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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딕양식과 르네상스 양식 의 비교
    REPORT-고딕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과목서양의 복식문화담당교수백영자교수님이름전상윤◆ 서론중세 말기 기독교인들은 신을 향한 종교적인 염원과 함께 동양의 영향으로 수직선의 효과를 강조한 고딕 양식의 사원과 교회를 건축하였다. 흐르는 듯한 선과 뾰족한 라인으로 표현된 고딕 스타일의 복식은 하늘을 찌르는 듯이 뾰족한 첨탑, 첨(尖)형의 아치와 격자(格子)무늬 건축의 특징으로 나타났으며, 직물의 풍요한 색채와 광택은 건물의 스테인드 글라스(stained glass)로 표현되었다. 또한 전쟁으로 야기된 동양과의 무역으로 직물산업이 큰 발전을 하였고. 풍부한 염료와 그 외의 다양한 장식품의 출현과 다양한 길드(Guild)조직은 고딕 복식의 종류와 모양, 색 등을 더욱 복잡하고 화려하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의복은 입체적인 재단으로 인체미를 강조하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인간성의 재생을 의미하는 르네상스 운동은 억압을 받아왔던 그리스도교와 봉건제도의 속박에서 해방되려는 염원으로 그리스. 로마의 고전을 연구하였다. 르네상스의 영향이 복식에 미치게 되는 것은 15세기 말경이며 16세기에 이르러서 성황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복식은 모드의 주도권을 가지고 지배했던 국가를 중심으로 해서 전개되었는데 국력의 성쇠와 서구문화에 있어서의 중심의 이행에 따라서 이탈리아 모드시대(1480년-1510년대), 독일 모드시대(1510-1550년대), 스페인 모드시대(1550년대- 1600년경)로 대별된다. 르네상스 시대의 전성기에 있어서는 중세적 긴박감이 충만했던 의복에는 슬래쉬, 퍼프 등의 새로운 기법이 어깨와 소매, 팔꿈치 등에 장식되어 기발한 모양으로 발전해서 르네상스 복식의 특징으로 부각하였다. 본론에서는 고딕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의 머리, 신발, 장신구에 대하여 설명하고, 두 양식의 시대적 특성 변화에 따른 이들의 형태변화를 비교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본론■ 고딕양식로마네스크미술에 이어 12세기 중기에 그 싹이 터서 13세기에 프랑스·영국에서 명확한 양식이 확립되었다. 그 뒤티페가 바람에 수평으로 굽이치는 것이 매우 아름다운 율동미를 자아내었다고 한다.● 쉬르코13 세기에 가장 특징 있는 의복으로 남녀가 다 입었다. 초기의 쉬르코 구성방 법은 어깨 넓이폭의 직사각형의 긴 천을 반 접어 그 접은 선의 중앙에 머리가 들어갈 수 있게 목둘레를 파고 뒤집어쓰면서 입는 방식이었다. 이 옷은 장식적인 목적에서 입은 것이었으므로 차츰 옷감도 고급화되어 벨벳, 비단을 사용하게 되었고, 속에 입은 코트와 색의 조화를 이 루도록 하였다. 쉬르코는 여러가지로 변형된 옷이 생겨나면서 새로운 이름이 붙여졌다. 14 세기와 15 세기에 유행하였던 쉬르코의 변형은 코타르디 위에 입는 사이드리스 가운(sideless gown)인데 쉬르코 투베르(surcot-ouvert)라고도 한다. 현대의 개념으로는 점퍼 드레스(jumper dress)라고할 수 있다. 이 옷은 진동 둘레가 힙선까지 길게 파여지고 털로 진동둘레를 장식한 것도 있다. 옷의 색은 선명한 단색이나 문장(紋章)을넣은것, 좌우의 색이 다른 것도 있고, 안감은 겉과 대조적인 색으로 하였다. 15 세기에 쉬르코 투베르는 짧은 것과 발목 길이의 긴 것이 병행하여 유행하였는데, 옷길이가 짧은 것은 젊은이들이 주로 입었고 긴 것은 의식 행사 때나 나깴에 은 사람들이 입었다. 캡 슬리브(cap sleeve)가 달린 쉬르코를 타바드(tabard)라고 하는데 이 옷은 가문의 문장을 새긴 옷으로 주로 예복으로 입었고, 옷길이가 짧은 타바드는 기사가 입었다. ● 우플랑트14 세기 말에 의상을 과장하려는 경향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1370 년경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우플랑드(houppelande)는 남녀가 다 입었고 품이 넓고 대개 하이 네크(high neck)이거나 스탠딩 칼라(standing collar)가 달려 있어 귀에 닿을 정도로 높아졌다. 