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만 식 론- 웃음과 해학을 통해 시대를 그려낸 문학가 -1. 채만식 소개백릉 채만식(1902-1950)은 일제시대에 활동한 우리나라의 소설가이다. 전북 옥구군 임피에서 부농의 7남2녀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중앙고보 3년 재학 중 일본 와세다 대학부속 제일와세다고등학원에 유학했다가 중퇴하고 이듬해 귀국했다. 1924년 단편 를 '조선문단'에 발표해 문단에 등단한다. 1925년이후 동아, 조선 등 신문 잡지사의 기자로 전전하다가 36년부터는 창작에 전념했다.그가 남긴 작품은 15편의 중.장편소설, 70여편의 단편, 30여편의 희곡 촌극 시나리오 방송극, 40여편의 문학평론, 1백40여 편의 수필 및 잡문 등 시를 제외한 전 장르에 걸친 방대한 양이다. 그중 장편 「탁류」(1937) 「태평천하」(1938)와 단편 「레디메이드 인생」(1934) 「치숙」(1936)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채만식은 왕성한 창작을 통해 풍자정신과 리얼리즘 방법론으로 식민지 한국사회의 현실성을 묘사하였다. 그러나 채만식은 후에 친일을 하게 되고, 해방 후에 일제 말기의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는 「민족의 죄인」(1948)을 발표하게 된다.2. 작품에서 살펴본 채만식의 삶2. 1 시대 순으로 나타나는 사회 계층의 몰락과 그 사회적 배경① 작품에서 알 수 있는 채만식의 개인사채만식은 중앙고보 재학시절 18세의 나이로 조혼을 하게 된다. 결혼은 곧 불행으로 이어졌고 그 불행은 채만식의 삶 전체에 불행을 초래하게 된 원인이 된다. 마땅치 않은 수입과 이후 두 번째 결혼, 잦은 이사와 심해지는 가난, 또 병세의 악화는 그로 하여금 가난을 원인으로 한 사회문제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변화의 시대 가운데 위치한 작가로서 갖은 어려움에 정면으로 맞서며 그만의 독특한 풍자문학을 완성시켰다. 리얼리즘 작가로 자신을 지켜나감으로써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자기 역할을 수행하려고 했다. 그의 소설을 형상화하는 데에는 그의 개인적 생애가 큰 영향을 끼쳤다. 그것은 채만식 개인만의 특수한 것이 아니라 식민지 지식인의 삶두고 자신도 먹고 살 길이 캄캄한 데 “인텔리가 아니 되었으면 차라리 노동자가 되었을 것인데”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육체적 노동 전선으로 뛰어들진 않는다. 이것은 P의 인텔리로서의 과도한 자존심과 이기적인 면모가 개입된 모습이라 볼 수 있다.채만식이 「레디메이드 인생」을 썼던 1930년대는 그 동안 우리나라 근대이후의 문학을 연구해온 대부분의 연구가들에 의해 다각적으로 파악된 바 있지만 정치의 위기와 경제적 공황, 지식인의 정신적 불안, 경제적 불안 등 국내·외적으로 가장 위기의 시대로 파악된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 채만식의 가치관이나, 정신적 상태는 매우 혼란스러웠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고, 이러한 점은 P의 가치관의 허약성, 즉 모호한 정신적 상태로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P는 자신의 몸값으로 20전만 달라는 여자에게 3원쯤 되는 전 재산을 털어 내던지고 나서 정신적으로 혼란을 느끼고 있다. 이와 같은 P의 행동은 올바르고 굳건한 가치가 성립될 수 없는 시기의 지식인으로서의 고뇌를 잘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채만식은 「레디메이드 인생」에서, 당시 한일병합 후 신흥 부르주아는 지식교육의 유행을 퍼뜨렸지만 이는 곧 신흥부르주아에게만 이익이 돌아갔을 뿐 노동자와 농민은 오히려 짐만 늘어났다고 말했다. 이런 도중에 생겨난 인텔리들은 신흥부르주아들의 꼬임을 받았지만 결국 실업자인 '문화예비군'으로서 부르주아에게 일자리를 구걸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주아의 목적을 위해 만들어지고 예속되는 존재라면, 인텔리도 프롤레타리아 같은 처지가 아닌가? 이런 논리로 본다면, 인텔리는 비록 프롤레타리아처럼 부르주아의 대립의 주체는 되지 못하더라도 친(親)부르주아는 아니니 프로문학에서 언급할 가치는 전혀 없는 건 아닐 것이다.농촌사업은 본 작품에서 알 수 있듯이 무지한 농민에게 지식층이 가르쳐서 농촌을 개선시키는 것을 모토로 삼는다. 그러나 조선의 지식열풍은 위의 글에 언급한 것처럼 애초에 농민의 필요가 아니라 부르주아의 필요에 시작된 것이니, 결국 농촌었지요.)위 회고담에서 보다시피, 채만식은 ‘뭣도 모르고 장가를 들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으며, 결혼식 날 이미 불길한 것을 예감했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결국 채만식의 처는 두 아들을 낳았지만 남편의 무관심과 시댁의 박대로 친정으로 쫓겨 왔다고 한다. 채만식의 이러한 결혼의 실패는 작품 속에서 은연 중에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치숙」에서 ‘아저씨’는 ‘아주머니’를 친가로 쫓아 보내고 신교육을 받았다는 여자와 새살림을 차린다. 「레디메이드 인생」의 주인공 P 또한 아내와 이혼한 상태이며, 아들의 부양문제로 아내와 갈등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초봉이의 기구한 일생을 그린 「탁류」또한 초봉이의 결혼의 실패가 내용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채만식의 작품 속 인물들은 작품 속에서 대부분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그려지는데 이러한 사실이 채만식의 개인적인 결혼의 실패가 반영된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경험이 묻어난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채만식의 결혼의 실패가 인생의 실패로 이어졌다는 이야기로 보아, 채만식의 결혼의 실패는 개인적인 인생에 있어서도 매우 큰 사건으로 자리 잡고 있었고, 이것은 채만식이 소설을 집필 하는 데 있어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3. 채만식 소설 내의 사회적 특징3. 1 소설 속 사회주의채만식 소설에서 사회주의는 특정 이념에 제한되지 않고 민족 현실의 핵심 문제를 인식, 통찰하고 암울한 현실을 극복, 타개하고자 하는 실천, 세계관, 이상을 함축,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지향은 당대의 통치 이념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어서 금기시되었고 따라서 이에 대한 논의는 매우 제약될 수밖에 없었다. 채만식 소설에서 이를 지향하는 긍정적 인물, 이상적 인간형이 추상과 배경에 머물고 이들 계역의 담론이 명시적으로 구체화되지 못하는 것도 당대 상황의 제약에서 비롯된다 하겠다. 특히 「치숙」에서는 당대의 지배 담론을 추종, 대변하고 하겠다는 것을 보면 사회주의에 대한 윤직원의 증오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윤직원에서 식민지 자본주의는 ‘태평천하’인 반면에 사회주의는 “세상 망쳐 놀 부랑당패”이다. 