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Bronze개인인증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17
검색어 입력폼
  • 한국 종교와 문화(영천자천교회) 레포트
    한국 종교와 문화 수업 레포트들어가는 말경상북도 영천에 있는 자천교회는 현재 경상북도 지방문화재 제 452호로 지정되어있으며, 설립한지 100년이 넘은 교회로써, 우리나라 역사와 함께하고, 역사를 고스란히 체감하였으며,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측 교회이다. 자천교회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의의는 교회의 외형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자천교회는 한옥으로 지어진 교회이며, 서당과도 같은 외형을 가지고 있기에 그러하다. 본 레포트에서는 먼저 자천교회의 설립자이신 권헌중 장로의 출신 배경과 자천교회가 있었던 영천 지역의 배경인 유교에 대한 배경 연구를 하고, 그 다음 서당의 훈장 출신으로서 교회를 설립하게 된 권헌중 장로의 배경을 따라서 그 당시 서당과 훈장이 속해있던 마을 주민들과 마을 공동체에 어떤 역할을 했었는지 알아 보고자 한다. 그런 다음에 자천교회의 외형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자천교회의 역사를 다뤄보고, 직접 방문하여 찍은 사진을 보면서 방문 소감으로 마무리 하고자 한다.유교 배경 연구유교가 무엇인지 아는 것은 교회의 역사와 교회 설립자인 권헌중 장로(권 장로로 표기)의 인물을 분석하는데 도움을 준다. 왜냐하면 그 당시가 유교적 풍토가 만연한 시대였고, 설립자인 권 장로 역시 유교적 배경에서 자라나 유교적 교육을 담당하는 서당의 훈장 출신이기 때문이다. 유교는 이상적 인간상으로 군자 혹은 성인을 말하고 있으며, 여기에 이르는 방법으로 인(仁)의 실천과 경(經)의 공부를 말하고 있다. 이 유교의 군자 혹은 성인에 이르는 길로 경(經)을 공부하고 가르쳐온 권 장로가 기독교를 맞아들이면서, 가르치는 일과 배우게 하는 일에 집중한 형태의 교회가 세워졌다는 것을 볼 수 있다.또한 유교는 한국인의 사회윤리를 결정한 종교이다. 이에 유교의 핵심 원리인 통 원리부터 설명하고자 한다. 그리고 교회는 부득이 하게 공동체로 연결이 되기 때문에, 유교의 공동체 원리와 기독교의 공동체 원리를 분석한 ‘최태연’의 논문을 많이 참고하게 되었다.유교의 통 원리뒤로하고 기독교적 배경을 새롭게 가지게 된 권 장로의 내면을 들여다보고자 첨부하였으며, 유교의 공동체 윤리에 있어서 어떤 부분이 부족한 점인지, 그에 반해 기독교의 공동체 윤리는 유교의 그것과 어떻게 다르며 또한 보완점은 무엇인지 분석한 내용을 통해서, 그 당시 유교적 공동체 안에서 기독교적 공동체를 설립한 권 장로의 내적 고민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유교의 통(統)의식은 사물의 통일과 질서를 가능하게 해주는 포괄적 규범으로서 가족과 교육과 국가의 모든 영역에서 일관된 통합을 담보해주는 원리로 작용했다. 이러한 근거에서 유교 공동체의 윤리는 혈연중심의 가족에서 출발하여 공평무사한 대동공동체로 나갈 수 있다는 이상주의를 제시했다. 그러나 실제의 유교의 공동체 윤리는 가족주의와 대동사회의 이념 사이에 현저한 갈등과 불일치를 드러냈다. 유교공동체는 이 갈등을 해결할 초월적인 가치를 결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기독교의 공동체 윤리는 절대자와의 언약 공동체의 성격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고 공평한 공동체의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그러나 한국의 기독교공동체는 유교공동체가 당면했던 것처럼 기독교의 보편적이고 초월적인 가치와 유교적인 가족주의와 권위주의의 가치 사이에 몹시 갈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기독교공동체가 유교공동체가 가지고 있었던 자기모순과 한계를 극복할 때, 명실공히 새로운 공동체윤리를 한국의 사회와 역사에 제시하고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유교의 배경과 자천교회 설립의 상관관계유교의 배경에서 자란 권 장로는 유교의 공동체 원리에 입각한 삶을 살아왔었을 것이다. 하지만, 선교사를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고 이제는 유교의 공동체 원리에서 벗어나 기독교의 공동체 윤리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아마도 유교 안에서의 교육과 실제 유교적인 삶에서 오는 괴리감을 기독교의 희생정신에서 찾지 않았을 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권 장로는 끊임없이 자신을 희생해 가며 교회를 돌보았고, 물질과 시간과 정성을 아끼지 않 스스로 개설하여 가르치고 운영하였다. 또한 동리유지조합서당은 향촌의 주민들이 힘을 합하여 설립한 서당으로서, 학생의 학부형이 15일, 한 달 등의 간격으로 훈장을 모신다고 해서 번차서당이라고도 했다. 자천교회를 설립한 권 장로 역시, 자신의 집에 자영서당을 마련함으로 교회의 토대가 되고 신성소학교의 발판을 놓게 된다. 그리고 자천교회 초기에 마을의 서당 역할을 감당한 것으로 보아 주민들과의 유대관계가 매우 중요했을 것이라 생각된다.자천교회 건물소개건물 형태 소개자천교회 건물은 전국에서 보기드문 한옥교회이다. 건물은 동서쪽으로 약간 긴 네모형태의 우진각(모임) 지붕이며, 주 출입구는 양측면에 두었다. 내부는 후면의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중앙부는 칸막이를 설치하여 남,녀 석을 구분한 예배공간을 마련하여 구한말의 남녀칠세부동석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였다. 구조는 나지막한 기단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그 위에 네모기둥을 세워 절충식 지붕틀을 설치하였다. 이러한 양식의 건물은 선교 초기에 구미(歐美)인(人) 선교사들이 지은 한,양 절충식으로 개신교사와 건축사 연구의 자료적 가치를 담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우진각 지붕자천교회 예배당 내부의 특징이 중앙에 서 있는 네 개의 기둥이라면, 외부의 특징은 ‘우진각’ 형태를 이루고 있는 지붕이다. 우진각 지붕은 건물 사면에 지붕면이 있다. 그리고 귀마루가 용마루에서 만나게 되는 형태이다. 이는 일자형 평면의 지붕 형태로 초가지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우진각 지붕의 형태는 예배당 중앙의 네 기둥의 특징과 동일하게 실내의 많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새 건물의 건축 이야기교회가 점점 부흥하므로 안의와 선교사는 권헌중에게 초가집 예배당 대신 더 넓은 공간의 예배당을 건립하도록 권유했지만, ‘유교 국가에 웬 서양 종교인 기독교인가?’라는 지역주민들의 반대 때문에 일이 쉽게 진행되지 않았다. 권헌중은 주재소와 신촌 면사무소를 건축해주는 조건으로 새로운 교회를 건축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자천교회가 안으로 들어왔다. 후에 그는 2개월간 경북 동부와 동북 지방 전도여행을 한다.노귀재에서의 만남자천교회 이야기는 1898년 안의와 선교사의 경북 동부와 동북 지방의 2개월 전도여행에서 시작한다. 그는 대구에서 출발하여 영천을 거쳐 청송으로 전도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반면 권헌중은 안의와 선교사와 반대되는 길을 가고 있었다. 그는 원래 경주의 작은 마을의 선비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서당 훈장이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일제로부터 지배를 당하고 있는 시점에 낮에는 일본 헌병의 천국이요, 밤은 의병 천지였다. 때문에 견디기 힘든 일제의 고통을 피해 고향을 등지고 자신들의 새로운 보금 자리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다. 권헌중도 마찬가지로 경주를 떠나 청송군 현서면 수락이라는 곳에 이주하여 살다가, 다시 대구로 향하고 있었다. 안의와 선교사는 영천을 거쳐 청송으로 선교 여행을, 권헌중은 대구로 가고 있었는데, 이들은 만남은 영천시와 청송군의 경계를 잇는 ‘노고재’라는 곳에서 이루어 진다. 