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연발계속되는 비극 작품에 이어 이번에는 희극 작품이다. 셰익스피어의 실수연발은 마치 시트콤을 보는 것 같다. 30페이지 정도의 단편이었지만, 읽는 내내 입가의 미소가 사라지지 않는다. 특히 셰익스피어의 엉뚱한 상상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쌍둥이 주인공도 기발했지만 무엇보다도 하인들까지 쌍둥이인 것은 가히 최고다. 작가의 이런 발상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햄릿과 리어왕 같은 무게감이 있기보다 가벼운 작품이었지만 셰익스피어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어 유익한 시간이었다.시라큐스와 에피서스, 각 나라에는 상인이 서로 물품을 가지고 오면 안 되는 법이 있다. 이야기는 이 법을 어긴 이지온이 에피서스의 공작에게 심문을 받으며 시작한다. 이지온은 시라큐스의 상인으로 쌍둥이의 아버지이다. 그는 몇 십 년 전 두 아들 중 한 아들과 아내를 잃었으며, 남은 한 아들마저 형과 어머니를 찾아 떠나 지금은 홀로 남은 신세이다. 그런 그가 가족을 찾기 위해 떠났다가 이런 봉변을 당했다. 서론부분만 봐도 대충 스토리의 결말은 예상된다. 아마도 가족 상봉으로 끝이 나겠지 했는데 실제로도 그렇더라. 작품의 결말이 해피엔딩인 것은 예상 된 일이었고, 아마도 작품의 여러 갈등들이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라 생각된다. 형을 찾아 떠난 안티포러스는 쌍둥이 형의 가족과 하인을 만나 여러 에피소드를 겪는다. 형의 하인을 구타하고 아내의 동생에게 사랑 고백을 하며 형이 받아야 할 목걸이를 자신이 받는다. 실로 보면 어이 없는 이야기다. 단지 얼굴이 똑같다는 이유로 이런 사건이 계속해서 생겨날까. 하지만 작가가 계속해서 한 사건을 중심으로 사건을 불려나가는 기법은 내 정신을 작품에 집중하게 한 것은 사실이다. 안티포러스의 쌍둥이 하인인 드로미오 형제가 없었다면 이러한 사건들은 계속되지 않았을 것이다.드로미오의 형제는 작품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들이다. 주인에게 구타를 당해도 자신의 할 말은 다하는 하인의 모습과 자신의 형수 될 사람을 지구본으로 비교하는 모습은 큰 웃음을 주는 부분일 것이다. 그 당시에도 여자의 미는 남자에게 있어 중요시 되었나보다. 마지막 장면에 드로미오 형제의 동생이 뚱뚱한 여자가 자신의 아내가 아니라는 것에 만족하는 모습은 꽤나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아드리아나와 루시아나의 남성관에 대한 갈등도 지금 현재와 별 다를 게 없다. 루시아나는 여자가 남자에게 복종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그것이 자연에 이치라고 받아들인다. 게다가 사랑을 하기 전에 복종하는 법을 먼저 배우겠다는 재미난 말을 한다. 그에 반해 아드리아는 남자가 갖는 자유에 불만을 가진다. 자신의 주장을 말해야 한다고 동생과 언쟁을 벌인다. 그래도 이야기를 쭉 읽다보면, 아드리아나가 상당히 여성스러우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남편에게 해주는 헌신적인 여성으로 나온다. 이렇게 인물간의 대화를 살펴보면 시대가 틀리고 배경이 달라도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오네스코, 『의자』지금까지 접해왔던 작품과는 달리 몹시 생소한 형태의 연극 작품이었다. 출연 배우는 단 두 명의 노인들이었으며 마지막에는 ‘변사’라는 노인들의 이야기를 전할 배우가 등장한다. 하지만 결국 극에서의 배우는 노인 두 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결혼한 지 75년 된 부부이다. 과거를 다른 방식으로 회상하며 까닭 없이 웃고 울고 화를 낸다. 그러던 중 할아버지는 중대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초대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전하기 위해서 대변인도 초청한다.손님들은 노인들이 머무르는 곳으로 하나 둘 찾아오는데, 그 인물들의 배역은 전혀 없다. 