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여성주의와 생태정의구현INDEX 생태 여성주의 구분 생태 여성주의의 출범 생태 여성주의의 탐구 주제와 논리 생태정의 구현01 생태여성주의 구분현대 여성주의 - 대안문화 운동의 일환으로 1960 년대 중반 미국의 시민권 운동이 절정일때 등장 자유주의의 입장 ☞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권을 여성에게도 확장 . 남녀가 교욱과 취업 , 보수 면에서 시릴적으로 동등하게 대우받길 요구 마르크스주의 입장 ☞ 여성에 대한 것을 포함한 모든 착취의 구조적 근원 , 곧 자본주의를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 사회주의 입장 ☞ 성차별과 인종차별 같은 형태의 억압은 단순히 생산수단의 소유관계를 바꾼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형태의 억압을 근절하려면 계층적이고 권위주의적 사회구조를 청산해야 함 급진주의 입장 ☞ 가부장제 모든 형태는 억압과 착취의 근원 . 남성은 공포의 대상인 자연과 죽음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여성과 자연을 지배하려 함 . 이때의 여성은 단지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 , 혹은 남성의 성욕을 충족시키는 것을 주요 ‘ 기능 ’ 으로 하는 존재로 정의 문화 여성주의 영향 - 1960~70 년대 초 여성주의자들의 입장 이들은 신체적인 특징을 제외하면 여성이 남성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주장 . 이들은 여성만의 특징에 대한 긍정적 평가 ☞ 가부장제가 모든 억압의 근원이라는 ‘ 급진적 여성주의 ’ 를 수용하면서 성차별 , 위계구조등으로 얼룩진 가부장 문화를 대체할 ‘ 여성적 대안문화 ’ 를 창달해야 함을 주장여성적 대안문화 생물학전 본질주의 ☞ 여성의 출산 능력과 같은 여성만이 지닌 특질들 때문에 본래적으로 남성에 비해 관계적이고 자애롭고 보살피며 창조적이고 자연과 맞닿아 있음 구성주의 ☞ 젠더는 본래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변용의 결과이자 사회적 구성물 . 대부분의 문화 여성주의자들은 구성주의자 . 문화 여성주의 영향 - 1960~70 년대 초 여성주의자들의 입장 이들은 신체적인 특징을 제외하면 여성이 남성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주장 . 이들은 여성만의 관계적이고 타자 지향적이고 양육적인 여성적 특질을 발현하는 새로운 문화의 창달이 필요하다 .02 생태여성주의의 출범‘ 생태 여성주의 ’ 라는 용어 생태여성주의가 처음 쓰인것은 프랑스 여성주의자 프랑소와 도본느가 설립한 생태여성주의 센터 “ 생태여성주의는 지금껏 별개로 생각되었던 두 가지 투쟁 , 즉 여성운동과 생태운동의 통합을 추구하는 것 ” 이라 정의 지구를 구하기 위한 생태 혁명에 여성들이 앞장설 것을 호소 일반여성주의와 생태여성주의의 차이점 일반여성주의 ☞ 정치적 입장은 어떻든지 간에 환경 개량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을 도구로 보며 여성에 대한 억압과 생태위기 문제를 연계시키지 않음 . 생태여성주의 ☞ 환경 개량주의를 비판하고 여성과 자연을 억압과 착취로부터 동시에 해방 시켜야 할 대상으로 파악 . 생태여성주의의 종류 - 자유주의 입장 , 사회주의 입장 , 사회생태학 , 심층생태학 등 여러가지 입장 탄생03 생태여성주의의 탐구 주제와 논리생태여성 주의의 선결조건 생태여성주의의 분파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통점有 최소한의 전제 = 여성에 대한 지배와 자연에 대한 지배 사이에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련이 있음 , 여성주의의 이론과 실천은 반드시 생태적 시각을 포함해야 함 . ‘ 워렌 ’ 의 탐구주제 명료화 여성과 자연에 대한 이중지배의 역사기원 4500 년전 유라시아 유목들이 서유럽사회를 침범한 사건으로 보는 견해 . 침범이전에는 여신을 숭배하는 노동력 위주의 모계 정착 사회 ☞ 하늘의 신을 섬기는 가부장 사회 근대 합리주의 철학전통에 내포된 합리성 개념에서 그 기원을 찾는 사례 - 서구의 인간 / 자연의 이분법과 관련한 갖가지 이분법적 사고 이성 ☞남성적이고 합리적인것 . 비이성 ☞여성적 , 비합리적인 것 이 속에 ‘ 여성은 곧 자연 ’ 이라는 연결고리가 숨어 있음을 주장 16-17 세기 과학혁명 시기에 일어난 문화와 과학의 대변혁 . 17C 이전에 자연은 자비로운 여성 혹은 만물을 양육하는 어머니로서 하나의 유기체로 인식 ☞ 과학혁명이후에는 단순히 생명물학적 특징 자체가 아니라 여성 특우의 육체적 경험 때문에 처지가 달라짐 ③여성과 환경파괴간의 관계를 보여줄 수 있는 경험증거 ④종교 , 예술 , 문학 등에 나타난 여성과 자연의 상징결합 ⑤생태여성주의 인식론을 구축 ⑥생태여성주의 이념을 실천 ⑦생태여성주의 환경 윤리를 새롭게 개척 남성의 여성지배와 인간의 자연지배 사이에 부당성의 구조적 유사성에 착안하여 생태여성주의는 지배로부터 해방이라는 생태정의관을 보여준다 . ☞ 억압적 개념구조를 해체하여 지배와 복종의 관계를 극복하려 함 억압적 개념의 부당성 ⓐ가치 위계의 사고 – 높은 가치에 매달리는 사고 ⓑ가치 이원주의 – 반대와 배타성 . 이분법적 사고 ⓒ지배의 논리 – 종속을 정당화로 이끄는 사고 ▦Ⓐ + ⓑ + ⓒ = 자연과 여성의 열등성을 고찾화시켜 지배논리를 통한 억압적 개념화 완성‘ 돌봄의 윤리 ’- 마리린 프라이 (Marilyn Frye) 생태정의를 구현하려는 자세는 정복의 윤리적 태도에서 돌봄의 윤리적 태도로 가능하다고 말함 . 오만함의 인식에 근거한 정복태도를 버리고 사랑에 기초한 돌봄의 태도를 실천하려는 자세에서 생태정의 구현을 기대할 수 있음 정복이 아닌 사랑의 시선 ! 다른 것을 자기와 동일시하려는 침략적 강압적인 시선이 아니라 , ‘ 알려진 새로운 것을 영원히 제시할 어떤 것으로 복잡성을 직관하는 ’ 시선 한 사람이 정복자로서 바위를 올라갈 때는 오만한 시선으로 올라감 . 한사람이 사랑의 시선으로 올라갈 때 그 사람은 주위에 관심을 쏟으면서 보고 듣고 확인하고 물어서 등산 . 비위와 자신의 경계가 따로 없지만 , 두 존재 사이에는 보완의 관계 . ☞ 사랑의 시선이 그것을 인식하고 그것에 반응하고 그것에 주목하기 때문에 보완관계 오만한 인식에 근거한 환경적 운동이나 윤리는 존재의 도덕적 위계질서를 세우고 ‘ 자기동일성에서 일체감 ’ 을 발견하려함 . 