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수문학에서 특정 호우로 인한 유역의 평균우량(average rainfall)은 우량 깊이-유역면적 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목적을 위해 필요할 때가 많다. 또한 호우별 평균우량 이외에 강우지속기간을 더 길게 잡아 월별, 계절별 및 연별 평균우량을 산정해야 할 경우도 있다.평균우량의 산정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직접측정과 간접측정 방법이다.직접측정의 방법에는 산술평균법, Thiessen의 가중법, 등우선법 등이 있으며 잔접측정의 방법에는 레이더, 인공위성을 이용한 방법 등이 있다.수업 시간에 산술평균법, Thiessen의 가중법, 등우선법에 관해 다뤘으므로 그 부분은 제외하고 그 이외에 레이더, 인공위성을 이용한 방법, 확률분포 모수선도를 이용한 방법, 스케일 성질을 이용한 방법에 대해 조사하였다.본론확률분포 모수선도를 이용한 확률강우량 산정에 관한 연구: Hershifield가 제안한 등우선도는 빈도해석에 적용한 재현기간에 대해서만 확률강우량을 확인할 수 있으며, 지속기간과 재현기간, 강수량에 따라 등우선도가 새로 존재하는 관계로 사용함에 있어 번거로움이 생길 수 있다. 그리하여 30년 이상의 강우기록을 보유한 강우관측지점으로부터 연 최대치 강우자료를 대상으로 확률분포형 분석을 실시하여 대표확률분포형을 선정한 후, 그 대표확률분포형을 이용하여 확률분포 모수선도를 작성한다.확률분포 모수선도를 이용하여 확률강우량을 산정하는 경우, 해당지점의 모수는 도시된 모수선과 인접 지점의 모수를 참조하여 결정하게 된다. 이대, 해당지점의 모수는 사용자의 다소 주관적인 판단이 작용하게 되지만, 모수선의 간격 등이 조밀하여 확률강우량 산정에는 큰 차이는 없으며, 추후 보다 많은 지점과 자료과 보완된다면 오차는 더욱 감소할 것이다.인공위성 자료를 이용한 유역의 면적평균강우량 예측: 우리나라에는 국지성 집중호우가 급증하고 있다. 이러한 집중호우는 예측에 어려움이 많을 뿐만 아니라 이에 다른 대응에도 한계가 있다. 이런 점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단시간에 이루어지는 집중호우를 예측하기 위해서 인공위성 자료를 이용하고자 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높은 시-공간 분해능을 가진 인공위성 자료를 이용하여 단시간 강우량 정보를 미리 예측함으로서 집중호우에 의한 홍수피해로부터 수많은 인명과 재산을 보호할 수 있다.GMS-5호 위성을 이용한 분석은 NAWT 알고리즘을 이용하여 강우량을 추정한다.NAWT 알고리즘은 인공위성에서 측정된 운정온도가 253K보다 낮은 경우 구름이 존재한다고 가정한다. 구름의 면적이 결정되면 하위 10%와 50%의 면적을 구분하는 온도(T10, T50)를 계산한 다음, 각 격자의 운정온도가 T10보다 낮은 경우에는 9mm/hr의 강우가 있는 지역으로, 운정온도가 T10~T50인 경우에는 2mm/hr의 강우가 있는 지역으로 간주하고, 운정온도가 T50보다 높은 경우에는 비강우지역으로 간주하여 강우량을 산정하였다. 같은 방법으로 위성 자료로부터 3시간 지체시킨 대상유역의 면적평균강우량과의 상관관계를 분석하여 신경만 모형을 완성하여 모형을 통한 예측으로 강우량을 산정한다.남한강 유역을 가지고 실험한 결과, 실제 강우량과의 상관관계가 0.57~0.6으로 비교적 높은 수치가 나왔다.부분적 레이더 정보에 따른 면적평균강우의 관측(오차): 차폐 등을 이유로 레이더가 대상유역 또는 소유역을 완전하게 포괄하지 못하는 경우에 대한 레이더 정보의 유용성 또는 불확실성이 발생할 수 있다.유역 면적에 따른 오차: 레이더로 관찰하는 유역의 면적이 클수록 관측 오차가 증가하는 것을 알 수 있다.레이더의 앵글 각도에 다른 오차: 레이더의 앵글 각도가 작을수록 레이더가 포괄할 수 있는 면적이 적어지므로 관측 오차가 커진다.결론: 수업 교재에 설명된 평균강우량 측정 방법 외에 실무에 많이 적용되는 다른 방법들에 대해 조사해 보면서, 다양한 평균강우측정 방법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방법이든 실제 강우와 근접하게 들어맞는 경우는 없었다. 더 많은 강우자료를 확보할 필요성이 있으며, 얻은 자료를 효율적으로 재가공하여 사용할 아이디어가 필요함을 깨달았다. 