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괴물’속에 숨겨진특수효과소속학번이름제출일*줄거리세상의 흐름 속에 익숙해진 할아버지와, 세상 생각 없이 맘 편하게 사는 아버지, 세상에 너무 관심이 많고 다혈질인 삼촌, 세상에 관심이 없고 자신의 생각에만 빠져 자주 타이밍을 놓치는 고모로 이루어진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구성원들의 조직인 한 평범한 가족이괴물에게 납치된 한 여학생을 찾아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주한 미 8군 용산 기지 영안실에서 시작 된다. 거기서 미국인 박사가 오래된 포름알데히드라는 시체 방부 처리용 약품을 한국인에게 싱크대에 버리라고 하지만 한국인 직원은 '그 독극물이 한강으로 흘러갈 것이다'라고 말하고 미국인 박사는 '한강은 크니까 괜찮다'라며 그냥 버리라고 지시한다. 결국 싱크대에 포름알데히드를 버리고..미군이 버린 독극물 때문에 돌연변이 생명체가 나타나게 되는데.한강둔치에 아버지가 하는 매점이 하나 자리 잡고 있다. 어느 날 한강 둔치에 괴물이 나타난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아버지는 뒤늦게 딸을 데리고 도망치지만, 놓치고 만다. 괴물은 딸 현서를 데리고 물속으로 유유히 사라지게 된다. 괴물과의 접촉을 더 이상 막기 위해서 한강주위를 통제시키고 그 자리에 있었던 아버지를 격리시킨다. 이때부터 시작이다.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아버지는 병원을 몇 번이고 도망쳐 나오면서 딸 현서를 구하러 다닌다. 서로에게 다른 의미의 존재인 실종된 여학생을 손녀로서, 딸로서, 조카로서 자신들의 목숨을 바쳐 찾는 과정에서 한명한명 괴물에게 잡아먹힌다. 이러한 과정에서 서로의 빈자리를 메워가며 가족애를 실천해나가는 내용이다.*선택한 이유한국에서 나온 18개의 괴수영화중에 가장 성공한 ‘괴물’관객 수가 영화의 모든 걸 말해주지는 않지만 내가 본 영화중에서 ‘괴물’은 최고였다.어찌 보면 현실성은 떨어지지만, 너무 괴수영화라는 틀에 박혀있지 않았고 가족애와 정치적 상황들을 잘 표현해낸 영화였다. 그동안에는 대부분 용가리나 킹콩같이 판타지소설이나 아이들 만화책에나 나올법한 형상적인 괴수들이 등장했다면, 영화‘괴물’에서는 뻔하지 않은 스토리에 약간은 충격적인, 생전 처음 본 괴상한 물체가 나타났다. 게다가 배경이 서울의 한강이라는 점에 있어서, ‘괴물’이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곧 얼마 후에 나타날 것 같은, 아니면 영화 속 내용이 과거에 일어났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한동안 패닉상태에 있었다.나는 너무 희화적인 요소에만 치중되어있는 영화는 무조건 관객을 웃기려는 데에만 관심을 쏟고 나머지 스토리나 영화의 구성, 설정에 있어서는 어설픈 듯 한 느낌을 받기 때문에 좋지 않은 영화라고 단정 지어 버리곤 하는데, 영화‘괴물’에 있어서도 과거 괴수영화의 말도 안 되는 스토리에 개그 요소가 듬뿍 들은 아동들을 위한 판타지 요소를 배제한 것 같아서 보는 내내 좋았다. 포스터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다소 무거운 내용을 담은 액션 스릴러의 영화였으며, 한국영화의 발전가능성과 발전해 온 노력을 보여주는 새로운 시도의 영화였다.영화를 보는 동안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봤던 기억이 난다. 분명히 공포영화가 아님에도 새로운 소재로서 그런 분위기가 조성된 것 같았다. 나는 ‘괴물’의 결말을 알고 있었지만 영화 보는 내내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긴장감이 돌았다. 영화 속 괴물이 CG라는 생각이 들기보다 실제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나는 마음에 드는 영화를 찾으면, 몇 번이고 보고 또 본다. 그리고 매일매일 포털 사이트의 영화평론과 수많은 댓글들을 읽어보고 작품에 담긴 내용을 분석해 놓은 글을 찾아 읽는 편이다. 영화를 계속 봐도 작가의 의도를 잘 모르겠고, 사물 하나하나에 담긴 메시지를 알고 보면 그 재미가 쏠쏠 하기 때문이다. 평론가들이 이 영화에 대해 평가해 놓은 글이 있었다. 그중에 “메시지는 단순하나, 디테일은 훌륭하다.” 라고 쓰여 있는 글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었고 그 내용을 찾아 봤는데, 내가 전혀 찾지 못한 디테일한 것들에 어렵지만 수많은 의미가 담겨있었다.괴물이 나오는 영화이다 보니, 할리우드 괴물영화와 비교하는 사람들이 많았었는데, 봉준호 감독은 인터뷰에서 ‘괴물’을 여타 할리우드 괴물영화와는 분명 다른 독창적인 영화를 만들고자 했으며, 초반 괴물의 등장은 "이 영화는 괴물이 다가 아니다. 괴물이 나타난 후의 이야기가 내가 하고자 하는 진짜 이야기"라고 말했다. 정작 중요한 본질은 보지 못하고, 속물적인 것만 보고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는 관객들(대중)에게 던지는 쓴 소리가 아닐까싶었다. 나도 처음에는 다만 괴물에 초점을 맞추고 영화를 보고 있었지만 괴물이 처음부터 등장해서 뒷내용에 더욱 호기심이 생겼고, 그래서 숨죽이고 영화를 봤던 것 같다. 2000년대에 와서 가장 인정받은 영화인 것 같은데, 가끔씩 다소 부족한 CG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할리우드 영화와 비교해도 절대 뒤떨어지지는 않는 것 같다. 현서를 잃고 매점 안에서 온 가족이 식사하는 장면, 합동 분향소에서 가족들이 오열하는 장면, 오열하는 유족들 앞에다 무심하게 카메라를 들이대기 바쁜 기자들과, 그 와중에 차 빼라고 소리 지르는 경비원. 높은 분오시니까 길 만들기 위해 유족들을 한 쪽으로 밀어내치는 경호원, 변희봉씨가 마지막에 총알 없음을 알고, 뒤돌아서서 손 흔드는 장면, 딸이 살아있음을 알았을 때 강한 마취와 수술에도 정신을 잃지 않는 송강호, 그리고 정신병자설정의 송강호.