반대로 사랑의 인식은 자신과 타인의 차이를 발견하면서 상호보완 관계생태환경 정의구현 논리 억압에 저항하는 자유의 정의를 존중한다 . ▶지배의 논리와점을 모색하고 유지하는데 구조적으로 다원적 . 관계와 공동체에 대한 정의 구현 태도는 차이점의 제거가 아닌 그것에 대한 공경인식 . 생태여성주의는 과정이론의 정의를 존중한다 . ▶세계의 파괴에 대해 과정을 배우고 여성 생활 변화의 과정이 시간에 걸쳐 어떤 모습으로 변천하였는지 살핌 생태여성주의는 내포의 정의를 존중한다 . ▶여성과 생태계과 지배에 구속된 방식을 경험한 목소리를 배척하지 않고 포함하려는 자세 생태여성주의는 돌봄 , 사랑 , 우정 , 믿음과 적절한 상호작용의 가치를 모색하여 관계의 정의를 존중한다 . ▶타자에 대한 정중한 관심 생태여성주의는 추상적 개인주의를 부정하는 가운데 구체적인 정의를 존중한다 . ▶여성과 자연에 대한 지배 사이에는 내부적인 연결망이 있으므로 구체적으로 책임을 지는 의무감을 지님04 생태정의구현윤리 다원론의 구성주의 관점에서 생태정의에 대한 일치된 견해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음 . 여러 관점들을 분석하여 비판적 성찰을 통해 생태정의의 합의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 . 생명주의 정의관 인간중심적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탈피하여 생명의 내재적 가치를 인정하고 인간과 동등한 대우를 해 줄 것을 전제하고 있다 . ☞ 생명의 개체만이 내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생태계나 무생물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의무가 없다고 말함 생태전체주의 개체주의 입장을 보완한 것으로 생태계 전체의 안정과 온전함을 보전하기 위해 개별 생명을 희생할 수 있는 정의관을 내세 웠다 . 레오폴드의 대지공동체의 온전함 , 안정 , 아름다움을 위하여 생명체 사냥도 허용 ☞ 공동체의 복지를 내세워 파괴하는 상황을 인정한다면 생태계를 보호하기보다 오히려 파괴시키는 요인 심층생태주의 자급자족적이며 탈중심적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생활양식을 근본적으로 바꿀것 주장 . 최소한의 소비적 물질 욕구만 인정하는 간소한 것 . 그리고 지구와 다른종에 가능한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정의규칙 ☞ 전체주의적이고 탈인간주의 경향 ( 탈인간의 관점 ) 은 파시즘적 . 개인이 실재하지 않고 전체로태 order=1 order_direct= desc cate_div =main curPage =1 http://home.ebs.co.kr/jisike/content_mov_detail.jsp?enc_seq=3034138 command=vod chk=T client_id=jisike menu_seq=1 col= str= gno=92 y= order=1 order_direct=desc cate_div=content gubun=content curPage=4사회생태주의와 생태여성주의 정의관 사회생태주의 지배의 사회구조가 자연의 지배보다 선행 . 인간의 인간에 대한 지배에서 인간의 자연에 대한 지배가 비롯됨 생태적 합리성과 자율적인 공동체 활동을 보장하여 모든 형태의 통제와 지배로부터자유로운 정의사회를 구현하는 것이 목표 . 생태여성주의 여셩의 지배와 자연의 지배사이의 연결에 대한 이론과 생각에서 출발 ‘ 돌봄의 윤리 (ethics of care)’ 를 부상시키면서 이를 생태정의 구현에 접목하려는 노력 . 방법론 ‘ 영성주의 ▶ 여성 , 자연 , 신성의 일체감을 알고 경배할 때 , 지구는 신성한 존재로 다가오고 사랑하는 돌보는 대상일 뿐만 아니라 영성적 가치로 다가오게 됨 . 결국 생태주의 구현은 생태환경편익과 생태환경부담을 위한 “ 사회분배의 공정성 ” 확보에 의존 ▶ 열악한 위치에 있는 사회 계층에 대한 자원분배를 주요 관심으로 간주함지구촌 시대를 맞이한 생태정의 생태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국제간의 협조가 절실 . 선진국의 상당수는 개발도상국을 식민지 상태로 관리 했기 때문에 현재의 개발도성국 생태환경 질병에 대한 일정한 부담을 갖고 개선해야할 의무가 有 이에대한 다양한 의견 홀메스 롤스톤 (Holmes Rolston ) – 기아에 허덕이는 인종을 중시하면서도 , 소멸되어 가는 생명의 종을 살리기 위한 선진국들의 기금마련 대첵에는 반대 앤드류 브래넌 (Andrew Brennan)- 식민잔재와 제도모순의 간접책임이 있는 선진국들의 기금마련이야말로 생태정의 구현의 선결
사회학습이론은 아동을 환경적 반응이나 자극에 대한 수동적인 개체로 보는 대신 자신의 발달에 능동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이론이다. 즉 인간은 그저 수동적인 존재로 사고하고 행위를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겪고있는 사회적 상황 속에서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고 들음으로써 ‘모방’을 통하여 많은 것을 학습한다고 하였다.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모방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관찰만으로도 어떠한 행위를 불러올 수 있는 지대한 힘을 가졌다는 상정하에 관찰학습이론을 제시하였다.이것은 이론적인 것만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대부분의 인간학습은 구체적 모델이나 상징적 모델에 대한 관찰과 모방을 통해 이루어짐을 쉽게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1차적 사회기관이 가정이라 불리우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가정에서 성장을 하며 주변에서 보고 들은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자신의 성격을 형성할 수 있다. 눈뜨고 잠들때까지 보는 사람이 가족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을 배우려 의도치 않아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다’ 라는 말이 그냥 나오는 말이 아니다. 아이는 부지불식간에 부모님의 긍정적인 행동과 부정적인 행동을 보게되고 이것만으로도 학습이 가능하다. 