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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미술사 석창 홍세섭
    ‘석창 홍세섭, 과거로부터 현대를 응시하다.’한 쌍의 물오리들이 서로 앞서거니 하며 서로를 마주보고 있다. 급박하게 타오르는 물살에서 제 짝의 안위를 내심 걱정이라도 하듯 바라보는 동그란 눈동자에는 미물의 그것보다 사람의 정감에 더 가깝다. 굵고 두터운 붓으로 과감하게 물결을 그려내고, 위에서 쏟아질듯 뒤꽁무니를 쫓아 종종대는 오리는 아둔하면서도 재빠른 그 특유의 맛이 있다.그러면서도 툭 떨어지는 시선은 위태롭기까지 하다. 기존의 물오리들을 그려냈던 양반 사대부들의 안정적인 구도와는 확연히 틀리다. 이를테면, 부감법이라 지칭하는 이 시점은 측면이나 정면에서 바라보는 평이한 시점이 아닌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참신한 시각이다. 이는 이때까지의 조선회화에서 찾을 수 없었던 그야말로 기발한 표현 방법으로 회화에 있어 홍세섭이 얼마나 급진적인 사고방식을 지녔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원근에 있어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지는 않지만, 오히려 그러한 어색한 부분이 현대의 회화를 보는 것 같은 착각마저 일으킨다. 이와 같은 투시법은 종래의 동양화에서 잘 보지 못하던 것으로, 서양의 판화집에서 전래된 서양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아마도 홍세섭은 청으로 유입된 부감법을 받아들여 자기의 방식대로 소화했던 것 같다. 이제껏 시도되지 않았던 그 특유의 독특한 시점은 홍세섭을 누구보다 개성적이고 이색적인 화가로 부르기에 큰 일조를 한 셈이다.기법적인 측면에서의 독특함은 이 뿐만이 아니다. 큰 붓으로 빈 공간을 채우듯, 물결의 모양을 처리한 것은 마치 묵을 이용한 수채화를 보는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그래서 색채를 사용하지 않은 수묵화임에도 불구하고 ‘유압도’는 유려한 색감이 인상적이다. 양감이 느껴지는 부드러운 먹의 사용은 형태를 묘사함에 있어 필선으로 날카롭게 그려낸 기존의 기법과는 차이가 있다. 색이 없으나, 마치 색이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것은 먹을 이용한 수채화기법에서 연유한다. 강렬한 필선대신, 한 겹 한 겹 곱게 쌓아올린 먹의 빛깔은 둥글고 부드러운 물결을 효과적으로 표현해냈다.그리고 현대 동양화에서도 독특한 효과를 위해 사용하는 먹과 아교의 혼합, 반수처리 등의 시도는 그가 얼마나 다양한 연구를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여기 저기 흑점으로 표현된 물방울은 홍세섭 회화의 참신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물오리들이 헤엄치며 만들어내는 물방울을 검은색 점으로 표현하였고, 이는 서양화의 기법중 하나인 마블링을 연상시킨다. 기름 위에 물감을 떨어뜨려 우연한 효과를 기대하는 마블링과 같이 유려한 곡선 위에 떨어진 흑점은 굉장히 현대적인 감각으로 승화되었다. 이처럼 홍세섭의 필묵법은 일필로 공간을 구획하거나 그 위에 담한 선염을 곁들여 ‘물’이라는 공간성을 표현 해냈던 기존의 방법과는 달리, 매우 감각적이고 참신하다.홍세섭의 실로 다양한 필묵법은 다양한 기법의 연구와 새로운 개발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당시 다른 화가들이 사용하지 않았던 여러 가지 붓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연구되었는데, 기존의 붓의 끝을 잘라서 쓰거나 새로운 붓을 만들어서 쓰는 등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던 것 같다.