이런 효율적인 아이디어는 어느 한 가지의 방법 보다는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의 장점을 부각시키고, 단점을 다른 방법의 장점을 이용하여 보완하는 형태로 나아가야 함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확률분포 모수선도를 이용한 확률강우량 산정에 관한 연구 (이정식 신창동 이봉석)부수적 레이더 정보에 따른 면적평균강우의 관측오차 (유철상 하은호 김병수 등)인공위성 자료를 이용한 유역의 면적평균강우량 예측 (한건연 김광섭 최혁준)스케일 성질을 이용한 확률강우량의 추정 (정명훈 김수영 김태순 허준행)연속수정법을 이용한 레이더 자료와 지상 강우자료의 합성 (김경준 최정호 유철상)
한국사의 재조명 (2-4, 3-1)권력의 주체현재 헌법상 權力(권력)의 주체는 국민. 대통령은 權限(권한)을 가짐.권력은 무한, 권한은 한정.국민의 대표는 국회의원국민의 대표기관은 의회국가의 대표는 대통령전근대시대의 역사적 주체는 왕. 즉 왕이 권력을 가짐.王(왕): 지배 세력.史官(사관): 왕의 움직임을 적는 사람.言(언): 말을 기록하는 사관行(행): 행동을 기록하는 사관이것이 바로 역사(史)가 됨. 즉 역사의 주체는 국민이 아니라 왕.우리나라에서 史(사)가 들어가면 왕의 역사로 생각해야 함.역사의 필체紀傳體(기전체)주제별로 本紀(본기), 世家(세가), 志(지), 表(표), 列傳(열전)으로 나눔.本紀(본기): 황제의 역사.世家(세가): 제후의 역사.列傳(열전): (예, 충신열전, 효자열전, 반역열전.)인물을 어느 곳에 넣느냐가 중요.백제의 왕이나 고구려의 왕도 本紀(본기)에 들어감.삼국사기 역시 世家(세가)가 아니라 本紀(본기).즉 글쓴이의 주관에 의해 결정.제목에 史(사) 자가 들어감. (예, 삼국사기)編年體(편년체)연월일별로 가지런히 정리, 제목이 없음.제목에 日(일), 記(기), 錄(록) 자가 들어감. (예, 조선왕조실록)綱目體(강목체)큰 글씨로 쓴 줄거리 기사의 綱(강), 보다 작은 글씨로 쓴 구체적 서술의 目(목)으로 기본 틀을 이루는 편년체 역사서술의 형식.편년체와 비교해서 제목이 있다는 차이점이 있음.제목에 綱(강), 目(목) 자가 들어감. (예, 동사강목)紀事本末體(기사본말체)사건별로 제목을 앞세우고 관계된 기사를 한데 모아 서술한다. 어떤 일의 원인과 발단, 전개과정, 후에 미친 영향까지 일관되게 서술하기 때문에 대상사건을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제목에 記(기), 事(사), 述(술) 자가 들어감. (예, 통감기사본말)삼국사기 평가曲筆(곡필)을 감추기 위해 焚書(분서) 함.삼국사기(1142), 동명왕편(1193), 삼국유사(1285)삼국사기에 쓰였던 사료(특히 구삼국사)가 삼국유사에 90% 이상 나온다.시대적으로 150년 늦게 편찬된 삼국유사에서 삼국사기의 참고 사료들이 나온다는 점을 보아 김부식이 분서했다는 주장은 정황상 맞지 않는다.관련자료는 국가기록, 김부식은 일개관료그 당시 자료는 청향각에 있던 자료들이다. 이 자료들은 유일본 일 가능성이 크다.이런 자료들을 불태워 버렸다는 주장은 억측일 가능성이 크다.삼국사기 편찬으로 이전 사서들 가치 하락.당대의 역사서와 비교해서 손색이 없다. (삼국사기는 그 당시 훌륭한 역사서)述而不作(술이부작)의 객관성을 유지함.述而不作(술이부작): 베끼기만 할 뿐 지어내지 않는다. (서술할 뿐 창작하지 않는다)중국의 기록과 삼국사기의 기록(특히 대외기록)이 대동소이하다.다양한 자료 사용.곡필을 하고자 했다면 이처럼 여러 자료를 사용했을 리 없다.사대주의적 입장. (신채호는 조선 멸망의 내적 원인의 근본은 김부식의 사대주의라고 비판)本紀(본기) 설정: 고려사는 ‘世家(세가)’ 설정.本紀(본기): 황제의 역사.삼국사기에는 본기만 있고 세가는 없음. (여기서 김부식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신라뿐 아니라 고구려, 백제도 본기에 들어가 있다. 이는 삼국이 전부 정통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삼국 정통론)만약 김부식이 사대주의적 입장이라면 본기를 없애고 세가만 있었을 것이다.사대주의는 당시의 국제 질서임.조선 멸망의 외적 원인도 고려.조선의 멸망의 1차 원인을 어디서 찾아야 하겠는가?주변국과의 관계 고려가 필요하다.신라 중심적.고구려, 백제의 멸망에 대한 인식.“하늘의 뜻대로 된 것이며, 마땅히 기뻐해야 한다.”김유신 열전.