늘상 보고들은 부모님의 행동이 잠재되어 있어 어느 일정상황에서 부지불식간에 그런 모습이 발현될 수 있다. 또한 구체적 모델 뿐만 아니라 상징적 모델 예를들어 소설, 영화 등의 가상적 인물들 또한 영향을 끼칠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반두라의 이론을 현실에서 적용할 수 있는 방향은 어떠한가. 사회화가 덜 된 아이들은 아직 성격구조가 발될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떠한 사건에도 쉽사리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취약성을 갖는다. 그렇기 때문에 평상시에 보고 배우는 것은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조용히 스며든다. 예를 들면 자식과 부모가 길을 건널때에 차가 오지 않는다고 하여 부모님이 아이의 손을 잡고 무단횡단을 한다면 아이는 ‘무단횡단을 해도 괜찮구나’ 하는 인식이 머릿속에 박히게 된다. 그리고 미래 자식의 손을 붙들고 무단횡단을 서슴치 않는 아이로 자랄 확률이 농후하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의 사소한 사건으로부터 성격을 형성하는 아이들이기에 행동거지를 바르게 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성격은 물론 내 아이의 평생에 영향을 끼칠 인격에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중요한 사건들이 닥쳐왔을때 어른들의 태도가 중요하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부모님의 상이나 체벌을 통해서 옳고 그른 행위를 분별하고 추구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님의 일관된 상벌책이 요구되며, 행위의 도덕적인 표준을 심어주는 것이 요구된다. 또한 직접적인 경험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에서는 매체를 통해서 ‘모델링’을 경험할 일이 많아졌다. 텔레비전만 키면 하루종일 나오는 만화나 영화 등 아이들의 인성에 영향을 끼칠 매체들이 천재지변에 깔려있다. 이것은 여러 경험을 간접적으로 쉽게 경험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축복일지 모르나, 검증받지 못한 여러 가지의 저급한 매체물들이 아이들에게 접근할 가능성이 그만큼 커졌다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매체들이 아이들의 판단과 무관하게 무차별적으로 들어오게 된다면 어느것이 맞는 것인지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들은 부정적인 요소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어야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심어줄 수 있는 매체물들을 선별해 긍정적인 모델링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그곳에서 학습한 긍정적인 모델들은 곧 긍정적 결과가 기대되는 모방 행동의 발생확률을 증가시킬 수 있다.만일 즉각적인 행동변화가 없다고 해서 근심할 필요도 없다. 이것은 부지불식간에 젖어들어 학습이 이루어지며 그 영향이 바로 나올 수도 있고 잠재적으로 내재해 수십년 후에 효과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나는 미래의 예비교사이다. 가정에서 1차적인 학습을 받아 어느정도 인성을 획득했지만 아직은 미약하게도 불안정한 인성을 가진 학생들을 돌보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사명감을 갖고 이들에게 모범을 보일 필요가 있다. 점차 확장되는 관계속에서 복잡한 인간관계를 갖게 되고, 활동범위도 점차 넓어지기 때문에 유년시절보다 오히려 더 위태로운 과정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는 학생들에게 안정적이고 확고한 표준과 인성을 형성시킬 수 있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방법이 있을까.학교에서는 물론 교과학습을 위주로한 과정이 이루어 지지만, 그것 또한 공동체가 장시간동안 대면하는 공간이 된다. 우선은 교사보다는 또래의 친구들에게 영향을 받을 것이다. 만일 교사인 내가 보기에 그들이 옳지 못한 모델이 휘둘리거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포착될 경우에 이를 제지할 필요가 있다. 요즘 학교에서 ‘왕따문제’가 핫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왕따문제는 심적으로 확고한 인성을 갖지 못한 군중이 어느 개인과 개인의 관계문제 속에 개입되어 번지며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옳지 못한 모델을 분별할 재간이 없기 때문에 이를 옳다고 오인하여 부도덕한 행위를 저지르게 된다. 왕따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발생되는 것이다. 청소년기의 심리적 취약성으로 이런 우를 한번쯤은 범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잘못된 행동을 교정해 주지 않고 올바른 모델링을 학습시켜 주지 않는다면 개선될 여지는 미미하다. 사회학습이론에서는 행동을 한 후 강화 혹은 처벌 받을 것이란 기대가 학습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이처럼 잘못된 행동을 했을때 강력하게 제지하며 올바른 학습을 유도하고 이를 시정한다면 단번에 고쳐질 확률이 크다는 것이다. 또한 이 이론에 입각하면 주의와 파지와 같은 인지 과정이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앞서 말한것 처럼 상벌제도 처럼 직접적인 제지나 보상은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대리강화’ 처럼 타인의 행동을 관찰하여 경험하는 이차적인 강화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타인이 칭찬 받는 것을 보고 자신이 그 행위를 따라함으로써 칭찬을 받을 것이란 기대를 하는 것이 그것이다. 예를들어 왕따당하는 친구에게 그 잘못을 고하고, 그 학생을 사랑으로 보담아 주는 친구가 있다. 