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교조루리닌교조루리0. 닌교조루리란?일본의 대표적인 전통인형극이다. 일본이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전통 무대예술로서, 서민을 위한 성인용 인형극이며 가부키?노와 함께 일본 3대 고전예능분야로 꼽힌다. 에도시대에 발생되어 오늘날까지 약 300년간 전승되었으며 닌교조루리 혹은 분라쿠라고 한다.처음에는 조루리라는 원래 주인공인 조루리히메의 이야기를 비롯한 서사적 노래이야기에 재래의 인형극이 시각적 요소로 더해지고, 여기에 중국의 삼현을 뿌리로 하는 샤미센이 오키나와에 전해져 삼선으로 변형되어 16세기에 조루리의 반주악기가 됨으로써 성립된 연극으로, 인형과 조루리 그리고 샤미센에 의한 삼자일치의 연극이다.닌교조루리라는 말은 닌교 즉 인형을 조루리라는 노래 형식에 맞추어 놀린다는 뜻이다. 조루리란 원래 주인공인 조루리히메의 이야기를 비롯한 장편 서사시를 악기 반주에 맞추어 노래하는 유랑예인들의 예능 명칭이었다. 조루리를 부르는 전문 예능인들을 다유라 했는데, 조루리가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자 레퍼토리도 늘어났고, 연희방식에도 변화가 일어났다.1. 닌교조루리의 발전과정일본의 인형극은 원래 가이라이시 즉, 가슴에 상자를 갖다댄 채 상자 안에서 나무인형을 꺼내 움직였던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중앙아시아에서 시작되어 중국,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 전래되었다.무로마치(1336~1573)시대 중엽에 민중 음악의 하나인 조루리가 생겼으며, 이후에 샤미센과 함께 둘이 한데 어우러져 발전하게 되었다. 19세기에 우에무라 분라쿠켄에 의해 크게 부흥되었고 이후 그의 제자들이 인형극 전용극장을 개설하고 극장 이름을 스승의 이름을 따서 ‘분라쿠좌’라고 하였는데, 이후 분라쿠는 극예술의 한 분야를 지칭해오다가 정식 명칭으로 정착되었다. 현재 중요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인형을 다루는 사람도 인간국보로 대우받고 있다.분라쿠의 기초가 되었던 조루리는 15세기 중엽에 생겨났다. 조루리히메와 우시와카마루의 사랑이야기를 창자가 비파라는 현악기에 맞추어 노래로 부른 것이 일반인의 인기를 얻게 되혹은 ‘조루리가락’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조루리는 그 후 비파 대신 샤미센을 사용하고 민중의 기호에 합치하는 인간성을 표현함으로써 근세 연희물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조루리의 창곡에 인형극이 수반된 것은 1600년을 전후해서이다. 17세기에는 닌교조루리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데, 다케모토 기다유(1651-1714)와 작가 지카마쓰 몬자에몬(1653-1752)의 공적이 크다.다케모토 기다유는 예로부터 전해져 오는 여러 유파의 조루리의 장점을 섬취하여 화법(話法)을 다양하게 개량하였다. 그는 악극적인 표현이 풍부한 새로운 속곡(俗曲)인 기다유가락을 창시하였다. 이후부터 조루리는 기다유 가락을 뜻하게 되는데, 다케모토 기다유에 대한 민준의 사랑은 조루리를 기다유라고 속칭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기다유의 기(義)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지키는 마음을 의미한다. 의는 사람으로서 이행해야 할 길, 해야 할 일을 확실하게 하고 해서는 안 될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인의예지신 중 가장 엄격한 도덕을 그 정신으로 삼는 조루리의 다유(예능인)라는 뜻에서 기다유라고 명명한 것이다. 처음에는 에도지방에서 생겨났지만 점차 그 중심이 교토와 오사카로 이동하게 된것도 오사카 출신의 다케모토 기다유의 영향이 컸다.지카마쓰는 기다유를 위해 조루리 작품을 많이 썼다. 1703년 오사카에서 일어난 유명한 정사사건을 소재로 한 『소네자키신주』는 인형조루리 역사상 중요한 작품이다. 1703년에는 기다유의 제자인 다케모토 우네메가 도요다케좌를 창단하였다. 두 극단은 서로 경쟁하는 가운데 예풍도 대조적으로 발전해갔는데, 이들 두 극단의 경합시대를 지쿠호 시대라 하며 두 가지 풍이 기다유 화법의 기초가 된다.기다유와 지카마쓰 이후 조루리는 합작형태로 대중의 기호에 맞추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합작형식을 취하면서 입안자가 전체 구상을 세우고 각 장면을 분담하여 쓰다 보니 자기가 맡은 장면에만 골몰하여 극적 전개가 복잡하게 변하였다. 그러나 이야기를 전달하는 부분이 적어지고 등장인물의 희화 것도 이때이다. 인형과 조정술도 현저한 발전을 이룩하였으며, 조루리의 3대 명작이라 불리는 『스가와라덴쥬테나라이카가미』, 『요시쯔네센본자쿠라』, 『가나데혼츄신구라』가 성립된 것도 이 시기로, 인형조루리의 황금시대라 일컬어진다. 이 조루리의 3대 명작이 그대로 가부키화되어 가부키의 명작이 된다. 18세기 후반부터 급격히 쇠퇴하여 가부키에 주도권을 양도하지만, 닌교조루리의 대본, 연출법, 음악성 등은 가부키에 이입된다.1743년에는 인형 조종자인 요시다 분자부로에 의해 삼인조 종인형이 창안되면서 점차적으로 듣는 것에서 보는 것의 비중이 커져갔다. 다케모토와 도요다케 두 극단의 각축시대 이후 조루리는 흥망성쇠를 거듭하다가 우에무라 분라쿠겐의 제자들에 의한 인형극 전용극장이 설립되면서 분라쿠겐의 이름을 따서 분라쿠자라 했다. 이때부터 ‘분라쿠’라는 명칭이 인형조루리의 대명사가 되었다. 즉, 이전에는 인형조루리라고 하던 것이 이때 이후 분라쿠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현재는 도쿄에 국립극장, 오사카에 국립분라쿠극장이 설립되어 있다.2. 