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품사 분류 학술 문법과 학교 문법을 비교하고 설명하기우리말 문법가들은 주로 조사와 어미의 처리를 달리하여 단어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보여왔다. 이는 즉 우리말의 조사나 어미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의 문제이다. 굴절어의 굴절 요소들은 단어에 결합하므로 그 전체를 단어로 보아도 무방하나, 우리말의 조사나 어미는 구에 결합하므로 조사나 어미가 결합한 단위를 단어로 보기가 곤란해진다.① 분석적 방법조사와 어미의 일부를 단어로 인정하는 입장, 대표적인 학자는 초기 문법가인 주시경, 김두봉이다. [동백꽃/이/탐스럽/구나, 철수/가/책/을/읽/었다] 언어 단위를 최대한으로 분석하려는 태도에 기인한 것이다.② 종합적 방법조사와 어미를 모두 단어로 인정하지 않는 입장, 대표적인 학자는 역사문법가들로 정렬모, 이숭녕, 장하일, 김민수 [동백꽃이/탐스럽구나, 철수가/책을/읽었다] 이는 현재의 북한문법으로 람스테트를 비롯한 알타이어 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③ 절충적 방법조사를 단어로 인정하고 어미는 단어로 인정하지 않는 입장, 대표적인 학자는 1930년대에 한글맞춤법 제정에 참여한 학자들로 최현배, 정인승, 이희승 [동백꽃/이/탐스럽구나, 철수/가/책/을/읽었다] 현재 학교문법으로 조사에 선행하는 체언이 어미에 선행하는 어간보다 자립성이 높으므로 조사도 어미보다 자립성이 높다는 것에 근거를 둔 것이다.2. 체언(명사, 대명사, 수사), 조사(격조사, 보조사, 접속조사) 분류하기가. 사물(대상)의 이름을 나타내는 말.[풀이] 명사나. 사물의이름을대신하는말[풀이] 대명사다. 사물의수량을나타내는말[풀이] 수사격조사 : 문장 내에서 문법적 자격을 갖도록 함보조사 : 앞말에 특별한 의미를 첨가접속조사 : 두 단어를 같은 자격으로 연결함3. 접속조사와 공동격조사의 차이점공동격조사가 쓰이는 문장의 서술어는 ‘만나다, 싸우다, 친하다, 사랑하다.’ 등과 같은 대칭동사, 대칭형용사들이고, 만약 과/와, 하고, (이)랑 이 대칭동사가 아닌 다른 동사와 쓰이는 경우는 접속조사로 본다. 이때에는 둘 이상의 체언을 단순히 같은 자격으로 접속시켜 주는 경우이다.이 둘은 생략했을 때의 문장 성립 여부나, 어순의 변화 가능 여부로도 구분이 가능하다.4. 대명사와 명사의 차이① 명사사물의 이름을 나타내는 말이다.주어나 목적어 자리에 쉽게 나타난다.관형사 관형어의 수식을 받는다. 대명사나 수사는 그렇지 않다.격조사와 자유롭게 결합한다.복수접미사 결합 가능하다. 수사의 경우는 불가하다.② 대명사대상의 이름을 대신하여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따라서 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로 파악되는 상황지시성을 지닌다. 명사는 상황과 대체로 무관하게 동일한 의미로 파악된다.인칭대명사와 지시대명사로 나뉜다.한국어는 대명사가 그렇게 발달하지 않았다. 그 개수가 많다고 하더라도 명사만큼 많은 것은 아니다.명사와는 다르게 대명사의 문법적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지위에 따라(나/저, 우리/저희) 그리고 격에 따라 해당하는 조사와의 결합에 있어서(주격조사가 붙으려면 ‘저’가 ‘제가’로 바뀜) 형태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자신/스스로의 경우 혼자 쓰이는 사례가 있으므로 이는 명사이다.‘자신’과 닮아있는 ‘자기’(재귀칭)의 경우 대명사로 한문장안에서 선행명사구인 체언을 대신한다. 이 선행명사구는 3인칭이고, 유정명사여야한다.5. 의존명사와 자립명사의 차이 = 자립성을 기준으로 명사를 분류① 의존명사문장에서 자립성이 없고 반드시 관형어를 필요로 한다.(관형사(이/그) / 용언의 관형사형 / 명사의 관형형(~의) / 명사(구) )결합되는 조사가 제한된다. 예를 들어 의존명사 ‘지 / 나위 / 리 / 수 / 법 / 턱 ’등 의 경우 주격조사와 결합하는 것이다. 한편 의존명사 ‘뿐 / 따름 / 나름 / 터 / 때문’ 등은 이다와 결합한다. 이렇게 제한되는 조사에 따라 의존명사는 주어성 의존명사, 서술성 의존명사, 목적어성 의존명사, 부사성 의존명사, 보편성 의존명사로 나뉜다.