노인 두 명이 연기하는 것으로 보아 그들이 존재하는 것은 알겠지만, 그들의 의사 표현이나 대사, 행동은 실로 인물이 보이지 않기에 관객은 전혀 알 수 없다. 단지 그들의 대화에서 두 주인공의 대사만 들을 수 있으며 그로인해 극의 현 상황이 어떠한지 추측할 수 있다.극이 계속해서 진행되어 가면서 두 주인공은 발 디딜 틈 없이 의자들이 무대를 가득 메우고 있으며 조명은 공허하게 그 의자 무리를 비춘다. 늘어가는 의자의 개수와 점점 밝아지는 조명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바삐 움직이는 두 명의 노인들로 인해 관객이나 독자의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하며, ‘부조리극’의 실체를 이해하는데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갈수록 스토리는 황당무계해져 이번에는 황제가 등장하고 노인은 그에게 절을 하고 찬양하며 또한 그의 과거적 이야기를 넌지시 털어놓는다. 노파의 반복적인 노인에 대한 위로 또한 항당무계하다. "당신은 훨씬 더 훌륭한 사람이 될 수도 있었어요!"라고 노파는 연신 이야기한다. 아마도 죽음을 앞에 두고 자신이 일평생 인간의 존엄성과 같은 거대 가치를 좇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음에 죄책감을 느끼고 소리 높여 변명하는 인간 군상을 대표하는 노인을 지적하는 것 같다.그리고 노인은 자신의 무기력함에 면죄부를 부여할 대변인을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에는 노인의 메시지를 전달할 대변인이 등장하는데 그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며 마치 살아있는 인물이라기보다 벙어리와 귀머거리의 모습과 행동으로 배역 인물이 살아있음을 느끼지 못한다. 또한 그의 모습에 걸맞게 인간이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소음을 연신 내뱉을 뿐이다. 대변인이 내뱉는 소리 안에는 이라는 인사말이 담겨 있다. 그것을 끝으로 노인과 노파는 목숨을 버린다. 신문 기사에 따르면 이 작품은 이라고 보도했다. 과연 이 작품이 원제를 제공하는 원인에 대하여 서술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난해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워렌 부인의 직업버나드 쇼의 『원렌 부인의 직업』은 인물들의 성격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그 안에 많은 것이 내포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독립심이 강하고 기존의 사회 관념에 도전하는 현대적인 여성의 등장들은 상당히 과감하면서도 작가 자신이 사회에 도전하는 반항아의 이미지를 불러오기까지 한다. 그러한 이유인지 이 작품은 무대 상연에 부적절하고 부도덕하다고 판단되어 상영을 계속해서 금지 당했다고 한다.워렌 부인의 딸 비비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대학교육을 받은 지적이고 영리하며 강인한 젊은 여성이다. 책임감과 자립성을 갖춰 신여성의 인물로 묘사된다. 또한 사랑의 유희에서 벗어나 현실을 인식하는 독신주의로 그려지는데 이 설정은 지금의 여성상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키스를 거부하고 책과 종이를 드는 모습은 여성으로서 해야 하는 일들이 변모되어 남자들의 공간까지 위협하는 것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이 있다면 비비는 사람들의 친절에 냉담하다. 독립과 독신에 틀에 너무 갇혀 있기에 인물에게서 인간의 향 보다는 여성 해방론의 단면만을 너무 고집하여 인간미의 상실이 드러난다.원렌 부인은 화려한 외모에 40대의 여성으로 자기중심적이며 야비하며 사교적인 모습으로 비비와는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자립적인 여성에는 공통적인 부분을 가지고 있다. 비록 신식 교육을 받은 신여성은 아니지만 독신으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는 모습은 강한 인물로 묘사 되어 진다.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매춘업을 선택하고 나름대로 자본주의 사회의 한 직업인으로서 부를 축적한다. 