주변 학생들은 이 친구를 보고 간접적인 영향을 받는 것이다. ‘나는 저렇게 하지 못했는데, 저 친구는 대단하다.’는 마음을 먹어 긍정적인 모델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사의 행위도 마찬가지 이다. 그러한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담당 선생님의 문제해결 태도가 해당 학생들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뉴스기사를 통해 보면 그런 불미스러운 사고의 배후에는 알고서도 모른척, 보고서도 못본척 하는, 즉 ‘모르쇠’로 일관하는 무관심한 교사들이 있었다. 학생들은 그 사실을 모를것 같지만, 더 무서운건 학생들이 그 사실을 알고서도 모르는 척 할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불손한 어른들의 태도에서 좋지 못한 영향을 받고 교정받지 못한 학생들은 자신의 행동이 그르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대로 확립될 것이다. 가정에서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듯, 학교에서는 학생이 선생님의 거울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행동도 학생들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인지해 둘것이며 우리는 그들에게 긍정적인 모델이 될 의무가 있음을 명시해야 한다.
‘아크라시아’에 관한 두 학자의 관점과 비교Ⅰ.문제 제기아크라시아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지식과 실천의 관계를 분명히 파악해 둘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두가지 대립되는 주장이 있는데 첫 번째는 지식은 인간을 다스린다는 강한 내재주의적 관점이 있다. 후술할 소크라테스가 이에 속한다. 둘째는 지식의 소유가 지식의 지배를 보장하지 않으며 오히려 다른것들 즉 쾌락 등이 지식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견해이다. 이는 소크라테스의 입장에 반대되는 대표적 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에 해당한다. 이렇게 상반되는 입장을 갖고 있지만 지식이 행위에 있어서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전제를 두고 논의를 시작하는 바이다.소크라테스는 인생을 사는 데에 있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을 가장 중요시 하였고, 이를 위해서는 덕이 있는 행위의 필요성을 피력하였다. 그는 덕이 있는 행위와 행복을 동일시 하였고, 그에 도달하기 위해서 참된 앎을 강조하였다. 곧 “덕은 곧 지식이다.”라는 논제를 성립시킨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지식은 소피스트나 다중이 생각하는 것처럼 쾌락에 끌려 다닐 정도로 약한 것이 결코 아니며 제대로 된 측정술을 발휘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마찬가지로 무지는 측정술의 결여로 인한 것이며 인지의 실패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소크라테스는 앎은 규범적기능과 함께 동기적 기능을 수행한다는 강한 내재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알기만 하면 앎에 따른 행위가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앎에도 불구하고 행위 불가능한 아크라시아를 부정하였다. 참된 앎으로 판단을 옳게 하는 사람이 자제력 없는 행동을 하는 경우는 없다고 주장했다.한편 그의 가르침을 본받은 아리스토텔레스는 한편으로는 소크라테스의 주장에 동의하였지만, 아크라시아의 부정에 관하여 반대되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그는 아크라시아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이것은 절제와 관련한 부분으로, 선하다고 인식된 것을 행하지 않거나 선하지 않다고 인식된 것을 행할 수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인간의 지식과 행위의 강한 내재주의적 성격을차이점은 인간의 인식을 바탕으로 그에 반하는 행위의 가능성의 문제이다. 본문에서는 소크라테스의 앎과 아크라시아 부정,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아크라시아 부정의 비판을 비교해 볼 것이다.2. 소크라테스의 아크라시아 부정1)소크라테스의 앎소크라테스의 앎은 완전무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프로타고라스』에 의하면 그것은 영예롭고 사람을 지배할 수 있으며, 누군가가 좋은 것들과 나쁜 것들을 알 경우에는, 그 어떤 것에 의해서도 제압되지 않고, 앎이 시키는 것 이외의 다른 것들을 하게 되는 일은 없는 것이다. 그의 앎에 대한 신뢰는 이토록 강했지만 당시의 다중들의 생각은 이와 같지 않았다. 그들의 앎에 대한 생각은 강하지 못하고 주도하는 것도 아니며 지배하는 것도 아닌 것으로 보았다. 앎이 다른 것들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들이 그를 지배하는 것으로 생각 되었다. 다른 것들로 말하자면 격정과 즐거움(쾌락), 괴로움, 애욕, 무서움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올바른 지식이 있다고 하더라도, 앞에서 언급한 것들에 의해 제압될 수 있으며 이러한 연유로 지행합일의 불일치가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었다.하지만 다중들의 생각은 소크라테스에 의해 철저히 논박되었다. 그는 사람들이 제대로 된 앎을 갖지 못해서, 즉 무지해서 도덕적인 행위를 하지 못했음을 모르기 때문에 이를 “지식”이 “쾌락에”지는 것으로 말한다고 했다. 그들은 쾌락에 또는 괴로움이나 다른것들에 제압되기 때문에 최선의 것들을 행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였는데, 소크라테스는 이에 반대했다. 