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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조주의, 쇤베르크, 베르크, 베베른, 전쟁과 음악, 12음기법, 표현주의, 제2비엔나악파
    Arnold Schonberg & New Viennese School1. 무조주의무조음악은 조가 없으므로, 으뜸음도 없고 이에 따른 화음도 없다. 대신 한 옥타브 안에 12계의 음이 동등한 자격을 갖는다. 그러나 조성음악을 버리고 새로운 무조음악을 작곡하기 위한 틀로서 음들을 열을 지어 사용하는 음렬작곡 기법을 시도하였는데, 이것을 순열주의 작곡법이라고 부른다.이것은 대부분의 음악이론이 기존작품에서 발견되는 것과는 달리 작곡하기 이전에 쇤베르크가 발명한 독창적인 음악이론인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 쇤베르크와 그의 제자들의 표현주의적 작품들에서 음악 형식의 주된 결정요소로 새롭게 기능화성의 영향을 받지 않는 순수선율, 리듬적 요소들이 등장했고, 이것은 19세기 후기 낭만주의 음악에 조성의 중심성이 약하게 된 형상이 낳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특히 독일의 많은 후기 낭만파 음악은 무조성으로 향하는 경향이 있었다. 반음계화성이 강조된 나머지 모든 화음이 으뜸음과 기능적으로 연관되지 않고 화음들의 진행에 의한 순수음향 자체가 흥alt거리가 되었다. 그 후 기능화성과 밀접히 연관되던 온음계 대신 동일한 크기의 12개의 반음들이 모두 동등한 자격의 음으로 취급되어 가는 현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극단의 반음계주의로 인해 모호해진 조성으로부터 자유로운 불협화음을 가진 무조성에로의 변화는 쇤베르크에 의해 점차 진행되었고, 쇤베르크는 이것을 "불협화음의 해방"이라고 불렀다. 무조성은 비교적 짧은 길이의 감정적 강렬함을 표현하는 음악에서는 적합했지만, 대규모 음악의 통일성을 유지하기에는 방법상의 문제가 있었다.특히 1950-1960년대에는 거의 모든 작곡가들이 음렬기법을 사용하여 작곡을 하는 음렬음악의 전성시대를 초래하였다. 이것은 음의 길이, 강약, 음색까지 모든 음악요소들에까지 확대하는 총렬주의로 발전하였다.쇤베르크는 기본음이 일정한 간격으로 구성되어 있는 음계의 기초가 되는 것을 부정하였지만, 일정한 규칙적인 질서를 전제하고 근음이 모든 이용 가능한 음들을 배열하였의 역행렬, 반행렬, 다시 반행렬의 역행렬 등으로 변화시켜 하나의 음렬로부터 총 48개의 다른 음렬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12개의 음을 조직적으로 균등하게 사용함으로써 조성 또는 선법에 입각한 음악과는 다른 체계를 만들어낸다.2. 표현주의쇤베르크와 그의 제자 베르크는 음악에 있어 표현주의의 대표적 인물로 설명된다. 인상주의처럼 이 용어도 처음에는 회화에 관련되어 쓰였다. 인상주의가 순간적으로 감각된 외적세계의 사물을 표현하려 했던 반면에 표현주의는 목적에 가장 적절한 것 같아 보이는 어떠한 방법이든 사용하여 내적 경험을 표현하려 하였다. 곧 표현주의는 객관적인 실체보다는 대상과 사건이 불러일으키는 작가의 주관적인 감성이나 반응을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작가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건의 왜곡, 과장, 원시성, 환상 등에 의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거나 부조화, 난폭함, 또는 동적인 응용으로 표현하였다. 표현주의는 19세기 말과 20세기의 주요 사조로서 고도의 주관성, 독자성, 무의식적인 자아 표현 등으로 근대 세계의 부조리성, 비합리성을 격분과 분노, 구토 ,불만족, 폭력으로 묘사하고 있다.당시 표현주의 회화의 대표적 인물 중 칸딘스키는 인간 내면 깊숙이 억압된 것들을 추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자아분석적인 작품을 그렸다 .표현주의의 감정 표출 예술은 뭉크의 ‘절규’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절규”는 뭉크의 내면으로부터 숨길 수 없는 고백의 형상들로부터 창조해 낸 것이라고 해석되는 작품으로 여기서 나타나는 불안한 상황의 묘사는 현대인의 깊은 공감을 자아내며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손꼽힌다.표현주의는 제1차대전 이후 독일의 패전으로 환상으로부터 깨어난 독일의 시대상황 곧 분노와 좌절, 냉소와 소외감이 만연하는 사회를 묘사하는데 적절한 도구가 된다. 표현주의는 그리고자 하는 내적 경험의 종류와 그리는 방법에서 낭만주의와 비교된다. 표현주의의 주제는 현대세계에서 존재하고 있는 인간이며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손아귀 속에서 소외되어 후 스트라빈스키와 함께 현대음악에 큰 영향을 미친 쇤베르크는 1874년 9월 13일 유대계 혈통으로 비엔나에서 출생하였다. 1991년부터 1995년까지 은행원으로 생활하면서 작곡가 쳄린스키(Alexander Zemlinsky, 1871~1942)가 지휘하는 아마추어 관현악단에서 첼로를 연주하였으며 그 후 몇 달 동안 쳄린스키에게 대위법을 배웠다. 이 때 잠시 배운 대위법이 쇤베르크가 배운 유일한 정식 음악교육이었다.1901년 쳄린스키의 여동생인 마틸데(Mattilde Zemlinsky)와 결혼하여 베를린으로 이사하였고, 1901년 슈트라우스(R.Strauss) 도움에 의해 Stern Conservatory에서 강의를 시작했으며, 쇤베르크는 베를린에서 작곡 개인교습도 시작하게 되는데 바로 이때 만나게 되는 제자들 중에 안톤 베베른(Anton Webern, 1883~1945)과 알반 베르크(Alban Berg, 1885~1935)가 있었다. 1903년 다시 비엔나로 돌아와 작품 활동에 힘쓰게 되며, 1926년부터 베를린의 프로이센 아카데미의 작곡과 교수로 있다가 유태인을 탄압하는 나치정권을 피하여 1933년 10월에 사임을 하고 가족과 함께 프랑스를 거쳐 미국 보스턴으로 망명한다. 