우리는 식민지 자본주의가 얼마나 착취적이고 억압적인 체제인지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이 선명한 대비를 통해 진실은 반대임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식민지 자본주의=태평천하라는 윤직원의 인식은 자기 풍자를 통해 사회주의의 정당성을 역설적으로 증명해주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3. 2 소설 속 이상적 국가관채만식은 작품 내에서 은연중에 자신만의 이상적인 국가관을 세우고 그것을 알린다. 정말 짧은 단락에 의해 언급되거나, 비유적 표현을 통해 쓰였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작품의 내용을 되짚어 보며 분석해본다.우선 조선. 망국에 대한 평가를 작중 인물들을 통해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하기야 그 양대가 그 어둔 시절에 그처럼 치산을 하느라고 욕심 사나운 수령한테 걸려들어, 명색없이 잡혀갇혀서는 형장을 맞아가며 토색질 당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요, 화적의 총부리 앞에 목숨을 내걸고 서서 재물을 약탈당하기 부지기수요, 그러다가 말대가리 윤용규는 마침내 한패의 화적의 손에 비명의 죽음까지 한 것인즉슨, (...중략...) - 태평천하“그깐 놈의 나라, 시언히 잘 망했지.”- 논 이야기대원군은 한말의 돈키호테였었다. 그는 바가지를 쓰고 벼락을 막으려고 하였다. 바가지는 여지없이 부스러졌다. - 레디메이드 인생위 내용들을 살펴보면 조선이란 나라는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치안이 바로서지 못한 미개한 나라로 인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흐르는 시대의 분위기에 역행했던 대원군으로 대표됐던 조선의 정책을 비판하며 신분제폐지나 법률같은 한정적인 신식문물에 대해서는 옹호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다음으로 일제강점기를 다룬 작품들을 살펴보자. 채만식은 일제치하를 다룬 작품 내에서도 이상적인 국가관을 피력했다.)“저렇게 좋은 청년들이 일거리가 없어서 저렇게들 애를 쓰니.” -레디메이드 인생우선적으로 생각해봐야하는 것은자포자기 속에서 타락된 삶을 이어가는 20년대 초기의 많은 한국 지식인들이 처한 상황과 그들의 행동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소설화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제, 반민족·반사회적 인물군, 그리고 민족 현실에 대응하는 지식인들에 대한 부정은 「과도기」 이후 「소년은 자란다」에 이르기까지 채만식 소설의 중심 테마가 된다.1930년의 「農村 스케치」(희곡)에서부터 채만식은 그러한 관심을 본격적으로 작품화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현실을 보는 채만식의 시야는 매우 넓어지고 통찰력 역시 성숙된 모습을 보인다. 다만 부정의 대상이 된 문제들이 이전의 「과도기」와 달라지고 있는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부정의 대상은 농민이 처한 상황이다. 「농촌 스케치」에서는 지주, 교원, 면서기, 금융조합 직원, 순사 등농촌의 상류층과 농업 경영자라 할 수 있는 일부 소작인들이 부정의 대상이 된다. 이상의 작품들은 처녀작 「과도기」와는 달리 상황의 구상화를 지향한 작품에 해당된다. 이들은 전말이 분명한 극적 플롯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채만식의 문제 인식이 명료하다는 것, 부정적 대상에 대한 대결 의지가 견고하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② 爛熟期의 작품(1934∼1938)1934년부터 1938년까지 채만식은 풍자를 통해 대상을 부정하는 작품을 쓰는 데 특히 주력한다. 이 시기에 있어 현실 부정의 정신을 잘 나타내고 있는 작품으로는 「레디 메이드 人生」, 「명일」, 「탁류」, 「태평천하」, 「치숙」, 「소망」 등이 있는데, 이 작품들이야말로 일제 강점기에 있어서 의식과 작품 기법을 포괄하는 채만식의 작가적 역량을 남김없이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작가에게 있어 작가적 역량을 가장 잘 드러내 보이고 있는 작품을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때, 채만식의 경우 위의 작품들과 해방 후의 몇몇 작품을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겠다.「레디 메이드 人生」과 「명일」에서부터 채만식은 일제 강점 시대의 현실 전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다. 「레디 메이드 人生」이나 「명일」은.
2010학년도대결과 비극, 그 카타르시스에 대하여- 오뉘힘내기 전설에서 나타난 인물의 심리학적 분석 -수강과목:아동문학의 이해담당교수:노제운 교수님제 출 일:2010.4.16(금)학 번:2003260206제 출 자:양 광 수대결과 비극, 그 카타르시스에 대하여- 오뉘힘내기 전설에서 나타난 인물의 심리학적 분석 -국어국문학과 2003260206 양광수목차1. 서론2. 본론2. 1. 설화의 분포2. 2. 텍스트 읽기2. 3. 인물분석1) ‘누이’2) ‘몽학’(남자, 오빠, 남동생)3) ‘어머니’2. 4. 텍스트 분석1) 내기의 숨겨진 의미를 찾아서2) 프로이트의 방식으로 바라본 동음이의어 분석3. 결론1. 서론우리가 문학을 읽고 재미있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이 우리에게 웃음 또는 즐거움을 선사하기 때문일까? 영웅들이 맨손으로 괴물을 때려잡는 대리만족의 희열때문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꼭 그러한 것만이 우리에게 사랑받는 문학작품이라고 말하긴 힘들 것 같다. 가령, 영국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은 독자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주진 않는다. 하지만 이것들이 시대를 뛰어넘는 감동을 줄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가치를 우리에게 전달해 준다.이러한 그 이상의 가치 즉, 비극에서 인간내적의 감정유발(카타르시스))은 문학뿐만 아니라, 전래동화가 우리에게 접근하는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단순히 웃고 떠들고 즐기는 사이에 자아성찰을 마친 주인공을 볼 수 있는 전래동화가 있는 반면, 비극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전달하는 전래동화도 있고 그를 통하여 우리 속의 정신적 불순물을 배설했을 것이라 생각된다.이에 우리는 후자의 해당하는 것들 중 ‘오누이 힘내기 전설’을 살펴보고자 한다. ‘오누이 힘내기 전설’은 광포전설로써 전국 방방곡곡에서 발견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단순한 지명에 관련된 이야기로써 연구하기보다는, 그 안에 담긴 기층주제를 파악하고, 심리학적으로 접근해 끄집어내고자 하는 것이 이번 발표의 최종목적이라 할 수 있겠다.2. 