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책 형 성 론학 과 :학 번 :이 름 :등록금 정책1.정책목표학생과 학부모에게 끝없이 치솟는 등록금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한 것이 목표이며, 이에 교육과학기술부의 입장은 반값 대학생의 등록금 부담을 점차적으로 경감 시켜 나가는 것이 목표이며 이를 위해 정부는 대학 등록금 부담 완화 방안과 대학구조개혁 연계도 높여나가겠다고 밝혔다.2.정책 문제가 대두된 배경등록금 1000만원 시대에 대학생들은 고통받고 있다.사립대학교에서 1년동안 대학을 다니기 위해서는 3000만원정도 든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1년 대학등록금 1000만원에 자취방, 그 외 생활비를 합하면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는 얘기이다.현재 우리나라의 많은 대학생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등록금으로 인해 많은 고충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대학생들이 높은 대학등록금을 해결 하기위해 학자금 대출을 받기도 하지만 이마저도 생각 보다 높은 이자율에 의해 학생은 빚을 지고 있는 상태인데다가 신용 불량자까지 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이렇게 높은 대학 등록금을 해결 하기 위해 많은 대학생들은 학교를 쉬어가며 아르바이트, 막노동 등을 해가며 등록금을 해결하기 바쁘다. 심지어는 자살 까지 하는 학생까지 속출 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당연 학생들은 공부에 매진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이것은 대졸자들의 취업 실패로 까지 이어져 국가의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러한 문제가 대두되자 정부는 대책을 세우기 위해 노력중이다.2.1 대학의 높은 등록금현재 우리나라는 등록금이 OECD교육지표에 공개된 각 나라들의 대학 등록금의 수치를 비교 해놓은 것을 보면 우리나라의 등록금이 매우 높다는 걸 알 수 있다.2007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국공립대의 연평균 등록금은 4717달러로 5666달러인 미국에 이어 OECD 국가 가운데 두 번째로 비쌌다. 2006년 우리나라 국공립대 연평균 등록금은 3883달러로 미국·일본에 이어 세 번째였다.사립대도 마찬가지여서, 우리나라는 연평균 등록금이 8519달러로 미국(2만517달러)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우리나라 사립대의 2006년 연평균 등록금은 7406달러로 4위였다.하지만 우리나라가 1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OECD에서는 국?공립 대학 등록금 1500달러와 공공보조금 지원을 받는 학생 비율을 50%를 기준으로, 대부분의 OECD회원국의 국?공립 대학 등록금은 등록금이 없거나 1500달러 미만 수준이지만 우리나라는 국제 기준선의 3배 이상 되는 등록금을 내고 있다.그리고 우리나라가 급속도로 성장을 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의 GDP는 19위, 1인당GDP는 2010년 기준으로 34위이다. 그리고 아래의 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GDP대비 대학등록금 부담률은 25.81%로 미국 13.35% 영국13.33%보다 현저히 높은 수치다. 그리고 일본과 비교해도 소득 대비 2.5배나 많은 등록금을 내고 있다. 이러한 자료를 보았을 땐 우리나라의 등록금이 실질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내는 것으로 보인다.그리고 물과 상승률에 비해 높은 대학 등록금 상승도 높은 대학등록금에 한 몫 하였다.지난 5년간 대학교 및 대학원의 등록금(납입금) 상승률이 30% 안팎으로 전체 소비자 물가상승률의 두 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올해부터 등록금 상한제(직전 3개 연도 평균 물가 상승률의 1.5배 초과 금지)를 도입했지만 이미 오를 대로 오른 등록금 앞에서 효과가 미약하다. 23일 한국은행 및 통계청에 따르면 2005~2010년 교육비 상승률은 22.8%에 달한다. 분야별로 국공립대학교의 납입금은 30.2%, 사립 대학교는 25.3%가 올랐고, 전문대학은 28.8% 상승했다. 국공립대학원과 사립대학원의 납입금은 각각 31.6%, 23.9%가 뛰었다. 같은 기간 전체 물가상승률이 16.1%인 점을 고려하면 지난 5년간 대학교 및 대학원 납입금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의 거의 두 배에 이르는 셈이다. 납입금은 1학년 기준으로 산정되며 입학금과 수업료, 기성회비, 학생회비를 포함한다. 2005년에 입학한 신입생(국공립대학교)의 경우 등록금이 500만원이었다면 5년 뒤 2010년도 신입생은 150만원이 넘는 651만원의 등록금으로 내야 한다는 의미다. 대학교와 대학원의 납입금 상승률은 대부분 사교육비보다도 높았다.그리고 대학 등록금이 오른 이유는 예전 군사정권시기에는 정부가 대학 등록금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러나 6.29선거이후, 대학 자율화로 인해 1989년 사립대학 등록금이 자율화 되면서 높은 등록금의 문제가 대두 되고 있는 것 이다.현재 등록금이 동결되거나 오름폭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등록금이 많아서 부담이 큰 현실이다.3.주요정책수단 & 정책 형성기관3.1.대학 등록금 부담 완화 방안정책 형성기관 : 교육과학기술부교육과학기술부는 1조5천억원의 국가장학금과 7,500억원 이상의 대학 자구노력을 포함한2조 2천5백억원 이상의 ‘대학생 등록금 부담 완화 방안’을 발표하였다.우선 기존에 기초생활수급대상자나 그 가구에 속하는 학생에게 지급되던 국가장학금(연간 450만원)의 지급대상을 소득분위 3분위까지의 학생으로 확대하여 소득분위에 따라 차등적으로 장학금을 지원할 예정이다.그리고 1조5천억원 중 절반 수준인 7,500억원이 이러한 소득분위별 최저지원에 사용될 전망이다.나머지 7,500억원은 대학에 재학 중인 소득분위 7분위 이하 학생수를 기준으로 학교에 배분되며, 학교는 학생의 경제적 여건, 기존 장학금 수혜 현황, 급격한 생활여건 변화 등을 고려하여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지급하게 될 것이다.그리고 1조5천억원의 국가장학금 지원과 7,500억원 이상의 자구노력이 이행될 경우 소득 7분위 이하 학생 기준으로 평균 약 22% 이상의 등록금 부담 경감이 예상되며, 소득분위별로 볼 경우 기초생활보호대상자는 연평균 546만원, 1분위는 321만원, 2분위는 231만원, 3분위는 186만원, 4~7분위는 96만원, 8~10분위는 38만원 등록금 부담 경감 혜택을 보는 등소득분위가 낮은 계층에 보다 많은 혜택이 돌아 갈 전망이다< 소득분위별 인하효과 추정 >?(단위 : 만원) (3.2.대학 구조개혁 & 2012학년도 평가순위 하위대학 정부재정지원 제한 계획정책 형성기관 : 대학 구조 개혁 위원회 ,교육과학기술부교육과학기술부는 평가를 통해 하위 15% 내외의 선정된 대학으로 대학 구조개혁을 할 것이다.위 대학지표에 충족하지 못하는 하위 15%의 학교를 대상으로평가순위 하위대학선정, 대출제한대학선정, 경영부실대학 선정을 하여 그에 맞는 조치를 취한다.그리고 평가순위 하위대학은 제정지원 제한을 대출제한 대학은 제정지원 제한과 대출제한을 경영부실대학으로 선정된 대학은 정지원 제한, 대출제한과 컨설팅의 조치를 받게 될 것이며 퇴출 될 대학도 있을 것이다.