삼국사기의 열전은 총 10권으로 구성(69명의 인물 등장)이 중에서 김유신에게 할애된 권수는 3권. 비대칭적이다. (즉, 신라 중심이라고 비판할 수 있다.)삼국사기는 김부식이 자신의 업적을 드러내려 편찬한 것이 아니라 인종의 명령을 받아 서술했다. 즉 인종이 대내적, 대외적으로 원했던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대내적으로는 각종 반란으로부터 왕권을 안정시키고 싶었으며, 대외적으로는 금나라의 사대 요청으로부터 벗어나길 원했을 것이다. 이를 보면 인종은 김유신을 신라의 맹장 김유신이 아니라 충성스러운 맹장 김유신으로 바라봤을 가능성이 크다.고려의 정통성.대외: 고구려 계승(북진정책)대내: 신라 계승(정통성)삼국의 본기 설정기전체에서는 정통성이 중요.진수의 : 魏(위)가 정통본기 분량.신라 12권, 고구려 10권, 백제 6권.신라가 통일, 가장 오래 지속(통일 후에도 250년 더 지속)중복 서술 회피. (백제-신라의 싸움을 신라 본기에 모두 실었음. 따라서 신라의 분량이 제일 많다.)일정 기준을 가지고 비교해야 한다. 즉 동시간으로 비교하면(고구려 멸망 전까지 신라시대의 본기는 5권 분량) 신라 중심의 역사 서술로 보기 어렵다.서술 視點(시점). : 삼국이 모두 주체.신라 본기에서 ‘나’는 신라. 백제, 고구려는 彼(피).고구려 본기에서 ‘나’는 고구려. 백제, 신라는 彼(피).3인칭 시점을 이용해 객관성을 유지하고 있다.백제 역사 기록의 충실성: 매년, 매월 기사가 빠지지 않고 매우 자세하게 서술됨.시조 설화.고구려의 고주몽 부분은 신화라기보다는 전기에 가까울 정도로 자세함.신라의 박혁거세, 김알지는 부모 없는 자식으로 취급함.고조선을 무시.‘옛날 仙人王儉(선인왕검)이 살았던 곳’ (고구려 본기)단군왕검을 인식하고는 있음을 알 수 있다.‘朝鮮(조선)의 유민들’ (신라 본기)‘삼국사기에 언급된 역사적 사실이므로 단군을 뺄 수 없다.’ (조선사편수회, 최남선)김부식이 단군왕검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조선이라는 하나의 장을 만들지 않은 이유: 인종으로부터 김부식이 받은 명령은 “대상이 고구려, 백제, 신라인 역사를 쓰라는 것”이었다. 즉 중점을 두고 역사를 기록한 시대는 삼국시대가 된 것이다.김부식이 문벌 귀족의 대표라는 점.고려 건국 후 200년이 지남.경주 김씨의 주류가 아님. (즉, 핵심 가문이 아니다.)아버지 대에 이르러 개경으로 진출. (핵심 가문이었다면 고려 건국과 함께 개경으로 진출했을 것이다.)윤관, 이자겸 등 문벌과 갈등.무신란으로 바로 몰락. (문벌 가문은 이 시대에도 역시 번성했다.)음서가 아닌 과거로 출사함. (문벌 귀족이었을 경우 가문의 배경을 등에 업고 음서로 진출했을 것이다. 과거로 출사한 사람의 대다수는 가문의 힘이 미약함.)진삼국사기표. (인종에게 삼국사기를 바치는 글.)역사적 독립성과 주체성을 나타냄.海東三國 歷年長久(해동삼국 역년장구): 해동삼국은 역사가 오래 되었다.사대주의의 비판.삼국 정통론.鼎(솥 정): 세 개의 다리가 균형을 이뤄서 솥을 받친다는 표현으로 삼국의 각각의 정통성을 강조.문화 국가로서의 자존심.본문 중 “신라와 백제가 당나라와 禮(예)로서 통했다”라는 부분에서 예는 문명을 뜻한다.삼국사기 편찬 목적.君后之善惡: 후대 임금들은 임금의 선과 악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본받아야 한다.臣子之忠邪: 신하들의 충성스러움과 간사함을 따져서 어떤 신하를 뽑아야 할지 알아야 한다.邦業之安危: 어떻게 하면 나라가 안전/위험 한지 알아야 한다.人民之理亂: 사람들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이치로 다스려지는지 반란을 일으키는지 알아야 한다.
한국사의 재조명 (2-1, 2-2)삼국통일에 관한 2가지 비판의 논점영토축소론반민족적 통일론(외세를 끌어들여 통일을 했다는 점)역사를 공부하는데 있어서, 사실과 희망의 구분이 확실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심각한 자기모순에 빠질 수 있으며 해석의 오류가 발생한다.삼국통일에 대한 인식의 변화삼국통일~조선전기: 통일 긍정론(김부식의 )조선후기: 안정복 / 유득공 / 김정호안정복: , ‘발해’의 역사가 외편(外篇)에 실려있음. 우리나라의 역사를 서술하면서 발해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기술했다는 점(비록 외편이지만 우리 역사로 취급했다)을 들어 안정복을 성리학자가 아닌 실학자로 평가한다.