이러한 워렌의 성격은 비비와 마찬가지로 기존의 여성과는 확연한 대조를 드러내며 신여성으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한다. 그녀의 성격이 가장 잘 나타난 부분으로는 목사 가드너와의 예전 관계에서 돈을 받지 않는 부분이다. 가드너는 자신과의 관계를 청산 할 것을 요구하며 돈 50파운드를 건네지만 “워렌은 아는 것이 힘”이라며 받지 않는다. 그러면서 목사인 가드너를 조롱한다. 여기서 그녀는 사회적인 권위와 현실적인 힘에 대항하는 용기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작품 안에서는 많은 것을 담아내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모녀간의 대립이라는 것이 이 작품에서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 원렌은 자신의 불우한 가정 형편 때문에 매춘업을 하게 되고 돈을 벌게 된다. 나중에 돈을 벌게 되서도 그녀는 그 직업을 포기하지 않고 더 나아가 포주의 자리에 앉는다. 그녀는 그런 자신의 일을 부끄럽게 생각지는 않는다. 환경이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합리화하여 딸과의 관계 회복을 거부한다. 결과야 자본주의에 물이 들어 딸과의 관계회복에 신경을 기울이기보다는 매춘업을 계속하여 냉혹한 면을 보여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녀에게서 모성의 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신여성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녀도 딸 앞에서는 어느 여성과 다를 것 없이 행동한다. 사사건건 딸의 생활에 갑섭하는 모습과 딸이 자신의 직업을 알고 자신을 거부하려고 하였을 때에 혈연관계인 딸로서의 의무를 이행하라는 장면들은 그녀에게서 인습적인 모습을 떠올리게 하며 딸에 대한 애착심이 강하다는 생각도 든다. 비비는 이런 어머니를 떠나 자신의 힘으로 사업을 일궈내며 독립을 하게 된다. 어머니의 물질적인 제안에도 거부를 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이런 모습들은 모녀간의 대립 속에서 그녀들의 부정적인 것들이 계속해서 비춰진다고 할 수 있겠다.
노부인의 방문뒤렌마크의 『노부인의 방문』은 소름끼칠 정도로 무서운 작품이다. 예전의 죄로 인한 한 인간의 소외감과 한 여자의 잔인한 복수는 이 작품을 최고의 비극으로 낳았다. 이 작품을 접하면서 영화 ‘트루먼 쇼’가 머릿속에 남았다. 영화의 내용은 주인공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알고 있지만 주인공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 일 역시 그런 환경에 둘러 쌓여있다. 물론 영화의 내용과 공통되는 부분은 없지만 정작 자신만이 소외되어 모든 이들에게 표적이 되어 심리적으로 갈등을 느끼게 되는 부분은 일맥상통하지 않았나 싶다. 주인공 일에게 복수를 시행하는 차하나시안, 즉 클래리는 엄청난 재벌이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재력으로 한 마을을 경제적 위기에서 구해내지만 그들의 정의를 산산이 무너트리는 존재로 등장한다. 그리스 신화의 신, 또한 복수의 여신 메데이아로 비유되기도 한다. 일과 그녀는 예전의 연인관계로 둘 만의 아름다운 추억이 존재하지만 그 안에는 배신과 한 여자를 지옥으로 떨어트리는 추악한 죄가 함께 자리 잡고 있다. 자신을 사창가로 내몰게 한 일과 그의 동료들에게 그녀는 복수를 한다. 위증을 섰던 그의 동료에게는 장님과 고자로 평생 그녀의 하인으로 살아가게 하는 복수를 시행하였고 일에게는 마을사람들에게 소외되고 그들에게 죽임을 당하게 하는 복수를 한다.내용은 이렇다. 경제적으로 위기가 찾아온 그녀의 옛 고향, 일의 마을에 경제적 위기를 풀어주는 대신 일의 죽음을 원한다. 마을사람들은 이에 클래리의 조건에 윤리적이지 못하며 반박하지만 그들의 마음에는 이미 경제적 위기에서 벗어났다. 실업자 구호금으로 살아가던 그들은 더 이상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외상으로 비싼 구두와 음식, 담배를 즐겼으며 새로운 건물의 신축으로 그들은 새롭게 변화될 자신들의 삶을 즐기고 있었다. 