본론2. 1. 설화의 분포‘게 자제를 촉구하는 초자아의 역할도 한다.(별책 ①-(1))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 대체재일뿐, 아버지는 아니다.) 이러한 ‘인정받지 못하는 다중위상’은 누이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었음에 분명하다. 이러한 행동은 스트레스성 장애로 표출되기에 이른다.기본텍스트를 보자. 누이의 능력은 모든 면에서 동생을 압도한다. 하지만 이길만한데 지는 것은 ‘누이’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어머니의 방해가 있다 하더라도, 누이의 초인적인 능력으로 쉽게 해결 가능한 범위의 방해였다.(별책 ①-(4)) 이본에서는 아예 동생보다 일을 늦게 시작하거나, 성쌓기 도중 쉬어버린다. 이러한 누이의 모습은 내기에서 지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임하는 자세가 약간은 여유롭기까지 보인다.) 목숨이 오가는 내기에서 1분1초가 아쉬울 마당에 이렇게 한다는 것은 쉬이 납득하기 힘들다.)(별책 ①-(6),(7))우리 몸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내분비선이 즉각적으로 활동을 개시한다. 특히 부신선은 크기가 팽창하고 아드레날린을 보다 많이 생산한다. 스테로이드라고 알려진 호르몬을 평상시에 저장해 두었다가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 방출한다. 이러한 스트레스를 동물에게 며칠동안 계속해서 가하면 동물은 서서히 적응한다. 하지만 그와 같은 회복은 일시적인 것이고, 스테로이드를 다시 방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 기운이 다한 양 죽어버린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과량의 호르몬을 생산해냈기 때문이다.)지문에서 어머니가 개입하는 것은 단 한번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모성은 아들에게만 ‘엄청나게‘ 편중함 보여준다. 이러한 모습으로 우리는 과거에도 누이가 어떠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별책 ①-(8)) 스트레스로 인한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신체적 질병은 둘째치고 심리적질병은 누이의 죽음에 직접적으로 역할을 한다.인지적손상충동적인 행동이나 모험을 행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과제수행의 손상주어진 과제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능력을 방해한다.정서적반응(분노와 공격)쥐에게 예측 가능한 쇼크를 반복하면, 별다른 이유없이 자 대신 넘어야 할 산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을 죽음으로써 넘는다는 것은 금기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금기에 해당한다. 바로 친족살해, 몽학에게는 패륜의 금기를 어기는 것이다.그렇다면 몽학의 누이를 죽이려는 집착은 어디서 기인하는 것인가? 이것은 앞서 말한 주물 숭배증과 일맥한다. 몽학이 누이를 죽이려고 하는 것은 누이의 육체를 탐할 목적으로 내기를 걸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육체를 탐한다는 것은 누이의 힘과 권위를 빼앗겠다는 의미로 해석함이 합당하고 이것의 계승은 곧 누이의 죽음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다.)또한,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의 견해)로 설명하자면 몽학은 유방을 가질 수 없는 남성의 입장으로 여자의 몸을 탐하지만 생물학적으로 그것을 가지지 못한다. 더 큰 압박에 대한 반작용 해체되지 못한 자신을 발견하고 그것을 투사하여 고통을 벗어나고자 한다. 그 원대상은 어머니가 되어야하지만, 누이 역시도 유방을 가진 아버지로서 몽학의 기층의식에 자리잡고 있다. 그렇기에 누이는 동학에게 나쁜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라캉은 상상단계에서 내가 나로서 존재해야 할 통일적인 모습은 타인에게 사로잡혀 있다고 말한다. 타인이 자기의 통일성을 이해하려고 할 경우 타인을 사랑의 대상으로 여기게 되고, 타인이 자기의 통일성을 빼앗으려고 할 경우 증오의 대상으로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클라인의 주장과 같이 생각해본다면 무한한 애정을 보이는 어머니 대신에 자신에게 억압을 하는 누이의 유방을 파괴하고, 또는 증오의 감정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다.3) 어머니어머니는 딸의 죽음에 이르는 가장 중요한 원인을 제공한다. 그것이 간접적이건 직접적이건 딸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것은 친족살해의 금기에 해당한다. 어머니는 왜 이런 선택을 했던 것일까?이 이야기 속의 ‘아버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아버지를 대체하는 ‘누이’는 있지만, ‘누이’의 ‘아버지’로서의 위상은 어머니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또한, 아들과 다르석은 다음과 같다.몽학누이과제(서울) 다녀오기성쌓기, 탑쌓기조건나막신 신고, 소or 말 몰고박달나무로 만든 치마입고조건과과제에관련한해석①나막신은 용도로 볼 때 진 땅을 딛는 용도로 쓰인다. 땅이 어머니를 상징한다면 진땅은 어머니가 무언가 결핍상태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②몽학이 어딘가에 다녀온다는 것은 수평적인 형태로의 땅과의 결합을 의미한다. 이는 다시 말해 어머니와 관계에서 교착에 빠짐 것을 의미한다.③집을 나감에 의미는 성숙의 의미를 상징한다. 하지만 몽학은 서울에 갔다 ‘오는 일’을 함으로써 성숙에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미성숙으로 남는다.④말을 타고, 소를 부리고 갔다 온다는 것은 이드에 휘둘리는 몽학의 상태를 말해준다.)①성쌓기(탑쌓기)는 땅에서부터 시작하지만 하늘로 향하는 작업이다. 즉 상상계에서 상징계로의 동경을 상징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은 좌절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그 밑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땅이기 때문이다.②치마를 입는 이본의 경우 박달나무의 의미를 해석해야 한다. 박달이라는 것은 밝다와 어원적으로 관계가 있다. 원래 밝다라는 의미는 이것이 박달로 쓰이다 후에 밝다로 변하였다. 이는 하늘에 밝은 것 즉 태양을 상징하며, 아버지의 기표를 획책한 누이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이러한 사실에서 볼 때, 내기의 조건은 두 오누이간의 정신적 심층구조를 표층화 시킨 것이라 주장할 수 있다.) 즉, 몽학은 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상계의 주민임은 확실하다. 