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ntier 시각에서 본 우주 탐험의 정당성본래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달리 소위 발달한 ‘문명’이라는 것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이유일까? 내 생각에 그것은 인간의 호기심에 바탕을 둔다고 생각한다. Eve는 선악과의 열매가 어떤 것인가에 대한 호기심을, Pandora는 그녀의 상자 안에 들어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궁금해 했다. 더불어 미국인들에게 중요한 가치로 간주되는 frontier spirit도 무관하지 않다. 이것은 당시에, 정착한 최초의 미국인들이 동부의 13개 주를 중심으로 하여, 문명화 되어있지 않던 서부로 점차 그 영역을 확장한 것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영토의 확장은 그들이 머물고 있지 않은, 즉 정복해보지 못한 곳에 대한 호기심에 기인한 것이라 생각한다. 결국, 이러한 frontier 정신을 가진 미국인들은 냉혹한 자연과 반발하는 원주민들에도 불구하고, 알지 못하는 저기 너머의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그곳을 정복해보이겠다는 개척의 의지만으로 일구어낸 성과였다. 이렇게 어려움 속에서도 그것을 이겨내는 불굴의 의지는 미국인들에게 개척 정신의 토대가 되었고, 미국인들에게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이러한 개척 정신은 미국 동부에서 서부로의 개척이 끝나고도 사라지지 않았다. 21세기인 지금까지도 미국인들은 그들의 선조가 그러했듯이, 새로운 미지의 세계로의 탐험을 두려워하거나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들은 여전히 새로운 세계로의 탐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우주 탐험이다. 고대로부터 이어진 태양, 달, 별 등의 호기심에서 비롯된 우주에 대한 동경은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를 탐험하도록 만들었고, 가장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를 이끌고 인류 최초로 달에 한 걸음을 내딛은 ‘닐 암스트롱(Neil Alden Armstrong)’의 업적일 것이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 있어서 위대한 비약이라고 했던 그의 말처럼, 암스트롱의 달 착륙 이후로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우주에 대한 관심이 한층 증폭되었다. 이제껏 감히 가볼 수 있는 곳이라 생각지 않았던 특별한 공간으로서의 우주가, 인간의 호기심과 개척하고자 하는 frontier spirit의 도움으로 인간이 활동할 수 있는 특별하지만은 않는 공간으로 인간에게 한층 가까이 다가오게 된 것이다. 이후 미국은 ‘Skylab’이라는 미국 최초의 우주 정거장을, 그리고 인간이 체류할 수 있는 우주 정거장으로서는 세계에서 두 번째라는 위업을 달성한 바 있으며, 현재 캐나다, 일본, 유럽11개국 등 총 16개국과 더불어 국제 우주 정거장(International Space Station, ISS)을 설립 중에 있다.그저 닿을 수 없는 동경의 세계로만 인식하던 우주를 미국인들은 그들의 강력한 개척 의지로 미약하지만 결코 평범하지만은 않는 세계로 도약할 수 있었다. 그들은 우주가 어떤 곳인지, 어떤 생명체가 있는지 등의 질문에 명확한 답변을 할 수 없는 암담한 상황 속에서도, 푸른 별인 지구를 떠나 암흑만이 존재하는 광활한 우주 공간으로 지금도 여전히 탐험을 떠나고 있다. 비록 이러한 탐험에 그의 선조들이 서부 개척 당시 잃어야만 했던 정신적 평온과 안정과 같은 무수한 희생이 뒤따른다 할지라도, 미지의 세계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곳을 개척하여 무언가를 이루어 내려는 그들의 보이지 않는 전통은 여전히 계속될 것이다. 더불어 그들의 정신에 깊이 박혀 있는 frontier spirit은 과거에 그 나라를 강대국들 중 하나로 만드는데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은 국가로의 발전에 토대가 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렇게 새로운 것에 과감히 도전하고 성취해내고자 하는 frontier spirit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national identity를 한층 더 견고하게 엮어주는 가치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해 내고 있다.