봉준호 감독은 이 영화의 주제가 괴물에 맞서 싸우는 진한 가족애라고 했지만, 이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가족들은 서로에게 직접적으로 감정을 표현하지도 않고, 살가운 말 한 마디도 잘 건네지 않는다. 또한 오가는 말도 거의 없다. 또한 작품속의 송강호는 정말 단순무식하게 생존본능에만 충실한 사람이지만, 그 본능마저도 이겨낼 만큼 자식에 대한 사랑이 깊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서 보는 내내 울컥하고 뭉클하고 가슴 짠하게 만들었다. 진실 된 가족애가 느껴지니까 나 자신마저도 애절하고 가슴 아려오는 슬픔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나는 현재 트레이닝을 받고 있는 배우지망생이다. 그래서인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목적 있는 행동에 관심을 가지고 디테일 있는 것들을 관찰하는데 정말 한마디로 ‘장난 아니었다.’ 최근에 현장실습에 나갔는데 신기했던 것은 분명히 낮에 찍은 Scene이였는데 tv에서는 밤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너무 신기해서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그런데 괴물은 그런 것들을 뛰어넘어보였다. 배우들의 행동에도 원초적인 인간적인 본능들이 모두 담겨있었고, 정말 신기했던 것은 괴물 그 자체였다. 민첩한 괴물의 움직임과 괴물의 생김새 모두 너무 독특하고 징그러웠다.CG만을 봤을 땐 The war가 더 뛰어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영상자체를 볼 때는 귀와 눈이 즐겁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의 영상과 특수 분장 , 그에 걸맞은 음악들이 화려하다고 모두 좋은 영화는 아니고, 스토리가 좋아야 영화의 화려함이 더욱 돋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 생각엔 특수 효과뿐 아니라 다른 것들 모두가 잘 어우러져 ,단지 어색하지만 화려한 영화로서가 아니라, 그러한 효과들 자체가 돋보이기보다 스토리를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오히려 더 화려한 영화라고 생각된다. 괴물은 우리나라의 기술로만 만든 것이 아니지만 새로운 도전과 시도로 좋은 영화를 볼 수 있게 돼서 흐뭇했다. 괴물 미니어처를 만드는 과정을 봤는데 영화 속 괴물이 다른 괴물영화와 달리 대낮에 나타나 특수효과의 허점도 그만큼 드러나기 쉬울 수 있었지만 세밀한 촬영을 기본으로 괴물의 손발이 지면에 닿는 부분 처리까지도 섬세하게 처리하는 등 1년이라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 것 같다. 디스커버리 채널이라던 지, 실제 생태계의 동물들의 움직임을 참고하는 등 자연생태계 쪽에서 많은 자료를 얻었다고 한다. 도마뱀 등의 두발 달린 동물들이 어떻게 뛰는지 살펴보았고, 하반신이 절단된 사람이 두 팔을 이용해 움직이는 모습들도 참고하면서 기존의 없던 괴물의 캐릭터가 나온 것 같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러한 어려운 과정들로 힘들었기 때문에, 그만큼 영화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온 게 아닐까 싶다.
자기소개, 나의 장점 3가지, 갖추어야할 2가지간절함으로 노력한다면 그 무엇이라도 이길 수 있을 것이다.이것이 제 신조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가슴 속 깊이 꿈꾸고 있던 것들을 조금씩 실현해 나가면서 진정성을 갖고 카메라 앞에서 연기한 뒤에 많은 관객들이 그 모습을 보며 마음을 움직이고 싶은 O O O 입니다.중2때부터일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7년 전, 학교에서 처음으로 본 뮤지컬이라는 것을 보러갔는데 그때만큼은 그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연기도하고 중간 중간 노래도 불러서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고 그냥 넋이 나가있었던 것 같네요. 그 이후로 시간만 나면, 엄마 지갑을 털어서라도 혼자 뮤지컬을 보러갔었고 집에 돌아갔을 때, 있을 일은 뒤로한 채 공연을 보는 그 순간은 너무 행복했습니다. 어느 순간 ‘나도 한번쯤은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단지 그런 꿈만 가진 채로 2년이지나 고등학교 1학년 때,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오디션 정보를 얻게 되었고 반대하는 부모님 몰래 오디션을 보러 다녔습니다. 현재의 저도 그렇지만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반드시 하리라는 뚝심이 예전부터 있었는지, 지금생각해보면 용기가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집안사정이 어려워서 어렵사리 말을 꺼냈는데 물론 돌아오는 건 따가운 부모님의 잔소리뿐이었고, 그럴수록 제 꿈은 더욱 커져만 가고, 대학에 입학해 현재 4학년까지 아르바이트와 학업, 그리고 그렇게 꿈에 그리던 연기와 뮤지컬을 함께 병행하는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수많은 배우들을 보면서 인기를 잣대의 기준으로 삼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한때, 잠깐 인기에 물올랐다가 사라지는 TV 속의 배우들을 보며 너무 부러워서 배움을 뒤로하고, 이정도면 잘하는 것 같고 인생은 정말 한방이라는 생각에 당장 연예인이 되겠다고 소속사오디션도 많이 보고 다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에는 저 스스로를 이해하는 배려심이 적고 그릇이 작았었던 것 같습니다. 