치적으로는 위협이며 종교적으로는 미혹이 되어 있다. 이스라엘이 미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이방인을 따라 우상숭배하면 그들은 이방인들에게 정복을 당했다. 하나님의 심판의 방법은 이방인들을 도구로 사용하신 것이다.마) 이방인들은 이스라엘에 대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증인들이다. 이것이 이방인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다. 시편 67편 2절, 7절. 이방 민족들도 하나님께 지음 받았으며(시86,9)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통하여 온 세상의 하나님을 알고 그 분에게 감사하도록 부름 받았다(출19,5; 신32,8).
    인문/어학| 2013.12.09| 3페이지| 1,000원| 조회(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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