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Yesterday / Beatles20년 넘게 조사한 한국인이 좋아하는 팝송 100에서 계속해서 1위에 오르고 있는 팝의 명곡. 비틀즈의 65년 No.1 송으로 싱글차트 4주간 정상에 올랐다.지난 날 나의 모든 시름은 멀리 사라져버린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녀가 거기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 나는 지난날을 믿습니다.갑자기 내가 전의 내가 아니고 내 위에 어두운 그림자가 덮였습니다. 오, 지난날이 갑자기 내게 왔습니다. 왜 그녀가 떠나야만 했을까요?그녀가 말하려 하지 않는 것을 나는 모릅니다.이제 지나간 날을 그리워할 따름입니다. 사랑은 그렇게 쉬운 게임이었는데...이제 어디론가 도망갈 곳이 필요합니다.비틀즈의 시작은 57년 존 레논이 The Quarrymen 이라는 그룹에서 활동을 하다가 교회 축제에서 폴 메카트니를 만나게 되면서 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었다.이후 조지와 링고를 만나서 여러가지 밴드이름을 거쳐 1960년 8월 17일 비틀즈라는 이름이 탄생하게 되었다.그 뒤는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 세계 최고의 그룹으로 우뚝서며 영국뿐만이 아닌 미국 시장까지 점령해 20여곡을 미국 챠트 1위에 올려 놓기도 했으며 1위 포함한50여곡이 톱 40에 올려 놓는 경이적인 기록을 낳았다. 지금은 고유명사처럼 쓰이는 "브리티시 인베이젼"이라는 명칭까지 낳을 정도로 비틀즈의 인기는 대단했다.2 Let It Be / Beatles록발라드의 영원한 고전으로 70년 해산 앨범 에 타이틀 송. 비틀즈는 이 곡 외에 , # Yesterday #1 , Hey Jude #31 를 한국인이 좋아하는 팝송순위에 올랐다.그대로 두어라(Let It Be)내가 곤경에 처했을 때 어머니는 내게 와서 지혜의 말씀을 해주었지. 그냥 그대로 두어라" 내가 암흑에 싸여 있을 때에도 어머니는 내 앞에 와서"그대로 두어라"란 말씀을 들려주었지. 되는 대로 되어 가는 대로 두라는 지혜의 말씀을...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그대로 두라는 것이 해결책이지. 그들이 헤어지더라도만한 오프닝으로 남아있는 이 앨범에서 배리 맥과이어의 곡을 리메이크 한 'California Dreamin'이US 차트 5위, 풍부한 하모니가 돋보이는 'Monday Monday'가 US 넘버원을 기록하며 마마스 앤 파파스는 화려하게 데뷔한다.이어 'I Saw Her Again', 샤렐즈(Shirelles)의 곡을 리메이크한 'Dedicated To The One I Love'로 시대를 초월한 히트 싱글들을 양산해 내며 골드를 기록하는 등 명실공히 그룹은 스타덤에오르게 되고 영국에서도 그 명성을 떨치게 된다.리메이크 곡으로만 이루어졌던 첫 앨범과 달리 두 번째 앨범에서는 존의 작곡가로서의 능력이 발휘된 'No Salt On Her Tail', 'Strange Young Girls' 등이 히트하여 그의 상업적인 재량과편곡의 우수성을 입증하기도 했다. 그러나 존과 미첼 사이의 결혼생활이 파국을 맞은 뒤 그룹의 안정성에 문제가 생겨 66년 미첼은 그룹을 떠나고 비슷한 이미지의 질 깁슨(Jill Gibson)이 대체된다.재구성된 라인업으로 [Deliver]를 발표, 자전적인 'Creeque Alley'로 다시금 마마스 앤 파파스의 명성을 높인 후, 67년 록 페스티벌인 몬트레이 팝 페스티발(Monterey Pop festival)을 창립한존은 히피들의 찬가와도 같은 'San Francisco'로 차트 톱을 기록하며 인기행진을 계속한다.그러나 런던 로얄 알버트 홀(Royal Albert Hall)에서의 공연이 호텔의 담요와 열쇠를 훔친 캐스의 구금으로 취소되는 불명예를 입게 된 이들은 온갖 루머가 난무하는 가운데 결국[The Papas and Mamas]라는 마지막 앨범을 녹음한다.'Safe In My Garden', 'For The Love of Ivy', 'Twelve Thirty', 'Rooms', 'Mansions'를 끝으로 그들의 국제적인 스타덤의 자리를 내놓게 된다.68년 공식 해체한 마마스 앤 파파스는 비록 71년 [People Like Us]로 짧은 기간가 선정"2007년 최고의 앨범"에 선정되었다. 2008년 1월 빌보드 1위와 UK 챠트에서도 1위를 하는 등 여전한 인기를 얻고 있다.1997년 제 40회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얼터너티브 음악상2000년 제 43회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얼터너티브 뮤직 앨범상34 Words / F.R. David튀니지 출신의 남성가수 F.R. 데이빗의 1981년 데뷔 히트곡. 이 곡은 프랑스 차트에 정상에 오르며 8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 유로 팝 붐을 일으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노래.말(Words)나는 말주변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 사랑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말로는 어렵군요. 나는 말주변이 없답니다. 이 길 밖에 없어요. 당신을 사랑한다 말하는 길이 말로는 어렵군요. 나는 단지 음악인 일뿐 멜로디가 이제까지는 제일 친한 친구였죠.