권헌중은 노고재에서 휴식을 하던 중 안의와 선교사를 만나게 된다. 권헌중은 당시 처음 만나는 외국 사람이었고, 모양새도 우리나라 사람과 달리 키와 눈과 코가 클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말을 서툴게 한 탓에 잘 알아듣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그렇지만, 노고재에서의 첫 만남으로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복음에 관해서 듣게 되었다.보현산 자락의 초가집 예배당노고재에서 안의와 선교사를 만나 예수 그리스도 복음에 관하여 들은 권헌중은 대구로 이주하는 것을 포기하고 보현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신촌면 자천리에 작은 초가삼간을 구입하여 그 곳에 머물며 안의와 선교사와 왕래하면서 성경 말씀을 배웠다. 권헌중은 자기가 살고 있는 초가집을 예배당 겸 서당으로 사용했다. 낮에는 서당으로 사용하며 한문을 가르치고 저녁에는 함께 성경을 공부했다. 초가집으로 시작된 자천 교회의 당시 교인은 서당에 다니는 문동과 권헌중을 따라온 노비들과 머슴들이 전부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복 바치며 헌신하였고, 장로로 장립하기 2년전 1920년 교회가 가지고 있던 채무를 정리하기 위해서 자신의 답(畓) 이두락(二斗洛)을 팔아서 연보를 하였다. 그러나 장로로 취임한지 5년을 넘기지 못하고 1925년 음력 12월 28일 소천 하시게 된다. 2대 장로는 서석희 영수가 1937년 10월 9일 자천교회 2대 장로로 장립하고, 권헌중 장로의 아들 권오진이 1948년 12월 8일 3대 장로로 장립하므로 자천교회를 이끌어 나갔다.『경북교회사』 내에 기록된 권헌중『경북교회사』는 대구, 경북 지역의 교회사 연구에 필요한 1차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는 책으로, 대구, 경북지역의 초창기(1894-1923) 교회설립에 관한 한자 자료를 한글로 옮겨 놓은 책이다. 이 책에서 ‘자천교회’와 ‘권헌중 장로’의 내용이 아래와 같이 소개되어져 있다.“1915년 자천교회는 영수 서석희를 곽해민, 권헌중으로 대신하고, 조사 곽해민을 대신하여 허일이 시무하였다.”“1918년자천교회는 조사 여충호가 사면하고 강원백이 시무하였으며, 예배당을 신축하니 권헌중이 1,000엔을 특별헌금하여 16칸짜리 기와집으로 건축하였다.”“1920년 자천교회는 집사 윤병석, 김봉석을 대신하여 정용섭, 조병희가 시무하고, 남녀전도회를 조직하였다. 권헌중이 교회 부채를 정리하기 위하여 논 2두락을 헌금하였다.”경북교회사의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권헌중은 교회의 영수일 뿐 아니라, 예배당 건축을 위해서 1,000엔을 특별헌금하여 건축을 하였고, 교회의 부채를 정리하기 위해 본인의 재산을 교회에 바치면서, 교회에 헌신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자천교회 방문의 기록자천교회의 특징은 한옥 구조로 된 예배당인데, 우리가 방문 했을 때는 교회 안에 아무도 없어서 잠겨 있는 예배당에 들어갈 수가 없어 매우 아쉬웠다. 외관만 보고서도 아, 이 교회는 역사를 가지고 있구나 하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구조였다.자천교회 설립 후 나중에 설립된 신성학당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는 가옥을 보았는데, 이 곳에서 많은 학생들이 기독교를ES12
    인문/어학| 2019.12.24| 12페이지| 4,500원| 조회(184)
    미리보기
  • 루터와 칼빈의 국가저항권 비교
    루터와 칼뱅의 국가 저항권 비교-성경해석과 저작을 중심으로들어가는 말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와 장 칼뱅(Jean Calvin, 1509-1564)은 종교개혁 1세대와 2세대로서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이들의 신학과 열정으로 말미암아 성경 말씀이 밝히 들어났고, 후대에 이르러서도 그 진리가 전해져 오고 있기 때문에 이 두 신학자는 지금도 많은 영감을 우리에게 주고 있으며, 어떤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인물들이다. 요즘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구는 이슈는 바로 “촛불집회”이다. 광화문에서, 또 서초에서 각각의 정치적 견해에 따라 사람들이 모여 평화라는 이름의 시위를 하고 있지만, 이 평화 안에 깃들여져 있는 분노와 비판과 정죄가 만연함을 보면서, 과연 종교개혁의 선구자들인 루터와 칼뱅이 이 시대적 상황을 목도 하였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고,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였나 하는 작은 물음이 본 소논문의 주제가 되었다.본 논문은 먼저 루터와 칼뱅의 국가적 배경을 살펴보며, 그들이 인식하고 있었던 국가에 대한개념을 이해해 보고, 그 다음으로 세상 권세자들에게 복종하라는 로마서 13장 1-7절을 어떻게 해석해 내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들의 저작들 속에 있는 국가저항권에 관련된 내용을 살펴보며, 국가저항권에 대한 그들의 이해를 연구하고자 한다.루터의 국가적 배경루터 시대의 국가루터가 살던 신성로마제국은 황제를 정점으로 지역 군주와 교회 영지 등으로 구성되었는데, 1521년 당시에 총 400개의 독립된 정치적 관할권으로 분할되어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황제, 황제 선출권을 가진 7인의 선제후, 50인의 대주교와 주교들, 83개의 교회 영지, 수도원과 수녀원들, 31명의 세속군주들, 138인의 백작과 영주들, 그리고 황제가 인정한 85개의 자유도시가 모두 정치적 관할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처럼 통치 권력은 분산되었고 황제는 보다 작은 단위의 통치자들의 정치적 관할권을 인정하는 토대 위에 신성로마제국 전체를 통합하는 느슨한 권력을핑계로 복종하기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또한 루터는 베드로전서 2장 13-15절을 인용하면서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통치자들이 악하고 믿지 않는 자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지니고 있는 통치권 자체는 선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본을 보이기 위하여 빌라도에게 스스로를 복종시켜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요19:11)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를 핑계로 권세자들에게 복종하기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 비록 그들이 악할지라도…”그리고 루터는 세속의 통치가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로마서 13장 1절의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를 주석하면서 루터는 권력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고 때로 하나님이 정하지 않은 방식들을 따라 권세가 찬탈되고 행사될 지라도, 권세 자체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세속의 권력에 의하여 교회의 자유를 빼앗기고, 권세를 찬탈 당하는 것, 또한 그런 세속 권력을 대항하는 것보다 오히려 그 세상에 빠져서 탐욕을 품는 것을 더 악하게 본다.“교회의 자유와 그 권리들, 교회의 자산들과 힘들이 공격받을 때보다, 세속적인 것들을 향하여 게걸스럽게 탐하는 넓게 열린 입들을 지닌 성직자들을 더 화나게 하는 것은 없다.”루터는 다스리는 자들은 선행을 막는 것이 아니라 악행을 막고 있기 때문에 권세들의 정당성이 있다고 말하며, 국가 지도자들에 대한 저항을 하지 말고 오히려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고 가르친다.칼뱅의 국가관1536년까지칼뱅은 기독교 강요 초판에서 로마가톨릭의 율법주의와 재세례파의 방종주의의 이러한 변증법을 루터의 두 왕국 이론을 사용하여 화해하려고 시도한다. 