영국 음식은 프랑스인들이 ‘혀에 대한 테러’라고 표현했을 만큼 빈약하다. 날씨와 토양이 좋지 않아 식재료가 다양하지 못하기 때문인데, 이 대신 차 문화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보통 영국 사람들은 하루에 세 번 정도 반드시 차를 마시는데, 특히 오후 4시가 되면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30분 정도 Tea Time을 가진다. 오후 4시경에 마시는 Afternoon Tea는 홍차에다 케이크와 비스킷, 스콧, 잼과 생크림, 토스트에 마멀레이드 등을 곁들여 먹는데, 이것은 가벼운 식사라고 할 만큼 푸짐하다.영국에서는 차가 단순한 음료라기보다는 의식에 가깝다. 차를 만드는 행위와 차를 대접 하는 행위는 사교의 근본을 이루고 있다. 영국에서의 차는 단순히 마시는 차로서 만의 의미뿐만 아니라 차와 함께 먹는 식사 혹은 사교적인 음식 대접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인의 차 마시는 습관은 너무나 유명해서 프랑스의 만화에서는 영국군이 전쟁 중에서도 차 마시는 시간이 되면 전투를 중지한다고 그리고 있다. 실제로 걸프 전쟁 시에도 미군과 영국군이 나란히 싸울 때, 영국군은 탱크 위에 전자식 물 끓이는 주전자가 부착되어 있어서 격식을 차려 차를 끓여 마셨다고 전해진다.1. 영국 차 문화의 전개① 수용 단계17세기 중국을 통해 차가 본격적으로 수입된 이래, 영국에서는 홍차를 중심으로 자신들만의 독특한 차 문화를 형성시켜 왔다. 영국의 홍차 문화는 상류층만 즐긴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을 위한 찻집도 생기는 등 생활 전반에 걸쳐 급격히 보급되었다. 이는 영국인들이 하루 7~8회의 Tea Break를 통해 사교 문화를 발달시키는 원동력이 된다.일종의 약이었던 차가 음료로 변한 것은 찰스 2세 때 궁정에서 유행한 동양적 취향이 계기가 되었다. 1662년 찰스 2세에게 시집온 포르투갈왕의 딸 캐서린은 결혼 선물로 인도 봄베이의 음차(飮茶)풍습을 궁정에 들여왔다. 당시 궁정에서는 여성이나 남성이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ale), wine, spirits)등의 술에 절어 지낼 정도였는데, 차 Tea는 주로 Assam)같은 강한 종류에 밀크를 섞어, 막 일어났을 때의 몽롱하고 나른한 마음을 정돈하는 역할을 했다.Afternoon Tea의 시작은 1840년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시종이었던 베드포드 공작부인(Anna)이 점심식사 후 저녁 8시 이후에나 이뤄지는 식사를 기다리다 지쳐 오후 3~4시경에 홍차와 함께 간단한 요기를 하면서 시작되었다. 처음엔 차와 간단한 음식을 나누며 담소를 즐기고 산책하는 시간을 갖곤 했는데, 이것이 상류층 부인들 사이에 유행하게 되면서 사교문화의 한 형태로 자리 잡게 되었다. 특히 빅토리아 여왕시대에 이 Afternoon Tea는 사교의 장이자 예술과 문화에 관한 정보교류의 장이 되기도 했다.영국의 Afternoon Tea party는 동양 상류층 여인들의 찻 자리와 마찬가지로 예절과 격식이 중요시 되었다. Afternoon Tea party 역시 상대에게 초대장을 보내는 것으로 시작되며, 초대 받은 손님은 찻 자리에서 너무 사적이거나 정치, 사회적인 화제를 피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나 의견을 주로 교환하였다. 또한 예절과 교양을 중시하여 차 도구들이 부딪혀 소리가 나지 않도록 하는 등 최대한 격식을 차리는데 치중하였다.③ 확산 단계이와는 별도로 중, 하류층에서 즐겼던 High Tea라는 티타임은 오후 5~6시 경, 일터에서 돌아온 노동자들이 좀 더 본격적인 음식과 함께 차를 마셨던 시간을 일컫는다. 또한 차의 사용 용도에 따라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기도 하였다. 아이들의 소꿉장난 및 간식시간에 홍차가 이용되기 시작하면서 Nursery Tea 문화가 영국사회에 정착되었다. Garden Party Tea는 단어에서 나오는 거창한 파티를 의미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영국 가정에서 소풍이나 야외 외출 시 홍차를 준비해서 간단히 가족 및 지인들과 홍차를 즐기는 문화이다. 오늘 날의 영국인들도 오전 10시 30분에서 11시 사이에 반드시 간단한 간식과 함께 Teatime을 갖는다.* 본래 영국의 홍차 문화는 상류층의 문화에서 중 · 하류층773년 11월 16일, Boston 항구에서 항의자들이 3척의 영국 배에 올라가서 차를 실은 짐을 물속에 던져버리고 배에 불을 지르자, 이에 대한 보복초치로 영국은 이 항구를 폐쇄시키기로 결정했다. 바로 이곳이 Boston Tea Party이다. 그리고 보스턴뿐 아니라 여러 곳에서 소동이 일어나자 영국은 대대적인 보복에 나서고 보스턴 항을 봉쇄하고 메사추세츠 주에 대한 지배를 강화한다. 이에 반발한 미국인들은 1775년 보스턴 교외의 렉싱턴에서 영국 본국의 군대와 무력 충돌이 일어났고 이 사건이 마침내 미국의 독립전쟁으로 발전하게 된다.