마을사람들의 이러한 행동으로 일은 계속해서 두려움 속으로 빠졌으며 누구도 믿지 못하는 상황까지 치닫게 된다. 그의 가족까지 그런 삶에 빠지자 일은 자신의 옛 죄에 대한 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려는 자세를 취한다. 하지만 그는 시장이 내준 총으로 자살을 시도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을사람들의 정의에 따르기로 한 것이다. 여기서 정의를 언급한 바 있는데 이것은 클래리의 조건에 먼저 나왔던 말이다. 자신의 억울한 누명에 의한 정의를 찾아 달라고 말하는 그녀.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정의이지 마을사람들의 정의관과는 같다고 할 수 없다. 경제적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 사람을 죽이는 일은 결코 정의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을사람들은 자신의 정의는 돈에 팔아먹고 그녀의 정의에 동조한다. 결국 마을사람들의 만장일치의 의견으로 일은 죽음을 맞이한다.
이문열, 『황제를 위하여』1980년부터 1982년까지 이 년에 걸쳐 계간 문예지 《문예중앙》에 연재한 다음 이 작품은 1982년에 처음 단행본으로 출판되었으나 초판에서 그만 그치고 말았다. 1984년에 다시 출판사를 바꾸어 출판하였으나 이번에는 출판사가 문을 닫는 바람에 역시 초판에서 끝나 버리는 불운을 맞았다. 1986년에 세 번째 출판사에서 출판되고 나서야 비로소 이 작품은 독자들한테서 큰 관심을 받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이 작품은 그의 다른 작품에 비하여 비평가들한테서도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이문열의 다른 단행본 작품과는 달리 이 소설에는 그 흔한 비평가의 작품해설조차 붙어 있지 않다. 과제를 위해 여러 책을 찾아보았지만 유독 이 작품에 대한 정보가 없다. 그 동안 이 작품에 관한 비평도 몇 편 안되지만 이러한 비평마저도 다른 작품에 대한 비평과 비교하여 볼 때에 그 질이 한결 떨어진다.그러나 김현 선생님은 이 작품에 대하여 ) 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또한 성민엽 선생님 역시 이 작품이 그의 작품집『칼레파 타 칼라』에 수록한 몇몇 중편소설과 함께 이문열 작가의 )을 이룬다고 주장한다. 이문열 작가 역시 )고 밝힌 적이 있다. 물론 작가의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데에는 적지 않은 위험이 따른다. 그러나 『황제를 위하여』의 경우 이라는 표현은 어디까지나 자식의 자식을 남에게 자랑하지 않는 동양적인 겸양에서 비롯된 말인 듯하다. (여기서 동양적 겸양이라고 쓴 것은 점차적으로 작품을 분석하면서 이야기 하겠다.) 비록 이문열 작가의 모든 작품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작가는 그의 여러 자식 가운데, 그 동안 세상에 내어 놓은 그 많은 자식 가운데에서도 자식에 해당하기에 이렇게 말한 듯하다.1. 작가의 말「 멀게는 개화파와 수구파의 투쟁에서, 가깝게는 민주 . 공산의 대립에 이르기까지 근세사 에 있어서 가장 격렬하고 비극적인 사건들은 모두 이념의 부재에서가 아니라 과잉에서 왔고, 옛것 또는 동양적인 것에 대한 집착보다는 새것 또는 서구적은 정(鄭)씨 성을 가진 한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다룬다. 작가는 한반도를 둘러싸고 열강들이 각축전을 벌이던 구한말에 태어나 일본 식민지와 한국전쟁을 거쳐 새로운 체제를 이룩한 제3공화국이 마침내 말로에 접어들던 1979년에 숨을 거둘 때까지 그의 삶을 마치 파노라마처럼 연대기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주인공의 개인적 역사는 곧 한국의 근대사에 부응된다고 할 만큼 이 소설은 한국 근대사와는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예를 들어 이 작품에는 이승만, 김구, 양기탁, 김좌진 김일성, 그리고 심지어는 더글러스 맥아더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대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 주역들이 거의 모두 망라되어 등장한다. 