칼뱅이 여기서 영적인 통치와 세속적인 통치의 구분을 주장하는 것은 로마 가톨릭의 전제적인 영적 지배로부터 벗어나면서도 동시에 재세례파와 같이 국가로부터 분리되어 나가는 위험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칼뱅은 프랑스 피난민을 부르주아로 영입하여 자신들의 지배세력을 확장하였다. 그리하여 제네바에서 칼뱅은 지지하는 인물들이 정치권력을 장악하게 되어, 칼뱅은 국가로부터 독립된 치리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게 되었다. 국가로부터 독립된 치리권의 확보는 칼뱅의 확실한 신학적인 입장과 함께 그의 지도력과 조직력에서 기인하였다. 칼뱅은 여기서 국가로부터 독립된 설교권과 함께 치리권을 확보하여 개혁주의 교회의 특징을 만들어냈다.칼뱅의 로마서 13:1-7 주석에서 보는 국가 지도자들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반응칼뱅도 본 성경을 해석하면서, ‘위에 있는 권세들’은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그 자리에 앉혀지게 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권세를 인정하라고 말한다. 즉, 우리가 위정자들에게 복종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세우심 받은 자들이라는 것이다. 칼뱅은 하나님께서 위정자들을 세우셔서 세상을 다스리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위정자들의 권세를 멸시하는 자는 하나님을 대적하여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무너뜨리고자 하는 자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그래서 권세자들에 의한 징벌을 하나님께서 주신 징벌도 포함되어 있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또한 칼뱅은 위정자들이 악을 징벌하고 선을 장려하는 그들의 본분에서 아무리 벗어나 있다고 할지라도 그런 위정자들에게조차 복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가르친다. 악한 통치자는 그의 통치 아래 있는 신민들의 죄악을 벌하시는 하나님의 채찍으로 봐야 하고, 우리의 잘못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그리고 권세자들에게도 칼뱅은 당부하기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공의 선을 위해서 다스려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권력 행사에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리하여 위정자들은 악을 억제하고, 하나님의 도구인 칼로써 임무를 다해야 한다고 가르친다.이렇듯 칼뱅은 그의 로마서 13장 1-7절의 주석을 통해서, 위에 있는 권세는 바울의 가르침과 같이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이며, 그가 악한 권세자이든지 선한 권세자인든지를 막론하고, 그에게 복종하따라 스스로를 다스리며 기쁘게 다른 뺨을 돌려대며 속옷을 달라는 자에게 겉옷까지 벗어줄 것이다(마5:39-40). 그러므로 이런 식으로 모든 것들은 잘 균형이 잡히며, 당신은 내적으로는 하나님의 나라, 외적으로는 세상의 나라를 동시에 만족시키며, 악과 불의를 참아내면서 동시에 악과 불의를 벌하고, 악을 대적지 않으면서 동시에 악에 대적한다.”이를 보건대, 루터는 국가에 대한 저항을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국가와 그 통치자가 불의하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인의 사랑으로 산상수훈의 내용을 실천할 때에 불의를 대적하는 것이며, 불의을 없애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의 실천을 강조한다.일부 한국 학자들의 루터 연구에 의하여, 루터의 국가저항권에 관련된 내용은 아래와 같다.루터의 저항권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그리스도인은 교회 내에서 저항권을 가지고 있다. 두 번째, 세상정부의 부당한 명령을 수행해서는 안 되며, 수동적이며 고난을 감내해야 한다. 세 번째, 황제가 교황과 연합할 경우 적극적인 무장봉기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세상 권력의 문제: 어디까지 거기에 복종해야 하는가?세상권력(정부)의 필요성: 그리스도인에게는 세속권력이 필요하지 않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큰 악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도록 방지하기 위해 세속권력은 필요하며 영적인 정보와 세상 정부를 잘 구별하여 두 정부 모두가 계속 남아 있도록 해야 한다. 정치적 권력은 평화를 유지하고 죄를 벌하며 사악한 자를 억제하기 위해서 세계에서 가장 유용하고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기독교인은 칼의 통치(세상 정부)에 즐겨 복종하고 세금을 바치고, 권력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봉사하고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세상권력의 한계점: 루터는 세상 정부의 권력이 영혼을 다스리도록 허락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세속 정부가 영적인 정부의 역할을 넘봐서도 안 된다는 것을 명확히 한다.오늘날의 적용: 하나님이 세운 ‘두 통치’는 오늘 날에도 존재한다. 영적 정부인 교회와 국가의 정부가 그것이다. 루터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합법적인 권한이라고 인정하여 무력저항을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에 그는 가능하다면 자신이 초판에서부터 제시했던 국민의 관원에 의한 합법적인 복음신앙의 자유의 확보를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칼뱅은 프랑스 왕권과 가톨릭교회가 결탁하여 개신교를 탄압하고 박해할 때 끝까지 무력으로 저항하는 것을 반대하였고 합법적인 권한을 이용하여 그러한 자유를 확보하고자 하였다.칼뱅은 처음에는 개인의 위치에서 박해하는 교회와 국가로부터 기독교인의 양심의 자유를 확보하는 데 주력하였다. 제네바에서 개혁활동에 참여한 이후에는 교회와 국가의 협력 속에 교회 개혁을 추진하였으나, 독립된 치리권의 문제에서는 국가로부터 독립을 추구하였다. 박해하는 프랑스의 절대왕정에 대해서는 일반 백성들의 저항은 인정하지 않았으나 국민의 관원의 합법적인 저항을 인정하였다.나가는 말루터와 칼뱅의 로마서 13장 강해와 저작 속에 기록 되어진 국가저항권에 대한 견해는 차이를 보지 못하였다. 세속 군주, 그 군주가 비록 악한 군주이고 자기의 유익을 따라 통치를 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인들은 그 군주에 복종하며 순종해야 한다는 견해를 보였다.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삶의 원칙인 종으로서의 삶을 악한 군주의 치하에서도 살아내야 한다고 가르쳤고, 칼뱅도 역시 성경의 원리에 따라 악한 군주는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벌하시기 위한 징계의 수단으로 사용하였다는 것을 강조하며 악한 군주에 대한 어떠한 저항이나 대응도 권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악한 군주의 통치를 하나님의 저주로 받아드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얘기하고 있다. 그들의 신학적인 변화가 있다면, 루터는 특별히 교황과 황제의 연합으로 진리를 거스르는 일을 한다면, 무장봉기를 허용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교황은 정부가 아닌 적그리스도 세력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반면, 칼뱅은 세밀한 지침으로 합법적인 저항을 권면한다. 즉, 무력저항은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순교나 망명을 권면하며, 합법적인 저항으로의 길을 마련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강요의 저술 9
