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례1. 1960년대의 사회 p.22. 1960년대의 대표적 문학1) 최인훈 p.32) 김승옥 p.3 ~ 43) 이성부 p.4 ~ 54) 김수영 p.53. 1960년대 문학연보 p. 61.1960년대의 사회1960년대의 사회는 부패한 정치에 반발하는 경향이 있었다. 1960년대는 4.19혁명과 5.16군사쿠데타라는 정치적 사건이 있었다.4.19 혁명은 이승만 정권의 권위주의적 지배체제에 대한 항거였으며, 무엇보다도 자유와 평등이라는 정신의 승리이자 민권의 승리였다. 그러나 50년대부터 노정되어 온 원조경제하의 극심한 사회 경제적 모순과 정치적 모순을 한꺼번에 해결할 구체적인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사회 각 계층에서 분출하기 시작한 다양한 열망과 요구들은 오히려 사회적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리고 다양한 요구들을 수렴하면서 한국적 민주주의를 실현시킬 주체의 부재는 민주화와 근대화라는 시대적 현안을 해결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다. 더욱이 서구적 민주주의에 대한 문화적 세례와 체험은 당대의 혼란을 수습하는 데 힘겨운 모범으로 제시되었을 뿐이다.5.16 군사쿠데타로 형성된 박정희 정권의 정치논리는 비합법적인 방식으로 선취한 정권을 가장 합법적으로 유지하려는 이율배반적인 것이었다. 우선, 박정희 정권은 국시에 버금가는 지위에 반공 이데올로기를 올려놓음으로써 혼란한 시국을 외형적으로 안정시키고 나아가 분단국가의 현실을 공고히 하고자 했다. 고도로 조직화되고 억압적인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를 일상적으로 동원하여 시급한 정치 사회적 시안을 관철하는 데 뒷받침하였던 것이다.다음으로 근대화 정책을 기반으로 하는 발전 이데올로기를 반공이데올로기와 결합시켰다. 특히 근대화 정책은 대중의 폭넓은 동의를 확보함으로써 정권의 정당성을 합리화시키는 효과적인 방식이었으며, 민족주의 담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국가 주도의 경제 정책을 수행하는 데 효율성을 기했다. 따라서 민족주의 담론과 결합된 근대화 정책은 국가적 아노미 상태에 대응하여 국가를 되살리기 위한 힘을 강조하는 초남성화 전략을 현실화시킨 것이라 볼 수 있다.)* 1960년대의 출발1) 최인훈 ‘광장’1960년대를 이야기할 때에는 4.19를 이야기한다. 1960년대 소설사를 이야기할 때는 늘 에서 시작한다. 4.19의 빛남이 의 주인공 이명준의 빛남이며 4.19의 성과란 의 성과라는 도식은 이제껏 상식인 차원에서조차 받아들여졌던 전제이다. 그러나 정치와 문학이 곧바로 대응될 수 없듯 4.19와 이명준의 정신은 무매개적으로 대응되지는 않을 것이다. 4.19라는 현실과 인간의 정신 사이에는 6.25를 겪어온 이 세대의 상처받은 역사적 삶, 그 경험에서 오는 일정한 시야의 한계, 육체를 지닌 인간의 일상적 삶, 정신의 표현을 가능케 하는 언어, 언어의 속성에서 오는 현실 파악의 장벽 등 무수히 많은 매개가 존재하며 그 매개를 통해 다시 그 것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놓여있는 것이다. 4.19 이후 비로소 이 산출되었지만 주인공 이명준은 4.19정신 자체일 수는 없으며 그 한 부분이고 분명 일정한 한계를 지닌 자유정신이라는 지적 역시 이 측면에 관계있다고 판단된다.소설 가운데서 그 정신이 비판하고 있는 현실의 문제란 실제 4.19혁명에서처럼 부패한 정치권력 자체만은 분명 아니었다. 구정권의 정치적 선전에 대해서 비판하며 50년대에 팽배했던 미국문화의 잔영과 그 영향권 하에 놓인 인물들의 일상적 사고에 대해 비판하고 있음은 이 작품의 중요한 내용에 해당된다.