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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축제를 너무 즐기는 바람에 장염으로 고생하며 몸 상태도 안 좋아지며 복학의 초심을 잊고지내고 있었다. 아픔 몸을 이끌고 책을 무엇을 읽을까를 고민하다가 다른 경제학 관련 제목보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공자가 누구인가? 우리나라 사상의 뿌리가 아닌가?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생각하고 행동 하는 모든 것의 뿌리가 아닌가 한다. 그런데 제목이 공자가 죽어야 우리의 나라가 산다고 하니, 나 처럼 조선시대에 살 것 같은 고지식한 청년 눈에는 쉽게 들어왔다. 누가 이런 말을 할까? 하는 의문을 가지며 작가에 대해 알아보았다. 먼저 책에서는 10살 때부터 한자와 붓글씨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대학에서도 한문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공부를 했다. 그 후 타이완에서 고대문자 학자인 쉬탄훼이 박사를 만나 고대문자와 갑골문자를 배웠다. 90년에는 한국인이로서는 처음으로 갑골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한국, 중국, 일본에서 동양문화의 기원과 갑골문에 관함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특히 94년부터는 해마다 진행하는 중국배낭여행을 통해 중국인들의 문화적 특성과 의식구조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여기서 얻은 결과들을 책과 강연, 방송, 칼럼 등을 통해 꾸준히 발표하고 있으며 98년부터 일본문화에 대한 관심을 중국과 한국 사회와 연결하여 해석하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주관적인 생각을 보며 이렇게 우리나라 사상을 우리식으로 배우는 곳이 아니라, 본토에서 직접체험하고 느끼면서 배웠기 때문에 그 근본적인 정신이나 행동강령에 대해 보통 사람들과 다른 시각을 가실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다. 그리고 책 구조를 간단히 소개 하자며 총 5부로 분류되어 있다. 1부 한국인으로 사는 열 가지 괴로움. 2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3부 일본이여 들어오라! 중국이여 기다려라. 4부 공부는 끝났다. 5부 한국인을 넘어서 이렇게 큰 제목 아래 작은 제목으로 주제를 가지며 짧게 의견을 내고 있다.1부의 한국인으로 사는 열 가지 괴로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제 지도는 찢어졌다 이다. 다른 생각하게 하고 의미 있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이 첫 장에 나오는 내용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여기서 작자는 새로운 시대가 도달해 있다고 한다. 이른바 4I로 대표되는 산업(Industry), 투자(Investment), 정보(Information), 개인(Individual) 로 구성된 새로운 삶의 연합체가 등장한 것이다. 4I는 국경이 없다. 이익만 된다면 어느 국적을 가졌건 어디서든지 생활을 할 수 있는 시대가 가고 있다. 즉 자본에는 국적이 없다. 말이 잘 표현해주고 있다. 우리 주위에는 우리 국민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우리를 좌지우지하는 주변국들이 많이 있다. 과연 이들 나라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아니 가질 수 없다. 우리가 늘 외치는 세계화, 글로벌 경제며, 다양한 문화적 교류의 배후에는 미국이 조용히 달려오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회 구조가 미국식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으로 점점 느끼기 쉽다. 수업이며 시장경제. 법체계. 정치 거의 우리의 모든 생활기반이 미국식이 아닌 것이 얼마나 있을지? 작은 예로 학교에서 우리나라 김덕수는 몰라도 되었지만 베토벤의 무슨 음악은 꼭 알아야하며 교육을 시작한다. 더 나가가 영어가 영국의 모국어인가 하는 생각도 할 만큼 미국 옆에 있기 위에 영어를 배우는 느낌. 아니 사육된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그리고 미국 뿐의 말은 아니다. 주변국을 보며 중국, 일본도 있다. 먼저 중국은 우리의 최고 고민인 통일문제를 가지고 교묘하게 가지고 논다. 최근에는 역사를 가지고 장난을 치며 더 우리의 머리를 아프게 한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우리를 지배한 적이 있기 때문에 우리를 잘 알며 좀 더 밑에서부터 우리를 압박해오는 듯 하다. 본인 또한 일본만화를 즐겨보며 의도하지 않지만 일본문화에 적응해 가고 있다. 