한편 의존명사의 의미는 형식적이고 추상적인데, 문맥이나 상황에 따라 주어진 자립명사를 지시하는 대용의 의미 기능[맛있는 것, 예쁜 것], 시제나 동작상, 양태와 같은 문법적인 의미 기능[동안에(지속), 중에(진행), ~하는 법(이다)(당위). 수 (있다)(가능)], 사람이나 사물, 시간, 공간 등의 단위를 나타내는 단위의 의미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마지막 항목의 경우 단위성 의존명사라고 지칭하며, 수량을 나타내는 단위들이고, 그 앞에는 수사나 수관형사와 같은 수량 표현을 받는다.6. -마련, -일쑤 품사의 문제~기가 일쑤이다 : 관형어를 필요로 하는 의존명사와 다르게 주격조사가 붙었다.~게 마련이다. ~던 마련으로는 : ‘던’으로 보아 용언의 활용형인 관형어의 수식을 받는다.~이기에망정이지 역시 의존명사로 인정한다. 100점을 맞지는 못할 망정으로 우리는 찾음7. 형태소, 이형태, 교체의 기본 개념 (6/26), 교과서 30쪽형태소란, 최소의 유의적 언어단위를 그 정의로 하고 있다. 즉 뜻을 가지는 문법단위 중 가장 작은 단위인 것이다. 이러한 형태소는 문장에서 단독으로 쓰일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자립형태소와 의존형태소로 나뉘고, 형태소가 실질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여부에 따라 실질형태소와 형식형태소로 나누어진다. 자립형태소는 우리말의 명사나 부사 거의 대부분이 해당되고, 동사나 형용사에 해당하는 어간과 어미는 의존형태소이다. 한편 실질형태소는 명사, 부사, 동사나 형용사의 어간이 모두 포함되며 조사와 어미는 형식형태소이다. 즉 자립형태소는 대체로 실질 형태소와 일치하고, 의존형태소는 대체로 형식형태소와 일치하나 동사나 형용사의 어간은 의존형태소이면서 실질형태소에 속하는 것이다.하나의 형태소는 주위 환경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실현되기도 한다. [‘웃는다’의 경우 웃고의 경우 ‘욷-’, 웃는다에서는 ‘운-’ 으로 실현] 이처럼 하나의 형태소가 그 음상을 달리하는 현상을 교체라고 하며, 교체에 의한 교체형들을 각각 이형태라고 한다. 이 이형태들은 서로 보완하여 출연하는데, 이를 상보적 분포를 이룬다고 한다. 사실상 이것이 형태소와 이형태를 가르는 절대적인 기준이 된다.이형태의 교체는 음운론적 교체와 형태어휘론적 교체로 나누어진다. 음운론적 교체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주격조사(이/가)나 목적격조사(을/를)이다. 이는 선행 체언의 끝소리가 자음인지 모음인지 그 음운론적 조건에 따라 이형태가 다르게 분포하는 것이다. 형태론적 이형태는 특정 단어 뒤에서만 교체가 실현되는 이형태를 말한다. 그 예는 ‘하다’의 뒤에 과거시제 선어말어미가 ‘-였-’으로 나타나는 것을 들 수 있다. 여기에서 가장 그 원형을 담고 있는 것으로 그 대표형을 고르게 된다.
1. ‘동사 - 형용사’ 의미 분화의 차이영어를 비롯한 대부분의 유럽언어에서는 동사와 형용사의 구별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또한 동사 안에서도 상태 동사와 동작동사로 그 동사가 가지고 있는 의미로써 나뉘는 것에서도 이러한 성격이 잘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어의 경우 형용사와 동사의 의미적 구별은 영어의 그것만큼 섬세하지는 않다. 게다가 단어의 형태적인 특징에서도 영어의 동사-형용사 구분에 비해 한국어의 동사-형용사의 구분 기준은 매우 약한 편이다. 왜냐하면 동사와 형용사가 공유하는 ‘용언’으로써의 공통점이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① 동일한 기본형 어미 “-다.”로 끝난다. ② 시제를 가질 수 있다. ③ 어형변화에 별도의 품사를 설정해야 할 만큼의 커다란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2. 접속사한국어 학교문법에서는 접속사를 품사로 설정하지 않고 있다. 한국어에 접속사를 설정하려는 사람들은 흔히 “그리고, 그러나, 그러면, 그래서”등의 어류를 생각하겠으나, 이보다는 영어의 접속구문에 해당하는 것들은 우리나라의 조사나 어미로 실현된다는 점이 그 특징이다. 