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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일한국인이 겪는 어려움과 우리의 앞으로의 대응방향
    재일한국인이 겪는 어려움과 우리의 앞으로의 대응방향1.2010년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한국과 일본, 북한이 처음으로 함께 출전하였다. 이후 북한은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셨지만, 스타가 한 명 탄생하였다. 바로 재일교포 3세인 정대세이다. 그는 북한이 44년 만에 월드컵에 출전하는데 크게 기여 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을 상징하는 재일 코리안의 존재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메신저 역할도 톡톡히 했다. 왜 그는 한국 국적의 재일 교포였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국적으로 바꾸어 북한의 국가대표로 활약을 했을까?정대세 선수에게는 약 100년간의 비극적인 한국 근현대사가 투영된 가족사가 있었다. 이는 13살에 일본으로 가신 외할머니 김홍선씨로부터 시작된다. 20세기 초 한일합방 이후, 일본 정부는 식민지 지배와 대륙침략을 위한 노동력을 싸게 이용하기 위해 일본입국요건을 완화시켰고 이로 인하여 재일 조선인은 급증하게 되었다. 그 당시(1932년), 그 또한 동생들과 함께 일본 아이치(愛知)현으로 건너가 방적공장에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해 생계를 이었다. 하지만, 전쟁이 확대되면서 일본 거주 조선인들의 생활은 더욱 열악해졌고, 김홍선의 식구들 또한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시간을 견뎌야 했다.1945년 8월15일 그는 일본이 패전한 후 오다케(大竹)의 조선인들은 자녀들에게 일본어 대신 조선어를 가르치기 위해 국어 교습소를 열었으나 연합국 군사령부의 조선학교 폐쇄령에 의해 학교는 문을 닫게 됐다. 김홍선은 동포의 손으로 중등학교를 만들자는 운동의 발기인이 돼 학교 건설 작업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전후의 극심한 혼란 속에 당시 재일 조선인들은 일본 정부로부터 아무런 지원이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일본 사회의 멸시와 차별 속에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가혹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당시 한국의 이승만(李承晩) 정권은 재일조선인에 대해 방관정책으로 일관했다. 이에 반해 김일성(金日成) 정권은 이들을 재외공민으로 인정하고 재일 조선인들의 민족학교 건설을 적극적으로 지원했02명으로 사상 처음 1만명을 넘어섰고 1920년 3만189명, 1930년 29만8091명, 1940년 119만444명으로 그 수가 폭증했다. 1945년 8월 일본 패전 직전엔 무려 236만5263명에 달했다. 당시 재일 조선인 약 240만명은 광복 당시 국내 인구(약 2500만명)의 약 10%에 해당하는 수치다. 1945년 광복 당시 한국 거주 일본인 수가 약 76만명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그 숫자가 상당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재일 코리안의 역사는 한일강제합병으로부터 시작한다고 할 수 있고, 올해로 100년을 맞은 셈이다.광복 당시 재일 조선인 240만명그렇다면 왜 이렇게 많은 조선인이 일본으로 건너갔을까? 그것은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지배정책과 일본 정부의 대륙침략노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선 조선총독부가 강제합병 이후 시작한 토지조사사업(1910)과 산미증산계획(1920년대)에 의해 토지를 잃어버렸거나 경작 농산물을 수탈당한 농민들이 호구지책을 찾아 일본으로 가기 시작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국내의 도로, 철도공사, 광산개발 등을 서두르던 일본 정부는 조선인들을 싼 노동력(일본인 노동자 반 값 이하의 임금)으로 이용하기 위해 조선인의 입국 요건을 완화(1922)했다. 그 결과 1920년 3만명 선이던 재일조선인은 1924년엔 약 12만명으로 4배 이상 늘어났다.일본이 만주사변(1931), 중일전쟁(1937) 등 대륙침략 전쟁을 확대함에 따라 일본 청장년층은 대부분 군대에 동원됐다.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한 노동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1930년대 후반부터 조선인에 대한 노골적인 강제연행, 징용이 행해졌다. 그 숫자는 수백만명에 달한다. 이들은 주로 탄광, 토목건축 현장, 공장 등에 보내져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가혹한 노동을 강요받았다.