역사를 배우고 한국인으로 살아가면 일본을 미워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결코 좋아하는 감정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일본문화에 적응되어간다며 한 세대가 또 지나가고 나면 과연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줄어들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렇다고 미국 중국 일본 위의 모든 것 과거대원군처럼 문 닫고 우리 것이 좋아. 라고 외치며 있을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그럼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가지며 어떤 행동을 하며 살아야 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먼저 나를 먼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나를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시작되는 말이 아닌가 한다. 내가 무엇을 잘 하며 어떻게 하며 이 능력을 다른 사람이 따라오지 못하게 할 수 있는지를 늘 고심해야한다. 그렇게 한다며 경제학자 리카도의 주장처럼 자유무역시대에서 우리의 자리를 견고해지는 것이다.2부에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에서는 죽은 박정희가 다스리는 나라라 딱 눈에 들어왔다. 제목을 보면 내용을 알 수 있듯이 이 파트에서는 정치적인 문제를 나룰 것이라 생각했다. 박정희는 단순 온고시신의 강박관념에 빠져있는 우리의 모습을 표현 한 것이다. 조금 다른 길로 가는 느낌이지만 나는 계속 최근의 정치생각을 짧게 했다. 작년에 대선에 총선들 정치적으로 올 해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최근에는 국민들 입에서 이제 시작하는 대통령 탄핵까지 나오니 생각을 아니 할 수가 없다. 어떻게 지금 일어나는 현상을 설명 할 수 있을까? 공자의 유교사상으로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좁은 식견으로는 국민의식은 발전 했고 무서워 졌는데 정부는 아직 우리 국민을 어린이 수준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노 전 대통령 시대를 지나며 국민들이 참여함에 느끼는 뿌뜻함을 알았고, 월드컵을 세계가 놀라게 했다. 그래서 모여서 참여할 수 있구나 하는 의식이 있으며 최고 IT기술 덕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다. 그런데 아직 정부는 80년대 사고를 못 버리고 있는 것 같다. 그것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긴 하다. 80년에 국가를 위해 목소리 높인 대학생은 지금 40 50대이고 지금 그 자리는 대신하는 이들은 10대부터 다시 시작이니, 세대교체가 확실히 되었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현 정부는 아직 그 때 그 사람들의 영향에 있는 것이다. 변화지 못하는 기업이 시장에서 살아지듯이 우리 정부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갈까? 이렇게 정부의 변화에 적응 못 함을 이야기 하지만 과연 우리는 제대로 변하고 있는가? 하는 자기질문을 해볼 만하다. 제목 박정희 아니, 그의 딸 박근혜가 나오면 대구사람들은 거의 최근의 미친소 처럼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정치적 발전을 외치는 국민들이 투표율과 그 결과를 보면 무슨 공산주의 최고봉을 보는 것 같으니 얼마나 아이러니 한가? 여기서 책에서 말 하는 과거를 너무 중시하는 우리 한국인들은 이제는 미래를 바라보는 넓고 깊은 눈을 길러야 한다고 지은이는 말하고 싶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다음 장에 눈을 돌린다.3부 일본과 중국에 대해 우리의 자세를 설명하고 있다. 그 중 일본을 용서한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부끄러운 생각을 했다. 위에서 말 했듯이 가끔이지만 일본만화를 보는 게 부끄러운게 아니라 언제나 일본은 나쁘고 우리는 언젠가 복수를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 부끄러웠다. 개인적으로 이런 일도 있었다. 친한 친구가 외국으로 어학연수를 갔다가 일본인 여자친구를 사귀어 귀국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학창시절에 삼국지에 늘 빠져 살며 일본의 매일 욕하는 완전 일본에 있어서 절친한 친구였다. 그런 친구가 일본여자친구를 사귀니 나도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러다 어느 날 그 친구가 입을 열었다. 그 동안 많이 눈치를 본 듯한 목소리였다. 만약 일본사람이랑 결혼을 하면 올 수 있겠냐는 질문이 였다. 나의 답은 잘 모르겠다. 였다. 