그 후 그는 Universty of California at LA에서 강의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1944년 교육계를 떠나고, 은퇴 후 7년가량 작품을 쓰다가 1951년 7월 13일, 로스엔젤레스에서 18년간 망명생활을 마감한다.- 쇤베르크의 음악환경과 시대적 배경쇤베르크의 1874~1951년까지의 음악환경과 시대는 세계사에 있어 격변의 시기였다. 전쟁과 평화, 파괴와 재건이 교차하는 가운데 삶의 의미, 보편성에 대한 회의, 이성에 대한 자기 부정, 새로운 양식의 실험 등 짧은 시기에 인간들은 너무나 많은 사건들을 경험해야만 했다. 쇤베르크는 독일이 유럽의 후진국에서 강대국으로 급부상하는 시기에 태어나 독일의 급부상이 민족주의의 물결을 일으켜 크고 작은 민족 분규들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러(1899~1907)로 후기 낭만주의 영향이 두드러진 시기로, 특히 바그너와 브람스의 영향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조표를 사용한 조성 음악이 작곡되었으나, 복잡한 전조와 불협화음을 통해 조성의 성격이 불명확해지는 시기이다.주요 작품으로는 ?현악6중주곡“정화된 밤 Op.4",1899?, ?교향시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Op.9",1906?, ?제2현악사중주 f#단조 Op.10, 1906? 등이 있다.? 제2기자유로운 무조적 창작시기(1908~1921)로 협화음과 불협화음의 구별이 사라지면서 조성감각이 와해된 작품을 통하여 음악역사상 새로운장을 여는 시기이다. 쇤베르크는 모든 음을 동등하게 취급하여 불협화음을 자유롭게 사용하였고, 조성의 체계가 붕괴된 무조음악에서는 주관성과 서정적 감정이 논리로 통제되어 객관적인 경향을 보여주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세 개의 피아노 소품 Op.11, 1909?, ?공중정위의 책 Op.15, 1909?, ?달에 홀린 피에로 Op.21, 1912?, ?성악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 Op.22, 1913~1916?가 있다. 급작스러운 대비, 양식의 압축, 불균형적인 리듬, 기묘한 관현악 편성, 말하는 선율 등을 통하여 표현주의 사조를 나타내었다.? 제3기12음기법 창작시기(1912~1933)로 12음을 동등하게 사용하는 구조적 기법을 만들어내어, 체계가 없었던 무조음악에 체계를 부여했다. ?5개의 피아노 소품 Op.23, 1920~1923?과 ?피아노모음곡 Op.23, 1921~1923?을 통하여 12음기법을 선보인다. 주요 작품으로는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호른을 위한 5중주 Op.26, 1924?, ?오케스트라를 위한 변주곡 Op.31, 1928? 등이 있다.? 제4기미국 망명의 시기로 12음기법에 의한 작업과 새로운 조성의 음악적 실험이 이루어진다. 주요 작품으로 ?바이올린 협주곡 Op.36, 1935~1936?, ?제4현악 사중주 Op.37, 1936?, ?관악을 위한 주제와 변주 Op.43a, 1943?5. 베르크다. 19세기 말에 거의 독보적인 명성을 유지했던 바그너는 그의 과장된 표현 때문에 20세기 음악가들로부터는 거부당했다. 또한 드뷔시를 비롯한 인상주의 시기의 작곡가들이 내놓은 곡들 또한 지나치게 주관적이라는 이유로 환영받지 못하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몇몇 작곡가들은 ‘보수성은 곧 타락’이라는 신념 아래 혁신적인 음악적 변화와 진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그리하여 20세기 초 ‘제2비엔나 악파’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음악의 혁신은 시작되었다.그들은 표현의 범위를 제한하는 억압적인 세계였던 ‘조성’에 철저하게 등을 돌리고 신음 악이라고 이해되는 어떠한 새로운 음악경향을 확립하며 본격적인 20세기 현대음악의 시작을 공표하였다.당시 베르크는 낭만주의 성향을 충분히 내포한 표현주의적 무조음악으로 스승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며 당시 쇤베르크보다 더 많이 알려지게 된다.그의 초기작품인 《Piano Sonata Op.1》은 베르크 특유의 독특한 표현주의 정신을 잘 표출해 내고 있는 작품으로 곡의 분석에 앞서 먼저 이 작품에 가장 큰 영향은 당대의 표현주의 예술사조와 무조음악이다.6. 베베른 ; Anton von Webern, 1883 ~ 1945베베른은 작곡가이면서도 지휘자로 이름이 높았다. 베베른은 이른바 제2 비엔나학파의 멤버였다. 쇤베르크의 제자로서 쇤베르크를 충실하게 추종했던 베베른은 12음기법의 옹호자였으며 그의 핏치, 리듬, 다이나믹스의 도식적인 조직에 관한 개혁은 훗날 음조 병렬주의(시리얼리즘)라고 알려진 새로운 음악기법으로 발전하였다. 베베른은 1883년 비엔나의 3구 뢰벤가쎄(Lowengasse) 5번지에서 태어났다. 그의 풀 네임은 안톤 프리드리히 빌헬름 폰 베베른(Anton Friedrich Wilhelm von Webern)이었다. 그는 생전에 프리드리히 빌헬름이라는 중간 이름을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으며 귀족출신임을 뜻하는 von이라는 단어도 1918년, 1차 대전이 끝난 후 새로운 오스트리아가 공화국의 지시에 따라 버렸다. 베베른은 비엔나에서 태었다.