그는 사람들이 지혜와 앎이 모든 인간적인 것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임을 알지 못한다고 보았으며, 앎에 역행하는 행위의 존재 불가능성을 역설하였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아크라시아와 관련된 대중의 논의의 저변에는 쾌락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그는 쾌락주의의 논제에 관한 오류를 소상히 지적하였는데 이를 짚고 나아갈 필요가 있다. 인용문에 등장한 쾌락과 좋음의 동일성에 대한 테제를 살펴보면 쾌락주의의 오류를 발견할고 알고 있으면서도, 이것들을 행한다고.그래서 누군가가 우리에게 “왜죠?”하고 묻는다면, “져서”라고 우리는 대답할 것이오. “무엇에요?”하고 그는 우리에게 물을 것이오. 그러나 우리로선 “즐거움에”라고는 더 이상 말할 수가 없소. 즐거움 대신에 좋은 것이라는 지칭이 채택되었기 때문이오. 그러나 우리는 그에게 대답하여 말합시다.“져서”라고.“무엇에요?”하고 그가 물을 것이오. “좋은것에”라고 우리는 단연코 말할것이오.소크라테스는 위와 같이 쾌락주의에서 주장하듯 즐거움과 좋음의 동치로서의 아크라시아 접근은 쾌락주의 자체가 흔들리는 결과가 초래됨을 보이려 했다. 쾌락주의에 의하면 좋은것은 즐거운것 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본전제를 바탕으로 아크라시아에 도입하게 된다면 그들의 주장은 터무니 없음이 드러나게 된다.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것은 일종의 쾌락이나 다른것들에 빠지기 때문인데, 쾌락주의에 의하면 이것은 좋은것에 의해 덕의 실현에 차질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어불성설이다. 아크라시아가 불가능함을 증명하려는 『프로타고라스』의 소크라테스가 채용하는 전략은 자기 주장을 증명하기 보다는 자신과 대립하는 상대 주장의 타당성을 논박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의 주장을 쾌락주의와 연결짓고 쾌락주의자들이 아크라시아의 존재를 말하는한 자신들의 기본 전제의 부조리를 빚어낼 뿐임을 드러내는 것이다.2)측정의 기술소크라테스는 “측정의 기술”이 우리에게 있어서 삶의 구제책이 된다고 말했다. 측정술은 괴로운 것들과 비교해서 즐거운 것들을 달 경우에, 고통스런 것들보다도 즐거운 것들의 무게가 더 나갈 때는 가까운 것들보다 먼 것들이 더 무게가 나가든 또는 먼 것들보다 가까운 것들이 더 무게가 나가든 간에, 즐거운 것들이 깃드는 쪽의 행위를 해야만 한다. 또한 사람들의 시각에 같은 크기의 것들이 가까이 에서는 더 크게 보이고, 멀리서는 작게 보이기 때문에 보이는 현상을 고지 곧대로 보지 않고 일의 경중을 따져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나는 건강을 위해 다이어트를먹음으로써 느낄 수 있는 쾌락이 건강이 주는 쾌락보다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커보이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측정술로 진정한 앎은 발휘한다면 근시안적인 판단으로 케이크를 먹는 것 보다 참는 쾌락이 훨씬 더 크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저 자신에게 지는 것은 무지 이외의 다른것이 아니며, 저 자신에게 이기는 것은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본성을 자신에게 최선의 이익이 되는 것으로 판단한 것을 항상 선택한다고 보기 때문에, 만약 최선의 이익에 반한 행위를 한다면 그것은 “최선의 것들”을 잘 알지 못한 것이다. 이는 『프로타고라스』의 인용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그러면 그 누구도 적어도 나쁜 것들로 또는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들로 자발적으로 향해 가지는 않으며, 좋은 것들 대신에 자신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들로 향해 가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성향에서 찾아볼 수도 없을것 같지 않습니까?또한 두가지 나쁜 것들 중에도 어느 하나를 부득이 선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경우에도, 그 누구도, 덜 나쁜걸 선택할 수 있는데도, 더 크게 나쁜걸 선택하지는 않겠죠? 내가 물었네.이를 통해 인간은 제대로 알고 있다면 반드시 행하는 도덕주의자 임을 알 수 있다. 후대에 내려오면서 소크라테스의 주지주의의 입장은 계승되었으며 그것의 약점 또한 신랄하게 비판되었다.Ⅲ.아리스토텔레스의 아크라시아1)아크라시아의 구분아리스토텔레스는 “누군가가 올바르게 알고서도 어떻게 아크라시아적인 행위를 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소크라테스는 누구든지 최선의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에 반대되는 행위를 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즉 사람은 오직 무지 때문에 그런 행위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 의하면 아크라시아는 자제력 없는 무지에 의해 가능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것은 총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ⅰ) 앎의 “소유”와 “사용”의 구분을 통해 설명된다. 어떤 사람이 어떤 그릇된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식을 갖고 있지만 그 지식을 행위의 순간에 사용하지 못하거나 떠올리지 않거나 그것을 떠올리지 못하는 경우이다. 다이어트를 실행하는 사람들은 단백질 섭취가 중요하기 때문에 고기를 먹어줘야 한다는 보편지가 있다. 하지만 어떤 고기가 다이어트에 도움이 될 수있는지 모르고 막무가내로 섭취한다면 성공할 수 없다. 즉 닭가슴살이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는 개별지를 알아야 보편지에 적합한 행위를 할 수 있다. 아크라테스는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 고기를 섭취해야 한다”는 보편지는 알고 있지만 “닭가슴살은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는 개별지를 알지 못해 아크라시아를 범할 수 있다.