그 뿐 아니라 이 소설에는 갑오 농민운동과 한일합병을 비롯하여 3.1 독립운동, 8.15 해방, 6.25 한국전쟁, 4.19 학생혁명, 5.16 군사 쿠테타 등 파란만장한 근대사의 주요 사건들이 사실상 거의 모두 언급되어 있다.다시 김동욱 선생님은 )라고 설명하였다.황제는 정신세계를 굳게 믿기 때문에 그를 오직 상식과 합리주의의 관점에서만 판단할 수 없다. 만약 그러한 관점에서 주인공을 파악하려고 한다면 그는 한낱 미치광이나 정신병 환자, 기껏해야 돈키호테적 기인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단순한 미치광이나 정신병 환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이 소설의 곳곳에서 여실히 입증할 수 있다. 주인공이 단순히 과대망상증이나 편집증 환자라고 하기에는 그의 말이 너무 논리적이고 조리가 있으며, 화제의 말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황제의 생애를 과대망상증이나 편집증 환자 또는 미치광이의 삶으로 몰아치는 사람들에 대하여 이 작품의 화자는 )하고 수사적 의문을 던지고 있다. 한 마디로 김동욱 선생님이 주장하였던 낭만적 이상주의라는 관점에서 보면 황제는 병적인 인물이기는커녕 지극히 정상적인 인물인 것이다.앞에서 돈키호테적 기인이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것은 이 소설이 해학을 통한 신랄한 사회비판적 측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과는 크게 다르다는 점을 생각할 때에 그를 이러한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3. 비판적인 시각공산주의나 사회주의의 정치 이념은 이현웅이라는 작중인물이 주로 주가 되며, 황제를 비롯한 다른 작중인물들은 이 이념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한다. 이현웅은 1930년간의 간도폭풍 때부터 화요회계에서 활동하여 오다가 일본 경찰에 쫓기자 우연히 황제의 농장에서 생활하게 된 인물이다. 그는 철저한 공산주의자로서 자신의 신분을 감쪽같이 숨긴 채 황제가 창설한 학교에서 교편을 잡는다. 황제의 신민들을 선동하여 폭동을 일으키려다가 미수에 그치고 마침내 신하들에게 잡혀 황제 앞에 끌려온 이현웅은 황제를 봉건사회의 틀에 잡혀있다고 비난한다.「 “오히려 토지며 모든 재화는 모든 인민의 것이오. 만인은 평등하게 이 땅에서 자기의 몫을 누 려야 하오. 그런데 당신은 같은 자들이 중간에서 빼앗고 가로채는 바람에 저들은 저렇게 굶 주리고 헐벗게 된 것이오.”“내가 언제 저들의 것을 가로채고 빼앗았단 말이냐?”“일하지 않은 자는 먹지도 말아야 하고 벌지 않는 자는 쓰지도 말아야 하는 법이오. 그런데 당신은 일하지도 않고 벌지도 않으면서 저 사람들보다 더 기름진 음식을 먹고 더 좋은 옷을 입고 있오......”“이제 본색을 알고 보니 네놈은 허자(許子)의 아류(亞流)로구나.”“그런 케케묵은 봉건시대의 잡설이 아니라 위대한 마르크시즘의 윤리적인 바탕에서 말한 거 요.”“내 오랫동안 들었으나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란 별로 없었다...... 맑시즘인지 말오즘인지 내 알바 아니지만, 기왕의 네 주장이 그를 따른 것이라면 그는 필시 허행(許行)의 소설(所說)을 치장하고 비튼 것에 틀림이 없다.” 」)황제는 이렇게 이현웅을 준엄하게 꾸짖고 나서 신기죽으로 하여금 허자의 행실이 기록된 맹자의 등문공(藤文公)장을 읽어주도록 명한다 그러고 나서 황제는 이현웅이 주장하는 공산주의 정치 이념이 어디까지나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즉 )이라는 것이다.이 소설의한결 더 복잡하고 미묘하다. 황제의 남조선이 창건의 근거로 삼는 「정감록」이 그러하듯이 처음 남조선은 불교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승려 출신인 두충이라는 신하가 황제를 보좌하면서 불교는 더욱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황제는 점차 불교를 배척하고 도교를 숭상하기에 이른다. 부처를 두고 불씨(佛氏)라고 부르는 데에서도 불교에 대한 비판이 강하게 드러난다. 