“ 잘 몰라? 네 애비녀석이 지랄을 부리는 마르크스 철학을 너는 모른다?”“철학과라도 전공이 있습니다. 철학공불 한다고 해서 마르크스 철학을 공부하는 것은 아닙니다.”“안단말야. 그렇더라도 너는 네 애비가 그렇게 열렬한 빨갱이니깐 어렸을 때부터 공산주의 영향을 받았을 게 아냐?”이명준이 혐오감을 느끼고 있는 지점은 공산주의자가 아닌 자신을 공산주의자로 모는 허위의식, 실제 공산주의의 실체에 대한 반대를 넘어서는 그들의 반공 이데올로기에 있었다.2) 김승옥 ‘환상수첩’, ‘무진기행’ - 자본주의 원형 앞에 노출된 자유, 자유인김승옥은 공산주의자가 아닌 자신을 공산주의자로 모는 허위의식을 느끼는 의 주인공 이명준의 정신이 환상임을 보고, 60년대의 이러한 환상이 현실 앞에 그 무기력함을 드러내는 시대임을, 다시 말해 근대화의 노골적 슬로건 하에 현실의 경제적 운동 자체가 전면으로 등장한 시대임을 말하는 작가이다.환상과 현실과의 거리조차 잊어버려서 아무 것도 구별해 낼 수가 없게 되었고사람을 미워하는 법을 배우고 말았다. 아아, 그들을 죽이든지 그렇지 않으면 내가 떠나든지 해야했 다.시골에 도착한 그가 만난 고향친구란 시인 윤수, 사고로 장님이 된 형기, 폐병환자 수영이다. 이들은 다 같은 유의 인간들이다. 이들이 지니고 있던 환상은 서울의 생활을 통해, 혹은 현실적 삶의 좌절에 의해 자신에 대한 환멸로 바뀌어 있었다. 이 순간 이들은 그나마 유지해 온 균형감각을 잃고 현실에 대한 정신분열적 행동인, 애인 바꿔치기, 폭음, 서커스 단원과 결혼하기, 자살하기 등을 서슴치 않는다.이러한 행동들은 저주스런 현실에 대한 저항일 수 있을까. 1920년대의 백조파가 사회주의라는 정신의 빛을 찾아 다시 재기했을 대와는 달리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기껏해야 현실 사회에 대한 호소였고 그렇게 안 되면 죽어버리겠다는 식이다. 그들은 와는 달리 4.19를 보았고 그 자유의 깃발 뒤편의 푸른 하늘을 보아온 세대였다. 현실은 결코 뒤로 가지 않으며 그들은 그 환상으로 뒤바뀐 정신에 대해 절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4.19는 그들에게 운명이었고, 사라져 다시 오지 않는 것이었다.이 설명에 간단히 요약해보자면, 이 시대, 즉 40년 전인 1960년대에는 재기라는 것은 없다. 이미 4.19라는 사건을 경험하고서 그들은 구제도의 타파와 새로운 질서 수립으로 이미 자유를 맛보았기 때문에 현실에 호소 혹은 죽음이라는 두 가지를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김승옥의 단편 의 주인공은 이 세대 가운데 살아 남은 자의 이야기다. 살아 남았음은 현실과의 타협이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인데 그럼에도 주인공은 야위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늘 확인하고 있다. 타협이란 윤희중이 부잣집 과부와 결혼, 제약회사의 전무 자리에 있으면서 생활 현실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며, 그럼에도 야위여 간다는 것은, 그가 겪었던 자신만의 내면 때문이다. 6.25대의 골방생활, 서울에서의 대학생활, 독서, 4.19를 통해 얻은 그의 내면이란 늘 현실과 대립하는 어떤 것이다. 이 중간지대에 놓여 길 잃고 헤매는 그의 삶이란 안개로 표상되는 혼돈과 불투명, 허무의 복합체이다. 그러나 그는 ‘살아났음’을 반증하듯 이 현실을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인정하기로 한다. 