닌교조루리의 구성요소분라쿠는 기다유부시 조루리의 연주에 맞추어서 인형조종자인 세 명의 닌교즈카이)가 인형을 다루어서 연기하는, 어른을 대상으로 한 연극이다.분라쿠는 인형을 조종하는 세 명 외에, 샤미센을 켜는 사람과 이야기를 엮어 나가는 다유가 있다. 객석에서 분라쿠의 무대를 보면, 배우들만 등장하는 일반 연극무대와는 달리, ①배우인 인형과 인형조종자 ②인형의 대사와 극의 내용을 노래로 전개하는 다유 ③노래반주와 배경음악을 연주하는 샤미센히키 등이 나와서 역할을 분담한다.이야기를 엮어 나가는 다유는 분라쿠의 극작가로 유명한 지카마츠몬자에몬이 기타유와 협력하여 만든 이야기 가락이라는 뜻에서 그 이름이 비롯되었으며 다유는 성대가 아닌 복부로 노래를 부른다. 또한 무엇보다 제대로 된 이야기의 전달을 위해 정확한 발음을 중요시 한다. 이렇게 인형조종사, 샤미센, 다유를 부라쿠의 3대 요소라하며, 이 3요소가 일치되어 조화를 이룰 때에야쪽에는 유카라는 지름 2.5m정도의 회전무대를 설치한다. 유카는 다유와 샤미센히키가 앉는 자리이다. 보통 한 편을 다 부르려면 여러 시간이 걸릴 정도로 길기 때문에, 여러 명의 다유와 샤미센히키가 각 대목을 분담하여 연주한다. 유카에는 다유와 샤미센히키가 앉으며 이 유카를 회전시켜 뒤에서 대기하던 다유 및 샤미센히키와 교대하여 연주를 한다. 무대의 바닥에는 인형조종자들이 지나다릴수 있는 낮은 통로를 만든다. 이 통로는 무대 바닥보다 36cm 정도 낮게 만들어, 인형조종자의 눈 높이와 인형의 눈 높이가 비슷해지도록 한다. 무대에 낮추어 만든 통로 부분은 배의 밑창처럼 만든다고 하여 후나소코라고 부른다. 후나소코 앞에 가림대를 만들어 세움으로써 객석에서는 인형조종자의 발이 보이지 않도록 배려한다.분라쿠의 가장 큰 묘미는 인형의 다양한 동작과 섬세한 표정에 있다. 나무토막으로 만든 무생물인 인형이지만, 인형조종자의 조종에 따라서 늠르만 장수의 기상을 나타내기도 하고 사랑하며 기다리는 애틋한 여인의 아름다움을 나타내기도 한다. 인형의 크기는 대개 사람의 절반 또는 실물 크기로서 키는 1-1.5m이고 그 무게는 최대 10kg까지 나간다.3. 닌교조루리의 장르분라쿠는 일반적으로 그 주제와 내용에 따라 시대물과 세태물, 무용극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시대물을 신화시대를 비롯하여 나라, 헤이안, 가마쿠라, 무로마치시대등 에도시대 이전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귀족과 무사들의 사이에서 일어난 사건을 소재로 다룬다. 다른 장르보다 작품 수가 많아 분라쿠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또한 연출이나 연기, 작곡 등의 면에서 과장되는 면이 많고, 의상이나 무대도 화려하며 양식성이 강하다는 특징이 있다. 충성과 무용담이 중심이 된 활극으로 일본의 무사도 정신에 호응하여 대중의 인기를 얻었다.세태물은 세상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다루는 장르이다. 17세기 후반에 발생하여 그 시대의 서민들 사이에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시대물에 비해서 수는 적고, 상?중?하 3단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으며 사실적 소동 등을 그린 장편인 시대세태라는 장르도 만들어졌으며 따라서 관객들의 피부에 와 닿는 이야기, 생동감 있는 이야기, 자신들과 관련된 이야기로써 대중성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서민들의 일상사를 소재로, 신분이 다른 사람끼리의 사랑을 다룬 낭만적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상인 계층의 유부남과 유곽 여성과의 사랑,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정사情死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정사를 에도시대에는 신주心中라 했다. 신주라는 말은 ‘마음의 한가운데’ 즉 ‘진심’이라는 뜻이었으나, ‘남녀의 진심이 통하여 한날 한시에 함께 죽는다’는 뜻으로 의미가 변화하여 널리 쓰이게 된다. 겐로쿠시대에 교토와 오사카를 중심으로, 유행병처럼 많은 신주사건이 일어났는데, 그럴 때마다 분라쿠로 작품화되어 화제를 모으곤 했다. 젊은이들의 순수한 사랑이 주위의 장애로 한계에 부딪쳤을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선택하는 신주는 멋있는 일, 용기 있는 일로 여겨지던 풍조는 에도시대의 산물이다. 실제로 유곽을 중심으로 동반자살사건이 많아지자, 1722년 막부에서 신주금지령을 내렸지만 정사는 끊이지 않아 좋은 화젯거리로 세인들의 입에 오르곤 했다. 에도시대의 신주는 특히 상가의 고용인 즉 호코닌과 유곽의 유조사이에서 그 예가 많이 남아있다. 신주의 발생원인으로는 무엇보다도 격렬한 연애감정이 가장 많았고, 그 밖에 가족제도, 의리, 경제적 빈곤, 명예심 등을 들 수가 있다. 1704년에 간행된 신주사례를 집대성한 책인 『신주오오카가미』의 기록에 의하면 약 2년 사이에 36건의 신주사건이 발생했다고 한다. 신주를 범법행위로 정하고 신주를 시도한 사람에게는 형벌이 처해졌으며, 신주한 사람의 시체는 가족들에게 인도하지 않고 산이나 들에 버려서 들짐승이나 새들의 밥이 되게 했다. 죽은 남녀의 옷가지는 시체가 들짐승이나 새들의 밥이 되는 것을 지켜보는 파수꾼이 재량껏 처리하게 하였으며 죽은 사람의 장례를 치르는 것도 금지하였다. 이렇게 하여 신주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는 처참한 죽음,