혹은 therefore, thereafter, thereby와 같이 부사로 볼 수도 있다. 즉 만약 국문법 학자들이 접속사를 하나의 품사로 설정하고 있다면 그것은 유럽 문법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한국어에 접속구문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어와 영어의 접속구문은 우선 등위접속과 종속접속으로 나뉜다. 등위접속은 명사접속과 문장접속으로 다시한번 나뉜다. 종속접속에서 형용사절은 관계대명사를 이용하는 것도 특기할 점이다.3. 전치사와 조사영어와 같은 유럽언어는 전치사형 언어, 우리말과 같은 언어는 후치사형 언어로 분류되며, 여기에서 조사가 바로 후치사이다. 조사는 영어의 전치사와 달리 네 가지 특징을 가진다. ① 격기능 (주격 표시) ② 전치사 기능 ③ 접속사 기능 ④ 부사적 기능한국어에는 장소를 나타내는 조사가 ‘-에/-에서’ 밖에 없는데 영어의 경우 상대적인 위치를 나타내는 전치사가 세분되어 있다.(in, on, under, over, by, before, between, behind, beside) 한국어는 이를 해당 위치명사에 처소격 조사를 결합해서 표현한다. (방 안에, 책상 위에, 책상 밑에, 집, 뒤에)4. 대명사한국어의 대명사는 열린 체계이고, 영어의 대명사는 닫힌 체계이다. 한국어의 대명사는 영어의 2인칭 표현 you 에 비해 상당히 많은 표현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한국어는 3인칭 대명사가 잘 발달하지 않은 반면, 영어는 잘 발달해있다. 마지막으로 한국어는 대명사의 생략이 자유로운 반면 영어는 그렇지 않다. 영어에서는 ‘Where do you going?’ 이라고 물었다면 한국어에서는 ‘어디가십니까?’ 라고 물어 그 문장의 주어인 대명사가 생략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5. 관사영어의 경우 관사를 학자마다 개별언어 특수 어류로 보거나, 지시사들과 같은 범주로 묶는 등 그 관사가 지닌 특유의 기능을 연구 범위로 설정하고 있으나 한국어의 경우 관사가 발달하지 않은 언어에 속하며 그에 관한 특별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6. 조동사조동사란 원래 본동사로 쓰이던 말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본래의 의미를 잃고 다른 동사에 보조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한국어 문법에서는 이를 보조동사 혹은 보조용언이라고 부른다. 영어의 경우 조동사는 하나의 범주로 묶여 일정한 문법적 특성을 동일하게 지니고 있다. 예를 들면 영어의 조동사는 3인칭 단수 현재 시제에서 형태 변화가 없고, 과거 분사형이 없고, to-부정사 구문을 만들지 못하고, 완료형이나 동명사도 만들지 못한다. 그러나 한국어의 조동사라고 할 수 있는 동사들은 이러한 특징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
변증법변증법 하면 보통 정반합을 떠올린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용한 변증법과는 그 거리가 멀다. 그래서 우리는 이 수업에서 변증법이라는 말 대신 문답법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로 하였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사용하는 변증법은 곧 묻고 답하는 대화의 기술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대화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두 사람간의 동일한 시간과 공간속에서의 대화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질문과 대답이 있다. 누군가 한 질문에 대해 대답하고, 다시 그 대답에 질문하는 식으로 마치 탁구공을 주고받는 것과 같다. 이러한 대화는 영혼에서의 내적운동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운동은 능동과 수동이 수반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능동과 수동이 수반되면 내가 질문하고 내가 대답하는 것도 가능하다. 