그 친구도 충격을 먹었는지 몇 초가 말이 없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일본이라는 나라에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지금도 심심하면 독도를 가지고 고도의 작전을 구사하니 말이다. 책에서 월남교수의 말처럼 미워하는 건 힘든 일인 건 확실하다. 나 자신에게 투자 할 시간도 없는 현실에 남의 잘 못 까지 찾아서 시간을 보내긴 시간이 아깝다. 그리고 현실이익을 생각한다면 언제나 모든 문제를 감정적으로 생각하면 결코 우리는 일본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며, 큰 형님의 풍미를 보여주어야 하는데 말은 쉽지 생각처럼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당장 모든 감정을 청산하는게 아니라. 하나하나 미래를 위해 우리의 후손을 위해 변해야할 것이다.4부 공부는 끝났다. 아직 공부를 하는 학생입장에서 4부는 그냥 구름 많은 흐른 날이다. 공부의 공자만 봐도 머리가 아픈 게 학생 아닌가? 그렇다고 죽어라 하지도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한다. 그냥 간단하고 깊은 한 숨이 모든 걸 표현하는게 아닌가 한다. 지은이도 이야기 한다. 쓰기에 대해서 이런 책을 읽으며 그 내용을 이렇게 쓰고 있으니, 진짜 책의 말은 맞는가 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살아지지 않는다. 태어나면서 영어노래를 듣고 한글은 정자. 난자가 만나면서 다 배우고 유치원가기 전에 연수 1년 정도 다녀오고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는것도 분명 아니다. 내가 가난하기에 가난한 위치에 있기에 못 하는 것이지 안 하는 것이 아니다.4부의 내용은 여기서 줄이고 싶다. 생각을 하면 할 수록 머리만 더 아파온다. 그래도 하나는 알고 넘어간다. 이것 또한 공자적 생각이지만 내 부모 내 자신을 위해 열심히 돈을 모아서, 내가 못 한 모든 것을 신문이나 인터넷에서 본 것들을 꼭 내 자신에게는 해주고 싶다. 지금의 마음이 분명 희석될 쯤 되면 또 다른 상대적 박탈감의 등장으로 마음을 잡으며 살아야겠다. 그럼 분명 나의 자식들은 나보다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을 것이다. 이것도 유교적이다.
    경영/경제| 2009.12.08| 4페이지| 1,000원| 조회(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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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징비록
    징비록
    Book Review4학년 1학기가 시작하며 국가안보론 이란 수업을 듣게 되었다. 수강하기 전에는 군대도 다녀왔으니 쉽게 생각하며 강의를 신청하게 되었다. 하지만 강의를 들으면서 나에 새로운 국가관 가치관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국가 안보 상태와 여러 가지 남북관계 한미관계에 대하여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내가 읽은 책은 징비록이라는 책이다. 3권의 책 중에서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을 하다가 우리나라 역사와 관련이 있는 징비록이라는 책 이 나에 눈길을 끌었다.먼저 징비록에 관한 한편의 글을 적기 전에 저자 및 역사 소개를 간략하게 해보겠다.저자는 유성룡이란 분이다. 1542년, 즉 중종 37년에 경상도 의성 지방에서 황해도 관찰사 유중영의 아들로 태어났다. 16세 때 향시에 급제한 그는 21살이 되던 해 퇴계 이황의 문하로 들어가 학문을 닦았다. 25세 되던 1566년에는 문과에 급제하여 승무원 권지부정자로 관직에 발을 들여놓았다. 임진왜란 발발시 좌의정으로 병조판서를 겸하고 있던 그는 다시 도체찰사에 임명되어 군무를 총괄하였다. 선조가 난을 피해 길을 떠나자 호종하였으며, 개성에 이르러 영의정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평양에 이르러 나라를 그르쳤다는 반대파의 탄핵을 받아 파직 당했다. 서울 수복 후, 다시 영의정에 복직되었다. 선조가 서울로 돌아오자 훈련도감을 설치, 제조에 올라 군비를 강화하고 인재를 배양하였다. 그러나 정유재란 이듬해 북인들의 탄핵을 받아 관직을 삭탈 당했다. 고향으로 돌아간 그는 조용히 저술에 몰두하였는데, 그 후 복관되어 조정에서 여러 번 불렀으나 일체 응하지 않았으며, 1607년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임진왜란은 1592년에 벌어졌으나 그전부터 왜군의 침입은 자주 일어났으며 임진왜란은 충분히 추측하고 대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 우리 조정은 파를 나누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일에만 급급하고 나라의 일에 의견을 모으지 못하였으며, 유성룡이나 이순신과 같은 충신들의 의견을 무시해 버렸다.