삼성과 김용철 변호사(인지부조화, 마키아벨리아리즘, 내부고발자 이야기)1. 기사내용 요약삼성 비자금 관련 의혹에 대하여 폭로를 했던 김용철 변호사와의 인터뷰. 특검팀에서 수사 결과 발표를 하지만 그는 삼성의 위력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결과라며 수사결과를 비난한다. 명예회손 혐의로 고소를 당한 입장에 있던 김용철 변호사에게 ‘로비 의혹은 가지만 증거가 없다’는 식으로 결론을 내주겠다는 회유가 들어왔다 말하였다. 하지만 이를 거부하고 그는 삼성을 세속의 법정이 아닌 역사의 법정에 세우겠다는 신념과 함게 명예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겠다 말한다.2. 사건전개 과정삼성 법무팀에서 일을 했던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퇴직 이후 삼성 비리를 천주교사제단과 함께 사회에 고발을 한다.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 법무팀에서 일하던 당시 부사장의 자리까지 제의 받았을 정도로 삼성 내에서 인정 받던 실력자였다. 이건희 회장이 직접 주관하는 회의에 참석했다는 것은 이를 단정적으로 보여주는 바이다. 하지만 그는 삼성을 나온 후 삼성 비리에 대해 고발하고, 특검이 진행되며, 삼성쇄신안과 함께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많은 관계자들이, 경영 일선에서 퇴진하겠다는 말과 함께 삼성의 부정을 덮으려 한다.삼성 근무(1997 ∼ 2004) ⇒ 삼성부정비리 사회 고발 ⇒ 특검 ⇒ 특검수사발표 ⇒ 삼성쇄신안발표 ⇒ 특검결과비난(기사내용)3. 원인[내부고발자, 마키아벨리아리즘, 인지부조화]인간은 자신의 태도와 행위를 일치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런 일관성이 일치하지 않을 때에 인지부조화를 겪게 된다. 하고자 하는 것과 하는 것의 차이. 어찌보면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은 문제로 보이기도 하지만 인간은 로봇과 같은 기계가 아니기에, 생각과 정서, 가치관으로 뭉쳐있는 실체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만약 일관성의 규칙이 깨졌을 때, 인지부조화를 겪고 있는 당사자들은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김용철 변호사의 경우가 이와 같은 경우이다. 자신의 태도와 행위의 일치를 위해 그는 사회 고발자가 된 것이다. 정치를 포함한 전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니 그들은 글로벌기업이니 그 영향력은 세계에까지 미치고 있다 할만 하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이다.또한 많은 이들이 삼성의 힘 아래 삼성을 옹호하고 배반자라며 오히려 김용철 변호사를 비난한다. 변호사로서 가장 중요한 고객의 비밀보장을 위반했을 뿐만 아니라, 삼성에 있을 때는 많은 혜택을 누리고 지금 와서 그러는 것이냐는 것이다.공정해야 할 정부가 삼성을 도와주고 있다. 축구경기에서 심판이 중요하다. 어느 경기에서든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중도의 입장에 있어야하는 심판이 눈에 뻔히 보이는 편파판정을 하고 있다. 불구속기소. 정말 말도 안되는 판정에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이런 경기는 선수에게는 경기를 하고 싶지도 않게 만드며 관객에게는 경기를 보고 싶지 않게 만든다. 의욕 자체가 발생 하지 않는 것이다. 국민의 요구에 형식적으로만 하는 특검수사는 충분한 만족을 주지 못하고 있다. 너무 뻔히 보이는 삼성 봐주기 정치는 국민을 우롱하고 있음을 보여줄 뿐이다.다윗 김용철 변호사는 정말이지 작고 초라하다.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지만 너무나 커다란 힘의 차이가 그를 더욱 작고 위축되게 만든다. 그가 가지고 있는 무기는 진실이라는 검뿐이지만 날카롭다. 혹자는 비난하고, 혹자는 지지한다. 인간이기에 언제 다윗 역시 커다란 힘 앞에 무릅을 꿇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소비자로서 기업을 바라보는 관점이 중요하다. 소비자에게 어느 제품을 얼마큼 잘 만들었냐는 중요하다. 우리는 이로써 기업을 평가한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기업을 바라보는 관점이 상품의 양, 질, 서비스가 아니라 기업의 윤리적 도덕적 관점에서도 평가를 해야 한다. 우리는 삼성을 세계에 영향력있는 기업으로 평가한다. 분명히 맞는 말이다. 세계 브랜드 파워 10위 안에 들어가는 삼성. 하지만 우리는 소비자로써 기업 자체의 질을 평가하는 관점을 높여야 한다. 하지만 현실태는 분명 기업의 브랜드 파워만 보고 삼성을 높이 추켜세우고 있다.① 삼성 기업 파워가 사회에 미치는 발생하게 될 것이다. 환경이 개인의 태도와 같고, 태도가 개인이 지향하는 바와 같다면 이와 같은 윤리에 의해 발생하는 인지부조화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며 의사결정의 범위가 사회의 윤리적 범위 내에서 이루어 지게 될 것이다.기업 관리자는 기업 자체의 마키아벨리아리즘이 높은지 측정하고 그 측정이 높다면 윤리적 범위 내에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꾸준한 측정을 해야만 한다. 측정은 올바르지 않은 길로 가는 배를 올바르게 해준다. 만약 어긋남의 정도가 심하다면 즉각 배의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 윤리적 범위의 측정은 이를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또한 정부의 적절한 통제가 있어야 한다. 제도적으로 바르게 구축된 제도 인프라를 바탕으로 기업이 윤리적 경영을 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사회 속에 기업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 기업 속에 사회가 있는 것이 아니다. 교육은 ‘윤리를 추구해야 함께 해야 한다’ 말하면서 사회 환경은 비윤리적 사회를 추구하게 된다면 사회는 보다 어둡게 될 것이다. 