강목: 장과 절로 이루어진 구조. 오늘날 대부분의 책들은 이런 형태이다.유득공: , 안정복 이후 우리 역사에 발해가 등장. 라는 발해의 역사만을 적은 책을 만들었다.여기에서 “남북국(南北國)” 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했다. 이는 신라의 삼국통일의 정당성/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 (통일되지 못한 국가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김정호: - 전국 각 지역에 대한 간략한 가이드북 개념우리나라의 최초 통일 왕조를 “고려”라고 봄. (즉,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음)일제시대: 하야시 아리스게 / 신채호하야시 아리스게: 신라의 통일을 “반도 내 통일”이라고 설명. (우리나라 역사가 반도에 국한되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는 일본의 만주국 수립의 역사적 정당성을 찾기 위해서였다)신채호: 남북극 시대를 인정현재 우리나라 국사 교과서에는 “통일 신라시대”와 “남북국 시대”라는 두 가지 용어를 모두 사용하고 있다.통일 신라시대: 우리나라의 정신적 예술적 통일의 시작이 이루어진 시대. 이 시대를 인정하지 않으면 고려시대까지 이를 미룰 수 밖에 없음.남북극 시대: 이 시대를 인정하지 않으면 한반도로 역사가 축소가 된다. 즉 고구려 역사가 주변국 역사가 되고 만주 땅 역사가 사라지게 된다.두 용어는 서로 모순이며 일관적이지 못하다.동아시아 국제정세중국의 정세(수나라, 당나라)수나라수문제선덕을 베품(세금 감면) – 후에 開皇의 治(개황의 치)라는 칭송을 받음과거제도 시행대운하를 중단균정제(토지를 고르게 나눠줌)를 실시율령반포, 검소한 생활고구려 침략(30만 대군)수양제(隋煬帝)‘양제’라는 칭호는 훗날 당나라 때 붙여진 칭호. 煬은 ‘버릇없을 양’자이기도 하다. (호색가, 반인륜적 행동, 역청, 폭리) - 福手福足(복수복족)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 (손이 없고 발이 없는 게 복이다)만리장성 축조대운하(황하강-양쯔강 연결)대정원수도 이전(장안->낙양)고구려 침략(113만 대군) – 을지문덕 ‘살수대첩’당나라당태종본명은 이세민전쟁에서 패배한 적이 없음. (天策上將(천책상장)이라는 칭호를 받았다)현무문의 변: 왕위를 이어받으려는 자기 형을 살해.貞觀의 治(정관의 치)라는 칭송을 받았음.도독부(각 지방의 반란군을 제압하고 세운 군사특별행정구역)를 설치안북도독부 - 몽고군안서도독부안남도독부 - 월남지역안동도독부 - 고구려 지역(평양성)644년 11월, 별동대 30만을 이끌고 고구려 침략 – 안시성 전투에서 패배.고구려(6세기~7세기 중반)영양왕: 수나라의 공격을 4차례 방어하지만 고구려 역시 국력 쇠퇴, 신라와 백제의 한강유역 회복이 일어남.영류왕: 당고조/태종과 대립, 대당 화친정책(포로 교환, 도교 수용, 조공), 백제/신라와도 화친정책.그러자 이에 반대하는 연개소문과 무장세력이 등장. (대당 대결정책, 천리장성 축소, 정치세력 숙청, (군비 강화를 위해) 불교 탄압)보장왕: 당태종/’고종과 대립, 666년 연개소문이 죽고 내부의 분란 때문에 결국 고구려 멸망.신라나제동맹(433년): 신라(을지왕)과 백제(비류왕) 시절. 고구려의 남하정책을 막기 위해.진흥왕~성왕: 한강 유역의 영토 회복.북한산에 세운 진흥왕 순수비 때문에 전쟁 발발, 전쟁 중 성왕이 전사하자 나제 동맹은 끝나게 됨. (그 이후 보복전쟁 발발)선덕여왕 / 진덕여왕대당 화친정책.대야성 함락(640)김춘추가 연개소문에게 도움을 요청.연개소문은 김춘추에게 한강 유역의 땅을 돌려주길 요청.결국 협상 결렬.비담 혁명(647): 혁명 자체는 실패로 끝났지만, 그 결과 진덕여왕 즉위김춘추는 당태종에게 (백제의 침입을 막고 백제를 멸망시킬) 군대를 요청. (나당 동맹) 신라 역시 고구려 멸망을 돕기로 함. (당나라 입장에서는 보급 문제가 해결)백제의자왕“해동증자”라는 칭호를 받음.무왕의 아들.신라 멸망 정책. (성왕의 복수를 위해) – 이는 신라에 위협적인 요소가 됨.백제는 크게 마한족(지방호족)과 부여족(중앙관직)으로 나뉨. 국력이 의자왕을 비롯한 부여족에 집중됨.22개 담로 파견. (지방을 자신이 다스리겠다는 의도) -> 그 결과 마한족과의 갈등이 심화 됨.