항상 운이 안 따른다고 불평만 하고 제 그릇을 크게 만들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았으며 연예인의 외모에만 관심을 가졌고, 연기수업을 받을 때는 다만 그 역할을 흉내만 내면 잘하는 연기인 줄 알고 마냥 행복해 했었는데, 아직 매우 작은 저의 연기 관에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된 스승을 만나서 수박 겉핥기만 하던 저는 많은 것을 얻게 되었고, 간절함을 서서히 행동으로 옮기고 있습니다.-저는 항상 성실함과 책임감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노력하지 않는 자의 후회와 불평은 의미 없는 것이다.” 라는 말이 있듯이 저는 쉽게 포기하지도 않으며 한번 결심하고 시작한 일은 최선을 다해서 끝을 보는 성격이라서 스스로 결과에 상관없이 만족할 줄 알고 성취감을 맛보는 편입니다. 또한 대학생이 되고나서 시작한 아르바이트에 경력이 3년이라는 꼬리표도 붙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통해서 성실함, 책임감, 약속 과 같은 가치들을 계속적으로 탄탄하게 굳혀가는 중입니다.-항상 도전의식을 가지고 새로운 것에 도전합니다.늘 새로운 것을 배우고 도전하는 것을 즐기는 성격이라서 어떻게 보면 단점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저 스스로는 장점이라 생각이 됩니다. 도전을 통해서 끈기와 성취감을 얻을 수도 있고. 개인이 아니더라도 함께 열정을 공유하면서 젊음을 느낄 수 있는 그러한 활동에 도전합니다. 정말 가보고 싶었던 국토대장정을 올해 여름에 다녀왔습니다. ‘자신과의 싸움’이 스스로에게 힘들 때도 있지만 그만큼 가져다주는 가치는 크다는 것.
우리가 보통 예술 특히 미술 분야라고 한다면, 어렵고 딱딱하거나 규격 적이고 때론 너무나 이해하기 어려운 회화나 조각 작품 등을 떠올리기 마련이고 이러한 작품들은 일반적으로 희귀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누구나 이렇게 받아들이는 미술의 고유한 특징에 빠른 복사가 가능해 그 희귀성이 줄어들고 작가정신 보다는 대중의 관심에 편승해 탄생되는 특징을 가지는 대중성이 가미된다면 우리는 그 미술작품을 어떤 식으로 평가될 수 있을까? 아니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예술과 대중 두 사이에서 과연 이것이 어느 한 고유한 영역에 포함될 수 있는 것인가에 관하여 이것이 예술이다 혹은 예술이 아니다 라는 거센 찬반양론이 일어나게 되지는 않을까? 이 리포트에서 나오게 되는 앤디 워홀은 바로 미술과 대중문화 전반의 위와 같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다.그림)앤디와 그의뮤즈 에디의 이야기를 중점으로 둔 영화 ‘팩토리걸’(2007)앤디 워홀이란 이름은 굳이 미술을 공부하지 않았더라도, 소비문화를 공유하는 대중적인 세대의 사람이라면 한두 번은 들어봤음 직 할 것이다. 간단한 상이 색채만 뒤바뀌고 계속 반복되는 모습의 이미지의 형상만을 기억하고 있었던 내가, 보다 더 앤디 워홀에 흥미를 가지게 된 것은 영화 팩토리 걸을 접한 후였다. 영화가 상영되던 몇 년 전 곳곳에 붙어있던, 영화 팩토리 걸의 화려한 색감의 메인 포스터는 내 눈길을 끌었고, 영화를 통해서 그의 예술 감각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 에디 세즈웍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영화는 그의 뮤즈인 에디 세즈웍의 비극에 중점을 두며 워홀의 작품 활동 시기 중 일부만을 다루었고, 은빛 머리칼로 기억되는 대중스타로서의 워홀의 이미지는 간략하게 언급했기에 영화자체만으로는 워홀을 알아가기에 많은 부족함을 느꼈고, 마침내 교양수업으로부터 얻은 뜻밖의 기회로 시립미술관에서 열렸던 앤디 워홀의 위대한 세계-앤디 워홀 전에 다녀왔다. 지난 12월12일부터 4월4일간 약 30만의 관객이 다녀간 앤디워홀의 위대한 세계 전. 이번 전시에는 최근에 발견된 잉그리드 버그만의 작품이 전시되었고 앤디 워홀의 작품들은 앤디 워홀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데 아직도 뒤지다 보면 그렇게 새록새록 새 작품들이 나와서 이번 전시가 세계 최초 공개였던 이 전시회를 다녀와서 보고 느낀 앤디 워홀의 생애와 작품, 그리고 다녀온 후 책과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것을 적어볼 수 있었다.미국 팝아트의 선구자. '팝의 교황', '팝의 디바'로 불리는 앤디 워홀은 현대미술의 아이콘이다. 여기에서 팝아트란 미국에서 추상표현주의의 주관적 엄숙성에 반대하고 매스 미디어와 광고 등 대중 문화적 시각 이미지를 미술의 영역 속에 적극적으로 수용하고자 했던 미술의 한 경향을 말하는데, 살아있는 동안 이미 전설이었던 그는 동시대 문화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과 이를 시각화해내는 직관을 가지고 있었다.미국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에서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피츠버그 카네기 공과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였고, 졸업 후 뉴욕에 정착하여 잡지 삽화와 광고 제작 등 상업미술가로 큰 성공을 거둔 워홀은 특이한 인물이었다. 살아 있을 때 부와 명성을 거머쥔 앤디워홀은 앤드류 워홀라라는 다소 촌스러운 이름을 버리고, 얼굴도 성형하고, 자기 자신을 스타로 포장해서 상업적인 성공도 거두고 작가로서 이름도 떨쳤다. 