    예체능| 2013.03.01| 9페이지| 3,000원| 조회(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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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베른과 베르크의 음악비교
    베르크는 독일 낭만주의 작곡가인 슈만, 브람스, 바그너, R.슈트라우스, 말러의 영향을 보이면서도 베르크 특유의 12음 기법과 온화한 낭만적인 정서를 결합시켜 가장 이해하기 쉽고 부드러운 느낌을 줌으로써 다른 작곡가들이 12음 기법에 관심을 갖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하였다.베르크는 쇤베르크나 베베른과는 달리 음렬기법을 비전통적인 방법으로 복잡하게 발전시켰다. 베르크는 서로 다르면서도 상호관련이 있는 몇 개의 음렬을 동시에 사용하였으며, 그 결과 그의 작품들은 음렬적 작업과 풍부한 조성적 화성을 결합한 것과 같은 독특한 양식을 띤다.멜로디나 화성면에서 4도 음정을 즐겨 사용하였으며 7도를 멜로디와 화음에 있어서 긴장에의 요소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화음 사용면에 있어서는 고전적인 장, 단 화음과 증 3화음, 4도 구성화음을 많이 사용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 속에서는 항상 조성이 느껴지고, 그렇기 때문에 조성음악에 친숙한 사람들에게도 친숙감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한편 베베른의 작품에 있어서는 무제주의에 기반을 둔 음악적 조직화 가능성이 확실하게 나타났다.12음 기법을 사용하는 방법에 있어 베르크와는 달리 조성적인 수단과 결합을 전면적으로 피아고, 주로 대위법적인 처리방법을 현대적으로 승화시켰다. 즉, 그의 작품양식은 모방적인 대위법에서도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으며, 전위기법이나 리듬을 변화시키는 수법 등을 사용했으나 동형진행이나 반복은 대부분의 경우 피하고 있다. 또한 자신의 생애를 통해 계속 사용되어지는 음색선율에서도 극단적인 경제성과 점묘주의적 시도를 꾀하였다.이것은 베르크에서 보이는 낭만성을 완전히 배제한 것으로, 불필요한 모든 것을 제거함으로써 집중된 동기구조와 응축된 짜임을 지니는 것이다. 그의 음악은 매우 지적이며, 음소재의 활용에 있어서 매우 경제적인 처리를 하였다는 점이 중요하다.베베른의 음악은 최소한의 부호에 의하여 응축된 형식을 취하고 주지적이면서도 조성을 탈피하여 반음계적, 대칭적, 음렬의 규칙성의 특징을 살려 개인의 진보적 특징을 이룩하였다고 하겠다.
    예체능| 2013.03.01| 2페이지| 2,000원| 조회(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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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쇤베르크
    쇤베르크1. 생애쇤베르크는 1874년 9월 13일 오스트리아의 비인에서 태어나, 1951년 7월 1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교외 산타모니카에 있는 자택에서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20세기 현대 음악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준 사람 즉, 현대 음악에 혁신적인 영향을 준 지도적인 작곡가를 든다면 스트라빈스키, 바르톡, 그리고 쇤베르크 이 세 사람을 들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쇤베르크는 이른바 12음의 음악의 발명과 동시에 완성자로서 20세기 전반기에 있어서 위대한 존재인 동시에 같은 시대는 물론, 그 이후의 세대에 커다란 영향을 준 사람이다.자아 비판적인 자세와 창조의 논리적 엄격한 그리고, 미학적인 철저함에 있어서 쇤베르크 처럼 독창적이고 견고한 천재는 최근의 음악 사상에서도 보기 드문 일이다. 쇤베르크는 그 혁신적인 기법과 반역사적인 사상에 의해 20세기의 음악에 일대 전환기를 가져 왔으며, 그 의 제자들인 알반 베르크라든가 베베른 등과 더불어 이른바 비인 12음 악파라고 일컬어지는 유파를 형성하였다.그는 음악의 도시 비인의 습관에 따라 어렸을 때부터 바이올린이라든가 첼로를 켜기 시작했고. 친구들과 모여서 실내악을 연주하며 즐기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모임을 위해 여러 가지 작곡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정식으로 작곡 기술을 배우고 이론을 배운 일은 없었다. 그러다가 당시, 젊은 작곡가들의 지도적인 위치에 있던 체므린스키와 알게 되어 그에게 작품을 보일 기회가 있었다.체므린스키는 쇤베르크의 재능을 인정, 같이 일을 하게 되었다. 쇤베르크는 이러는 동안 그에게서 대위법을 배웠다. 이것이 그가 받은 유일한 음악교육이었다. 쇤베르크는 이 사이에 작곡을 하여 초기의 현악 4중주곡과 가곡을 썼다. 그리고 1899년에 는 현악 6중주곡인 유명한 정야를 완성하였다. 이러한 초기의 작품들은 아직 후기 낭만주의 의 영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쇤베르크 특유의 관능미를 표시하고 있으며, 또 교향악시 는 4도로 만든 화음이나 온음으로만 구성된 를 사용하는식을 불안하고 내적인 마음의 움직임이나 정신의 힘을 표출하는 데 주안점을 두는 이른바, 이 표현주의는 조성의 속박을 벗어나기 위해 무조를 채택하게 되고, 종래의 음 체계를 파괴하여 8도 속에 포함되어 있는 12음에 모두 평등한 중요성을 주어서 이를 일정한 순서로 나열하고 이 음열을 토대로 음악을 구성하는 이른바, 12음 기법을 완성한 것이다.