옷길이는 무릎 길이인 것과 땅에 끌릴 정도로 긴 것이 있었고, 앞중심이 터진 것이나 앞중심이 조금만 트여져 단추로 여민 것이 있었다. 소매는 동양의 포(袍)처럼 넓고 가장자리이 유행 하였음. 후드 위에 길게 늘어뜨린 대롱 모양의 리리파이프(Liripipe)가 유행 하면서, 그 길이는 경쟁적으로 길어지기도 하였음. 일반적으로 미혼인 여성은 머리를 자연스럽게 늘어뜨렸고, 기혼인 여성은 머리를 둘로 나누어 양쪽 귀 위로 둥글게 말아 올렸음. 이 시기 에는 신체를 가리는 것이 미덕이라는 종교적 이유에서 다양한 두식이 발달 하였음. 그러나 이 두식은 점차 지나치게 과장되면서 기이하게 변천하였다. 특히 긴 원뿔 모양의 에넹(hennin)과 두개의 원뿔 모양 등으로 된 두식은 고딕 시대의 독창적인 형태인데, 고딕 건축의 뾰족함을 가장 잘 살리고 있는데, 높이는 점차 높아져서 높이에 따라 착용자의 사회적 신분을 알 수 있었다.● 신 발신발은 고딕 건축 스타일의 뾰족한 감각이 그대로 반영되어 발달한 것으로 구두의 길이는, 평민은 13~15㎝, 중류층은 30㎝, 왕은 60㎝로 신분을 나타내었다. 끝이 뾰족한 신발은 발끝이 너무 길어 동여 매었다고 하는데 이것을 쁠렌느(poulaine)라 하였다. 이 시대에는 복장보다도 신발을 더 중요시하여 제작 과정에서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으며, 재료는 부드러운 가죽, 펠트, 벨벳, 브로케이드, 두꺼운 견 등이 사용되었다.● 장신구벨트는 부의상징으로 재료와 형태가 매우 다양하였으며 재산을 나타내는 품목이었으므로 금속과 보석 으로 세공된 것이 있었다. 남자는 볼드릭(baldric)을 한쪽 어깨 위에 사선으로 착용하였고, 벨트에 방울을 달기도 하였음. 여자 들은 열쇠, 바느질 도구가 들어있는 주머니를 거들에 매달기도 하였다. 12세기 이후에는 손가락 장갑이 상류층 부인들에 의해 유행되었고, 장신구로는 목걸이, 반지 등이 있었다. 부채와 파라솔이 여자들의 장신구로 사용되었다.■ 르네상스르네상스는 학문 또는 예술의 재생·부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프랑스어의 renaissance, 이탈리아어의 rina scenza, rinascimento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다. 고대의 그리스·로마 문화를 이상으로 하여 이들을 부러프러프(fraise 佛)는 맞주름을 잡은 차륜형(車型)의 칼라로서 세기의 중엽, 스페인에서 유럽 제국에 보급된 것이다.처음에는 슈미즈에 달렸던 주름 잡은 칼라였는데 그것이 대형화되고 큰 주름의 수가 많아져서 차륜(車)과같은모양 으로 변화했다. 최초의 출현은 프랑스의 앙리 2 세의 왕비(Catherine de Medicis)가 그의 본국인 이탈리아에서 가지고 왔던 것에서부터 유행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칼라는 마침 슈미즈의 칼라가 독립되어 장식화하려는 때였으므로 그 보급이 급진전했다고 보겠다. 푸르푸엥의 칼라가 높아졌던 1540 년경 목둘레에서 슈미즈의 칼라가 보였는데 1560 년경부터 분리되기 시작해서, 처음에는 러프가 속옷의 칼라처럼 소형이었던 것이 1570 년경에 레이스가 장식용으로 붙게 되면서부터 대형화 했다. 1580 년대는 러프의 대유행 시기로서, 목 밑에서 칼라 끝까지의 반경이 20 ~30cm 정도로까지 커졌으므로 외관의 장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대형의 러프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7m 이상의 옷감이 소요되었으며 또 착용시 불편했다. 그러나 귀족들은 대형을 즐겨 사용했는데 그 호화스런 외관은 마치 큰 쟁반 위에 얼굴이 얹혀 있는 것 같았다. 이러한 대형의 러프 착용시의 불편함을 덜기 위해 앞을 터서 끈으로 매어 고정시키는 기능성을 고려했다. 기교적인 러프는 1580 년대의 전성기가 지나면서 단순화되고 간소한 칼라가 눈에 뜨이기 시작하면서부터 곧 사라져 갔는데, 그 과도기적 현상으로 편리하게 변화되면서 그것이 넓은 플랫 칼라(flat collar)로 변화한 것을 세기말에 가서 볼수있다. 