또한 그는 자신감이 넘치면서도 자기 비판적이었고, 부끄러움과 확신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으며, 자신에 대해 말할 때도 반드시 숨겨두는 부분이 있었고, 자신을 완전히 믿지 않으면서도 세상의 주목을 받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감춤과 드러냄은 워홀의 엄밀하게 계산적이면서도 거의 본능적인 직관에 의해 지속적으로 수행되었다. 비록 순수예술과는 거리가 동떨어지기도 했지만 그는 그림을 통해 인생 내내 그 본능에 충실할 수 있었던 것 같다.그림) 코카콜라[1]1962년 뉴 리얼리스트전에 출품함으로 세상의 주목을 끌기 시작한 앤디워홀의 작품(1962)하지만, 참으로 파란만장했던 일생은 이제부터다. 그는 발레리 솔라나스에게 저격을 당하기도 하고, 어릴 적부터 신경증부터 몇 가지 질병을 달고 살았으며, 마지막에는 수술 후유증으로 사망한다. 사업가로서의 기질도 매우 뛰어났고 무엇보다 운을 타고난 사람이었지만, 스스로는 자기 자신에게 많은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그림) 자화상(1986)그가 예술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은 캠벨수프, 코카콜라와 같은 일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기호품에서부터 마를린 먼로, 마이클 잭슨, 비틀즈, 마오쩌둥과 같은 유명인사까지 다양하게 이어지는 슈퍼스타들의 아이콘, 자신과 교류를 나누었던 예술가부터 당대 최고의 명성을 누리던 스타에서 위인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을 거치면 화려한 이미지의 아이콘으로 변신하게 된다. 이는 할리우드라는 동경 시 되고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은 세계를 일상과 가까이 하고 대중화 시키려고 하였던 앤디워홀의 취지는 예술의 영역에 광고나 매스미디어 등의 산업화요소를 가미하여 작품을 만들어내는 팝아트와 딱 맞아 떨어지는 작품 활동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이 모든 소재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귀결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모두 앤디워홀 자신을 형상화시킨 요소라는 점에서 말이다. 작품 그 자체보다 그것이 형성하는 이미지에 더 집착했던 워홀의 작품세계와 걸맞게도 얼굴만 허공에 붕 뜬 듯 한 기이한 자화상은 파랑색과 노년기 때의 얼굴 모습이 너무나 잘 어울리면서 왠지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인 동시에 그 자체로 워홀의 이미지가 된 것 같은 작품이었다.“그러나 돈을 버는 것도 예술이고 일하는 것도 예술이며 사업을 잘하는 것은 최고의 예술 이다.” -앤디워홀-그림)마를린 먼로(1967)실크 스크린 방식으로제작한 마를린 먼로스스로 기계이기를 원했던 워홀은 기계와 같은 미술을 만들어냈다. 예술작품을 상품의 차원으로 끌어내리고 자신이 이미지 생산자임을 말과 행동에 의해 밝혔다. 실크 스크린에 의한 평면 작업 뿐 아니라 영화, 잡지, 심지어 유선 방송에까지 활동영역을 넓혀 예술 활동이 한 부분에 국한 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는 예술의 대중화와 대중적인 예술의 가능성을 실천적으로 타진한 것이다. 워홀이 반복해서 차용한 이미지들, 캠벨 수프깡통, 하인즈 ,브릴로 박스. 기본 정물화 모티브로 정교한 사실적 재현과 더불어 대량생산과 복제, 소비제품에 대한 작품의 재해석이 동반된 작업들. 그리고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3층에 기념품 판매하는 앞쪽으로 브릴로 비누상자에 앉아있는 앤디워홀이 블라인드로 전시되어 있었다. 저 브릴로 비누상자도 오늘 전시회에 앤디워홀의 조형물로 전시되어 있는데, 실제 공장에서 생산한 것과 사이즈와 색깔을 똑같이 해서 만들어 냈다고 한다. 앤디워홀에게 있어 실크스크린 기법은 시간과 비용을 가장 적게 들이는 동시에 남들에게 무언가를 알리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을 듯하다. 똑같은 구도를 가지고 있더라도 찍어내는 데 사용한 색깔, 판에 주어지는 압력에 의해 다르게 찍힌 부분 등에 의해 작품 하나하나가 각각의 개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나 싶다. 또한 이러한 점에서 기계적인 대량생산으로 만들어지는 제품들과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화려한 색감에 조금은 어지럽다는 느낌도 받은 작품도 몇몇 있었는데 앤디워홀이 실크스크린 기법을 사용하여 작품들을 만들어내고 색만 바꾸어 여러 작품을 생산해 내는 것은 광고의 반복적 이미지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반복과 나열이라는 점에서 그의 작품들은 예술이 ‘광고’라는 산업적 산물과 맥락을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 주고 대량생산, 대량 소비되는 문화를 이야기하고 우리 일상과 현대미술이 아주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한다.