재벌주의 한국 사회에서 바람직한 모습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적인 대수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수술 자체를 겁나 하고 있다. 작은 종양이 커다란 암을 만든다. 넋 놓고 있다가 커다란 재앙이 되어 돌아 온다면 그 때 후회해봐야 이미 늦어버린다.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커다란 고통이 따르는 수술이 되겠지만 앞으로 우리 사회는 보다 투명한 바람직한 세상이 될 것이다.마지막으로 소비자의 권리와 선택의 의무이다. 소비자가 외면하는 기업은 경쟁의 전쟁터에서 절대로 살아 남을 수 없다. 어째서 ‘투명함’을 강조하는지 보여줘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당연히 해야하는 의무이자 권리이다. 재벌기업이라서 너무 유명해서, 이렇게 하나 하나 봐주고 악한 기업을 도와주게 된다면 그들은 고맙다는 말보다는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 시키고 더욱더 악한 사회를 구축할 것이다. 기업은 소비자의 선택이 필수적이다. 우리의 권리와 의무를 적절히 조화하지 않는 한 그 폐해는 고스란히 우리에게 오게 될 것를 일관성의 자세로 유지하기에 적절한 해결 방안이다. 하지만 올바른 사회를 구축해 나가기 위해서는 문제되는 점 - 사회가 옳지 않은 일이라 여기는 것 -을 바로잡는 것이 앞으로 한국의 미래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다.사회적으로 내부고발자를 보호해야 한다. 내부 고발자를 비난하게 될 경우 무엇이 옳은 건지 생각할 수 없다. 분명 옳은 말을 하지만 비난 받게 될 경우 제 2의 김용철 변호사와 같이 내적 갈등을 겪고 있는 다른 사람들은 쉽게 포기해 버린다. 용기 있는 사람은 용기 있게 만들어 줄 수 있는 환경에서 더욱 큰 힘을 발휘 할 수 있는 것이다. 제도적으로 안정적인 장치를 만들어 안전을 보장하며 사회적으로 그들을 포용하고 보호하는 것이야 말로 성숙한 민주주의, 문화시민의 자세라 하겠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있어야 사회는 살기 좋은 세상으로 끊임없이 진화하고 변화한다.김용철 변호사는 삼성이 비자금, 권력 세습 등 사회에 반하는 행동을 하였다고 고발 하였다. 그가 겪은 인지부조화는 사회고발로 이어졌고 이는 바람직한 한국 사회를 만들기 위한 긍정적 시발점이 되었다 생각한다.주 체해 결 방 안기 업이윤과 윤리를 함께 추구하는 경영정 부제도 도입을 통한 적절한 통제 시도소비자투명하지 못한 기업에 대한 사회적 배제※ 내부 고발자에 대한 사회적 안전장치 요구6. 시사점기업은 사회와 함께 하기에 혼자서는 살아 남을 수 없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 하는 삼성의 자세는 비단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들은 사회 이전에 기업의 이윤 추구를 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어느 것 하나가 더 중요하다 덜 중요하다 말 할 수 없다. 하지만 마키아벨리아리즘 성향이 높은 것에도 그 적절함에 정도가 있다 생각한다. 기업의 마키아벨리아리즘이 왜곡된 조직문화를 이 것은 다시 왜곡된 의사결정의 틀을 형성하였다. 왜곡된 의사결정의 틀은 현재 김용철 변호사가 겪고 있으면서 삼성 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위기로 돌아온 것이다. 올바른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기업의 관리자는 무던히 노력하며 내외적으로용철 변호사는 쉽고 편한길을 선택하지 않았고 환경보다는 자신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고 사회의 잘못된 구조를 바꾸기 위해 노력중이다. 그에게는 무척이나 오랬동안 생각하고 결정했을 일이다. 그는 어느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식에게 제일 미안하다고, 배반자의 자식이라는 오명으로 살지 않을까 무척이나 두렵다고, 실제로 그에게는 무척이나 힘든 나날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하지만 이러한 정신작용이 없다면 우리사회는 더욱 더 앞에 보이는 이익만을 좇아 살아가는 사람들로 가득 찰 것이다. 이러한 각박한 사회를 우리는 원하지 않는다. 또한 이러한 용기있는 자들이 시원하게 말 할 수 있는 여건과 사회적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인지부조화. 한 개인의 태도와 행위간의 불일치는 위의 사례에서는 긍정적 작용을 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올바른 태도, 그에 앞서 올바른 가치관 형성이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이를 위해 올바른 교육이 무척이나 중요하다 생각한다. 여기서 교육은 대학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하기 위한 인성 교육이다.인성교육. 우리 한국사회에서 교육을 중심적으로 받을 때는 20세 전이라 생각하다. 물론 이때 이 후에도 평생교육이라 하여 교육을 배우지만, 이 때에는 이미 자신이 형성하고 있는 가치관을 기본틀로 하여 덮어 씌우거나 짜깁기를 할 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교육을 받을 때에 과연 어느 교육을 받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대학교를 가기 위해서 하는 교육을 윤리적, 도덕적 인성교육에 덧붙일 수 없다. 우선 순위가 뒤 바뀌고 있지만 우리는 물질적 욕구 충족이 전부인양 행동하고 있다. 어린 시절 교육을 받을 때부터 사회에 적합한 윤리 교육을 실시하고 이 것이 바람직한 가치관을 형성하고 사회는 올바른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대접받는 세상. 그것이 중요하다.바람직한 가치관 형성을 위한 노력과 이러한 가치관을 위한 사회 제도적 안전장치가 중요하다.“거짓말이었다면 나를 구속하라”김용철 변호사 회견김남일 기자 신소영 기자≫ 김용철 변호사. 신소영 기자 via
