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영화제의 역사와 분류제 1절. 영화제의 역사와 성격영화제의 종류는 그 특성에 따라 매우 세분화하게 나뉘어질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수십 개의 크고 작은 영화제들이 해마다 열리고 있으며, 국제적인 부분까지 따진다면 모두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의 영화제들이 열리고 있다. 세계최초의 영화제라 알려진 베니스영화제는 1932년 무솔리니 치하의 기존에 있었던 비엔날레에 영화부분을 포함하여 성공을 거두자 1934년부터 연례행사로 정착되었다. 독재정권이 문화를 대외포장용으로 이용한 산물이라고 보는 의견이 주도적이지만, 어찌하였든 베니스영화제는 세계 최초의 영화제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파시스트 정부가 베니스 영화제를 효과적인 홍보수단으로 이용하는데 자극 받은 프랑스는 반파시즘의 여파와 더불어 1985년 새로운 영화제를 기획하였다. 바로 칸 영화제이다. 칸 영화제는 당시 프랑스 영화를 주도했던 “작가주의”의 영향을 받아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더불어 실험적이고, 예술적인 영화들의 발견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이후 상업주의와 만남으로서 해서 할리우드의 주요 상업영화들이 수상되는 아이러니한 상황 또한 연출되어 의도가 변질되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97년도의 , 98년도의 등 칸 영화제의 성향과 맞지 않은 미국 할리우드 영화들이 개, 폐막식에 선정된 것은 미국식 자본의 논리를 뛰어넘지 못하는 칸 영화제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1951년 시작된 베를린 영화제 또한 정치적 의도에서 출범했다. 전후복구 사업으로 전전긍긍하던 서베를린에서 시작된 베를린 영화제는 당시 서베를린에 주둔했던 미국 측의 소련과 동유럽 공산국가에 대항한 자유이데올로기의 전시장, 그리고 서베를린의 국민들을 붙잡아둘 문화프로그램의 필요의 목적이 있었다. 베를린 영화제는 현재까지도 미국영화의 입김이 센 편이다. 매년 수십 편이 넘는 미국영화들이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되어 상영되고 있으며, 과 같은 미국 주류영화들의 계속된 수상은 미국에 의해 시작된 영화제라는 점을 부정할 방향성은 수신자, 송신자를 만족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다. 영화제를 통해 보여지는 수많은 영화들에 대한 정보들은 수신자들을 통해 즉각적으로 피드백 되고, 커뮤니케이션 된다.이렇게 영화제는 관객들이 직접 영화제에 참여할 수 있는 자리를 통해 쌍방향적 커뮤니케이션의 자리로서의 의의를 지니고 있다.2. 영화산업의 양적, 질적 발전으로서의 의의영화제는 단순히 단기간동안 많은 영화들이 상영되고 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영화산업으로 넓게는 지역산업의 발전을 가져다주는 산업적 의의가 있다. 또한 영화라는 매체의 예술적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영화제가 열리는 기간 동안 다양한 지역, 국가의 사람들이 영화제가 열리는 지역을 찾기 때문에 지역경제가 활성화되며, 영화제 개최를 위한 기간설비투자와 참가자의 소비로 인한 내수창출효과가 발생한다.또한 영화제 기간동안 영화관계자들이 한 곳에 만나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프로모션을 통해 새로운 영화들의 제작을 합의하는 등 영화산업의 교류와 발전을 촉진시킨다.상업적 시스템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다양한 예술영화의 수용과, 교류를 통해 영화 매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이루어질 수 있으며, 이는 영화의 질적 발전을 이끌 수 있다.국제영화제의 경우 영화제를 통해 해외의 많은 영화관계자들과 국내의 많은 영화제작자들이 모여 영화수출, 제작에 대해 논의하고, 그러한 자리는 영화산업 자체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또한 영화제를 통해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간접적 파급효과를 야기한다. 지역 이미지의 재고는 해외 관광객을 유치하는데 영향을 미치며, 이는 영화제 기간 이후에도 계속해서 지역사회에 영향을 미친다. 또한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연대감이 증진되어 지역사회산업, 활동이 촉진되는 장점이 있다.3. 문화교류의 의의영화제를 통해 다양한 문화가 교류될 수 있다는 것은 영화제의 가장 중요한 의의에 속한다. 세계 각지에서 출품되는 다양한 영화들은 그 자체로 다양한 문화적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것은 관객들로 하여금 다양한 문화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에 오른 영화들이 매일 2편씩 소개된다. 뤼미에르 극장 오른쪽에는 객석 750석의 끌로드 드뷔시 극장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비경쟁인 ‘주목할 만한 부문’ 영화들이 상영된다. 페스티발 성 지하 1층은 넓은 전시공간으로, 이곳은 영화제와 함께 1959년부터 공식행사로 지정된 칸필름마켓이 열린다. 이것은 지난 40여 년간 세계 영화판권을 거래하는 중요한 장으로 자리매김 하였다. 이곳에서 매년 70여 개국에서 온 6000여 명의 셀러와 바이어들이 2000여 편의 영화를 거래하고 있다. 이것 되에도 칸시 정부와 영화제의 협력 아래 조직된 칸 시네필이라는 조직이 일반관객들이 영화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영화제 기간 내내 칸 영화제 메인 상영관이 팔래 주변에 산재해 있는 크고 작은 극장에서 공식 초청작들을 상영하는데 힘쓰고 있다. 전통적으로 공식 초청작들은 리콘느 극장에서 주로 상영된다.칸 영화제는 50여 년 동안 최고의 영화제라는 자부심을 계속 가지고 있고, 또 그렇게 인정받고 있다. 