ⅲ)완전한 지식의 소유 여부이다. 이것은 완전한 인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쓰지 않는 경우에 속하면서도 앞의 것과는 다른 상태이다. 어느 의미에서는 인식을 가지고 있지 않는 상태가 가능한데, 가령 잠자고 있는 사람, 미친 사람, 술 취한 사람의 경우가 그렇다. 자제력이 없는 사람들이 쓰는 단어는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내는 소리와 다름 없는 것이다.상위의 세가지 구분은 모두 ‘자제력 없음’에서 기인한다. 특히 자제력 없는 사람이 자신의 여러 가지 쾌락에 지배될 때에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억견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이 자제하지 못하고 행동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이치와 억견으로 말미암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사람들이 따라야 할 올바른 이치에 반대되는 것은 욕망이지 억견이 아니다. 자제하지 못하는 감정 상태가 생기는 것은 참된 의미에서 인식이라 생각되는 것을 가지고 있을 때도 아니고, 또 인식이 정념에 끌려 다닐 때도 아니며, 다만 감성적 인식 밖에 가지고 있지 않을 때 그렇게 되는 것이다.2)아크라시아의 원인아크라테스는 행위가 이루어지는 그 순간에 보편지와 개별지를 떠올리지 못한다. 이것은 우리가 “감정 속에” 있게 될 경우 무지의 상태에 빠지기 때문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본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억견에는 보편적인 것에 관한 것이 있고 또 개별적인 것들에 관한 것이 있는데, 이 개별적인 것들은 이미 감성의 지배 영역에 속하고 있다.
Kohlberg 의 도덕발달 이론목차 도덕발달 이론 전개 Piaget 의 도덕발달이론 콜버그의 생애 콜버그 이론의 기본견해 콜버그 이론의 도덕발달단계 3 수준 6 단계 Kohlberg 이론의 교육적 적용 Kohlberg 이론에 대한 비판 Gilligan 의 도덕발달이론 Turiel 의 영역구분모형도덕발달 이론 전개 도덕발달 이론이란 ? 도덕은 도덕적인 상황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며 , piaget 가 최초로 제안 . 그 이후 kohlberg 가 piaget 의 이론을 확대⊙발전Piaget 의 도덕발달이론 ■ 줄리앙이라는 꼬마는 아버지가 없을 때 아버지의 만년필을 갖고 놀다가 테이블보에 조그만 잉크 자국을 남기고 말았다 . ■ 톰은 아버지가 사용하는 잉크병이 비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아버지를 도와주기 위해 잉크병에 잉크를 채워 넣다가 테이블보에 커다란 잉크 자국을 내고 말았다 . 도덕적 규칙에 대한 해석 이 연령 에 따라 다르다 . 어릴수록 행위자의 의도를 고려하지 못한 대답을 한다 .피아제의 도덕적 추리 3 단계 전도덕적 or 전입습적 단계 타율적 도덕성 자율적 도덕성 규칙에 대한 복종의식 부재 2~4 세경 놀이를 비롯한 일상생활에 규칙이 있음을 인식 도덕적 실재론 타율적 도덕성에 의한 지배 4~8 세경 도덕적 상대주의 판단의 기준은 의도와 동기 8~12 세경콜버그의 생애 Lawrence Kohlberg (1927~ 1987) 1927 년 뉴욕 주의 브론스빌리에서 출생 명문사립고등학교 졸업 . 대학 미 진학 이스라엘 건국 조력 , 난민을 유럽에서 이스라엘로 수송하는 항공기의 부조종사로 특이 이력 시캌고 대학교 대학원 재학 도덕발달이론으로 박사학위 논문 열대병과 도덕적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로 우울증 59 세 자살콜버그의 도덕적 딜레마 3 수준 6 단계 이론 심화 º 발전 가상적인 도덕갈등 상황 제시 . 도덕적 딜레마 갈등상황에 대해 선택을 하도록 한 다음 분석콜버그 이론의 기본견해 도덕이란 도덕적 판단의 구조를 의미 도덕발달에는 인지발달이 필수적 도덕발달의 주요 기제는 인지갈등 도덕판단은 도덕적 행위를 결졍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콜버그 이론의 도덕발달단계 도덕판단은 단계별로 , 동일한 순서로 진행 연속적이고 점진적인 과정이 아니라 비연속적이고 도약적인 과정 도덕발달단계에 따라 도덕판단의 구조가 질적으로 상이3 수준 6 단계 전 인습수준 인습수준 후 인습수준 처벌회피 및 복종지향 상대적 쾌락주의 대인관계 조화 사회질서 및 권위 유지 사회 계약 보편적인 도덕원리전인습수준 자아중심적인 특징 . 사회의 인습이나 규칙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함 . 10 대의 약 15~20% 가 해당 . Step1. 처벌회피 및 복종지향 옳고 그름의 기준은 물리적 결과 행위의 결과에 따라 선과 악 결정 처벌받는 행위는 나쁜행위 , 처벌받지 않는 행위는 옳은 행위 Step2. 상대적 쾌락주의 도덕판단의 기준은 욕구충족 여부 상대주의적 관점에 따라 옳고 그름 판단 인간관계를 시장의 원리와 동등시후인습수준 개인이나 사회적 차원을 넘어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원리에 비추어 도덕판단을 내리는 수준 . 형식적 조작능력이 필요 . Step5. 사회계약으로서의 도덕성 사회적 합의를 기준으로 도덕판단 법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유동적 Step6. 보편적 원리에 의한 도덕성 스스로 선택한 도덕적 원리에 기반 이 단계의 도덕적 판단은 극히 개인적 , 사회적 질서와 상치될 가능성인습수준 자아중심성이 감소 다른 사람의 판단과 의견 고려 능력 발달 충성 , 다른 사람의 인정 , 가족의 기대 , 법률준수 , 사회질서 유지등에 가치 부여 대부분의 사람에 해당 Step3. 대인관계 조화를 위한 도덕성 다른 사람이 칭찬하는 행위가 도덕적인 행위 착한소년 - 소녀지향 Step4. 사회질서 및 권위유지 법이나 질서와 일치 여부를 기준으로 도덕판단Kohlberg 이론의 교육적 적용Kohlberg 이론에 대한 비판 도덕발달단계가 질적인 측면에서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 다는 지적이 있다 . 도덕발달의 퇴행은 도덕발달이론의 타당성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 후인습수준 단계에 일부만 도달했다는 결과는 후인습적 도덕성이 도덕발달의 이상적인 방향을 제시 . 남성의 도덕발달은 적절 , 여성의 도덕발달은 제대로 설명되지 않음 . 5 4 3 6 Kohlberg 의 도덕발달단계가 모든 문화권에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 . 도덕판단수준이 높은 사람은 비도덕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을 한 후 합리화를 하는 경향이 많다 . 1 2Gilligan 의 도덕발달이론 여 성 동정 배려 공감능력 협력지향적 여성의 도덕발달단계 3 단계 이기적 단계 다 른 사람에 대한 책임을 인식하는 단계 자기와 다른 사람을 평등하게 다루는 단계Turiel 의 영역구분모형감사합니다 ^^!!!!!!{nameOfApplication=Show}