소설≪폼페이≫ 속 조직행동[INDEX]도서 선정 동기 및 조직행동론내용 요약원인문제점해결방향시사점선정동기 및 조직행동론도서 ≪폼페이≫는 로버트 해리스Robert Harris의 역사 소설이다. 베수비우스 화산 폭발과 관련하여 당시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던 폼페이에서 한순간에 일어난 화산 폭발을 통하여 사라지게 된 과정을 소설 속 주인공인 아틸리우스의 관점을 통하여 그리스 로마시대의 환경과 인간의 생각, 행동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또한 현실과 가장 근접한 형태인 소설 속에서 나타나는 인물들을 통하여 소설 속 조직 행동과 연결지어 레포트를 서술 하였다. 하지만 3인칭 관점으로 작성된 소설≪폼페이≫ 속 등장인물이 너무나도 많아 모두다 관찰 할 수 없기에 수도기사인 아틸리우스의 리더십, 권력, 동기부여 등을 주로 하여 레포트를 작성하였다.내용 요약소설 ≪폼페이≫는 베수비우스 화산 폭발 이틀 전부터 폭발 마지막 날까지 있었던 일을 어느 한 수도기사의 관점으로 소설화 한 작품이다.수도기사 아쿠아리우스인 아틸리우스는 로마 궁정의 명을 받고 아우구스타 수도교에 파견된다. 아우구스타 수도교는 로마 폴리스 만 인근의 아홉 개 이상의 마을에 물을 공급하는 중요한 수도교로 폼페이를 시작으로 하여 놀라, 아케라이, 아텔라, 네아폴리스, 포추올리, 쿠마이, 바이아이, 미세눔의 순서로 물을 공급한다. 이러한 중요한 수도교에 파견된 그였지만 계속되는 가뭄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그는 물을 찾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다한다. 그러던 중 미세눔에 있던 그는 놀라에서부터 물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는 수로 문제의 원인이 유황에 있음을 인식하게 되고 유황에 의해 수로의 물이 나오게 되지 않는 것이라 판단한다. 막힌 수로를 뚫기 위해 그는 해군 제독의 도움을 받아 폼페이로 이동하게 된다. 폼페이 베수비우스 산에 도착하여 유황에 의해 막힌 수로를 뚫지만 베수비우스 화산은 결국 폭발하게 되고 절대 풍요를 누리던 폼페이는 한 순간에 사라지게 된다.원인≪폼페이≫는 주인공 아틸리우스의 직업인 수도기사의 업무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소설이다. 로마 번성기였던 당시의 수로에 관한 업무는 무척이나 중요한 사안이였다. 수도기사인 그가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3개월간 계속되는 가뭄에 위기를 느끼고 물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던 중 아우구스타의 수도교에 문제가 있어 물이 흐리지 않는 것을 알게 되고 이를 해결해야는 상황에 봉착한다. 아우구스타 수도교는 다른 지역의 수도교에 비해 역할이 중대하였으며 수도교 한쪽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지역 수도교 전부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로 되어있었다. 수도기사 아틸리우스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문제점아틸리우스는 막힌 수도를 뚫기 위해 함께 일 할 하급자들 몇몇과 함께 행동한다. 하지만 함께 일하는 그들은 아틸리우스가 스물 일곱의 어린 나이와 신참이라는 이유로 그를 따르지 않으려고 한다.그의 주요 조직 구성원 중 코락스라는 인물에 관하여 논하자면 그는 아쿠아리우스 수도교에서만 20여년을 종사을 하였다. 작가는 주요 조직원들 중 코락스와 아틸리우스의 대립구조로 소설을 전개하였다. 코락스는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으며 수직적 구조의 아틸리우스보다는 수평적 구조의 다른 조직원들을 통하여 자신의 입지를 더욱 확고히 함과 동시에 다른 조직원들의 여론지도자 역할을 수행한다. 코락스 개인의 성향 또한 이기적이며, 자신이 20년동안 수로를 위해 근무했던 경험에서 나오는 자신감에 리더인 아틸리우스를 무시하고 따르지 않으려 한다. 또한 부임한지 4일 밖에 되지 않은 시기와 점점 말라만 가는 수도교로 인하여 물의 공급을 원할해야만 하는 아틸리우스는 신뢰를 구축하지 못한채로 고된 업무를 계속한다. 신뢰가 구축되기 전에 고된 업무를 계속하는 과정과 수도교의 물이 점점 줄어만 가는 현상이 주는 조직원들의 불안감에 또한 전에 부임하였던 수도기사의 평판이 아틸리우스를 어렵게 한다. 이러한 것들이 아틸리우스 조직 내의 어려움이였다.환경적 어려움 또한 존재한다. 아틸리우스는 자신의 업무를 위해 해군 제독인 플라니우스 등의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지진, 화산과 같은 일에서 전혀 경험이 없는 것. 도시의 행정관들의 부폐. 그래서 그들을 설득하는 과정 또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수로의 정비를 위하여 단수(斷水)를 해야 하지만 단수가 가져올 혼란, 그리고 단수를 위한 절차상의 어려움. 이틀이라는 짧은 시일 내에 막힌 수로를 원 상태로 복구시켜야만 하는 시간에 의한 중압감이 환경적 어려움으로 존재한다.0. 아틸리우스의 조직 내 난관. 다른 조직원들 보다 어린 나이와 경험가. 조직원들로부터 신뢰 받지 못하여 발생하는 문제 해결의 어려움1. 환경적 난관. 상위 권력으로부터 도움을 받는데 있어 비경험이 가져오는 문제가. 