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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쿄 여행 소개 발표용 ppt
    혼자서도 100 배 즐길 수 있는 도쿄 가이드 ! 1도쿄여행 100 배 즐기기 과정 ! 도 쿄여행을 가기 전에 ! 모든 것이 다 있는 도쿄여행 !!! 도쿄여행에 가장 기본적이고 필요한 지식 준비 !! 도쿄여행 ! 무슨 즐거움이 ? 먹는 즐거움이 있는 도쿄 ! 보는 즐거움이 있는 도쿄 ! 걷는 즐거움이 있는 도쿄 ! 새로운 도쿄 ! 매일매일 새롭게 변하는 도쿄 ! 2Ⅰ. 도쿄여행을 가기 전에 ! 一 . 모든 것이 즐거운 도쿄여행 ! 도쿄에서 모든 것을 다 즐겨보자 ! 일본의 수도 도쿄 ! 수도인 만큼 정말 여러 가지가 다 있다 ! 먹거리 , 볼거리가 걷기 좋은 거리 등이 정말 많다 ! 일본의 역사 , 문화 , 생활 , 일본인의 생각을 보고 듣고 느끼고 즐겨보자 !!!!! 3二 . 도쿄여행에 가장 기본적이고 필요한 지식과 준비 !! 도쿄의 지하철 도쿄를 처음 가는 사람들에게 도쿄의 교통은 매우 복잡하다 ! 도쿄의 지하철과 전철은 특히 운영하는 선도 많다 ! 도쿄에서 지하철을 운영하는 회사로는 도쿄 지하철 주식회사의 9 개 노선과 도쿄 도 교통국에서 운영하는 지하철 4 개 노선 총 13 개 노선으로 구성 선으로 구분 : JR 선 , 도쿄 메트로 , 도에이 선 , 그 외에 민영철도선 , 도멘아라카와 선 , 유리카모메선 도쿄를 여행갈 때 지하철 노선도는 반드시 가져가는 것이 좋다 !도쿄 지하철 주식회사 ( 도쿄 메트로 ) 에서 운영하는 9 개 노선 히비야 선 (2 호선 , 은색 ), 긴자 선 (3 호선 , 주황색 ) , 마루노우치 선 (4 호선 , 빨강색 ), 도자이 선 (5 호선 , 하늘색 ), 난보쿠 선 (7 호선 , 에메랄드 그린 ), 유라쿠초 선 (8 호선 , 금색 ), 지요다 선 (9 호선 , 녹색 ), 한조몬 선 (11 호선 , 보라색 ), 후쿠도신 선 (13 호선 , 갈색 ) 도쿄 도 교통국 ( 도에이 선 ) 에서 운영하는 4 개 노선 아사쿠사 선 (1 호선 , 복숭아색 ), 미타 선 (6 호선 , 푸른색 ), 신주쿠 선 (10 호선 , 황녹색 ), 오에도とうございます、 すみません。 일본사람은 迷惑 ( 메이와쿠 ) 를 중시한다 ! 일본사람들에게 항상 무엇을 물어보거나 부탁하거나 그리고 그 부탁을 들어주었을 때 이 세 가지의 표현 ( 실례합니다 , 고맙습니다 , 죄송합니다만 ) 을 잘 이용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 . 8에티켓 ! 그리고 질서 !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 , 핸드폰은 항상 매너모드로 !! 웬만하면 그냥 받지 말자 ! 줄을 잘 서자 !! 흡연자는 정해진 장소에서 ! ‘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르라 ’ 9즐거움이 있는 도쿄 ! ① . 먹는 즐거움이 있는 도쿄 ! 1. 도쿄의 먹거리 ! 훗카이도 , 큐슈지방 , 시코쿠지방 , 관서지방 등 전국 각지에 모여든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 = 고로 ! 도쿄의 먹거리는 일본 전 국민 지방의 요리들이 있다 . 외국인들도 많이 살고 있어 외국음식전문점도 많고 ! 바다와도 붙어있어 해산물요리도 유명하다 ! 이 처럼 도쿄의 먹거리는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을 만큼 풍족하고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 2. 도쿄의 대표적인 음식 ! 베스트 7! 1. 츠케멘 ( つけ麺 ) : 면과 스프가 따로따로 나오는 라면이다 . 스프를 찍어 먹는 형태로 , 최근 도쿄는 츠케멘 붐이라 할 정로도 곳곳에 츠케멘을 파는 전문점이 늘어나고 있다 . 츠케멘을 먹을 수 있는 곳으로는 츠케멘을 처음 고안한 이케부쿠로의 타이쇼켄 , 오사키의 로쿠린샤와 닛포리의 테츠 , 그리고 라면 랭킹 1 위인 치바의 토미다 등이 있다 . 102. 돈부리 ( どんぶり ) 돈부리의 뜻은 그릇이름이자 , 음식이름으로 밥 위에 무엇을 올리느냐에 따라 다양한 음식으로 바뀐다 . 돈부리의 시초라 알려진 뱀장어를 올리고 , 간장과 설탕으로 양념한 쇠고기 볶음을 올리는 규동 , 그리고 새우 , 오징어 , 야채튀김을 토핑으로 올리는 텐동 등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 특히 도쿄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의 입맛을 위해 수많은 종류들이 있다 . 