쇤베르크는 1933년 나치스에 쫓겨서 파리로 나왔다가 다시 미국으로 망명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교편을 잡으며 작품번호50에 이르는 작품을 섰다. 쇤베르크의 음악을 아직 이해하지 못 하는 사람이 많으나, 그가 개혁한 양식은 현대 작곡가로서 크건 적건 간에 영향 받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처럼 쇤베르크와 그의 후계자들의 음열기법이 서양 음악에 꼭 필요했음은 사실이다. 하이든, 모차르트, 그리고 베토벤에 의한 극 이전의 빈 고전주의와 마찬가지로, 이 음열기법은 사실 음악 전체의 발전을 집중화하고 활성화했던 수렴의 범위 내에서 아주 다양한 흐름의 음악이 뚜렷이 나타나게 되었고, 그 당시에는 주변적인 것으로 보여 질 수도 있었던 경향을 회복하게 되었다.쇤베르크 음악의 특징무조건성을 향하여 1905년부터 1912년까지의 기간은 반음계적 양식으로부터 무조성적 양식으로 옮겨가는 시기로 볼 수 있다. 이 시대의 작품에 나타나는 한 가지 특징은 표제음악이 아닌 고전적 기악곡 형태의 절대음악이 주종을 이룬다는 것인데 이점 역시 쇤베르크가 낭만주의 사조의 굴레를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1906년의 "실내교향곡"은 대위법, 주제의 발전, 구조적 기능 등에서 브람스의 연장선상에 있는 그야말로 비엔나 고전주의 전통을 계승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1908년, 그러니까 그의 아내가 쇤베르크의 친구이며 화가였던 리햐르트 게스트를에게로 떠난 바로 그 해에 작곡된 "제2현악4중주"의 4악장에 이르러서는 최초의 을 선보인다.표현주의 회화의 영향 쇤베르크는 당시 유럽 미술계의 표현주의 운동에 가담하게 되고 또 직접 표현주의적 그림을 그리기도 유래했는데, 이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했던 바는 인간의 내면세계에 호소하는 자아분석적 작품이다. 표현주의 화가들은 자신들이 실존하는 것을 그대로 박아내거나 혹은 거기에 자신의 해석을 약간 곁들이는 사람들이 아니라 새로운 실재를 창조하는 사람들로 스스로를 평가했다. 따라서 회화는 고도로 추상적일 수 있었고 때로는 그림 속에 그려진 대상들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까지 변형되어 있었다. 당시 표현주의 화단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던 칸단스키가 형체를 식별할 수 있는 구체적 그림을 완전히 져버리고 추상화에만 몰두하게 되는 시기와 쇤베르크가 조성을 완전히 져버리고 무조음악을 작곡하게 되는 시기가 일치하는 것이 반드시 우연만 이라고는 할 수 없다.칸딘스키와 쇤베르크는 절친한 사이였을 뿐 아니라 쇤베르크 역시 화가로서 활동했던 만큼 표현주의 회화운동은 그의 음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사료된다.무조양식의 정착 쇤베르크의 초기 무조음악은 성악작품이 많다. 무조양식이 최초로 발견되는 "제2현악4중주"의 무조악장인 제4악장에도 이례적으로 소프라노가 첨가되고, 1908년부터 1909년에 걸쳐 작곡된 연가곡 "공중 정원의 책",또 후속작품인 독창과 관현악을 위한 모노드라마 "기대"등은 어떤 형태로든 사람의 목소리와 가사를 포함하고 있다.쇤베르크는 조성적 틀을 벗어남으로써 야기되는 막막함을 메우기 위한 새로운 틀로써, 또 작품전체에 의미와 연석성을 부여하기 위한 한 가지 도구로서 성악 가사를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당시 작품에 쓰여 진 가사는 대부분 심리적 상황에 대하여 짧게 묘사한 것으로 극도의 표현주의적이다. 여기에 맞추어 쇤베르크의 음악 역시 긴장과 이완, 강음과 약음, 밀집된 짜임새와 성근 짜임새가 교대되면서 극적인 대조를 이루어가며 분위기가 급작스럽게 변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가운데 쇤베르크의 음악에는 조성의 자취가 점차적으로 사라져서 1910년경부터는 완전한 무조성 양식이 나타난다.무조성의 개념 무조음악은 문자 그대로 조성적 중심이 초기 무조음악을 특별히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음렬음악도 무조음악의 범부에 속하는 것은 물론이다. 쇤베르크는 무조성 대신 범조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언뜻 듣기에 이들 두 가지는 정반대의 개념으로 들린다. 무조성은 전체를 지배하는 조성이 없다는 뜻인 반면, 범조성은 지배하는 조성이 많아는 뜻이기 때문이다.흔히 이라고 하면 한 개의 음 (으뜸음)이 몇 개의 음들을 거느리고 (딸림음, 버금딸림음) 음악전체를 지배하는 위계질서를 가리키는데, 이렇게 전체를 지배하는 음이 한 개가 아닐 경우 , 혹은 복조성이라고 불렀다. 이란 복조성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는 모든 음이 으뜸음이 되는 것인데, 이렇게 될 경우 전제를 지배하는 음은 결국 없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이 궁극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과 같아진다.