하지만 누이 역시도 상징계를 동경하지만, 상상계에 머물 수 없음을 확인시켜준다.2) 프로이트의 방식으로 바라본 동음이의어 분석동음이의어해석죽을쑤다(망치다)밥을 짓고 그것을 본래 형태를 망쳐(잘게 부수어서) 끓이기에, ‘죽을 쑤다’는 본래의 것을 망친다는 의미가 강하다.‘죽 치다’라는 말은 죽을 끓이기 위해 지키기란 말로 시간의 허비를 의미한다. 이는 누이의 시간을 보내려는 어머니의 심리상태이기도 하다.우리말에서 ‘火(화)가 끓는다‘라는 말이 있다. 죽이 끓으의미를 확대해석해 보자면, ‘독서로 인한 대리체험의 카타르시스가 사람을 성숙하게 만든다’라고 생각해 봄직 하지 않을까.얼마 전, 4살배기 아이가 동생들 3명의 동생들을 죽인 뉴스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만약에 그 아이가 ‘오누이 힘내기 전설’을 읽고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대리체험을 했었다면, 그러한 비극이 일어났을까 하는 생각이 들며 발표문을 마친다.참고자료노제운, , 집문당, 2006신구 가즈시게, 김병준 역, , 은행나무, 2007강등학 외, , 월인, 2005페터 비트머, 홍준기 외 역, ,2007임석제, 임석제 전집한국정신문화연구원, 김청자 외, , 동문사, 2006M. 스캇 펙, 김창선 역, 끝나지 않은 길, 소나무, 1999최래옥, ‘이몽학 오뉘의 힘내기 전설’, , 일조각, 1981대결과비극 아동문학.hwp동아출판사, , 동아출판사, 1996여기 저 여기서 이 벌(들판) 근너(건너) 저기 가면은 망해라는 디가 있어. 거기가 거기 지금 몽핵(몽학)이가 살았거든. 성지(城址)가 있지 (조사자ː성지요?) 잉, 성터가 그건 왜 쌓느냐, 몽핵이가 인자 몽핵이만 잘 난것이 아니라 몽핵이 누이동생이 그렇게 잘난 미인이었던 몬양여. 몽핵이 뉘(누이) 동생도 그런디 몽핵이 누이동생은 이몽핵이 보덤 더 잘났어. 앞일을 더 잘봐. 그래 몽핵이 관상을 보고서, (1)“오라버니 거 엉뚱한 생각을 마시오, 당신은 왕 될 기상이 아닙니다.” (조사자ː 누가요) 그 누이동생이 몽핵이 보고 말했다. “거 무슨 소리냐고 니까지께 뭘 안다고 요망한 말을 허는냐?” 고 나무래고, 그러니게, “그러면은 오라버니, 나하고 한번 내기한번 해보자.” 고 말이여, 그래, “그래 해보자” 그래서 (2)몽핵이는 에, 나막신을 신고서 서울 갔다 오기로 허고, 그 뉘동생, 몽핵이 뉘동생, 그 여자는 식전에 성을 쌓아. 그래서 (3)“내가 식전에 성을 다 쌓지 못하고 오라버니가 성을 다녀오시면은 내가 죽고 말이여, 오라버니가 나헌티, 내 성쌓기 전에 못들어 오시면 오라버니가 죽고 아주 내”)
오광대 연구2003260206 양광수1. 서론한국민속가면극에 대하여 학문적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최만선이 역사 자료를 중심으로 한국연극에 관한 단편적인 해설을 하면서 가면극 덧뵈기를 함께 다룬 1920년대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연구는 1930년대에 안양하가 활동한 시기부터 전개되었다. 그는 가면극의 현장을 답사하고 자료를 수집하여 한국민속가면극에 대한 윤곽을 제시하고 체계를 세우는 데 크게 공헌하여 그의 선구적인 업적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자료로서 이용되고 있다.)하지만 한국민속가면극의 연구가 현재까지 서울지방에서 볼 수 있는 양주별 산대놀이와 봉산탈춤, 그리고 하회별신굿놀이에 편중되어 있는 것과 논의 또한 이것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는 점도 연구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경남지방의 가면극의 경우도 이런 학문적 편향성으로 인하여 특히 연구가 부진하여 형성과 전파를 정리하는 데에 머무르고 있다. 이것은 경남지방의 가면극이 다른 지방의 가면극에 비하여 연구할 만한 가치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 절대 아니다.발표를 준비하면서 경남지방의 가면극, 특히나 오광대 놀음이 얼마나 매력적인가에 대해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따라서 이번 수업을 통해 한국민속가면극을 조명해보고 앞으로의 오광대의 모습을 다시 되집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2. 본론2. 1 오광대와 들놀음경남지방의 가면극은 크게 오광대와 들놀음로 나뉜다. 이는 낙동강을 중심으로 낙동강 서쪽지역 즉, 율지, 신반, 산청, 서구, 가산, 남구, 진주, 도도, 고성, 통영, 학산, 거제, 진동, 마산, 가락지역에서는 오광대라고 불리고 있으며, 낙동강 동쪽지역 즉, 동래, 수영, 부산진에서는 들놀음라고 불린다.정상박에 의하면 서쪽의 오광대라도 낙동강을 건너서 동쪽에 오면 들놀음으로 그 이름이 바뀌고, 동쪽의 들놀음이 낙동강을 건너서 서쪽 지역으로 가기만 하면 오광대가 된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고 말하며 같은 놀이가 지역이 달라져서 우연히 이름이 바뀐 것으로 해석할 수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있었다. 처음에는 모두 손대기를 싫어하였으나 인연이 있어 닿은 것이니 탈놀이를 해야 한다고 하여 놀게 되었다.)다음은 밤마리오광대의 유래담의 또 다른 각편인데, 여기에 재창조의 화소가 첨가되었다.옛날 어느 해 대홍수 때의 일. (중략) 그 마을에는 여러 가지 전염병 기타 재앙이 그치지 않으므로, 좋다는 방법은 다하여 보아도 별무신통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그럴 때 마침 어떤 사람의 말대로 탈을 쓰고 그 책에 쓰여져 있는 그대로 놀음을 하여 보았더니. 이상하게도 재앙이 없어졌다고 하며. 그런 뒤로 이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탈을 쓰고 연희하여 왔었던 것이라고 한다.)여기에 신체가면이 표착했다는 설화가 경북 영천 지방의 신령에 전하고, 수동마을에는 신의 위패가 홍수 때 표착하였다는 설화가 전해진다.(중략)그 노파는 이 탈을 부락의 집집마다 나누어 주었다. 부락사람들은 집집마다 신막을 마련하여 이 탈을 모시고, 초하루와 보름에 반드시 고사를 지냈다고 한다.)(중략)그곳에 공민왕 친필인 ‘국신지위(國神地位)‘라는 신위가 있었다 한다. 이에 그 자리에 당우를 짓고 그 신위를 모시게 되었다이러한 설화들은 한결같이 강의 상류를 신성하게 생각하고 그곳에서 신이 강물을 타고 마을에 출현하였다고 생각하는 특징을 보인다. 거기에 홍수 모티프와 재앙 모티프를 첨과하여 죽음의 상황에서 재생, 재창조되었음을 강조하기도 하는데, 이런 유형의 설화가 낙동강 유역에서 집중적으로 전승되고 있다.)이러한 오광대의 구비되는 전설과 전승지 분포로 미루어 보건대, 오광대는 낙동강 상류에 위치한 초계 밤마리에서 시작되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밤마리는 19세기 초 이전에는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를 연결하는 고통과 상역의 중심지로써 전문적인 유랑예인집단인 의령의 대광대패, 진주 솟대쟁이패, 남해 중매구패와 하동의 목골사당패가 수시로 가면극을 놀았다고 전해진다.)2. 3 오광대의 연희자)오광대의 연희자를 두 분류로 보는 시각이 있다. 초계 밤마리와 의령 신반에 있던 연희자를 전문적인 예인극자는 관객을 의식하는 것보단 자신들의 흥취를 위해서 논다.