* 당시 영국은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나라로서 그러한 권력을 무역에 이용하여 어떤 이익을 창출해내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이러한 불평등한 조건 하에서 결국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게 되었을 것이고, 그로 인해 영국과 미국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② 아편전쟁영국의 차 무역 증대로 중국에 대량의 은 유출이 심화되자 영국의 동인도 회사는 18세기 말부터 인도에서 대량의 아편을 생산하여 그것을 중국에 수출 했다. 중국은 ‘천조(天潮)의 은혜’로 서양에 차를 팔아 왔으나 이제는 차를 파는 대신 대량의 아편이 유입되고, 아편 중독 환자가 만연하고 은이 감소하였다. 1837년 중국 정부는 아편 단속을 강경하게 시행하여 많은 중국인을 체포하는 한편 아편을 몰수하여 아편 퇴치에 성공을 거두었으나, 이에 대한 영국의 보복으로 결국 아편전쟁(1839~42)이 발발하게 되었다. 영국의 근대적 병기와 함대의 공격 앞에 굴복한 중국은 홍콩을 영국에 할양하고 군비, 아편 배상금으로 2100만 달러를 지불하고 광둥, 샤먼, 푸저우, 닝보, 상하이 등 5개 항구를 개항하는 굴욕적인 난징조약(1842)을 맺었다.* 영국의 차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전쟁까지 일어났다는 점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한다. 그저 고단한 하루의 피로를 풀고, 휴식을 취하자는 취지에 따라 영국의 차 수요가 늘어났을 것인데, 사람들의 이러한 소박한 소망이 승리 할 수 있다. 1869년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면서 영국가지 거리도 단축되고 운하를 통과하는 선박이 기선으로 제한됨으로써 20년 가까이 계속되던 차 운반 경쟁도 막을 내리게 되었다.3. 영국의 홍차 유행 원인 및 배경① 발효차의 쉬운 판별력과 육식 식생활 습관영국에서 차의 소비가 급증하였으나 수입권은 동인도회사가 독점하고 막대한 이익을 올리고 있었다. 그렇게 되자 밀수입이 성행하는 것은 물론, 수입차에 불순물을 섞어 파는 악덕상인마저 등장하게 되었다. 그런데 녹차는 불순물을 섞어도 그 판단이 어려운 반면, 발효차는 쉽게 판별할 수 있다.또한 육식을 주로 하는 영국인들의 식생활에 발효차는 지방이나 단백질의 소화를 촉진하여 식후에 발효차를 마시게 되면 입안의 지방질을 깨끗이 씻어준다는 사실을 체험을 통해 알게 된 영국인들이 차츰 녹차로부터 발효차로 기호를 바꿔가게 되었다.② 식수와 토착 대용차영국의 물은 연수로 대륙의 물과는 달리 음료에 적합하였다. 지금도 대륙의 물로 차를 마셔보면 차의 맛도 향도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시 차는 영국에서 마시는 것이 가장 맛있다.또한 영국은 프랑스나 다른 유럽제국과 비교해 볼 때 물을 제외한 음료는 척박한 편이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같은 지중해의 와인 문화권에는 차가 파고들어 갈 여지가 없었던 데 반해 전통적인 음료가 그리 많지 않았던 영국에서는 비교적 쉽게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이다.영국에서 차가 수입된 배경에는 물이 적합하였다는 점 이외에도 토착의 ‘대용차’가 있었다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옛날부터 알려진 식물 즙이 그것인데 지금도 영국 농촌에서 사용되고 있다. 16세기 영국에서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까지 들어간 약용 차에 Sage) Tea가 있는데, 그것이 전통적인 식물 즙의 일종이다. 그밖에도 예로부터 내려오는 영국의 대용차에 박하차(Catnip Tea), 나무딸기잎 차(Raspberryleaf Tea), 까막까치밥나무 차(Black currant Tea) 등이 있다. 차가 도중에 잠시 쉬면서 마시는 차이다. 간단하게 15분 정도로 마친다.④ Middy tea break : 오후에 간식을 먹으면서 마시는 차이다.⑤ Afternoon tea : 사교를 목적으로 하는 특별한 Middy tea break이며, 주로 휴일 오후 4시경에 한다. 자리를 멋있게 마련하고 sandwich, scone, cake 등을 준비한다. 19세기 중엽에 영국의 베드포드 백작부인이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 당시 영국인들은 점심식사를 먹지 않았기 때문에 - 오후에 차와 과자를 준비하고 친구들을 부른 것이 시초로 되어 있다. 이후에 영국에서는 '오후에 차 마시러 오세요.' 하면 친구가 되자는 뜻으로 통한다.⑥ High tea (Meat tea) : 원래는 영국의 노동자들이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오후 6시경에 고기나 샌드위치 등의 식사와 같이 마시는 차를 가리킨다. “High”는 high part of afternoon 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어린이용 의자인 high back chair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Low tea는 상류 계층에서 이른 오후(low part of afternoon)에 이야기를 나누면서 차와 가벼운 음식을 드는 것을 의미한다.