일본 국내뿐 아니라 당시 일본 영토이던 사할린 등지에 보내진 사람들은 일본 패전 후 구소련 땅이 된 사할린에서 수십년간 한국으로도, 일본으로도 돌아오지 못한 채 ‘기민(棄民)’ 상태의 기구한 운명달 후 다시 일본학교로 전학시켰다고 한다.1950년대 말 총련계는 북한을 ‘지상낙원’이라며, 교포들을 북한으로 귀국시키는 조국귀환사업을 전개했다. 1959년 12월 첫 귀환선이 니가타(新潟)에서 북한으로 출발한 이래 1984년까지 약 9만3000명이 북한으로 건너갔다. 일본은 골치 아픈 존재인 재일 조선인들을 국외로 내보내는 효과가 있었던 만큼 니가타까지의 교통비와 식사비 등을 지원했다. ‘지상낙원’이라던 북한으로 건너간 사람들이 일본에 있는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대부분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내용과 함께 돈과 물건을 보내달라는 부탁이 반드시 적혀 있었다. 이 당시 형이 북한으로 건너간 한 총련계 재일교포는 1990년대 부인과 자녀들을 한국 국적으로 변경했지만, 자신은 매년 북한으로 가서 만나는 형의 입장을 생각해 북한 국적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민단과 총련은 남북화해와 교류협력을 내건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 일시적으로 협조하는 분위기가 형성됐지만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뒤 남북관계가 삐꺽거리자 다시 냉기류가 형성되고 있다.두각을 나타내는 재일 코리안최근에는 조금 달라졌지만, 재일 코리안들은 일본 사회의 차별과 편견 때문에 일류대학을 나와도 번듯한 기업은 물론 중소기업조차 취업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파친코, 야키니쿠가게 등의 가업을 이어받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본 사회에서 유무형의 차별과 장벽에 시달리면서도 각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재일 코리안도 상당수 있다.문학계에선 작가 김석범(金石範), 양석일(梁石日)과 시인 김시종(金時鐘) 등 재일교포 1세들 외에도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문학상인 아쿠타카와(芥川)상과 나오키(直木)상을 수상한 작가만 8명을 배출했다. 이회성(李恢成), 이양지(李良枝), 유미리(柳美里), 가네시로 가즈키(金城一紀) 등이다.강상중(姜尙中)은 재일교포로는 사상 처음으로 국립대학인 도쿄대 교수로 임용(1996)돼 화제가 됐고, 활발한 저술활동으로도 유명하다. 국공립대학과 사립대학엔 현재 수백명의 한국계 교수가 재직하고 은 일본으로 귀화하는 숫자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인과 재일교포의 결혼은 1989년 처음 연간 1만명을 넘어선 이래(후생노동성 인구동태통계) 90년대 이후엔 매년 7000~1만명 선을 기록하고 있다. 이들 중 90% 이상이 일본 국적을 취득하고 있고, 2008년 말 현재까지의 귀화 한국·조선인은 29만6168명(표3 참조)에 달한다.재일교포 40만명 중 8000명가량이 매년 귀화한다고 계산하면, 매년 100명 중 2명꼴로 일본사람이 돼간다는 의미가 된다. 일본 사회 동화현상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수치다. 이와는 반대로 1980년대 이후 한국에서 일본으로 유학온 뒤 졸업 후 취직해 일본에 계속 살거나, 비즈니스 관계 등으로 일본에 정착한 이른바 ‘뉴 커머’도 많이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재일교포의 결혼 등에 의한 귀화와 노령층 인구의 사망 등으로 인해 한국·조선 출신은 매년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한국의 민주화와 경제발전, 한류붐 등의 영향도 있어 일본 사회의 한국 및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예전에 비해 상당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결혼과 사업 등에서는 한국계란 사실은 여전히 부담이 되고 있고 그것이 귀화자 숫자에도 투영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코리아계 일본인’의 등장재일교포 가운데는 롯데그룹의 신격호 회장처럼 일본 국적을 취득하면서 시게미쓰 다케오(重光武雄)와 같이 일본 이름으로 바꾸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현재도 그렇다. 편견과 차별이 심했던 만큼 일본 이름으로 귀화해 한국·조선 출신임을 감추는 것이 일본 사회에서 살아가고 사업을 하는데 유리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귀화하지 않은 재일교포들도 대체적으로 본명 이외에 통성(通姓)이라 하는 일본식 이름을 가지고 있다.그러나 근래엔 한국식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귀화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코리아계 일본인’의 등장이다. 