질문과 대답은 단순한 사유에 의함이 아니라 언어, 말에 의한 것으로써 그 목적은 궤변이나 정치적 선동이 아니다. 잘 말하고, 잘 행동하여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다.이것은 소크라테스가 시장에서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쓰던 방식을 정교화시킨 것이다. 이것에는 산파술, 조산술이라는 이름도 있다. 이는 단순히 질문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질문해서 안다고 하는 사람이 ‘모른다.’라고 이야기할 때 까지 질문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찌보면 상대방을 무지의 감옥에 가두는 지식의 노예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고통을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질문을 받은 사람의 사유를 증진시켜서 무지로부터 풀려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진리를 향해가도록 돕는 것이다.당시의 대부분의 소피스트들은 정치에 대해 이야기했다. 예를 들면 웅변, 설득, 재판에서 이기는 방법과 같은 것들이다. 이것은 사회적인 성공을 이끄는 말의 기술로써 소피스트들은 이를 생계수단으로 삼았다. 반대로 소크라테스는 그의 유명한 ‘너자신을 알라’ 라는 말처럼 인간적인 것에 주의를 기울였다.그렇다면 여기에서 위에서 언급한 ‘질문하고 다시 질문하는’ 즉 반어법(아이러니)에 대해서 살펴보자. 아이러니의 기본적인 의미는 ‘질문하기’ 인데 주제에 맞는지 동의할 수 있을 때까지 의심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이는 어떠한 화제에 대해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이 그 핵심으로 한다.그러므로 여기에서 변증법의 특징 세가지를 짚고 넘어가야겠는데, 첫째는 질문자와 대답자 외에 판정하는 제 3자를 배제하는 것이다. 이사람이 있어 조정하고 정리하고 종합하는 역할을 하면 문답법의 기술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는 질문하는자가 자신의 고유한 입장을 표현하지 않는 것이다. 생각의 대립이 생겨버리면 대화가 정밀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소크라테스가 ‘위장된 무지’라는 평을 얻기도 했으나, 그렇다 하더라도 소크라테스테 따르면 우리는 일단 감정적인 반응은 은닉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셋째는 언제까지 대답을 거부할 유용성이 있는지에 대한 문제이다. 대답한자 자신이 고유한 오류를 인정할 수 있을 때가 그 문제에 대한 답이다. 대답한자는 처음부터 ‘모른다.’라고 이야기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올바른 문답법의 건설적인 흐름을 방해할 뿐이다. ‘모른다.’는 무지의 마지막 순간에서 절규에 찬 포기의 토로, 고백만이 그 의미가 있다.이는 절망적 상황처럼 보인다. 이를 아포리아라고 하며, 온 신체가 감전되어 지적 마비상태가 온것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아직 희망을 못 본 상태로 누군가가 도와주기만 하면 얼마든지 희망을 볼 수 있다. 모르지만, 알고싶다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 순간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 시점이다. 질문하는 사람과 대답하는 사람사이의 주도권의 전복이 일어나는 것이다. 대답하던자가 질문자가 되고, 질문하던자가 대답자가 되는데 여기에서부터 무지의 노예상태에서 해방이 진정으로 시작된다. 대칭적 출발점에서 결국은 두 사람이 합일할 수 있는 곳으로 나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상황까지 가기 위해 질문자는 등애와 같이 귀찮게 따라붙어서 ‘그만 질문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집요해야한다. 그리고 이러한 집요함의 끝에 대답자로 하여금 최종적 진리에 도달하고 마침내 스스로 결론을 내도록 해야한다. 이렇게 일어난 아이러니의 전과정은 곧 ‘정화(카타르시스)’이다. 정화란 마치 우연인 것처럼 해서 한 사람을 온갖 방법으로 절망으로 만들고, 지적인 노예였음을 밝힌 뒤 상대방이 갖고 있는 무지, 억견, 오류 등 진리가 아닌 것들을 완전히 일소시키는 것이다.