도시 행정관들의 탐욕과 이기심나. 단수(斷水)에 따른 시민의 혼란 예상다. 주어진 시간이 짧음에 따라 빠르게 일을 처리 해야만 하는 어려움해결방향1. 아틸리우스의 조직 내 난관가. 다른 조직원들 보다 어린 나이와 경험수도기사로서 아쿠아리우스 수도교의 리더를 맡고 있는 아틸리우스는 스물일곱이라는 어린나이와 수도기사로서 4일간의 활동만을 했었던 경험의 부족함으로 인하여 조직원들이 그를 따르는 것에 비협조적 태도를 보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그는 배려적 리더십보다는 구조주도적 리더십의 태도로 조직원을 대한다. 그는 목표를 세우고 각 조직원들에게 업무를 분할하며 그에 따를 것을 명령하였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합법적 권력인 수도기사라는 직위였으며 다른 조직원들은 어쩔 수 없이 따를 수 밖에 없었다.그의 리더십에 관한 생각을 보여주는 한가지 예로 ‘지도력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결국 이 길이 아니라 저 길이라고 무작정 결정하고 그 결정이 판단력에 근거한 것인 양 시치미를 떼는 것 아니겠는가?’라는 문장이 있다. 절대적으로 따를 수 밖에 없는 조직원들을 원할히 유도하기 위하여 그는 합법적 권력을 사용한 것이다.그는 어릴 적부터 물과 관련된 전문서적을 완전히 외워 버릴 만큼 전문적 권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조직원들은 그의 전문적 권력에 대한 필요성 즉 목표에 대한 성취 욕구를 필요로 하지 않았으며 동기부여의 부재로 인하여 전문적 권력을 발휘하지 못하였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빠르고 강력한 합법적 권력을 사용하여 조직을 운영하였다.나. 조직원들로부터 신뢰 받지 못하여 발생하는 문제 해결의 어려움조직원들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여 발생하는 문제들과 관련하여 그는 베우비우스 화산의 폭발일까지 주어진 삼일이라는 시간동안 완벽한 신뢰를 구축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그의 조직원들과 주어진 시간동안 몇가지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행동을 한다. 그 예로 무거운 짐을 운반하는 일에 있어서 부하들이 해야 하는 일과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구분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짐을 운반할 뿐만 아니라 어렵고 힘든 일에 있어서도 가장 먼저 행동하는 등의 Impression Management(IM)를 구축하고 전문가적 권력과 구조주도적 리더십으로 믿고 따르게 하는 행동을 만든다. 또한 그는 어려운 업무를 함에 있어서 조직원들에게 농담을 하는 등 편안한 의사소통 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함과 동시에 그만의 독특한 신뢰 구축방식으로 여론지도자였던 코락스를 농담으로써 억누르는 모습을 다른 조직원들 앞에서 보이는 것이다. 이는 장난스럽게 억누르지만 다른 조직원들로부터는 신뢰를 구축하는 형태를 띄게 된다.2. 환경적 난관가. 상위 권력으로부터 도움을 받는데 있어 비 경험이 가져오는 문제유황에 의해 수로가 막히는 것을 인식하지만 이에 대하여 당시의 환경적 도움을 주는 해군제독 플리니우스와 원로원 의원을 설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아틸리우스는 그가 구성한 합리적인 계획을 이용하여 설득을 함과 동시에 17년전에 일어났던 대지진을 연상함 시키며 과학적 근거를 제시한다. 여기서 과학적 근거는 잔에 따라 놓은 포도주가 흔들리는 현상을 말하며 바람이 불지 않는 실내에 포두주가 흔들리는 것을 지진과 연관시키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공포와 유황의 불길함, 신의 개입성 등을 이유로 빠른 시일내에 조치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한다. 또한 플리니우스가 가지고 있는 과학에 대한 탐구 욕구는 동기부여 중 성취욕구를 자극하여 아틸리우스를 물질적으로 돕는데 협조한다.나. 도시 행정관들의 탐욕과 이기심아틸리우스는 해군제독 플리니우스가 작성해준 편지를 가지고 폼페이의 행정관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행정관들은 합법적 권력을 바탕으로 그를 무시하고 도움을 주는 것에 대한 경비를 걱정하는 등의 자신의 욕구만 충족시키는데 급급한 모습을 보인다. 또한 물이 나오지 않는 것을 오히려 하나의 사업거리로 여기기까지 한다.아틸리우스는 수도기사라는 합법적 권력과 강제적 권력을 이용하여 행정관들을 협박하는 수단을 이용한다. 바로 폼페이로 통하는 지관을 끊어 놓겠다는 말과 감독관을 보내어 한 사람 분 이상의 물을 취하는 자들에게는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도시 행정관들은 이에 대하여 수긍하지 않고 반발한다.이 때에 암플리아투스라는 자가 등장한다. 그는 도시 행정관들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부를 이용하여 억압하며 명령에 따르게 한다. 이는 보상적 권력과 강제적 권력을 동시에 이용하여 타인을 자신의 명령에 따르게 한 것이라 할 수 있다.다. 단수에 따른 시민들의 혼란 예상아틸리우스는 얼마 남지 않은 물을 공급하기 위하여 제한적으로 물을 공급하는 방법을 선택하고 미세눔의 수도에 한시적 단수를 취한다. 이에 군중들은 음용 분수에서 서로 밀고 밀치다가 주먹이 오가는 등의 광분의 상태에 변한다.‘군중들은 인상을 쓰면서 분수대로 점점 더 조밀하게 몰려들었고, 그 혼잡의 한가운데에서 커다란 질그릇이 날아올라 허공에서 천천히 돌다가 부두에 떨어졌다. 그릇은 산산조각 났고,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1. 