때로는 심사위원단의 영향으로 주관적인 영화제라는 비난도 많이 받았지만, 대중의 인기와 미국 우월주의에 치중하는 아카데미 영화제에 비해, 다양한 장르의 작가주의 영화들이 탄생하는 칸 영화제는 앞으로도 그 명성을 잃지 않을 것이다.2. 베니스 국제 영화제(Venice Film Festival)는 전 세계 수 백 개 국제 영화제 중에서 세계 최초로 개최된 국제 영화제이다. 이탈리아는 아름다운 수상도시 베니스에서 1932년 8월 베니스 비엔날레의 프로그램의 일부로 국제 예술 영화제로 개최하였다. 첫 해에는 공식적으로 비경쟁 영화제로 치러졌으며 이듬해인 1933년에는 영화제가 열리지 않았고 1934년부터 매년 개최되고 있다. 영화제 조직위 측은 ‘본 행사는 정치적인 성향의 개입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선언 했었으나, 무솔리니 집권시기의 베니스 영화제는 정치적 수단으로 변질되고 만다. 무솔리니는 지금까지도 메인 행사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팔라조 델 티네마를 짓는 한편, 영화제 대상의 명칭도 무솔리니 컵으로로 방향전환을 꾀하고 있다. 따라서 영화제에 출품되는 영화의 내용도 독일이 통일되기 전에는 사상성과 사회성이 짙은 영화를 선호했지만, 통일 후에는 개인적이며 가벼운 주제의 영화를 선호하는 추세이다. 베를린 영화제는 공식 경쟁부문, 파노라마, 영 포룸(International Forum des jungen Films), 회고전, 아동영화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공식 경쟁 부문의 시상 내역은 황금 곰상, 은곰상(심사위원 특별상), 최우수 감독상, 최우수 남우주연상, 최우수 여우주연상, 단편 영화대상, 단편영화은상 등이 있다. 이러한 부문 외에도 개최 때마다 시의 적절한 프로그램들이 여기에 첨가된다. 베를린 영화제가 가장 자랑하는 ‘영 포룸’부문은 경쟁부문 다음으로 많은 관심을 끈다. 이것은 칸 국제영화제의 ‘15인의 감독’부문과 마찬가지로 영화제 집행위원회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별개의 조직에 의해 1971년부터 운영되고 있다.초기에는 소규모 자본으로 만든 진보적인 영화들을 주로 소개하다가 점차 새롭고 혁신적이며 실험정신이 깃든 영화들을 소개하는 경향으로 바뀌고 있다. 전 세계의 유명 영화감독 가운데 초기 시절 이 ‘영 포룸’부문에 작품이 소개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이 부문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요즘에는 유명 감독들의 영화도 자주 초청을 받아 ‘파노라마’부문보다 오히려 더 주목을 끌기도 한다. 하지만 비경쟁 부문이라 별도의 상을 수여하지는 않는다. ‘영 포룸’부문의 가장 큰 특징은 영화가 끝난 후 관객과 감독이 꼭 질의토론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작가와 관객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이 부문의 본질을 잘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영 포룸’부문 외에도 ‘파노라마’부문은 다양한 영화들을 포용력 있게 모아놓았다. 그 중에서도 실험적인 영화들을 모아놓은 아트, 에세이, 다큐멘터리 부문은 혹시 게이&레즈비언 필름 페스티발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퀴어 영화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이처럼 베를린 영화제가 퀴어 영화의 메카가 된 것은 유럽 평가받은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 이후 제2회에는 성장을 향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아시아 영화를 소개하는 장이 됨과 동시에 아시아 영화의 미래를 논의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역할도 함께 하도록 하였다. 그 일환으로 '부산 프로모션 플랜(PPP)'을 출범, 3회때 부터는 본격적인 마켓이 진행될 수 있도록 여건 마련 준비에 들어갔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작품들도 대거 초청, 다양한 장르와 다양한 지역의 영화들을 감상할 수 있는 풍성한 자리가 마련되었다.▷제3회 부산국제영화제기간 : 1998.9.24 ~ 10.01상영작품 : 41개국 211편초청인사 : 25개국 659명(외국419명, 한국240명)관객동원 : 192,547명(유료 174,870명)입장수입 : 748,988,000원소요경비 : 25억 원단 1년여 만에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성장한 후, 2회 영화제를 거쳐 오면서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 영화의 중심이 되었다.세 돌을 맞은 부산국제영화제의 가장 큰 성과는 아시아 영화의 흐름을 파악하고 직접적인 교류가 오고가는, 그야말로 아시아 영화에 관한 한 가장 폭넓은 영화제로 확실히 자리매김을 했다는 것이다.또한 3회의 가장 큰 성과라면 PPP가 정식 출범하면서 수많은 한국과 아시아의 영화 프로젝트들이 해외 투자자들과 제작자들을 만나 새로운 아시아 영화시장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단순히 소비에만 머무르는 영화제가 아닌, 전 세계의 영화인들이 모여 더욱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생산적인 영화제로 거듭난 것이다.▷제4회 부산국제영화제기간 : 1999.10.14 ~ 10.23상영작품 : 53개국 207편초청인사 : 36개국 555명(외국377명, 한국179명)관객동원 : 180,914명(유료관람객162,982명)입장수입 : 630,000,000원소요경비 : 26억5천만 원20세기의 마지막 해를 정리하는 제4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수준 높은 작가 영화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래밍이 어느 해 보다 두드러졌다. 또한 초청 국가 수를 대폭 늘려 프로그램을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