CG for SFX서론특수효과란 90년대 전 후반에 많이 등장한 말로 특수 분장, 미니어처 등을 포함해 영화 속에서 상상의 장면을 만들어 내는 모든 기법을 의미하는데, 요즘엔 실 영화 촬영 기간보다 CG로 인한 후반 작업 기간이 더 길고, 영화 제작 비용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특수효과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이다. 특수시각효과는 정상적으로 촬영해서 얻을 수 없는 영상들을 얻는 방법을 통칭하는데, 특수시각효과는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변천되어 왔고, 영상 제작 현실이 상상력 제한으로 이르자 조금씩 필요에 따라 상상력을 영상에 담아낼 수 있는 방법들을 찾기 시작했다. 할리우드에서의 특수시각효과의 역사는 100년 가까이 되며, 주로 영화란 매체를 통해서 발전해왔다. 참고 동영상을 보면 지금이 있기까지 지난 100년 동안의 특수효과를 볼 수 있다. 최근으로 올수록 어떤 것이 실사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영상을 제공해 주는데 이것이 바로 특수효과라는 것이다. 컴퓨터의 등장은 현실적 한계를 뛰어 넘어 더욱더 정교한 작업이 가능해져 영화의 사실감과 완성도를 높여주고, CG가 없었던 시대에 비해 오늘날에 한층 높아진 특수효과로 예전에는 상상만 했던 장면들이 최근 영화 속에서 속속 구현되는 등 커다란 전환점을 가져다주었다.상상 속의 세계를 현실로 만드는 마술이 바로 ‘VFX’이다. 우리는 종종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나면 ‘CG가 좋다’ ‘특수효과가 뛰어나다’는 말을 하는 둥 CG·특수효과·VFX 등 다양한 용어를 일상적으로 쓰고 있는데 VFX란 ‘영화 및 애니메이션 등에 적용되는 영상제작 기법 중 컴퓨터그래픽에 바탕을 둔 모든 디지털 기법’이라고 정의하겠다. 즉, VFX는 영화나 광고 애니메이션 속 다양한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CG를 동원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CG는 VFX를 위한 수단인 셈이다. 요즘은 ‘SFX’ 보다 ‘VFX란 말을 더 자주 쓰는데, 이는 영화 속에서 로봇 전투 장면, 건물 폭파 장면처럼 실제로 찍기 어려운 장면을 연출할 때 그만큼제왕’ 속 골룸, ‘트랜스포머’의 로봇들, ‘괴물’의 괴물이 현실 속의 존재가 아니라는 CG 등은 VFX로 창조됐다. 그만큼 영화 속에서 VFX 는 보편화 되었다는 말이다. 이제 VFX는 우리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영화의 완성도를 한층 더 높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VFX 기술은 영화의 시각적 만족도를 높여가며 꾸준히 발전하고 있으며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 또한 무궁무진하다.본론12008년 여름에 개봉한 심형래 감독의 ‘The war’는 관객들로부터 할리우드 못지않은 VFX를 선보였다는 평을 받았다. 영화 속 화려한 장면들은 관객의 눈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처음 CG의 사용으로 만들어진 영화부터 영화 ‘디워’ 의 CG와 같은 발전된 CG가 있기까지 다른 어느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 영화에서 CG가 쓰인 역사는 비교적 짧다. 1994년에 개봉한 ‘구미호’는 CG가 이용된 첫 사례이다. ‘구미호’의 제작사에서는 8억이라는 엄청난 돈을 들여 CG기기를 들여와, 이미지 메이커라는 자회사를 설립했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의 협력을 통해 ‘구미호’를 탄생시켰다. ‘구미호’ 는 당시 한국영화 시장을 주도했던 ‘쥐라기 공원’, ‘터미네이터2’ 등의 블록버스터 틈바구니에서 CG를 이용해 모핑 기법이 사용된 구미호 변신 장면이나 저승사자와 구미호의 긴박감 넘치는 도심 추격 장면 등은 새로운 시도로 주목받지만 ‘구미호’가 구사한 특수효과는 적은 분량의 CG에 불과했고 완성도 역시 떨어져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쥐라기 공원’, ‘트루라이즈’ 등의 할리우드 영화와 기술 차이가 극명하게 비교가 되었으며, '다음어지지 않은 초보적인 수준의 CG' 라는 평가를 받았다.1998년에 제작된 ‘퇴마록’은 다양한 영역에서 VFX를 보여줘 한국적 VFX 영화의 시초로 기억되고 있다. 같은 해 개봉한 ‘쉬리’에서는 이전에 볼 수 없던 VFX가 사용되었는데, ‘쉬리’가 택한 전략 가운데 하나는 이른바 '유사 할리우드' 전략이었다. 이 전략에는 상대적으로 비싼 제작비, 마케팅 전략, 장르 전략 요소 하나는 할리우드에 가까이 다가선 특수효과의 완성도에 있다. 고층 빌딩을 박살내고 도심에서 총격전이 난무하는가 하면 특수공작원이 순식간에 산산 조각나는 등, 전에 없는 화면을 만들어내 관객들에게 만족감을 준 것이다. 또한 ‘쉬리’ 이후 한국영화의 기대주로 관심을 모은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유령’, ‘용가리’,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의 영화들은 20억 원이 넘는 대규모의 제작비 가운데 상당 부분을 특수효과 분야에 쏟아 부었을 뿐만 아니라 전체 분량 가운데 20분 이상의 화면에 첨단 테크놀로지의 옷을 덧입혔다. 이들 영화들은 매트 프린팅, 파이로 테크닉, 미니어처, 특수 분장, CG 등 특수효과의 기본적인 분야들을 망라한 본격적인 의미의 SFX를 구사하였다.그 이후 한국 영화의 VFX 기술은 더욱 발전해 ‘태극기 휘날리며’의 중동군 전투장면, ‘웰컴 투 동막골’의 팝콘 장면 등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정우성, 김태희 주연의 영화 ‘중천’에서는 ‘Digital actor’라는 자체 기술이 쓰여 배우들이 위험한 장면을 연기할 때 스턴트맨의 자리를 대신했으며, 이때 선보인 기술들이 인정받아 한국의 VFX스튜디오들이 모여서 만든 컨소시엄이 ‘할리우드가 만든 홍콩액션 종합선물세트’로 불리는 할리우드 영화 ‘포비든 킹덤’의 VFX 작업을 총괄하는 성과도 거뒀다. 그간 한국 영화 제작에서 할리우드 스튜디오에 VFX를 맡기는 사례는 있었지만 한국의 스튜디오가 할리우드 영화의 VFX를 맡는 것은 최초였다. 이러한 성과를 맛보며 계속적인 기술 향상을 통해 한국영화에 있어서, VFX기술은 시각적 만족도를 높여가며 꾸준히 발전해 나아갔다.