정확히는 현상태를 그대로 용인하며 기다리겠다는, 상처를 쓰다듬으며 현실 속에서는 한정된 책임 속에서만 살기로 하겠다는 다짐이다. )*김승옥은 60년대 작가이다5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 손창섭의 작품세계만 하더라도 사회화되지 않은 무척 개성적인 인물을 그 속에서 다루기는 하나, 그러할 경우에도 그 인물들은 단순히 외적 현실 그 자체를 맹목적으로 거부하는 태도만을 보일 뿐, 정작 한 개인의 내부 심리와 의식세계를 섬세하게 열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던 것이 김승옥에 이르러서 비로소 그 발굴되지 않은 내면의 세계가 작품의 표면으로 부각된다. 이른바 ‘자기 세계’의 형상화가 그것이거니와, 이 자기 세계의 형성으로 말미암아 작가 김승옥은 50년대와 변별되는 자기 고유의 문학적 성취를 이룩하게 된다.)3) 이성부이성부는 4.19이후 난만히 분출되기 시작했던 사회적 문제점들이나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같은 외적 요인들에 자신의 시편들을 열어놓음으로써 참여 계열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초기의 시들은 개인의 내면탐구나 형식미학의 추구와 같은 소위 순수시 계열은 아니다.4.19 이후 진행된 산업화 정책과 그것들이 파생시킨 부정적 결과들에 비판의 촉수를 들이댐으로써 그 시적 의미를 획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대단히 소극적이면서 조심스러운 자세와 모습을 보여 왔다. 그의 민중관은 사랑과 관용의 정신에 있었던 것이지 결코 급격한 혁명이나 전선화에 기초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이 같은 민중관을 두고 소시민적 성향의 발로라든가 계층에 대한 불확실한 인식이라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60년대는 4.19에 의해 사회적 모순이 확인된 시대이고, 5.16에 의해 그러한 모습들이 심화, 확대 되는 시기였다. 경제의 불균형한 분배와 빈곤의 상대적 강화가 60년의 특징이라 할 수 있으며, 그에 따른 당연한 결과로 농민의 도시유입으로 인한 도시빈민들의 증가, 농촌의 피폐, 열악한 노동조건 등이 이 시대의 부정적 목록들이다.이성부는 60년대의 시인인, 김수영이나 신동엽과 차별이 되었다. 1960년대를 풍미한 참여시 계열의 시인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그들이 짚어냈던 시대에 대한 인식들은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김수영 시의 특색은 격렬한 정치발언이었다. 그리고 신동엽의 시들은 사회저변에 깔려있는 모순들에 대한 즉자적인 비판도 아니고 그러한 권력들을 암시하는 알레고리들을 만들어 이를 거부하는 담론으로 직조되는 특징을 보여주었다. 이와 비교해보면 이성부의 경우는 이들과 매우 다른 위치에 놓인다. 그는 자신의 시에서 거대 권력에 대한 비판이나 상징화된 알레고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상현장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초점을 맞추어 자신의 시적 담론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성부의 시는 구체적인 일상의 현실에서 얻어진 것이라 할 수 있는 바, 이를 80년대식 리얼리즘의 관점에서 보면 구체적인 리얼리티의 획득이라는 말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근대극 연구이광수 「규한」, 윤백남「운명」1. 1910년대 시대배경과 혼인관갑오경장이란 이름아래 1894년 추진되었던 일련의 개혁운동은 오랫동안 조선사회의 폐단으로 지목되어 왔던 여러 제도 및 관습에 대해서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했다.