1. 서론제 3세계를 비롯한 각 민족국가들은 세계화 시대에 맞추어 세계화 정책을 추진했다. 세계화에서도 개별 민족국가의 이익 추구 수단으로 정책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한국은 세계화시대에서 민족주의는 여러 가지 모습을 이용되거나 억압되어 왔다.과거 한국전쟁 이후 민족주의는 하나의 조류나 세력으로서 존재하기가 어려웠다. 친일파가 정계에서 학계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위세를 떨쳤고, 국가보안법은 기본적으로 민족주의적 사고를 단죄하려는 측면이 강했다. 독일과 달리 한국은 적어도 1980년대까지는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 대다수였지만 4·19혁명을 제외하고는 통일운동은 물론 통일에 대한 논의조차 하기 어려웠다. 통일, 자주성을 강조한 인사, 청년, 학생들은 군부쿠데타가 나면서 대게 투옥되거나 감시를 받았다. 반민특위법 파동에서 잘 드러난 바와 같이, 반공주의는 민족주의에 대한 친일파의 대항이데올로기 성격을 지니고 있다. 왜 극단적인 반공주의가 그렇게 오랫동안 강요되었는가는 친일파의 존재를 빼놓고 이해하기가 어렵다. 다른 나라에서 국가주의는 파시즘처럼 민족주의의 한 형태지만, 한국에서 국가주의는 냉전이데올로기와 연계성이 강한 반면 민족주의와는 상충되거나 대립적인 면이 많다.그렇다면 민족, 민족의식, 민족주의, 분단체제, 반공주의, 국가주의 등의 이슈가 현재 시대에 와서는 어떠한 의미를 가질까? 현재 세계화 시대에서 민족주의를 좀 더 유의미하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까?2. 한국민족주의의 형성과 과정(1)한국민족주의의 형성한반도의 민족주의 사상의 형성은 조선후기 실학자들로부터 시작된다. 토지, 신분, 지방 통치제도의 개혁, 중화관념의 극복, 객관적인 우주관, 주체적 역사관, 해외 무역론, 문화적 가치관의 다원화 등을 주장하였던 것은 민족주의 사상의 원형이 되는 것이다. 즉 민족주의의 형성조짐은 조선 후기부터 시작된다. 홍대용의 지전설에 주목해보면 우주 속에 존재하고 있는 무수한 별들 중의 하나인 지구를 객관화함으로서 국가관계의 우열을 극복하려는 자주적기 한반도를 둘러싼 청나라, 일본, 러시아, 영국, 미국 등의 세력 균형 구도 속에서 민족의 방어책을 시도한 대원군의 업적은 외세의 침략에 대비한 방어책으로 발전하여 민족주의 운동의 시발이 되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척화비 건립으로 보여지듯 쇄국정책을 펼쳐 외세의 침략을 막으려 한 것이 민족주의의 시도로 보이고 이 후 이를 계승한 동학농민운동의 기본취지가 대외적으로는 '반외세'를 대내적으로는'보국안민'을 외쳤다는 데서 드러난다. 그리고 대한제국시기 일어난 애국계몽운동은 민족운동의 구체적인 실천양식이라는 점에서 다시금 민족주의사상에 불을 붙이게 된다.(2)한국민족주의의 과정1910년 경술국치 이후 계속되는 일제의 착취와 탄압은 민족주의 정신을 민중 속으로 확산 시켰다. 이러한 항일 민의 운동은 곧 3.1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이 후 여러 세력 간의 대립으로 하나의 세력으로 결집 되지 못하고 있었으나, 비타협적 민족주의 세력은 사회주의 진영과 연대, 신간회를 조직하여 항일운동을 구체화시켜 전개해 나갔다. 그들을 결집시켜 하나의 연대를 이루어 낸 열쇠는 바로 민족주의였다. 이 후 신채호는 민족주의 역사학을 명실상부한 근대 역사학으로 확립시켰으며, 민중주체의 투쟁사관을 제시하였다.해방 이후 국가와 사회에 대한 비전을 두고 의견이 갈렸는데 소련과 미국이 한반도를 점령하고서는 해방된 한국에서 사회적, 정치적 질서를 수립하기위해 서로 경쟁하게 되었고 내적, 외적 힘들의 상호작용이 민족분열, 사회적, 정치적 긴장 그리고는 전쟁을 초래 시켰다.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 3년 후 한국에는 두개의 독립국가인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그리고 남북한은 정권의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서 치열하게 경쟁했다. 그렇지만 살펴보면 한민족을 바라보는 관점, 정치에서 민족주의의 이용, 민족주의 의제를 위한 초민족주의 세력의 전유에서 보듯 해방의 여파 속에서 민족주의는 약화된 것이 아니라 강화되었다. 해방 이후 민족주의는 북한에서는 반제국주의(반미, 반일) 이데올로기로서, 남한에 중심으로 오직 일민주의만이 전통과 근대성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창조적으로 결합함으로서 단군의 홍익인간과 신라 화랑도의 원리를 계승시켜 다시금 민족주의를 제창하여 남한의 기틀을 마련해 나가고자 하였다. 그리고 두 국가 모두 동일성과 단일성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개인들과 사회집단들 사이의 차이와 다양성은 남북한 모두 무시되었다. 비록 그들은 그런 민족주의를 제국주의를 극복하고 주권을 되찾는 방법으로 이용했지만 이승만 정권은 똑같은 논리를 반공 권위주의를 합법화 하는데 이용했다.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는 개발을 정권의 주된 목표들 중 하나로 삼았고, 경제적 업적을 연결시켰다. 즉 근대화를 통일되고 자급자족적인 한국을 성취하기위한 주된 수단으로 자신의 정당성을 민족주의를 통해 이해시킨 것이다. 민족에 대한 충성과 국가에 대한 사랑과 충성을 요구한 박정희는 김일성처럼 유신체제의 수립과 더불어 박정희나 그의 정권에 대한 어떤 비판의 기미도 무자비하게 처벌을 주었다.2000년 김대중은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을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가지며 두개의 한국은 마침내 상대의 존재와 정치적 지도력의 정당성을 인정하게 되었다. 한국은 종족공동체에 강한 일체감을 지녔지만 각 정권은 존재이유(남한의 반공과 북한의 반식민주의/제국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민족과 민족정체성에 대한 특정한 개념을 전유했으며, 상대의 견해를 반박하고 전체 한국의 공동체의 대표권을 독점할 권리를 주장하였다.