결국 당-나 연합군에 멸망.영토축소론三韓(삼한)당나라 중종이 신라의 신문왕에게 무열왕의 칭호(=태종)를 문제삼자 그에 대해 설명한 글(p.6)의 일부를 살펴보면 “一統三韓(일통삼한)” 이라는 단어가 있다. 즉 태종 무열왕이 삼한을 통일하여 그 공이 있어 “태종”이라는 칭호를 붙였다는 내용인데, 이를 비추어 보아 삼한이란 가야, 백제, 신라를 말함을 알 수 있다. (고구려가 멸망한 때는 신라의 문무왕 때이기 때문, 또한 고구려는 신라에 의해 멸망한 것이 아니라 당나라에 의해 멸망하였다.)보통 황제를 이르는 칭호는 “종 또는 조 / 왕 / 군” 이렇게 세 단계로 나뉜다.게다가 맨 앞에 “太(태)”자는 나라를 건국하는데 큰 공을 세웠을 경우에 붙여진다.따라서 삼한을 가야, 백제, 신라가 되는 경우, 신라는 삼한을 통일하면서 그 영토가 약 5배로 늘어났다고 말할 수 있다.나-당 동맹의 기본 정신신라가 얻으려 한 이익: 백제의 멸망당나라가 얻으려 한 이익: 고구려의 멸망즉, 신라는 고구려를 멸망시키려고 의도하지 않았다.신라의 국력백제의 군사력: 멸망 5년 전까지 30개의 성을 함락시킬 정도로 막강했다. (당나라에 도움을 요청할 정도로 신라는 위태했음)고구려의 군사력그러므로 신라가 통일을 하고서 영토를 축소했다는 해석은 무리한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반민족적 통일론‘민족’이라는 용어고구려, 백제, 신라가 같은 부족(민족)이었을까?고구려 – 부여족백제 – 부여족(피지배층은 마한족)신라 – 남방계통즉, 세 나라는 서로 다른 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건전한 통일 의식의 유무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키려는 목적이 분명했을까? (즉, 명분이 있었을까?)신라의 지배층이 백제에 갖고 있었던 것은 “생존 본능”, “보복 의식”이었을 가능성이 크다.이를 뒷받침하는 사례김춘추가 당나라 태종을 만났을 때, 백제에 대해 “凶惡(흉악)”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정도.관창과 계백의 싸움: 상대방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의식, 즉 생존 본능.문무왕이 사비성을 점령한 후 백제의 왕자 융에게 “대야성 전투 이후로 가슴 속 원한 때문에 한잠도 자지 못했다. (중략)”라고 한 말.그러므로 당나라를 끌어들인 신라의 삼국통일을 반민족적 통일론이라고 해석할 수 없다.신라의 삼국통일 이후로 민족의식, 민족문화라고 말하는 것들의 형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즉 우리 민족의 기초가 형성되었다.
한국사의 재조명 (1-2, 1-4)삼국유사에 소개된 단군왕검 신화 중 첫 번째 장 해석 내용위나라 역사에 이르기를(위서에 이르기를) 지난 2천년 전에 단군왕검이 있었는데 아사달에 도읍을 세웠다. 나라를 연 다음에 조선이라 불렀다. ‘고’와 같은 때였다.옛 기록에 이르기를 환인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서자인 환웅이 자주 하늘 아래에 뜻을 두어 인간 세상 다스리기를 탐냈다. 아버지가 자식의 뜻을 알아서 상위태백이라는 곳을 내려다보니 널리 인간을 이롭게 여길 만 하다 여겨서 하늘의 부적이 되는 증명서 세 개를 주면서 보내어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은 물 ~ 3천을 이끌고 태백수 꼭대기 신당수 아래에 내려왔는데 이를 일러 신시라하고 이 사람이 환웅천황이다.인간 360여사를 주관하여 세상을 조화로서 다스렸다. 당시 한 마리 호랑이와 한 마리 곰이 있었는데 한 동굴에 살았다. 항상 신인 환웅에게 기도하여 인간이 되길 원했다.휘하다: 존귀한 사람의 이름을 높여준다. 이름을 말할 때 ~자 ~자 를 붙여주는 것이 휘의 일종이다. 위의 ‘고’ 자는 원래 요나라의 ‘요’ 자를 뜻하는데 고려시대 3대왕인 ‘왕요’ 라는 임금의 이름과 겹치기 때문에 ‘요’ 자를 사용할 수 없었음. 그래서 예로부터 왕의 이름은 짧고, 또한 이름에 사용되는 글자는 새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음.神話(신화)정의: 집단기억, 집단이 가졌던 경험이자 꿈이자 이상기억의 종류개인: 충격적인 일. (예를 들어 탄생과 사망)국가: 국경일로 제정하여 달력에 표시. (국경일은 크게 ~일(날)과 ~절로 구분되는데 ~절은 국회에서 정함. 