⑦ After dinner tea : 저녁식사를 마치고 느긋할 때 마시는 차로, chocolate 등 달콤한 과자와 같이 마시는 경우가 많고, whisky나 brandy를 타서 마시기도 한다.⑧ Night tea : 잠자리에 들기 전에 마시는 차이다.* 홍차 문화가 영국인들의 하루하루에 빼곡히 채워져 있는 만큼 그것을 즐기는 시간 또한 다양하다. 대략적으로 살펴본다 하더라도, 그들은 하루를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차와 함께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로웠던 것은 Afternoon Tea의 유래였다. 당시 영국인들은 점심 식사를 하지 않았다는 점은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점이였고, 이러한 상황 하에서 그들이 홍차와 각종 간식들을 ‘식사대용’처럼 즐겼던 것은
Oedipus Complex. 이것은 그리스 신화 Oedipus에서 딴 말로서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에서 쓴 남성이 부친을 증오하고 모친에 대해서 품는 무의식적인 성적 애착을 의미한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경향은 남근기에서 분명하게 나타나며 잠재기에는 억압된다고 했으며, ‘아버지처럼 자유롭게 어머니를 사랑하고 싶다.’는 바람은 ‘아버지와 같이 되고 싶다.’는 원망으로 변하여, 부친과의 동일시가 이루어지며 여기에서 초자아가 형성된다고 했다. 프로이트는 유아는 이 오이디푸스콤플렉스를 극복하고서야 비로소 성인(成人)의 정상적인 성애가 발전하는 것이지만, 이를 이상적으로 극복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며, 일반적으로 신경증환자는 이 극복에 실패한 사람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 콤플렉스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생물학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처럼 정신분석의 대가인 프로이트가 그의 철학의 원동력을 고전 『OEDIPUS THE KING』에 근본을 두고 있음은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이것은 비단 프로이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며,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수많은 영감을 불러일으킨 명작임에 분명하다. 이 글은 서양인들에게 있어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손꼽혀 왔고, 지금까지 손꼽히고 있는 이 고전은 영문학을 공부하는 우리들에게 있어 아니, 지식을 탐구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필수적인 고전으로 사료된다. 이처럼 언젠가 아버지가 자신의 성기를 거세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어머니가 온전히 자신의 사랑의 대상이 되고자 갈망하는 Oedipus Complex는, 예언의 신인 Apollo의 신탁으로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이 글의 영웅이자 주인공인 Oedipus는 ‘부어오른 발’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자로 등장한다. 한편, 이 글의 무대가 되고 있는 테베에서는 Sphinx라는 괴물이 자신이 내는 문제를 맞히지 못하면 그 사람을 잡아먹는 흉흉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따라서 테베 사람들은 그 괴물에 대한 두려움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으며, 그로테베의 여왕은 Sphinx를 없애는 사람에게는 자신을 아내로 맞이하게 하고 테베의 왕위를 바치겠다고 한다. 한편 이 말을 들은 Oedipus는 Sphinx를 처치하기 위해 그것을 찾아 간다. Sphinx는 여자의 얼굴에 사자의 몸뚱이, 그리고 독수리의 날개를 가진 괴물로, 길목을 지키고 서 있다가 인간에게 수수께끼를 내는데, 문제를 맞힌 사람은 통과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괴물에 잡아먹히고 만다. 이 괴물, Sphinx의 수수께끼는 "아침에는 네 발, 낮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데, 네 발로 걸을 때가 가장 약한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이 수수께끼의 정답은 '인간' 이었고, Oedipus가 정답을 맞히자 Sphinx는 그대로 바다에 뛰어 들어 죽었다.