    인문/어학| 2019.12.24| 9페이지| 5,000원| 조회(136)
    미리보기
  • 예배 무엇이든 물어보세요1,2 요약과 서평
    예배 무엇이든 물어보세요Ⅰ,Ⅱ 요약 및 서평1. 들어가는 말예배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1,2 권은 한국 교회의 교인들이 가질 수 있는 교회에 대한 다양한 물음들을 소개하고 그 해답을 제시해주는 책이다. 본 책을 지은 안재경 목사는 고려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화란한인교회에서 만 7년간 담임하였으며, 서기, 그리고 운영위원 및 편집장, 서기로 섬기고 있다. 또한 그의 저서로 성경신학과 관련된 책이 있고, 예배에 대한 책이 발행된 만큼 예배에 많은 관심과 연구를 한 학자였음을 알 수 있었다. 특별히 개혁신학적 관점에서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의 의미와 예배 안에 자리잡고 있는 다양한 전통들에 대한 역사적, 신학적 관점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해 주어, 물음에 대한 공감도 이끌어 내고, 명쾌한 해답으로 그 물음을 해결해 주는 작지만 알찬 내용의 책이다.본 요약 및 서평은 주로 요약을 위주로 진행이 될 것이고, 중간 중간에 필자의 서평이 더해지는 형식이다. 요약 중간의 서평은 → 표시를 사용하여서 구분하였다. 서평의 내용에 있는 “저자”는 책의 저자를 의미하고, “필자”는 본 레포트를 작성한 작성자라는 의미이다.2. 책의 요약과 서평예배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1한국 교회는 성장을 거듭하다 침체기에 들어섰는데, 이럴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하고, 교회의 기본 중의 기본은 제대로 예배하는 것이다. 예배의 개혁, 직분의 개혁이 교회의 개혁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국 교회가 지금 현재 침체기에 들어섰다고 평가한다. 이럴수록 우리가 예배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예배의 개혁이 곧 교회 개혁이라는 말에 공감 하면서도 예배에 개혁이라는 단어를 사용 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예배를 드리는 우리의 마음의 개혁을 강조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의문점이 남아 있다.1. 예배와 목사1) 기독교회의 예배는 무엇이 다른가요?모든 종교마다 예배가 있고, 특정한 형태의 예배를 만들어 자신의 신을 섬긴다. 하지만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정도로 알지 못한다. 예배란 하나님께 합당한 것을 그회가 성장함에 따라 성령께서 자연스레 예배의 형식도 갖추어 가도록 역사하셨다. 중요한 것은 본질이며, 그것은 삼위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의 교제가 중심이었다는 사실이다.→ 예배의 본질이 삼위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의 교제라는 부분이 특히 중요하다. 예배를 통해서 이 교제의 관계로 들어가고 맛보고 체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6) 대학부 예배가 공예배일까요?공예배는 모든 회중이 다 참석해야 하고, 은혜의 방편이 있어야 하고, 직분자가 그 예배를 인도해야 한다. 예배는 특정 세대만의 모임이어서는 안 된다. 다른 모임은 ‘예배’라는 이름을 달 필요는 없다. 예배는 나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누그러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올바른 공예배의 개념을 많은 교회와 교인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 역시 모태신앙이지만, 학교에서 배우기 전에는 공예배의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예배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다른 예배에 대한 인식도 명확히 하는 것이 교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7) 사회자와 설교자가 다른 이유가 무엇일까요?예배는 직분자들의 인도가 중요하며, 특히 목사가 예배인도자가 된다. 목사는 예배 전체의 집례자이다. 그렇지만 회중은 목사 배후에 서 계시는 그리스도를 보아야 한다. 외부 강사면 사회를 따로 두는 것이 좋지만, 그렇지 않으면 사회와 설교를 분리하지 않는 것이 좋다.8) 목사가 로만칼라를 할 수 있나요?원래 로만칼라는 노예들이 목에 두르는 목줄과 같은 것이었다고 하며 이는, 자신이 하나님을 섬기는 종이라는 표시라고 한다. 교회 역사를 보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볼 필요는 없지만, 일반 성도들과 구분지어지는 옷이기에 착용에는 신중함이 필요하다.2. 예배환경1) 예배당에서 왜 향을 피우나요?구약에서 휘장 바로 앞에 향을 피웠다. 신약교회는 향을 피우지 않았지만, 교회가 자유를 얻고 난 다음부터 본격적으로 향을 피웠다. 나중에는 미사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 우리는 예배 시작부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는지 모르겠어요예배 시작을 알리기 위해 종을 사용한 역사는 없고, 선교 초기 한국 교회의 교인들이 예배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서로 이야기를 하자 미국 주일학교에서 하듯이 미국 선교사가 종을 쳤다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의 예배가 공교회적이기를 원한다면 선교지적인 상황에서 임시방편으로 도입한 종치기를 굳이 유지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전통은 신학적인 의도에서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예배의 시작 시 많은 유익함을 주는 전통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지할 필요는 없다고 저자는 말하지만, 유지하는 것이 좋다는 필자의 의견이다.2) 묵도가 왜 예배의 시작인가요?종치기와 마찬가지로 정숙을 위해 선교사들이 사용된 제도로 보인다. 이제 한국 교회는 선교지적인 상황에서 급조된 순서를 그대로 따라할 것이 아니라 공교회 전통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 묵도가 아니라 예배부름을 통해 하나님을 우리의 유일한 도움이라고 부르면서 예배하는 것이 좋다.3) 입당행렬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어요.행진은 허례허식이 아니고, 권위를 내세우기 위함도 아니다. 여기에서 행진은 온 회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 주일의 예배를 위임할 장로와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가 회중석을 가로질러 행진한다. 입장하는 것을 통해 직분의 의미를 되새기느니 것이 좋다.4) ‘예배부름’은 누가 누구를 부른다는 것일까요?개혁교회는 예배 인도자인 목사가 이 예배부름의 문구를 외쳤는데, 이는 회중을 대신하여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었다. 개혁자들을 주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공예배의 시작임을 명확히 했다. 우리는 자기를 섬기라고 위협해 대는 세상 모든 세력들과 우상들을 떨쳐 버리고 유일한 도움이신 하나님을 부르면서 예배의 자리로 나아간다.5) 왜 예배부름을 우리의 섬김이라고 주장할까요?‘예배부름’이라는 말 자체에 명시되어 있듯이 이 순서는 하나님이 예배의 주도권을 가지신다는 것을 잘 드러낸다. 기독교의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무언가를 받는 것이다.6) ‘하나님의 인사’가 왠 말일까요?