우리나라는 일본 국왕 겐지가 나라를 세운 후 200년 이상을 그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서로 사신들도 보내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성종때 부제학, 이형원, 김흔을 보내 일본과 화친하도록 하였으나 대마도에서 풍토병에 걸려 더 이상 일본으로 사신이 가질 못했다.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왕위에 오르자 가장 먼저 우리나라에 사신을 보내 통신사 파견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수로가 험해서 사신을 보내지 못하노라.’ 라는 답장을 써서 보냈다. 답장을 받은 히데요시는 크게 화를 내며 그 자리에서 야스히로를 죽였다. 그후 히데요시는 한 차례 더 사신을 보냈다. 이번에 조정은 예전 조선을 침략한 반란군들을 돌려보낸 후에 통신사 건을 논의하자고 하고 수개월 후 끌려온 반란을 모의했던 조선인 십여 명을 죽였다. 그 후 임금은 황윤길과 김성일을 사신을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일본으로 건너 간 사신들은 사신으로의 접대를 받지 못했으며 사신들이 돌아올 때가 되어도 히데요시는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이에 화가 난 황윤길과 김성일은 크게 화를 내고 돌아오려 했고 이에 난처해진 일본은 답서를 써 주어 미흡하지만 그 답서를 받아 돌아오게 되었다.그러나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임금에게 보고함에 있어서 황윤길은 머지않아 전쟁이 일어날 것을 보고했고, 김성일은 그런 기색이 전혀 없었다고 보고하였다. 또한 답장의 내용이 ‘군사를 거느리고 명나라를 치고자 한다.’였다. 이로 인해 일본 침략에 대한 대비에 대한 조정의 의견도 나뉘었으며 안정된 그 당시 사회에서 성을 다시 쌓고 병력을 키우기 위해 백성을 이용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 여기저기에서 일어나게 되어 우리나라는 일본침략에 대한 대비가 허술하게 이루어졌다.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은 우리나라에게 명나라와 일본과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다. 이에 조정은 무시해 버렸고 시간이 지날수록 협박에 가까웠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에 응하지 않아 그 후 이에 화가 난 왜적은 우리나라를 침입하게 되었다. 왜는 부산포를 점령하고 동래에 입성한 후 빠른 속도로 우리나라를 점령해 들어와 상주가 적의 수중에 들어가고 순변사 이일은 충주로 도망치는 등 이러한 과정에서 많은 장수들이 도망쳤고 몇몇 장수만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웠다.이처럼 상황이 시급해지자 고위 관료들은 성을 버리고 떠나기가 일쑤였고 장수들도 제대로의 역할을 하지 못하여 백성들이 직접 전쟁에 투입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각 동네에서는 그 동네에 사는 사람들과 천민들, 말단 관리와 삼의사 소속 사람들을 모두 모아 성을 지키게 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라를 지키려 했다.미리 황윤길의 말을 귀담아 듣고 이순신이나 유성룡의 의견을 인정해서 왜군의 침입에 대한 준비가 이루어졌다면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왜적의 침략에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우리군사가 상주에서 패하고 충주도 함락되었다. 충주에는 신립이 조령을 방어하려고 했다. 군관하나가 들어와 적이 조령을 넘었다는 보고를 받고는 혼자 나가 알아본 뒤 망령된 보고라 하여 그 군관을 죽였다. 그러나 적은 이미 가까이 와있었다. 이 모습을 본 신립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강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유성룡은 이를 보고 이런 구절을 남겼다. 원래 신립은 날쌔고 용감한 것으로 이름이 놓았으나 전투의 계책에는 부족한 인물이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장수가 군사를 쓸 줄 모르면 나라를 적에게 넘겨준 것과 같다” 라고 하였는데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 그러나 후손들에게 경계가 될 것이라 생각해 상세히 적어둔다. 이것으로 후대에는 이러한 실수를 하지 않도록 염려하는 마음이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 적이 빠른 속도로 서울을 향해 오자 임금은 평양으로 옮겨가야 했다. 서울을 버리면 안 된다는 여러 의견이 있었으나 임금은 서쪽을 향해 출발 하셨다. 적은 3일 서울에 들이닥쳤고 유도대장 이양원과 원수김명원은 이미 달아나 버린 후였다. 임금은 임진강을 지켜 적이 서쪽으로 오지 못 하도록 하는 명령을 내렸고 개성을 떠나 금교역에 당도하였다. 