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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사의 반독점에 대한 연구 보고서
    Microsoft의 OS시장 반독점 형태와저작권법에 관련하여- 목 차 -Microsoft의 OS시장 반독점 형태와 저작권법에 관련하여Ⅰ. 서 론---------------------------------------------------1. Microsoft 라는 회사, 그리고 빌게이츠의 신화(1) MS-DOS에서 Windows vista까지1)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초창기 비전 - 모든 책상과 가정에 컴퓨터를2)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들3) 전 세계 78여 개국 5만여 명의 정식 직원(2) MS의 브랜드(3) MS의 브랜드 가치의 핵심- 빌 게이츠2. 컴퓨터 운영체제의 발달Ⅱ. 본 론 - ms의 협력사 수익성 제고 등 채널지원 강화---------------------------------------------------1. 3대 총판체제, 다우데이터 인성디지털 소프트뱅크2. 다양한 파트너 정책Ⅲ. 시장 장악을 위한 MS의 전략---------------------------------------------------1. 끼워팔기 전략(1) 국내의 상태2. 독점적 지위의 이용한 표준 장악 전략(1) 공적표준과 사실상 표준(2) 사실상 표준을 위한 MS만의 방법Ⅳ. MS의 운영체제 독점의 문제점---------------------------------------------------1. 운영체제 독점의 문제점2. 인터넷=마이크로소프트?Ⅴ. MS의 운영체제 독점의 문제점에 따른 소송사례---------------------------------------------------1. 다음-MS 관련 소송 (국내 소송의 대표적인 사례)2. MS-썬마이크로시스템즈 관련 소송 (미국 사례 최신)3. MS의 운영체제 독점에 관한 대표적 판결저작권법, Microsoft의 OS시장 반독점 형태와 저작권법에 관련하여Ⅵ. 지적재산권/컴퓨터프로그램 보호법/소프트웨어 불법 복제의 유형----------------------------------------------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인터넷을 하기 위한 도구인 인터넷 웹 브라우저는 너무도 빠르게 운영체제 소프트웨어가 행하는 역할들을 자신의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그 동안 운영체제의 독점력을 가지고 수많은 응용소프트웨어를 장악하였던 공룡 기업 MS에게 자신의 독점적 지위가 한 순간에 허물어 질수도 있는 중대한 위기 상황이었다.궁지에 몰린 MS는 자사의 윈도95에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슬쩍 끼워 넣은 수법으로 상황을 간단하게 반전시키고 만다. 이를 계기로 시장은 순식간에 역전되고 너무도 간단한 조처 하나만으로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웹 브라우저 시장의 판도는 단 한순간에 뒤집혀버렸다. 그렇다면 왜 빌게이츠는 이토록 중요한 인터넷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었는가? MS의 독점적 권리를 완전히 허물어뜨릴지도 모르는 인터넷의 등장을 미래사회를 바라보는 탁월한 식견을 지닌 빌게이츠가 인터넷을 놓치고 있었다는 것이 좀 의아하지 않은가? 그러나 그 이유는 단순하다. 그는 인터넷에서 돈을 벌 무언가를 찾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인터넷은 그 탄생부터 서로의 정보를 자유롭게 교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1969년 국방성에 의해 만들어진 인터넷은 그 이후 주로 대학에서 학생과 교수들이 서로의 연구 성과들을 공유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90년대 TCP/IP 프로토콜의 도입에 따라 지금처럼 누구나 쉽게 인터넷을 사용하기 전까지 인터넷의 사용은 학생을 중심으로 한 일부 마니아 계층의 전유물이었다. 정보는 자유롭게 소통되었으며 자유로운 공동체의 문화가 자발적으로 형성 유지되었다. 빌게이츠는 정보가 모두 공유되고 정보생산자와 정보 소비자의 개념이 모호한 이 인터넷이라는 곳에서 돈을 벌 어떠한 시장성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이에 대한 증거가 바로 MS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마블 프로젝트이다. 인터넷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웹 브라우저 시장에서 넷스케이프가 놀라운 속도로 시장을 장악하자 MS는 '마블'이라 불리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MSN(Microsoft Ne 기술을 진흥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2) 컴퓨터 프로그램 저작물이란?컴퓨터프로그램저작물"이라 함은 특정한 결과를 얻기 위하여 컴퓨터 등 정보처리능력을 가진 장치안에서 직접 또는 간접으로 사용되는 일련의 지시·명령으로 표현된 창작물을 말한다.)(3) 적용범위이 법은 프로그램을 작성하기 위하여 사용하고 있는 다음 각호의 사항에는 적용하지 아니한다.1. 