즉, 문벌(門閥)과 반상제도(班常制度)의 혁파, 문무존비(文武尊卑)의 차별 폐지, 공사노비법(公私奴婢法)의 혁파, 역인(驛人)? 창우(倡優) ?피공(皮工) 등 천인의 면천, 죄인연좌법(罪人緣坐法)의 폐지, 양자제도의 개선, 조혼금지 및 과부제가 허용 등이 그것이다. 정치,사회, 경제에 걸쳐 진행된 이러한 개혁은 1910년 8월 29일 일제에게 대한제국의 주권을 완전히 강탈당하는 과정에서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었다.이 시기부터 사회의 모든 면에 있어서 자아각성이 추구되고 있는 ‘근대’라고 규정지을 수 있다. ‘사회의 모든 면에 있어서’ 추구된 자아각성이란 ‘사회 의식화된 자아각성’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개인적 ? 개별적 ? 국부적 범주에 속하는 자아각성은 근대적 자아각성이라고 보지 않는다. 즉, ‘근대’란 기성도덕이나 전통적 권위에 반대하고, 자유와 평등 그리고 근대 시민생활이나 기계 문명을 구가하는 것이다.사회 전반에 걸쳐서 진행되던 이러한 개혁의 바람은 선각자들의 글을 통해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런 개혁의 바람을 일으킨 선각자중 대표적인 사람이 이광수이다. 그는 자유와 평등의 원리에 기초하여 인간관계 위에 씌워진 온갖 차별적 관계를 일체 부정한다. 즉 양반과 상민의 계급적 신분관계, 가족 내의 부자관계, 부부관계, 남녀관계에서 빚어지는 불평등 문제에 관심을 표명한다.1910년 배경은 한일합방에서 1919년 3.1 운동까지의 시기이다. 사회적 상황은 일제의 한국에 대한 민족 말살 정책과 식민지 수탈정책이 실시되고 있었으며 일본의 신파극이 대중 오락극으로 수용되었던 시기이다.개화이전의 사회에서는 ‘남녀유별’이란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따라서 여성은 남성과는 분리되어 별개의 교육을 받았다. 그 교육은 바느질을 의 영향으로 일어난 변화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계몽’이다. 이광수의 작품에서는 관념적 계몽주의적 성격이 드러나고 있는데, 이것은 창작주체의 과잉된 주제의식, 즉 계몽적 의도에 의해 재현성은 구체성보다 관념성에 침윤되어 갔다는 사실이기도 하다. 따라서 조선 사람들은 모두 과거의 인습으로부터 깨어나야 하며, 나아가 신문명을 받아들이는 것만이 살길이라는 인식이 전 사회에 퍼졌다. 그러기 위해서 교육을 통해 깨우쳐야 한다는 인식과 함께 교육에 대한 열의가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분위기는 개화기 젊은이들의 도덕관을 흔들어 놓았던 자유연애사상으로 에서 표현하고 있다.여기에서 이광수의 계몽주의를 살펴보면, 식민지적 상황에서 열렬한 애국 감정이 북받쳐 오르던 청장년기의 춘원 이광수는 민족주의 예술관과 인도주의 예술관, 그리고 나름대로의 민중적 예술관을 지향하게 된다.즉 조선인의 허위 되게 공상, 공론을 즐겨 나태하고 서로 믿음이 없고, 매사에 용기가 없고, 이기적이어서 사회봉사심과 단결력이 없고 극히 빈궁한 현실과 민족성의 부정적인 성격을 개조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급선무이고 문학예술은 예술적 개조를 통해 도덕적 개조를 뒷받침하여 인생을 행복하게 할 수 있게끔 도와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춘원은 인생을 도덕화하고 예술화한 인생을 만드는 데에는 두 가지 길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 근본은 개인의 육적개조, 즉 주관적 개조인데 두 가지 방향이 있다는 것이다.2) 규한의 구성「규한」을 형식과 내용의 두 측면에서 살펴 보면, 우선 희곡으로서의 형식적인 측면은 거의 완벽하게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형식 속에 내용적인 측면인 인물 사이의 갈등까지 갖추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 있다.