미국 등에서 말하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이나 한국계 미국인과 같은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소프트 뱅크의 손정의 사장, 파친코업계 최대 그룹인 마루한을 을 쫓아내기 위하여 실시된 비자율적이고 강압적인 성격의 조치였다. 또 인양계획은 그 시행과정에서 모든 재일조선인에게 ’인양을 위한 등록‘을 강요하여 일본에 남게 될 재일조선인에 대한 감시와 관리의 기본자료를 확보함으로써 점차 확립되어갈 단속체제의 기초를 확립하는 계기로써의 성격도 갖고 있다.재일 조선인의 귀국이 거의 끝나면서 GHQ와 일본 정부의 재일조선인정책의 중점은 점차 단속체제의 구축에 놓이게 된다. 그것은 바로 1947년 5월의 ‘외국인 등록령’이다. 이 제도에서 특기할 만한 사항은 바로 ‘휴대와 제시’조항이다. 외국인등록령의 적용대상자는 등록의 의무 뿐만 아니라 등록증의 휴대와 제시의 의무를 지게 되어 있다. 휴대의 경우는 ‘항상 등록증명서를 휴대’하도록 규정되어 24시간 언제라도 몸에 지니고 있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고 제시의 경우에는 ‘내무대신이 정한 관공리의 청구가 있을 때’ 즉 경찰관 등의 요구가 있으면 언제 어디서라도 제시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었다. 집 가까이에 담배를 사러 가더라도 휴대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잊고 두고 나온 경우에는 집 앞이라 해도 체포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GHQ의 재일조선인 동화정책으로는 민족교육정책이 있다. 이것은 GHQ의 중기 이후의 정책에 해당한다. 1947년에 들어서면서부터 조련의 활동도 정주 재일조선인의 권익확보 및 생활 향상에 중점을 두기 시작하였고 조선어 강습소에서 민족학교로 성장한 민족교육 사업도 점차 진척의 도를 높여가고 있는 상황에서 GHQ와 일본정부는 재일 조선인 민족교육에 대해 대체로 조선인 교육의 자주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선에서 취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 또한 그동안의 GHQ의 재일조선인 정책과 맥을 같이하여 ‘조선인 제학교는 정규 교과의 추가과목으로 조선어를 가르치는 것을 허락한다는 예외를 인정할 수 있는 것 이외에는 일본의 모든 지령에 따르게 한다’라고 하여 ‘조선인 학교도 전반적으로 일본 법률의 범위 내에’적용되도록 하였다. 이는 민족교육을 끝까지 추구하려는 재일었다.
    인문/어학| 2011.09.13| 15페이지| 4,000원| 조회(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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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 도시란 무엇인가
    좋은 도시란 무엇인가? 동아일보 2002년 3월 1일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20&aid=0000115928[세계적 생태환경도시 브라질 꾸리찌바]좋은 도시란 무엇일까? 도시라는 곳도 결국 사람이 사는 곳이기 때문에 사람이 살기 좋은 도시가 좋은 도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이 편리하고 여유로운 생활 행태를 보이며 건강한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게 해주는 도시가 좋은 도시라는 것은 이견이 없을 것이다.브라질의 생태 도시 꾸리찌바가 바로 그런 도시이다. 도시가 처음 생길 때부터 철저하게 계획되어진 도시. 자연과 같이 살아숨쉬고 있는 도시가 바로 꾸리찌바이다.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에서 버스 중앙차선 제도를 시행하려고 할 때 참고했던 도시도 바로 꾸리찌바였다.꾸리찌바는 전 세계에서 좋은 도시에 관한 상을 휩쓸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새로 부임한 시장이 급속한 인구증가, 환경오염, 교통체증, 문화유적 훼손 등으로 위기에 빠진 시를 탈바꿈 시킨 것이다.이렇게 좋은 도시가 되기 위해선 단순히 기술 적인 측면들의 문제점들 뿐 만 아니라 여러 가지 측면의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 소득의 양극화, 사회적 불평등, 약자들을 위한 복지적 문제, 문화적 혜택의 평등성 등의 제도적인 문제들도 좋은 도시가 되기 위한 중요한 요소들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떨어질 수 없는 불평등의 문제가 도시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으로 봤을 때 앞서 보여준 꾸리찌바와 같이 기술적인 측면과 제도적인 측면의 조화가 잘 이루어 질 때 좋은 도시의 틀이 갖춰질 수 있을 것이다.