음렬음악기법 음렬기법의 기본 취지는 철두철미한 무조성을 위하여 어떤 한음도 다른 음들보다 강조되어서는 절대 안 되고, 반음계의 12개음 모두가 완전히 동등하게 취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작곡을 하는 과정에서 비록 의도적이 아닐지라도 특정 음이 강조될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개연성을 제도적으로 방지하기 위하여 이라는 강제적 규칙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12음기법을 사용하기 위하여 작곡자는 우선 12개의 음으로 된 음렬을 만들어야 한다. 음렬은 작곡가가 마음대로 만들 수 있지만, 반음계의 12음 모두가 한번씩 사용되어야 한다. 또 이렇게 만들어진 음열이 작곡의 소재로서 사용될 때도 음렬의 12음 모두가 나올 때까지는 그중 어떤 음도 반복될 수 없다. 한번 만들어진 음열은 네 가지 형태로 사용될 수 있는데 처음에 만들어진 모양 그대로 사용되든지 역행의 순서로 사용되든지 전위되어 사용되든지, 아니면 역행음렬을 전위하여 사용하든지 할 수 있다.역행이란 문자 그대로 뒤의 음부터 차례로 사용하는 것이고 전위란 기본음렬과 대칭이 되도록 위 아래로 뒤집어 사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본음렬의 처음 두 음의 관계를 볼 때 단 2도 상행했다면, 전위음열에서는.※ 쇤베르크의 곡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피아니즘과 음악성, 그리고 최대한의 집중력이 요구됨. 넓은 음정으로 도약하는 불연속적인 선율, 박진감을 감추기 위해 유연하게 사용된 악센트와 리듬, 완벽한 균형을 요하는 음색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페달은 최대한 명료성을 위해 조심스럽게 사용되어야 한다. 쇤베르크의 악보는 메트로놈 숫자를 포함해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세하고 지시어로 가득차 있다.쇤베르크 음악의 12음기법음악작품의 형식적 근거가 되는 조성이 붕괴되자 작품의 구성원리를 다른 방법으로 찾아야 했는데 그 역할을 쇤베르크가 담당해낸 셈이다. 지금까지 7개음으로 구성된 장음계를 사용해오던 것을 온음과 반음의 기능을 똑같이 복합된 조직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즉 옥타브 안에 있는 음의 수가 모두 12음이니까 옥타브내의 모든 음 12개를 전부 사용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장음계와 같이 음정관계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음열이 만들어 질 때마다 서로 다르게 만들어 진다.그러나 만들어진 뒤는 음정관계가 고정이 되고 그 고정된 음계를 유지하면서 곡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12음으로 된 음열은 특정 조성을 느끼게 하지 않는 것이 좋고 하나의 음열 내에 동일한 음이 반복되어 사용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12음 기법은 하우어가 창시한 것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결국 12음 기법을 체계화하고 방법으로 사용한 사람은 쇤베르크이다.그는 교육자로서도 매우 훌륭하여 최대의 독창적 사상발달에 크게 기여한 알반 베르그와 안톤 베베른이란 훌륭한 두 제자를 길렀다. 이들에 대해서는 따로 깊이 논의할 필요가 있는 작곡가 이지만 간단한 소개에 그치려 한다.베르그는 12음 기법에 화성적인 개념을 도입하여 서정성을 띤 감성적인 서정시인으로 불리우고 심리적인 관점에 의존하는 방향으로 발전 시켰다. 베베른은 12음 기법에 수학적인 개념을 더하여 때로는 리듬, 음색까지도 12음기법을 적용시킨 사용을 하였다. 그는 전위음악의 예언자라고도 지칭되는데, 그의 원칙은 극도로 밀착되고 농축된 단위 안에서.
    예체능| 2013.03.01| 6페이지| 1,000원| 조회(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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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베른
    1. 베베른의 생애 (1883 ∼1945)베베른은 오스트리아 티롤 지방의 귀족인 폰 베베른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채광 공학자였고 음악애호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1889년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이듬해인 1890년 아버지의 직장으로 인해 빈을 떠나게 되어, 7세부터 19세까지 그라츠와 클라겐푸르트에서 보냈다. 그라츠는 오스트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언제나 풍부한 전통과 문화로 충만했다. 클라겐푸르트에서 8년과정의 정규학교를 다니면서 피아노, 첼로, 음악이론의 개인지도를 받게 된다. 항상 가장에서 높은 점수 받았던 베베른은, 이 시기에 음악가가 되기로 결심한다.1902년 빈 대학에 입학하여 근대 음악학의 주요 창시자들 중의 한 사람인 아들러의 지도 아래 철학과 음악학을 공부했고, 르네상스의 작곡가인 하인리히 이삭의 ≪코랄리스 콘스탄티누스 ≫에 관한 논문으로 학위를 받았다. 그 뒤, 1904년 베를린의 한스 피쯔너 밑에서 공부하려고 했으나, 그 곳의 정신적 풍토가 그에게 맞지 않아 얼마 뒤 빈에 되돌아 왔는데, 거기에서 쇤베르크를 알게 되어, 베르크등과 함께 그의 제자가 되었다.1906년 빈 대학교에서의 공부를 끝낸 후 베베른은 지휘자로서의 경력을 쌓고자 했지만, 1908년 여름이 되어서야 지휘자로서의 활동을 시작한다. 