지금 현재까지도 상대방을 민족반역자들이나 괴뢰정부라고 비난하며 공동의 단일종족의식과 엇갈리게 경쟁하는 원칙을 두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3. 민족주의의 한계와 이에 대한 반론우리나라의 민족주의에서만 보이는 특별한 문제점으로는 소수의견과 비판을 무시하는 집단적 성격이 강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한민족에 대해 조금이나마 비판적이거나 부정적인 말을 하거나 주장을 하면 마구잡이로 친일파로 몰리고 매장 당한다. 이것은 단순히 민족주의자들의 행패가 아닌 한국인들의 보편적인 역사인식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고 고 한국계 외국인들이 동남아시아 이주노동자들보다 귀화하는 방법도 훨씬 더 쉽다. 현재 세계의 흐름인 세계화와 글로벌화를 역행하는 순수혈통민족주의와 저항민족주의가 아직도 살아나고 있다. 즉 한국이 가지고 있는 내셔널리즘은 애초에 순수한 내셔널리즘과는 일맥상통한 개념이 아니라는 걸 깨닫기 바란다.광적 애국주의도 있는데 일본에 대한 광적 폭력성으로 인해 일본에 대한 테러나 음담패설 등은 애국이라는 허울 좋은 명목아래 정당성이 부여된다. 비인간적인 행위를 할지라도 반일이면 칭송받는다. 올림픽에서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플랜카드를 내걸고 전 세계의 올림픽을 정치화한 것에 대한 징계 또한 이성적으로 바라보지 못한다.또한 한국 민족주의에서는 일본에 대한 역사라면 무조건 중상모략과 비하날조가 정당화 된다. 한국에 대한 문제점들은 모조리 일제 탓을 한다. 이런 역사인식으로는 자국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없다. 한국과 일본을 선악이분법으로 나누어 비생산적인 역사토론을 하며 일본에 대한 루머는 어떻게든 정당화하려 하고 기정사실화하려 한다. 만약 일본과 스포츠 경기를 해도 일본에게 지면 죽어라고 내몰거나 다른 팀에겐 다 져도 일본에게는 이겨야 한다고 생각한다.이 주장들은 민족주의 자체의 문제점이나 폐단이 아니라 민족주의가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극단적으로 갔을 때의 문제점이다. 순수한 민족주의의 정의는 결코 이런 것이 아니다. 순수한 민족주의란 안으로는 민족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밖으로는 다른 나라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유와 독립을 추구하는 것이다. 민족주의란 원래 매우 비합리주의적이고 다의적인 개념이긴 하나 대체로 우리가 추구해야 되는 민족주의란 저런 것이다. 위에서 언급된 민족주의대로 가서는 결코 안된다. 우리나라가 물론 일본에 대해서 악감정이 남아있고 일본에 관해서 말하는 것을 사람들이 상당히 조심스러워 하긴 하지만 그것은 민족주의의 문제점이 아닌 일부 극단적으로 자국을 생각하는 세력들이 이런 발언을 한 사람들을 몰아가기 때문에 생긴 문제이지 우리나라 민족주의의 문제는 아니다. 모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개인주의와 개인의 경제사정 때문에 통일의 필요성을 못 느끼고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통일에 대한 관심 또한 낮아지고 있다.우리가 흔히 사람들에게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같은 민족 이니까”라는 답변을 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우리가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민족의 정체성을 회복하여야 한다는 것이다.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의 탄압으로부터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려고 노력을 해왔다. 일제의 탄압에 대항하기위해 많은 단체와 운동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하지만 독립을 우리민족의 힘으로 하지 못하였고 상해임시정부의 활동, 특히 광복군의 활동에 있어서 국민당정부의 지원은물론 영·미군과의 협동 작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패전할 때까지 상해 임시정부가 대일교전단체로서 국제적 승인을 받을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는 것이 광복 후 국내에서의 정치적 혼란의 원천이 되었다. 그리고 1998년 8월에 여운형의 주도하에 결성되어있던 조선건국동맹은 광복 후에 ‘조선 인민 공화국’의 기초가 되었다. 하지만 미군정에서는 조선 인민 공화국 또한 부정하였다. 이로써 미군정하에서는 일체의 한국인의 정권형태가 허용되지 않음으로써 한국인의 정치활동은 정당 활동에 한정되게 되었다.이러한 사정은 기본적으로 민족독립운동이 광복이전에 통합, 단일화되지 못함으로써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한 탓이었으며, 광복 후에 미·소군의 진주로 과거의 민족독립운동세력들이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개의 구심력으로 인해 더욱더 선명하게 이데올로기적으로 분열되는 단계에 접어들게 되었다. 이러한 미·소의 영향력은 날이 갈수록 미국식 민족주의와 소비에트 공산주의의 두 개의 선택을 한국정치세계에 요구하게 되었고 결국 분단국가라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분단국가로서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지 못하게 되었고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잃어버려 주체성을 가지지 못하고 미국과 같은 다른 나라에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세야한다.