이씨와 격렬한 대립과 갈등을 일으켜야 할 남편은 한번도 희곡 위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씨를 정점으로 하면서 최씨, 순옥, 노파, 병준과 같은 부차적 인물들만 등장해서는 자아와 세계의 대립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들이 등장하여 잡담과 같은 대사를 늘어 놓는다고 하여 그것이 곧 연극적 대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단순하며 '병준이 편지를 전해주고 최씨가 편지를 빼앗아서 읽고 이씨가 쓰러지는' 부분 어디에도 갈등이 개입할 여유가 없으므로 자연히 이들이 주고받는 대화에서 갈등의 요인이 될 만한 것들을 추출해 낼 수밖에 없다①남편은 늘 무식하다고 핀잔을 주지만, 공부할 틈도 없고 가르쳐 주는 선생도 없다.②남편이 어쩌다 집에 있어도 무슨 잘못을 지적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③그러므로, 차라리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속이 편하다.④이혼 당하면 죽고 말지 친정에는 돌아가지 않겠다.⑤머리 풀고 서로 만난 아내는 버릴 수 없다.⑥행여나 마음이 돌아설까 기다렸는데 이 꼴이 되어 버렸다①에서 ⑥까지는 모두 이씨가 다른 인물들과 나누는 대화의 내용에서 추출해 낸 것이다. 이 중에서 ①에서 ③까지는 엄격한 의미에서는 보고구성이 될 수 없고, 전사와 더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한다. 극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일어난 사건들이기 때문인데, 그러면서도 이씨의 대사를 통해 다른 등장인물들에게 지난 5년 동안 부부생활의 내용이 공개되기 때문에 보고 구성의 일면성도 지닌다고 한다.④와 ⑤는 이씨의 결혼관이 피력된 부분이다 이씨는 새로운 사조에 접해 본 경험도 없을 뿐더러 편지도 읽지 못할 정도의 무학여성이다. 그러므로 결혼이나 부부관계에 대해 그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전통적인 가치관의 범주에서 조금도 벗어날 수 없다. 이에 비해 남편은 일찍 신학문에 눈을 떴고, 지금은 일본 유학까지 가 있는 상태이다 따라서 이들 사이에 원만한 부부관계가 존속될 것이란 기대는 가질 수가 없다. 그 결과가 ⑥에서처럼 남편의 편지로 현실화 된다.결국 ④에서 ⑥사이의 내용이 이 작품에서 갈등의 핵심이 될 것인데, 상대역인 남편이 무대에 등장하지 않음으로써 갈등은 무대화되지 못하고, 이씨의 대사로 처리되고 있다이러한 사실에서 우리는 작가 이광수가 「규한」을 집필할 당시에 희곡에 대한 인식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소설은 사회의 붕괴보다는 그 해체과 많은 인기를 누렸다. 신파극은 전시대의 판소리나 창극, 판소리계소설이 지녔던 현실비판의 자세는 취하지 못했다. 그 이유로는 일체의 비판적인 행위를 금지했던 일제의 탄압과 관련된 시대상황, 신파극 자체의 대중적 상업성, 그리고 신파 연극인들의 의식의 빈곤 등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이 신파극은 초기의 일본 신파극이나 신소설의 번안 상연에서 점차 국내 신소설이나 고소설을 각색하여 상연하기에 이르렀는데, 이것은 일본연극인 신파극이 우리 국민의 정서와 접맥되면서 한국적인 신파극으로 이행되었음을 알게 해 주는 것이다. 신파극은 기존 작품을 각색하여 상연하던 시대를 지나 창작 신파극의 상연으로까지 나아갔다규한에서는 신파극을 탈피하지 못 한 형태로 남아있다.3. 