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한국 관료제의 구조나 성격은 항상 변화해 왔다. 그런 의미에서 동태적이며, 끊임없이 조직내외에 변화에 적응해 나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 관료제는 그 역사의 특성 속에서 그 순기능 보다는 역기능 측면에서 비판을 많이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관료제에 대한 이해 없이 행정국가의 본질과 현대 행정의 성격에 대한 이해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정부성립시기부터 문민정부 설립 전, 즉 노태우 정부까지의 관료제의 구성과 관료집단의 성격 변화를 보면서 우리나라 관료제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정립해 보고자 한다.Ⅱ. 본론(1) 제 1공화국① 체제의 성격해방 이후 3년여 간의 미군정기 동안 정치적·경제적으로 혼란을 거듭했던 한국은 1948년 5월 10일 UN한국임시위원회의 감시 하에 남한에서만 실시한 총선거에서 제헌국회를 탄생시키게 된다. 이 제헌국회는 1948년 7월 17일 헌법과 정부조직법을 제정·공포, 7월 20일에는 국회에서 간접선거로 대통령과 부통령을 선출, 8월 15일에는 대한민국정부를 수립하여 제 1공화국으로 출범하게 된다. 출범 당시부터 남과 북의 대립으로 시작한 한국의 정부수립은 국제적 냉전 이데올로기와 맞물려 반공을 기치로 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정치의 기본질서로 내세웠다.제1공화국 당시는 행정체제 성립시기라고 볼 수 있으며, 이는 해방 이후 3년간 미 군정기를 거쳤음에도 일제하 총독행정체제의 기본골격이 그대로 답습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실질상 대통령 1인의 전제정치, 즉 친 대통령제적인 형태로서 체제 성격을 갖게 되었다.② 관료제의 구성정부조직은 국가 행정기관의 법률주의에 의하여, 원칙상 법률에 의하여 조직되었다. 최초로 국회를 통과하고 제정, 공포된 정부조직법에 의하면 중앙행정기구는 11부 4처 3청 2위원회이었다. 제헌 관심사는 헌법제정의 문제였으므로 정부조직법은 단시일내 처리되었고 여러 가지 대안도 없었다. 정부조직에 있어 목표와 이상 없이 미군정과 구총독부를 토대로 하여 설정되었다. 따라서 정부수립 후 관료제의 특색은 다음과 같이 지적행정의 몰이해, 정실성 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③ 관료집단의 성격행정 관료집단은 전문화되어 정책과정에서 아젠다 형성 및 정책대안을 합리적으로 준비하는 능력은 결여되어 있었다. 그러나 체제의 중반에 들어서는 정책의 집행능력은 향상되었다. 이 시기에 정책평가과정에 행정 관료집단에서 일정부분 역할을 담당하였다.행정체제가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함에 있어서 언제나 합목적성과 적법성의 실현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국민의 욕구나 공익에 부응하여 행정체제의 비위나 부정을 정책과정에서 평가할 필요가 발생한다. 정책평가는 행정체제의 올바른 정책수립과 집행을 감시, 평가하는 기능으로서 대내적으로 하는 정책평가가 있다. 이는 체제내의 불법과 부정 그리고 비위를 감시, 적발, 교정 또는 시정하는 정책평가기능을 심계원, 감찰위원회, 사정 의원회 등이 담당하였다. 하지만 이런 기관들은 비위를 범하는 자나 적발하는 자가 모두 정치적 정실집단의 인맥일 뿐 아니라 정치적인 압력 때문에, 정치자금의 부정염출과 부정 상납을 중심으로 한 부정을 정책평가과정에서 정확하게 평가할 수 없었다.(2) 제 2공화국① 체제의 성격자유당 정권을 무너뜨린 4·19학생의거는 이 나라 정치풍토에 거의 완전에 가까운 자유민주주의의 실현을 보게 하였다. 따라서 1960년 6월 15일 제 2공화국 헌법은 우리나라의 정부형태를 민주정치의 가장 이상형인 내각책임제로 하고 장면이 초대 국무총리가 되었다. 장면정부의 행정조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특징은 대통령이 형식적인 국가수반이었으며 국무총리의 권한을 대폭 강화시킨 점에 있다. 그에 따라 국무총리가 대표하는 직속기관인 국무원의 기능이 강화되어 국무원은 국가 최고 행정기관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② 관료제의 구성제 2공화국이 성립된 후 민주당 정부는 의원내각제를 추진해 나가기 위한 새로운 정부기구의 개혁이 필요했다. 따라서 ‘정부기구개편위원회’를 구성하고 기본원칙에 따라 정부기구 개편을 추진하였다. 개정된 정부조직법에 따라 중앙행정조직으로는 12부 1처 3청 번째 작업이 헌법의 개정이었다. 국가재건최고회의 내에 헌법심사위원회를 발족시켜 헌법을 개정하게 하였다. 제 3공화국의 기본목표는 자주 국가건설과 경제개발이었다.제 3공화국의 정책결정계층은 민주주의를 대한민국의 정권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친 서방 정치노선을 취하였다는 방향설정으로 보고 실제적 의미에 있어서 민주주의는 근대적 민족주의로서 민주주의 제도는 행정부 주도형의 민주체제로 해석하였다고 볼 수 있다. 즉 이들이 주장하였던 행정적 민주주의는 행정 관료를 통하여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성취하는 것으로서 강한 발전 행정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기본목표 가운데서 일차적인 것은 경제개발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경제개발이 정부에 대한 정통성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경제발전의 지속적 추진을 통해 강력한 발전행정체제를 지향하게 되었다. 