또한 직장인들을 위해서 가격대도 저렴한 돈부리 체인점들도 많아 싸게 일본의 ), 饅頭 ( 만쥬 ), 餅 ( 모치 ) 등이 있다 . 도쿄에는 몇 대를 이어가며 와가시를 파는 집이 많으며 , 대표적인 집으로는 1834 년 창업한 新宿 ( 신주쿠 ) 의 花所の饅頭本店 ( 하나죠노만쥬혼텐 ), 1914 년 창업한 上野 ( 우에노 ) 의 ウサギや ( 우사기야 ), 무려 1675 년부터 영업을 해온 浅草 ( 아사쿠사 ) 의 野歩金流産浅草餅本舗 ( 노포킨류잔아사쿠사모치혼포 ) 가 있다 . 도쿄를 방문한다면 전통적인 와가시 집이 많으므로 꼭 한 번 들러서 일본의 전통과자를 맛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6. 크레이프 ( クレープ ) : 밀가루 전병에 생크림과 과일 등을 올리고 시럽을 뿌려 먹는 간식거리로 원래는 프랑스 브루타뉴 지방의 가정식이었다 . 하지만 일본에서는 이것을 먹기 좋은 사이즈로 만들어 길거리에서 팔면서 젊은이에게 인기를 끌게 되었다 . 도쿄에서는 특히 하라주쿠의 타케시타도리거리에 크레이프 전문점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 그 중 마리온 크레이프 , 카페 크레이프 등 다양한 크레이프 전문점이 유명하다 . 7. 체인음식점의 음식들 : 도쿄에는 여행객이 이용할만한 다양한 체인음식점이 있다 . 간단하게 한 끼 해결할 수 있는 요시노야와 마츠야 , 주문과 동시에 수제햄버거를 만드는 모스버거와 후레쉬니스버거 , 패밀리레스토랑 느낌의 조나상 등 다양한 체인음식점을 도쿄에서 만날 수 있다 . 1314② . 보는 즐거움이 있는 도쿄 1. 도쿄의 다양한 볼거리 ! 도쿄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 ( 현 도쿄 ) 로 수도를 옮기면서 현재까지 일본의 수도로 자리잡고 있다 . 그렇기 때문에 옛날 도쿄의 중세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볼거리가 많이 있다 . 메이지신사부터 , 도쿄의 대표 상징물인 도쿄타워 , 그리고 도쿄의 계획 도시 오다이바까지 . 이제 일본의 볼거리를 하나하나 찾아가보자 ! 2. 도쿄의 볼거리 5 가지 ! 1. 시부야 ( 渋谷 ) : 신주큐 , 하라주쿠 , 롯본기와 더불어 도쿄 안에 있는 지역 중 가장 번화한 지역이다 . 항상 사람들로 붐비고 상점가를 지나면 호조몬이 보이고 호조몬을 지나면 거대란 빨간색의 건물이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센소지라고 불리는 도쿄의 유명한 신사가 있다 . 아사쿠사의 길거리는 에도시대부터 이어져오는 일본 전통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일본 전통 문화가 잘 계승되어 있다 . 일본 전통극장도 있어 매일 가부키등 전통 공연도 펼쳐지고 있다 . 3. 하라쥬쿠 ( 原宿 ) : 도쿄의 패션문화의 거리이자 , 메이지 신사가 자리잡고 있는 하라쥬쿠 . 하라쥬쿠는 일본 젊은이의 패션을 대변할 수 있는 다양한 패션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 특히 하라쥬쿠의 패션문화는 매우 특이해서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쉽게 소화시키지 못할 옷들도 많이 있다 . 하지만 그렇기에 눈으로 보고 즐기기에는 매우 좋은 곳이다 . 1718194. 아키하바라 ( 秋葉原 ) : 한국의 용산 , 일본하면 아키하바라이다 . 도쿄의 아키하바라에는 일본의 최신 전자제품부터 중고 전자제품까지 다양한 전자제품을 가장 빠르게 싸게 살 수 있는 장소이다 . 또한 90 년대 이후 부터 일본의 에니메이션 ( アニメ ), 게임상품들이 들어오면서 속된 말로 오타쿠의 성지 ( お宅の聖地 ) 로 불리어지고 있다 . 다양하고 최신의 전자제품이나 평소 에니메이션이나 만화 , 게임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꼭 한 번 들러서 구경하면 아주 좋은 볼거리를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 5. 오다이바 ( お台場 ) : 오다이바는 일본의 계획 도시로써 레인보우 브릿지를 건너면 있는 인공 섬같이 되어있는 곳이다 ( 우리나라의 여의도처럼 ) . 아니면 유리카모메선의 모노레일을 타고 갈 수 있다 . 후지 테레비 방송국이 있으며 일본의 거대 행사를 여는 도쿄 빅사이트 , SEGA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조이플러스 , 비너스포트 , 밤에 타면 아름다운 도쿄시내와 불이켜져 매우 아름다운 레인보우 브릿지를 볼 수 있는 오다이바 대관람차 , 덱스 도쿄 비 치 , 오에도 온천이야기 등 쇼핑과 온천 , 유흥을 맘껏 즐길 수 있는 도시이다 . 