3여[여수시, 여천시, 여천군] 통합에 대하여Ⅰ. 서론세계가 점점 국경이 없는 상태가 되면서 새로운 통치 시스템이 필요하게 되었다. 로컬 거버넌스는 기존의 정부 중심의 통치 방식에서 탈피하여 기업, 지역 주민, 시민단체, 그리고 정부가 함께 지역 발전의 주체로서 교류하고 협력해 나가고 있으며, 특히 시민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각 시에서 각 지역의 특색에 맞게 정책을 추진해 나감으로써 성공적인 로컬 거버넌스가 이루어진 사례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서 지역주민의 노력에 의해 하나로 통합된 여수시의 사례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여수시의 통합은 지역주민의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진 대표적인 로컬거버넌스 사례이다. 이는 존이 정의한 로컬 거버넌스의 개념과 유사하다. 존은 로컬 거버넌스는 조직화된 관료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지역 차원의 다양한 조직에 속해있는 중요한 개체들 간의 장기적인 관계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정의 하였다. 여수시 통합 사례를 보면 정부의 일방적인 통합시도는 실패로 끝난 뒤, 다양한 주체들이 자발적으로 노력한 결과 통합이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이는 존이 설명한 거버넌스의 개념과 유사하다.Ⅱ. 본론1. 여수시로 통합하게 된 배경여수시, 여천군, 여천시가 통합이 된 배경은 지형적으로 여수시는 여천군과 여천시로 둘러싸여 있는 핵이어서 더 이상 개발을 할 데가 없고, 여천시와 여천군 역시 여수시의 개발 능력이 포함되어야 지역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상황으로 인해 통합이 필요했다.또, 행정구역과 상관없이 많은 부분에서 여수시를 중심으로 생활할 수밖에 없는 관계였다. 시장을 보러 가기 위해서는 ‘여수’로 가야했고, 같은 시내버스와 터미널을 이용해서 생활하며 고등학교는 지역을 초월하여 진학을 하였다. 이처럼 같은 생활권이었고, 역사적으로 한 뿌리인 동질성, 동일한 문화를 지닌 그런 지역이었기에 통 합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무려 3차례나 통합을 시도하였지만 어떤 세력이 어떤 의도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 주도의 통합이 민선자치단체장 선거가 이뤄지면서 분할은 고착되었다. 이런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정부가 나서서 전국적으로 행정구역 통합을 추진하게 되어 포기 상태에 있던 시민들을 자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몇차례의 통합 시도에도 불구하고 각 지역의 요구가 달라서 부결되게 되었다.(2) 통합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분위기 형성하지만 1995년 6월 19일 실시한 시?군민 의식실태 조사를 통해 72.4%가 통합이 가능하다고 하였고, 52.4%가 언젠가는 통합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음이 드러났다. 그 이후 각종 조사를 통해 시민들이 희망을 잃지 않도록 꾸준히 노력을 하였다.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인근 순천시와 광양시가 통합을 이뤄서 여수시는 전남 제3의 도시가 되었고, 이름만 여천군 율촌산업단지이면서 실질적인 조성 효과는 순천시와 광양시에서 거두게 된다는 불안감을 갖게 되었다. 금융과 상업의 중심지이면서도 지리적 조건 때문에 한국은행 지방 사무소와 감정원 이전과 항만청, 노동부사무소 등 행정기관 이전이 들먹이면서 더욱 규모의 경제에 대한 설득력이 먹혀들기 시작하였다(3)정치권의 노력도 있었다.1997년 6월 지구당의 당료들 대다수는 통합에 소극적이지만 시민단체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대화를 해온 국회의원이 지역민의 요구를 받아들여 시민단체 입회하에 지구당 차원에서 직접 전화 여론 조사를 하였다. 그 결과 여천시에서는 66.4%, 여천군에서는 69.2 %가 찬성하여 주민의견조사를 통한 3여 통합을 결정하기로 하였다. 3여 시장?군수의 주민 의견조사 합의를 이끌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4) 치밀하고 계획적인 통합 노력이 있었고, 여수시의 대폭 양보가 있었다.통합 운동에 있어서는 공무원은 중립, 시의회는 의원 개별 차원에서 참여하고, 시장 군수는 주민 의견 조사를 합의하고, 공청회 등 주민 의견 조사를 준비하는 일만 하였다. 전적으로 민간에게 모든 것을 맡겨 통합 추진비용 역시 개인이나 기업, 단체의 성금을 모아서 추진하였고 언론 기관의 적극적 협조도 있었다. 또한 여수시 통합의 분위기를 띄워내었다.(6) 시민의 힘으로 통합이 끝났다.94년과 95년은 세대 당 기표였고, 97년은 유권자 전체를 대상으로 한 기표여서 시민들의 정확한 의견이 반영되었고, 94년은 우편 투표였으나 95년과 97년은 조사구에 기표소를 설치하여 공정하게 관리를 하였다. 그 결과 여수시는 45.3%가 참여하여 86.3%가 찬성, 여천시는 29.3%가 참여하여 81.6%가 찬성, 여천군은 45.9%가 참여하여 68.0%가 찬성을 하였다. 전체적으로 45.3% 참여에 86.3% 찬성으로 통합이 결정되었다.이것은 주민 투표법이 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민들의 투표로 결정되었다는 점에서 우리 나라 자치 행정 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 되었다. 정부 주도의 의견 조사에서는 부결되었던 것이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실시한 결과 가결되어 하의상달이라는 밀착형 주민 자치의 모델이 되었다.3. 여수 통합의 효과 분석(1) 전남 제1의 도시가 되었다.국고보조금과 시, 도, 비 보조금이 크게 늘었고, 재정규모는 전남시군 총 규모의 11%로서 22개시군중 1위이다. 2008년 기준 세출에 있어서 전국 시, 군, 구 중 8번째 규모이다(2) 예산 절감을 가져왔다.(가) 경상 경비 절감 구분연도계일반직별정정무기능직지도직고용직소계3급4급5급6급7급8급9급1997년2,0441,*************28388*************008년1,6621,**************************0행정구역 : 1읍 6면 20동 192리 399통으로서 통합과정에서 여수시의 27개 동을 14개 동으로 축소하였다. 공무원 300명을 감축한 것과 정무직인 자치단체장을 3명에서 1명으로 축소한 비용을 합치면 예산 절감이 상당하다.(나) 각종 축제 등 중복성 행사 대폭 축소지역축제인 여수시의 ‘진남제’와 여천시의 ‘거북선대축제’가 통합되었고, 3개의 시?군민의날이 1개로 줄어들었다.(3)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아서 주요 현안 사업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가) 중앙부처 국고 지원 현안 사업비로 1999년야 연륙교 건설, 여수~남해 간 한려대교 건설, 여수~순천간 자동차전용도로 건설, 여수~순천 간 전라선 철도 개량, 제 2 돌산대교건설, 바다목장 조성, 해상 관광 항로 개설 등이다.(4) 농어촌 지역 지원과 혜택이 늘어났다.(가) 택시 사업구역 통합과 미터제 적용으로 요금 부담이 줄어들었고, 택시 이용이 용이하게 되었다.(나) 농어촌 지역인 여천군의 돌산읍과 율촌면에 대단위 주택단지가 조성되고 있다.(다) 돌산읍 지역에 상수도 시설을 하여 급수를 받게 되었고, 남면 금오도에도 수원지를 만들어 상수도 급수가 가능하도록 공사를 하고 있다.