총 4개의 ~절이 있음(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신화의 특징일관성역사성 / 설화성원형 / 변형은유 / 상징제의(제사) 등장언어신화소(신화의 요소)환인석제 환인 타라일연은 자신의 신이던 석제(석가모니)를 단군왕검 신화에 등장하는 신으로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가운데 글자인 환인이라는 글자를 차용했을 가능성이 크다.Sakara devanam Indra (“정신적인 하늘 신” 이라는 뜻)우리민족의 절대적인 존재 = 불교적인 용어로 해석서자 환웅庶子(서자)식민사관2등국민론일선동조론(일본과 조선은 하나의 조상이다)조선시대 결혼제도를 살펴보면 자식을 구분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이다. 본처에서 나온 자식을 적자, 첩의 자식을 서자라고 불렀으며 서자들은 부모를 모실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 (실제 노비와 평민 사이 정도 수준의 계급이었다.)왕실에서도 ‘비’는 1명만 존재했으며 그 이외에는 전부 ‘빈’으로 불리었다. ‘비’의 자식은 ~대군(양녕대군, 충녕대군), ‘빈’의 자식은 ~군(연산군, 광해군)이라는 호칭을 붙였다.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은 과연 고조선을 깎아 내리기 위해 서자라는 단어를 사용했을까?그렇지 않다. 일연이 살아있던 고려시대에는 결혼제도가 조선시대와는 달랐다. 동복에서 나온 자식들간에는 결혼이 금지되었지만 이복에서 나온 자식들 간에서는 결혼이 가능했다.왕실에서도 다수의 ‘비’가 존재했다. 그만큼 서열을 따지는데 있어서 나이가 중요했다. 장자를 제외한 나머지를 ‘무리서’ 자를 써서 서자라고 칭했다.數意天下 貪求人世 (삭의천하 탐구인세)선민사상(선택된 백성)을 나타냄.대부분의 신화에는 민족의 하늘의 선택을 받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천하에 자주(여러 번) 뜻을 두고, 인간세상 다스리기를 (탐낼 정도로)추구했다.父知子意 (부지자의)아버지와 아들 관계가 조화롭고 타협적이다. (서양 신화의 경우 부자관계가 폭력적인 경우가 많다.)하늘 나라의 축복 속에 내려왔다. (정당성 / 정통성) – 내쫓긴 게 아님.太白山 (태백산)식량이 풍부외부의 침략에 방어하기 용이제사를 지낼 수 있다. (산이 높아서 하늘과 가까우며 일반 산과는 달리 하얗다)시베리아부터 한반도에 이르기까지 태백산, 백두산, 소백산 등 비슷한 이름의 산들이 13곳이 있다. 이는 우리 민족의 이동경로를 나타낸다. (사람은 비슷한 환경에 정착하려는 특징이 있다)天符印 3개 (천부인 3개)하늘의 아들임을 증명해야 한다. (한 가지로는 믿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많을수록 좋다)천부인 3개란 다음과 같으며 이들을 표준유물이라 일컫는다. (이런 유물들이 발견되면 청동기 시대임을 알 수 있다)청동 검: 무력(힘)을 상징. (주석과 아연의 비율이 중요한데, 그 당시 기술부족으로 비율이 제대로 맞지 않아 잘 부러지거나 구부러지기 쉽기 때문에 실제 생활에는 사용되지 못하고(석기를 사용) 의장용으로만 사용되었다.청동 방울: 무당을 상징(무당의 무구) – 종교 지도자, 제사장을 뜻한다.청동 거울: 빛을 상징 – 천자임을 입증한다.神壇樹 (신단수: 신에 제사를 지내는 나무)하늘과 땅을 연결해 주는 나무. (세계목, 우주목, 생명수라고 불리기도 한다)巫 (무당 무): 하늘과 땅을 연결해 주는 모양에서 본 딴 글자. (상형문자)시베리아 지역에서는 하얀색의 자작나무를 사용하지만 동북아 지역에는 자작나무가 없어서 비슷한 색의 박달나무를 사용한다. (‘제단 단’ 자의 흑토 변 대신 나무목 변을 사용하면 檀 ‘박달나무 단’ 자가 된다)곰. 호랑이.각각 곰을 숭상하는 부족, 호랑이를 숭상하는 부족을 나타낸다. (토테미즘: 동물을 숭상)북(北)으로부터 청동기 부족(샤머니즘)이 내려와 충돌과 갈등이 생기게 된다. (마늘과 쑥이 이런 갈등을 나타냄 – 마늘과 쑥은 향이 독하고 쓰다)호랑이 부족은 북에서 내려온 청동기부족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만주에서 한반도 지역으로 이주. 