프로그램언어 : 프로그램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의 문자·기호 및 그 체계2. 규약 : 특정한 프로그램에 있어서 프로그램언어의 용법에 관한 특별한 약속3. 해법 : 프로그램에 있어서의 지시·명령의 조합방법개작된 프로그램은 독자적인 프로그램으로서 보호된다.)(4) 외국인의 프로그램)외국인(외국법인을 포함한다.)의 프로그램저작권은 대한민국이 가입 또는 체결한 조약에 따라 보호를 받는다.대한민국안에 주된 사무소가 있는 외국법인이 창작한 프로그램과 맨처음 대한민국안에서 발행된 외국인의 프로그램(외국에서 발행한 날부터 30일이내에 대한민국안에서 발행된 프로그램을 포함한다)은 이 법에 의하여 보호된다.위의 사항에 해당되는 외국인의 프로그램이라 하더라도 그 외국에서 대한민국 국민의 프로그램을 보호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그에 상응하게 조약 및 이 법에 의한 보호를 제한할 수 있다.(5) 프로그램저작권 존속기간)프로그램저작권은 그 프로그램이 공표된 다음 연도부터 50년간 존속한다. 다만, 창작후 50년이내에 공표되지 아니한 경우에는 창작된 다음 연도부터 50년간존속한다.3.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의 유형)(1) 일반 사용자 불법 복제사용자가 개별 복사본에 대한 적절한 라이센스 없이 소프트웨어를 복제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개인간에 무심결에 제품을 복제 및 배포하는 행위와 기업이 자사에 설치된 소프트웨어 라이센스 수를 엄격하게 모니터링하지 않거나 소프트웨어 설치를 감당할 만큼의 충분한 라이센스를 구입하지 않는 경우도 여기에 속한다.(2) 사전 설치된 소프트웨어컴퓨터 제조업체가 소프트웨어 하나를 두 대 않기 때문이다.비유컨대, 전화 네트웍을 독점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회사가 전화 네트웍을 활용하는 초고속 인터넷 시장에 진출하는 것과 같다. 이 경우 독점회사는 용이하게 초고속 인터넷 시장에 진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쟁회사가 도저히 무너뜨릴 수 없는 완벽한 진입장벽도 동시에 갖게 된다. (전화망을 다시 깐다는 것은 엄청난 비용이 소요 된다. 사회적으로 중복투자가 된다는 것은 논외로 하더라도)컴퓨터 운영체계가 위 예시에서의 전화망 역할을 한다. 운영체계상에서 운용되는 모든 프로그램은 거의 대부분이 운영체계와의 호환성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으며, 이 점은 곧 마이크로소프트가 응용 소프트웨어 시장에 진출할 경우 강력한 경쟁우위가 된다. 게다가 운영체계에 끼워팔기(bundling) 형태로 배포하거나 기본 기능(default function)으로 포함시킨 뒤 운영체계 가격을 올려받는 경우, 아주 손쉽게 모든 응용 소프트웨어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 위의 비유를 계속 사용해 보자면 '우리 회사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으면 전화를 설치해 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얘기하는 것과 같다.마이크로소프트는 이 점 때문에 반독점 소송에 휩싸인다. 인터넷 서비스중 하나인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을 활용하게 해 주는 웹브라우징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넷스케입(Netscape)보다 후발로 미미하게 출발했던 마이크로소프트는 운영체계와 웹브라우징 소프트웨어의 끼워팔기 및 불공정한 기술적통합(Integration)을 통해 불과 수년만에 시장의 95%를 차지하게 된다.결국 독점적 이익을 누리고 있는 전화 회사가 자사의 전화망을 이용해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까지 진출했을 때 이를 독점적 지위를 이용한 부당한 이윤추구로 볼 수 있느냐의 문제다. 전화 네트웍의 경우는 글 서두에서 본 바와 같이 자연독점이 소비자나 공급자 모두에게 여러 이점을 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전화 네트웍을 이용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역시 독점적 지위를 자연스럽게 누려도 될까의 문제다.운영 공개해서 어떠한 프로그래머라도 그 하드웨어를 지원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구현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러한 기업이 생산하고 있는 하드웨어에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소프트웨어가 작동할 수 있다는 인증을 하지 말 것을 마이크로소프트사에 요구해야 한다.비밀스런 하드웨어 명세는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일상적으로 취하고 있는 행태는 아니지만, 이들 비밀 명세는 윈도우즈와 경쟁 관계에 있는 자유 운영체제들의 발전에 심각한 장애가 되고 있다. 