202122③ . 걷는 즐거움이 있는 도쿄 ! 네치아의 풍경을 따라서 만든 아주 예쁜 장소다 . 조용한 골목길과 아름다운 거리 풍경을 보고 싶다면 반드시 들려야 할 걷기 좋은 거리이다 ! 23242. 다이칸야마 ( 代官山 ) : 쇼핑거리도 있고 카페들도 많아서 걷다가 카페에 들러 디저트와 커피를 같이 즐기면서 여유를 가질 수도 있다 . 특히 카페가 굉장히 많고 카페 하나하나가 다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잘 꾸며져 있어 어디로 가야 할 지 고민까지 하게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 그리고 다이칸야마에 있는 사이고야마 공원은 작지만 아름답게 꾸며져 있어 드라마 촬영장소로도 유명하다 . 미술 전시관이나 여러 대사관도 있어서 외국인들도 많이 다니는 것도 볼 수 있다 . 거리 풍경을 보고 싶다면 반드시 들러야 할 걷기 좋은 거리이다 ! 3. 우에노공원 ( 上野公園 ) : 우에노 역에 내리면 바로 앞에 우에노 공원이 있다 . 공원이라고 하지만 그 규모가 매우 넓어 한 바퀴 도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 내가 갔을 때에는 대략 4~5 시간 정도 돌아다녔다 (( 박물관구경까지 )). 우에노 공원에는 또한 신사나 , 우에노 동물원 , 도쿄 과학박물관 , 도쿄중앙박물관 , 호수 , 경식 야구장 등이 갖춰져 있어 , 어린아이들부터 노인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우에노 공원을 찾고 있다 . 박물관 같은 경우는 매 번 색다른 전시회를 열고 있어 매번 찾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다 . 공원 길도 벚꽃나무로 늘어서 있어 연인들끼리 데이트하면서 걸어 다니기도 좋고 , 가족들은 공원 안에 동물원을 방문하면서 하루를 보낼 수 있다 . 도쿄에 오면 꼭 한 번 찾아오면 좋은 추천지다 . 252627Ⅲ. 새로운 도쿄 ! 三 . 매일매일 새롭게 변하 는 도쿄 ! 이렇게 먹거리 , 볼거리 , 걷는 즐거움이 가득한 도쿄지만 도쿄의 가장 매력적인 면은 매일매일 새롭게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 도쿄는 항상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 여행을 가면서 느끼겠지만 도쿄시민들의 친절함과 뛰어난 시민의식 , 언제나 밝은 미소로 답해주}
    인문/어학| 2015.01.04| 30페이지| 2,500원| 조회(1,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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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환관의 삶과 역사적 환관
    - 목 차 -1. 序論 - 환관[宦官] , 그들은 누구인가?그들의 시작과 탄생.2. 本論 - 1) 환관이 되는 길.2) 환관의 외형과 성향.3) 중국의 환관 조직.4) 중국황실역사에 대표적인 환관들.3. 結論 - 황제보다 강했던 환관.그러나 슬프고 허망한 그들의 생애.1. 序論 - 환관[宦官] ,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의 시작과 탄생.환관[宦官]의 정의를 백과사전으로 찾아보면 거세(去勢)된 남자로서 궁중에서 벼슬을 하거나 유력자 밑에서 사역되던 자. 로 설명되어 있다. 시인(寺人)·엄관(企官:奄人)·정신(淨身)·내수(內竪)·중관(中官)·혼시(汚寺)·환시(宦寺)·환자(宦者)·황문(黃門) 등과 같은 이름이 있었으며, 한국에서는 별칭으로 내시(內侍)라고 불렸었다. 그리고 서구 쪽은 영어로는 그리스어(語)에서 연유하였다는 'eunuch'가 해당된다. 고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도 나타났었다. 고대 그리스 역사에서는 페르시아 사람들이 환관은 '믿을 수 있는 자들'이라 해서 이용하였다고 기술되어있다. 특히, 중국의 환관이 가장 유명하며, 한국에도 고려 때 중국의 환관제도를 들여와 조선시대로 이어졌다. 여기서는 중국의 환관들에 대하여 알아보려고 한다.춘추시대(春秋時代)에 기록된 자료들을 보면 환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은(殷)나라의 갑골문자(甲骨文字)를 보면 BC 1300년경의 무정왕(武丁王) 때 포로로 잡은 서쪽의 만족(蠻族)인 강인(羌人)을 환관으로 삼아도 되는가 하고 신에게 점을 쳤다는 사료(史料)가 있었다. 