예배부름 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것이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7) 설교 동영상 게재를 중단해야 하지 않을까요?교회를 판단하는 기준이 담임목사의 설교가 되어 가고 있다. 죽은 목사의 설교영상을 보며 예배하는 것은 설교가 인격적인 전달이라는 것을 무시하는 것이다. 설교 동영상은 교인들보다는 목사 자신이 자주 참조하는 것이 좋다. 설교를 본인이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8) 선거 기간이라서 그런가요? 요즘 설교가 너무 정치적이에요설교는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하기에 정치를 언급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특정 정당과 등치될 수 없고, 복음은 특정 정책과 동일시될 수 없다. 하나님은 공의와 정의를 행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정치를 말하는 것이 좋다.5. 성례1) 잔만 받을 수는 없나요?종교개혁은 떡과 잔을 같이 신자들에게 나누어 줌으로 시작 되었다. 떡과 잔 중 하나만 받는 것은 개혁의 정신과 맞지 않다. 떡과 잔의 두 요소가 다 그리스도를 전체적을 ㅗ받기 위한 것이기에 우리는 한 가지라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2) 포도주스를 사용하면 안 되나요?성찬식에서 포도주를 사용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성찬식을 제정하시면서 포도주를 사용하셨기 때문이다. 교회는 이 포도 잔을 통해 새 언약의 갱신을 계속하며 기뻐한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성찬식에서 포도주를 사용하는 것이 합당하다. 주님이 가리키셨듯이 성찬의 요소는 ‘포도나무의 열매’(마26.29, 막14.25, 눅22.18)여야 한다. 포도주는 십자가에서 흘려주신 피 뿐만 아니라 진노의 포도주도 가리킨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다 마셔 주셨다. 이렇게 성찬의 잔은 감사의 잔, 기쁨의 잔이기 때문에 포도주스가 아닌 포도주여야 한다.→ 이부분의 설명은 교회 안에서 잘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포도주를 사용함으로 성찬식의 특별함을 체험하고, 주님의 말씀에 가능한 같은 형식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3) 포도주에 물을 섞어도 됩니까?고대교회는 성찬식때 물을 거룩하게 하는 예식을 하고 포도주에 섞었다. 이는 예수님이 십자가에다. 성찬은 특히 말 많은 예배에서 균형을 잡아 줄 것이다.→ 예배의 역사를 보면, 설교가 예배의 중심이 된 지가 종교개혁 이후이니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설교자에 의해 예배가 좌지우지 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 옳기도 하지만 그릇된 부분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능력과 관계없이 예배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백성들간의 교제가 풍성히 일어나는 한국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5) 공예배가 아닌데 축도를 해도 됩니까?축도는 하나님께서 목사를 통해 하시는 복의 선언이다. 이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향해 선포하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 전체가 주님의 거룩한 몸을 이루어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에 자리 잡는 것이 합당하다. 끝 순서로. 공예배와 기도회를 포함한 기타 경건의 모임을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6) 주일 오후 예배 출석이 세례의 조건이 될 수 있습니까?세례는 주님과 온전히 합하는 성례이다. 하나의 형식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평생 유익을 얻으며 살아가는 성례이기 때문이다. 교인의 의무에 대한 부분도 이행할 필요가 있다.7) 축도 문구가 너무 장황합니다.축도는 강복선언으로 목사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회중을 향해 하나님의 복을 선포하는 시간이다. 축도 문구에 해당되는 성경 구절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축도는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이므로 설교자 개인적인 말을 섞어서 오히려 본질을 흐리게 하지 않아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8) 예배 때 사도신경을 꼭 고백해야 합니까?사도신경은 삼위일체적 구조를 가지고 있기에 가장 단순하면서도 분명한 고백이다. 교회는 고백 공동체요, 예배는 고백 의식이며, 신경은 성경의 고백적인 요약이다. 그리는 예배에서 신경을 고백하면서 삼위 하나님에 대한 고백과 신뢰를 늘 새롭게 해야 한다.2. 기도와 찬송1) 대표 기도자를 훈련시켜야 하는 것 아닙니까?사실 기도 훈련이 필요하다. 공예배를 위해서는 더더욱 필요하다. 공교회적인 간구를 올려 드려
    인문/어학| 2019.12.24| 11페이지| 5,000원| 조회(220)
    미리보기
  • 자유주의 신학이란 무엇인가 요약 및 서평
    『자유주의 신학이란 무엇인가』 요약 및 서평1. 들어가는 말『자유주의 신학이란 무엇인가』는 김용주 박사의 저서이다. 김용주 박사는 전남대학교 독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M.Div 과정과 Th.M 과정을 이수한 뒤, 독일로 유학을 가서, 독일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서 ‘루터 신학’ 연구로 교회사 박사학위(Dr. Theol.)를 받은 분이다. 사실 저자(김용주 박사)는 루터 전문가로 본 책을 저술하기에 앞서, 『루터, 혼돈의 숲에서 길을 찾다』라는 책을 먼저 저술하여 한국교회의 독자들에게 루터에 대한 심플하고도 깊은 설명을 해 주었다.저자가 수학한 독일에 자유주의가 만연했었고, 꽃 피운 나라이기 때문에, 루터 뿐만 아니라 교회사학자로서 자유주의에 대한 간결하면서 깊은 설명을 한 것이 바로 본 저서이다.저자는 먼저 자신이 현대 신학에 흥미를 가지고 배우게 된 배경과 유학에서도 계속해서 현대 신학을 연구 할 수 있었던 이유와 과정을 설명하면서, 현대 신학을 원전 그대로 학생들에게 가르치며 제대로 평가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깨달았다고 한다. 특히 보수주의 성향의 교회에서 자라난 신앙인들은 자유주의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고 하며, “자유주의자들은 성경을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고,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으며, 세상과 조화하면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이들이다. 기존 교회가 강조하는 성경 중심, 교회 중심, 십일조, 새벽 기도 같은 주요 신앙 가치에 어긋나게 살아가는 사람들”(p.18) 이라는 고정 관념을 지적하면서, 정말 자유주의 학자는 누구인지, 자유주의 신학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는 자유주의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부족한 한국 신학의 현 주소를 깨닫고 본 책을 저술하게 된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저자가 소개하는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이러하다. “자유주의는 정통 교회가 중요하게 여기는 여러 가지 신학적 가치들을 부정합니다. 