삼도 순찰사 이광과 충청도 관찰사 윤국형이 만나 합세하여 그 병력이 5만에 이르렀으나 문인출신으로 병무에 약하고 명령도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여 패하고 말았다. 부원수 신각이 양주에서 적을 무찌르고 적병60명의 머리를 베었다. 그런데도 조정에서는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다는 글을 보고는 선전관을 보내 신각을 죽였다. 적이 함경도로 들어오면서 두 왕자 또한 적에게 사로 잡혔다. 뿐만 아니라 이들을 수행하던 김귀영 황정욱 등이 모두 적에게 사로 잡혔다. 남병사 이혼은 갑산으로 도망쳤다가 백성들 손에 죽었다. 이로서 모든 국토가 적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었다. 임금을 수행할 사람조차 없을때 충주싸움에서 패한 이일이 임금이 있는 곳까지 오게되었고 명나라의 요동 도사가 진무 임세록을 우리나라에 보내 왜적의 정세를 탐지하도록 했다. 임금이 평양을 떠난다는 소문이 있자 무기와 몽둥이를 든 난민들로 거리는 북적했고 이들이 궁으로 밀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유성룡은 조용히 그들을 타일러 사태를 수습했다. 이덕형에게 겐소가 보내는 편지로 둘은 만나게 되었고 겐소는 우리가 조선의 길을 빌어 중국에 조공을 하고자 하였으나 조선이 허락하지 않아 이렇게 되었으니 지금이라도 작은 길을 열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태도가 무례하여 더 이상 논의하지 못하고 마침내 임금은 영변을 향해 길을 떠났다. 평양성을 지키기 위해 우리군은 노력했으며 유성룡은 임금의 명에따라 오직 명나라 장수만 접대해야 했다. 군사에 참여할 수 없었던 안타까움이 글에 있는 듯하다. 평양성을 지키기 위해 마름쇠를 모아 강에 뿌리고 여러 가지로 노력했으나..비록 이 부분이 임진왜란의 한 시기이지만 저자 유성룡의 뛰어난 저술능력과 시기별?장소별로 단락을 구분하여 객관적인 입장에서 궁궐과 대신들 그리고 전국 각지의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지금부터 임진왜란의 한 시기를 임금의 피신장소를 시점으로 하여 살펴보고자 한다.임금은 가산으로 피신하고 동궁은 박천을 거쳐 산중으로 몸을 피했다. 김명원은 밤을 이용해 공격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러나 남보다 앞서 적진에 뛰어들다 결국 적에게 당한 꼴이 된다. 마침내 적군은 평양성에 입성하고 식량 10만석을 차지하게 된다. 이는 전에 평양성으로 곡식창고를 옮겼기 때문이다. 미리 임진왜란을 대처하지 못한 행동이다. 현명한 선비하나만 이를 선견지명으로 예측하였다면 적에게 평양성을 빼앗기지는 않았을 것이다.임금은 가산을 떠나 정주에 닿는다. 그리고 다음날 선천으로 향한다. 백성들은 모두 떠나 곳곳이 삭막하고 정적만이 감돈다. 모든 지역은 피폐적이다. 민심이 흉융한 틈을 타 곡식저장창고를 약탈하는 자들이 그 수만 수백이였다. 그들 중 몇몇을 본보기로 하여 겁을 주고 약탈자들을 해산시킨다. 이러한 방법으로도 수습이 가능한 것을 보고 우리나라의 승리를 위한 바탕이 될 수 있음을 미리 짐작 한 것이다. 그리하여 나라를 위해 몸 바쳐 충성할 성실한 인물을 물색하였다.
    경영/경제| 2009.12.08| 4페이지| 1,000원| 조회(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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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현대사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북한학 이라는 강의에 가장 어울릴법한 제목이었기 때문에 북한 현대사를 선택하게 돼었다. 책은 여러 대단원에 이어 소단원 까지 나눠져있었는데 1940년부터 1960년대 까지 북한의 정치 경제 문화등 여러 분야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먼저 1945년 10월 13일 조선공산당 서부 58당책임자지도 연설에서 김일성과 오기석에 대립에 관해 나와있었다. 오기섭이 패하였지만 김일성을 박헌영의 경계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오기섭을 맹렬히 비난하는 내용이 나와있었다. 다음으로 박헌영에 대한 공격이 이어졌는데 오기섭때와 마찬가지로 당근과 채찍질을 하며 그의 추종자로부터 천천히 제거해나가며 박헌영을 고개 숙이이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조만식과의 싸움에서는 조만식의 생각과 이익이 구조적 수준에서의 즉 소련에 대립되는 것을 바탕으로 맹공격을 하였고 결국 축출하게 된다.다음장에서는 북한의 경제체제에 대하여 나온다. 약간 미미하다는 문제점이 있는데 이는 정치적인 면에 치중하다 보니 경제 부문에 신경을 못쓴 탓이라한다. 먼저 해방직후 북한의 공업에 대해 살펴보면 일본인들이 버리고간 광산 철로 등 여러 기반체제를 점령하고 수리하기 시작한다. 몇몇의 공업은 발달하였으나 기계제작 공업이나 발전 수준이 매우 빈약 했다.이로써 결과적으로 식민지적 편파성이 강하게 나타났고 수입의존성이 높아졌다.