이러한 러프 칼라는 일반적으로 백색과 엷은색을 사용했으나 때로는 황색, 적색, 청색, 녹색, 자색 등도 볼 수 있었다. 러프의 유행은 귀족들의 사치와 권위의식의 발로로서 르네상스의 절정기를 장식했 < 구스타프 1세의 딸 엘리자베스>으며 서민층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소매르네상스 모드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소매장식은 주로 슬래시 퍼프 등을 기묘하게 응용해서 특이한 모양붙인 선이 아름답지 않게 보이므로 그곳에 에폴레트(epaulette 佛, wing 英)라는 별도의 천을 장식처럼 붙이며 때로는 늘어지는 소매(mancheron sleeve)를 따로 붙여서 모양을 보기 좋게했다. 세기의 중엽이 지나면서 푸르푸엥에 있어서 급진적인 발전은 가는 허리의 강화로 동부(胴部)에는 접속으로 봉합선이 생기게 되었는데, 그 앞 중앙은 뾰족한 삼각 모양으로 해서 허리의 가늚을 강조하고 남자의 위풍을 표시하는 형태로 되었다. 동부의 접속선 부분이 짧아지고 여기에는 오드 쇼스(haut de chausses)와의 접속점을 모양 좋게 가려주는 역할로서도 중요했다. 푸르푸엥의 구조가 복잡해짐에 따라서 재봉 기술의 진보도 놀라울 정도였으며 숙련된 기술자의 힘이 컸다. 재료로는 견직, 비로드, 문직(紋織), 금은사직 등 사치스러운 것이 귀족신사 사이에 애용되고, 그 화려함과 고귀함과 더불어 사치의 극치를 이루었다.● 쇼스쇼스는 양말(경쾌한 바지)로서 중세기 후반 이후 일반적으로 시민이 착용했다. 16 세기가 되면서 편리함과 장식화가 한층 더 강화되어 새로운 형식으로 변했는데, 그것은 오드 쇼스(haut de chau sses)라고 하는 짧은 바지와 바드 쇼스(bar de chausses)라는 양말의 두 부분으로 분리되었다. 특히 오드 쇼스는 변화가 심해서 각의(脚衣)의 역사상 가장 특이한 모양에까지 이르러 르네상스의 복식을 장식했다. 귀족 신사들은 타인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 서 신기함과 호화로움, 그리고 사치로움을 서로 자랑 할 정도이며 60 년대에서 70 년대 중엽에는 국가에 따라서 특징 있는 형태가 나타났다. 트루스(trouss)는 스페인식인데, 길이는 매우 짧으며 좁은 천을 이어 붙여 만들었다. 심을 넣어 크게 불린 모양으로 외관이 둥근 호박이나 양파처럼 생겼다. 카니온(canions)은 무릎 위에서 각부(脚部)에 꼭 맞게 된 형태로서 단순해 보이며 장식적인 안이 받혀 있으며 바드 쇼스는 그 위에 올려서 신었다. 베네치앙(vene다.
    사회과학| 2009.11.25| 18페이지| 2,000원| 조회(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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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스 문화를 알수 있는 영화 트로이
    영화 ‘트로이’속의 그리스 복식양식소속: 1클래스 7팀이름: 전상윤제출일: 2009.10.17■ 영화 배경 및 줄거리● 배경그리스 로마 신화를 토대로 한 트로이 전쟁의 시작은 작은 황금 사과로부터 시작된다. 바다의 여신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식에 혼자만 초청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이에 분개하여 최고 여신이자 질투의 화신인 헤라 지혜와 학술의 여신 아테네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 앞에 황금 사과가 던져 놓았다. 그 사과에는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는 글귀가 적혀있었는데 이에 세 명의 여신은 서로 자신의 것이라 주장하였고 이 골치 아픈 세 여자의 자존심 싸움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던 신들은 트로이의 왕자이나 양치기를 하고 있던 파리스에게 찾아가 주인을 가려보라 이야기했다. 