그렇다면 홍세섭은 왜 평생 영모도, 즉 새를 주제로 한 그림만을 그렸을까. 새는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소재이기는 하나 왜 모든 그림에 새를 그려 넣었는지는 밝혀진 바가 없다.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홍세섭의 개인적인 삶을 바탕으로 두 가지 정도의 가설로 유추하자면, 첫 번째는 그의 결혼생활로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홍세섭은 첫 아내를 32세의 젊은 나이에 잃고 두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도 자식을 얻지 못했다. 사대부가문에서 굴곡 없는 일생을 살았다 해도, 젊은 나이에 잃은 첫 번째 부인에 대한 애틋함과 평생 후사를 보지 못함에 대한 비통함은 그 누구보다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와 같은 비감은 그림 속에서는 드러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이루지 못했고 그렇게 되고자 소망했던 삶을 그림 속의 새들로 아름답게 표현했던 것 같다. 언제나 한 쌍으로 서로를 보듬을 홍세섭의 새들은 그의 현실에서 좌절된 개인적인 아픔이 투영된 자기 자신의 반영이라 보아도 좋을듯하다. 또한, 홍세섭은 사촌인 조병필과 돈독한 우정을 나누었다고 알려져 있다. 홍세섭의 작품에 조병필이 남긴 발문을 보면 두 사람의 인연이 중국의 명가인 소식과 문동의 우정에 빗대어도 손색이 없다고 적었다. 이를 미루어볼 때, 홍세섭은 사촌 조병필과의 아름다운 우정을 한 쌍의 새로 표현했을 가능성도 다분해 보인다.
    예체능| 2012.04.26| 2페이지| 1,000원| 조회(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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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기말 그 표상 `그런지룩` 그리고 마크 제이콥스
    세기말, 그 표상 ‘그런지 룩’그리고 마크 제이콥스1. 그런지의 배경1990년대 미국은 수많은 가치와 사회적 현상이 공존하던 시기다. 비단 미국뿐 아닌, 세계 곳곳이 세기말이라는 특수한 시대성과 함께 경제호황의 전성기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이 뒤범벅되어, 어찌 보면 혼란하고도 풍요롭고, 또 그에 드리워진 그림자처럼 어두운 사회 일면을 내포한 시대였다. 이에 앞서, 1970년대는 경제적으로 급성장을 이루며 여유로운 삶의 기반을 닦을 수 있도록 해주었고, 그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성장한 베이비 붐 세대는 당연한 수순이라도 밟듯, 여피족으로 성장했다. 그들은 도회적인 삶을 즐기는 또 다른 신 종족으로 80,90년대를 지배한다. 여피족은 ‘젊은 부자들’로 불리는 만큼 고소득 직종에 종사하며, 삶의 여유와 여가로서의 문화생활을 지향했다. 이러한 성향은 패션에도 고스란히 적용되어, 반듯하게 각이 잡힌 수트를 주로 선택하며 흠 잡을 데 없이 깔끔한 코디네이션을 보여준다. 그들은 하이브랜드의 고급스러운 의류와 군더더기 없는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엘리트 족 이였다. 이미 사회의 여러 직종에서 안정된 삶을 영위하던 여피족과는 달리, 당시 20대 초반의 대학생들은 좀 더 진보적이며, 자유스러운 마인드를 지니고 있었다. 이는 한 세기의 끄트머리에서 한 세대를 마무리하는 위치의 부담감 혹은, 새로운 세계를 향해 촉발되어지는 일련의 자긍과도 같았을 것이다. 그들은 안정과 보수 대신 자유와 진보를 향해 울부짖었고, 이는 당시의 락 음악의 유행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부조리함을 내세우며, 경종을 울리던 락 음악은 여러 가지 장르로 파생되어지는데, 그 중 하나가 그런지 락이였다. 