그럼 왜 중국황실들은 환관을 이용했을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왕이 거느리고 있는 수많은 여자들 때문이었다. 왕조국가의 왕들은 한결같이 수많은 시녀와 부인을 거느렸는데, 이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호하면서 동시에 그녀들의 정절을 유지시키는 유일한 수단이 바로 거세된 환관으로 보았던 것이다. 왕 자신의 많은 여자들을 하나하나 다 관리하면서 지켜볼 수 없었기 때문에 왕의 여자들과 정분이 일어나지 않은 건장한 사람들이 필요했고 바로 거세된 남자들이 그 들어가 먹고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었다. 두 번째로는 부모가 가난을 이기지 못하고 자식 하나를 환관으로 보내는 길이었다. 물론 자식에게 남자로서 살아갈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은 비참했지만 자식 하나가 희생해서 집안을 살릴 수 있다면 부모들에게는 남은 자식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였다. 실제로도 자식 하나 환관으로 만들어서 그 자식이 태감(太監)이 되거나 직책을 얻게 되면 나라에서 그 집안에 밭과 집을 줘 집안 식구들을 충분히 먹여 살릴 수 있었다. 마지막 방법은 스스로 거세를 해서 환관으로 들어가는 경우다. 혼자 스스로 먹고 살기 어려웠던 남자들은 스스로 거세를 통해 환관으로 들어가 궁중에 살면서 입에 풀칠을 하면서 살아가기 최고의 좋은 장소였기 때문이다.하지만 환관이 되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거세를 하는 것이다. 거세를 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한 가지 방법은 생식기를 잘라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환을 잘라버리거나 터트리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궁형이 매우 큰 중형이었다는 점에서 거세는 목숨을 거는 행위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거세하는 기술이 정교해졌다고는 하나 위험도는 굉장히 높았다. 초기에는 거세를 하면 둘 중 하나는 죽었다고 기록이 남아있다.거세가 성공했다고 해서 바로 환관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환관의 목적은 황실의 심부름도 있었지만 궁궐 안에서의 경비도 환관이 몫이었기 때문에 환관들은 기본적인 무술도 배운다. 또한 황제의 말벗이 돼주거나 대신들을 황제에게 알현하는 동안 같이 가면서 몇 마디 말을 나누어 주는 것도 일 중 하나였기 때문에 그들과 대화할 수 있는 어느 정도 지식이 필요했고 명나라 때는 환관들의 기본적인 구율과 지식을 가르치는 '내서당(內書堂)'이라는 곳이 생기기도 했다. '내서당(內書堂)'에서는 환관들의 내규에 해당하는 내령, 즉 내정의 규칙을 비롯하여『천자문』,『효경』,『사서』등이었고, 이 외에도 대표적인 시와 중국 백성들의 성씨에 대해서도 배웠다. 시험은 암기, 읽기, 해석, 쓰기 되는 것이다. 물론 모든 환관이 이렇게 보였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환관들은 호로몬에 의해서 이렇게 변하게 되었다.일반 남자들과는 달리 일생의 대부분을 궁중에서 생활을 해야 했던 환관들은 성향 또한 일반 사람들과는 달랐다. 궁중에서 거의 모든 일생을 보내야하는 환관들에게 궁중 생활은 매우 답답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궁녀들 같은 경우에는 운이 좋아 왕의 총애를 얻어 왕의 후궁이 되면 왕의 옆에서 사랑을 받거나 깊숙한 곳에서 궁녀들의 동성애를 통해 그들의 기본적인 성욕을 해결할 수 있었지만, 환관들의 같은 경우에는 생식능력도 없었기 때문에 궁녀들처럼 황후의 눈에 들어올 수도 없고 여자를 만나 건강한 성행위와 그들의 성욕을 해결할 수 없었다. 하지만 환관들에게 생식능력은 없었지만 성욕과 성적관심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성욕은 변태적인 사디즘(Sadism)적인 성향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사디즘은 여성들에게 매우 가혹하고 남성들의 억압된 성적욕구가 잘못 표출된 형태로 예를 들어 여성의 몸을 마구 매질하거나 입으로 깨물거나 오럴섹스(oral sex), 인공적인 음경을 사용해 여성들을 괴롭히는 것으로 성적욕구를 해결하는 것이다.