(라) 3여 통합 기념 사업비 60억원은 전액 여천군을 위해 써졌다. 도비 20억 원은 여천군 출신 학생들에게 지급하는 ‘여천장학회’에 쓰였고, 나머지 국비 40억 원은 크고 작은 마을 숙원 사업에 써졌다.(5) 예상과 달리 통합에 따른 불이익은 없다.(가) 농어촌 지역 주민에게는 학교급식비와 수업료 면제, 각종 세금 면제, 농어촌 특례 입학, 농어촌개발사업 혜택 등 농어촌 관련 특별 조치는 변함이 없다.(나) 공무원 수는 자연 감소를 통한 감축을 하였고, 그것도 주로 고용직과 기능직을 축소하였다. 통합에공무원의 반발이 있었으나 도농 통합을 실패한 도내 목포시와 공무원 수를 2008년 기준 비교하였을 때 결코 적은 수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6) 옛 여천시 지역 인구는 오히려 늘었다.전체적으로 여수시 인구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 2008년 12월말 현재 통합하기 전 1996년에 비해 무려 10.8%가 줄어들었다. 그런데 통합 반대가 심하였던 여천시는 오히려 14.9% 인구가 증가하였다. 그것은 통합 시청 이전과 함께 도심이 점차 북쪽으로 이동하고, 대규모 공동주택단지가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연도지역1996년2008년 12월말증감변동율옛 여수시지역187,239151,298△35.941△19.2%옛 여천시지역80,49694,53914.04317.4%옛 여천군지역63,21949,296△13,923△22.0%합계330,954로와 오천~소치간 도로, 국도 17호선 대체 우회 도로, 산단진입도로 등으로 3여 지역을 관통하는 도로 개설로 교통 체증을 해소하게 되었다.(나) 택시 영업 구역 통합으로 모든 지역이 미터제가 적용되어 요금 절감을 가져왔다.(다) 교통 기본 계획을 세워서 일관성 있는 교통 신호체계와 교통 안전 시설로 교통 정책 집행이 수월해졌다.(3) 시민의식 향상을 가져왔다.(가) 위대한 시민으로서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주민투표법이 제정되지 않았고, 단순한 행정절차인 주민의견조사를 통해 행정구역통합을 이룬 것은 지방자치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전국 최초로 주민 발의에 의해 3여 통합을 이뤘다는 시민들의 자부심은 지역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나) 시민사회를 향한 시민사회단체 활동이 활발하게 되었다. 통합 과정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의 활발한 활동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는 결국 그 이후 시내버스 공동배차제 실현, 총선연대 활동, 의회 개혁 활동, 여수산단 환경안전문제 등에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주었다. 다른 지역과 달리 시민사회단체끼리 경쟁적인 사업을 지양하고, 공동 사업은 시민연대 활동으로 전문적인 사업은 개별 단체가 추진하는 연대의 틀을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Ⅲ. 결론1. 통합 이후 과제(1) 주민 화합을 위한 구체적인 조치가 필요하다.통합 결정 이후 시민단체에서는 공무원 조직의 대대적인 개편뿐만 아니라 주민 화합을 위한 구체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시민 여론조사에서 48.8%의 시민들이 ‘지역 간의 갈등이 있으므로 주민 화합을 위한 활동을 해야 한다’라고 응답한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주민 화합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주민 화합을 위한 방법으로 초.중학구 조정, 중학교 학구 단일화, 읍면동 경계 조정과 통폐합, 각종 선거구 대폭 손질, 단체 임원 구성 시 안배, 통합 행사 지역 인사 다수 참여, 공동체 의식 함양을 위한 상징 제작 등이 있다. 옛 지명과 관계되는 지역, 학교, 기관에 표지석을 세워 상실감을 위로 하는 등 지역 감정 유발과 소지역주의요하다.
관피아(관료+마피아) 의 생성 배경과 개혁 방안에 관하여 각자의 견해를 쓰시오.서론관피아란 관료의 개념에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을 근거로 강력한 연대로 이루어진 범죄조직인 마피아의 개념이 더해진 개념으로 학연, 지연, 관연 등으로 얽힌 비리의 난맥을 표현하는 말이다. 관료 출신 공무원이 퇴직 후 공공기관이나 협회 등에 재취업하여 요직을 독점하는 것이나, 공조직의 낙하산과 부패, 관민유착을 비하하여 이르는 말이다. 관피아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개념이지만 최근 해수부 문제와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서 본격적으로 이슈가 되었다. 관피아 외에도 모피아, 해피아, 국피아, 신피아, 법피아, 교피아, 여피아 등등 많은 개념이 마피아의 개념과 결합되어 부패를 일컫는 말로 불리우고 있다. 이렇게 관료와 마피아, 서로 상반된 절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단어의 조합이 한국 사회에 자리잡게 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우리나라의 관료사회의 현실을 보여주는 단어이며 우리 관료사회에 부패가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볼 수 있는 단어이다. 이러한 관피아란 개념이 나온지는 꽤 오래 된 일이다. 하지만 최근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서 우리나라의 관료사회에 얼마나 부패가 만연해 있고, 비리가 많은지를 절실히 느끼게 되었고, 관피아란 개념이 본격적으로 떠오르게 되면서 이러한 관피아가 왜 생겨나는가, 관피아의 척격을 위해선 어떠한 노력을 해야 되는지를 조사해야 될 필요가 생겼다.본론(관피아의 생성배경)결국 관피아가 생겨나게 된 이유는 원인은 한국 관료의 부패에 있다.권력형 부패와 관련하여 현행 제도상 허점을 들 수 있다. 연고에 따른 인사관행이 지속되고 주요 정부기관장에 대한 인사검증 장치가 미비하여 인사관련 부조리가 계속 발생하고 있으며 금융?조세?벤처?공적자금 운용?관리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한 정?경유착 비리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또한 검찰, 국정원, 국세청 등 정치부패관련 사정기관의 상호견제?균형(checks & balances)장치가 미비하여 불법적, 음성적 정치 및 선거자금의 유·지위상의 이득, 또는 영향력 등과 같은 사적 이익을 위해 법적·공적 의무, 규범 등으로부터 일탈을 하기 때문이다. 사적 이익 추구를 위하여 공직 의무를 위반하는 행위로 인하여 부패가 발생하고 있다.