세 명의 여신은 황금사과를 손에 넣기 위하여 파리스에게 각자 선물을 약속하며 자신을 뽑아 줄 것을 호소하였는데 헤라는 절대적인 권력을 아테나는 끝없는 전쟁의 승리를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주겠노라며 파리스를 유혹했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에게 황금 사과를 주었고 이에 격분한 헤라와 아테나는 파리스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돌아갔다. 그러나 아프로디테가 파리스에게 선사한 여인은 그리스 왕족 메넬라오스의 부인인 헬레네였다. 파리스는 헬레네를 본 순간 첫눈에 반해버렸고 헬레네 역시 파리스에게 사랑을 느껴 그 둘은 야간도주하여 트로이로 향하는 엄청난 일을 저질러 버린다. 이 일을 알게 된 자존심 강한 메넬라오스는 군대를 이끌고 트로이로 향하고 이것으로 인해 그 유명한 트로이의 목마가 등장하는 트로이 전쟁이 시작된다.● 줄거리고대 그리스 시대, 처절한 전투가 한창인 그리스의 데살리(Thessaly, Greece). 가장 잔인하고 불운한 사랑에 빠지고 만 비련의 두 주인공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 사랑에 눈 먼 두 남녀는 트로이로 도주하고, 파리스에게 아내를 빼앗긴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는 치욕감에 미케네의 왕이자 자신의 형인 '아가멤논'(브라이언 콕스)에게 복수를 부탁한다. 이에 아가멤논은 모든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규합해 트로이로부터 헬레네를 되찾기 위한 전쟁을 일으킨다. 그러나 전쟁의 명분은 동생의 복수였지만, 전쟁을 일으킨 진짜 이유는 모든 도시 국가들을 통합하여 거대한 그리스 제국을 건설하려는 야심이었다. 그러나 '프리아모스' 왕이 통치하고 용맹스러운 '헥토르' 왕자가 지키고 있는 트로이는 그 어떤 군대도 정복한 적이 없는 철통 요새. 트로이 정복의 결정적인 키를 쥐고 있는 것은 바다의 여신 테티스와 인간인 펠레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불세출의 전쟁 영웅 위대한 전사 '아킬레스'뿐. 어린 시절, 어머니 테티스가 그를 불사신으로 만들기 위해 스틱스 강(황천)에 담궜을 때 손으로 붙잡고 있던 발뒤꿈치에는 강물이 묻질 않아 치명적이 급소가 되었지만, 인간 중에는 당할 자가 없을 만큼 초인적인 힘과 무예를 가진 아킬레스는 모든 적국 병사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아킬레스는 전리품으로 얻은 트로이의 여사제 브리세이스를 아가멤논 왕이 빼앗아가자 몹시 분노해 더 이상 전쟁에 참가하지 않을 것을 선언하고 칩거해버린다. 아킬레스가 전의를 상실하자 연합군은 힘을 잃고 계속 패하게 되고 트로이의 굳게 닫힌 성문은 열릴 줄을 모른다. 결말이 나지 않는 지루한 전쟁이 계속 이어지고 양쪽 병사들이 점차 지쳐갈 때쯤, 이타카의 왕인 지장 오디세우스가 절묘한 계략을 내놓는다. 그것은 바로 거대한 목마를 이용해 트로이 성을 함락시키자는 것이다.■ 그리스 복식의 특징그리스 의복은 대표적인 드레이프 형으로 로마로 연결되어 서양복식의 기본원형이 되었다. 재단이나 바느질 없이 핀이나 허리띠를 착용했고 점점 발달하면서 율동감을 강조하며 육체미를 드러내고 착용 법에 따라 다양한 연출을 이루었다. 그리스에는 도리아 인과 이오니아인이 있었다. 도리아인은 농업에 종사하면서 보수적이고 엄격한 군사적 군사규율을 중시하며 용감하고 현실적이었다. 이에 비하여 이오니아 인은 상공업에 종사하면서 지성과 정치적 자유를 존중하고 개방적이며 섬세한 예술 감각을 지녔는데 이점이 각각의 복식형태에서 차이를 가져왔다. 초기의 그리스 복식은 딱딱하고 직선적의 단순한 느낌을 주었지만 경제가 번영하고 오리엔트 문화가 들어오면서 화려하고 복잡해 졌다.■ 영화속의 그리스 복식● 키톤키톤은 그리스의 남녀가 모두 착용한 가장 특징적인 그리스의 의복이다. 키톤의 길이는 여자는 발목까지 길게 입고 남자는 무릎까지의 길이로 착용하였다. 키톤은 솔기가 없는 직사각형의 천을 어깨에 두르고 피블라로 각 어깨를 고정시켰으며, 허리 부분을 벨트로 한 번 또는 두 번 매었다. 키톤은 착용한 지역에 따라 도릭키톤(doric chiton)과 이오닉 키톤(ionic chiton)으로 나누는데, 이들은 각각 착용 방법과 분위기가 달랐다.