소련은 이에 복구와 경기활성을 위해 처음 셩제부처 80여명의 전문가를 북한에 보냈고 그후 보충하여 총 138명이 투입하게돼었다.다음으로는 주요산업을 국유화 시키기 위해 소련정부의 계획하에 진행돼었다.인민경제의 틀을 마련하기위해 채광업 중공업등을 복구 발전시켜 나갔다.다음장은 북조선로동당의 당원확장과 당의 변화에 대해 나타나 있었다. 김일성을 중심으로 성립된 주도세력은 북임위의 성립과 더불어 강의 시간에 들은바 있는 토지개혁을 실행하여 빈농들의 지지를 획득하고 새로운 당원들을 충원함으로서 당내 하부조직에 대한 지지기반을 확보하였다.신민당과 타당의 합당으로 성립된 북로당은 북한사회내에서 가장많은 당원을 가진 주도세력으로 자리를 잡게 돼었다.북로당은 최대한으로 당원을 확장하고 각여러 부처마다 2~3명의 열성당원을 확보함으로써 다수 당원을 동원할 수 있는 구조를 지양하였고 이러한 정책은 임시정부 수립을 논하는 북로당의 대응책이기도 하였다.2차 당대회에 참석한 당대표들로 창립대회와는 큰변화가 이루어 졌다. 직업혁명가들이 주역이었던 창립 당시와는 달리 생산에 참가한 노동자와 직접 농사에 종사하는 농민 생산 기술자와 지배인들이 대표의 과반수를 넘었다 또 당대표들의 93.5%로 구성돼고 있는 인민경제 건설에서 표창받은 모범 노동자가 18.8%를 이루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다음으로 북한의 45~50년 시기 문화형성에 관하여 나온다. 공산에 관한 선전으로 남에서 올라온 이론을 교육시켰다. 북한의 문화 르네상스에 대해 식민지적허구에서 오랫동안 억압받아온 조선문화는 폭발적으로 부활했다 한다.이장을 읽으면서 강의 시간에 본 김정일동영상에서 김정일이 영화를 좋아해 남한 배우를 납치한 것을 떠올려 보았다.다음장은 1부위 마지막장으로 소련군정기 북한의 교육개혁에 관해 들여다볼수 있었다. 북한의 통치세력들은 권력을 장악한 후에 그사회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한 지배적 가치를 주입하고 교육화 시키는데 있어 북한 정권은 일제 식민교육의 청산이라는 차원에서 더 직접적으로는 진보적 민주주의 또는 민주주의적 개혁 이라는 차원에서 교육개혁을 단행하였다.그리하여 과거 일제의 교육과 구분돼고 북한 인민교육제도를 체계화 하였다. 이러한 새 교육체제는 소련궁정기라는 시대 상황속에서 소련에 대한 정책의 기본 원칙은 한반도가 다른 국가들에 의해 자국을 위협하는 전진 기지로 이용돼지 않도록 소련에 우호적인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었다.소련은 이러한 기본원칙이 실현되고 북한지역에서 자신들의 기반을 창출하는 작업에 주력했다.그리고 소련식 교육제도와 학교경험을 본보기로 교육의 이념을 가르 쳤는데 첮째 일제의 우민화 정책 및 학교교육의 계급적 특성을 타파하는 조치로 교육제 및 교육의 기회균등에 기초한 개혁안을 마련하였다. 또한 교육과정 및 교과서 편찬 정책은 근본적 개편이라는 필요성에 부응하지 못하고 경험있는 전문가의 부족 및 교과서로 빠른 시일내에 편한해야 할 극박함으로 인해 소련의 지원화에 이루어 졌다.그리고 북한의 학제로 소련학제의 영향을 받아 소련군정기에 이미 사회주의적 학교교육 체제의 기초를 수립하였다. 또한 사회주의적 학교체제로 견고히 하기위해 각종사립학교로 폐지해서 국가관할로 이양하는 교육기관의 국유화 조치가선행되었다. 마지막으로 가장중요한 교육정책은 바로 정치 교양교육과 재교육 사업이 실시돼었다. 이로서1부는 끝을 맺고 다음으로 2부로 눈을 돌리게 돼었다.2부의 첮장은 1950년대 북한의 정치 변동과 권력개편이란 주제로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토대로 기억하며 읽기 시작하였다 이책에서 김일성이 승리하고 절대 권력을 확보할수 있었던 이유로 다시금 찾아보았는데 첮째 당시 김일성과 로동당 중앙위원회의 대다수 중앙위원들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둘째 김일성과 내부그룹을 제외한 불파들(연안계.소련계)이 인민대중 속에서 조직적으로 확고히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 셋째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1957년 6월 소련 공산당 내에서 발생한 몰로토프 등이 연류된 반동 종파사건 은 후르시초프로부터 당제 1서기와 수상직 겸임이라는 권력 집중을 정립화 시킬수 있었다는 것 넷째제 20차 소련공산당 대회 이후 촉발된 사회주의 진영내의 정치적 불일치로인해 김일성 에게로 소련 및 중국관계에 있어 독자적인 정착 수립가능성이 열리게 된 것 다섯째 당시 북한사회내에 김일성과 그정치세력에 대항할 만한 사회 및 정치적 대체 세력이 부재했다는 것이다 이로인해 북한의 권력 갈등 결과 북한에서는 1994년 김일성 사망시까지 지속된 김일성 유일지배 체제가 형성돼었으며 소련과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수직적 관계에서 수평적 관계로 지향하게 돼는 전환점이 이루어졌다.다음에는 1950년대 북한의 정치와 관련ㄴ하여 볼수있었는데 강의시간에 들은바와 같은 내용이었다.그후 문학과 사회주의라는주제에 관현하여 북한에서 전후 복구 건설화 사회주의 라는 목적 토대에 의하여 사회주의적이 문예 정책과 이론 및 창작 실천이 다양하게 이루어 졌음을 볼수 있었다.그결과 사회주의 건설의 기초과정이라는 역사적 조건속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 창작방법의 확립과 좌우 정화기 시기 문학의 가장 중용한 특징이라 결론지을수 있으며 1950년대에 들어와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이론적 심화가 다방면에 걸쳐 이루어 졌다는 사실을 이시기 문학사의 가장중요한 성취라 할 수 있다. 이후 이만큼의 역동적인 문학 논쟁이 예로 북한 문학사에서 다시 찾아 볼수 없었기에 그 의의는 더욱 크다고 말할수 있겠다 한다.