이 외에도 둘의 차이점은 많이 있으며, 이러한 차이로 연희자가 누구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오광대를 이해하는 것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렇게 유랑예인집단의 예인오광대와 토착오광대를 나누고 본다면 그 분포지는 두 갈래로 양분된다. 의령?신반?남해?대곡?진주 등지는 예인오광대로, 통영?고성?마산?진주?산청?김해?가락?거제 등등을 들 수 있다.2. 4 오광대 지역별 놀이과정)A-1 지신밟기는 모든 오광대 놀이 앞에 행하여졌다. 들놀음처럼 각 가정을 돌면서 지신 밟기를 받은 돈으로 오광대의 경비로 충당하기도 하고, 다른 마을에 가서 지신밟기도 하여 돈을 벌기위한 특별한 볼거리로 오광대를 시작했다고도 한다.)과 정통영고성가산도동서구학산A-1 지신밟기A-2 탈제작A-3 탈제A-4 배역A-5 동제당고사A-6 탈놀이판준비B-7 길놀이C-8 덧베기춤놀이D-9 탈춤놀이E-10뒷놀이E-11뒷고사++++-++-+++++++-++-++-++++-++-++-++-+-+--++-++-+-+--++-++-+-+--++-A-2 탈 제작, A-4 배역, A-6 탈놀이판 준비 등은 놀이를 위한 준비과정이므로, 놀이과정으로 볼 수 없다.A-3 탈제는 탈을 신성시하여 놀이를 무사히 마치기를 비는 행사이다.A-5 농악대가 행하였고, 오광대패가 행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A-7 길놀이는 들놀음의 길놀이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들놀음은 마을 밖의 들에서 마을 안으로 들어오는데 반해 오광대의 앞놀이(사도놀음)는 고을 안을 돌며 놀다가 오광대를 놀기 위하여 고을 밖의 근처 잔디밭으로 간 것이다.C-8 놀이 끝에 [파짓굿]이라 하여 노는 수도 있으나, 들놀음과 같이 놀이과정은 보이지 않는다.D-9 들놀음이 4과장인데 비하여, 오광대는 대체로 5과장을, 많으면 여섯 일곱과장으로 이루어져있다.E-10 탈춤놀이가 끝날 때의 분위기에 따라 놀기도 하고 놀지 않기도 한다. 들놀이의 뒷놀이 처럼 고정적으로 행하는 놀이과정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E-상봉하였는데, 첩을 데리고 왔다고 할미가 질투하자 영감이 할미를 차서 기절시키고, 의원이 치료해도 효험이 없자 무당을 데려다 굿을 한다. 생원이 굿을 중단시키고 여색을 좋아하는 중을 잡아다가 매를 때리고, 중은 중노릇도 못하겠다는 자탄가를 부른다. 넷째와 다섯째 마당은 대본에 따라 하나로 합쳐지기도 하고, 중이 처벌 받는 장면이 영감, 할미의 다툼장면 다음에 삽입되기도 하고 화려한 팔선녀가 나오기도 한다.2. 5. 2 가산 오광대 탈춤놀이의 구성① 오방신장무(五方神將舞)마당 : 황제장군(양반)을 중심으로 사방신장이 제자리에서 춤을 춘다. 이 과장의 의의는 고사(告祀)에 해당하는 것으로 의식무이다.② ♠영노마당 : 사자 모양의 영노가 춤추며 등장하여 ‘비―비’소리를 내며 놀이판을 휘젖는다. 영노는 춤추고 있던 신장들을 물어 퇴장시키고 결국 황제장군을 잡아먹는다. 이때 총을 든 포수가 등장하고 영노는 포수와 싸우다 총에 맞아 쓰러진다. 영노가 양반을 잡아먹는다는 것은 양반계급에 대한 증오의 발로이다.③ 문둥이마당 : 문둥이의 비참한 생활을 표현한 장면이다. 눈, 코, 입 등이 심하게 상한 문둥이 5명이 나와 병신춤을 추고, 도(都)문둥이의 지휘아래 장타령을 하기도 하고 앉아서 이를 잡기도 한다. 또 투전과 싸움도 하는데, 이때 천연두를 앓는 아들을 업은 병신 어딩이가 투전판에 개평을 청했다가 발에 채고 매도 맞는다. 화난 어딩이의 고발로 순검이 와서 모두 포박하여간다.④ 양반마당 : 양반을 모독하는 말뚝이 재담의 장이다. 양반이 두 아들을 데리고 나와 춤을 추는데, 하인 말뚝이가 나와 양반을 돼지에 비유하며 조롱한다. 이어 말뚝이가 외설적인 말로 양반을 야유하면 양반은 이에 맞서 자기의 지체와 재주를 자랑하다 함께 퇴장한다.⑤ 중마당 : 파계승의 장이다. 소무(小巫)가 서울애기를 데리고 와서 춤을 추는데 상좌(上佐)가 노장을 모시고 등장한다. 노장이 서울애기를 유혹하여 업고 달아난다. 말뚝이에게 잡혀온 노장은 매를 맞고 양반에게 꾸지람을 들은 뒤에 음양타령을 하며리떼, 턱까불, 초란이, 콩밭골손, 말뚝이가 차례로 타령 장단에 맞추어 춤추며 등장한다. 한바탕 춤춘 뒤에 청보양반이 “양반의 자식이란 선(先)은 어떻고, 후(後)는 어떻고…….” 하면서 말을 하다가 하인 말뚝이를 부르자, 말뚝이는 자기의 근본은 양반이라는 것을 5대조에서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의 벼슬한 것을 들어 설파한다. 그리고는 양반을 조롱하고 모욕을 한다.⑤ 영노마당 : 영노가 양반의 뒤를 따라다니니, 양반이 “네가 무엇이냐?” 하자, 영노가 “양반 아흔 아홉명을 잡아먹고, 너 하나가 있다는 말을 듣고 왔다.” 하니, 양반은 자기는 양반이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는 자기는 개, 돼지 등 사람이 아닌 온갖 것이라고 둘러댄다. 영노는 그래도 잡아먹겠다고 한다. 양반은 어떻게 하면 될까 하다가 “나는 너의 할아버지다.”라고 하자, 영노가 “어찌 할아버지를 잡아먹겠느냐.” 하여 위기를 모면한다.⑥ 할미 ? 영감마당 : 할미가 영감을 찾아 돌아다니다 영감을 만났으나 영감이 젊은 작은 마누라를 얻었으므로 가정풍파가 일어난다. 영감이 작은 마누라와 그녀가 낳은 아이만을 좋아하므로, 할미는 샘이 나서 아이를 밟아 죽인다. 그러자 영감이 노하여 할미를 때려 죽인다. 그리하여 아들들이 나와 “살인자는 죽여야 한다.” 하고 자기 어머니의 초상을 치른다.⑦ 사자무 마당 : 사자와 담비가 타령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며 나온다. 사자가 고갯짓도 하고, 꽁지도 젓고, 목을 움츠려 앉기도 한다. 그렇게 하면서 춤을 추며 노는데, 담비가 사자 좌우로 돌아다니면서 약을 올리자 마침내 사자는 담비를 잡아먹는다.2. 5. 4 통영 오광대의 탈춤놀이 구성① 문둥이 마당: 문둥이가 소고를 들고 나와 춤을 추고 신세한탄을 한다.조상들이 죄가 많아 불치의 병에 걸렸다고 한다. 양반 풍자와 문둥이의 비애를 표현한 것이다.② 말뚝이 마당: 하인 말뚝이가 첫째 양반은 선대에 기생이 여덟이고, 둘째 양반은 종의 자식이며, 셋째 양반은 홍(洪)가와 백(白)가 두 아비가 만들었고, 넷째 양반은 어미가 부정타서 춘다.
語頭 子音群2003260206 국어국문학과 양광수한국어 변천사 이기동 선생님7. 1. 훈민정음 해례 합자해에 “ ?? ?”라 있다. 합용병서의 계열 중에서 한 예씩을 보인 것이다. 실제로 중세 문헌에는(1) ‘ㅅ’ 계 (ㅺ, ㅼ, ㅽ)(2) ‘ㅂ’ 계 (ㅳ, ㅄ, ㅶ, ㅷ)(3) ‘ㅄ’계 (ㅴ, ㅵ)등 이 사용되었다. 이들 병서를 가진 단어들은 현대어에서는 모두 된소리로 나타나는데(예외에 대해서는 § 7.2 참고), 이렇듯 다양하게 표기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국어음운사에 있어서 가장 큰 의문의 하나로 되어 왔다.합용병서가 각별히 주목을 끈 이유로는 이들이 기이하다는 것 외에, 다음의 두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이것은 현대 철자법에서 된솔 표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되었다. 각자병서를 할 것을 주장한 측에서는 그 역사적 정당성을 내세우기 위하여 합용병사는 문자 그대로의 자음군이었음을 밝히려고 노력하였다. 둘째, 만약 이들이 어두 자음군을 나타낸다면, 이것은 알타이의 공통 특징에 어긋난다는 사실이었다. 어두 자음군을 모른다는 것이 알타이제어의 공통 특징의 하나로 지적되어 왔던 것이다.7. 2. 