그러나 이제 말을 해야겠군요. 내 가슴속을 털어놓는 이 말을...진실이라고 믿어 주었으면 좋겠군요.F.R. 데이빗은 '54년 튀니지아에서 태어났고, 10살에 양친과 함께 프랑스 파리로 이주했다. 대개의 뮤지션들이 그러하듯 그도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였다.그래서 음악에 정진한 결과 20대 중반에 몇 장의 싱글을 발표할 수 있었다. 그러다 '72년에 프랑스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히트 싱글 Superman, superman의 프로듀서로 첫 성공을 거둔다.이듬해 그는 전설적인 아티스트인 반젤리스를 만나 그의 밴드에서 리듬 기타와 퍼커션을 연주하며 전미 투어에 참가했고, 그후 밴드 템페스트와 함께 파리와 런던을 오가며 공연을 가졌으며,그 다음에는 르 바리에이션(Le Variation)이란 밴드를 조직하여 본격적으로 미국 시장을 공략했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반응은 냉담했고, 그는 전략을 바꾸어 두비 브라더스(Doobie Brothers),리치 에반스(Richie Evans) 그리고 토토(ToTo)의 앨범에 참여하며 기회를 노렸다. 그러나 결국 미국에 회한만 남겨두고 6년만에 파리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가 데뷔한지 10년이 된 시점이었다. 영화로 박스 오피스 기록을 세운 그는 동명의 타이틀 트랙을 5주 연속 US 차트 정상에 등극시켰고, 이후 군에 입대하기 전 2년 반 동안 RCA,20세기 폭스사(Twentieth Century Fox), 콜로넬(Colonel)이 각각 제작한 영화 [Loving You], [Jailhouse Rock], [King Creole]에 출연했다. 이어 'Are You Lonesome Tonight?',Wooden Heart', 'Surrender' 등의 곡들을 히트시킨 그는 이후 몇 년 동안 [Flaming Star], [Wild In The Country], [Blue Hawaii], [Follow That Dream], [Kissin' Cousins] 등 수많은 영화에 출연하며사운드 트랙 음반을 발표했다. 60년대 중반 브리티쉬 로큰롤을 정립한 비틀즈의 명성에 의해 한 때 엘비스 프레슬리의 인기는 사그러들었고, 그의 무분별한 영화선정으로 세인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비스 프레슬리는 1968년 12월 3일 NBC 특별 프로그램 'The Elvis TV Special'로 10년만에 부활한 로큰롤의 살아있는 화신으로서의 지위를 되찾게 된다.가죽 재킷에 어쿠스틱 기타를 들고 나와 50년대 주요 히트곡들을 부르고, 자신의 의식 없던 영화 출연과 현란한 몸동작에 대해 얘기하는 그의 진솔한 모습은 심지어 비평가들로부터도박수 갈채를 받았고, 곧이어 출반된 'If I Can Dream'이라는 싱글곡을 대히트시켰다.그러나 혁신적이고 예술가적인 감각이 위축됨에 따라 엘비스 프레슬리는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약물에 의지하게 되었다. 형형색색의 점프 수트와 갖가지 보석으로 장식된 벨트같은 의상으로 자신의 나약함을 감추며 라이브 무대에 서곤 했지만, 결국 1977년 8월 16일 공식적 사인은 심장마비로 화려했던 생을 마감한다.51 Knife / Rockwell미국 출신의 흑인 리듬 앤 블루스 가수 '락웰'의 1985년 작품으로 인기차트와 상관없이 우리나라에서 [Schemer-Dreamer]라는솔로 앨범을 녹음하기도 했던 스티브 월쉬는 77년 이래 정통 프로그레시브 록에서 상업적인 사운드로 전향해버린 밴드에 불만을 느껴 그룹을 탈퇴하고 스트리트(Street)라는 밴드를 조직한다.존 엘르판테(John Elefante)로 보컬을 대체한 캔사스는 82년 [Vinyl Confessions]를 발표, 'Play the Game Tonight'를 히트시키며 그룹의 방향을 정통 록으로 전환하려 했지만,1983년 [Drastic Measures]를 끝으로 해산하게 된다.3년 만인 1986년 캔사스는 필, 리차드, 스티브를 중심으로 다시 결성되었고, 기타리스트 스티브 무스(Steve Morse)와 베이시스트 빌리 그리어(Billy Greer)를 영입하여 이전까지의 재즈 록적인 느낌이 아닌강한 사운드의 [Power]라는 앨범을 발표, 'All I Wanted'를 차트 20위에 진입시키며 재기했다.이후 캔사스는 [In the Spirit of the Things](88), [Freaks of Nature](95), [Always Never the Same](98)까지 별다른 히트곡을 발표하지 못했다.그러나 전설의 심포니 록 그룹인 캔사스는 지금도 미국 전역을 순회하며 "올디즈 쇼(Oldies shows)" 혹은 "썸머 페스티발(Summer Festival)" 등에서의 공연과 앨범 작업을 통해 음악을 향한 시들지 않는열정을 보여주고 있고, 과거 히트곡들도 현재까지 AOR(Adult Oriented Rock)의 정수로 꾸준히 공중파 방송을 통해 연주되고 있다.64 Feelings / Morris Albert브라질의 싱어 송 라이터 모리스 앨버트 (Morris Albert)가 1974년에 영어로 가사를 쓰고 작곡한 노래로, 미국에서는 앨버트의 레코드가75년 5월 부터 히트하여, 빌보드의 이지 리스팅 차트에서 2위, Hot 100에서는 32주나 계속 차트에 들면서 6위까지 상승했었다. 또한 76년 11월 부터미국에서 소울 가수 윌터 잭슨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