이런 장애를 없애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해결 방안을 마이크로소프트와 협상하게 된다면 이런 내용의 조항을 해결 방안에 포함시키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것은 협상의 문제일 뿐이다.1999년 4월에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스티브 발머(Steve Ballmer)는 윈도우즈의 일부 소스 코드를 공개할 수도 있는 계획을 가지고 있음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이것이 윈도우즈를 자유 소프트웨어로 만들겠다는 것인지 윈도우즈의 일부분이 자유 소프트웨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인지 분명치가 않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윈도우즈의 중요한 일부를 자유 소프트웨어로 만든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그러나 윈도우즈의 일부를 자유소프트웨어로 사용하는 것보다 전체 부분을 구현할 수 있도록 허가받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위에서 제안된 처방들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다. 이런 방법들을 통해서 우리는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윈도우즈 중에 자유 소프트웨어로 만들지 않는 부분이 무엇이든지 간에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윈도우즈보다 진정으로 우월한 대체물을 개발할 수 있는 장애 없는 방법을 확보할 수 있다).4. 정부의 역할정부는 정보화 기반을 시장의 역할에만 맡겨두어서는 안 된다. 공공기구로써 정부는 정보화 사회에서 정보의 활용과 접근에 대해서 평등에 기반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정부는 계급?성?연령?빈부?교육의 수준 등에 따른 정보 이용과 접근에 있어서 차별이 없도록 힘써야 한다. 이를 위해 소스가 공개된 자유 소프트웨어 운영체제의 개발 및 이다.
    법학| 2010.06.01| 68페이지| 3,000원| 조회(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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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률 소비자연맹 - 언론모니터링
    ’09 법률소비자연맹 언론모니터링이재오 전 의원에 관한 언론 모니터 보고서(조선일보·한겨레 신문의 비교 분석 보고서)목 차Ⅰ. 들어가며Ⅱ. 기사 내용(보도날짜 순)Ⅲ. 기사내용 모니터Ⅴ. 맺으며Ⅰ. 들어가며1. 분석의 목적이재오 전의원이 귀국을 하면서부터 정계의 관심을 반영하듯 보수·진보 신문 할것 없이 그 관심은 실로 대단하다. 국민들 대다수가 이재오란 이름은 들어봤을 테지만, 실제로 그거 정계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서 잘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재오 전의원은 개혁적 보수 혹은 합리적 보수층을 대표하는 차기 대통령후보로 나서거나 그런 대통령후보를 만들 거라고 예상되는 인물이다.보수세력을 다시 보자면 가장 오른쪽부터 중도로 볼 때 이회창-박근혜-이명박-이재오로 정치 이념이나 지향점을 나열할 수 있다. ① 이재오전의원이 유신독재반대, 5공/6공때 민주화 및 통일운동, DJ때 정권부패 척결 등 일관되게 집권세력에 맞서온 점에서 이회창, 박근혜 두 인물과 차별성이 분명히 있다. ② 이명박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서 임기가 끝나갈 수록 영향력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향후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크든 적든 있는 세 분 중 일정 영역을 대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영향력의 근거 혹은 나누어 질 수 있다 하겠다.현 시점에서 보자면 권력의 정점에 있는 이명박 대통령과 관계에서 항상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잠재성이 있다. 90년대의 친밀한 관계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서울시장 선거시 그리고 대통령후보 경선시 선대본부장 역할을 한 점에서 원내 의원 중 가장 동지적 관계에 있다. 친형인 이상득의원이나 상하관계로 볼 수 있는 정두언의원과 달리 수평적 동지라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현 정권과 갈등 또는 견제하는 관계에 있는 이회창, 박근혜 두 분 정치인의 영향력과 성격이 다르다. 운명공동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이재오 전의원이 앞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계속 운명공동체로서 당내 분란을 줄이기 위해 2007년 최고위원을 사퇴하고, 2008년 미국 유학을 떠났던 것처럼 희 전 의원이 그동안의 소회를 담아 작성한 것이다.이 전 의원은 “지난날 민주화운동 시절 내가 감옥에 가 있거나 수배를 당해 집을 비울 때 말고는 가장 긴 시간 집을 떠나 있었다”며 부인과 가족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동시에 전했다.