또한 그들에게는 자신들이 평생 안고 갈 커다란 한(恨)이 있었는데 바로 '몸은 물론 머리카락까지도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므로 함부로 훼손시켜서는 안 되는 것'과 자식으로서 부모에 대한 세 가지 불효 가운데 '제일 큰 불효가 자식을 갖지 못하는 것'인데 거세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거스르는 불효막심한 행위였다.결국 환관들이 황실에 들어와 그들의 욕망을 가장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방법은 왕의 총애를 얻어 권력을 얻고 재물을 모으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환관들은 기본적으로 권력지향형의 성향을 나타내었는데, 특히 스스로 거세를 해서 들어온 환관들은 그 목적이 더욱 심했다. 그들은 오로지 왕의 총애를 얻어 권력을 얻고 그 권력을 통해 부귀영화를 얻는 것이 최고의 목적이었을 것이다. 다른 남성들처럼 여자들과 성적인 관계를 통해 자식을 가질禮記)』와『주례(周禮)』에 기록된 환관들의 임무는 궁궐안의 경비를 맡는 것으로 적혀있다. 이 뜻은 궁궐 안에 살고 있는 황제와 황후는 환관들의 보호아래에서 살고 있는 뜻으로 표현하고 있다. 황제나 황후의 의사를 대신 전달하는 심부름과 함께 의, 식, 주의 제공을 관리 감독도 환관들의 일이었다. 또한, 수천 명이나 되는 궁녀들을 관리해야하는 환관들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관리할 수가 없게 되었고, 환관들은 그들의 조직을 체계적으로 정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최초의 통일국가를 만든 진나라 때부터 환관의 계급과 조직체계가 정비되고 발전되어가다 명나라 때 이르러 환관조직에 대해 정확히 관리와 기록이 남게 되었다. 명나라 말기에 환관 유약우가 쓴『작중지(酌中志)』라는 책을 보면 명나라의 환관조직을 매우 자세하게 알 수 있게 써놓았다.『작중지』에 따르면 명나라 환관조직은 12감(監) 4사(司) 8국(局)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이것을 24아문(衙門)이라고 불렀다.우선 12감(監)중에「사례감(司禮監)」은 12감(監)의 수장으로써 황제의 일상사와 업무를 보조 한 곳이며, 환관의 총 집합체였고, 배후에 내각을 구성하고 있었다. 12감(監)의 우두머리를 '사례감 태감(司禮監 太監)'으로 불렀으며 그 사례감 태감의 우두머리를 ‘장인태감(掌印太監)’으로 불렀다. 그 아래로는 '병필수당태감(秉筆隨堂太監)'으로 황제의 비답(批答)을 대필해주는 직종이었다. 그 밑에는 환관의 교육기관인 '내서당(內書堂)', 황제의 조칙과 내각상주문, 각 성(省)의 공문서, 전국에서의 상주문 및 민간 호소문 담당의 통정국(通精局)의 문서 등을 접수, 정리해서 사례감으로 회부하는 '문서방(文書房)'으로 구성되어 있었다.「내관감(內官監)」은 황실의 토목, 건축공사를 관리라는 곳으로써, 황제가 사용하는 구리, 놋쇠, 나무, 철 등의 기구를 준비하고 황제가 사용하는 종이를 만들어 칙계(화장실 담당)로 보내는 곳이었다. 지방에 많은 출장소가 있었으며, 각 지역 왕의 주거지인 번저와 제후 능묘의 수리급했고, 전쟁 시 화약군(火藥軍)은 환관이 통솔했다.「완의국(浣衣局)」은 궁궐에서 일하던 자들이 말로를 보내는 곳이었다.「내직염국(內織染局)」은 황제와 궁정에서 사용하는 비단을 염색하는 곳이었다.「사원국(司苑局)」은 야채를 재배하는 곳이었다.「은작국(銀作局)」은 황제가 신하에게 상으로 수여하는 각종 은제품 제작을 관리하던 곳이다.「건모국(巾帽局)」은 환관의 모자를 제작하던 곳이었다.「침공국(針工局)」은 환관의 하복과 동복을 제작하던 곳이다.「주작면국(酒醋麵局)」은 환관과 여관이 마시는 술과 밀가루 제조하는 곳이었다.24아문(衙門) 외에도 '경사방(敬事房)'이나 '동창(東廠)' 같은 특수한 환관 조직도 있었다. '경사방(敬事房)'은 황제의 규방 문제를 전담하는 환관 기구로서 황제의 밤의 관계를 전담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이들은 임무는 황제가 선택한 후궁을 황제의 침실로 보내는 역할을 했는데, 선택된 후궁을 목욕시키고 나체의 상태에 매우 얇은 견사 하나만 두르게 한 다음, 침실까지 데려다 주었다. '동창(東廠)'은 황제의 직속기관으로 비밀경찰을 관리하던 환관 조직이었다. 비밀경찰 조직은 금의위나 북진무사 등이 맡고 있었는데 이들을 환관조직의 2인자인 병필태감이 지휘했다. 비밀경찰의 임무는 관리와 신하들의 비리를 캐내고 역모 혐의를 잡아내는데 있었다. 비록 대신이라고 하더라도 체포할 권한이 있었다. 이 직위의 권력은 재상도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4) 중국황실역사에 대표적인 환관들.