    사회과학| 2011.09.13| 1페이지| 1,000원| 조회(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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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리따움의 성공 마케팅 전략 분석
    - 아리따움의 성공 마케팅 전략 분석 - aritaum목 차 1 2 3 4 주제 및 선정이유 5 ARITAUM? 시장 및 회사현황 SWOT STP 분석 4P 분석 및 마케팅전략(1) 주제 및 선정이유 ▶ 아리따움은 2009 년 6 월 , 사업시작 10 개월 만에 화장품 업계 최초로 프랜차이즈 업계 성공의 척도인 10 – 10 클럽 가입 . ▶ 어떠한 마케팅 방법이 이러한 성장을 가능케 했나 ? ▶ 아리따움이 더욱 성장하기 위해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하나 ?▶ 1945 년 창립 이래 국내 화장품 업계 1 위 고수해 오고 있는 브랜드 .‘ 태평양 ’ 에서 시작 . ▶ 라네즈 , 마몽드 , 헤라 , 설화수 , 베리떼 , 이니스프리등 다수의 화장품 브랜드 설립 ▶ 2006 년 6 월 화장품 , 생활용품 , 식품사업부를 분할 설립 . 아모레퍼시픽 (AMORE PACIFIC) (2) ARITAUM?▶ 2006 년 8 월부터 ‘AMORE PACIFIC’ 브랜드로 일본 시장 진출 2007 년 라네즈 브랜드가 러시아 진출 ▶ 2008 년 9 월 다양한 브랜드를 바탕으로 한 뷰티샵 ‘ARITAUM’ 오픈 ▶ 라네즈 , 마몽드 , 설화수 , 오딧세이 , 에스쁘아 , 미쟝센 , 설록 , 케토톱 등의 브랜드 소유 아모레퍼시픽 (AMORE PACIFIC) (2) ARITAUM?시작 2008 년 화장품 멀티숍이던 “ 휴플레이스 ” 가 아모레퍼시픽 제품만 판매하는 ARITAUM 으로 전환 당대 최고 톱스타의 출연과 친근한 CM 송을 통한 마케팅 전략으로 신선하고 좋은 이미지를 이루어 냈다 . (2) ARITAUM? 이름 ‘ 아리따움 ’ 은 ‘ 아름다운 사람들이 만드는 아름다운 공간 ’ 이라는 순 우리말로 ‘ 아리땁다 ’ 라는 순 우리말 어원을 명사화환 표현과 공간개념을 뜻하는 영어접미사 ~UM 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컨셉 단순한 화장품 판매가 아니라 아모레 퍼시픽의 비전인 ‘Asian Beauty Creator’ 를 실현해주는 Total Beauty Solution 공간을 의미 건강하고을 통해 동양의 아름다운 이미지 구축 제고 (2) ARITAUM?BI 현대적인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글꼴을 기본으로 섬세한 붓글씨 체의 선을 조화시켜 단아하고 모던한 느낌을 제공한는 로고 브랜드 네임을 구성하는 Typography 인 ARITAUM 알파벳 각자를 리듬감 있게 배치아혀 일관성과 다양성을 표현하는 심볼 . 고객의 아름다움을 위해 좋은 상품과 우수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아리따움을 만드는 사람들의 마음을 표현 . (2) ARITAUM?ARITAUM 주요 브랜드 라네즈 IOPE 미장센 기타 마몽드 (2) ARITAUM? 여성을 위한 전문 메이크업 라인을 선보임 . 모델 송혜교 , 현빈 현명한 여성들이 선택하는 합리적인 제품 컨셉 . 여성스러운 아름다움을 실현하는 브랜드 . 모델 한지민 피부 고민에 따른 솔루션을 제안하는 기능성 코스메디컬 프리미엄 브랜드 . 모델 이나영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개성있는 헤어 연출을 목표 . 모델 신민아▶ 지난해 국내 화장품 시장 규모는 전세계적인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전년 대비 12.5% 증가한 7 조 4000 억원 . 올해 국내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11.1% 늘어난 8 조 2000 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 . ▶ 다양한 기업의 제품을 한꺼번에 판매하는 종합 화장품 매장은 사라져가고 각 회사들의 브랜드샵들이 화장품 유통채널의 대표주자로 자리잡고 있다 . (3) 시장 현황▶ ‘ 그루밍 (Glooming) 족 ’ 이 늘어나면서 남성화장품 시장 급성장중 출처 : 업계 (3) 시장 현황▶ 다양한 기업의 제품을 한꺼번에 판매하는 종합 화장품 매장은 사라져가고 각 회사들의 브랜드샵들이 화장품 유통채널의 대표주자로 자리잡고 있다 ▶ 얼굴과 관련된 화장품뿐만 아니라 팔 , 다리 , 목 , 몸 등에 바르는 바디케어 상품들이 시장에 등장 . 바디케어는 페이셜 케어 시장 성장률를 앞지르며 성장중 . (3) 시장 현황▶ 아모레퍼시픽은 올해 3 분기 전년동기대비 15% 증가한 5149 억원의 매출액을 달성하였다 . 3 분기 5789 억원으로 16% 늘어났다 . 3 분기 영업이익은 749 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2.0% 성장했으며 , 당기순이익은 80.8% 늘어난 925 억원으로 잠정 집계 (3) 회사 현황▶ 해외 사업은 3 분기 누계로 첫 흑자를 기록한 가운데 , 중국 지역 매출은 전년대비 20% 성장한 1026 억원 ( 위안화 기준 매출 34% 성장 ) 을 기록했다 . 라네즈는 25%, 마몽드는 46% 성장했다 . 