그는 민주화운동 시절 자신과 부인 추씨가 겪은 고초를 되짚으면서 “경찰이 허구한 날 집을 지키는 바람에 동네에서 살 수 없을 정도로 난처했던 지난날이 오늘따라 새삼 그리워진다”고 밝혔다.그러면서 “군사독재가 끝난 지 20년이 다돼 가는데 아직도 나라 안에 부정과 부패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LA에서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의 처지가 별반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며, 300일이나 외국에 나와 있으면서도 한시도 마음이 편치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적었다.이 전 의원은 나아가 “우리가 18대(총선)에 떨어졌다고 해서 그동안 우리를 도와주었던 많은 주민들을 조금이라도 잊어서야 되겠느냐”며 서울 은평을에서의 재도전 의지를 시사하기도 했다.이어 이 전 의원은 “서울에 지금쯤 개나리도 피었고 진달래도 피기 시작할텐데 그 꽃이 지기 전에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며 “이제 귀국하면 다시는 나 때문에 가족이 헤어져 사는 일은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공항에 나오지 마라"… 이달 말 귀국 이재오의 '호소'미국 LA에 머물며 이달 말 귀국을 앞두고 있는 한나라당 이재오 전 의원이 25일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귀국 때 공항에 그 누구도 나오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이 전 의원은 이날 자신의 팬클럽인 '재오사랑'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저는 지금 어떤 공직도 갖고 있지 않은 자연인에 불과한 만큼 정말 조용히 귀국하려 한다. 인사치레가 아니며 간절히 부탁한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유력 인사들이 외국에 나와 현지인에게 대접받으며 다니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아주 잘못된 것이다. 구태를 받아들이면 변화와 창조가 있을 수 없다"며 "미국에 있으면서 공항에 그 누구도 나오게 하지 않았고 현지인과 식사할 때 밥값도 내가 냈다원은 앞으로 미래 한국을 고민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할 것”이라며 “국민 속으로 갈 수 있는 좋은 교두보”라고 말했다.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전 의원이 정치와는 직접적 관계가 없으면서도 ‘미래 한국’이라는 연구과제와 연결되는 정부 직함을 받아 활동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온다.가령 ‘자원외교 특임대사’, ‘동북아평화 특임대사’ 등을 맡지 않겠느냐는 말이 정치권에서 솔솔 흘러나온다.진수희 의원은 “이 전 의원이 공식 직함을 갖고 일하면 정치적 시비의 가능성은 줄어들 것”이라며 “하지만 그 문제는 대통령이 결심할 문제지 밑에서 요구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이와 함께 이 전 의원이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박희태 대표, 이상득 의원 등 당의 ‘어른’에게 귀국 인사를 하겠다는 뜻을 밝혀 그 회동 시점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아진다.이 대통령이 G20(주요 20개국) 금융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31일 출국한다는 점에서 귀국 후인 4월초께 이 대통령과 이 전 의원의 면담이 성사될 것으로 예상된다.다만 이 전 의원이 “당의 어른들을 찾아뵙고 인사드리는 게 도리”라고 말한 만큼 이 대통령에게의 ‘귀국 보고’에 앞서 박희태 대표, 이상득 의원 등과 만날 가능성도 점쳐진다.이 경우 이 전 의원측은 중앙당사를 비롯한 여의도에서의 회동은 가급적 피한다는 계획이다. 현실정치와 거리를 두겠다는 뜻은 활동의 내용 뿐아니라 물리적 공간의 의미도 포함된다는 게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한편 전날 은평구 구산동 자택에 도착한 이 전 의원은 미국 유학길에 오르기 전과 마찬가지로 이날 오전 자전거를 이용해 지역을 돌며, 지역주민들에게 귀국인사를 했다.'이재오 정치시계'가 가기 시작했다자전거로 지역구 누비는 등 의원시절 일상으로 돌아가정치행보에 대해선 말 아껴"지금 자전거로 불광3동을 지나고 있어요."30일 오전 7시 이재오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이미 자전거를 타고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은평구 일대를 누비고 있었다. 300여일간의 집 떠난 생활을 마치고 전날 밤 서울 은평구 구산동 자다”고 발언하는 등 청와대의 기류도 대북특사에 부정적이지 않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북특사론도 더욱 탄력을 얻는 모습이다.친이계 핵심으로 분류되는 정두언 의원은 6일 C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전쟁중에도 대화를 하는데 지금 못할 게 없다”며 대북특사론을 공개 제기했다.