    경영/경제| 2009.12.08| 3페이지| 1,000원| 조회(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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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나쁜사마리아인들
    나쁜사마리아인들
    나쁜 사마리아인을 읽고 느낀 점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솔직히 책을 읽어도 머릿속에 정리가 안 되었다. 책을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경제, 민주주의, 문화, 자유무역 등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왔다. 주요 관점은 ‘나라가 부자 되려면’이라는 내용인데 어려운 용어들이 너무 많았다. 책을 살펴보면 한국의 경제 발전사에 대해 나와 있다. 제 2차 세계대전, 남·북 전쟁에 이어 남·북 분단까지 가난 속에 한국의 경제력이 세계에서 최빈국 수준으로 전락해버렸다. 그 당시 전쟁으로 인한 극심한 빈곤 속에 많은 사람들이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다. 그 후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이 중화학 공업화 정책을 강행하고 제철소, 조선소 생산, 자동차, 전자, 기계, 화학 등 여러 가지 선진적인 산업분야에서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여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의 시대를 개척했다. 꾸준한 경제 성장으로 1996년에 부자나라의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에 가입하였지만 그 행복감도 잠시 1997년 IMF로 인해 경제위기를 겪었다. 나에겐 12년 전 일이라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그 당시 기업에선 인원감축, 공무원 감축, 연봉 삭감 등 많은 실업자들이 생겨났고 경제성장이 한층 둔화되어 빈곤한 삶 을 살았던 것 같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국민들 입장에선 아나바다운동, 금 모으기 운동 등을 했었으며 기업에선 불필요한 부분의 경비를 줄이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연구화 개발을 했다. 또한 정부에선 일자리 제공, 기업 경제력을 높이기 위한 제도정비 등 많은 노력을 하였다. 책 내용 중간부분을 보면 자유 무역에 관해 나와 있는데 책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책에 자유 무역으로 성공할만한 개발도상국이 있다면 멕시코라고 사례를 들어 놓았는데 내용을 살펴보면 내 생각은 자유무역협정 체결로 인해 경제력 증가, 기술 혁신 등의 효과를 가져 올수 있을 것 같은데 경제적 이득이 불확실 하다는 점이다. 무역확대에 따른 소비자 후생의 증가라는 측면도 일반적으로는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지만 무역수지 악화로 외환위기를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라에서 단순히 소비자 후생 증가만을 이유로 무역수지 악화를 감수하고서조차 추진해야할 과제인지 불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불확실한 자유무역협정의 경제적 이득을 극대화하고 확실시되는 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준비기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끝으로 책 내용을 종합해서 말하면 부자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이야기다. 자유무역이 진정 개발도상국에게 도움이 되는지, 경제를 개방하면 외국인 투자가 정말 늘어나는지, 공기업 문제가 과연 민영화로 해결 가능한지, 지적재산권이 실제 기술혁신을 촉진하는지,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은 특별한 상관관계가 있는지, 경제 발전에 문화나 민족성이 있는지 등 아주 세부적으로 나타나있다. 책을 읽고 현재 우리나라가 금융 위기로 인해 불황에 허덕이고 있지만 이를 극복하고 좀 더 세계선진국인 나라로 발전하기를 바라고 취업난에 허덕이고 있는 대학생들을 위해 일자리를 창출 하였으면 하는 나의 간절한 바램이다.