합용병서는 문자 그대로의 자음군을 나타냈다고 보는 것이 원칙일 것이다. 훈민정음 창제 당초의 표기법은 문자와 음소의 매우 충실한 대응을 보여 주고 있다. 다른 모든 경우에 이 대응을 인정하면서 유독 어두 합용병서의 경우에만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온당한 처리라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매우 특이한 예로 용비어천가(7.23)의 여진어 지명 표기에 ‘닌?시’()가 있는데 이표기에 나타난 ‘?’은 합용병서의 기본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7. 3. 'ㅄ, ㅳ, ㅶ‘으로 표기된 단어들이 ’ㅂ‘이 현대어에까지 그 흔적을 남기고 있음은 일찍부터 지적된 바다. 가령 현대어의 ’입쌀, 좁쌀‘ 등은 중세어 문헌에는 ’니?‘(두시언해 15.5)로 표기된 것으로 ’?‘()의 ’ㅂ‘이 발음되었다고 보지 않고는 현대어의 합성어에 나타나는 ’ㅂ‘을 설명할 수 없다, 접짝,‘, ’욉씨, 볍씨‘ 등의 ’ㅂ‘도 ???어의 ’?‘, ’?‘ 등의 ’ㅂ‘의 화석화된 것으로 볼때에 합리적으로 설명된다. ’부릅뜨다‘, ’휩쓸다‘의 경우에도 각각 중세문헌의 ’?-‘(), ’?-‘() 등의 ’ㅂ‘의 흔적을 보여 준다.음운 변화가 일어난 뒤에도 그 흔적이 형태음소론적 현상에 남는다는 것은 최근에 와서 새로이 인식되고 있는 사실의 하나다. 중세어의 ‘ㅄ, ㅳ, ㅶ’이 된소리화한 뒤에도 이들 자음군의 화석이 합성어 속에 남아 있음은 이러한 사실의 예로서 매우 흥미 깊은 것이다.7. 3. 2. 위에 든 ‘?’() 계림유사에 ‘’로 표기되었다. , . 모음의 가 확실하지는 않으나, ‘’을 ‘*??’로 읽는다면 이것과 ‘?’의 대응은 지극히 명백해진다. 그리고 제일 음절의 모음의 탈락으로 어두자음군이 형성되었음을 알려준다.> 보살 > *?? > ㅂ? > ?7. 3. 3 ‘ㅷ’의 존재가 주목된다. 이 병서로 표기된 예에는 동사 어간으로 ‘?-’(), ‘?-’(), ‘?-’()) 등과 의성어로 다음과 같은 예가 있다. ? ?딜 씨니( 44). ??기 소리 나( 2. 124). 이들은 으로 공통 요소를 가지고 있는 듯이 보인다. 동사 어간들은 탄력적인 행동을 나타낸 것이요, 의성어는 을 나타낸 것이다. 하여튼 이들의 ‘ㅷ’은 ‘ㅌ’의 된소리로 볼 수 없으므로, 이것은 [pth]를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7. 3 . 4. 15세기 정음 문헌의 표기에 ‘ㅄ, ㅳ, ㅶ’의 ‘ㅂ’이 실제로 발음되었음을 암시하는 예들이 보인다. ‘힘’과 ‘?-’()의 합성으로 된 ‘힘?-’가 ‘힘스-’로 표기된 예도 적지 않다. 여기에 ‘ㅂ’이 쓰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중세어에서도 모음간에는 두 자음만이 올수 있었다.) ‘힘?-’는 경우 ‘힘’과 ‘?-’ 사이에 가 오면 세 자음이 다 발음될 수 있었으나 그것이 오지 않으면 두 자음밖에 발음될 수 없어 한 자음은 희생되었다. 이리하여 ‘ㅂ’이 탈락되었고, 이것을 표기한 것이 ‘힘스-’일 것으로 생각된다. ‘???()이( 7)으로 표기된 것도 같은 방법으로 설명된다.한편 ‘거슬?-’()는 ‘거슬-’()과 파생 접미사 ‘-?-’로 분석되는데, 이것은 때로 ‘거슯즈-’( 8. 18)로도 표기되었다. 이 경우는 vr - v 이므로 ‘ㅶ’이 다 발음될 수 있었다. 위의 두 표기는 이 두 자음이 실제로 발음되었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7. 4. 다음으로 ‘ㅄ’계에 대하여 고찰하기로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ㅴ, ㅵ’은 ‘ㅂ’과 된소리의 ‘ㅺ’, ‘ㅼ’으로 된 자음군을 나타낸 것으로 믿어진다.7. 4. 1 ‘ㅴ, ㅵ’으로 표기된 단어들의 ‘ㅂ’이 현대어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음은 과거에도 한 것과 같은 이유(§ 7.3.1)로 매우 흥미 있는 사실이다. 가령 ‘입때, 접때’의 ‘ㅂ’은 중세어 문헌의 ‘?’()의 ‘ㅂ’이 발음되었고 이것이 이들 합성어 속에 화석화되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7. 4. 2 15세기 정음 문헌에 ‘??’(, , )가 보인다. 이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과 ‘?’()의 처격형 ‘?’로 분석된다. 그런데 이것이 16세기에는 ‘??가 되었고 현대어의 ’함께‘에 이어진다. 이 변화는 두가시 사실을 증명해 준다. 하나는 ?’의 ‘ㅂ’이 발음되었다는 사실이다. ‘?’과 ‘?’사이의 휴지가 없어졌을 때, 모음간에서 두 자음만이 허용되므로 ‘ㅂ’은 사라졌는데 그 영향으로 ‘?’의 ‘ㄴ’이 ‘ㅁ’으로 변화한 것이다. 이 ‘ㄴ>ㅁ’ 변화는 ‘ㅂ’이 발음되었음을 전제로 해서만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ㅺ’이 된소리였다는 사실이다. 만약 ‘ㅴ’이 [psk]와 같은 세 자음이었다면 당연히 [ps]가 희생되었을 텐데 ‘ㅺ’이 남은 것은 이것이 된소리였음을 보여주는 것은 이것이 된소리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7. 4. 3. 15세기 정음문헌의 표기에 ‘ㅴ, ㅵ’이 ‘ㅂ’과 된소리의 ‘ㄱ,ㄷ’으로 발음되었음을 암시하는 예들이 보인다, ‘넘?-’()는 때로 ‘넘?-’( 2. 48, 9. 54) 또는 ‘?디-’( 9. 53, 2. 187)로 표기되었다. 는 ‘ㅵ’이 ‘ㅂ’과 된소리의 ‘ㄷ’으로 발음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주??’(두시언해 24. 43)가 ‘주??’ 두시언해 24. 27)로도 표기된 것은 이 경우 ‘?’? ‘ㅂ’이 실제로 발음되지 않았고 된소리 ‘ㅼ’만이 발음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한편 훈몽자회에 ‘들?’(, 8, 14)와 ‘듧?’(, ) 7, 13)의 혼기가 보인다. 이것은vr - v환경에서 ‘?’의 ‘ㅴ’이 ‘ㅂ’과 된소리의 ‘ㄱ’으로 발음되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7. 5 이상의 논술에서 후기 중세어에 다음과 같은 어두 자음군이 있었음이 드러난다.ps pc ptpthpt' pk'이 체계는 첫 자음이 p임을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둘째 자음은 치음 중 폐쇄음만이 평음, 유기음, 된소리의 계열을 가지고 있으며 마찰음, 파찰음은 평음뿐이다. 그리고 폐쇄음은 된소리뿐이다. 유음이나 후음이 둘째 자음으로 나타나지 않음도 주목된다. 이렇게 체계가 이지러진 원인에 대해서는 앞으로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7. 6. 계림유사의 ‘’(*??)과 정음 문헌의 ‘?‘의 비교에서 추론한 것처럼(§ 7.3.2), 어두 자음군은 제일음절의 모음의 탈락으로 결과된 것으로 믿어진다.국어와 만주어의 비교에서도 우리는 동일한 추론을 행할 수 있다. 상술한 ‘?-’()와 만주어의 fithe(), ‘?-’())와 fata-(), '?‘()와 fuse-n()), ’?‘()과 fisi-he() 등의 비교는, 모음의 대응에 약간의 의문이 있어 확립된 것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매우 개연성이 큰 것들이다. 이들 예에서 국어의 자음군에 대하여 만주어는 모음의 개재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이리하여 우리는 중세어 초기(12세기)에 ‘*??’