공익중심의 관점에서 보면 부패는 사익보다 공익을 우선시하는 민주질서 체제에 대한 책무를 위반하는 것으로, 결국 특수이익을 위해 공익을 손상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시장중심의 관점에서 보면 관료가 공직을 매게로 공적 이익을 분배함에 있어 사적이익을 극대화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기 때문이다.구체적으로 이러한 관피아가 생긴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정부기관의 인사적체가 심해지고, 산하 기관에 자리를 만들어 거기다가 퇴직관료를 앉히고, 산하기관은 퇴직 관료를 받아서 활용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이러한 정부와 업계의 유착관계에 따란 비리의 사슬이 계속되면서 관피아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정 문화가 강해서 인맥에 의한 인사관리, 퇴작한 고위공무원에 대한 예우 등을 중요시 하였고 당의 충성도로 자리를 주는 엽관주의가 발달하여서 이러한 관피아가 생기는 것이 불가피 하였다.공무원 내부환경도 개방형이 아닌 폐쇄형 조직구조이고, 인맥 구조도 폐쇄적이어서 이러한 현상이 가속화된다. 우리나라는 직업공무원제는 아니지만 직업공무원제의 성격을 띄고 있어서 공무원 조직에 한번 들어가면 안정성을 보장받고 큰 잘못이 아니면 평생직장이 보장되기 때문에 긴장감이 없어지고 점점 더 나태해 지면서 부패가 생겨나게 된다. 또한 공직에 있는 관료들의 월급이 크게 많지 않다는 점 또한 관피아를 생성하게 만드는 주된 원인이 된다. 요즈음엔 공무원의 급여가 많이 올라갔다고는 하지만 일반 사기업이나 다른 직종에 비해서 안정성은 높지만 급여는 박봉에 속하므로 이러한 적은 급여가 주어지기 때문에 고위 공직자들은 자신의 권력과 직위를 이용하여 많은 돈을 끌어들이려고 한다. 경찰들이 뒷돈을 찔러주면 단속에서 빼준다거나, 검열을 꼼꼼하지 않게 하는 등의 행위도 많이 일어나고, 그것이 위로 올라갈수록 더욱 심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이는 낙하산 인사를 근절해보고자 하는 시도였지만, 그 이후에도 여전히 낙하산 인사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낙하산 인사는 전문성을 고려하지 않고 관료를 뽑기 때문에 비상 상황이 발생하였을 때 빠른 대처가 힘들 수 있다. 대표적으로 이번 세월호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정작 해경의 고위관료들은 물에서 잠수 한 번 안해본 사람들로써 어떻게 대처해야 될지를 잘 모르고 시간을 낭비해서 더 많은 희상자를 발생시켰는데, 대표적 낙하산 인사로 인한 문제점으로 볼 수 있다.또한 정부와 업계의 유착관계에 따른 비리의 사슬도 관피아 생성의 큰 원인이다.개방형 직위제가 시작된 이래 민관유착이 심해졌다. 사기업체에서 공직으로, 공직에서 사기업체로 옮겨다니는 소위 ‘회전문 인사’인데 ‘회전문 인사’는 미국 등에 특히 많이 퍼져 있는 관행으로, 민관유착이 형성될 수 있는 대표적인 경로로 평가된다. 사기업체에서 공직으로 옮겨온 사람은 기업체에서 몸에 익힌 시장논리를 공직에서의 정책결정 과정에서 적용할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자신이 다시 돌아갈 업계를 염두에 두고 정책을 추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업체와 얽히는 인간적 관계망도 훨씬 강하게 형성될 수 있다. 이러한 민관유착이 이번 세월호 사건의 가장 결정적인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정부와 업계간의 비리로 정기점검을 하였는지 확인을 하지 않았고, 불법적인 중측도 눈감아 주었으며 이러한 잘못된 점이 많은데도 그 기업은 몇 년간 우수 기업으로 뽑히기까지 했다. 해경이 이러한 것을 다 눈감아 주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은 과감하게 민관유착을 뿌리뽑기 위해 해경을 아예 없어버렸다. 해경 뿐만 아니라 여러 기업과 정부간에 민관유착이 오래전부터 자리잡고 있었지만 이번에 대표적으로 해경을 해체함으로써 본보기를 보여준 셈이다. 박 대통령은 인명 구주에 실패한 해경을 해체했고, 재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안전행정부를 사실상 해체하는 수준으로 축소하는 등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못한 부처들을 없애거나 줄엿다. 그 개편 등을 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해경의 구조업무가 사실상 실패한 원인이 해경이 출범한 이래 구조적 문제가 지속돼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수사 정보 기능은 경찰청으로 넘기고, 해양, 구조,구난과 해양경비 분야는 신설하는 국가안전처로 넘겨 해양 안전의 전문성과 책임을 대폭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러한 처사에도 많은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소읽고 외양간 고치기식 처리라는 비판과, 정작 박근혜 대통령 본인은 책임을 져야 할 입장에서 회피하고 책임을 처벌해야 될 심판자의 입장이 되었다는 입장과 해경을 없앤 행위가 실질이 없는 보여주기식 처리라는 비판이다. 사실상 해경을 해체해도 거기에 있는 관료들은 새로 신설되는 자리에 그대로 갈 확률이 높기 때문에 이런 비판이 일고 있는데, 확실하게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책임을 지는 것이 필요하다.이러한 민관유착과 낙하산 인사로 인해서 고위 관료들이 전문성이 부족하게 되었다.전문성의 부족은 평소에는 잘 알지 못하지만 이렇게 위기 대처상황이 올 때 드러나게 된다. 평소에는 리더십을 발휘할 일이 드물기 때문에 모르고 있다가 이러한 위기상황이 발생하면 리더의 리더십과 전문성이 발휘되는데, 이 때 낙하산 인사에 의해서 자리에 앉은 고위관료는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많이 떨어지게 되고 전문성이 부족해서 일을 망치게 된다. 이번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서 전문성 부족이 얼마나 위험한 판단을 초래하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이러한 우리나라 관료들의 가장 큰 문제는 국민상식과 맞지 않게 자기들끼리 당겨주고 밀어주고 하는 식의 조직문화이다. 출신 지역이나 학교 등 인맥으로 뭉치는 관료 조직문화는 비리와 부정부패로 연결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관피아 개혁의 출발선으로 삼아야 한다.본론2(관피아의 개혁 방안)이러한 관피아를 개혁하기 위해선 다양한 방법들이 존재한다.우선 현재 우리나라는 5급 공채의 30% 가까이 민간경력자로 뽑고 있고, 3급 이상 고위 공무원 중 일부를 개방형 직위제로 운영하고 있다. 