이들이 현재 우리 민족이 호랑이 정신을 갖고 있는 점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청동기 부족과 대항한 곰 부족은 결국 청동기 부족의 지배를 받게 되고, 처음에는 힘으로 곰 부족을 지배하던 청동기 부족은 문화적으로 영속적인 지배를 위해 결혼정책을 선택하게 된다. (곰+환웅)이런 결혼정책의 결과로 일정 권력을 곰 부족에게 나눠주게 된다. (그 당시 제일 중요한 종교는 청동기 부족이 다스리고, 그 다음인 정치 행정 부분의 권력을 곰 부족에게 나눠준다)웅녀와 환웅 사이에서 태어난 단군왕검 시기에는 화합이 잘 이루어 지기 때문에 분열이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때부터 제정일치가 이루어지게 된다.결론檀君王儉 (단군왕검)王儉: 王(훈을 나타냄), 儉(음을 나타냄)儉자는 정치적인 지배자를 나타낸다.훈민정음에 보면 儉자를 감, 검, 금으로 나타내는데 이들 모두 정치적인 지배자를 뜻하는 단어로 사용된다.감: 영감, 대감, 상감 – 정치적인 지배자를 뜻함검: 검정 – 신령스러움을 나타낸다. (하루의 시작은 밤중이고, 세상의 시작은 혼돈(암흑)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금: 임금 > 잇금 > 이사금檀君 + 王儉밝음 + 검정청동기 + 신석기하늘 + 땅환웅 + 곰을 숭배하는 부족샤머니즘 + 토테미즘결국 단군왕검은 조화와 통일을 나타낸다.일연은 몽고침입에 대항하여 지배층과 피지배층 사이의 단절을 조화와 통일이라는 이미지(이념)를 알리기 위해 단군왕검을 내세웠다.현대적인 의미: 통일과정에서 발생하는 남북간의 갈등, 내부간의 갈등 등을 단군왕검의 조화와 통일의 이념을 가지고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현재 남한과 북한 모두 단군왕검을 인정하고 있다 – 남한의 개천절, 북한의 단군왕검릉)
한국사의 재조명 (3-2, 3-4)敎(교)와 學(학)의 차이점. (즉, 종교와 학문의 차이점)종교: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 신과 인간은 주종의 관계. 즉 모든 만물을 하느님이 분석하고 결정.神(신)의 특징全知全能(전지전능)무 오류遍在(편재)성: 두루 존재한다.학문믿음의 대상이 아닌 분석의 대상.분석의 주체는 사람이며 분석되는 대상은 만물.공자는 “怪力亂神(괴력난신)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말했음.성리학에는 신이 없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세상의 중심은) 바로 사람이다. 따라서 인간을 분석할 필요성이 있다.性理學(성리학)성리학에서는 인간의 내면적인 모습을 중시했다. (인심)겉으로 드러나는 것들은 예절로서 다스렸다.성리학에서는 인간의 마음이 둘로 이루어졌다고 본다.性(성)가장 순수하고 무궁한 것, 기본이 되는 것으로 파악하기 어렵다.주자는 성은 곧 理(리)라고 말했다. (그 결과 성리학이라고 불림.)보편적인 인간은 4段(단)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仁(인): 측은지심, 보통의 수준에서 벗어난 경우를 불쌍하다고 하는데 이런 불쌍함을 느끼는 것.義(의): 수오지심,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을 때 부끄러워하는 마음(반성하는 마음).禮(예): 사양지심, 양보하는 마음.知(지): 십이지심,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함.情(정)‘성’이 마음의 표면 밖으로 나와 드러난 것. 따라서 파악하기 쉽다.겉과 속이 다르다는 말처럼 쉽게 믿을 수 없다.주자는 정은 곧 氣(기)라고 말했다.보편적인 인간은 7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인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했고, 교육의 정도에 따라 인간을 나눴다.聖人(성인): 이 세상에 성인은 딱 3명만 존재한다.대인: 虎變(호변). 잘못이 있었을 때 호랑이가 털갈이를 하고 난 뒤 반짝반짝 빛나는 것처럼 자신의 행동을 바꾼다.군자: 豹變(표변). 잘못이 있었을 때 표범처럼 자신의 행동을 날쌔게(급히) 바꾼다.소인: 형면. 얼굴을 바꾼다는 뜻으로 상황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일컫는다.