이던 것이 그 뒤 15세기 이전의 어느 시기에 모음의 탈락으로 ‘?’로 변화했다는 가설을 세워 볼 수 있게 된 것으로 믿는다. 워낙 밖에 없어서 이 연대를 이 현상 전체의 연대로 삼아도 괜찮을까 하는 불안이 없지 않다. 여기서 향악구급방의 다음 가 이 불안을 다소 덜게 하는 듯이 느껴지기도 한다.의 표기에 ‘, ’()이 있다. 이 책의 표기법에 비추어 보아‘*오?부득’ 정도로 읽을 수 있지 않은가 한다. 모음 조화에 어긋나는 사실로 보아 합성어일 가능성이 큰 것 같다. 그런데 이 은 에 ‘)’로 나타난다. ( 3.19)에는 ‘오독?기’라 표기되었다. 15·16세기의 정음문헌에 예가 ???음이 불안하기는 하나, 동의보감의 표기는 이 단어가 ‘*오?부득’으로부터의 변화라고 볼 수 있게 한다. 즉 ‘*부득’의 첫 모음이 탈락한 결과, ‘*?’이 되고 여기에 ‘-이’가 붙는 것으로 볼 수 있게 한다. 이것은 어두 자음군의 예는 아니지만 그 어음 탈락의 연대가 그다지 오래지 않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은가 한다.7. 7 어두 위치에 한 자음밖에 모르던 국어로서 어두 자음군의 출현은 할 만한 이었음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리하여 이 불안정을 해소시키려는 노력이 나타나게 되었을 것을 추측하기 어렵지 않다. 어두 자음군이 마침내 국어에서 없어지고 만 것은 이러한 노력의 결과였던 것이다.어두 자음군은 크게 다음의 세 방향으로 발달하였다.7. 7. 1. 그 주된 방향은 된소리화였다. ‘?’은 이미 15·16세기 문헌에도 ‘ㅺ’과 된 예가 자주 나타난다. ‘?디-’(, ))에 대하여 ‘?디-’(용비어천가 37장, 월인석보 2.72), ‘?’(?)애 대하여 ‘?‘(월인석보 21. 45), ’?‘())에 대하여 ’?‘(훈몽자회 8, 18),’?‘())에 대하여 ’?‘(훈몽자회 11, 21) 등. 이 들은 이들 단어의 어두음이 된소리화하는 과정을 보여 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7세기 초엽의 문헌에 오면 ’ㅲ‘이 새로이 등장한다. 그리하여 에는 ’?뎌‘( 3. 43), ’?디니라‘(효자도 4. 29), ’?디니라‘(효자도 2. 84)가 공존하게 되었다. ’ㅴ려‘(충신도 1. 46), ’?리오고‘(효자도 8. 8),’?려‘(효자도 6. 44)도 보인다. 이 ’ㅲ‘의 등장은 이 무렵에 사실상 ’ㅂ‘계 합용병서로 표기된 어두음도 된소리가 되어 있었음을 강력히 암시하는 듯이
어리석다라는 것은 과연 무엇이더냐- 채만식의 단편소설 ?치 숙? -2003260206국어국문학과 양광수1. 들어가며올해 여름, 한 일간지에서 채만식에 대한 생애를 돌아보면서 다음과 기사를 실었다.풍자소설가 채만식.한국 문학에서 풍자와 역설적 작품세계를 개척한 소설가이다. 일제 강점기 사회비리와 교육문제 등을 비꼰 풍자성 짙은 사회소설을 쓰다 일제 말기 친일소설을 내놓은 뒤 해방 이후 자신의 친일을 최초로 인정한 작가로 꼽힌다. 소설을 통해 근대교육이 마치 조선의 당면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선전한 일제 식민지 교육의 허상을 꼬집었다.)위 기사에서는 소설가 채만식은 자신이 쓰던 소설만큼이나, 그 역시 매우 역설적인 삶을 살아왔음을 간접적으로나마 보여주고 있다. 자신이 소설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사회에 대한 풍자. 그것은 또한 잠시나마 일본에 협력한 자신에 대한 풍자로 이어졌으며, 이것은 광복 후 작품 ‘민족의 죄인’(1947)을 통해서 철저한 자기반성으로 이어지기도 하였다.이러한 소설가이자 한사람의 지식인이었던 채만식을 이번시간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치숙’(1938)을 통하여 그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누구를 풍자했는지에 대해서도 알아보도록 한다.2. 인물소개나 : 아주머니 댁에서 자란 남자아이로, 키워준 정으로 아주머니와 아저씨와 인연을 맺고 있다. 불한당 같은 아저씨와 사회주의를 아니꼽게 생각하며, 고생하는 아주머니를 불쌍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은 이름도 성도 결혼도 문화도 모두 일본화 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살고 있는 인물이다.아저씨 : 오 년 동안 대학에서 공부를 한 지식계층이다. 소설 속 화자에게 미움을 받는 사람으로 실제로 아주머니(아내)를 내쫓고 바람을 폈고, 사회주의 운동으로 5년간 옥살이를 하다 출감하였다. 또한, 옥중 폐렴에 걸려 현재는 아주머니의 뒷바라지를 받고 있으나, 여전히 무능력한 실업자이다.아주머니 : 아저씨께 소박을 맞았으나, 출감한 남편을 다시 거두어 뒷바라지하는 열부이다. 친정, 시댁 모두의 가세한 일이다.셋째, 위 두 가지의 자질들이 최종적으로 빛을 발하는 것은 전적으로 풍자가의 풍자적 재능에 의해 가능해진다.이 연구 자료에 따르면 채만식은 위 세 가지의 풍자가적 자질과 조건을 고루 갖춘 천재작가라고 볼 수 있다. 작품에서는 화자의 모순적 사고가 풍자의 효과를 낳는다. 화자와 아저씨의 사고방식과 언행이 일면적 진실과 그 이면의 허위의식을 동시에 수반함)으로써 이중의 대화적 관계 및 이중의 풍자효과를 낸다. 자신의 ‘성실함’은 동시에 ‘속물성’, ‘시대착오’를 수반한다. 반대로 아저씨는 ‘신념’, ‘숭고함’과 함께 ‘무기력함’, ‘무책임성’ 등을 동시에 내포하는 모순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화자와 아저씨의 자기 내적 모순이 낳는 긴장 관계 즉, ‘무능한 지식인와 성실한 속물’의 캐릭터인 두 사람의 팽팽한 대화적 긴장 관계를 형성하며, 이것이 채만식의 풍자가로서의 기질과 능력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4. 소설의 특징)채만식의 풍자소설은 판소리적 서술방식, 즉 이야기가 있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는 ‘설화문학의 특징’을 십분 발휘하여 다양한 효과를 거둬들인 장점을 지니고 있다. 곧, 누가 어떤 위치에서 어떤 고지의 경로를 통하여 독자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느냐에 따라서 설화문학의 효과는 새롭게 발휘된다. 위 작품에서 극화된 화자는 우둔한 대상을 독자 앞에 내세워 대화에 직접 참여케 하여 독자로 하여금 그의 우행을 바라보는 기쁨을 만끽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양자 사이에 끼어든 화자는, 때로 일방적인 요약이나 술회로써 우행을 축소 혹은 확대시키면서 자신의 가치관 안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또한, 작가 또는 화자는 판소리 구연자로서 끊임없이 감정을 토해낸다. 이런 감정표현은 마치 자유자재로 희유곡이 되어 유장하고 혹은 빠른 속도로 쉬지 않고 반복된다. 그리고 이런 반복이 끊임없이 이어져 무궁동의 악곡처럼 계속되는 것이다. 이렇게 움직이는 감정 속에 욕설이 난무하면서 작가는 스스로 얻은 표현의 자유 가운데 정신적 유영을 누리는 가운데 강박관념에서 벗를 말한다. 그렇다면 화자가 왜 숙부를 수치스럽게 생각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나누어 볼 수 있겠다.