너바나와 같은 밴드가 젊은 세대 사이에서 영향력을 미치며, 비단 음악뿐 아닌 그들의 사고와 생활방식, 스타일 또한 깊게 침투되었고 이는 곧 독특한 그 세대의 스타일을 형성케 한다. 기성세대에 대한 반발, 보기 좋게 꾸며진 인위적이며 가식적인 것에 대한 거부, 신세기에 대한 기대 혹은 실망감, 그렇지만 이전의 히피세대가 그러했듯, 철학적이고 내밀한 무게감보다는 좀 더 가벼움을 추구하는 경향. 이것이 90년대 소위 X generation이라고 불리는 이들을 설명해주는 키워드이다.2. 그런지 패션그런지룩은 1980년대 말 미국 시애틀을 중심으로 한 그런지 뮤직에서 유래된 명칭으로,80년대 모든 것이 완벽하고 세련되게 매치된 토털룩과 엘리트주의에 대한 반발로 이루어졌다.말 그대로 더럽고 지저분한 느낌을 주는 스타일로 1960년대 히피룩에서 보이는 초라하고 낡은 분위기와 하류층 복식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써 세기말의 패션 전환기를 향한 거리 청소년 스트리트 패션의 일종이다. 이는 1992년 대중성을 얻으며 주류로 편입하게 되었다. 그런지 패션은 대개 격자무늬, 플란넬 셔츠, 스톤 워시 청바지, 그리고 어두운 컬러로 대표된다. 이들은 닥터 마틴 스타일 슈즈와 부츠, 그리고 레드, 인디고, 짙은 녹색의 하이 탑 스니커즈를 선호하며, 특히 길고 곧은 헤어스타일을 강조했다. 당시 그런지 패션은 유니섹스 적 현상 이였다. 그런지는 안티패션으로 여겨졌음에도 불구하고, 패션 산업은 곧 이를 별개의 패션스타일로 간주하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잠재되어진 시장에서의 상업성을 파악했기에, 패션계는 곧 격자무늬 후드 스웨터와, 조끼, 긴 팔 티셔츠와 같은 제품들을 쉴 새 없이 판매하기 시작한다. 퍼시픽 노쓰 웨스트의 그런지 팬들은 대중매체가 그런지 뮤지션과 팬들, 그리고 여타 지역문화 요소에 의해 파괴되어 지는 옷에 대한 중요성을 과도하게 전달한다고 생각했다. 옷을 흠집 내는 것은 노쓰 웨스트의 그런지 팬들로부터 일찌감치 시작되었고, 이는 지역사회의 전형적인 외향적인 옷차림과 더불어 펑크적 성향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그런지 음악보다, 패션에 포커스를 맞춘 언론은 엄청난 관심을 동반한 노출을 감행했다. 1990년대 초반, 패션 인더스트리는 그런지 패션을 광범위한 대상에게 선보이며,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제품들을 높은 가격으로 책정했다. 이에 따른 변화에 따라, 매체들 또한 그런지를 하나의 총체적인 문화로서 보여주며, 또한 X 세대의 이러한 시도는 그 전세대의 히피문화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해석했다. 그런지 룩은 히피패션의 부활로서 여겨졌으며, 그러므로 패션 전문가들은 그런지와 네오 히피 트렌드는 같은 선상에 있음을 언급하곤 했다.3. 주류로의 편입-마크 제이콥스그런지룩이 처음으로 등장한 1980년대에부터 90년도에 이르기까지, 이는 하나의 비주류 문화로 여겨져 왔다. 그런지 패션은 젊은 세대의 의식을 반영한, 하나의 언더 적 경향의 패션으로 당시 주류로 편입되지 못했다. 이는 그런지룩의 특징으로 대표되는 레이어링과 자칫 지저분해 보일 수도 있는 여러 가지 요소가 위험요소로 작용해 기존의 패션월드에서 수용하기를 망설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초기에 그런지 패션이 처음으로 선보였을 때, 이는 너무 파격적이라는 평을 얻으며 당시 실패에 가까운 결과를 낳기도 했었다. 이러한 위험부담을 감수하며 그런지를 런웨이로 끌어올린 장본인은 바로 동시대 최고의 디자이너로 군림하는 마크 제이콥스다. 