두충이 부처가 공자나 맹자처럼 성인이라고 주장하자 황제는 삼강오륜을 범한 부처가 어떻게 성인으로 부를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불씨가 성인이란 소리 역시 두공(杜公)에게서 처음 듣겠오. 대게 성인이란 인륜을 저버리지 않 는 가운데서 나는 법인데, 불씨는 먼저 자식으로서 아비의 바램을 어기고 왕위를 버렸으니 부 자의 도리를 다하지 못했고, 신하로서는 나라와 군부(君父)를 버렸으니 군신(君臣)의 도리도 다 하지 못했오. 또 처자를 두고 설산(雪山)으로 들어갔으니 부부(夫婦)의 도리도 다할 수 없었으 며, 세속을 버렸으니 봉우의 도리를 다할 수 없었고, 생사(生死)를 잊으니 장유(長幼)의 도리 역시 지킬 수 없었을 것이오. 이와 같이 인륜의 중요한 다섯 가지를 모두 지키지 못했는데 어 찌 불씨를 성인이라 할 수 있겠오?」)게다가 황제는 부처의 자비에 대해서도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예수의 사랑처럼 부처의 자비를 인(仁)이 변한 것으로 간주하는 황제는 불교의 자비 정신이 인간을 분별없는 존재로 만드는 데에 한몫을 담당하여 왔다고 주장한다. )하고 말하고 있다.이렇듯 이 소설의 주인공은 정치적 이념이나 종교적 신념 체계에 못지않게 인간이 만들어 놓은 모든 제도나 학문 체계 역시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다. 김동욱 선생님은 작가의 비판을 )라고 주장한 바 있다.이문열 작가는 오늘날의 여성주의를 향해 비아냥대며 호통을 치고 있다. 그의 작품 『선택』에서 그는 자기실현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가정을 뛰쳐나오는 오늘날의 여성들이 결손 가장을 낳고, 그 때문에 이혼증가율과 청소년의 비행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황제의 세계관은 곧 화자의 세계관과 관련성을 지니고 있다. (관련성에 대한 분석은 차차 이야기 하겠다.)이문열 작가의 이런 남성우월주의태도에 김신명숙 선생님은 ) 라고 반발하였다. 물론 이 작품을 겨냥하고 한 반박은 아니지만 이토록 강하게 반박한 것으로 보아 이문열 작가의 의식에는 ‘반페미니즘’ 성격이 짙게 내재되어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4. 화자의 서술방식과 관점「색목인들이 우리 삼한의 신민에게 옮긴 미신 중에 가장 허황된 것은 과학과 합리이다. 어찌 인 간의 짧은 안목이 저 먼 하늘의 일을 살필 수 있으며 그 작은 지혜가 허다한 천지 만물의 원리 를 한가지로 깨우쳐 알 수 있으랴. 그 두 미신은 일견 인간의 고매한 정신에서 우러난 것같이 보이지만 실인즉 눈에 보이는 현상만의 질서이며 물질에 대한 정신의 예속과 굴종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지금 사람들은 오직 그 미신에 얽매이어 지난날의 참다운 예지와 아름다움을 헌신짝 같이 버리고 있다.」)이 말은 서술자의 말이 아니라 서술자가 「백제실록」이라는 정감록 신봉자의 기록을 직접 끌어내어 그대로 이야기한 것이다. 유철균 선생님은 )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므로 「백제실록」서술자 및 그가 서술 대상으로 삼은 등장인물들이 신봉하는 정감록에 대한 믿음과 그것에 기초한 사건을 통해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다.「일찍이 성현께서는 괴력난신을 말하지 않으셨으되 제왕의 태어나심은 오히려 거기에서 종종 벗 어났다. 제왕은 부명에 응하고 도록을 받아 대업을 이루나니 하수에서 용마의 도를 얻어 복희 씨가 일어나고 낙수에서 신령한 거북의 서가 나와 하우씨의 융성함을 볼 수 있었다.」)이 소설의 서술자는 「백제실록」이라는 편년체 서사 형식의 기록을 바탕으로 하여 스스로 황제를 칭하는 한 인물의 일생을 서술해 나간다. 위의 예문은 황제의 일생담이 시작되는 서두인데 이 대목은 「백제실록」이라는 기록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라 한다. 그러다가 그는 이처럼 기록을 전적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 실록의 내용을 자신의 목소리로 바꾸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