정 의원은 “남북한은 대화를 원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 대화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북한이 대북특사를 받아들이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대북특사론은 여권내 비주류 사이에서도 적지 않은 호응을 얻는 분위기다.원희룡 의원은 이날 평화방송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은 언제든지 대북특사를 보낼 수 있고, 보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한나라당내에서 대북특사론이 확산되는 것은 강경책만으로는 경색된 남북관계를 정상화시키기 어렵다는 상황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당정 모두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 등 정면대응책을 선호하는 분위기이지만,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선 대화를 통한 해결책이 모색돼야 한다는 것.이와 관련, 원희룡 의원은 “북한의 위협에 대해선 단호하게 대응해야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결국 북한을 우리 변화의 틀 속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며 “군사적 대응보다는 끈질기고 종합적인 장기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대북특사론이 확산되면서 특사 역할이 누구에게 맡겨질지에 대한 관심도 제고되는 분위기다.대북특사는 대통령의 뜻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 때문에 이 대통령의 측근들이 특사후보로 거론되고 있다.특히 당내 주류 사이에선 이재오 전 의원이 자주 거론되고 있다.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정치적 위상에다가가 현재 별다른 정치적 역할이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특사후보로서 ‘0순위’라는 설명이다.정두언 의원도 ‘대북특사로 이재오 전 의원은 어떠냐’는 질문에 “그 중에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이재오 "숨도 안 쉬겠다"…'낮은 포복' 자세이재오 한나라당 전 의원은 12일 “4월 선거가 끝날 때까지는 숨도 안 쉴 것”이라고 말 ‘동북아 평화번영과 한국의 미래’라고 소개하면서 “나는 강의 주제에만 충실할 것”이라고 말했다.이에 앞서 지난 3월말 귀국한 이 전 의원은 “당분간 국내 정치에 거리를 두겠다”며 정치 현안에 대한 언급 및 활동을 자제해왔다.이재오측, 박희태 비공개 회동 '부인'박희태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 4일 서울 시내 모 호텔에서 이재오 전 의원을 만나 친박계 좌장인 김무성 의원 원내대표 추대 문제를 논의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와 관련, 이 전 의원 측은 "공교롭게 같은 호텔에서 약속을 잡았을 뿐"이라고 부인했다.이 전 의원과 가까운 진수희 한나라당 의원은 7일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그 날 같은 호텔에서 비슷한 시간대에 각자 약속이 잡혀, 식사를 마치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나오는 모습이 눈에 띈 모양"이라며 "이 전 의원은 그 호텔에 박 대표가 있었다는 사실도 몰랐다고 한다"고 밝혔다.진 의원은 "이 전 의원이 개인적인 약속을 잡은 식당은 박 대표가 있던 식당과 다른 층에 있었다고 한다"며 "둘이 만나거나 악수를 나눈 적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당시 이 전 의원과 동행한 관계자도 "그 호텔에 이 전 의원의 개인적인 약속이 있어 같이 갔고, 만난 사람은 정치인이 아니었다"며 "호텔에서도 박 대표를 보지 못했다"고 밝혔다.박 대표측은 "당시 일정은 박 대표의 개인적인 일정이었고, 자세한 것은 우리도 알지 못한다"고 말을 아꼈다.미국에서 돌아온 이 전 의원은 지난달 귀국 인사를 겸해 박 대표를 만나려고 했지만 회동 계획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박 대표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양해를 구하고 약속을 취소한 바 있다.'당분간 무악재와 한강을 건너지 않겠다'며 정치인들과의 만남에 선을 그은 이후 '잠행'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이 전 의원은 6일 중앙대 특강에서도 "지금은 정치인들을 거의 만나지 않는다"며 "오전에는 25년간 해온 대로 자전거를 타고 오후에는 학교에 나와 책도 보고 연구를 하고 있다. 정치적 대화를 나누기 위해 정치인을 만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진
    사회과학| 2010.05.31| 87페이지| 2,000원| 조회(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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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자료!] 조선시대 노비의 출산휴가는 80일이었다.