이렇게 Sphinx를 처치한 오이디푸스는 여왕과 결혼하고 테베의 왕이 되었다. 그는 지혜롭게 나라를 통치해 백성들에게 사랑받았다. 결혼 후 두 쌍둥이 아들 Eteocles와 Polyneices, 그리고 두 딸 Antigone와 Ismene가 태어났다. 그러던 중, 그가 다스리는 나라 안에 전염병이 유행하게 되고, 그의 처남인 Creon이 Oedipus의 명령에 따라 Apollo의 신탁을 듣고 온다. 그 신탁은, 선왕(先王)을 살해한 범인을 추방해야 한다는 것으로 Oedipus는 그 범인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 그는 극의 끝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그 범인일 것이란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다. - 색출에 온 힘을 쏟는다. 그는 Creon과 함께 범인을 찾아내기 위해 예언의 신인 Apollo와 가장 가까운 예언자인 Teiresias를 불러 예언을 듣게 된다. 예언자인 Teiresias는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었으나, 진실을 볼 수 있는 혜안을 가진 사람으로서, 테베 왕국의 비극의 원흉은 다름 아닌 Oedipus라는 전하게 된다. Hot-tempered Oedipus는 비극적인 진실 - 당시의 그는 절대 알지 못하지만 - 을 듣게 된다. 예언자 Teiresias는 Oedipus가 ‘가장 가까운 판단을 내리는 Creon이 Oedipus에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지만, Oedipus는 그 사실을 믿지 않으려 하며 결국 왕비인 Jocasta의 중재로 싸움을 중지하기에 이른다. Jocasta에게서 선왕의 이야기를 듣던 도중, Oedipus는 뜻밖에도 자신이 테베에 오기 전 있었던 일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삼각지에서 일어났던 일이었다. Oedipus는 Jocasta에게 선왕인 Laius에게 내려졌던 신탁 - Apollo가 내린 것이 아닌 그의 제관들로부터 내려진 것 - 을 상세하게 듣게 된다. 그것은 바로 Laius가 자신과 Jocasta 사이에서 태어난 남자 아이에 의해 살해당할 운명이며, 그 아들이 어머니이자 왕비인 Jocasta와 부부의 연을 맺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Jocasta는 그 아이가 태어난 지 사흘 만에 두 발뒤꿈치에 구멍이 뚫린 채 죽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예언이 바뀔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러한 Jocasta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Oedipus는 석연치 않은 무언가를 느끼게 되며,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가 깊어져 간다.결국 그는 삼각지에서 노인을 죽였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숨기지 않고 이야기하게 되고, 이 이야기가 Laius 왕에게 내려졌던 신탁이 실행되었음을 증명하는 이야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한다. 허나, 곧 그가 자라난 Corinth에서 온 사자가 자신의 양아버지인 Polybus가 노환과 병으로 죽음을 맞이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Oedipus는 조금이나마 안심하게 된다. 하지만 이 사자는 Oedipus가 Polybus의 친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게 되고 자신의 발꿈치의 상처가 Laius 왕의 아들임을 증명하는 것이라 한다. 결국 그는 자신이 Laius 왕의 친 아들임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되지만 인정은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그럼에도 그는 범인을 색출하는 행동을 멈추지 않으며, Jocasta는 그런 Oedipus를 만류하지만 Oedipus는 그럴수록 더 자신의 덫에 자신을 게 된다. 이 사실을 Oedipus보다 먼저 알아 챈 Jocasta는 밧줄로 목을 매달아 자살에 이르게 되고, 이를 본 Oedipus는 그녀가 입고 있던 옷에서 황금 장식을 빼 자신의 두 눈을 찌르게 된다. 결국 이렇게 비참한 신탁은 실행되었음이 공공연하게 인정되고, 자신의 두 딸을 처남인 Creon에게 맡긴 채 이야기는 끝이 난다.