그는 일종의 하류문화로 간주되었던, ‘그런지’라는 매력적이고 위험한 소재를 그만의 스타일로 재창조하여,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판이하게 다른 소재와 패턴을 믹스매치하며, 시각적인 참신함과 놀라움 속에서 새로운 미를 형성하는 것이 그가 빚어낸 그런지 패션의 미학이다.마크 제이콥스는 뉴욕 출신으로 파슨스를 졸업하며 그의 디자인 경력을 시작한다. 그는 그런지 뮤직과 패션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반향을 일으킬 때, 모든 흐름을 보고, 몸소 몸으로 체득할 기회를 얻었던 동세대였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환경은 마크가 그의 패션 관을 완성하는데 적잖은 영향을 미쳤음이 틀림없다. 그는 파슨스 재학시절, 그가 만든 니트 의류를 판매했고, 이와 같은 경향은 본격적인 디자이너로서의 경력을 시작했을 때도 여전히 지속되었다. 마크 제이콥스는 페리엘리스에서 사실상 그런지룩을 처음으로 컬렉션에 선보이게 되는데, 이는 패션 사에서 역사적인 장면으로 기억되는 한편 상업적인 실패라는 쓴 맛도 보게 된다. 완벽한 테일러링에 익숙한 기존 대중에게 ‘그런지’라는 새로운 스타일은 그가 기대했던 반응을 이끌어 내기에 너무도 혁신적 이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책임으로 마크는 페리 엘리스에서 경질당하지만, 곧 그는 그만의 레이블을 단 컬렉션을 선보이며, 독자적인 행보를 계속했다. 이것이 바로 현재 최고의 브랜드중의 하나로 대중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마크 제이콥스의 초기 형태였다. 그는 그만의 소녀 적이며 여성적인 감성과 ‘그런지’라는 그만의 장기를 부각시켜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해냈다. 따스한 느낌을 주는 니트류와 그와 상반되는 소재를 매치하는가 하면, 아주 여성스러운 혹은 투박한 아이템을 조합시키는 그만의 스타일링 방식은 곧 패션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간과해서는 안 될 하나의 중요한 포인트임을 확인시킨다. 이러한 참신한 시도는 곧 90년대 패션계의 흐름을 바꿔놓았으며,‘믹스 앤 매치’라는 중요한 화두를 전달했다. 믹스 앤 매치는 말 그대로 섞고, 재배치하는 과정을 통해 탄생하는 이질적인 느낌을 미로써 받아들이는 모순적 가치를 가진다.어째서 마크 제이콥스는 이에 열광하며, 그런지는 이러한 다른 것들에 대한 조합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 들였는가. 이에 대한 답은 역시 시대성에서 기인하는 젊은 세대의 의식 속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획일적이고 독단적인 사고를 배제하는 대신, 자유 그리고 다양성과 수용의 과정을 최고의 덕목으로 생각했던 그들은 상류와 하류에 대한 개념조차 이전의 그것들과 판이하게 다르다. 고아한 아름다움만이 진정한 미로서 인정받는가 하는 근원인 물음에 ‘아니다’라고 답하며, 이 세대는 낡고 유치하며 저급한 소위 이류, 삼류의 블랙 코미디적인 ‘미’에 한발 다가선다. 이는 키치적인 개념으로도 연결될 수 있으며, 이러한 의식적 구조의 바탕이 90년대의 시대상을 반영하며 마크 제이콥스 개인적인 미의 기준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아름다움과 추함을 오가며, 어떤 것이 지나치지 않은 추함인가를 논한다. 과히 호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추한 형태를 조합하고, 자르고, 붙이는 과정을 반복하며 그의 탁월한 감각은 어디까지가 아름다움으로 수용될 수 있는가의 한계를 보여준다.
    예체능| 2012.04.26| 4페이지| 1,000원| 조회(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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