정통 교회는 성경의 완전 영감론증명이 밝힐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자신이 가공하는 소재의 목적에 대한 적합성 여부에 따라 크게 제한을 받는 세계 건축사 정도이지, 그 이념에 모든 것이 종속하는 세계 창조자는 아니므로 우리가 품고 있는 큰 의도를 채우기에는 불충분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역시 선험적 방법에 의존하여 신의 현존을 증명해야 한다고 강변한다.칸트는 중세의 스콜라 신학자들이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사용했던 우주론적 증명, 자연신학적 증명, 존재론적 증명을 언급하면서 이런 방법들이 가져다주는 유익을 충분히 인정한다.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는 신의 현존을 증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2) 칸트는 이성의 추론적인 모든 신학을 비판한다.(1) 이성신학과 계시신학칸트는 신학에는 이성에 입각한 이성신학과 계시에 의한 계시신학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성신학에는 그 대상을 순전히 ‘선험적 개념’을 매개로 해서 오직 순수이성에 의해 생각하는 선험적 신학과, 자연으로부터 나온 개념에 의해 이성으로 추론하여 그 대상을 최고의 예지라고 생각하는 신학이 있다. 전자를 선험적 신학이라고 하면, 후자를 자연적 신학이라고 해야 한다고 말한다.(2) 이신론자와 유신론자칸트는 선험적 신학을 인정하는 사람은 이신론자로 불리고, 자연적 신학을 인정하는 사람은 유신론자로 불린다. 근원적 존재자라고 할 때, 이신론자들이 표상하는 것은 세계 원인이고, 유신론자들이 표상하는 것은 세계 창시자이다.(3) 우주론적 신학과 존재론적 신학선험적 신학을 우주론적 신학과 존재론적 신학으로 나누고, 근원적 존재자의 현실적 존재를 경험 일반으로부터 이끌어 내려고 하는 ‘우주론적 신학’과, 경험을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오로지 개념에 의해 근원적 존재자의 현실적 존재를 인식할 수 있다고 믿는 ‘존재론적 신학’이 있다.(4) 자연신학과 도덕신학자연적 신학은 이 세계로부터 최고 예지자로 올라간다. 그리고 이 최고 예지자는 모든 자연 질서와 완전성의 원리로서의 최고 예지자이거나 또는 모든 도덕적 질서와 완전성의 원리로서의 최고 예지자이다. 전자는 성경 계시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우리 안에 선천적으로 내재해 있는 종교성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말이다.생애와 주요 저작슐라이어마허는 1768년 11월 21일 독일 땅 브레스라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개혁파 교단의 종군 목사였고, 친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는 목사였으며, 외삼촌은 신학 교수였다. 그는 형제들의 공동체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입학하여 그들의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헤른후트적 경건의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그는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정통 기독교가 가르치는 교리에 회의를 품고 당시 계몽주의 철학에 크게 영향을 받은 할레대학교에 진학한다. 그는 칸트의 영향을 받아 자연신학이나 추론신학을 극복하고 윤리학에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 야코비와 스피노자에 대해 연구하면서 개인의 개성과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을 중요시해야 함을 배운다.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베를린의 샤리테병원에서 원목으로 근무하면서 독일 낭만주의자들과 친분을 쌓는다.그의 저서 가운데 가장 먼저 언급할 책은 1799년에 출판한 『종교론: 종교를 멸시하는 교양인을 위한 강연』이다.1800년에는 『독백』을 출간하고, 1800년부터 베를린의 『삼위일체교회』목사로 봉직한다. 그리고 1803년에 『도덕론 비판 개요』를 출간하고, 베를린대학교 신학부 학장을 맡고 나서 1811년에 『신학연구 개요』를 출간한다. 그리고 마지막 대작인 『기독교신앙』을 1821년에 집필을 시작하여 1822년에 완성한다.『종교론』에 나타난 종교 이해『종교론』은 베를린 살롱에서 만난 독일 낭만주의 대표 시인 슐레겔의 생일에 선물한 책이다. 슐라이어마허는 칸트의 영향으로 종교를 도덕적 의무 정도로 환원하여 종교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종교의 비합리적 요소를 지적하며 종교를 조롱하는 베를린의 지성인들에게 호소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그는 종교 일반은 윤리에서 유래될 수 없으며, 종교는 윤리와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형이상학과의 관계에서도 독자적으로 파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종교 이해슐라이어마허는 종교가 인간 본성에 근거한다고 보았으며학을 신학 연구의 면류관이라고 칭하지만, 역사신학에 의존해야 한다고 본다. 또한 이 역사신학은 철학적 신학이 필요하다고 본다.『기독교신앙』에 나타난 종교 이해교회를 위한 교의학을 쓴 책이 바로 『기독교신앙』이다. 성경과 전통에 기초하여 교의학을 구성하기보다는 인간 안에 있는 종교적 감정을 통해 교의학을 세우려고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그가 초기에 즐겨 썼던 ‘종교’라는 대신 ‘경건’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다.“경건은 감정이나 직접적인 자의식의 규정이다.”그는 경건을 감정과 관계시키면서 경건은 감정의 규정 혹은 직접적인 자의식의 규정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경건은 지금 하나님을 어떻게 느끼는지를 정의하는 것이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자의식이 어떤 상태인지를 분석하는 것이다. 하지만 슐라이어마허에게는 경건의 요소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빠져 있다.“경건의 본질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절대의존의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다.”이 말은 경건의 본질인 종교적 감정의 뿌리를 파헤쳐 보면,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절대적으로 의존적 존재임을 인식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신정통주의자 바르트는 절대의존 감정 대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경건의 본질로 내세우며 그를 비판한다. 여기서 우리는 슐라이어마허가 경건을 인간 중심으로 이해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우리가 기독교회의 교제에 참여하는 길은 오직 구속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외에 다른 길은 없다.”이 말만 보면, 그의 신학이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이라고 볼 수 있지만, 예수님을 사람의 몸을 입고 온 하나님의 아들로 보지는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적 본성을 입을 가능성이 있는 한 인간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예수님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의존 감정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충실히 이행했고, 이런 본이 되는 삶으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들을 감화시킨 인물에 불과하며, 우리 죄인들의 본이 되는 분이라고 말하는 것이다.“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말은, 절대의존 감정 자체에 대한 확신과 과 율법의 하나님을 엄격하게 구분한다.1849년에는 본대학교에서 『초기 가톨릭교회의 생성』을 써서 초기 가톨릭은 이방 기독교와 유대 기독교의 종합이 아니라 유대 기독교에 대한 이방 기독교의 승리로 생겨났다는 입장을 피력한다. 