본론2CG 사용 이전에는 전통적인 특수효과, 여러 가지 효과를 접목시켜 한 시퀀스를 구성하는 특수효과가 사용되었으며, 최근에는 과거의 촬영 종료 후 네거티브 필름으로 작업하는optical 보다는 Digital compositing, 즉 CG 작업으로 대체되고 있다. 최근에는 CG 만으로 부분적인 완벽한감이 결여되어 전통적인 특수효과와 같이 쓰는 경우가 많다. 다음으로는 과거에서 현재까지 쓰이고 있는 다양한 특수효과 중 몇 가지를 살펴보자.매트페인팅매트 페인팅은 실사와 같은 정교한 그림을 일컫는 말로 주로 배경을 그려 합성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웅장한 장면이나 미니어처로 해결하기에는 너무 비싼 비용이 예상되는 장면 등에 오일이나 아크릴 물감으로 유리판에 그림을 그려 넣고 그림이 그려진 유리판 뒤쪽에서 빛을 비춰주면 앞에서 보이는 그림들이 마치 사실적으로 보이기에 이러한 효과를 이용해서 특수효과에 사용하고 있다. 이렇듯 매트 페인팅 기법은 연기를 하는 배우 앞에 배경이 되는 그림을 그린 거울을 설치해 놓고 촬영하는 것으로 배우나 주변의 공간은 투명하지만 나머지 배경에 해당하는 부분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기 때문에 이 두 모습이 자연스럽게 합성되는 것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메리 포핀스’, ‘스타워즈’ 등이 초창기 매트 페인팅의 대표적인 작품들이다.모션 컨트롤 카메라고요하고 무한한 우주에 갑자기 굉음을 울리며, 마치 머리 위로 지나가는 느낌의 우주선 혹은 어둠의 별에서의 스피디하고 강렬한 전투 장면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장면은 보기에는 가슴을 뛰게 하고 시원스럽지만, 실제 촬영 시 아주 정교한 촬영 기술이 요구된다. 완성된 장면을 찍으려면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는다. 사람이 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기술이기에, 이때 필요한 장비가 바로 모션 컨트롤인데, 모션 컨트롤은 정교하고 반복적인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이다.미니어처1968년 특수효과에 커다란 획을 그은 작품이 등장하게 되는데,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라는 작품이다. 특히, 미니어처가 움직임을 갖게 되는 근대적인 형태의 '동적 방식'을 이용한 것으로서 모형 제작에서는 기존의 작품과는 질적으로 차별되는 업적을 이뤘다고 할 수 있다. 그 후 이러한 시도와 더불어 다양한 기법들이 추가되면서 잠수함, 항공기, 우주선 등 거대한 물체를 근접 촬영하거나 마을이나 의 폭파 장면이 필요할 경우로 까지 그 범위가 확장되었다. 오늘날에는 미니어처와 컴퓨터 그래픽을 결합하는 합성 방식이 널리 사용되고 있는데, 즉, 미니어처 세트에 CG로 만든 3D 효과를 보충시키는 작업을 말한다. CG를 이용한 미니어처의 예로 ‘E. T’에서 자전거가 달 위로 날아가는 장면, ‘타이타닉’에서 침몰하는 '타이타닉호'를 들 수 있다.애니메트로닉스1924년 러시아 작가 알렉세이 톨스토이의 원작 소설 ‘앨리타’, ‘ 로봇들의 반란’이 영화화 되면서 로봇을 제어할 수 있게 되었는데, 고작 와이어와 케이블을 수동으로 움직이는 것이 전부였다. 1933년 ‘킹콩’을 스톱모션기법으로 만들어낸 이후 다양한 기술의 개발로 스테핑 모터, 서브 모터를 이용한 동작 장치 및 실린더의 솔노레이든 밸브 조절로 대형 모형을 간단하게 움직이는 것 등의 개발되었다. ‘트루라이즈’ 등에서 모션 컨트롤이라는 방식이 적용되었는데, 무거운 해리어기를 간단히 움직이며 정확히 계산된 움직임을 유도할 수 있었다. ‘그렘린’의 모과이나 ‘저지’의 전투 로봇, ‘드레곤 하트’의 용 드라코, ‘피노키오의’의 피노키오 등이 이런 기법들을 이용해 만든 대표적인 캐릭터들이다. 이외에도 특수 분장된 조형물 안에 전자회로를 구성시켜 리모트 컨트롤로 튀어나온 입을 움직이는 여러 방안들이 강구되어 불가능의 영역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술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빠른 속도로 생겨나고 있다.특수 분장특수 분장이란 특수약품이나 폼라텍스, 도랑 등 화학 물질로 입체적인 분장을 하거나 동물 모습 등으로 분장을 하는 기법으로 1980년 ‘지킬박사와 하이드’ 이후 시작된 특수 분장은 지금은 장르를 초월해 다양한 영화에 널리 쓰이는 특수효과의 고전 분야이다. 과거에는 B 급 호러영화의 기괴한 모습이나 동물의 캐릭터를 직접 사람이 쓰는 형태를 취하는데 자주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특수 분장과 애니메트로닉스를 결합시켜 상상하는 모든 생물체의 움직임을 정교하게 만드는 데까지 이르렀고, 컴퓨터 그래픽과 결합되면서 실제 형질과 거의 흡었다.
주제:국제결혼최근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현수막 문구 중‘베트남 처녀와 결혼 하세요’ 라는 것을 본적이 있을 것이다. 국제결혼이라고 하면 간단하게 말해서 ‘국적이 서로 다른 남녀가 결혼하는 일’을 말한다. 최근에는 농촌 국제결혼 이외에도 충분히 국내에서 배우자를 찾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여성을 찾는 한국 남자들이 늘고 있고, 이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국제결혼이 등장 하고 있다. 국제결혼은 가부장적 가치관이 유지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경쟁력을 잃은 총각들과 한국에 오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단지 돈벌이 수단으로서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무작정 한국으로 온 외국인 여성들 사이에서 비롯한 부끄러운 현실이다.