프랑스 매출은 향수 롤리타 렘피카의 지속적인 성장으로 전년대비 6% 성장한 696 억원 ( 유로화 기준 매출 24% 성장 ) 을 기록 (3) 회사 현황(4) SWOT STP 분석 Weakness Opportunity Threat Strength 높은 인지도와 경쟁력을 가진 다수의 브랜드 보유 화장을 하기 시작하는 10 대부터 피부 노화 및 탄력을 위한 솔루션을 찾는 50 대 까지 모든 연령층을 소화할 수 있는 제품군 보유 파워브랜드 베스트셀러 스테디 셀러 보유 다수의 매니아층을 확보한 제품을 다수 보유 ( 마몽드 – 토탈솔루션 , 라네즈 – 워터뱅크에센스 , 아이오페 – 레티놀 등 ) 아리따움의 런칭과 시장확대가 용이했음(4) SWOT STP 분석 Weakness Opportunity Threat Strength 차별화 된 서비스 고객 다양성과 대중성을 추구 피부타입 진단기를 통해 피부에 관한 1:1 상담 서비스 진행(4) SWOT STP 분석 Weakness Opportunity Threat Strength 홍보 효과와 인지도 CF 에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여배우들을 캐스팅해서 소비자들의 눈길을 끄는데 성공 힙합 가수가 부른 CM 송으로 소비자들에게 세련되면서도 임팩트 있게 이미지 전달Strength Opportunity Threat Weakness 저가 로드샵과 고가 백화점 사이의 어중간한 포지셔닝 다양한 제품라인 구비로 인해 전문성이 떨어짐 타 저가 로드삽과 경쟁시 브랜드 충성도가 낮고 가격 민감도가 높은 10 대 , 20 대 초반에게는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으로분위기나 전체적 이미지로 인해 남성 고객들은 아직까지 부담스러워 하며 타 브랜드 샵 이용 전문성 경쟁력 이미지 (4) SWOT STP 분석Strength Weakness Threat Opportunity 화장품 산업은 그 동안의 경기불황에도 불구 꾸준히 성장 사회 전반적인 외모에 대한 관심 증가로 인해 미용 및 화장품 시장은 더욱 확대될 전망 그루밍족 열풍으로 피부 미용에 관심을 가지는 남성이 많아지면서 남성 전용 화장품 시장은 더욱 확대될 것 . 정부가 앞으로 화장품 업계의 R D, 수출을 지원하고 규제를 완화한다는 지원계획 발표 안정성 관심 증대 정부 지원 (4) SWOT STP 분석Strength Weakness Opportunity Threat The Faceshop , MISSHA, Skin Food 등의 저가 화장품 시장 및 브랜드 샵과 드럭 스토어의 성장 세계적 기업인 로레알 , 에스티로더 그룹 등이 대중적 시판 브랜드 라인업을 통해 국내 진출 FTA 체결 시 관세 하락으로 외국 유명 화장품과의 경쟁 심화 화장품은 인간의 건강과 아름다움에 관련된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특수한 효익을 가짐으로 여러 측면에서 법률적인 제약이 있다 경쟁 심화 다양화 법률적 제약 (4) SWOT STP 분석S 시장 세분화 관심이 많지만 경제적 여유가 적은 10~20 대 관심이 많고 어느정도 여유가 있는 30~40 대 높은 연령층과 화장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50~60 대로 세분화한다 . 시장 표적화 주 타겟층 20~3,40 대 여성 . 피부 건강에 관심 많고 합리적 가격대를 원하며 브랜드 충성도가 있음 서브 타겟층 10 대 전용 화장품 , 남성용 화장품 포지셔닝 1:1 맟춤서비스에서 알 수 있듯이 소비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개개인의 차별화된 취향을 포지셔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며 피부 고민을 해결해주는 뷰티 카운슬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4) SWOT STP 분석 T P(5) 4P 분석 및 마케팅 전략 ■ 화장품 향수 바디 헤어 미용소품 등 뷰티관련 다양한 제품군 ■ 이미 받은 인지도 높은 브랜드 위주 Product 화장품 향 수 생활용품(5) 4P 분석 및 마케팅 전략 ■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로 선택의 다양성 제공 ■ 기본적으로 전국매장에 동일한 가격 추가적으로 회원 가입만 하면 한 달에 한번 할인쿠폰 제공 Price 페이플러스 ( 유료회원 ) 제도(5) 4P 분석 및 마케팅 전략 ■ 전국 주요 대량 소비지에 직영매장 위치 ( 명동 , 강남 등 16 개 ) 나머지는 대부분 가맹정 ( 프랜차이즈 ) 형태 ■ 홈페이지를 통해 제품소개 , 오프라인 판매주력 ■ SSEP (Sales Stimulation Enhancement Program) 라는 프로그램과 아모레 퍼시픽 뷰티 컬리지를 통해 경영주와 아리엘에게 미용법과 고객만족을 위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교육 Place(5) 4P 분석 및 마케팅 전략 ■ Story1 과 Story2 로 나아가는 톱스타들이 등장하는 아리따움 런칭 광고 . 톱스타들의 출현으로 이슈화 하는데 성공 . 중독성 있는 CM 송도 큰 효과 . ■ 멤버쉽 제도 제휴사와의 전략 PromotionReference http://blog.naver.com/tjffks9342?Redirect=Log logNo=30084136187 topReferer=http://cafeblog.search.naver.com imgsrc=20100411_175/tjffks9342_1270926506275TYdz8_jpg/%BD%C3%C0%E5%C1%A1%C0%AF%C0%B2_tjffks9342.jpg 참고 기사 http://www.dailycosmetic.co.kr/Contents/Section/viewNews.asp?item_seq=33970 http://www.ebn.co.kr/news/n_view.html?id=463397 http://www.newspim.com/view.jsp?newsId=2************* http://corp.amorepacific.co.kr/ http://www.aritaum.com/{nameOfAppli}
    경영/경제| 2011.09.13| 27페이지| 3,000원| 조회(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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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 산업을 발전시킬 방향