그러나 1857년에 바우어와 결별하면서 리츨은 경향 비판적 방법을 더 이상 요인하지 않는다. “추론으로부터 실증주의로의 전환”을 감행한다. 그는 본문이 어떤 경향에 빚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본문이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면서 사변 신학을 배척하고 점점 실증주의적 입장을 견지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역사적 실증주의자들처럼 단지 과거의 사실을 확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현재의 적용을 중요하게 여긴다.그는 낭만주의, 헤겔의 추론주의, 교리에 매이는 정통주의를 멀리하고, 성경적 자료를 가지고 연구하는 실증주의적 관점을 견지하는 신학자로 전향한다. 그는 1864년에 괴팅겐대학교의 초빙을 받고, 1889년 2월까지 조직신학 교수로 활동한다. 그는 수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대표작으로는 1874년에 쓴 『기독교 강요』, 1879년에 쓴 『칭의와 화해』, 1880년에 쓴 『경건주의의 역사』가 있다.『기독교 강요』리츨은 이 책에서 주로 진리의 확실한 근거를 추론보다 사실에 두는 자연과학의 영향을 받으며 추론신학으로부터 빠져 나온다. 그의 강요는 네 가지 가르침으로 설명된다. 첫째,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둘째, 그리스도를 통한 화해에 관하여, 셋째, 기독교적 삶에 관하여, 넷째, 공동체적 하나님 경배에 관하여 가르친다. 그중 리츨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기독교적 삶에 관하여이다. 그는 교회를 사회 구성원들에게 기독교적 삶을 가르치는 기관으로 본다. 바로 이 점이 그의 자유주의의 가장 주요한 특징이다. 기독교적 삶은 인류의 궁극적 목적에 기여하는 삶이 되어야 하고, 교회는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기독교적 덕목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이 책에서 강조하는 내용이다.『칭의와 화해』리츨은 이 책에서 종교개혁자 루터를 새롭게 해석한다.다.
    인문/어학| 2019.12.24| 24페이지| 5,000원| 조회(303)
    미리보기
  • [예수의 신성] 요약과 서평
    예수의 신성 요약과 서평Part 1.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영광Chapter 1. 신적 말씀의 영원한 영광영원하고 무한하신 하나님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사람이 되었다는 진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성들도 헤아릴 수 없는 초월적인 진리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이며 타협 불가한 교의다. 이를 성경이 아래와 같이 증언한다. 첫째, 성경의 직접적인 진술이 예수님이 하나님임을 확언한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의 다른 곳에서 하나님을 일컫는 칭호들을 자신에게 적용되는 것으로 받아들이신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공유될 수 없는 독특한 속성을 지니신다. 넷째, 예수 그리스도는 오직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신다. 다섯째, 예수 그리스도는 경배를 받으신다. 끝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기도를 받으시는데, 기도는 하나님께만 드린다.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 영원한 삼위일체의 제2위로 계시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었고, 자신을 속죄 제물로 드렸다. 그분을 믿는 자들은 ‘그 이름으로 생명을 얻을’ 것이나, 거부하는 자들은 심판받아 영원한 징벌에 처해질 것이다.천지가 창조될 때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존재하셨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피조물이 아니라 영원부터 존재하신 분이다. “말씀(로고스)” 개념은 유대인과 헬라인 모두에게 의미심장한 것이다. 그래서 요한은 헬라인에게 예수님을 로고스의 인격화와 구현으로 제시했다. 하나님이신 참 로고스가 사람이 되셨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헬라 개념이 아니라, 구약성경의 주제였는데 이는 신적 권능과 지혜의 표현이었다. 사도 요한은 유대인 독자들에게 예수님을 신적 권능과 계시의 성육신으로 제시했다. 영원부터 예수님은 깊고 친밀하게 교제하며 “아버지와 함께” 계셨다. 말씀은 하나님의 속성이거나 그분의 소산물이 아니라 인격이시다. 또 아버지와 동일한 본질을 지니신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라는 구절은, 성경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가장 분명하고도 직접적으로 선언한 면, 우리가 낙심, 좌절, 절망에 빠지지 않게 되리라 생각이 되며, 빠지더라도 이내 예수님이 붙드심을 믿고 모든 환난을 이겨내는 힘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만물을 ‘붙들고’ 계심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의를 내세우며 우리를 자랑하려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한 가지 진실, 진리 만이라도 제대로 깨달아서 정말 하나님 앞에 겸손해지고, 만물을 붙들고 계시는 그 손길을 내 삶에 적용하면서 살기를 소망한다.Part 2.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권위Chapter 3. 사탄과 귀신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인생의 가장 중대한 질문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가?’ 하는 것인데, 마가복음은 그 물음에 분명한 대답을 제시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임을 선언하고 성육신하신 하나님, 만주의 주이시기에 우리가 드려야 할 합당한 반응은 예수님을 경배하고 그분께 복종하는 것이다.마가복음 전반부에서 예수님의 정체성을 제대로 파악한 이는 귀신들뿐이었다. 이는 그분이 그들을 지으셨기 때문이다(골 1:16) 그들은 천상에서의 반역과 실패와 쫓겨남에 대해 알고 있었고, 영원한 불못의 징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천국 복음을 접하는 죄인들 중 대다수는 여전히 지옥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리스도께 나아가지 않는 것이 큰 역설이다.사역 전반에 걸쳐, 예수님은 귀신을 절대적으로 제압하셨다. 마가는 공포에 떠는 귀신의 모습을 예수님의 세 가직 권위와 연관시킨다. 말씀의 권위, 심판의 권위, 그리고 능력의 권위다. ‘권위’에 해당하는 헬라어 ‘엑수시아’는 통치, 지배, 재판권, 온전한 권한, 특권을 뜻한다. 예수님은 신적 왕의 흔들림 없는 확신으로 진리를 말씀하셨고, 사람들은 다만 놀랄 뿐이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독단적이지 않고 절대적이었다. 모호하거나 은밀하지 않고, 논리적이며 구체적이었다.예수님은 귀신축사에 실패한 적이 없고, 무슨 특별한 공식이나 의식에 의존하시지도 않았다. 단지 명령을 내리셨고 귀신들은 순종했다. 오늘날의 신자들은 귀신축사보다 복음전도에 몰두하도록 언은 적대적인 종교지도자들에게 그들이 찾고 있던 최상의 공격수단을 제공했다. 바로 신성모독을 했다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죄 사함을 베푸실 수 있다는 그들의 전제는 절대적으로 옳았다. 예수님은 세 가지 중요한 방식으로 자신의 신성을 드러내셨다. 첫째, 그들의 마음을 읽으셨다. 둘째, 오직 하나님만이 죄를 사하실 수 있다는 그들의 기본적인 신학적 전제를 반박하지 않으셨다. 