[제 1 부] 주권은 아직도 불온한 꿈인가주미대사도 외면한, 아아, 노근리1950년 7월 25일에 소백산 자락에 위치한 영동읍 임계리 마을에 미군 한 때가 일본어 통역을 앞세우고 들이닥쳤다. 통역은 미군이 후방에 있는 안전한 곳으로 피난시켜줄 것이라며 마을 사람들을 모두 집합시켰다. 겨우 1.5킬로미터쯤 갔을 때, 미군은 행렬을 도로에서 벗어나 하천 바닥으로 내려가게 했다. 미군은 총을 쏘고 고함을 지르면서 “누구도, 이곳을 이탈할 수 없고 날이 샐 때까지 고개도 들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살아남은 피난민들은 미군의 공중폭격과 지상군의 사격을 피해 배수로와 숲에 몸을 숨겼다. 그러나 다시 나타난 미군이 사람들을 모아 노근리 쌍굴 다리로 밀어 넣었다. 그 굴속으로 미군은 기관총을 쏘기 시작했다.노근리 사건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1999년 9월 29일, 미국 연합통신이 이 사건을 보도한 다음부터다. AP통신의 특종보도나 그에 앞서 국내 일부 언론의 보도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노근리가 정은용이라는 기록자를 가졌기 때문이다. AP통신은 학살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전쟁범죄라는 규정도 피해갔으나 AP통신의 보도는 노근리 사건의 진상 규명, 나아가 한국전쟁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 전체의 진상을 규명하려는 노력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리는 전기가 되었다.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증거와 증언, 그것도 피해자 쪽의 것이 아니라 가해자 쪽의 증거와 증언이 나오자 미국 정부도 한국 정부도 노근리 사건의 진상 조사를 외면할 수 없었다. 미국은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사건 앞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 일은 어디까지나 우발적인 사고였다는 쪽으로 몰고 가려 했다. 이러한 미국의 태도야 당연히 예상했던 바이나, 더 큰 문제는 미국보다 더 미국을 걱정하는 한국 안보족들의 태도였다. 노근리 학살은 우발적인 학살이 아니다. 그리고 학살을 은폐하는 것만큼은 우발적으로 이뤄질 수 없다.광주가 김세진과 이재호를 낳았다.광주는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전 세계에서 유병요구는 황제의 칙서가 아니라 명의 장수를 통해 이루어졌다. 광해군은 명의 관리들이 서울에 머무는 동안 조정에서 논의된 외교와 관련된 문제를 조보에 싣지말라고 했지만 승정원은 이를 무시하곤 했다. 외교문제에 관한한 광해군은 철저히 포위되어 있었다. 신료들은 감호론을 불러온 장본인이 바로 광해군 자신이라며 압박했다. 한국이 작전통제권을 환수하려고 해서 미국조야가 분노와 배신감으로 들끓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듯이, 당시 신료들에 따르면 명 조정이 온통 조선감호론으로 뒤덮여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광해군의 외교를 중립외교라고 하지만 당시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는 중립이 용인될 수 있는 여지가 없었다. 실제로 명은 후금을 치기 위해 파병을 요구했고, 후금은 명과 치르는 싸움에서 조선이 중립을 지킬 것을 요구했다. 그의 외교정책은 나라 안에서부터 독립 국가이기보다는 중국의 내복이기를 원한 사대부들에게 저항을 받았다. 400년 뒤의 분단된 한국에서 자주적이고 평등한 한미관계를 꿈꾸는 것 자체가 진정 불가능하고 불온한 일일까?[제 2 부] 국가보안법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만들자마자 12만 명을 삼킨 국가보안법국가보안법은 대한민국이 수립되고 아직 대한민국의 형법을 마련하지 못한 채 일제가 쓰던 옛 형법을 그대로 물려 쓰던 시절인 1948년 12월에 태어났다. 이 법은 위법행위가 아직 구체적으로 표출되지 않은 남로당과 그 외곽조직 등 합법적 형태의 좌익결사들을 말살시키기 위해 제정된 것이다. 친일파를 청산하자는 게 바로 공산당이라고 설쳐대면서 국가보안법을휘둘러 댔으니 정말 새 나라의 앞길을 망쳐놓은 것이다. 이 법을 만들어놓고 잡아가둔 사람은 12만 명에 가까웠다. 절도, 강도, 사기, 폭력, 상해, 강간 등 범죄행위의 4배가 넘는 인원을 국가보안법 관련으로 잡아들였다. 두고두고 문제가 된 것은 형사소송법이 규정한 자백의 증거능력과 관련해 국가보안법 사건에 대해 예외조항을 둔 것이다. 피고인이 법정에서 1차 수사기관에서 행한 자백을 부인할 경우, 본격적으로 출판계를 탄압한 것은 1985년 5월 1일을 기해서였다. 국가보안법 시대는 천수백여종의 도서가 금서가 되었다.현대사 공부하지마, 다쳐!한국에서 유달리 근대와 현대를 구분하는 데 집착하는 것은 분단과 전쟁과 학살의 현장인 한국에서 현대사 연구가 태생부터 지녀야 했던 정치적 숙명인지도 모른다. 군사독재가 판을 치던 1970년대와 1980년대의 현대사 연구는 정말 지워진 역사를 찾아가는 작업이었다. 1970년대의 한국은 “에비!”가 지배하는 사회였고, “묻지마, 다쳐!”가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들려주는 교훈이던 사회다. 1979년 국사학과에는 현대사라는 과목이 아예 교과목으로 개설되지 않았다. 