지난해 신혼부부 8쌍 중 1쌍 꼴로 배우자 한쪽이 외국인이었다. 1990년 100쌍 중 1쌍에 불과하던 비율이 15년 사이에 10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왼쪽에서도 볼 수 있듯이 특히 전라남도의 경우 전체 결혼건수 중 국제결혼이 22.68%를 기록, 4쌍 중 1쌍이 국제결혼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법원이 최근 국제결혼·이혼 건수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33만7528건 가운데 국제결혼이 11.6%인 3만9071건으로 나타났다. 또 한국 남성이 외국 여성과 결혼하는 비율은 국제결혼 중 76%를 차지했다. 이는 혼인 적령기의 한국 여성들이 부족하거나 결혼을 기피하고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예전에는 단지 농촌 총각들이 대다수였지만 지금은 도시의 젊은 층과 재혼 층도 국제결혼을 많이 선호 하고 있는 실정 이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국제결혼에 있어서 남성의 입장에서는 왜 국제결혼을 선택하는 것인지 살펴보겠다.현대사회에 있어서 여성들이 농촌지역에 들어가서 생활하기를 꺼려함과 동시에 문화의 공간과 물질적인 여유로움을 더 즐기고자 도시 행에 더 큰 기대치를 부여하고 있다. 또한 2세 자녀들의 교육환경을 문제 삼고 있으며 한국여성에게는 농촌 지역의 신랑들의 교육수준 또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현대여성의 결혼 가치관을 일찌감치 알고 있는 농촌지들의 부양문제. 재혼에 있어서 국내여성들의 조건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까다로워 졌으며, 재혼 시 남성의 경제력은 물론 부모와 자식의 부양문제에 있어서 수동적인 자세를 보임으로써 재혼을 하려는 남성들의 걱정을 해소시키지 못하는 문제점을 낳기 시작 했다. 이런 사회적 변화 속에서 재혼 남성의 경우는 하루하루 어머니라는 사람의 필요성을 자식들로 하여금 더 필요성을 느껴야 갔으며, 국내 여성을 선택을 하더라도 이런 일차적인 가족을 잘 보살핀다는 믿음성이 국내 여성에게는 잘 느끼지 못하여 그 불안감으로 인해 국내결혼을 선뜻 잘 하지 못하는 경향이 생겨버렸다. 물론 조건이 좀 까다로운 국내남성은 선 자리조차도 잘 들어오지 않는 게 현실이며 이런 현실을 냉철하게 판단하여 재혼 남성의 경우 본인 자신보다는 자식과 부모의부양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외여성을 아내로 맞이할 결심을 하게 되는 것이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ec&sid1=103&sid2=336&oid=214&aid=0000066181이 동영상은 농촌 재혼남성의 반 정도의 배우자가 외국여성으로 나타나서 국제 혼인이 일반화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국제결혼을 하려는 남성의 학력의 변화 추이, 고졸에서 전문대, 전문대에서 대학, 대학에서 석박사이상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국제결혼에 있어 앞의 사항의 남성들뿐만 아니라 요즘 초혼의 남성 그리고 전문대 이상의 학력 소지자, 자영업자, 고학력자들의 국제결혼이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남성들의 결혼가치관의 변화는 많은 선 자리의 경험을 토대로 국내결혼에 있어서 결혼자체의 순수성을 잃어버린 국내여성을 질타하고 국제결혼을 하려는 성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서 남성은 대학을 졸업하고 열심히 일을 하여 안정된 직업을 가지고 삼천 이상의 연봉을 받고 있지만 일반 여성들은 기대 수준은 삼천이상의 연봉수준과 함께 독자적인 집이 갖추어져 있어야 하며, 부모님을 잘 모시지 않으려는 경향이 뚜렷하고 객관적인 조 여성이 싫어서 국제결혼을 선택하는 것이라는 수동적이 아닌 능동적인 국제결혼의 형태로 바뀌어 가고 있는 실정이 되었다.크게 3가지로 국제결혼을 선택하는 남성의 부류를 엮어 보았는데 현실적으로 국내남성들이 가질 수 있는 환경을 여성들이 좀 더 실질적으로 판단하여 결혼에 있어서 생각하셔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의 여성의 결혼의 기준과 국내남성들이 처한 현실 수준이 너무나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음으로 해서 국내결혼에 문제점이 대두되고 있다고 보이며 이런문제점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국내여성의 결혼 또한 쉽지 않아 결국 국제결혼 을 해야만 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국제결혼에 있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문제로 인하여 국제결혼이 많아진다는 것은 분명한 하나의 문제점이라고 지적을 하고 싶다.최근 국제결혼 잠정중단을 여러 나라에서 발표하고 있다. 무슨 문제 때문인지 국제결혼의 실태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베트남 사회는 분노에 휩싸였다. 베트남 국제결혼 매매혼의 실태는충격적이었다. 알선업체에선 ‘처녀증명서’라는 것을 홍보수단으로 동원하고 있었다. 단순히 매매혼으로 그치는 게 아닌 현지여성들의 인권 침해까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보는 이들을 경악케 한 것은 바로 ‘처녀증명서’였다. 