셋째, 신적 권능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셨다. 어떤 사람의 죄가 사해졌다고 말하는 것이 분명 더 쉽다. 그 주장의 사실성을 확인하거나 거부할 경험적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중풍병자더러 일어나서 걸어가라고 하는 말은 곧바로 검증 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죄 사하는 자신의 권세를 선언하기 전까지 중풍병자를 의도적으로 치유하지 않으셨다. 이는 죄의 침투 결과가 모든 질병과 시련의 근본 원인임을 뜻한다.부인할 수 없는 표적에도 불구하고 줄곧 그리스도를 거부한 냉담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는 달리 무리는 놀라움을 표했다. 하지만, 무리는 여전히 예수님을 단지 사람으로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지 않았다.예수님의 이적은 죄인을 용서하는 신적 권위를 지녔다고 하는 자신의 주장을 확인시키는 표적 역할을 했다.예수님은 이 땅에 죄를 사하기 위해 오셨다. 그래서 중풍병자를 고치실 때도, 눈에 보이는 육체적인 질병보다 더 중요한 죄의 문제를 먼저 지적하시며, 죄를 먼저 해결해 주시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육체적인 질병을 고치심으로 죄를 사하는 권세를 입증하시는 모습을 보았다. 우리도 가장 먼저 해결 받아야 하는 것은 죄의 문제임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우리가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하나님께 나아가서 기도하지만, 가장 먼저,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이 죄의 문제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내 자식의 문제, 내 집안의 문제, 내 개인적인 문제의 해결을 간구하기 전에 먼저 죄의 문제를 생각하고, 죄를 용서받기를 구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육사실을 늘 기억해야겠다.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교회 안에서 가지고 있는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도 결국은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예수님을 반대하지 않았던가. 교회가 종교적 집단으로 가는 이유는 자신이 가진 권리와 권위를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나부터 어떻게 이를 해결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해야 겠다.Chapter 6. 피조물에 대한 예수그리스도의 권위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서 오신 것을 사건의 절정이라고 하지만, 본문의 절정은 제자들이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마14:33)라고 고백하며 예수님을 경배한 것이다. 열두 제자가 한 목소리로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선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여기서 예수님의 신성을 처음 확인시켜주는 것은, 예수님이 드러내신 신적 권위였다.예수님의 시험은 세례받은 직후 광야에서 끝난 것이 아니고 단지 ‘얼마동안’ 떠났을 뿐이다.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 했던 무리와 제자들의 열의는 광야의 세 번째 시험과 매우 흡사했다.예수님의 신성을 보여준 두 번째 증거는 예수님의 신적 지식이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갈릴리 바다를 가로지르게 하셨는데, 제자들은 풍랑을 만난다. 예수님은 그들이 떠나기 전부터 그 상황을 이미 알고 계셨다. 폭풍과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의 손 안에 있었고, 예수님은 이들을 위해 어떻게 할지 미리 알고 계셨다. 그러나 밤중의 혼란 속에서, 열두 제자는 여호와의 권능을 잊어버렸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잊지 않으셨고, 그들을 멸하려고 위협했던 위험을 뚫고서 물 위를 걸어 그들에게 가셨다.예수님의 신성을 보여주는 세 번째 증거는 제자들을 보호하신 데서 나타난다. 예수님은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굳이 물 위를 걸어가실 필요가 없었지만, 신적 보호의 능력과 정도를 제자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가버나움을 간 제자들의 신설성을 귀하게 여기셨다. 신자들이 어떤 상황에 처하든 순종의 자리가 바로 안전한 곳이다.예수해 여러 차례 놀라운 주장을 하셨는데, 가장 큰 증언은 안식일의 주인임을 친히 주장하신 것이다. 이는 자신의 신성을 주장하신 것이다. 안식일 제도 전체는 메시아가 가져다주실 참되고 완전하며 영원한 안식을 가리켰다.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그를 믿는 모든 신자는 완전하고 최종적이며 영원한 희년의 자유를 얻는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안식일을 범하는 경우는 주일에 일할 때가 아니라, 구주께서 이미 이루신 일에 무엇인가를 보태려는 마음에서 자기 의를 세우는 일에 몰두하는 때다.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보면서, 예수님의 구주되심과 메시아되심을 고백할 수 있는 것은 본인이 받은 시험도 연관이 있지만, 결국 하나님 아버지께서 알려 주셨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온전히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영이 알려 주셔야 가능하다는 것을 더욱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예수님의 자기 선언에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선언이 신성을 드러내는 가장 큰 선언이라는 것을 알았다. 지금 그리스도인들도 주일을 지키지만,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님을 자세하게 알았고, 오히려 주일에 일을 하거나, 돈을 쓰는 것보다, 예수님께서 온전하게 이루신 사역에 내 의로 무엇인가를 더하려고 하는 것이 더욱 안식일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배울 수 있었다.Chapter 8. 하나님과 동등하심18-19세기의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회의론자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윤리교사의 전형으로 보았으며, 모든 사람 속에 내재된 신성의 불꽃이 그에게서 가장 밝게 타올랐다고 생각했다.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본보기였다. 현대의 여러 가지 해석들도 거룩한 성경에 계시된 신-인과는 거리가 멀다. 예수님은 자신의 유일무이한 천상적 기원에 대해, 이 세상에 오기 전 하늘에 선재하셨음에 대해 자주 말씀하셨다. 자신에게 신성의 특권이 있음을 주장하셨다.주께서 자신을 가리켜 가장 즐겨 사용하신 호칭은 ‘인자’다. 이 호칭은 예수님의 인성을 강조하는 것 같지만, 예수님의 신성을대였다.
    인문/어학| 2019.06.25| 11페이지| 5,000원| 조회(151)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2
2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1
  • A좋아요
    1
  • B괜찮아요
    0
  • C아쉬워요
    0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4월 30일 목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1:06 오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