    어떻게 해야 문화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을까?- 한류 열풍의 사례를 중심으로 -21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나라도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대기업들이 주가 되었던 제조업 분야뿐만 아니라 정보 통신이나 문화 산업 측면에서도 발전을 이루어서 우리나라 수출 증대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 긍정적으로 반영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중에서 아시아 지역에 불어 닥친 한류 열풍은 가히 폭발적이었다고 표현할 수 있다.최근 몇 년 사이에 세계 각국에서 가요, 영화, 드라마를 중심으로 한국의 것을 선호 하는 ‘한류(韓流)’가 나타나고 있다. 한류열풍이란 1990년대 말 동남아시아에서 일기 시작한 한국 대중문화의 열풍으로 이러한 한국 대중문화의 열기를 표현하기 위해 2000년대 초에 중국 언론에서 붙인 용어이다. 현재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어디서든 들어봄직한 말 일 것이다.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는 한국 가수들의 노래나 한국 배우들의 드라마 등의 한국 문화가 중국을 넘어 타이완, 홍콩, 베트남, 타이, 인도네시아, 일본,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문화적인 아이템을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기업의 전자제품, 일상용품의 판매 실적에도 이어져 그에 따른 경제적 파급효과가 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문화 관광부 또한 세계 각국에 고품질의 국산 문화 컨텐츠가 진출 할 수 있도록 관련업계와 함께 ‘열풍’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애쓰고 있다. 이처럼 한류 열풍은 우리 스스로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우리의 것에 대한 힘을 발견한 좋은 계기가 되었다.하지만 한류에 관해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며 바라보고 계속적인 자기 성찰과 문화 컨텐츠의 개발을 하지 못할 경우 이러한 열풍은 언젠가는 사그러들 것이다. 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한류가 불고 있다고 해서 거기에 자아도취를 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2000년대 초에 불었던 한류 열풍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었다. 단지 한류의 열풍에 도취되어서 컨텐츠를 수출하기에 급급한 나머지 그 나라의 문화와의 접점을 찾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고 인기를 끌게 되었던 킬러 콘텐츠 외에 계속적인 컨텐츠를 제공하지 못했던 것이 또 다른 큰 이유이다. 한류가 일시적인 문화현상으로 마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떠한 발전방안이 있고 전망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객관적인 분석을 통한 한류의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다.우선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한국의 문화 컨텐츠의 발전은 급속한 인터넷의 발전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급속한 발전은 수많은 창작자들의 권익을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대표적인 예가 한류 열풍의 주역인 가요계라고 할 수 있다. 창작자들에게 적정 수준의 보상이 돌아가기 힘든 우리나라 가요계의 사정이 결국 창작자들의 수를 감소 시켰고 이는 좋은 컨텐츠를 만들 수 있는 생산자의 절대적인 수를 감소시켜버린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숫자가 적기 때문에 다시 양질의 컨텐츠가 만들어지기 힘든 구조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이러한 규제를 적절히 조절할 필요가 있다. 정부에서 창작자를 보호하는 법률뿐만이 아니라 직접 보조해 그들의 권익을 지켜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문화는 확산되고, 재창출되기에 가요계의 장기적인 침체는 결국 한류에 찬물을 붓게 될 것이다. 창작자의 보호는 곧 다양한 컨텐츠 확보로 이어진다. 다양한 컨텐츠의 확보는 한류가 지속되기 위해 필수적인 항목이다. 지금 현재 한류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드라마, 영화, 가요 등은 계속해서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연극, 무용 등의 예술 분야도 발전 시켜야 한다. 다양한 분야의 컨텐츠를 계속해서 개발해내지 못한다면 결국 한 분야만 비정상적으로 커버리는 기형적인 형태의 문화가 되어 버릴 것이다. 다양한 컨텐츠의 개발이야 말로 한류를 발전, 지속시킬 수 있는 방안 일 것이다.또 정부 차원에서의 외교적 뒷받침 또한 중요하다. 한류를 통해 많은 나라들이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바뀌어 가고 있다. 문화를 통한 교류가 선행되어 이미지를 개선하고 있는 와중에 정부 차원에서 뒷받침을 하여 우리나라에 대한 이미지를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좋은 이미지는 결국 우리나라의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고 또 다른 분야에서의 한류를 이끌게 될 것이다.