    경영/경제| 2009.12.08| 1페이지| 1,000원| 조회(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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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21세기의 한미동맹은 어디로
    21세기의 한미동맹은 어디로 평가B괜찮아요
    21세기 한미동맹은 어디로?한미동맹이란 우리나라와 미국이 동맹을 맺고 서로 도와주는 형태의 모습을 의미한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남한을 기습 침공하였다. 그 유명한 한국전쟁이 발발한 것이었다. 당시 공산주의가 지배적이었던 북한이 내려오자 그 세력을 억제하려던 자유주의 세력은 일본을 공산주의 세력을 막는 최후의 보루로 생각하였고 일본을 거점으로 남한을 지원하였다. 당시 자유주의 세력의 제왕이라고 불리던 국가는 미국이었고 그 외에 서유럽의 영국, 독일 등의 국가들이 도와주는 형국이었다. 한국 전쟁이 휴전으로 끝난 이후 우리나라와 미국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나갔다. 그렇지만 미국이 순수한 입장으로 우리나라를 도와주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 당시는‘Cold War’라고 하여 미국과 러시아(구 소련) 두 국가가 세계의 양 축이 되어 경쟁을 하고 있었고 이념적으로도 자유주의와 공산주의로 갈린 극과 극의 국가였다. 러시아는 공산주의 정신을 전 세계에 확립시키려고 노력했는데 동북아 지역에서는 북한과 중국이 대표적인 공산주의 국가였다. 이러한 공산주의 세력을 막기 위한 미국의 지원은 당연했다. 한국 전쟁 이후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세계에서 최빈국의 수준으로 가난해졌고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한 국가의 국민들이 가난하고 먹고사는 것이 힘들어지면 사상적인 측면에 쉽게 빠지게 된다. 공산주의의‘모두가 골고루 잘 먹고 잘 사는 나라를 이룩하자’이념은 그 당시의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국민들이 돈을 많이 벌고 나라가 부강해져 먹고사는 걱정을 하지 않게 되면 사상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미국은 우리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었다. 독일이 좋은 예이다. 제 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은 동독과 서독으로 나뉘게 되었는데 서독은 미국과 서유럽이, 동독은 소련이 통치하고 있었다. 그 때도 미국이 서독을 지원해주었는데 결과적으로 서독은 세계에서 인정하는 강국으로 성장하는 기반을 닦아주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의 상황이었다. 미국이 우리나라를 지원해주지 않았다면 결국 북한처럼 공산주의 사상에 젖어들었을 것이며 지금의 우리나라는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한미동맹이 유지된 지 60여년이 다 되어간다. 과거에 이승만 대통령에서 우리나라는 미국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지내왔다 그런데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들어와서는 한미동맹에 균열의 조짐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김-노 정권은 햇볕정책을 추진하면서 북한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했고 그러한 상황은 북한을‘악의 축’이라고 부르면서까지 경계하던 미국을 긴장시켰다. 그렇지만 사실적으로 보면 김-노 정권이 미국과 그렇게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는 볼 수 없다.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사실 그 당시‘미선이 효순이 사건’등으로 반미감정이 팽배하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권은 비공개적으로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경영/경제| 2009.12.08| 4페이지| 1,000원| 조회(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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