① 아내를 놔두고, 신여성과 바람을 폈었다. - 윤리적 수치감② 많은 돈을 들여 경제학 유학공부를 하고 왔지만, 보통학교 4년을 다닌 나보다 가난하다. - 경제적 수치감③ 돈도 안 되는 사회주의운동으로 옥살이를 하고 왔는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 사상적 수치감우선 첫 번째 이유야 말로 화자가 아저씨를 부끄러워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화자는 소설을 진행하는 내내 아주머니를 옹호하거나 걱정하는 말과 말투를 계속 사용한다. 이는 그동안의 아주머니와의 정(情)의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역시나 아저씨의 태도가 못마땅한 이유가 그 바탕에 깔려있는 것이다.우리 아저씨 양반은 혹시 그 여편네가 오지 않았나 하고 사방을 휘휘 둘러보던데요. 속이 그렇게 없다니까. 여편네는 커녕 아주머니하고 나하고 그 외는 어리친 개새끼 한 마리 없더라. - 본문1본문1에서는 이러한 내용으로 아저씨에 대한 못마땅함이 잘 나타난다. 특히나 ‘개새끼 한 마리도 없다’라는 이중적 표현을 하여 아저씨의 태도에 대한 화자의 심리를 말해주고 있다. 정말로 한적한 출감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지만, 개새끼조차도 아저씨를 반기지 않는다는 의미도 역시 찾아 낼 수 있다.두 번째 경제학을 배우고 왔다는 아저씨는 전과자로 이제는 막벌이 노동뿐이 못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에 비해 나는 보통 학교만 사 년 겨우 다녔지만 먹고 살 걱정이 없다. 화자는 아저씨를 보며 한심함을 느낌이 당연하다.만약 우리 증조 할아버지네 집안이 그렇게 치패를 안해서 나도 전문 학교나 대학교를 졸업을 했으면 혹시 우리 아저씨 모양이 됐을지도 모를 테니 차라리 공부 많이 않고서 이 길로 들어선 게 다행이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 본문2위에서 살펴볼 수 있지만 화자가 비판하는 대상은 공부를 많이 한 아저씨이다. 아저씨는 경제학을 공부하고도 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 밥버러지정도로 인식된다. 또한 화자는 ‘자(중략) 그리구서 억지로 남의 것을 뺏아 먹자고 들다니 그놈들이 불한당이지 무어요. (중략) 그나마, 부자 사람네가 뺏기고 더는 못 먹어 내는 날이면 그때는 이 세상 망하는 날이 아니오? (중략) 바로 저 아라사(러시아)가 그랬대요. 그래서 아니나 다를까 농군들이 곡식을 안 만들기 때문에 사람이 수만 명씩 굶어 죽는다는구료. (중략) 어느 절도나 강도나 사기나 그런 죄는 도적이면 도적을 해가는 그 당장, 그 돈만 축을 내니까 오히려 죄가 가볍지만, 그놈의 것 사회주의인지 지랄인지는 온 세상을 뒤죽박죽을 만들어 놓고 통째로 소란하게 하니까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대요. 용서라니! 나 같으면 그런 놈들은 모조리 쓸어다가 마구 그저 그냥……. - 본문3“아아니, 그럼 아저씨두 사회주의가 불한당인 줄은 아시는 구료?” - 본문4사회주의의 모습은 앞으로 내지인의 삶과 부자의 삶을 살아가고픈 화자에게 방해꾼이자, 도둑놈으로 뿐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숙부가 이러한 사상의 앞잡이인데다가, 그렇게 옥살이를 하고 병까지 얻고 또 다시 사회주의 운동을 하겠다니, 화자 눈에는 아저씨가 좋게 보려고 해도 좋게 보일 리 없던 것이다.작가는 이렇듯 화자를 통해서 사상적 이론만 중시하던 숙부를, 즉, 당대의 지식인들의 삶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많이 배우지는 못했던 화자의 생각을 빌려 배운 사람의 이상주의적인 경제 이론의 허구성을 통렬히 비판하면서, 그것이 현실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일제치하의 압제를 비판하기에 앞서, 그러한 시대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지식인들의 방탕함과 무기력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6. 痴侄로서이 소설의 표면적인 주제는 당대의 지식인을 비판하는 것이다. 하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독자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묘한 조소가 일어난다. 독자는 비판하는 화자의 말이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하지만 선뜻 동감할 수 없고, 안할 수도 없는 묘한 위치에 서 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일제치하라는 우리네의 특수성이 소설 속에 전제되구는 아저씨에 국한되어야 하는데, 화자의 무지로 인해 그 경계가 모호해져 경제학과 이재학(理財學)과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조선잡지는) 사진도 없지요, 망가(만화)도 없지요, 그리구는 맨판 까달시런 한문 글자로다가 처박아 놓으니 그걸 누구더러 보란 말인고? (중략) (일본 것은) 소설이 모두 그렇게 재미있지요. 망가가 많지요. 사진이 많지요. - 본문5사실 화자의 지식적 무지는 독자로 하여금 비판의 대상에 올리는 소재는 아니다. 사실 당시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문맹이었던 시절) 화자의 학력은 보통학교 4학년으로 화려한 편)이다. 하지만 그가 배웠던 학문들이 이재(理財)에 관련되어 있지, 사회 공익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미치지 못하고 있음에 주목해야한다. 그것은 곧 조선이 일본 국민의 생활경제와 직결된 식민지 경제를 이루어갔고, 화자의 지식은 그 식민지 경제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써 쓰이고 있다‘로 볼 수 있는 것이다.화자의 무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화자는 사회주의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하고 있는데, 소설가 채만식은 사회주의를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화자의 입을 통해서 오히려 사회주의의 모습을 소설 중간마다 알리고 있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사회주의를 비판하기보다는 장점을 더 부곽해주는 효과를 주고 있다.이 세상에는 부자가 있고 가난한 사람이 있고 하니 그건 도무지 공평한 일이 아니다. 사람이란 건 이목구비하며 사지 육신을 꼭같이 타고 났는데 누구는 부자로 잘살고 누구는 가난하다니 그게 될 말이냐. 그러니 부자가 가진 것을 우리 가난한 사람들하구 다 같이 고르게 나눠먹어야 경우가 옳다. - 본문6나라라는 게 무언데? 그런 걸 다아 잘 분간해서 이럴 건 이러고 저럴 건 저러라고 지시하고 그 덕에 백성들을 제가끔 제 분수대로 편안히 살도록 애써 주는 게 나라 아니오? -본문 7이는 채만식이 이상론이 아닌 사회주의 자체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반면, 사회복지를 외면하는 일본을 같은 방법(화자의 말)을 통해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점고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