● 도릭 키톤도리아 지방의 남녀가 착용한 기본적인 의복으로 아케익 키톤(archaic chiton), 페플로스(peplos) 또는 도릭 페플로스(doric peplos)라고도 한다. 도릭 키톤의 착용 방법의 특징은 아포티그마(apoti-gma)와 콜포스(kolpos)를 연출해 내는 것으로 착용할 때 초기에는 벨트를 매지 않았으나 후에는 벨트를 한개 혹은 두개 또는 여러 개 묶기도 하였는데, 이때 허리띠로 인해 생긴 부풀려서 늘어진 부분(blousmy)을 콜포스(kolpos)라고 한다. 길이는 장딴지까지 내려오기도 하고 발목까지 내려오기도 하는 등 다양하였다. 도릭 키톤에 사용된 재료는 두꺼운 울이었으나 후기에는 얇은 울로 만들었다. 도릭 키톤은 중후하고 개방적이며, 스파르타적 특성이 반영되었다.● 이오닉 키톤그리스의 이오니아 지방에서 남녀가 모두 착용한 기본적인 의복으로 도릭 키톤에 비해 대단히 풍부하며 부드럽고 드레이프(drape)해지는 것이 특징이다. 가장자리에 무늬를 넣거나 자수로 장식을 하였고, 색상은 주로 흰색을 사용하고, 재료는 얇은 린넨이나 실크 등을 사용하여 속이 비치고 드레이프성이 더욱 잘 나타나 우아하고 아름다우므로 여성들이 즐겨 착용하였다.● 하마티온그리스의 남녀에 의해 사용된 두르는 형식의 겉옷으로서 직사각형의 모직물로 만들고 착용 방법은 자유였다. 여성은 방한 목적으로 대형의 것을 키톤이나 페플로스 위에 몸 전체를 감싸듯이 어깨에서 발목까지 두르고 작은 것은 어깨 에 걸쳐 핀으로 한쪽 어깨를 고정시키기도 하였다. 악천후(惡天候)나 상(喪) 때에는 머리부터 쓰는 관습이 있었다. 색은 청, 장미색, 자색계, 녹색 등의 무지(無地)등 다양하고 엷은 색으로 선장식을 한 것도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이것을 낮에는 의복으로 착 용하고 밤에는 침구로 사용했으며, 철학자나 청년들은 키톤을 입지 않고 이것을 둘렀다고 한다.● 클라미스고대 그리스의 사각형 천으로 된 짧은 망토로 키톤 위에 착용하였다. 클라미스는 두꺼운 모직물로 되어 있으며 오른쪽 어깨나 앞가슴에 피블라로 고정하였다. 이 옷은 두껍고 튼튼한 모직물로 되어 있어 여행자나 군인들이 주로 착용하였다.● 피블라고대 그리스나 로마 시대에 두르는 형식의 옷에 이용된 고정시키는 핀으로 오늘날의 안전핀 모양의 것과 하트(heart)핀 모양의 것이 있는데 안전핀 모양의 것이 주로 사용되었다. 청동의 금속제로서 길이는 7 ~ 8 cm 정도의 것이 많다. 특히 고대 그리스의 의복에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도구였다.● 기타 장식◆ 모자모자는 실용적 용도 이외 즉 여행이나 작업 외의 용도로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으며, 보통 때에는 히마티온의 한 자락을 머리에 두르는 것으로 족하였다. 여행 중에도 모자를 머리에 쓰기보다는 어깨에 내려뜨려 목에 걸고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농부나 목동이 사용하던 챙 넓은 페타소스(petasos), 노동자, 선부 등이 쓰던 캡형의 필로스(pilos), 스키티안 페르시안(scythian persian)으로부터 전수된 것 같은 프리지안 본넷(phrygian bonnet) 등의 종류를 볼 수 있으며, 여자들은 이 외에도 히마티온과 별도로 머리 및 얼굴을 가리는 백마제(白麻製) 베일이 있었다.◆ 신발그리스인들은 일반적으로 옥내에서는 신을 신지 않았으며 외출시에는 그리스 특유의 샌달을 신었다. 이는 바닥을 나무나 가죽 또는 파피루스로 만들고 가죽 끈으로 다리까지 묶는 독특한 형태였다. 이러한 샌달 외에도 여러 가지 형태의 신발이 등장하였다. 여행을 할 때나 군인들은 발목이 무릎까지 닿을 정도로 높고 끈으로 묶는 버스킨을 신었으며 처음에는 연극에서 배우들이 신었다가 후에 일반화된 발끝이 날씬하고 두꺼운 코르크 바닥이며 발목까지 닿는 코투루누스가 있고 그 외에도 농부들이 신는 샌달인 카라비티나 등 신의 형태가 다양하였다.
    사회과학| 2009.10.23| 9페이지| 2,000원| 조회(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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