이 이야기의 마지막에 이를 때 까지도 Oedipus는 자신이 처한 상황, 즉 신들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고, 신의 의지에 따라 자신의 삶이 이어져 나가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쩌면 그의 태도, 즉 신의 결정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모습 그 자체도 신들에 의해 결정지어진 것일 수도 있다. 그 이유인 즉슨, Oedipus는 태어난 지 사흘 만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신탁을 따르지 않으려는 자신의 아버지, Laius에 의해 신에 대해 반항 아닌 반항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나는 Laius의 과오와 신에게 대항하는 잘못이 Oedipus에게 대물림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만약 Laius가 신탁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다면 - 그렇다 해도, Oedipus가 Laius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신탁은 바뀌지 않았을 테지만 - Oedipus의 자책감이 덜했음은 분명하다. Laius의 권력 혹은 생에 대한 욕심이 자신과 아내 그리고 자신의 아이에게까지도 불행을 초래하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또한 이 작품에서 Oedipus는 자신의 부모님과 닮지 않았다는 점에서 신탁을 들으러 가게 되고, 그 곳에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어마어마한 신탁을 듣게 된다. 결국 그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 그 근원을 찾아 나서는 도중에 아버지는 살해하는 큰 죄악을 저지르게 된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 의문점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는데, Oedipus가 삼각지에서 만난 일행 - 자신의 아버지 일행 - 을 죽일 만큼 난폭한 인물이었악한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란 생각이다. 결국 이런 Oedipus의 모습은 자신의 비극적인 신탁을 인정하지 못하고 그에 대항해보려는 분노가 담긴 모습이 아니었을까. 한편, 이 부분에서 나는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아들이 자신을 죽이고, 아내와 결혼까지 하게 된다는 신탁 때문에 아들의 발뒤꿈치에 못을 박아 버리고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는 등의 끔찍한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Laius와 Oedipus의 인연은 그들의 인생의 가장 마지막까지도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다.나는 서양 명작 중 하나로 꼽히는 이 글을 읽으면서 신탁의 의미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계보를 중히 여기는 당시의 사상을 엿볼 수 있었고, 같은 맥락에서 보아 이 작품에서 가장 문제시 되고 있는 근친상간은 혈연관계를 어지럽히는 데에서 그 문제점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지금은 물론이거니와 고대에서부터 계보를 흩뜨리는 것이 가장 큰 죄악임을 알게 하는 부분이었다.반면에 끊임없이 진실을 추구하는 Oedipus의 모습에서 나는 진정한 학자의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분명 Oedipus가 학자는 아니었지만 어떤 상황에 있건, 항상 올바르고 불변의 가치를 지니는 진실을 탐구해야 하는 학자의 모습이 떠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모름지기 학자란, 무엇보다도 자신을 속이지 않고, 진실이라는 끝없는 가치를 찾아가는 사람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Oedipus도 그런 면에선 학자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그는 자신에게 저주를 내리고, - 비록 그것이 자신에게 내리는 저주임을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 시간이 지날수록 그 저주의 대상이 자신임을 깨달아 가면서도 범인을 찾아내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이 부분에서 그가 진정한 왕으로서의 자격을 지닌 인물임을 알 수 있었다. 본래 그가 선왕을 죽인 범인을 색출하게 된 것이 그때 당시에 나라에 만연해 있던 전염병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그 자신이 전염었다.