2. 다음 비평 용어의 사전적 정의를 서술하고 실제 사례를 들어 구체적으로 설명하시오.아이러니(Irony)/모티프(Motif)/원형(Archetype)/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기계는 근대화의 등장과 함께 인간 소외현상을 일으키는 부정적인 존재로 오랫동안 인식되어왔다. 이는 영화 ‘모던타임즈’나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 등 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인간이 어떤 대상에 갖는 일종의 이미지가 있고, 이것이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오랜 시간동안 녹아들 때 우리는 이것을 ‘원형’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이 소설에서 기계뿐만 아니라 다른 원형 또한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어머니’이다. 어머니는 특히 한국 문학에서 모성애와 따뜻함, 보살핌, 등의 긍정적인 가치로 이어진다. 하지만 김영하는 이러한 원형을 자신의 소설 속에 곧이곧대로 끌고 들어오지 않는다. 이 때문에 우리는 예상치 못했던 것들과 마주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이 소설의 첫 번째 아이러니를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일그러진 원형에 대한 아이러니이다. 먼저, 기계는 차가움과 공포의 기존 이미지를 벗고 유일한 소통의 대상, 해준만큼 보답하는 예의바른 존재로, 어머니는 자애로움이라는 기존의 이미지를 벗고 주인공의 따라지 인생의 원흉으로 각각 재탄생된다.이 소설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주인공은 기계를 분해하거나 조립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차에 ‘캐리’라는 이름을 붙이고, 사람이 부숴질 때보다 캐리가 부숴질 때 서럽게 우는 등의 강한 애착을 보인다. ‘당신’ 역시 나중에는 ‘냉장고’라는 기계 속에서 나와의 소통을 완성한다는 점에서 기계는 주인공의 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존재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주인공은 사람들이 기계를 함부로 하는 것에 분노한다. 그러나 사실 주인공은 이러한 사람들 덕에 살아가는 A/S요원이다. 그리고 ‘당신’에게 접근할 때 역시 그녀의 기계인 자동차를 몰래 고장 내고, 다시 고쳐주면서 접근하는 방법을 택한다. 여기에서 주인공의 이중적인 태도라는 아이러니를 발견할 수 있다. 주인공은 기계를 함부로 쓰는 사람에 대한 경멸을 갖지만, 동시에 그러한 상황 덕분에 먹고 살아갈 수 있으며, 사랑을 얻을 때에도 그러한 자신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소설을 진행할 수 있게 하는 힘이자 원동력인 ‘기계’는 이 소설의 모티프라고 볼 수 있다. 단순하고 소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요소인 것이다.두 번째 살펴볼 원형은 엄마이다. ‘엄마는 역시 엄마였습니다.’ 라는 문장 뒤에 어머니는 주인공의 조립물들을 가뿐히 부숴버리는 일그러진 어머니 원형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어머니 역시 아들을 사랑이대상이 아닌, 자신의 인생을 망친 원흉으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주인공의 시각에서 어머니는 남자들의 뒤대주는 한심한 술집여자였다. 