장례식의 의의- 일반적으로 장례식이란 사람이 이승의 생애를 마치고 저승으로 가는 길에 자손이 환자를 큰방으로 모시고 임종(臨終)하여 편안히 숨을 거두게 지키고 보살핌과 동시에 돌아가시면 3일동안 최고의 슬픔과 공경으로 주검을 받들고, 엄숙한 장례식을 거행하여 깨끗한 땅속에 고이 묻어서 안장하는 의식이다. 즉, 장례식은 죽은자를 보다 아름답고 깨끗하게 그리고 편안하게 보내드리기 위한 의식인 동시에 인간의 존엄성을 밝히고 평생의 공적을 기리고 새기는 의식이라 할 수 있다.2. 우리나라 장례식의 변천- 한 사람의 출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치러야하고 또 의미를 부여해야하는 중요한 의례인 통과의례(通過儀禮) 중 동양의 유교적 문화권에서는 특히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4가지 의례를 들어 관혼상제라고 이름했다. 이 관혼상제의 의례 속에는 그 의례가 속해 있는 종교의 세계관(世界觀), 신관(神觀), 인간관(人間觀), 신앙관(信仰觀) 등이 담겨있어 그 시대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장법(葬法) 혹은 장묘(葬墓)제도를 살펴보면 시대에 따라 그 양식을 달리하여 변화·발전하였는데,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는 매장법이, 통일신라이후 고려시대까지는 불교의 영향으로 인해 화장법이 널리 시행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유교를 기본으로한 매장이 제도화되었다. 이처럼 장법의 변하는 그 시대에 주를 이루었던 종교나 사상의 영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시대선시시대통일신라 ~ 고려시대조선시대장례법매장법화장법매장법종교불교유교3. 매장과 화장1) 매장이란?- 죽은 사람을 땅에 묻는 장례법. 토장(土葬)이라고도 한다. 매장 풍습은 인류가 집단생활을 하면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유럽에는 구석기시대에 매장이 있었다고 고고학적으로 증명되었다. 한국에서도 선사시대 이전부터 매장한 사실이 각처에 있는 고인돌로 미루어 확실하다.매장을 하는 이유는 ① 지하에 저승이 있다는 신앙에 따라, ② 사자(死者)를 겁내 관계를 끊기 위하여, ③ 움집[竪穴住居] 생활의 유풍에서, 단순히 위생적인 면에서 등의 해석이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②의 이유가 가장 유력하다. 시체를 단단히 묶어서 굽혀묻기)[屈葬]를 하거나, 펴묻기[伸展葬]를 할 때도 시체 위를 무거운 돌로 눌러 놓는 것은 사자의 복귀를 겁내는 뜻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며, 지금도 한국에서는 시체를 염할 때 든든한 삼베로 12마디를 묶는 것이 상례이다.초기의 매장은 시신을 그대로 묻었으나 후에는 돌널)[石棺]·독널)[甕棺]에 수장하였고, 연모의 발달과 함께 나무널[木棺]을 사용하였다. 매장의 방법·절차도 나라마다 다른데 한국과 같이 유교의 유풍이 남아 있는 나라에서는 절차가 번거롭다. 먼저 상주(喪主)가 지관(地官)을 데리고 산지에 가서 묘자리를 정한 다음 표목을 세우고 산신에게 재배하고 축문을 읽는다. 천광(穿壙:무덤을 팜)할 때는 광상(壙上)에 차일을 쳐서 비나 해를 가린 뒤에 나무로 ‘井’자 모양으로 짠 금정(金井)틀을 설치하고 깊이 파는데, 이 때 석회·모래·황토를 섞어서 광내 사방을 잘 다지고 구덩이 안의 상하좌우에는 장지(壯紙)로 가린다. 하관(下棺)할 때는 곡을 그치고 상주는 잘 살펴야 한다. 관이 정위치에 앉은 것을 확인한 다음 상하좌우를 쓸고 구의(柩衣)와 명정(銘旌)을 덮는데, 이 때 망인이 생전에 쓴 물품·서적 등을 넣는다. 이어 5판(板) 또는 7판으로 된 가로대를 내광(內壙) 위에 덮고 현훈(玄?)을 드린 뒤 상주 이하가 재배하고 곡한다. 횡판 위는 석회 덩어리로 누르고 판 위에 회를 고루 펴서 단단히 다진 다음 토지신에게 제사지낸다. 지석(誌石)은 석함이나 목궤에 넣어 외광(外壙) 앞에 묻는다. 성분(成墳)이 끝나면 묘 앞에 묘표를 세우고 혼유석(魂遊石)·상석(床石)·향로석(香爐石) 등의 석물을 배설하며 망주석 2개를 묘 앞 좌우에 세우기도 한다.이러한 매장 풍습은 한국·중국·이슬람권 나라에서 지금도 하고 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묘를 만들어 매장하는 장사법이었으나, 조선 말기 근대화의 물결을 타고 일본의 화장법이 전래되어 병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매장및 묘지 등에 관한 법률(1981.3.16. 법률 799호)이 제정되었는데 묘의 크기는 분묘 1기당 20㎡를 초과할 수 없다.2) 화장이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불에 태워서 처리하는 장법(葬法). 뼈를 추려 항아리나 상자에 넣어서 땅에 묻기도 하고, 가루로 만들어 강이나 산에 뿌리기도 한다.유럽에서는 신석기시대부터 있던 장법이며, 일반적으로 서유럽의 켈트족은 토장(土葬)을 하고, 튜튼사람은 화장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BC 1000년경에는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도시에서도 토장과 화장이 병행되었다. 그 후 그리스도교가 전파되어 그리스도교의 유체 정화와 부활의 사상에 따라 화장 풍습이 사라졌다. 그러나 교회 묘지의 수용 증대와 묘지의 거주지역 접근 등이 동기가 되어 19세기 말경부터 화장하는 예가 생기기 시작하여 유럽과 미국 각지에서 화장이 증가하고 있다.동양에서는 불교의 진원지인 인도에서 예로부터 불교의 장법인 화장이 유행되어 오늘에 이른다. 