작품번호가 붙은 그의 첫 작품인 ≪파사칼리아 ≫Op.1은 자신의 지휘로 1908년 초연되기도 했다. 이 이후로 그는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여러 도시를 다니면서 지휘활동을 하게 되는데, 베를린에서 잠시 머문 시기와 군입대 시기인 1915-1916년을 제외하고 12년간 빈, 테플리츠, 단치히, 슈테틴, 프라하 등지에서 음악코치 및 지휘자로 활동하였다.1911년에는 극장지휘자의 생활을 청산하고, 한동안 쇤베르크가 살고 있었던 베를린으로 옮겼지만, 1913년에 다시 슈테틴에서 극장과 계약하였다. 그러나 제 1차 세계대전과 함께 그는 지원1병이 되었다. 1917년 빈에 돌아와 뫼들링크에 거처를 정하고, 개인교수로서 있다가 그 이듬해부터 쇤베르크가 창설한 개인연주협회의 협력자가 되었다. 그 뒤 그의 생활은 본질적으로 작곡에 주력하는 것이었으나, 한편 빈의 노동자 오케스트라 및, 노동자 합창단의 지도자로서 오스트리아 사민주당 협력 하에 1934년까지 이 두 단체를 경영해 왔다.베베른은 초기에 콘서트 지휘자로 작곡가라는 직함보다 더 알려졌다. 특히 빈 음악에 관한 명확한 해석으로 유명했으며, 그중 말러의 작품 연주에 뛰어났다. 빈에서의 지휘활동 기간에 그는 하이든에서부터 브람스에 이르기까지 빈의 클래식 음악을 지휘했지만, 현대음악의 대중교육 및 감상에도 큰 흥미를 가졌다. 그의 지휘 레퍼토리들은 자신의 작품과 편곡 외에도 말러의 교향곡이나 베르크, 레거, 쇤베르크의 작품 등 다양했으면, 한번은 미국 작곡가 아이브스의 작품을 지휘한 적도 있었다. 1926년에는 ISCM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쇤베르크의 작품(Op.10, Op, 26)을 지휘하기도 했다. 1927년에는 오스트리아 라디오 방송국과 정규 지휘 계약을 맺었으며, 1929년에는 뮌헨, 프랑크푸르트, 쾰른, 런던 등지로 연주 여행을 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베베른의 작품은 두 차례동안 빈 시에서 제정한 음악 대상 ‘Viennese Grosses Musikpreis'를 1924년, 1932년 2차례 수상하기도 한다.1926년 시인 요네와 만나는 중요한 일이 일어난다. 이 이후로 베베른의 완성된 성악곡들은 모두 요네의 시를 가사로 택하게 된다: 요네의 ?길없는 길?에 의한 ≪3개의 노래 Three Songs from "Viae inviae"≫Op.23 ≪3개의 노래 Three Songs≫Op.25, ≪눈빛 Das Augenlich≫Op.26, ≪칸타타 No.1≫Op.29 ≪칸타타 No.2≫Op.31, ≪칸타타 No.3≫1934년 나치의 침입과 함께 노동자 연합이 해산된다. 1938년에는 베베른도 라디오 방송국의 직장을 그만두게 되고,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그는 거의 뫼들링에서 지낸다.전쟁이 끝나기 마지막 몇 주일 전에 그는 아내와 함께 빈을 터나 미터질에서 딸과 함께 지내기 위해 잘츠부르크 근처의 산악 지역으로 간다. 이곳에서 ≪3개의 악장에 의한 협주곡 ≫를 쓰는 동안(이 곡은 결국 미완성으로 남게 됨)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되었고, 그의 집이 폭격으로 날아가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또한 1945년 9월 15일, 이곳에서 베베른은 딸의 가옥이 수색 당하는 중이었으며 자신이 포위되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담배를 피우러 집 밖으로 나갔다가 미국 병사에 의해 사살되고 만다.2. 베베른음악의 Style과 특징베베른 음악의 특징으로는 “극단적인 집중성과 간결성”을 들 수 있다. 그는 음악 소재의 모든 반복을 억제했고, 음은 물론 쉼표 하나하나에도 가치를 부여했다. 그러므로 베베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음은 각각 고유의 의미를 갖기 때문에 하나라도 생략될 수 없다. 장식음, 주변음, 반복이 사라지고, 핵심적인 것과 부수적인 것의 구분이 사라진 베베른의 음악은 거대한 형식을 거부하고, 간결하고 축약된 형식을 선호하며, 작곡기법적인 면에서나 형식적인 면에서 을 구현한다.베베른의 작품은, 음렬적 시대전의 작품부터 이미 음향표출의 영역에서 이루어진 일체의 것과 절연된 느낌을 준다. 되풀이 없는 원리와 끊임없는 변주의 원리가 그 속에서는 끝까지 추구되고, 그 결과 일종의 절대적 무주제 형식과 더욱 더 짧은 악식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베베른의 작품은 대개가 매우 짧고 간결하다. 그가 평생동안 쓴 작품 모두가 레코드판 몇 장에 다 들어갈 수 있는 정도이다.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관현악을 위한 5개의 소품? 중 한 악장은 19초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점을 볼 때, 베베른의 음악은 낭만시대의 대형화 추세와 완전한 단절을 보여주고, 오히려 역행 하는듯한 느낌을 준다. 또한 쇤베르크나 베르크의 경우 무조음악에까지 나타나는 낭만주의적 어법의 잔재도 베베른의 음악에서는 배제되어 있는 것이다.베베른의 음악은 짧은 대신 밀도가 있다. 우리가 말을 할 때도 짧은 시간에 많은 내용을 전달하려다 보면 군더더기가 없이 내용이 짜임새 있게 압축되어야 하듯 베베른의 음악은 긴밀한 구성과 절제 있는 표현력, 흠잡을 데라곤 없는 완벽한 형식감을 갖추고 있다. 이것은 바로 고전주의의 정신이다.그리고 간결하면서고 짜임새 있고, 과장된 표현을 절제하는 것은 르네상스 음악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베베른이 성악작품을 많이 작곡했다는 면, 그리고 대위법을 많이 사용했다는 것은 바로 르네상스 아카펠라 음악의 영향이라 볼 수 있다.