    사회과학| 2011.09.13| 2페이지| 1,000원| 조회(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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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일한국인이 겪는 어려움과 우리의 앞으로의 대응방향
    재일 한국인이 겪는 어려움과 재일 한국인에 대한 앞으로의 대응방향목 차 1 2 3 4 서 론 5 재일 조선인 역사와 현황 일본 한국의 제도 일본 한국의 인식 결 론서 론 ▶ 제 19 회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북한 국가대표 정대 세 ▶ 일본 나고야 출신 ▶ 총련계 조선 학교 졸업 ▶ “공화국은 부모와 같이 , 항상 나를 지켜주는 조국이라고 생각한다 . 일본으로의 귀화는 한번도 생각해본 일이 없다” ▶ “가슴에 국기를 달고 , 이 평양 경기장에 반드시 돌아오고 싶다”재일 조선인 역사와 현황 ▶ 쇄국정책으로 일관하던 일본은 에도 ( 江戶 ) 시대 (1603~1867) 말기에 어쩔 수 없이 서방에 문호를 개방 ▶ 유일하게 교류하고 있던 나라는 조선 조선인들은 언제부터 일본에서 살기 시작했는가 ?재일 조선인 역사와 현황 ▶ 강화도사건을 일으킨 일본의 강요에 의한 1876 년 조일수호조규 ( 강화도조약 ) 가 체결된 이후 일부 조선인이 일본에 살기 시작 ▶ 김옥균 ( 金玉均 ), 박영효 ( 朴泳孝 ), 우범선 ( 禹範善 ) 등 민씨 일파에 반대하는 개화파나 친일인사들이 대부분 한일 합방 이후 재일 조선인 급증재일 조선인 역사와 현황 한일 합방 이후 재일 조선인 급증 ▶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 (1910 년 8 월 29 일 ) 한 이후 재일조선인은 숫자가 급증 ▶ 재일 조선 인 의 역사는 한일강제합병으로부터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재일 조선인 역사와 현황 ▶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지배정책과 일본 정부의 대륙침략노선과 밀접한 관련 ▶ 갖은 멸시와 차별 속에 살아가던 재일조선인 광복 당시 재일 조선인 240 만명재일 조선인 역사와 현황 ▶ 광복 후 많은 재일 조선인이 귀국길 희망 ▶ 당시 조선 반도는 좌우익의 대립이 격화되는 등 극심한 혼란 계속 ▶ 1947 년 당시 외국인등록령에 따라 등록한 재일 조선 인 은 59 만 8507 명으로 이들은 재일 동포 사회를 형성하는 원점 광복 후 민단과 총련으로 분열재일 조선인 역사와 현황 광복 후 민단과 총련으로 분열 총 련 ▶ 1955 년 재일조선인총연합회로 조직을 개편 ▶ 외국인 등록시 총련계는 국적란에 조선으로 기입 ▶ 일본 전국의 각급 조선학교는 총련이 장악 ▶ 현재 조선학교 재학생의 국적별 분포는 북한 46%, 한국 51%, 일본과 중국 국적의 조선족 3 % ▶ 1946 년 재일본 대한민국 거류민단 으로 개칭 ▶ 국적란에 한 국 으로 기입 ▶ 민단이 운영하는 한국학교는 도쿄 , 오사카 등에 있는 4 개 정도 민 단재일 조선인 역사와 현황 광복 후 민단과 총련으로 분열 ▶ 1950 년대 말 총련계는 북한을 ‘지상낙원’이라며 , 교포들을 북한으로 귀국시키는 조국귀환사업을 전개 . ▶ 일본은 골치 아픈 존재인 재일 조선인들을 국외로 내보내는 효과가 있었던 만큼 니가타까지의 교통비와 식사비 등을 지원 . ▶ 민단과 총련은 과거 일시적으로 협조하는 분위기가 형성 . 