대통령이 주도하여 행정관료 집단이 지원하는 형태를 보여주면서, 행정관료 중심의 행정이 진행되는 현상을 보여주었다.② 관료제의 구성1963년 정부조직법이 공포됨으로써 전면적 정부기구 개혁이 실시되었는데, 그 주요내용은 대통령의 권한강화를 중심으로 한다. 행정권, 특히 대통령에의 권한의 집중화는 행정국가적 경향의 강화를 가져왔다. 체제가 안정되고 경제성장을 주도하게 되면서 행정관료 출신들이 행정 고위직에 충원되었으며, 정권과 함께 임기도 장기적으로 보장되었다. 중앙 행정기관은 2원 3처 13부 6청 7외국으로 개편 되었다.관료 임용에 있어서는 직위 분류제를 정식으로 도입하여 행정의 전문화를 도모할 수 있었지만 실제적으로는 활용되지 못하였다. 관료들의 숫자는 1960년대에 크게 신장되었을 뿐 아니라 직급도 크게 인상되었다. 관료의 충원은 자격시험으로부터 채용시험으로의 전환, 객관적 시험방식을 선택하였다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③ 관료집단의 성격관료집단은 전체적으로 행정의 능률화와 합리화를 도모하기 위해 모든 과정에서의 적극적 참여를 특징으로 한다. 예를 들어 경제정책을 입안하는 과정에서 전문적 의견을 제시하는 경우가 증가되행사하게 되었다. 유신체제의 정부형태는 국가의 모든 정치적 권력을 대통령에게 일원화 하는 대통령 우위의 소위 영도적 대통령 체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② 관료제의 구성제 4공화국의 기본목표는 조국의 평화적 통일에의 지향과 한국적 민주주의 토착화를 위한 것이므로, 이를 위하여는 종래의 비현실적이고 비능률적인 각종 제도와 기구를 개혁하여 능률을 극대화시키는 데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관료제 기구도 이와 같은 시대적 요청에 부응할 수 있도록 개편되었다. 이에 따라서 행정체제는 발전행정 체제하에서 합리적인 목표 지향적으로 기구와 인력의 증가를 위해 개혁 되었다. 1972년 2원 13부 4처 12청이었던 중앙행정부처는 1978년 2원 14부 4처 14청 4외국으로 확대되었으며 공무원 수도 약 8% 증가하였다. 제 4공화국 조직변화에 영향의 주 요인 중 정치적 환경은 10월 유신헌법이 제정됨으로써 국회의 행정부에 대한 견제기능이 축소됨과 동시에 대통령의 권한을 보다 더욱 강력하게 확대하였다. 특히 살펴볼 만한 변화는 국(局)단위의 보조행정기관의 수인데, 국력의 조직화와 능률화에 조금이라도 연결된 소지만 있으면 그 수를 가시적으로 일으켜서 국(局) 단위의 조직은 계속적으로 증가하였다.관료 임용의 특징으론 관료제 수 의 증가와 직급의 인상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양적 증가와 승격을 행정의 양적 팽창, 질적 전문화와 관련시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행정인의 보수인상난과 승급을 통한 보수인상, 사기양양, 관료주의 등과 더불어 유신체제하에서 정권유지의 큰 지주역할을 한 관료들의 지원을 얻으려는 정치적인 의도도 있었으며, 이러한 비 민주적이며 관료주의적 행정의 팽창을 억제할 수 없었음은 참여가 제한된 유신체제하에서 이루어졌었다고 하는 점에서 해석 될 수 있을 것이다.③ 관료집단의 성격각 관료 부처들은 조직 내의 업무를 종합적이고 능률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주력하였다. 행정관료집단을 동원하여 절대 권력을 유지시키려는 박정희 체제는 군부의 지지와 경제성장이라는 목표달성을 위하여 정 권력을 강화해 간 행정전문관료들에 의해 추진되었다. 유신체제의 지배연합은 군부·행정전문관료·재벌들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이들이 정책과정에서 자신들의 이해를 극대화시키는 전략으로 참여하였다. 그 중 행정전문관료는 정치과정이 개인통치자에 장악을 당하면 당할수록 경제정책결정과정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그것은 개인 통치자의 직접 통제 하에 경제적 역할을 증대해 나갔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행정관료집단은 대통령의 비호를 받으면서 경제성장정책을 주도적으로 입안, 집행함으로써 통치의 기반을 다져주었다. 정치권력은 통치자의 주변에 위치한 실권자들에게 공유되었다.제4공화국의 경제개발과 성장정책의 추진에는 연간 평균 33.5%의 국가재정이 증가되었고 연간 평균 20억불씩의 외채가 증가 투입되는 과정에서 정부가 모든 계획과 사업을 관장하면서 기업을 지도·지원·육성해 나갔다. 개발도상국의 경우 공통적인 현상의 하나로서 이 과정에서 관료들의 부정부패의 증가는 그 어느 때 보다 증가하여 민원의 큰 대상이 되고 있었다. 그와 같은 상황에다 정책과정에서 대통령을 제외한 참여기관들의 역할이 제약되는 과정에서 정책 평가기능을 집행하기 위한 수단으로 공직자의 기강확립을 위하여 대통령비서실에 사정담당기구가 신설되었다.(5) 제 5공화국① 체제의 성격10·26사태가 발생함으로써 사회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게 된다. 이러한 사태 후의 위기관리를 위한 과도기적 정부의 성격을 갖고 있던 최규하 정부는 사회적 혼란과 경제적 침체를 극복하고 균형 있는 경제성장과 민생안정을 위한 착실한 정치발전을 이룩할 것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쿠데타 군부세력은 계엄군을 통해 정권을 비합법적으로 획득 하였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면서 군부 쿠데타의 완성을 이룩하였다. 이러한 전두환 정부가 추구한 정부형태는 대통령중심제에 의원내각제를 가미한 절충형으로써, 안보·질서·능률이라는 국가적 과제와 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조화시키려 했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