그녀가 세워놓은 삶의 방식에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주인공의 태도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도 연결 지을 수 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아들이 아버지를 거부하고 어머니와 결합하고자 욕망하지만 이 욕망은 끝내 좌절되고 마침내 아버지의 세계에 편승하며 극복된다는 정의를 가진다. 여기에서 아버지는 사회를 유지시키는 법이나 제도, 관습 등의 거대한 존재를 상징한다. 물론 이 소설속의 주인공이 거부하는 대상은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이지만, 그녀가 꾸려놓은 삶의 방식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볼 수 있다.
- 작고 주변적인 근대성을 찾아서한국 문학을 이야기하기 전에 문학사에 관한 문제 의식을 빼놓을 수는 없다. 문학 비평과 문학 연구의 완강한 제도적 경계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우리는 문학이라는 개념이 역사적 범주에 속한다는 전제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면 근대성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들로 자연스럽게 초점을 맞추게된다.을 한국어로 번역하면 근대와 현대가 모두 가능하다. 이것은 개념적으로 혼란이 일어나는 것인데, 이 개념을 성취하는 것이 한국 문학에서 매우 복잡하기 때문이다. 한국 근현대문학은 그 특성상 불연속성을 지니고 있기에, 사실 근대라는 말은 한국에게 식민 지배와 분단이라는 역사적 상황에서 상처를 상기시킨다. 따라서 서구 중심적인 시각에서처럼 그 개념 획득이 쉽지 않은 것이다.우리가 라고 부르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의 영역이라기 보다는 이념적, 상상적으로 구성된 추상적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해서 이 단어를 객관적으로 사용하려고 한다.1. 김현 김윤식의 『한국문학사』이 문학사가 한국문학의 근대성 문제와 정면으로 대결하려는 연구자의 자의식을 드러냄으로써 한국근대문학사를 둘러싼 역사적 문제의식을 고양시켰다. 그 앞에 나온 임화의 『신문학사』의 과 백철의 『조선 신문학사상사』의 사조 중심주의와 조연현의 『한국 현대문학사』의 단선적인 문헌적 태도를 극복하려는 의지의 소산이었다.당대 역사학계의 이론적 성과를 적극 반영하여, 전통단절론과 이식문화론을 이론적으로 극복하려고 노력함으로써 ‘구라파 문화를 완성된 모델로 생각해서는 안된다.’,‘한국문학은 문학인 동시에 철학이다.’ 라는 전제를 세워 ‘한국문학은 개별문학’ 이라는 당위를 실현하고자 하였다.그러나 여기에는 몇 가지 비판의 대상이 존재한다. 우선 문학사의 동적인 계기를 작품이나 문학성의 변모에서 찾지 않고, 사회사적인 요인에서 찾아서 문학 집적물에 연역적으로 적용하고 있다는 점과, 문학사를 지성사의 범주와 동일시하여 철학적인 것을 문학에서 찾아내려고 함으로써 문학사의 내적 체계를 구체화하지 못하고, 사상사의 하위 범주로만 문학사를 구성했다는 점이다.또한 이들의 문학사는 임화의 유명한 명제인 ‘신문학사의 대상은 물론 조선의 근대문학이다. 무엇이 조선의 근대문학이냐 하면 물론 근대 정신을 내용으로 하고 서구 문학의 장르를 형식으로 한 조선어 문학이다.’를 완전히 극복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김현, 김윤식의 전제 ‘구라파 문화를 완성된 모델로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함이었지만 임화의 논리 가운데 근대의 정신은 수용하고, 서구 문학의 장르는 부정하는 태도로 임화의 논리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한계를 지닌다. 물론 이 논리는 1973년이라는 상황에서는 상당히 전투적 효과를 실현한 것이다. 그들은 영 정조 시기의 문학적 집적물들을 동원하였는데 이는 근대적 보편성의 씨앗을 한국문학 내부에서 찾아냄으로써 그 보편성에 참여하고자 시도한 것이다. 한국 근대 문학의 출발이 제도적인 문학성의 수입과 번역으로부터 가능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은 이식문화론을 전면적으로 수용하는 것과는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