윤백남 운명1) 운명의 문예사조윤백남의 초기 작품은 계몽주의적, 인도주의적 경향을 띠었다. 운명은 신여성에 대한 매도와 구식 결혼제도 비판이라는 주제를 통해서 보수와 진보사상을 동시에 드러내는데, 이는 개화시대 지식인들의 과도기적 복합성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1910년대 희곡에는 일제 강점이라는 필터를 통해서 식민지적 규율에 위반되는 것들은 걸러지고 여과된 나머지, 즉 결혼과 사랑의 문제가 부각되었다. 여기에는 자신의 존립 기반에 대한 불안이 반영되어 있는 동시에 ‘있어야 할 것’으로서의 계몽적 이성이 놓인다. 그것은 결국 전근대적인 것과 결별하자는 데로 모아진다. 작가들에게 있어 전근대적 가치는 용납할 수 없는 불합리성의 표본이자 자신을 얽어매고 있는 족쇄인 것이다. 비록 자신들의 존재 기반에서 제출된 것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당대 사회에서 이미 공적인 성격을 지닌 것이기도 하였다. 전반적으로 결말부에서 실성하거나 죽음이 빈번하다는 사실이 동요하는 근대적 주체의 불안함을 표지하기는 하지만, 그것의 본질적 성격은 전근대의 종언을 알리고자 하는 강박적 과잉 혹은 감상성이다.신파극 시대에 1910년대 희곡은 한 쪽에서 이렇듯 전근대적인 가치와의 결별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이는 여극으로써 살아있는 듯한 인물들의 연기, 이야기를 이끄는 극적 효과를 통해 신파극의 힘이 향상됐다고 보여 진다. 또한, 신파극은 멜로드라마적 성격을 갖고 있는데, 이 작품에서도 규한에서와 마찬가지로 삼각관계의 특징이 드러난다.3) 운명의 구성 및 해결방식은 철저히 박메리의 운명의 길을 따라 전개된다. 그 운명은 두 번의 커다란 전환점을 맞게 된다. 첫 번째는 작품의 전사(前史)로 기능하는 사진결혼의 선택이고, 다음에는 우연히 만난 과거의 연인 이수옥과의 재회이다. 사진결혼의 선택이 비교적 능동적인 자신의 의지의 개입의 결과라면, 이수옥과의 만남은 전혀 예기하지 못하던 일대 사건이다. 이국 만리에서 과거의 연인과 재회한다는 것은 정말 우연적인 사건이다. 이것을 작가는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현재의 결혼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며, 과거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유부녀가 그 사랑의 대상과 먼 이국땅에서 재회한다는 것은 낭만적인 사건이다.과거의 추억을 잊지 못하여 심지어 평생 독신으로 지내기를 결심한 한 신청년이 머나먼 유학길에 잠시 들른 이국 땅의 중간 기착지에서, 공교롭게도 자신이 타고 온 여객선이 고장이 나는 바람에 며칠 더 묵을 수밖에 없게 되고, 그 기회를 얻어 자신을 버리고 떠난 옛 여인과 재회를 하게 된다. 이 청년의 입장에서 보면 이 재회는 우연한 것이면서도 다분히 의지적인 것이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음에 불구하고 청년은 전도사 부인을 통하여 연인의 소식을 물어 직접 여인의 집을 찾아 온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다시 만났을 때 표면적으로 더 반가워하는 쪽은 오히려 여인이다. 청년은 가능한 격식을 차리면서 사무적인 용건만 제시하고자 한다.이수옥은 근 1년만에 만난 과거의 여인에게 지난날의 이야기를 ‘쓸데없다’고 하며 고작 자신이 준 반지와 편지를 돌려달라고 요청할 뿐이다. 아무리 이미 결혼한 남의 여인이지만, 그리워하던 연인에 대한 태도로는 어딘가 적절하지 못하다. 이는 그만큼 실연의 상처가 큰 데 따른 보호 본능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