앞에서도 계속해서 얘기했듯이 중국황실역사에 있어서 환관들은 황실의 잡일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보면 대신들보다 강한 권력을 쥐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역사에서는 환관들의 이름이 역사 속에서 자주 거론되고 어떠한 환관들은 중국황실의 역사를 바꿔놓은 환관들도 있었다. 이제 역사별로 중국황실을 흔들고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았던 대표적인 환관들을 이곳에 서술하고자 한다.춘추시대 때의 대표적인 환관으로는 앞에서 계속 언급되었던 '수조(竪?)'라는 인물이 있었다. 수조는 원래 '춘추오패' 중 제나다.
    인문/어학| 2015.01.04| 11페이지| 2,000원| 조회(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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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속의 한국문화 평가A좋아요
    日本속의 韓國文化학과 :담당 교수 :학번 :이름 :1. 서론 - 일본과 한국의 역사상, 문화적 관계2. 본론1) 일본 고대속의 한국 문화- 일본 야요이시대- 아스카, 나라시대2) 일본 중세속의 한국 문화- 임진왜란 때 전파된 한국 문화3) 일본 근대속의 한국 문화- 일본 군국주의시대 때 전파된 한국문화4) 일본 현대속의 한국 문화- 일본의 새로운 문화바람 「韓流」3. 결론- 앞으로 일본과 한국의 나아갈 방향4. 참고 자료 및 출처1. 서론- 일본과 한국의 역사상, 문화적 관계에 대해서...우리나라와 일본은 역사상 오래전부터 서로 역사상, 문화적, 생활부분에 있어서 한번도 빼놓지 않고서 말할 수 없는 나라다. 일본의 고대시대는 일본의 구석기시대부터 야요이문화, 아스카를 거쳐, 야마토정권, 나라시대까지로 볼 수 있다. 이 시대의 한국은 구석기이후 고조선시대부터 위만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를 거쳐 통일신라시대까지이었다. 중세시대는 일본의 헤이안정권부터 가마쿠라막부시대, 남북조시대, 무로마치막부, 전국시대를 거쳐 아즈치모모야마시대, 그리고 에도시대 때까지로 볼 수 있다. 한국은 고려시대 때부터 조선시대까지로 보면 된다. 일본의 근대시대는 에도막부가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일본의 개혁혁명의 바람이 분 메이지시대부터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했던 시기를 말한다. 우리나라 역시 19중반이후부터 일본의 지배를 벗어난 시기로 본다. 그 이후를 현대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일본과 한국의 고대, 중세, 근대, 현대를 거치면서 서로 문화적 상호교류도 하고 전쟁과 침략을 반복하며 한국 그리고 일본속의 자연스럽게 각국의 문화들이 자연스럽게 흡수되었다. 대충 짚어보면 우리나라 삼국시대 때, 고구려의 담징 같은 사람이 일본으로 건너가 현재 일본의 최고 문화재중 하나인 호류사 금당벽화를 그려주고, 여러 가지 책들과 지식을 일본에게 전파해주었고, 중세시대 때도 역사상 문헌을 보면 고려시대 때 일본과 잦은 무역 교류를 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특히 조선시대 때 도요토미 히들이 각국에 넘어가면서 서로 자국의 문화에 맞게 변형되어 가진 모습들을 알아보고 얼마나 그러한 것들이 각국의 생활모습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2. 본론2. 1) 일본 고대속의 한국문화?신석기시대에 시작된 한반도의 농경문화는 청동기 시대를 거치면서 벼농사 문화로 발전하여 일본 야요이 문화의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한반도에 정착해서 살고 있던 사람들 중 일부는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새로운 문화를 정착하며 살았기 때문에 야요이시대때 발굴된 일본 유물 중 한반도의 영향을 많이 받은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예는 요시노가리유적을 들 수 있는데 요시노가리유적지는 큐슈 사가현에 위치한 일본 최대의 마을유적으로, 1986년 이후 지금까지도 계속 발굴이 진행되고 있으며 그 규모와 발굴성과는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특히 이 유적에서는 일본 야요이시대(彌生時代, 기원전 5세기~기원후 3세기) 문화의 특징과 한반도와의 교류를 증명하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세형동검 등 일본 국가중요문화재를 보면 이러한 것들이 모두 한반도에서 도래되었음을 한눈에 알 수가 있었다. 