프로젝트별로 민간전문가를인재’ 충원 대폭 확대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또한 창의성에 기반한 21세기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우리 공직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개혁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민간전문가들이 공직에 보다 많이 진입할 수 있도록 채용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겠다고 박근혜 대통령은 밝혔고, 이를 위해 5급 공채(행정고시)와 민간경력자 채용을 같은 수준으로 맞추고, 장기적으로 행시를 폐지하는 한편, 개방형 충원제도를 더욱 강화하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러한 행시제도에서 강력한 반발이 나오고 있다. 차츰차츰 이러한 방법으로 뽑는게 아니라 갑자기 반정도를 이러한 방식으로 뽑다보니 현재 고시원에서 행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리가 반으로 줄어들게되어 앞이 막막해 졌다.그리고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민간 충원을 하는 방법이 있다.민간 충원을 함으로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공직자에게 요구되는 ‘전문성’은 전체 사회의 공공성을 대변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능력, 그리고 투철한 공직윤리라고 할 수 있는데 민간의 전문성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이 또한 문제점이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와 유사한 공무원계급제와 고위공무원단제를 혼용하고 있는 영국의 고위 공무원 직무 특성 기준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 기준은 리더십과 전략적 사고력, 행정 결과의 전달, 소속직원 관리, 의사전달, 재정 등 자원관리, 개인적 효과성, 지적능력, 전문성 등 9가지다. 고위 공무원은 이 기준에 따라 근무 평정과 급여가 결정된다. 민간, 시장 등을 활용해 공직사회를 개혁하겠다는 것은 사실 김영삼 정부에서 시작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정부개혁, 정부 영역에 경쟁력이나 효율성 같은 시장원리를 도입하는 과정에 있다. 이를 민간의 이점만을 공직에 잘 적용시켜야 될 필요가 있다.공무원 임용방식, 보직관리, 평가, 보상 등 인사 시스템 전반에 대해서 확실한 개혁방안이 필요하다. 앞서 말했듯이 현재 시행하고 있는 임용방식도 약간의 변화를 주고 있지만, 확실한 평가가 필요하며, 평가기 된다.
1.스키란 무엇인가?길고 평평한 것을 신발 밑에 부착하여 눈 위에서 미끄러지며 지쳐나갈 수 있도록 만든 도구를 말하며 이를 이용한 스포츠의 명칭이기도 하다. 스키의 명칭은 스칸디나비아어로 '얇은 판자'를 '스키'라 부른 데에서 유래했다.2.눈의 설질과 스키의 관계스키는 눈의 질에 따라서 스키를 타는 재미가 달라진다.스키를 타는데 가장 쾌적한 눈은 건조한 가루눈이다. 가루눈은 눈송이가 작은 것으로 대기의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일 때 내리고, 영하 20도 이하에서는 더욱 건조한 가루눈이 내린다. 이러한 눈 위에서 스키를 타게되면, 회전을 해도 저항이 느껴지지 않고 잘 미끄러진다. 또 눈이 옷에 달라붙어도 잘 떨어진다. 가루눈은 인공눈에서 주로 많이 보이는데 제설기에서 분사하면 공기중에서 순식간에 얼기 때문에 결정이 생길 시간이 주어지지 않아서 가루눈이 생긴다.이와는 달리 영하 5도 이상의 겨울날씨에 내리는 물기가 많은 눈은 회전도 잘 안되고, 다치기도 쉬워 스키를 즐기기에 좋은 눈은 아니다. 이러한 자연설에서는 스키조작이 어려워지고 자주 넘어지게 되어 체력소모도 더 많고, 눈이 스키 플레이트에 달라붙어 슬로프에서 원만하게 내려오는데 방해가 된다. 실제로 스키장의 부상사고 통계를 보면 눈이 내린 날 사고가 더 많다.제설기를 이용해 눈을 만들 경우 바람의 방향을 고려해야 하고, 온도는 3~4도 이하, 습도는 60~70%를 유지해야만 제대로 된 눈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인공눈은 기온, 습도, 바람, 적설 등의 기상요소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스키장은 정확한 날씨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눈의 결정이 스키에 영향을 많이 미치기 때문이다.3.스키의 기초기술가장 기초적인 동작은 넘어지기와 일어서기이다. 몸의 균형을 잃었을 때에는 무리한 동작으로 버티지 말고 넘어지려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중심을 이동시키는 것이 부상을 줄이는 방법이다. 되도록 앞으로는 넘어지지 않도록 하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폴을 앞에 짚지 말아야 하며, 엉덩이부터 땅에 닿게 함으로써 충격을 줄여야 한다 등행법이다. 개각등행은 스키의 앞부분은 크게 벌리고 뒷부분은 모아 V자 모양을 하고 한 발씩 번갈아 옮겨가며 올라가는 방법으로서 비교적 체력이 많이 소모되는 기술이므로 짧은 거리를 이동할 때나 급사면을 오를 때 사용한다.계단등행은 최대 경사면을 오를 때의 등행기술로, 경사면에 직각으로 서서 계단을 옆으로 오르듯이 한 발씩 옮기는 것을 말한다. 이때 에지를 설면에 잘 물리도록하여야 한다. 사등행은 옆으로 서서 계단을 올라가듯이 등행하는 것을 말하는데, 경사가 가파른 설면을 가장 적은 힘을 들여서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이다. 다이애그널 사등행은 동작이 사등행과 같으나 폴라인과 대각선 방향으로 등행한다는 점이 다르며, 사등행보다 체력소모가 적어 등행시 많이 쓰이는 기술이다.직활강은 활강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스키를 가지런하게 하여 발바닥 전체로 디디고, 발목과 무릎을 가볍게 굽힌 자세로 경사면을 미끄러져 내려간다. 이때 발끝과 무릎, 얼굴의 선이 일직선이 되어 경사면과 직각을 이루는것이 이상적이다. 사활강은 직활강의 요령으로 경사면에 비스듬히, 스키를 가지런하게 하여 체중을 아래쪽 발(골자기쪽)에 싣는다.사활강은 회전에 직결되는 기술이므로 충분한 연습을 쌓아야 한다. 초보자는 몸이 경직되는 버릇이 있으므로, 균형감각을 잘 익혀 자연스럽게 연습하여야 한다. 속도가 빨라지거나 급경사에서는 플루크 동작으로 속도를 가감할 수 있다. 이밖에도 슈템슈붕·패럴렐턴·베델른 등이 있는데, 특히 좌우로 작게 스키를 흔들며 활주하는 베델른은 스키어들이 동경하는 기술로서 민첩성과 균형이 필요하다.스키 기술1.