흔히 베베른의 음악에는 선율이 없다는 말들을 한다. 베베른의 독특한 선율 양식이란 크고 작은 도약이 가장 큰 특징으로 지적될 수 있으며 몇 개의 옥타브를 넘나들면서 선율이 계속되는 도 흔히 발견되는 기법이다.그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1908년 2곡의 조성적 작품과 Op. 3 - 6까지는 무조적 작품이고, 1924년 Op. 17부터는 12음 기법으로 쓰여졌다. 교향곡 Op.21 이후의 작품들은 모두 투명한 구조의 명료한 작품들이다. 이 시기가 이른바 점묘주의 시대로서, 그것은 전통적인 음악의 하모니와 멜로디에 의한 구성을 버린것이라 할 수 있다.점묘음악이란 음공간으로서의 비선율적, 비연속적인 점 모양의 음의 분포에 의해서 구성된 음악으로, 1940년대 말보터 50년대에 걸쳐서 유행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작곡계의 주류는 서부 독일 다름슈타트 국제 현대음악 하계 강습회였으며 불레즈, 노노, 슈톡하우젠등 1920년대에 태어난 작곡가들이 베베른의 12음 기법의 이론적 발전을 추구했다. 그들은 쇤베르크에 의한 12음렬의 선율적 취급을 거부하고, 음의 구성요소를 음높이, 음가, 음색, 강도같은 추상적 요소로 분해하여 점묘음악을 표현한다.즉, 음향과 박자의 간격에 의해 음악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의 총보는 악기들의 흔히 극단적인 음역의 사용과 한번에 한번씩만 연주하는 일이 잦으며, 또 아주 조금씩만 연주한다. 이 수법은 개개의 음에 전에는 없었던 중요성을 주게 된다.3. 베베른의 작품경향1) 제1기 조성음악 시기(1908-1909)베베른 초기 음악은 쇤베르크의 영향을 받았으나 자신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이루기 위해 스승에게서 벗어났다. 그리하여 1908년 이후의 작품에 와서야 점차로 베베른의 독자적인 개성이 나타나게 되었으며 서서히 무조적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제1기 작품은 조성음악의 시기로 파사칼리아, Op.1 와 거룻배로 둔주 Op.2 는 조성음악의 범주에 속하는 곡이다. 선율의 흐름에 있어서 부분적으로 통일된 화성을 내포하고 있다. 베베른은 최초의 작품인 Op.1을 쓴 후부터 단편적이고 도약하는 선율, 다이나믹 기호의 섬세한 지시와 약음기를 이용한 효과 등 이미 초기의 작품에서 그의 음악적 특성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2) 제2기 무조음악시기(1909-1914)제2기에 들어서서 베베른 작품들은 조성붕괴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으며 아주 짧은 형식 속에서 새로운 음향의 자유로운 무조적 음악을 지향하고 있다. 주로 소품 형식을 이용하여 시간이라는 개념을 깨트리고 음 자체를 중시하고 있다. 또한 음높이에 의존하는 선율이 아니라 음색의 변화로 선율을 표현하는 음색선율로 새로운 음향세계를 추구하고 있다.
    예체능| 2013.03.01| 5페이지| 1,500원| 조회(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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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르크
    1. 알반 베르크 (1885-1935)의 생애제2 빈 악파 중에서 가장 젊었던 베르크는 1885년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일생의 대부분을 빈에서 보내게 된다.베르크의 아버지는 오르간을 연주하였으면 베르크의 어머니는 예술적인 소양이 풍부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때문에 베르크는 어려서부터 예술적인 가정환경 속에서 자랐다. 3살위의 형 찰리는 노래를 즐겨 불렀고, 베르크의 2살 어린 누이동생 스마락다는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가족 음악회를 즐겼다. 베르크도 누이동생의 가정교사에게 피아노를 배웠으나 15세가 되기 전까지는 작곡에 관한 특별한 음악 교육을 받지 않았다.어린 시절 베르크는 음악보다는 문학 분야에 큰 관심을 가지고 괴테, 릴케, 에드가 알렌 포우, 보들레르 등의 문학작품을 통독하였고 특별히 글쓰는데 재능을 보였는데 이는 그가 음악적으로 서정적인 성격을 갖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아버지의 죽음으로 가산이 기운 15세(1900년)경부터 베르크는 독학으로 작곡을 시작하여 처음 10년 동안 80여 곡의 가곡을 작곡하였다.그 뒤 1904년 큰 형 찰리가 쇤베르크를 찾아가 베르크의 작품을 보이고, 쇤베르크의 레슨 허락을 받아냄으로써 6년 동안 작곡을 배우게 되었다. 그 후에는 쇤베르크의 협력자이자 친구로서 무조 음악을 거쳐 12음 음악의 기법을 완성하는데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세상이 인정하는 그의 최초의 여러 작품이 이 시기에 작곡된 것인데 그 대표적으로 ≪7개의 초기 가곡≫이 있다.1908년 아직 조성적이긴 하지만 단악장 형식인 ≪피아노 소나타≫Op.1을 작곡하고, 1909-1910년 ≪Piano 반주에 의한 4개의 가곡≫Op.2를 발표했다. 이 곡에서는 조표를 쓰지 않아 모조 음악에의 진전을 나타내고 있다.어느 정도 생활의 안정을 찾은 베르크는 1911년 헬레네 나호스키와 결혼을 하였고, 1913년 독일 문학가인 뷔히너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대표작인 ?