    조선시대 노비의출산휴가는 80일이었다.(조선시대 노비의 사회적 위치)1. 들어가며새 나라를 건국하면 가장 중요한 것은 나라의 기강을 세우는 법령이다. 조선은 세밀히 갖추어진 법전에 의해 제도를 마련하고 행정을 펴 나간 법제 국가였다. 고려 때 쓰던 법령을 대폭 정비하거나 새로 만들어 새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려고 경국대전을 만든 것이다. 이는 천부인권사상, 애민정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조선의 헌법전으로서 백성을 사랑하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려는 깊은 뜻이 담겨있는 자랑스러운 우리 유산이다.“노비의 출산휴가는 80일이었다.” 편을 감상하면서 이러한 경국대전의 애민정신과 천부인권사상을 더욱 자세히 살펴 볼수 있었는데, 이에 대해 간략히 정리해 보고 느낌을 적어보고자 한다.2. 조선시대 노비의 출산휴가는 80일이었다.1) 세종 8년(1426) 4월 17일 왕은 관청의 계집종이 아이를 낳으면 1백일 동안 휴가를 주도록 하고 이를 규정으로 삼도록 형조에 지시했다. 이 때 세종의 나이 29살이었다. 비록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라고는 하나 29살의 청년으로 노비의 출산 휴가까지 염려하는 대목에서 그 안목의 넓고 깊음에 경탄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세종 12년(1430) 10월 19일 왕은 산전 휴가 30일을 추가하는 조치를 내린다.2) 임금이 대언(代言) 등에게 이르기를,“옛적에 관가의 노비에 대하여 아이를 낳을 때에는 반드시 출산하고 나서 7일 이후에 복무하게 하였다. 이것은 아이를 버려두고 복무하면 어린 아이가 해롭게 될까봐 염려한 것이다. 일찍 1백 일 간의 휴가를 더 주게 하였다. 그러나 산기에 임박하여 복무하였다가 몸이 지치면 곧 미처 집에까지 가기 전에 아이를 낳는 경우가 있다. 만일 산기에 임하여 1개월 간의 복무를 면제하여 주면 어떻겠는가. 가령 그가 속인다 할지라도 1개월까지야 넘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상정소(詳定所)에 명하여 이에 대한 법을 제정하게 하라.” 하고,또 김종서(金宗瑞)에게 이르기를,“옛 제도를 고치는 것이 비록 옳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으나, 역대로 대를 이어 받는 임금이 그 시대의 적의성을 참작하여 없애기도 하고 새로 설치하기도 하는 것이다. 지난번 곽존중(郭存中)이 필요하지 않은 관리를 도태한 것을 담당하여, 그 봉급액이 3천여 석에 달하였고, 그 뒤에 다만 집현전(集賢殿)과 종학(宗學)의 두 관청만을 증설하였다. 지금 들으니, 형조에서는 사무가 복잡하여 소송 사건을 제대로 다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매우 곤란하였다 하니, 옛 제도를 보면 6부의 직원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였다. 지금 형조의 낭관(郞官) 두 명을 증원하여 모두 8명으로 만들고자 하는데, 비록 다른 조와 일치하지 않더라도 관계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소송 문제를 처결하는 사무를 도맡게 되어 편리하며 이익이 있을 것이니, 두 의정과 상의하여 보고하라.” 하였다.산전 휴가 30일에 산후 휴가 100일까지 모두 130일의 출산 휴가가 보장된 것이다. 7일의 출산 휴가가 130일로 늘어났으나 획기적인 조치가 아닐 수 없다. 또 여기에 그치지 않고 남편의 육아 휴가 제도까지 실시하였다.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여성의 육아 휴직에 대해 많은 조치들이 시행되고 있다. 조선시대에서는 지금의 노동법이나 사회보장법등에서 보장되는 것들을 그 당시 헌법에 이미 노비에게까지 휴가를 명문화한 점은 놀라운 일이다. 평소 노비는 정말 서양의 그것과 같은 즉 한없이 부리기만 했던 사람취급을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닌, 노비조차도 어여삐 여기는 그 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물론 조선시대와 비교하면 한없이 복잡해지고 끊임없이 발전해 나가야 생존할 수 있는 요즘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노비에게까지 저런 복지혜택을 준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법학| 2010.05.31| 3페이지| 1,000원| 조회(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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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자료!] 조선시대의 죄와벌(조선시대 형벌의 종류)