스키 착용법평평한 곳에 스키를 가지런히 놓는다. 스키를 놓을 때는 양 스키의 간격을 조금 넓혀서 발을 디딜 곳을 만드는 것이 좋다. 양 스키 사이에 발을 놓고 스키를 신을 준비를 한다. 이대 오른발잡이라면 보통 왼발을 양 스키 사이에 놓고 오른쪽 스키를 먼저 신는 것이 좋다. 경사면에서는 체중을 싣기 힘든 위쪽 스키보다 아래쪽 스키를 먼저 신는 것이 좋다. 경사면에서는위한 자세를 만든다. 앞으로 진행하기 위해서 중심을 앞으로 이동시키며, 일상생활에서 걸을 때 팔을 흔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폴을 내밀어 찍어주며 동시에 반대쪽 스키를 앞으로 내밀면서 걷는다. 이때 스키는 평행을 유지해야 하며 스키를 들어 올리며 걸으면 체력소모도 많고 균형을 잡기가 어려우므로 스키를 설면에서 떼지 않고 걷는다.3.스케이팅법스키를 V자로 넓히고 뒷발을 무릎과 발목을 안쪽으로 꺾어주어서 스키의 안쪽 엣지를 설면에 단단하게 대고 선 상태에서 설면을 발로 차며 추진력을 만들면서 다른 발을 길게 내밀며 앞으로 나아간다. 이 때 설면을 차는 타이밍에 맞춰서 양 폴을 설면에 찍어서 밀어주면 보다 강한 추진력을 낼 수 있다. 앞발이 어느 정도 활주를 하면 체중을 앞발로 완전히 이동시키며 뒷발을 설면에서 들어서 앞발근처에 가깝게 붙여준다. 이때 양 폴을 설면에 찍어주며 다음 스케이팅 동작에 대비한다.4.방향전환법1).부채꼴 방향전환 : 평지에 양 폴을 집고 편안하게 선 상태에서 시선과 상체를 방향 전환할 곳으로 돌려주며 한쪽 스키의 앞을 부채 쪽 모양으로 넓혀준다. 이때 폴도 함께 회전하는 방향으로 찍어주어야 폴이 스키에 걸리지 않고 보다 편하게 방향전환을 할 수 있다. 한쪽스키를 부채꼴 모양으로 넓혔으면 다른 쪽 스키의 앞을 붙여주면서 상체를 돌려준다. 스키가 다시 평행하게 모아졌으면 폴을 옮겨 찍어서 방향전환을 마무리한다.2).킥턴 : 편안한 상태에서 양 폴을 찍어서 균형을 잘 잡고 선다. 킥하려는 스키를 조금 뒤로 빼서 반동을 주어 차올릴 준비를 한다. 스키는 가능하면 몸에서 멀리 차올려서 다른 스키의 앞부분 근처에 찍어 놓아야 방향전환을 하기가 편해진다.차올린 쪽 손을 움직여서 폴을 다른 쪽 스키의 너머에 찍어준다. 이때 균형을 잃지 않도록 주의한다. 차올린 스키의 테일을 중심으로 스키를 반 바퀴 돌려서 다른 스키에 평행하게 붙여준다. 이때 양 스키가 평행이 안 되면 경사면에서는 다리가 벌어지며 넘어질 수 있으므로 주의한다. 다른 쪽 폴을 옮겨서 반대쪽 목을 살짝 안쪽으로 꺾어주어 스키의 안쪽 엣지를 세워서 스키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선다. 이때 양 폴도 단단히 찍어주어야 보다 안전하고 편하게 설면을 오를 수 있다. 한쪽 발에 체중을 단단히 고정시키고 다른 쪽 발을 위쪽으로 옮겨준다. 이때 걸을 때와 마찬가지로 반대쪽 폴도 함께 옮기면서 균형을 맞춰주고 버티는 발은 물론이고 옮기는 발도 무릎과 발목을 위쪽으로 꺾어서 엣지를 세워주어야 스키가 미끄러지지 않으며 경사면을 오를 수 있다.6.넘어졌다 일어나는 법1).넘어지는 방법 : 경사면을 활주하다가 컨트롤이 안 되거나 스피드가 빨라지고 충돌의 위험 등을 느끼면 과감하게 넘어져서 멈추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이때 먼저 자세를 낮추어 충격을 줄이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자세가 남아지면 엉덩이를 안쪽으로 기울이며 최대한 설면에서 붙여서 넘어져야 충격을 줄일 수 있다. 넘어진 후에는 스키가 멈출 때까지 기다리며 무리하게 일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리하게 스키의 엣지 등을 강하게 걸면서 일어나려 하다가는 인대부상 등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주의한다.2).일어나는 방법 : 넘어진 상태에서는 뒤에서 오는 스키어와의 충돌위험이 있으므로 재빠르게 일어나야한다. 경사면에 대하여 스키가 비스듬하게 눕혀져 있으면 스키가 미끄러지면서 일어나기 어려우므로 일단 스키를 조금씩 돌려서 경사면에 수직한 위치까지 옮긴다. 이 상태에서 경사면 위쪽에 있는 손을 짚고 일단 무릎을 세운 다음 앞으로 인사하는 기분으로 상체를 일으킨다.3).스키가 꼬였을 때 일어나는 방법 : 만약 경사면에 넘어졌을 때 스키가 앞뒤로 꼬여있다면 우선 위에 놓여 진 스키를 들어 올려서 다른 쪽 스키의 방향으로 포개어 놓는다. 그리고 손이나 폴을 짚고 일어난다. 경사가 완만한 경우에는 폴을 사용하는 것이 훨씬 쉽게 일어날 수 있다.4).거꾸로 넘어졌을 때 일어나는 방법 : 경사면에 거꾸로 넘어진 경우 스키가 높은 곳에 있는 상태에서는 일어나기가 어렵다. 이때는 조금씩 스키를 옮겨서 스키가 몸보다 아래쪽에 위치목을 고정시켜 옆으로 움직이지 않게 함으로써 체중 이동과 방향 조절을 쉽게 하고 발목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바인딩은 스키화를 플레이트에 결합시키는 잠금 장치를 가리키는데, 스키화를 고정시킬 뿐 아니라 타는 사람이 엎어지거나 위험한 상황에 처할 때 자동적으로 잠금 고리가 풀려서 다리 손상을 방지하는 기능도 한다.폴은 평탄면이나 경사면을 활주할 때 추진력을 얻고, 경사면을 내려올 때 몸의 균형을 유지하거나 방향을 바꿀 때 등에 이용한다. 이밖에 활동하기 편하고 방수·보온이 잘 되는 스키복과 보온을 위한 스키모자, 설면에 반사되는 자외선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한 고글 등을 갖추어야 한다.경기방법스키는 원래 눈이 많이 쌓인 곳에서 이동 수단으로 발전한 것인 만큼 지형에 따라 그 형태도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였다. 비교적 완만한 구릉지대를 이루는 북유럽 지역에서는 거리경기와 점프를 겨루는 노르딕스키가 발달하였고, 이와 달리 산세가 험준한 알프스 산악지방에서는 가파른 경사면을 활강하는 속도 위주의 알파인스키가 발달하였다.노르딕스키는 설원의 마라톤이라 불리는 크로스컨트리스키와 급경사면을 활강하다 도약하여 허공을 비행하는 스키점프 그리고 이 두 가지를 합친 노르딕복합으로 구분된다. 하계 및 동계올림픽 종목을 통틀어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종목 가운데 하나인 크로스컨트리스키는 평지와 언덕을 가로질러 긴 코스를 완주하는 경기로서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갖추어야 하며, 세부 종목에 따라 클래식 주법과 프리스타일 주법의 활주법을 지정하는 것이 특징이다. 스키점프는 급경사의 고속 활강과 비행 그리고 추락 등 위험성이 큰 경기여서 아직까지는 남자들만 경기를 치르고 있다.알파인스키는 가파른 경사면을 시속 90~140㎞로 활주하는 활강 종목과 기문(旗門)을 지그재그로 통과하여 미끄러져 내려오는 회전 종목으로 대별된다. 회전 종목에서 대회전과 슈퍼대회전 종목이 파생되었으며, 활강과 회전 기술을 한 경기로 치르는 알파인복합 종목도 있다. 노르딕스키에 비하여 속도를 중시하는 경기로서 탁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