Victorian Age. This period is under the reign of Queen Victoria. And it symbolizes her power of influence according to a title of period. Some traits of Queen Victoria came out the Victorian age during the reign of Queen Victoria like similarity with her massive authority. So in this period, it resembles her characters which are earnest, moral and puritanic, etc. A puritan is a kind of religion. So, the puritans were a group of English Protestants who lived in a very strict and religious way. In addition, they thought that the pursuit of pleasure considered a sin. Under this circumstance, Victorians had no choice but to lead an ascetic life, so they were very conservative. These oppressive and conservative aspects were presented, especially to woman. At that time, most of males brought home the bacon for their living, while most of females did household affairs or took cafe of their babies in their house. Thus, victorian females degenerated into a passive and depended being. Consequently, unmarried middle-class women had some restrictions which were in choosing their job.
* '19호실로 가다'의 등장인물1. 수잔(Susan Rowlings) : 지적이지만 자의식이 강해 정신분열증을 보여 자신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압박과 굴레를 인식하고 자유를 찾고자 죽음까지 이르게 된다.2. 매튜(Mattew Rowlings) : 지성을 가장하여 참을성과 이타심을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3. 소피트럽 : 오페어걸(숙식을 제공받는 대가로 가사를 제공하고 그 나라의 말을 배우길 원하는 외국 여성)로 수잔의 자리를 대신해 안주인 역할을 맡게되는 인물이다. 파크스 부인도 소피의 지시에 잘 따랐고, 남편인 매튜와도 유쾌하게 지낸다. 일주일 중 5일을 19호실에서 보내는 수잔을 대신해 그녀가 집의 안주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수잔은 안주인 역할을 하고 있는 소피를 통해 되려 자신이 방문객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4. 파크스부인(Mrs. Parkes) : 수잔의 집에서 일하는 파출부로 여성의 굴레를 스스로 자처하는 존재이며, 집안에서 여성의 역할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인물이다. 자신의 일을 빼앗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수잔에게 항의할 정도로 자신의 일의 범위를 정확히 알고 있는 인물이다. 파크스 부인이 로링스 부인의 축복이 없이는 행복할 수 없다고 하는 장면에서 그녀의 성격이 독립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의존적인 여성의 모습임을 알 수 있다.* '19호실로 가다'의 줄거리1. Exposition(발단) : 신문사 편집 차장인 매튜와 광고회사에서 일하는 수잔은 그들의 선견지명과 지각력, 지성에 입각하여 사우스 켄싱턴에서 행복한 결혼생활을 시작한다. 2년 후 수잔은 임신을 하여 직장을 포기하고 리치몬드의 단독 주택으로 이사를 한다. 네 명의 아이들(아들, 딸, 쌍둥이)을 낳게 되지만, 아이들 보다는 둘의 서로에 대한 사랑을 삶의 원천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은 결혼, 아이들, 큰 집, 정원, 파출부, 친구들, 자동차 등과 같은 그들이 창조한 것들을 지성으로서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감정에 의존하기보다는 더 많은 예의와 부드러운 사랑으로 서로를 대하기를 원한다.2. Complication(전개, 위기) : 어느 날 매튜는 수잔에게 파티에서 만난 마이러 젠킨스라는 아가씨와 함께 밤을 보냈다고 고백한다. 