고대 중국에서는 화장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으나 후한(後漢) 명제(明帝) 때에는 서역(西域)에서 불교가 전해지면서부터 화장이 생긴 것 같으며, 송대(宋代)에는 그 수가 많아진 것으로 보이나 명말청초(明末淸初)에는 점차 쇠퇴하였고 지금은 중국에서 화장하는 일이 극히 드물다.한국에도 삼국시대에 불교가 중국에서 전래된 뒤부터 다비(茶毘)라 하여 승려가 죽으면 화장하는 풍습이 있었으나 일반인들은 거의 토장의 풍습을 따랐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인 1912년 ‘묘지 ·화장 ·화장장에 관한 취체규칙’이 제정된 후부터는 일제의 강요, 묘지 확보의 어려움 등으로 화장을 따르는 예가 있었으나, 오랜 전통적 풍습과 관념을 일시에 변혁시킬 수는 없었고 대부분이 계속 토장을 하였다.그러나 오늘날에는 인구 팽창에 따른 거주 지역의 확장, 농지와 임야 면적의 확보 등으로 묘지의 절대 면적이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며 따라서 화장을 하는 예가 특히 대도시를 중심으로 늘고 있다.4. 매장문화 화장문화1) 매장문화- 장점 : 우리나라에서 매장문화는 유교문화의 다란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매장문화는 추석에 성묘를 가는 성묘문화를 비롯하여 조상에 대한 예를 다하는 하나의 의식이라 할 수 있다. 현대와 같이 개인의식이 사회 전반에 뿌리 내리는 상황속에서 매장문화가 전통적 유교적 관념을 위해 기여하는 바는 크다.- 단점 : 매장문화의 단점 중 가장 커다란 것은 국토 효율성 측면이다. 늘어나는 인구와 계속적으로 증가하는 시신(屍身)에 대해서 전 국토는 포화상태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또한 환경문제에 있어서 묘지 난립은 임야를 훼손시킴은 물론 묘지로부터 흘러나오는 물은 수질오염의 한 원인이다. 또한 사후 관리에 있어서 관리되지 않는 묘지는 자연 파괴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2) 화장문화- 장점 : 매장문화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회적 비용이 매장문화에 비하여 적은 비용을 요한다. 장례에 있어 많은 비용이 필요한 매장문화와는 달리 적은 비용으로 장례를 치를 수 있으며 거리상에 있어 가깝다는 이점이 있으므로 언제든 고인을 찾아뵙기 쉽다는 이점이 있다. 또한 국토 효율성에 있어서- 단점 : 전통적인 장례문화가 사라질 위험이 있다. 이는 명절이나 제사에서 친인척이 서로 모여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므로 가족간의 거리감이 커지게 된다.5. 선산과 봉안당1) 선산의 정의- 조상의 무덤 또는 그 무덤이 있는 산- 일가 종친들의 무덤이 대대로 모셔진 종산(宗山)·족산(族山)의 뜻으로 종종 쓰인다. 선산은 고려말 성리학(性理學)이 성행하여 주자가례(朱子家禮)의 도입과 함께 본격적인 유교식 상장례(喪葬禮)가 정착되면서 유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이전에는 불교문화의 영향으로 화장(火葬)이 유행하였고, 땅에 매장하는 경우에도 점을 쳐서 장지(葬地)를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려말 종법제도(宗法制度)에 의해 제사가 행해지고, 봉사(奉祀)의 범위가 확대되면서 문중(門中)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특히 이러한 문중의식이 강화되었는데, 각 문중들은 문벌(門閥)을 과시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자금을 출연하여 선산을 경쟁적으로 마련하였다.이에 선산의 소유권을 둘러싼 산송(山訟)이 빈발하였고, 임야의 사유지화가 확대되었다.선산은 종중의 성원들에게만 땔나무 등을 채취할 수 있게 하는 등 조직적으로 관리하였다. 선산 주위에는 재실(齋室) 등을 설치하여 시제(時祭) 등에 사용하였고, 제사비용이나 묘지 관리비용 등은 산림에서 나오는 수익이나 또는 종중의 성원들이 공동으로 부담하였다.근대 이후 종중의식의 약화, 제사의 간소화 및 근대적인 토지소유권의 도입 등으로 종중재산으로서의 선산이 점차 축소되어가는 추세에 있으나, 새로 선산을 마련하는 경향도 이어지고 있다.2) 봉안당의 정의- 시체를 화장하여 유골을 그릇에 담아 안치해 두는 곳- 골당(骨堂), 납골당(納骨堂)이라고도 하며 매장을 하지 않고 유골을 안치하는 시설을 말한다. 2005년 5월 25일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은 일제시대에 유입된 일본식 용어 '납골당'을 '봉안당'으로 바꾸는 KS규격을 제정했다. 일본식 용어를 우리말 용어로 순화하고, 사업자와 이용자간 명확한 의사전달을 위해 실시된 조치였다.불교권인 동남아시아에서 특히 성행하며, 한국에서도 국토면적에 비해 묘지의 점유율이 점차 높아짐에 따라 매장 위주의 장묘문화에서 화장봉안문화로의 전환이 필요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묘자리를 중시하는 풍수지리설과 조선시대의 억불숭유정책으로 화장문화가 금기시되었기 때문에 주로 연고자가 없거나 묘지를 관리하기가 어려운 사람, 저승을 불력(佛力)에 의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봉안당을 이용하였다. 하지만 국토가 묘지로 잠식되고 자연이 훼손되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장묘문화를 개선하자는 움직임이 생겨났고, 일반인들의 화장문화와 봉안당 이용에 대한 생각도 변화하게 되었다. 그 결과, 1971년 7.0% 에 불과하던 화장률이 2003년에는 46.3%까지 증가하였다.'매장 및 묘지 등에 관한 법률'에 납골당의 시설과 관리에 관한 사항을 두어 납골당은 공설·사설로 구분하여 사찰·묘지·화장터, 기타 엄숙한 곳에 설치하되, 폭 5m 이상의 진입로와 주차장을 마련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