보체크? 이 연극으로 공연되었는데, 여기서 베르크는 큰 감명을 받아 이것을 오페라로 착수하기에 이른다. 때마침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베르크도 소집되었기 때문에 일시 중단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지만, 1920년 완성된 이 작품은 ≪보체크≫Op.7로 드뷔시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와 함께 20세기가 낳은 대표적인 오페라로써 높이 평가되고 있다.1923-1925년 ≪피아노, 바이올린과 13개의 관악기를 위한 실내 협주곡≫을 작곡하고, 1925-1926년 현대곡 현악 4중주의 중요한 레퍼토리가 되어있는 ≪서정적 모음곡≫를 발표하였으며, 이 무렵부터 국제 현대음악협회의 오스트리아 지부 임원으로 활동하였다.1929년 보들레르의 ?악의 꽃?에서 소재를 따온 시에 작곡을 한 연주회용 아리아 ≪Der Wein≫이 있으며, 이것을 발판으로 하여 같은 해에 제2의 오페라인 ≪롤루≫에 착수하였으나 완성하지는 못하였다.1935년 바이올린 협주곡을 완성하였는데, 이곡은 베르크와 친하게 사귀고 있던 말러 부인의 딸인 마농 그로피우스의 죽음을 추도하여 작곡되었다. 하지만 이 곡은 베르크 자신의 레퀴엠에 되었고 완성된지 몇 개월 뒤에 오페라 ≪룰루≫ 제3막의 관현악 편곡만을 남기고 가벼운 종양이라고 생각한 것이 악화되어 패혈증을 일으켜 그 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빈의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2. 베르크 음악의 Style과 특징베르크는 제2 빈 악파 중 낭만적인 기질이 가장 강한 작곡가이며 그의 작품은 19세기 음악 정신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그는 12음 기법을 보다 폭넓게 사용하였으며, 종래의 조성음악을 조직적으로 혼합시킴으로써 12음 기법을 완성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쇤베르크의 작곡기법을 대부분 채용하되 자유롭게 사용했으며, 가끔 화성에 조성적인 수직화음과 화성적 진행을 허용했다. 아울러 12음 기법과 온화한 낭만적 정서를 결합하여 그의 음악은 많은 12음 작곡가들의 음악보다 쉽게 받아들여진다.예를 들면, 조성을 암시하는 동기의 사용, 으뜸화음과 딸림화음의 성격을 가진 화음진행, 중심음에 의한 진행 등의 화성진행을 허용하는 음렬을 사용함으로써 고전적 화성과는 다르지만 비슷한 방법으로 조성을 암시하고 있다.화성 진행을 허용하는 음렬의 형성은 동기에 사용된 주요 음정과 반음계의 12음을 수직화하려는 경향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전통적인 3화음에서 12음의 집합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고전적 장,단화음, 증 3화음과 4도로 구성된 12음렬의 수직적인 구조는 “Berg 화음”이라 불리워지기도 한다.베르크는 리듬의 사용에서도 낭만주의적인 경향을 보여 주고 있다. 예를 들면 폴카와 왈츠, 랜들러 리듬(오스트리아와 독일의 바이에른 및 체코의 보헤미아 지방에서 행해진 느린 왈츠에 가까운 3박자 계통의 무곡)등 쾌활한 춤곡 리듬을 부분적으로 사용하였으며, 또한 자신이 직접 이름을 붙인 ‘구조적 리듬'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 구조적 리듬은 그의 대표적 후기 작품인 실내 협주곡, 바이올린 협주곡, 오페라 보체크 과 룰루 등의 악보에 'RH' 기호로 표시되어 있으며, 각 리듬동기들의 구조적인 중용성은 작품마다 서로 다른 유형으로 나타난다. 후기 작품에 나타나는 RH-passage는 초기 작품의 외적인 리듬 형태로부터 출발하여, 나아가서 리듬가(리듬값)를 음열화한 전음열주의자들의 기틀을 마련하였다.3. 베르크의 작품경향베르크의 작품은 음악적 특성에 따라 3기로 나눌 수 있다.1) 초기(1900-1910년)쇤베르크의 제자로서 6년간 사사를 받은 시기로 7개의 초기가곡(1905-1908)들과 피아노소나타 Op.1 의 작품이 있다. 두 개의 #에 의해 조성적인 성격은 띄고 있지만 뚜렷한 조성적 구조를 표현하고 있지 않은 이 소나타의 구조는 현악 4중주 Op.3 의 구조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1907년과 1909년 사이의 4개의 가곡 Op.2 에서는 후기 낭만주의적 음악양식과 드뷔시적인 색채가 완전히 배제되어진 바그너적인 화성을 표방하는데 예를 들면 제1곡의 경우에 온음음계를 사용하여 그가 바그너 스타일의 계승자임을 결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2)중기 (1911-1925년)Altenberg Lider Op.4 , 보체크 , Chamber concerto 에 이르는 작품은 초기의 어법과 자유스러운 음악 어법에 12음 기법을 융합하여 쓰기 시작하였다. 베르크가 보체크 에서 이룩한 업적은 무조적인 기법에 의한 오페라, 대규모 형식의 악곡의 성공이라 할 수 있다. 보체크에서는 초기 작품에서 보여지는 모든 기법들을 다 사용하고 있으며 그 음악의 스타일은 복잡하고 자유롭고 유려하며 엄격한 형식을 탈피하여 자기 음악에의 상상의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예체능| 2013.03.01| 3페이지| 1,000원| 조회(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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