일본 야요이 문화의 특징을 보여주는 독무덤, 토기, 꺽창, 본뜬거울 외에 한반도와의 교류를 보여주는 유물인 덧띠토기, 청동기 거푸집, 한국식동검과 함께 한반도 남부지방에서 출토된 일본 야요이식 토기와 청동기 등 당시의 활발한 교류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특히 요시노가리유적은 이 시기 한반도의 농경문화가 일본에 전래되어 일본 고대사회 문화의 발전에 미친 영향을 밝혀주고 있다.덧띠토기항아리 : 크지도 작지도 않은 항아리로써 곡물을 가득 채우면 어른이 들고 운반하기 딱 알맞은 크기로 빗금무늬로 마찰을 줘서 미끄러지지 않게 인체공학적으로 만들었다.위 사진, 토기로 구워낸 옹관이 크기별로 있다. 전에 전남 나주에서 옹관이 출토된 기사를 읽었는데 옹관도 한반도에서 건너간 듯, 아래 좌측은 생활용구 절구와 공이, 우측은 뼈로 만든 팔찌인데 요즘 디자인과도 비슷요모음집으로 만들어지고 그것이 바로 만엽가이다. 또한 아스카공원지대 안에 있는 다카마쓰(古松塚)에 가보면 1972년 발견 당시 그 규모와 그 안에 있는 벽화로 일본이 떠들썩했다는 고분이 들어서 있다. 그곳에는 모사벽화, 죽은 자를 수호한다는 사신도(四神圖)는 좌우벽면 속에 네 여인씩 오색 한복을 입고 춤추는 모습이다. 이는 고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문화의 아주 명확한 징표이다. 이 작품은 백제하성(百濟河成)과 고구려황문본실(黃文本實)의 작품으로 전해 오고 있다. 그리고 북쪽에는 고구려 담징이 금당벽화를 그린 호류지(法隆寺)가 자리잡고 있다. 호류사는 아스카시대의 문화재 보물창고로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특히 호류사에는 삼국시대때 우리나라가 일본에 어떠한 역할을 하였는가를 직접적으로 볼 수 있는 건물이다. 호류사는 목조건물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 또 일본 삼대 목조(木造) 국보불상 중 백제관음상과 구세관음상 두 점을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는 고류지(廣隆寺)의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다. 고구려 승려 담징의 벽화가 그려진 금당안으로 들어가 볼 수 도 있다. 하지만 1949년 화재로 소실되고 모사된 그림이 걸려있어서 많은 아쉬움이 남아있다. 긴 회랑을 따라 동원 대보장전(大寶藏殿)으로 백제관음상을 찾아 볼 수 있다. 높이 2.8m의 입상(立像)으로 녹나무(樟木)로 만들어졌다. 특히 백제 성왕이 보냈다는 불상은 부드러운 몸짓으로 보는 이를 압도할 정도이다. 호류사의 몽전(夢殿)은 일본고대국가의 틀을 세우고 문화를 꽃피운 사람으로 일본인들의 존경을 받는 성덕태자의 불당이다. 동대사에는 대불전이 있다. 만들어진 시기는 경주 불국사가 창건된 751년과 7년의 시차를 두고 있다. 청동좌불상은 높이 16m, 얼굴길이 4.8m, 손길이 3.6m, 무게가 452톤이다. 공사감독 고구려 출신 복신(福信) 백제인 양변(良辨) 불상제작 백제인 국중마려(國中麻呂) 화엄경교리구현 신라인 심상(審祥) 스님 그리고 금과재정지원 백제의 자왕 후손 경복(敬福) 등이 불사의 생산성이 조선을 뛰어넘을 정도로 성장하면서 일본 의 힘있는 사람들의 집과 거리에는 항상 도자기로 전시해놓고 관람하며 문화적인 생활을 누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일본의 유학은 임진왜란 때 약탈해 간 많은 서적과 납치해간 조선 유학자들에게 의하여 발달하였다. 본래 일본의 학문은 보잘 것 없었으나 조선의 유학이 전래되면서 차차 학문이 발달하여, 후에 성리학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대가 세운 에도막부시대의 대표적인 학문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특히 일본의 성리학은 퇴계 이황이 학문 계통이 그 주류를 이루었다. 이 처럼 일본은 임진왜란 때 조선의 문화재를 약탈하고 학자와 기술자를 납치해 감으로써 문화가 급성장하여 에도 막부의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다.