    1. 들어가며한국법제사 수업을 듣기전 나는 조선시대의 법은 지방사또 마음대로이며, 대개는 무질서한 법들이 난무하는 것으로만 상상 했었다. 특히 사극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조선시대의 형벌은 대단히 자의적인 법 집행과 고문을 연상했다. 한국법제사 강의시간에 보여준 역사추리 - “조선시대의 죄와 벌, 곤장은 칠 수 없었다” 를 보고 나니, 조선시대에는 그들만이 공유하던 나름의 엄격한 법 집행과 형벌제도를 갖추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조선시대의 형법은 일반적으로 중국 명나라의 대명률(大明律)을 이용하여 태장도류사(笞杖徒流死)라고 하는 다섯 가지의 형벌이 있었고 이를 세세히 구분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2. 형벌의 종류(1) 태장도류사1) 태 · 장형(笞杖刑)가벼운 죄에 태(笞-매)와 장(杖-곤장)으로 볼기를 치는 형벌이다. 태형은 10-50대까지, 장형은 60-100대까지 각각 다섯 등급으로 나누어 집행하였다. 이처럼 죄의 종류에 따라 가볍고 중한 것을 기준으로 자세히 구분하였다. 그리고 여기서의 곤은 서로 다른 죄명을 가진 사람들에게 다르게 적용하게 나누어져있었다. 예를 들면, 치도곤은 탈영범이나 절도범에게, 중곤은 살인범에게, 대중소곤은 군대에서 군법을 위반 하는 자에게 한하여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원래 중국 명나라의 대명률(大明律)에서는 참나무나 가시나무를 사용하도록 하였으나, 조선에서는 일반적으로 신장, 곤장에 있어 버드나무를 사용하였다. 그 이유는 참나무와 가시나무에 비해 연하기에 백성들이 덜 아파했었던 것이다. 이것은 곧 임금이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정신(愛民精神)이 담긴 것은 아닐까 싶다.2) 도형(徒刑)중국 한(漢)나라 때 시작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시작되었다. 비교적 중한 죄를 범한 자를 관에 붙잡아 두고 노역을 시키는 것으로 지금의 징역형과 비슷하였다. 1년, 1년 반, 2년, 2년 반, 3년까지 기간이 다섯 가지로 정해져 있었으며 각각에 장 60, 장 70, 장 80, 장 90, 장 100형이 반드시 뒤따랐다.3) 유형(流刑)유배(流配)라고도 하며 매우 중한 죄를 범한 자를 차마 사형시키지 못하고, 먼 지방으로 귀양 보내어 죽을 때까지 살게 하는 것을 말한다. 유배 보내는 거리에 따라 2천리, 2천5백리, 3천리의 세 등급이 있었으며, 각각에 장100형을 집행하였다. 그리고 외부인과의 교류가 가능했기에 다산 정약용의 『여유당전서』가 탄생할 수 있었고, 이동이 불가능했기에 추사 김정희가 죽은 아내를 보러가지 못해 고통을 느꼈다.4) 사형(死刑)교형(絞刑)과 참형(斬刑)이 있었다. 어떻게 죽든 죽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여길 수 있지만, 당시에는 죄에 따라 이 또한 차별을 두었다. 목을 매는 교형이 그나마 신체는 온전히 할 수 있었던 것에 비해 목을 베는 참형이 더 무거운 형벌이었다. 그리고 사약은 오직 왕에게만 권한이 있었다.그 외에 능지처사(陵遲處死) 혹은 능지처참(陵遲處斬)이 있다. 능지(陵遲)란 '언덕을 오르듯 천천히'란 뜻이다. 죽어가는 고통을 최대한 가하겠다는 의미로 반역자나 대역죄인의 신체와 목을 모두 베어 분리시키고 매장을 허용하지 않는 형벌이 있었다. 또한 효수(梟首)라는 참형에 처한 후 그 머리를 매달아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하는 대단히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형벌이 있었다.(2) 잔인한 형벌에 대한 고찰흔히들 중국 명나라의 대명률(大明律)을 통해 유입된 다음과 같은 조선의 형법들이 비인간적이며 무질서하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형벌처럼 통용되기보다는 중죄를 저지른 경우처럼 특수한 상황에만 적용시켰다.- 주뢰형 : 죄인의 두 다리를 한데 묶고 다리 사이에 두 개의 주릿대를 끼워 비트는 형벌- 압슬형 : 죄인을 기둥에 묶어 사금파리를 깔아 놓은 자리에 무릎을 꿇게 하고 그 위에 압 슬기나 무거운 돌을 얹어서 자백을 이끌어 내던 형벌- 난장 : 신문할 때 사용된 고문의 일종으로 신체 부위를 가리지 않고 여러 명이 난타하는 형벌- 팽형 : ‘뜨거운 물’ ‘삶다’의 뜻의 팽. 뜨거운 물에 넣었다가 살아있는데 장례식을 지내며 영원히 추방한다는 무시무시한 형벌- 경면형 : 성종 5년 소나 말을 밀도살한 자의 얼굴에 각각 재우(宰牛-소를 잡다), 재마(宰 馬)라고 새겨 넣는 형벌윤리와 도덕을 강조하던 조선에서는 역시나 이러한 잔인한 형벌들은 금지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난장은 치도곤보다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아 세종이 금지령을 내렸으나 현장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또한 중종이나 영조도 하교를 내려 난장을 금하도록 했지만 결국 민간 사이에서 '멍석말이'로 일제 때까지 이어졌다.3. 재판의 과정조선의 재판은 보통 관부의 앞마당에서 수령인 재판관이 대청 정좌에 위치하여 변론을 들었고 참여주사인 서리는 마루에 엎드려 요지를 기록하였다. 또한 앞마당에는 나장과 사령, 형리가 서있고 가운데에 원고 피고가 진술하였다.모든 재판이 위와 같은 관부 앞에서 대규모로 이루어지진 않았다. 그것이 바로 ‘마을재판’이다. 보통 태 40대 미만의 비교적 소규모의 재판이다. 보통 유사(검사), 좌상(재판장), 존위(변호인) 3인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외에 참관인단(배심원)이 있었다. 재판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유사가 기소를 하고 좌상이 이 사실을 확인한 후 죄인의 진술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유사는 죄인의 잘못을 인정하고 형량을 제시한다. 그러자 존위는 형량을 줄이기를 권유하고 좌상은 참관인단에게 판결 전 의견을 구하고 그 의견을 바탕으로 종합의견을 내린다.사형에 대한 최종 결정권