成人(성인성인까지는 교육에 의해 이뤄지지만 그 이후에 소인부터는 스스로의 수양에 의해 이뤄진다. (愼獨(신독): 혼자 있을 때도 스스로 행동을 절제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성리학의 쇠퇴과거에는 농업 위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집단을 이룰 수 밖에 없었다.조직체계를 위해 향약과 장유유서의 논리가 필요하게 되고 이는 성리학의 기반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70년대 이후 농업사회가 산업사회로 급속히 변하면서 더 이상 집단 노동이 아닌 개인노동의 형태로 변했다. 따라서 명령이 필요 없게 되고, 장유유서의 논리 역시 필요가 없게 되었다. (제사 자체도 매우 형식적이게 되었다.)이런 요인으로써 성리학의 기반이 된 것들이 급속하게 변했고, 그 결과 성리학이 쇠퇴하게 되었다.성리학의 쇠퇴한 이유에는 학문 내적인 요인과 외적인 요인 모두가 있겠지만 우리나라에 있어서는 이러한 외적 요인들이 더 크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사회 변화에 맞춰 성리학 역시 변했어야 하지만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고, 그 결과 현재 우리 사회에는 갈등 해소를 위한 철학적 논리가 없다.성리학이 사회적 효용성을 잃었다는 증거로 “호적개편(호주제도→개인제도)”을 들 수 있다.성리학의 변화性理理情氣氣(사람)공맹유학주자학퇴율학(시대)선진유학송학조선조성리학(논리)원시유학이기론사칠논변/인물성동이론주자는 性과 情의 개념을 철학적으로 理와 氣로 바꿨지만, 이는 형식적이고 이론적이기만 할 뿐 세상에 적용시키기가 힘들었다.조선시대의 퇴계와 율곡이 이를 해결하여 완벽하게 만들었다.현실에 대입시켜 사회를 운영하게 되었다. (주자학의 완성단계)중국으로부터 들여온 주자학을 조선시대 사회에 적용하다 보니 문제점이 생기기 시작했고 기존의 학문을 뛰어 넘는 부분이 생기게 되었다.병자호란은 성리학의 완성에 큰 역할을 했다. (청나라에 패배했다는 사실보다 마음속 상처가 더 깊어 백성들을 달래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사칠논변퇴계기대승(율곡)主理論(주리론)理氣二元論(이기이원론)主氣論(주기론)理氣一元論(이기일원론)즉, 이와 기의 근원은 2개다.서로 뿌리가 다름(섞일 수 없음)理만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라 주장이와 기의 근원은 1개다.서로 뿌리가 같지만 올라오는 줄기에서 理와 氣로 나누어짐.理의 중요함을 강조했다. 하지만 주리론처럼 理만이 유일한 것이 아니라 氣의 존재도 어느 정도 인정.둘 다 性이 理라고 하는 데는 의견이 일치하지만 비중의 차이가 있다.퇴계와 비교해 어느 정도 氣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도드라져 보이기 때문에 주기론이라 불리지만 그렇다고 理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인물성동이론인물성동론인물성이론“근본(본성)은 같은데 사회적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변했다. 즉 교화가 가능하다”라는 주장.근본주의자, 원리주의자“조선사람과 청나라는 근본부터 다르다”고 주장.근원지역서울지역이 중심충청(호서)지역이 중심노론동인, 남인 계열관직자일 가능성이 큼. 외국 사신으로 갈 기회도 많고 고위 관직자가 될 가능성이 많음.즉, 청나라를 인정하는 사람들.청나라를 인정하지 않음.외교정책北學(북학)北伐(북벌)노비공노비 해방 찬성공노비 해방 반대개항기개화파위정척사파한말애국계몽운동의병전쟁일제시대외교독립론개조파 주장비타협 무장항전창조파 주장해방이후이승만김구성리학과 양명학의 차이점성리학性만이 세상의 이치라고 주장.세상의 운영원리는 1개뿐이다.옳고 그름의 구분이 쉽다.양명학性과 情 모두가 세상의 이치라고 주장.세상의 운영원리가 2개임을 주장.좀 더 유연한 사상 체계를 갖기 때문에 세상에 접목시키기 쉽고 해석의 범위가 넓다.옳고 그름의 구분이 어렵다. (즉, 유연성은 있지만 이도 저도 아니게 되었다.)성리학은 해방 전후까지 영향력을 미쳤다. (1930년대까지 갈등해소의 역할과 하나의 철학적 이론으로 작용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