현대사는커녕 독립 운동사조차 강의가 없었다. 『해전사』가 나온 것은 바로 이런 때였다. 왜 분단이라는 비극이 우리 민족과 국토에 닥쳐왔는지를 ‘논리적으로 인식’하고 이 시대를 해명해가다 보면, ‘그 이후의 우리 자신에 대한 사회과학은 비로소 맥락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며, ‘하나의 시도 내지 입문서’로 나온 책이다. 군사독재가 강화된 1970년대 후반부터 우리 문제에 대해 관심이 고조된 것은 분명하지만 현대사 연구에 기폭제가 된 것은 역시 1980년 5월의 광주가 준 충격이었다.현대사 공부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많았다. 조선시대 자료가 방 하나가득이면, 현대사는 그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자료가 많아서 취사선택하느라 고민해야 한다. 1986년에 김남식 선생님과 함께『한국현대사 자료총서』를 묶어 낸 것도 자료 때문에 현대사를 연구할 수 없다는 패배주의를 깨버리자는 것이었지만, 자료를 접근하는데 가해진 제약이 지긋지긋했기 때문이다. 50대 대학교수들이 친일파나 학살자, 독재자들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러우면서 현재의 과거 청산에 대해서는 독립군이 친일파를 미워하는 것보다 더 강한 격문을 내세우며 자학사관에 빠져있다고 동료 연구자들을 비판하는 것은 어떻게 불러야 할까.황우석과 인혁당, 조작의 재생산두 사건은 모두 일반시민들이 이 세상에 대해 갖고 있던 기본적인 타난다. 박정희는 언론 3사의 주식만으로 5.16장학회를 만들었다. 박정희에게 언론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언론을 장악해야 한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킨 사람은 황용주였다. 박정희는 언론을 규제할 목적으로 언론윤리위원회법안을 강행하려했다. 그러나 이 법안에 대해 경향신문 등 4개 신문사가 끝까지 저항하자 정간 또는 폐간 등의 보복조취를 취하겠다는 것을 의결하기까지 했다. 박정희는 언론계 전체를 상대로 싸움을 벌인 1964년과 달리, 1965년에 들어서면서 경향신문하나만을 표적으로 삼았다. 막무가내 정신-“난 한 놈만 패!”-이 발현된 것이다. 1960년대에는 신문사, 방송사 사장 같은 막강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중앙정보부의 먹이가 되었다. 박정희 시대에 자행된 이런 불행한 역사를 정리하지 못하다보니, 전두환이 나온 것이다. 정치정화법에, 부정축재자 자리에, 깡패순화교육에, 언론사 통폐합에, 그리고 5.16장학회를 모델로 한 일해재단까지. 역사는 그렇게 되풀이 됐다. 박정희는 얼마나 청렴한가? 이처럼 노후대책을 든든하게 마련해 놓고도 무엇이 부족해 권력에 그리 연연하다가 총을 맞아야 했을까.조국이 일본에 남긴 38선어느 나라의 이민사회든지 본국의 사정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겠지만, 일본의 한인 이민사회는 본국이 분단되면서 너무나 크게 영향을 받았다. 3?8선이 일본에도 그어진 것이다. 동포사회의 힘과 지혜를 모아도 일본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과 편견을 넘어서기 힘들었을 상황에, 본국의 분단이 동포사회를 갈가리 찢어놓기까지 한 것이다. 1929년 대공황이후 일본에서는 실업자가 급증했는데, 재일조선인의 수는 이 무렵 크게 늘어나 1934년에 50만 명에 이르렀다. 일본사회가 극심한 실업난에 빠져드는 상황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은 일본인들에 비해 훨씬 열악한 저임금을 받고 가장 혐오스러운 직종에 종사하게 된다. 당시 일본에 설치된 연합군 점령군 사령부는 재일조선인 문제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했고 별 관심도 없었다. 일본 쪽이나 점령군 사령부 모두묘지를 만들고 관리한 셈이니, 국립묘지에 일제 잔재가 짙게 남아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립묘지의 온갖 휘호나 헌시, 조각물 상당수가 박정희를 포함해 뚜렷한 친일 경력을 남긴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다.전쟁으로 인한 희생자는 군인만이 아니다. 그들의 죽음을 국가라는 공동체는 기억할 수 없는가? 기억해서는 안 되는가? 국가가 기념하는 죽음만이 아니라 국가에 의해 직접적으로 살해당한 죽음까지 국립묘지에 가면 안 되는가? 죽음 앞에서 자연스러운 감정은 슬픔이어야지 찬미가 아니다. 전쟁에서 죽은 젊은이들을 어머니의 품으로 돌려보내지 못하는 것을 보며, 죽어서도 군복을 벗지 못하는 젊은이들 앞에서 목이 멘다.[제 4 부] 그때 그 사람들신영복의 60년을 사색한다.신영복은 1941년 경상남도에서 태어났다. 고향은 밀양이지만 출생지는 의령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교사로 일본인 교장이 조선 학생을 차별하는 것에 항의하다가 파면됐다. 해직교사인 아버지와 그의 민족주의자 친구들의 장난기 어린 조기 ‘의식화’ 교육을 받으며, 신영복은 세상과 만나기 시작했다. 다섯 살 꼬마 신영복의 머리에도 해방의 기억은 또렷하게 남았다. 신영복은, 5.16이 일어난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후배들의 세미나를 지도하기 시작하는 등 학생운동에 몰두하게 된다. 그는 군사정권이 들어선 현실에서 장기적인 학생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서울대 상대에 본격적인 독서 동아리를 만들었다. 김질락과 그의 후배 이진영등은 신영복이 학생운동에 깊이 관여하는 것을 알고 그를 유심히 관찰하면서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날로부터 김질락, 이진영과 따로 만나게 되었는데 이것이 나중에 통혁당 산하의 민족해방전선으로 발표된 모임이다. 통혁당 사건으로 김종태, 이문규, 김질락 등이 사형됐으니,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신영복은 살아있는 사건 관련자 중에서 가장 핵심 인물이 된다. 신영복은 통혁당에 대해서 자신은 전혀 알지 못했고, 중앙정보부에 가서야 들었다고 했다. 중앙정보부에서 당한 수사는 혹독했다. 당시 현역장교로 근무하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