전쟁이 끝난 뒤 일본은 히데요시의 가문이 망하고 그 뒤를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차지하면서 에도막부 시대를 열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여전히 조선의 문화가 일본의 문화의 발전을 가져다 줄 것으로 보고 조선에게 통신사를 요구하였다. 조선은 일본과의 더 이상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통신사 파견을 수락하였고 이렇게 조선에서 일본으로 통신사를 보내면서 조선의 문화가 또 한 번 일본에 전파하게 되었다. 조선통신사는 일본 각 쇼군들과 각 지방 번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조선의 선진 문물 등을 전파하였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도자기 기술, 의학서적, 성리학 서적, 약재, 같은 일본에서 많이 뒤떨어져있는 문화품목들이었다. 특히 도자기 기술이나 유학 서적 같은 것들은 상인들이나 각 지방의 번주들 또한 서로 먼저 배울 정도로 바빴다. 그러한 성향으로 일본에 현재 남아있는 고유 서적들과 한의학 쪽 방면의 책등을 보면 우리나라의 동의보감 등 많은 자료들에서 출처를 따온 것이 확연히 들어나 보인다. 그 당시의 일본 상인들의 품목품등을 보면 조선에서 가져온 다양한 물건들이 배치되어 있어서 그 당시 일본 서민들의 생활풍습과 물품 등에 조선 물품이 많이 전파가 되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2. 3) 일본의 근대시대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근대 개혁에만이 남아 도쿄대 도서관 한켠에 방치되었다. 이것보다 훨씬 더 많은 문화재들이 일제시대 때 일본으로 약탈당하거나 헐값에 팔려서 현재 일본의 박물관에 보관돼있거나 일본사람들 개개인들에게 소장되어져있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이런 것들도 많아봤자 30%정도밖에 없고 나머지 70%는 일본 어딘가에 버려져있거나 훼손되어서 문화재로써의 가치를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라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우리나라로써는 근대시대 때 일본으로 건너간 문화와 문화재들은 너무나 아쉽고 가슴 아픈 현실인 시대였다.2. 4) 일본의 현대시대사실 「한류(韓流)」라는 단어는 중국에서 1997년 중국 베이징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 방송기획사에서 부터였다. 하지만 99년부터 중국 언론매체에서도 한류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고 한류라는 단어는 그 뒤, 홍콩, 대만, 일본, 베트남 등으로 번져 현재 전 세계적으로 한국의 문화현상으로 알려주는 단어로 자리매김하였다. 일본에 한류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사실 배용준, 「욘사마」의 힘이 컸다. 그 전부터 나훈아, 계은숙, 조용필 등 한국가수들이 일본에서 활동을 하면서 일본의 중, 장년층들이 듣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본에 우리나라의 현대적인 문화가 들어온 것은 역시 1990년대 후반쯤부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2002년 1월 14일에 한국에서 방영된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 “겨울소나타”로 수출되면서 드라마의 인기와 더불어 한국의 배우들도 덩달아 일본사람들에게 열렬한 인기를 끌면서 한류의 바람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겨울연가의 주연이었던 배용준은 욘사마로, 최지우는 지우히메로 박용하는 욘하짱으로 불리면서 현재도 일본에 오기만 하면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 뒤로 배용준이 나온 드라마가 일본에 계속해서 수입이 되면서 일본에서의 우리나라의 드라마는 생활 속에 한 부분으로 자리잡게 되면서 그동안 일본드라마(일드)가 우리나라에 수출되었던 것과 달리 우리나라가 일본으로 역수출하는 상황까지 나타나게 되었다. 또한 우리나라 가수들도 뒤를 이어 우리나라에 많다.
    인문/어학| 2008.05.31| 10페이지| 2,000원| 조회(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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