    법학| 2010.05.31| 3페이지| 1,500원| 조회(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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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자료]틱낫한의 걷기명상
    틱낫한의 '걷기명상''플럼빌리지(Plum village)'.플럼빌리지는, 잘 알려진대로 베트남 출신 승려이자 명상가이고 평화 운동가이며 시인인 틱낫한 스님이 1982년 프랑스 남부 보르도 지방에 설립한 세계적인 명상 공동체이다.틱낫한은「화」,「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등의 책으로 국내에 이미 잘 알려져 있고, 달라이 라마와 함께 현존하는 인류의 '영적 스승'으로 존경받는 인물이기도 하다.플럼빌리지의 '플럼(Plum)'은 우리나라 말로 '자두'인데, '자두 마을'이란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틱낫한이 맨 처음 이곳에 들어와 부처의 첫 제자가 1,250명이었던 것을 기념하여 자두나무 1,250그루를 심었기 때문이라고 한다.플럼빌리지를 생각할 때 흔히들 스님이 세운 곳이니 '절'이라 상상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플럼빌리지는 절과는 사뭇 달랐다. 엄연히 스님들이 수행하고 있는 사찰이긴 했지만, 불교인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거나 또는 무종교인들도 언제든 방문하여 자유롭게 이 곳의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곳이었다. 실제로 이 곳에는 국적이나 종교를 불문하고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잠시 머물고 가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평화를 얻는, 세계적인 명소로 이름을 얻고 있었다.플럼빌리지의 두가지 큰 특징은 전념의 종소리와 걷기명상이다.이곳에서는 종소리가 들리면 하던 모든 것을 멈춰야 한다. 말을 하다가도,길을 걷다가도, 음식을 먹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설거지를 하다가도 잠시 멈추고 조용히 깊은 호흡을 하며 침묵을 지켜야 한다.정해진 시간에 치는 종소리뿐 아니라 30분 간격으로 울리는 괘종 시계소리, 심지어는 전화벨 소리가 날 때에도 침묵을 지키는 '전념'의 시간을 갖다보니,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조용히 침묵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는 그 시간이 얼마나 고요하고 소중한지, 크나큰 깨달음을 주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쁜 일상속에서 그 짧은 시간 동안만이라도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았다.시청각 자료에서 본 플럼빌리지는 앞에서 말한 전념의 종소리와 함께 모두가 함께하는 걷기명상을 통해 자기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배운다.내 손을 잡으세요.함께 걸읍시다.단지 걷기만 할 것입니다.어딘가로 간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그냥 걷는 것을 즐겁게 만끽할 것입니다.평화롭게 걸으세요.행복하게 걸으세요.우리가 내딛는 걸음은 평화로운 걸음입니다.우리가 내딛는 걸음은 행복한 걸음입니다.그렇게 걷다 보면평화로운 걷기라는 것은 없고평화 자체가 걷기라는 것을 알게 되고,행복한 걷기라는 것은 없고행복 자체가 걷기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걷습니다.서로 손을 잡고 우리 모두를 위해서 걷습니다.걷기명상의 주된 목적은 걷는 경험을 온전하게 만끽하는데 있습니다. 걷기명상을 수련할 때 우리는 어떤 특정한 목표를 얻으려 하거나 혹은 어딘가에 도달하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지금 여기입니다. 마음챙김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당신은 대지의 어머니 품에 돌아오게 되고, 지금 여기에서 진정한 고향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틱낫한, 본문 中인터넷 발췌바쁜 현대인들은 삶에 치여 자신이 서있는 현실을 잊어버리기 쉽다. 하루하루의 일상에 지친 나머지, 자신의 신체적인 건강과 정신적인 건강을 돌볼 여유가 없는 것이다. 틱낫한은 지난 40여 년 동안 전 세계 수십만 명의 사람들에게 걷기명상을 가르쳐왔고, 걷기명상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켰다. 그는 삶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지금 여기 존재하는 나 자신’을 알아차리기 위한 걷기명상을 강조한다.
    사회과학| 2010.05.31| 2페이지| 1,000원| 조회(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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