현지여성들은 한국에 시집가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이를 병원에서 발급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국제결혼 전문브로커들은 ‘처녀일 경우는 가격이 비싸다’라는 이야기를 들려줘 현지여성들이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당하고 있음을 느끼게 만들었다. 현지 여성들의 인권이 버젓이 무시당하고 있는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이쯤에서 다른 나라의 실태도 살펴보았다. 캄보디아 정부는 “캄보디아 여성 7명이 한국에서의 결혼생활을 견디지 못해 귀국했다”면서 “국제결혼을 빙자한 인신매매 방지를 위해 자국 여성들에 대한 서류발급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말썽 많은 우리네 국제결혼 행태가 국제사회로부터 손가락질 받고 있다.이번 캄보디아 정부의 강경조치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국제결혼이을 준다.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10여명의 친구들은 공장에서 일한다. 나는 시어머니가 돌아가셔 애를 맡길 데가 없어 공장에도 못나간다.(인도네시아 여성)’‘자신이 기분이 나쁘면 꼭 욕하고 때린다. 어느 날 맞는 것이 두려워 집을 나왔다. 내 물건을 가지고 나오고 싶었어도 도둑으로 몰릴까봐 그냥 나왔다.(베트남 여성)’‘아이가 아프면 1만3000원이 기본적으로 든다. 건강보험 카드가 없어서 그렇다. 조선족인 우리 친구는 아기를 낳는데 30만원이 들었고 나는 70만원이나 내라고 했다. 아프면 병원비가 많이 나온다.(중국 한족여성)’국제 결혼한 부부 상당수가 가난, 폭력,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결혼한 10쌍 가운데 한 쌍은 국제결혼을 하는 등 국제결혼 건수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으나 이들은 문화적인 차이와 언어소통, 경제적인 빈곤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적인 차이와 언어소통의 어려움은 물론 기초생활보장과 의료서비스 등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인 결혼이민 여성을 위해 기초생활보장법 개정 등을 통한 대책 마련이 시급 하지만 내국인도 기초생활수급을 받지 못하는 가구가 많기 때문에 광범위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통한 사회적 합의과정을 거쳐 결혼이민 여성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함이 시급하다.그동안 외국인 여성과의 국제결혼에 대해 일부 언론의 ‘상처받는 한국 남편들, 외국인 여성이 한국 국적을 취득키 위해 위장결혼 후 이혼 혹은 가출’이라는 보도가 잇달았다. 앞의 사례로 보듯이 외국여성들이 많은 피해를 입고 있지만 우리나라 남성들의 주의도 각별하다는 것이다. 국제결혼의 문제 중의 하나가 위장결혼으로 신부가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여자와 결혼하게 되면 한국 입국 후 가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최근 국제결혼의 사기문제로 보아하니 국제결혼을 한 외국인 여성은 집안이 가난하여 한국에 시집을 와서 집안을 도우려는 여성과 오로지 돈을 목적으로 오는 여성으로 나눌 수 있다고 본다. 어쨌거나 목적은 둘 다 돈이며, 한국인의 송도 상당히 어렵다. 국제결혼에는 만에 하나 잘못될시 그 처리 과정이 무척 복잡하며 책임 여부가 불분명하여, 신뢰 있는 회사가 아닐시 거의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보기가 쉬우므로 남성들도 주의가 필요한 것 같다.최근에 들어 국제결혼 부부의 이혼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국제결혼이 늘면서 국제이혼도 크게 늘고 있다. 외국인 배우자와 이혼한 건수는 2003년 2784건이었지만 2004년 3315건,2005년 4208건으로 매년 느는 추세다. 특히 지난해에는 국제결혼이 2005년에 비해 줄었지만 이혼은 6187건으로 오히려 늘었다. 전체 이혼 가운데 국제이혼이 차지하는 비율도 늘어 지난해에는 5%에 육박했다. 특히 도시와는 달리 농촌 지역에서는 외국인 아내와 이혼한 건수가 외국인 남편과 이혼한 건수의 거의 세 배에 달해, 농촌 총각들의 결혼 실패 현상이 두드러졌다. 이혼이 증가하는 이유로 외국 배우자에 대한 비인간적 처우와 이에 대한 반발, 브로커가 끼어든 매매혼 등 비정상적인 혼인에 따른 폐해와 사회적·문화적 차이로 인한 갈등 등을 꼽을 수 있다.참고동영상:http://news.naver.com/tv/read.php?mode=LSS2D§ion_id=115§ion_id2=291&office_id=055&article_id=0000069774&menu_id=115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결혼이민여성의 법적 신분이 ‘사망자’로 관리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혼인관계증명서 ‘본인’란에도 남편의 이름이 기재되어있다. 김성미경 인천여성의전화 부회장이 밝힌 상담사례에 따르면, 국제 결혼한 남성의 가족관계증명서에 외국인 아내의 '이름'은 있지만 '생년월일'과 '주민등록번호' '본적' 란은 공란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항목의 공란은 사망자를 의미한다. 결혼이민여성이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까지 평균 3년에서 5년 가까이 소요되는 것을 고려할 때 상당수의 여성들이 '유령신부'로 존재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에게 국적 취득을 강요하지는 않지만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