수잔은 진부한 것이라며 그를 '이해'하려 애쓰지만,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지각과의 갈등을 겪으면서 다시 아무일 없던 듯 일상생활로 돌아간다. 40대가 된 수잔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방학을 맞는 일을 반복하면서도 그런 삶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10년 후면 그녀 자신만의 삶을 가진 여자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쌍둥이에게 화를 낸 날 수잔은 남편에게서 슬픔을 위로 받지만, 실제로 는 자신이 느끼고 있던 자기 자신에 대한 두려움을 위로받지는 못한다. 그리고 집안 곳곳의 '적'을 의식하기 시작하면서 수잔은 혼자 있을 필요가 있음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3. Climax(절정) : 수잔은 자신의 맘속에 떠오르는 지성과의 갈등을 느끼며 자신을 잊을 장소를 찾을 방법을 모색한다. 결국 그녀는 남편과의 대화를 통해 집 맨 위층에 '어머니의 방'을 만들게 되지만, 완전한 개인생활을 하지는 못한다. 정원에서의 악마의 모습에 위협을 느낀 그녀는 집 외에 혼자 있을 곳을 찾게 된다. 빅토리아의 작고 조용한 호텔방, 수잔이 필요로 하는 그런 방을 찾게 되지만, 50대의 독신녀 호텔 주인 미스 타운젠드의 방해로 짧은 자유시간은 끝나게 된다. 그리고 미쳐가고 있는, 아니, 자신이 미쳤음을 알고 있는 수잔의 오페어 걸을 두자는 제안에 남편과 수잔의 지켜야 할 사실상의 계약은 깨지고 만다. 다시 한 번 수잔은 패딩턴에 있는 프레드 호텔을 찾게 된다. 19호실 '그녀의 방'에서 그녀는 존스부인으로서 자유로움을, 혼자임을 만끽하게 된다. 하지만 일주일의 닷새를 19호실에서 보내는 수잔을 매튜는 의심하게 되고, 뒷조사를 통하여 수잔의 행실을 알게 된다.4. Conclusion(결말) : 19호실에 앉아있는 그녀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님을 느낀다. 남편이 그녀를 찾아내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자기 대신 안주인 역을 하고 있는 소피 트럽을 보며, 자신이 방문객인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매튜의 애인이 있다는 말에 수잔도 거짓말을 꾸며대지만, 애인이 있길 바라는 그의 안도감을 느끼면서 그녀는 자각, 이성에 대한 자의식을 느낀다. 그녀의 크고 하얀집을 소피에게 조용히 바치고 프레드 호텔 19호실로 떠난 수잔은 비로소 악마로부터의 자유를 느낀다. 그렇게 그녀는 가스가 새어 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죽음을 맞게 된다.* 지성에 입각한 결혼, 그리고 지성의 실패: 『나는 이것이 지성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로링즈 부부의 결혼은 지성에 입각했었기 때문이다.』『지성이 그런 것들을 용납하지 않았다. 지성은 또 언쟁과 골냄, 화내는 것, 움츠러들어 말하지 않는 것 그리고 비난과 눈물도 금하였다. 지성은 무엇보다 눈물을 용납하지 않았다.』* 결혼 전과 후, 여성의 존재이유는 달라지는가 :『그러다 수잔이 임신을 했고, 직장을 포기하였으며.....수잔은 자신의 독립을 위해 직장을 가지는 그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 -아이들은 어머니를 일정한 나이가 될 때까지 필요로 한다는 것에 대해 그들 부부는 알고 있었고 거기에 동의하고 있었다』* 적의 존재 :『적-초조, 침착치 못함, 공허함, 그 무엇이든지 간에, 그녀의 손이 일을 해야 어떤 이유에선지 덜 위험하게 되는 그 적이 거기 정원에 가까이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그녀는 그를, 혹은 그것을 , 다소 젊은 남자, 아니면 아마 젊은 척하는 중년남자라고 상상하였다.....어쨌든 그녀는 가까이 가면 입과 눈가에 잔주름이 있는 젊어 보이는 얼굴을 보았다..불그스레한 안색과 붉은 머리를 갖고 있었다. 불고 정력적인 남자였으며...』『그의 손에는 길고 구부러진 막대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정원에서 주웠거나 자기 위에 있는 나무에서 꺾은 것이었다. 그는 건성으로 악의의 건성스러운 혹은 변덕스러운 충동에 의해 발 없는 도마뱀인지 뱀인지가 사리를 틀고 잇는 주위를 자극하는데 그 막대기를 사용하고 있었다(아니면 일종의 뱀 비슷한 동물이었는데 허여고 보기에 유해하고 불유쾌하였다.)뱀은 몸을 뒤틀며 그 지분거리며 찌르는 막대기에 저항하는 춤을 추기라도 하듯 사리를 이쪽저쪽으로 휘둘렀다.』『난 결국 미친 것이 아니야. 내가 그를 보았기 때문에 위험은 있어 ...그리고 그는 원하고 있어』* 어머니 방 : 『그녀가 개인적 자유를 가질 권리를 부여받았음을 알았다』『결국 어머니의 방과 그녀의 개인적 생활에 대한 필요로 인해 다른 사람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주기에 이르렀다. 얼마 되지 않아서 수잔은 단지 그것이 버리기에 아까운 교훈이었기 때문에 그 방에 올라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