이명박 정권과 함께 남북관계가 삐꺽거리자 다시 냉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재일 조선인 역사와 현황 두각을 나타내는 재일 코리안 ▶ 재일 코리안들은 일본 사회의 차별과 편견 때문에 취업하기가 힘들었지만 각 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재일 코리안도 상당수 ▶ 문학 , 음악 , 정치 , 경제 분야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연예 , 스포츠 분야에서 두드러짐재일 조선인 역사와 현황 두각을 나타내는 재일 코리안재일 조선인 역사와 현황 재일 교포 매년 1 만명 귀화재일 조선인 역사와 현황 재일 교포 매년 1 만명 귀화재일 조선인 역사와 현황 재일 교포 매년 1 만명 귀화 ▶ 광복 이후 재일교포는 일본 내 외국인 총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에서도 항상 부동의 1 위를 차지 ▶ 2007 년엔 59 만 3489 명으로 일본 내 외국인 수에서도 처음 2 위재일 조선인 역사와 현황 재일 교포 매년 1 만명 귀화 ▶ 재일교포가 감소하는 가장 큰 원인은 일본으로 귀화하는 수의 증가 ▶ 재일 교포의 일본 사회 동화현상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 ▶ ‘ 뉴 커머 ’도 많이 증가재일 조선인 역사와 현황 ‘ 코리안계 일본인 ’ 의 등장 ▶ 신격호 = 시게미쓰 다케오 ▶ 손정의 사장 , 한창우 회장 , 이충성 등재일 조선인 역사와 현황 공생 아닌 동화를 강요하는 일본 사회 ▶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일본사회에서 차별과 편견 속에 힘겨운 부주류의 삶 ▶ 일본의 법과 제도 , 그리고 일본 사회는 공생이 아닌 동화의 길을 강요일본 한국의 제도 ▶ 식민지 시기 조선인 일본인과 국적을 동일하게 유지 - 일본인과 동일한 참정권을 부여 ▶ 일본인과는 다른 법적 지위 ▶ 차별 구조는 계속 유지 일본의 제도 ( 식민지 시기 )일본 한국의 제도 ▶ 해방 이후 GHQ( 연합군 총사령부 ) 의 재일 조선인을 외면하는 정책 ▶ 재일조선인의 참정권을 ’ 정지 ’ ▶ 1947 년 5 월의 ‘외국인 등록령 ’ 일본의 제도 ( 해방 이후 )일본 한국의 제도 ▶ 대일강화조약이 발효 재일조선인은 일본 국적을 상실 외국인등록법 , 출입국관리령의 관리 하에 들어감 일본의 제도 ( 해방 이후 )일본 한국의 제도 ▶ 1991 년 특별 영주권이라는 특례법을 도입 ▶ 흔히 역사적 의미의 재일교포와 그 후손을 말할 때는 이처럼 몇 세대에 걸쳐 일본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거주해 오고 있는 특별영주권자를 말하는 것 일본의 제도 ( 해방 이후 )일본 한국의 제도 ▶ 이승만 정부 재일 조선인에 무관심 ▶ 박정희 정부 재일 한국인을 악용 한국의 제도 ( 해방 이후 )일본 한국의 제도 ▶ 김영삼 정부 재일 한국인을 재조명 인정 ▶ 노무현 정부 재외동포에 대한 제도적인 부분이 구체화 한국의 제도 ( 해방 이후 )일본 한국의 인식 ▶ 상당한 차별이 존재 재일 한국인에 대한 일본의 인식일본 한국의 인식 ▶ ‘민족’ , ‘ 반공’ , ‘ 개발주의’ ▶ 재일조선인에 대한 이미지를 왜곡 또는 재해석 재일 한국인에 대한 한국의 인식결 론 ▶ ‘이중국적’허용 ▶ 외교적 접근을 통한 지원 ▶ 인식의 전환 재일 한국인에 대한 개선책과 나아가야 할 방향{nameOfApplication=Show}
    인문/어학| 2011.09.13| 27페이지| 3,000원| 조회(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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